56. 자유세상
택시 한대가 일남이녀를 싣고 급촉히 해변가로 달렸다.
검푸른 파도에서 무시로 악어나 상어가 덮쳐나올 것 같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택시 꼬리를 물고 뒤따라오면서 정신쇠사슬을 절그럭거리며 죽음의 노래를 부른다.
택시는 해변가 호텔 앞에 달려가 유유히 멈춰섰다.
“빨리, 경찰이 덮쳐오겠다.”
정호는 황급히 호텔로 뛰여들어가며 소리쳤다.
‘나영아, 카운터에 가 호텔방을 빼라.”
“네.”
황선희는 오히려 당황하지도 않았다.
“달아다니지 말어. 괜히 무슨 일인가고 경찰에 신고하겠다.”
그제야 나영은 억지로 태연자약한 체 하면서 천천히 호텔 카운터에 다가갔다.
그녀는 당황한 심경을 가랑잎으로 가리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이며 호텔방을 빼는 수속을 해나갔다.
어제 밤까지도 호텔은 그들 셋이 자유분방한 섹스파티를 벌리던 보금자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경찰한테 붙잡힐 감방이 될수도 있었다.
정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키를 찾아들고 호텔방에 뛰여갔다.
그는 호텔방에 들어가 부랴부랴 금은보화배낭부터 찾아메고 나영과 황선희 트렁크도 찾았다. 배낭만 있으면 섬나라에서 얼마간은 향락을 누릴 수 있었다.
“에이, 개쌍년들, 무슨 옷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왔어?”
정호는 두덜거리며 량손에 황선희와 나영의 트렁크까지 끌고 호텔방에서 부랴부랴 나왔다.
맞은 쪽에서 황선희가 느릿느릿 마주 왔다.
“빨리 이걸 끌고 가오.”
“좀 작작 뛰세요. 괜히 경찰을 불러오겠어요.”
“알았다, 알았어. 제 트렁크 건사하오.”
정호가 어망간에 나영이 트렁크를 내밀자 훌 밀어버리고 자기 트렁크를 쥐여 활 당겼다.
“나영일 질투하오?”
“에이유, 엊저녁에 하는 꼬락서니 메스껍더라. 오늘 아침 먹은 걸 다 토할 지경이다. 흥!”
“뭘?”
“몰라서 물어?”
황선희는 두툼한 입술을 찡긋해보이며 쌍까풀눈을 흘겼다.
“메스껍다. 내 앞에서 나영을 핥고 빨고 하던게. 참, 어쩜 짐승처럼 노오? 게걸이 들었소?”
정호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빈정거렸다.
“사랑은 그렇게 열렬히 해야지. 맨 물에 거시처럼 싱거우면 되기나 하겠소?”
“오- 섹스를 그렇게 열렬히 해야 나나를 곁에 붙들어 두지. 나나 남편이 이전에 내한테 병 보이러 왔댔어. 그게 형편없이 시들었더구만. 그래서 나영이 변강쇠를 좋아하는게지.”
황선희는 엘리베이터에 단 둘인지라 정호 그걸 툭툭 치면서 지껄였다.
“이걸 맛 들였어. 그년, 엿으로 딱 붙여놓은 것처럼. 이젠 이걸 떨어지지 못해. 호호호.”
정호는 언짢은 기색이 완연했다.
“귀찮아. 그만 하우.”
그는 선희와 나영이 서로 자기 앞에서 상대방을 헐뜯는게 싫었다. 슬그머니 질투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 셋이 모이면 장마당이 된다더니. 어쩜 많찮은 식솔에 이리도 말썽이 많아? 우리 조선족들은 쩍하면 모래알처럼 흩어지지. 융합이 잘 안돼.)
정호는 기실 일본이 아니면 나영만 곁에 있으면 늙은 페허소 같은 황선희는 필요도 없었다.
(황선희는 옛날 처녀시절 성욕이 강한 녀자 아니야. 이젠 늙어 쇄빠져서 녀자질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아니, 그도 이젠 생리적으로 남자를 싫어할 때지.)
정호는 다만 일본에서 황선희 아니면 어디가 어딘지 한치 앞도 깜깜해 떼놓지 못하였다.
그때 불시에 엘리베이터 문이 훌 열렸다.
