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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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힘내세요
2009년 01월 27일 12시 43분  조회:4746  추천:158  작성자: 김범송

  현대사회에서는 어머니의 모성애는 갈수록 부각되고 어머니에 대한 노래와 예찬은 많지만 가장으로서 남편, 세대주인 아버지에 대한 찬미는 그리 많지 않다. 아버지의 숨은 노력과 가정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헌신정신은 ‘응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가정에서는 떳떳하고 사회에서는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평소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인생의 쓴맛을 묵묵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아버지들의 고민이자 책무(責務)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성숙한 인생 및 사명감을 지닌 삶을 사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사회에서는 유용하고 믿음직한 동량지재로, 가정에서는 자상하고 다정다감한 남편 및 아버지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매일 10여 시간 이상 컴퓨터 속에서 살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바탕화면에 있는 나의 귀염둥이들을 클릭한다. 그들은 나에게 방불히 이렇게 말한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고 말이다. ‘거북 인생’을 편달하고 재촉하는 동기부여는 한마디로 ‘아버지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다.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가장 흥행한 광고노래 인기순위 1위는 “아빠 힘내세요”이었다. OECD 국가 중 ‘스트레스 1위’인 한국의 아버지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힘이 되는 노래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아버지’들이 직장 스트레스와 일상의 압력을 이겨내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에게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있고, 자랑스러운 아버지로서의 자긍심과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다. 가정이 화목하고 자식들이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하려면, 모성애와 부성애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수적이다.

  모계사회 이후 인간의 생활방식이 채취로부터 사냥과 수렵, 농업과 목축으로 바뀐 후 아버지는 곧 권력과 지배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가정과 사회는 아버지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가부장적 제도가 확립되었다. 오랜 기간 우리사회에서는 아버지와 군주 및 스승은 곧 일체로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이었다. 하지만 산업화 ·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오랫동안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억압을 받았던 여성의 지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아버지의 권위는 서서히 하락되었으며, 가장으로서 아버지는 점차 무력해졌고 ‘사회적 약자’로 추락했다.

  IMF 경제위기 이후 수많은 아버지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그들의 막강한 권위와 위엄은 사라졌다. 경제위기가 올 때마다 그들의 어깨는 무거워지고 돈주머니는 엷어지는 반면,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된다. 최근에는 중년의 한창 나이에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인생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운명’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여성파워가 커짐에 따라 우리시대의 아버지들은 권위가 위축되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오직 심신의 피곤을 풀 수 있는 것은 술뿐이다.

  미국의 링컨대학에서 학생 5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아버지와 TV 중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라는 설문에 무려 68%가 아버지 대신 TV를 선택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아버지의 존재는 뉴스와 오락프로를 제공하는 TV만도 못했다. 최근 한국의 가정순위 1위가 자식, 2위는 엄마, 3위는 파출부, 4위는 강아지, 5위가 아버지라는 ‘슬픈’ 이야기가 유행되고 있다. 일찍 권위와 위엄의 상징이었던 아버지의 존재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아울러 ‘펭귄 아빠’와 ‘기러기 아빠’들의 급증으로 아버지들은 점점 ‘쓸쓸한 외톨이’로 변해가고 있다.

  군인들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지금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말하라고 하면, 99%가 ‘어머니’를 외친다. 이는 아버지 존재가 어머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고, 아버지의 존재가치가 ‘절하’되었다는 반증이다. 호주제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당당했던 아버지의 존엄과 가정에서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낙동강 오리알’의 신세가 되었다. 최근 ‘아버지의 기를 살려주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이다. 

  최근 사이버 공간에 ‘아버지닷컴’이 개설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께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 사이트를 개설했다는 운영자의 설명이다.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토론장’에는 아버지들의 말 못할 고민거리가 넘쳐난다. 요즘 아버지들은 급변하는 인터넷 · 디지털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있고,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올바른 아버지상을 상실하고 있다. 늘 직장일에 바쁘고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 걱정으로 전전긍긍하며, 가정과 자녀의 성장에는 관심할 여유가 없다.

  얼마 전 신문에서는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의 절반은 눈물과 한숨’이라고, 이 시대 아버지들의 우울하고 힘든 모습을 묘사했다. 직장 불안이 우리시대 아버지를 더욱 주눅 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집안의 권위로 상징되던 아버지는 점차 사라지고, 오늘날의 아버지는 위축되고 고립된 모습이다. 아버지의 위기는 곧 가정의 위기이자 우리사회의 위기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기둥이 무너졌다’고 말하는 것은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과 중요성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와 경기불황의 여파로 수많은 기업들이 부도나고, 회사들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우리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이 직업을 잃고 길거리에 내 몰리고 있다. ‘가족을 부양할 능력을 잃은 가장’ · ‘식솔들을 거느리지 못하는 남편’이라는 딱지가 붙은 수많은 가장들이 설자리를 찾지 못하고, 가장과 남편으로의 존엄과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

  2009년 기축(己丑)년은 ‘소’의 해이며,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이 있다. 날로 팍팍해지고 각박한 우리들의 삶에서 소처럼 부지런히 일하는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힘과 권위를 잃고 어깨가 처진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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