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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 제4권 (47) 김장혁
2022년 10월 10일 13시 12분  조회:1311  추천:0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졸혼

                            제4

 
         
           57.
실망의 포도눈동자



        공포의 바람이 꼬리치면서 정수리를 무섭게 휙- 스치고 지나갔다.
        까만 포도눈동자에 불꽃이 튕기면서 아찔해났다.
        (누굴가? 경찰이 아닐가?)
        나나가 신깐센 렬차 화장실 문을 열고 누군가 쳐다보았다.
       살기등등한 눈확에 우멍눈이 자기를 쏘아보지 않겠는가.
       (앗!)
       나영은 어망간에 비명을 질렀다.
       숱한 려객들의 의아한 눈길이 일제히 화장실 쪽에 쏠렸다.
       다행히 경찰은 아니고 정호였다.
그럼 경찰도 아닌데 나영은 왜 비명을 지르면서 놀랐을가?
그녀는 화장실에서 나와 우멍눈을 피해 다른 바곤으로 스리슬쩍 가버렸다. 자칫 아는 사이라고 하면 경찰한테 잡힐가 봐 미리 모르는체 하자고 약속하고 각기 다른 바곤에 나뉘여 앉았던 것이다.
(최국장이 금방 화장실에서 한 말을 다 듣지 않았을가?)
나영은 바로 그게 두려워 정호를 보고서도 놀라 그만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그들 둘은 다 보이지 않는 눈길이  여겨보고 있는 것 같아 서로 모르는 척하며 갈라졌다.
정호는 우멍눈으로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나영을 보고 웃지도 않고 놔버렸다.
숱한 눈길도 잠잠히 자리를 옮기는 나영을 보고 의문을 풀려고 뒤따라갔다.
나영은 너무나도 놀란 가슴을 눅잦히면서 한 바곤 더 건너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는 차창 밖으로 휙휙 뒤로 밀려가는 어둠을 내다보면서 장탄식했다.
그녀의 까만 포도눈동자에는 실망의 그늘이 서서히 비꼈다. 복스럽던 복숭아 이마에는 잔주름이 건너가기 시작하였고 눈확에는 추적당한 공포흔적이 거므스름하게 찍혀 있었다.
(자유, 자유! 자유를 찾아 수많은 간난신고를 겪었건만 차례진 것이  뭔가? 이게 자유인가? 날마다 심장이 두근닥근하게 쫓기워다니는 꼴, 이게 바로 자유란 말인가?)
그녀는 금방 아들과 충격적인 화상대면을 한 후 정호를 따라다니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새 감옥은 가지 않고 향수했다. 석달 동안에 섬나라 구경도 잘했다. 후지산, 도꾜, 오사까, 혹가이도 가보지 않았던가. 도쿄 아끼하바라거리나 긴자거리에 가서 쏘핑도 하고, 고운 일본 옷을 사입기도 했지. 내 새 화복을 입고 곱게 화장하고 나서면 행인들은 진짜 일본 아가씬가 할 지경이였지. 도꾜만에서 유람선도 탔지. 1만 2천엔짜리 신선로 왕게, 오, 산해진미도 맛있게 먹어보았지. 남자 같지 않은 철석의 성학대를 피해 행복했다. 거의 반년 동안 진짜 변강쇠와 거의 날마다 오르가슴에 올라보았어.)
그녀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모든 공포를 잊고 가슴이 설례여 혼자 쌔무룩이 웃었다.
(진짜 온 몸이 찡찡 전기 통하는 듯하고 하늘에 붕 뜨는 기분이였지. 철석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진짜 남자 자극이였지. 말초신경까지 짜릿짜릿한 자극, 숨이 넘어갈듯한 흥분. 오- 온몸이 해나른해나게 너무 행복했어.)