나영의 버들잎 눈섭끝이 귀밑까지 쳐들리고 청포도눈알이 화등잔같이 데꾼해졌다.
“아니, 엘리베이터에서 그걸 마구 만져요?”
나영은 자기 트렁크를 받아 챙기며 비양거렸다.
“낫살이나 처먹은 색마들이, 원, 참. 감시카메라 있는데두 창피한줄도 모르고. 참.”
황선희는 단통 네모진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해졌다.
“뭐라니? 제 애비에미 같은 사람들 보고 무슨 말버릇이냐?”
당장 잡아먹을 것 같은 황선희.
나영은 무서워 인차 빌고 들었다.
“잘못했어요. 언니, 믿고 그랬는데요. 호호호.”
정호는 귀찮아하며 재촉했다.
“그만들 하라구. 어서 여길 빠져나가야 해.”
그제야 말다툼이 끝났다.
그들은 호텔에서 빠녀나가 큰길에서 또다시 택시를 잡아탔다.
“우리 지금 어디로 가요?”
나영은 답답해났다.
정호는 뒤좌석의 두 녀자를 돌아보았다.
“글쎄 어디로 갈가? 도꾜에는 문걸 때문에 있을 거 같지 못해.”
나영도 머리를 끄덕이며 종알거렸다.
“그래요. 그 금욕주의자 우리 같은 자유주의 분자들을 용납하겠어요?”
“황박사, 우리 어데 가 숨으면 좋겠소?”
황박사는 한참 궁리하더니 입을 천천히 열었다.
“교토로 갑시다.”
“교토로 모십시오.”
“네.”
운전수는 목적지를 알자 속도를 내 몰았다.
“아니, 왜 오사까로 가지 않고 교또로 가오?”
정호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오사까에 그래두 우리 조선인들이 많이 살지 않소? 오사까가 편리할 거 같은데.”
“모르는 소릴.”
황선희는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걸이네 오사까에 따라올 수도 있어요. 보통조선족들은 거의 다 일본에 오면 오사까에 있기 좋아합니다.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산다고. 그러나 당신 처지는 그렇지 못하잖아요?”
“그래, 거야 그렇지.”
정호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였다.
나영도 한숨을 호- 내쉬더니 두덜거렸다.
“항상 자유세상으로 간다더니. 일본이란 자유세상에 와도 맨날 상가집 개처럼 쫓겨다녀야 하는구만요.”
“아니야, 잠시야. 우린 여기 살기 불편하면 한국에 도망가야 해. 거긴 우리 진짜 자유세상이야.”
정호가 위안해도 나영은 이젠 잘 믿지 않았다.
“거기라고 인터폴이 없겠습니까? 텔레비 보면 한국은 부패분자를 젤 세게 척결하는 나라더구만요. 영란법인지 뭔지 내와가지고 10만원 넘는 선물 받아먹어도 위법이 돼서 코를 다치더구만요.”
“우리야 중국인인데. 한국 법과 무관해. 한국에 가서 재차 한국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 괜찮아.”
정호는 눈 앞이 좀 환해지는 걸 느꼈다.
“혹시 한국 동포들의 보호를 받았겠는지.”
정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극단적 자유주의 국가 미국에 가야 해. 그런데 이왕에 보면, 미국이나 카나다나 서양 사회에서는 경제범을 받아주지 않고 체포해 인터폴을 통해 중국에 이송했단 말이야. 에이구, 경제범은 어디든 자유가 없어.)
택시 운전수가 도쿄 시내 중심을 벗어나자 물었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금방 교토로 간다고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교토?”
“네, 교토로 갑시다.”
“아니, 이 밤중에 교토로 못 가겠습니다.”
아마 운전수는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행색이 수상했던지 교토로 가지 않겠다고 딱 잡아뗐다.
(가능하게 재일동포 운전수일 수도 있잖은가? 조선말을 하면 못 알아들을가 했는데.)
운전수는 택시를 큰길 옆에 대더니 세우는 것이였다.
“그 먼 교토로 못가겠습니다. 손님들이 교토로 가겠으면 왜 신깐센을 타지 않습니까?”
정호는 그럴듯하게 둘러댔다.
“불시에 나오다나니 려권을 두고 와서 찾으러 가는 길입니다.”
택시 운전수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는 확실히 재일동포 맞았다.
그는 녀자 둘에 남자 하나 섞였기에 위험성은 덜하다고 여겼지만 그들이 주고 받는 말을 들어보면 무슨 말 못할 범죄행각이 있어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그 먼 교토까지 몰기 딱 싫었다.
(돈을 벌지 못해도 한밤중에 흉수들을 싣고 교토까지 갈 순 없어.)
운전수는 운전석에서 내려 길 옆에 서서 뒷좌석 차문까지 열고 말했다.
“미안합니다. 저는 집에 일이 있어 교토까지 가지 못하겠습니다. 어서 내리십시오.”
“별수 없소. 내리기오.”
정호가 말하자 황선희 말렸다.
“신깐센으로 가기오. 이 시간대에 렬차 있을 거예요.”
“그래?”
정호는 내리려다가 말고 황선희한테 물었다.
“신깐센을 탔다가 경찰들 눈에 포착되잖을가?”
“괜찮아요. 우리 따로 따로 앉읍시다.”
나영의 주의였다.
“그러죠.”
황선희도 흔쾌히 대답하더니 택시 운전수를 내다보았다.
“여기서 젤 가까운 신깐센 데이류쇼(정류소)에 갑시다.”
택시 운전수는 머뭇거리다가 신깐센정류소로 가자고 하자 생각이 바뀌였다.
“알았습니다.”
운전수는 다시 운전석에 들어와 핸들을 잡았다.
택시는 다시 시내에서 질주했다.
가로등불빛이 환한 됴쿄 시내 야밤은 아주 황홀할 지경으로 아름다웠다. 피뜩피뜩 지나가는 상가들의 오색령롱한 샨데리아불빛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정호와 나영은 넋을 놓고 도쿄 시내 오색령롱한 불야성 풍경을 내다보았다. 진짜 도쿄 구경도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될수록 눈에 많이 담아가려고 애썼다. 택시를 타고 야반도주하면서 도쿄 야밤 풍경을 흠상하는 것이 마치 드라이브를 하는 상 싶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섬나라는 의학과학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날마다 숱한 사람들이 코로나에 감염돼가고 한줌의 연기로 돼 유령처럼 저승사자가 지키는 염라전으로 날아가 떠돌아다녔다.
그들 셋이 신깐센 역에 가서 티켓을 사가지고 렬차 타려고 나가도 “건강마를 보자.”, “마스크를 껴라.”, “안그러면 자가격리한다.”, “구류한다” 등 이러루한 말 한마디도 없었다.
드디여 신깐센 렬차가 플래트홈에 서서히 들어섰다. 그들 셋은 따로 따로 흩어져 렬차에 올라 다른 바곤에 앉았다.
황선희는 렬차 젤 마지막 바곤에 올랐다. 그녀는 정호와 나영이 렬차에 올라 자리를 찾을 때 렬차에서 훌 되내렸다. 더는 정호와 나영과 함께 한바지를 입고 춤을 추기 싫었다.
신깐센 렬차가 서서히 미끌어져나갔다.
황선희는 쪼그리고 앉아 쏜살같이 달려가는 렬차를 바라보면서 한숨을 호- 길게 내쉬더니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풀러덩 물앉았다.
“에이, 시름 싹 놨다. 네놈들을 따라다니다가 언제 감옥에 들어갈지 누가 알아?”
그녀는 꼬리를 감추는 렬차를 향해 손을 저었다.
“잘 가오, 최국장.”
뒤이어 풀래트홈에서 개찰구로 되나오면서 손을 또 저었다.
“빠이, 빠이! 변강쇠!”
그녀는 진작 정호가 자기를 가이드로 리용할 뿐 살뜰한 정이 없다는 것을 깨닿게 되였다.
(변강쇠 마음 속엔 나영 밖에 없어. 내 무슨 거치장스럽게 정호하구 나영이 가이드에 보초군질을 하면서 묻어다니겠어? 이젠 변강쇠하구 섹스도 싫어. 엊저녁에두 봐라. 변깅쇠는 마지못해 나하구 먼저 했어.)