그 설레이는 기분은 잠시뿐, 이윽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실망의 그늘이 서서히 퍼졌다.
(비록 자유를 박탈당하진 않았지만 형용하기 어려운 간난신고를 다 겪었지. 최국장이 말하는 자유를 찾아 온 대가가 무엇인가. 그저 자유란 성해방과 섹스자유를 말하는 건가? 항상 경찰들한테 쫓겨다니면서 발편 잠을 자지도 못했는데 자유인가? 국내에서는 항상 하늘을 이불 삼아 덮고 풍찬로숙하면서 흑룡강성으로부터 숱한 성과 도시를 도적놈처럼 오토바이와 택시를 타고  S시까지 야반도주했지.)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젠 경찰들한테 쫓겨다니던 나날을 생각하면 진절머리났다. 온 몸에 소름이 쪽 끼쳐 더 회상하기조차 싫었다.
(자유는 기실 변강쇠와의 섹스자유였지. 그 놈의 거물에 하신이 마구 피터지면서도 짜릿한 맛이 좋아 내내 그 지랄을 했지. 섹스자유 대신 잃은 것도 많지. 사실상 우리 가정은 깨졌고 남편도 버렸다. 날따라 성림이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야.)
쓰라린 눈물이 실망에 찬 눈동자를 스르르 덮어버렸다.
(이제야 뭐, 뭐 해도 모성애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뭐니 뭐니 해도 내 마음 속에는 아들뿐이야. 내 품속에서 나온 성림이 제일 크지.)
그러나 나영은 아들을 볼 수 없게 됐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경찰들에게 나포돼 감옥에 들어가야 해. 몇년 감옥살이 하겠는지? 아들도 만나지 못해. 성림도 감옥살이 하는 엄마를 보면 얼마나 울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영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아니야, 절대 그런 모습 보여줄 순 없어. 황차 내가 탐오죄를 낱낱이 탄백하고 자수한다고 해도 몇년 징역을 감형하겠는지도 몰라. 박동묵 국장이나 저승사자 최혜영 국장이 한 승낙도 확실찮아. 철석이 말을 믿을 순 없어. 나를 빨리 돌아오게 하려고 박국장이 관대하게 처분한다고 꿍꿍이를 꾸몄을 수도 있어.)
현실은 그녀로 하여금 쫓겨다니면서도 감옥살이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쪽으로 또다시 기울게 하였다.
신깐센 렬차는 어느덧 잠간 사이에 교토 역에 들어섰다.
역광장까지 나가니 정호가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들은 서너메터 간격을 두고 웅멍눈과 까만 포도눈을 마주 치고는 서로 소 닭 보듯하는 척했다.
그런데 거의 마지막 사람까지 나오는 걸 써캐 훑듯해도 황선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정호와 나영은 불길한 감이 들었다.
정호는 비상용 손목시계핸드폰을 쳐들었다. 아무리 핸드폰을 쳐도 받지 않았다.
“달아나겠으면 달아나라지. 오히려 언니 없으면 더 자유로울 거 같애요.”
나나가 도도거리자 정호는 우멍눈이 튀여나올 지경으로 데꾼해졌다.
“무슨 소리야?”
나나는 스리슬쩍 그럴듯하게 돌려댔다.
“셋이 붙어다니면 꼬리 밟히기 더 쉽잖아요?”
“아니야. 우리 한국에 달아나기 전엔 일본통인 황박사 필요해. 그를 리용해야 할 일이 많어.”
그 말에 나나는 입에 빗장을 지르고 공포에 찬 포도눈으로 사위를 살폈다.
그 사이 정호는 팔을 내리더니 손목시계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황박사, 웬 일이야, 지금 어딘가?
 