사실 그들 셋은 나뉘여 자면 편리했다. 그런데 정호는 기어이 섬나라에 떨어진 날부터 한방에서 합숙하자고 했다.
(누구를 빼고 누구와 한방에 든단 말인가? 나와 함께 한방에 들지 못한 년은 꼭 단통 입이 뾰로통해지겠는데. 소외감과 질투란 무서운 거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아? 그렇다고 셋이 다 나뉘여 자자면 주숙비가 엄청 들게 아닌가?)
일본 해관을 거치고 나니 배낭이 훌쭉해졌다. 정호는 우멍눈으로 두 애인의 눈치를 흘끔흘끔 곁눈질해보며 말했다.
“자유세상에 왔는데 뭐라오? 우리 한 방에서 자유롭게 살아보기오.”
“어머, 정신나갔소?”
황선희 반대해 나섰다.
나영은 좀 개방성적이여서 미국 방문공연 때부터 정호가 다른 녀자들과 그래도 별문제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리 나왔다.
“한방에서 어떻게 셋이나 자겠는가요? 불편할텐데요.”
나영은 어쩐지 황선희와 함께 자기 싫었다. 황선희도 마찬기지로 나영과 함께 자기 싫었다.
그러나 정호는 계속 고집을 썼다.
“차차 습관될 거요.”
정호는 오사까 호텔에서 자게 된 첫날 밤에 목욕부터 슬슬 하고 중간침대에 벌렁 들어누웠다.
“나영이 먼저 목욕하오. 내 황박사를 오랜만에 좀 기쁘게 해드려야겠소.”
“호호호. 알았어요. 실컷 재미를 보세요.”
나영은 잠옷을 들고 샤와실에 들어가면서 정호한테 청포도눈을 곱게 흘겼다.
드디여 샤와실에서는 물소리가 쏴 들렸다.
황박사는 정호의 우멍눈과 눈길을 마주치더니 쌔무룩이 웃었다.
황박사와 정호가 운우지정을 열렬하게 나누었다. 황박사는 이 한 순간을 위해 숱한 돈을 팔아 그들 셋의 일본출국수속에 항공편까지 마련했던 것이 아닌가.
황박사는 푹신푹신한 침대에 털렁 들어누워 희미한 불빛에 걸려 있는 천정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복잡한 생각을 굴렸다.
(변강쇠는 변태야. 이젠 이전의 살뜰한 맛도 없어. 젊었을 때 살갑던 정도 다 없어졌어….)
그녀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순간 이전에 망아산 소나무숲 속에서 열렬히 운우지정을 누리던 일이 떠올랐다.
(오- 그때는 얼마나 열렬했던가! 하늘에 붕 뜨는 기분이였지.)
그러나 지금 호텔방에서 고독하게 침대에 누우니 머리가 삼검불 같았다. 절절했던 갈망이 절망의 꼬리를 물고 사처에서 허우적거리며 괴롭혔다.
그녀는 정호한테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감이 더 컸다.
(섹스도 젊었을 때 할 짓이야. 예순고개를 바라보면서 이게 웬 미친 짓이야.)
그녀는 독한 마음을 먹었다.
(래일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숱한 위중환자들이 황박사를 기다리는데….)
그녀도 이젠 50대 중반이 넘어서 묵은 정이 있는 변강쇠를 내놓고는 생리적으로 남자들이 싫어질 때가 됐던 것이다.
한편 이 시각 정호는 항선희가 변심해 신깐센에 오르지도 않은 것도 깜깜했다. 그러나 그도 이젠 신변의 녀자들이 하나, 둘 배신하고 떨어져나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의 자유세상도 혼잡해지고 쇠망해가고 있었다. 오히려 자유를 추구하면 할수록 정신쇠사슬이 얼기설기 점점 옥죄여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배낭을 멘 채 걸상에 기대앉아 신깐센 렬차 차창 밖의 어둠 속을 누비면서 착잡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배낭을 짐받이에 놓을 수 없었다. 배낭만 잃어지면 모든 것이 끝장이였기 때문이였다.
일본 공항에 날아내린 첫날부터 재수 없이 배낭이 훌쩍 줄어들었다.
황박사는 봉이눈섭을 치켜뜨며 정호한테 귀띔해주었다.