 황선희한테서 인차 메시지 왔다.
 
 호텔에 비자를 두고 와서 떨어졌어.  나영과 함께 교토 일지화(一枝花)거리에 가서 놀라구. 큰길 하나 건너면 기생거리야. 일본 아가씨, 한국 아가씨 비단필처럼 꽃혀 있어. 변강쇠 손을 펼 때 왔어. 얼마나 좋아? 소원성취 하게 됐어.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어서 교토에 오라.
 
 며칠 후에 갈게. 내 도쿄서 류학시절 도사 야마구찌 다이로교수를 만나보고 가야겠어.
 
우릴 저승사자한테 물어먹진 않겠지?
 
사람을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린가?
 
좋다. 한가지 부탁하자.
 
뭔데요?
우리 한국에 갈 비자를 맞아달라.  공항에 차압당한 금은장신구와 딸라를 찾아달라. 우린 체포될 가 봐 찾지 못해. 그걸 찾아다달라.
 
힘들어요. 당신 김사장 려권 있어야지.
 
쿄토에 오면 김사장 려권 줄게.
 
알았어요. 다이로교수한테 부탁해보죠. 그는 사회관계가 아주 넓습니다. 문자도 길게 하지 맙시다. 보이지 않는 눈이 우릴 여겨볼 수도 있어요. 행운을 빕니다. 빠이, 빠이! 변강쇠! ㅋㅋ
 
정호는 나영을 돌아보았다.
“위험해. 빨리 자리를 뜨자.”
나영은 대답도 할 새 없이 황급히 정호를 뒤따라갔다.
정호는 택시를 보자 손을 척 들었다.
그들은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교토역 광장을 빠져나갔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정호는 벙어리 상을 하면서 웃호주머니에서 필을 꺼내 손바닥에 일어로  다음과 같이 썼다.
“一枝花마찌에 갑시다.”
“네?”
운전수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기생거리 쪽으로 가는데 웬 이쁜 아가씨까지 데리고 가? 사창가에 팔아먹을 아가씬가?)
정호는 곧추 호텔에 가기 싫었다.
(황선희 경찰에 신고했을 수도 있어. 또 택시 운전수가 경찰에 신고나 하면 납짝 붙잡힐게 아닌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나영까지 포함해서.)
그는 기실 신깐센 렬차 화장실에서 나영이 울고 불고 하며 남편과 한 말을 다 엿들었던 것이다.
그때 그는 깜짝 놀랐다.
(이년, 자수?! 탐오한 돈도 다 게우고? 어쩐다? 떼버리고 달아날가?)
그는 당장 나영을 떼버리고 신깐센 렬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다른 손님이 와서 화장실 문을 쾅쾅 두드렸다. 드디여 문이 벌컥 열렸다.
(잠시 나영을 달고 다니자. 저년 하들하들한 몸으로 기본 욕구는 말려야지.)
정호는 마지못해 나영을 달고 교토에 오기까지 했다.
택시는 어느덧 이찌에다하나(一枝花)마찌 어귀에서 천천히 멈춰섰다.
나영은 고풍스런 목조건물이 줄느런히 늘어선 거리를 둘러보며 어리둥절해났다. 
“여긴 어딘가요?”
“이찌에다하나거린데 한번 와 볼만한데야.”
나영은 정호를 따라 내리면서 두덜거렸다.
“쫓기는 신세에 한밤중에 무슨 구경인가요? 곤한데 호텔이나 먼저 잡지오.”
정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서. 작작 말하라구.”
그러나 나영은 계속 도도거렸다.
“호텔방도 잡지 않고 무슨 구경입니까? 좀 주책있게 놀았으면.”
정호는 배낭을 춰 업더니 우멍눈으로 나영을 돌아보며 씨무룩이 웃었다.
“물론 호텔방을 잡아야지. 건데 지금 황선희 우릴 배신해서 경찰에 신고했을 수도 있어. 우린 최악의 경우를 고려해야 해.”
나영은 단통 까만 포도눈이 데꾼해졌다.
“그렇게 외우던 자유세상 이런 건가요?  자유세상에서도 또 풍찬로숙하면서 상가집 개처럼 쫓겨다니면서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정호는 될수록 얼굴에 웃음을 처바르고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면서 언성도 낮추고 부드럽게 말했다.
“곧추 호텔방에 갔다가 그놈 택시운전수 신고하면 어떻게 해?”
그제야 나영은 더 도도거리지 않고 머리를 좀 수그렸다.
정호는 안팎이 다르기로 이름났다.
그는 기실 일지화거리를 구경하는 척 하면서 길 건너 편에 있는 기생거리에 가 가만히 기생놀이를 하려고 작심하였다. 그러고서도 하영을 스리슬쩍 얼려넘겼다.
일지화거리에는 교토에서 묵은 옛집들이 줄느런히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목조건물에 거므스럼한 칠까지 해놓아 거리에 들어서 구경하노라니 진짜 옛날로 돌아간 듯한 감이 들었다. 집집이 디룽디룽 걸려 있는 벌거스름한 초롱불은 은은한 정취를 더해주었다. 자그마한 울타리에는 참대와 은행나무가 소슬한 가을 밤바람에 설레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밤참 드시죠.”
“사께오 노미마쇼(술 드시죠).”
가게마다 화려한 화복을 입은 아가씨들이 손님을 불러들인다.
정호는 화복을 입은 아가씨 짙은 버드나무눈섭에 끌렸다.
그는 어글어글한 깊은 눈 속을 들여다보며 먹방에 들어가며 나영을 돌아다보았다.
“해물이나 먹고 호텔에 가기오.”
“네- 그러잖아도 배 촐촐해요.”
나영이 따라들어서서 시름놓였다.
정호는 나영과 마주 앉으며 아가씨를 보고 나영이 젤 좋아하는 해물을 이것저것 시켰다.
“이 집에서 젤 비싸고 맛있는 걸로 다 가져오게나.”
나영은 눈을 흘겼다.
“아니, 그게 뭔가요? 비싸다고 다 맛있겠어요. 그저 맛있는 걸 가져오라 할게지.”
나영은 점점 잔소리 많아졌다. 
정호는 나영을 보고 그저 씨무룩이 웃었다.