“숱한 딸라하구 금은장신구를 가지고 해관을 빠져나가기 힘들어요. 우리 셋이 나눠 휴대하고 나갑시다.”
황박사는 일본에서 7년 동안이나 류학한 적 있어 일본통이였다.
정호는 나눠줬다가 찾을 수 없을가 봐 좀 주춤거렸다.
“최국장, 아니, 김사장, 우리 가지고 도망갈가봐 근심 말아요.”
나영도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으며 빈정거렸다.
“누가 그 개도 안 먹는 돈을 욕심내는가 해요. 이젠 우리 둘 다 김사장님한테 매운 목숨인데요.”
정호는 황박사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해관에 빼앗기보다 애인들한테 인심을 내는게 낫지.)
그는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배낭을 내리워 끄르고 금은장신구와 딸라를 꺼내 황선희와 나나한테도 얼마간씩 나눠 주었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 황선희와 나영한텐 은장신구를 나눠주었다. 딸라도 딱 두 묶음씩만 주고 자기가 네묶음을 휴대했다.
그런데 뭐야?
정호가 해관 검사구를 나가려고 할 때였다.
“뭐야? 무슨 금장신구와 딸라를 이리 많이 휴대했어?”
두리모자가 배낭을 열라고 명했다.
끝내 욕심 때문에 화를 자처했던 것이다.
해관 세수일군은 숱한 벌금을 물리고도 모자라 금은장신구와 딸라 두 묶음을 차압했다.
“아니, 전 무역상인데요. 왜 이럽니까?”
“무역일군이란 사람이 해관규정을 이리도 모릅니까?”
두리모자는 딱 잡아뗐다.
“무역일군이라도 금과 딸라 제한액을 초과하면 안됩니다.”
정호는 뒤에서 상을 찡그리는 황선희를 돌아보면서 딸라뭉치를 하나 쥐여 황선희한테 건네려고 했다.
“왜 이래?!”
“저 분은 내 안해인데요. 나눠 휴대하면 초과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두리모자는 황선희를 오라고 손짓했다.
“하나도 속이지 말고 말하십시오. 딸라 얼마나 휴대했습니까?”
“2만딸라.”
“안돼. 2만딸라도 많아.”
황선희박사는 눈이 데꾼해졌다.
“왜 많다는 건가요?”
“남편 만딸라까지 주면 3만딸라 아닌가? 금장신구도 이리 많잖은가?”
두리모자는 점점 목청을 돋구었다.
이렇게 돼 딸라 다섯 묶음에 금은장신구도 수태 차압당했다.
“아니, 무역회사 회장님께 드릴 금장신구도 몰수하면 어떻게 합니까?”
“몰수 아닙니다. 차압했다가 귀국할 때 가지고 가세요. 다만 보관비만 내면 됩니다.”
그 말에 정호나 황선희나 한숨을 후 내쉬고 순순히 복종하는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선희나 나영이나 오사까공항을 벗어나자 나눠 휴대했던 금은장신구와 딸라를 몽땅 정호한테 되돌려주었다.
그러나 석달동안이나 셋이 흥청망청 놀면서 쓰고나니 이젠 배낭이 훌쭉해졌다.
정호는 이 시각 신깐센 렬차를 타고 달리면서 황선희나 나영이 없어질가봐 근심한 것이 아니였다. 다만 명줄이나 다름 없는 금은장신구와 딸라가 근심될 뿐이였다.
(돈만 있으면 계집이야 어데 가서 못 얻겠는가. 알거지만 되면 계집이고 뭐고 다 없어져. 생존도 어려워.)
한편 이 시각 나영은 한창 신깐센 렬차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홀로 떨어진 기회에 가만히 아들과 화상통화하려고 했다. 아무리 국외에서까지 쫓기는 신세라고 해도 모성애는 모든 위험을 이기고 말았다.
그녀는 결연히 남편의 핸드폰 번호를 꼭꼭 눌렀다.
다행히 남편 철석이 화상통화를 받아주었다. 그는 박국장한테 불리워가서 법률교육을 한창 받고 설복되였던 것이다.
철석은 나중에 명확하게 태도표시를 했다.
“제가 꼭 안해를 자수하라고 설복해보겠습니다.”
박국장은 예리한 눈길로 철석을 쏘아보며 명했다.