그는 녀자를 다루는 엘리트였다. 고만한 잔소리는 그저 희죽이 웃어주면서 넘어가면 그뿐이였다. 그러잖고 맞장구를 치면 옥신각신 다투게 될게 아닌가.
사내대장부란 안해나 애인과 자질구레한 일을 가지고 옴니암니 따지지 말고 그저 안해나 애인의 잔소리는 자장가로나 들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별의별 성격을 가진 녀자들도 다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이제껏 정복자의 력사기록을 창조해오지 않았던가.)
그는 오히려 나영의 화를 유모아적으로 풀어주면서 스리슬쩍 얼리기도 했다.
“래일 백화점에 가서 화려한 옷이나 둬 벌 사 입소. 미처 씻기도 시끄러원데. 이젠 화복을 곱게 입고 일본 녀자인척 하란 말이오. 우리 둘은 이제부터 특수 경우를 내놓고는 일어로 말하기오.”
“왜 일어로 말해요? 남들 다 듣는데.”
“그러잖으면 꼬리를 밟힐 수도 있소. 이젠 최사장과 나아가씨로 되돌아가기오.”
나영은 청포도눈이 데꾼해졌다.
“정신 나갔는가요? 왜 진짜 이름 써요?”
“지금 일본 땅에선 김사장과 허비서를 추적해. 우린 이젠 일본 땅에서 놀 때나  한국에 갈 때나 진짜 최사장과 나비서 려권으로 들어가야 하오.”
나영은 단통 걀죽한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 해시시 해졌다.
“알았어요. 이제 최사장 덕분에 처음으로 한국 구경 다 하게 됐네요. 호호호.”
정호는 기실 일지화거리에 온 것도 큰길 건너편 기생거리에 가서 일본 아가씨들을 질탕하게 놀아보자는 것이였다.
그러나 아무리 성자유와 성개방을 주장하는 나영이라고 해도 정호는 내놓고 기생놀이를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녀자들은 대부분 자기는 놀기 싫어하면서도 남편이나 애인이나 다른 녀자와 그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투하고 심지어 독한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것이 젤 무서운 암장된 시한폭탄이고 공포 자체였다. 때문에 정호는 아무리 성개방형 애인이라고 해도 그 방면 언행을 눈치를 봐가며 주의를 돌렸다.
    황선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섬나라에 온 뒤 변강쇠가 달려들면 한두번은 아주 즐기며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이 들어 그게 간지도 몇해 돼 아파나면서 어쩐지 변강쇠의 강렬한 섹스가 점점 싫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는 싫어하면서도 정호가 나영과 그래는 건 슬그머니 질투했다.
나영은 한방에서 정호와 구을며 신음소리를 호텔방이 떠나가게 냈다. 황선희는 옆침대에서 구경하면서 슬그머니 질투심이 북받쳐오르군 했다. 침대에서 뒹굴면서 오래동안 즐겁게 노는 정호와 나영을 구경하면서 슬그머니 소외감도 몸서리쳤다. 
    나영은 변강쇠 성애를 혼자 독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한이였다.
     드디여 김이 문문 나는 왕게랑 조개랑 소라랑 상다리 부러지게 올랐다.
      나영은 반기기는 고사하고 또 푸념질을 했다.
      “아니, 이젠 딸라도 별로 없는데 언제 다 먹는다고 이리 많이 시켰나요?”
“다 그대 젤 좋아하는 해물이오. 잘 먹고 보기오.”
정호는 젖은 휴지로 손을 닦고 왕게 다리를 쑥 뽑아 껍질을 발가 나영한테 내밀었다.
“아- 하오”
“고마워.”
그제야 나영은 쌔무룩이 웃음지으며 앵두입을 아 하고 벌려 들이댔다.
“왕게 다리 들어간다.”
정호는 왕게 다리 속살을 나영의 나팔처럼 벌린 앵두 입에 넣으주면서 중얼거렸다.
“난 그대 까만 포도눈으로 새물새물 눈웃음 칠 때면 젤 좋아.”
나영은 미소 지으며 게다리 속살을 받아 잘근잘근 씹으면서 눈을 곱게 흘겼다.
“녀자를 얼리는데야 이골이 텄지요. 엿발린 말로 녀자 간을 다 녹일 지경. 호호호. 맛있게 먹겠어요.”
“그래. 잘 먹고 보자.”
나영은 왕게 다리를 집어 껍질을 발가 속살을 빼먹다 말고 술잔에 일본 술을 부어 정호에게 드렸다.
“저도 한잔 드오.”
“네. 해물을 보니 맥주 생각나는군요.”
정호는 아가씨를 불러 맥주도 시켰다.
이윽고 맥주가 오자 정호는 매주병을 들어 나영한테도 부어주었다.
“자, 한잔 들기오. 인생이 얼마라고 잘 먹고 보기오.”
“네. 초상집 개처럼 쫓겨다니는 신세에 배 터지게 먹고 봅시다.”
나영은 술잔을 들어 딩둥댕 마주치고 단 모금에 쭉 들이마셨다.
“맨날 쫓겨다니다가 오랜만에 맥주 마시니 기분 참 좋네요.”
정호는 잔을 내려놓고 이쑤시개로 소라 속살을 뽁 뽑아 나영의 입에 가져갔다.
“아, 맛있다. 일지화거리 진짜 기분 돋구네요.”
나영은 차창 밖에서 지나가는 화복차림 아가씨들을 내다보면서 연신 감탄했다.
“김사장, 진짜 녀자 다루는덴 엘리트라니깐.”
정호는 사위를 둘러보며 허리 굽히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래? 이젠 김사장이라고 하지 말고 최사장이라고 불러라는데.”
나영은 의아해했다.
“왜? 또 최사장인가요?”
“이봐, 지금 섬나라에선 김사장을 쫓지 최사장은 추적하지 않아.”
“네- 알았어요.”
“우린 아무리 쫓겨도 붙잡히지 않아.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여라.  우리 둘이 붙어사는 것도 운명의 조화야. 운명적으로 우린 한 몸이 되기로 됐어. 알만해?”
“네?”
나영은 눈이 데꾼해졌다.
“그래 우리 둘이 새 가정이라도 무어야 한다는 건가요?”
“아니, 그런 거야 아니지. 내 정체를 다 아는 나영이 날 받아주겠냐?”
정호는 정색해 기대에 찬 눈길로 나영의 청포도눈을 들여다보았다.
나영은 청포도눈을 딱 감고 한참 속궁리를 돌렸다.
(최국장이야 좋은 남편 감은 못되지. 늙은 건 들째구 저런 바람둥이하구 누가 살아? 누가 살아도 불행이야. 저 사내는 애인으로는 좋지. 섹시한 남자구. ㅋㅋㅋ.)
뒤이어 나영의 빨간 앵두입에서 이런 말이 새여나왔다.
“우린 결코 재혼은 아니지. 애인으로 보내는게 나아요. 안 그래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재혼해 뭐 하느냐? 졸혼하고 아무런 부담도 없이 이렇게 자유롭게 나영과 즐기니 얼마나 좋아?”
“네. 저도 졸혼하고 자유롭게 사는 거 같아 참 행복해요.”
“나하구 사니 그렇지.”
“네. 그래요. 최사장님을 알고부터 진짜 사내란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고 늘 하늘에 붕 뜨는 기분에 살지요. 저는 꿈만 같아요. 제가 한 남자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게 딱 한편의 환상소설을 쓴 거 같아요.”
정호는 술이 서너잔 들어간지라 열변을 토했다.
“그래. 소설가들이 다 눈이 멀었어. 우리 둘의 사랑이야기로 사랑환상소설을 쓰면 단통 명작품이 되겠는데. 나영인 원래 대학 문학학부를 다니잖았어? 문학적수양도 있지. 소설을 기대할게. 소설을 써서 사랑도 없이 마지 못해 가정에 얽매여 사는 숱한 사람들을 깨우쳐 주라구. 우리처럼 졸혼하고 정신쇠사슬로 얽동인 가정을 뛰쳐나와 자유를 즐기고 행복하게 살아라고.”
나영도 알짝지근해 맞장구를 쳤다.
“나도 저 자신에게 자주 물어보았어요. 이때까지 남편을 사랑이나 하면서 살았는가? 아들애 성림이를 보고 얼마나 허위적으로 살았는가? 이젠 어떻게 살아야지?”
정호는 나영한테 엄지를 척 내들었다.
“나영이, 세상 젤 똑똑해.”
그는 맥주를 따라주었다.
나영도 정호 술잔에 소주를 따라드렸다.
“소설에선 자기한테만 묻지 말고 독자들에게도 물어야 해.”
“뭘 묻지요?”
“당신은 남편을, 안해를 사랑하면서 사는가고?”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최국장, 당신 그저 변강쇤가 했더니. 참, 문화수양이 높아.”
나영은 엄지를 내둘렀다.
“이래서 내 그대를 따라 여기까지 왔지.”
“자, 아직도 졸혼하지 못한 불행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 한잔 들자.”
“네. 그대는 진짜 남녀 사랑과 혼인, 가정, 리혼, 졸혼 박사구려.”
“박사 위에 박사지. 내 얼마나 사랑을 잘 하니? 별의별 녀자들하구 별난 사랑을 다 해보잖았느냐? 내 애인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 내 련애사로 소설을 써봐라. 모두 읽으면서 오줌을 셀셀 싸며 감탄할 거야. 허허허.”
“호호호.”
정호와 나영은 부르고 쓰고 하면서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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