“좋소. 나영은 꼭 아들애를 보고 싶어 화상통화를 하자 할 거요. 그 기회에 설복해 보오. 나관장은 죽을 죄를 진 것도 아니오. 몇해 징역살이를 하면 함께 살겠는데…”
“예. 꼭 돌아오게 설복하겠습니다.”
“엄마,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아? 보고파, 엄마- 어엉엉, 헉헉, 엄마 빨리 돌아와.”
눈물범벅이 돼 대성통곡하는 아들애를 보고 나영도 울음보를 터뜨렸다.
“오- 그래, 아들, 사랑하는 아들, 엄마도 성림이 보고파.”
“엄마, 지금 어데 있어? 빨리 비행기 타고 날아와.”
“오- 그래. 엄만 지금 한국에 있어. 돈 많이 벌어가지고 날아갈게. 성림한테 사탕이랑 과자랑 요그르트랑 수태 사줄게…”
“엄마, 싹 다 싫어. 돈도 싫어. 엄마만 오면 돼. 난 날마다 엄마 안고 자고 파. 어, 어,어, 엉, 엉, 헉, 헉…”
“그래. 이제 엄마 집에 가면 성림하구 날마다 안구 잘게. 울지 마. 성림이 울면 엄마 마음이 아파. 흐흐흑, 흑흑,”
“엄마, 아프지 마. 안 울게.”
“그래. 사랑해 아들아…”
천석이 네모난 낯이 화면에 떴다.
“여보, 이제껏 무슨 짓을 했든 간에 다 량해할게. 공안국에서 자수해라더라. 몇만원 탐오했니? 죽을 죄 아니라더라. 자수해 로실히 탄백해라.”
나영은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떼먹은 거 게우고 정호랑 나쁜 놈들 죄행과 지금 어데 있는 걸 적발하면 징역형이 감형된다더라. 빨리 돌아와 자수해라. 그것만이 네 유일한 출로야. 새끼를 홀로 떼두고 상가집 개처럼 쫓겨다닐게 뭐야? 어째 아무 말도 없어? 자수하지? 응?”
나영은 한참 묵묵부답하다가 한마디 했다.
“부탁 한가지 하면 들어주겠는가요?”
“그래. 어서 말해라.”
“공안국에 가서 내 자수하겠다더라고 전하세요. 난 전람관 재건비용 5만원을 탐오했소. 잘못했어요. 그러나 탐오한 돈 일전한푼 다치지 않고 카드에 저금해뒀어요. 내 카드 가지고 가서 5만원 찾아 공안국에 가져다 바치세요. 비번은 내 생일이예요. 이제 언제 몸을 빼면 돌아가 자수하겠으니깐요. 박국장한테도 잘 말해두세요.”
“알았다. 애를 봐서 빨리 돌아오라.”
“알았어요. 그간 당신 애 데리고 수고하겠어요.”
“알았다. 타처에서 몸 건강 주의해.”
“그래, 아들 바꾸세요.”
눈물범벅이 된 성림의 수척해보이는 얼굴이 다시 떴다.
“성림아, 귀여운 아들, 사랑해.”
“엄마, 어서 돌아와.”
“그래. 엄마 인차 간다. 기다려. 울지 말고. 네가 울면 엄만 가슴이 미여지는 거 같애 흐흑, 흑흑.”
엄마가 우는 화면을 보자 성림은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엄마, 뽀뽀해달라.”
“응, 그래.”
성림은 핸드폰 화면 속 엄마 낯에 뽀뽀했다. 그러나 인차 왕 하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나영도 핸드폰을 얼굴에 대고 뽀뽀하며 울었다.
쾅, 쾅, 쾅.
갑자기 화장실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
깜짝 놀란 나영은 아들애한테 손을 저어보였다.
“빠이, 빠이, 아들!’
나영은 핸드폰을 바삐 꺼버렸다.
그녀는 눈물을 훔친 후 거울에 얼굴을 대충 비춰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뒤로 넘겼다.
드디여 화장실 문을 훌 열었다. 그녀는 나가려고 하다가 주춤 멈춰섰다.
“앗!”
공포에 찬 비명소리 렬차 안의 숱한 고막을 때렸다.
그녀가 마주친 사람은 누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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