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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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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과 가슴이 붉은 딱새 / 강순아 [한국]
2017년 08월 23일 21시 03분  조회:1039  추천:0  작성자: 강려

왕릉과 가슴이 붉은 딱새

강 순 아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눈부신 봄날, 가슴 붉은 어린 딱새 한 마리가 느티나무에 앉아 봄날을 노래한다.
  '짹짹, 짹짹…… 지지윗지, 지지윗지, 지지윗…….'
  '노란 봄볕 사이로 어린 딱새의 노래가 흩어지자 아지랑이도 덩달아 날아오른다. 아른아른 날아오르던 아지랑이는 해님이 한눈 파는 사이 산수유 가지에 꽂혔다. 산수유 그늘을 피해 쏘옥! 얼굴을 내민 노란 꽃다지. 무더기로 피어 웃고 있다. 갑자기 어린 딱새가 노래를 멈추고 입구 쪽으로 눈을 돌렸다. 언제부터 오고 있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무리지어 궁월터를 지나 이 곳 능으로 오고 있었다. 산수유 노란 빛에 취해 오던 할머니 한 분이 어느 사이 꽃다지를 발견하고는,
  '이것 봐. 이 꽃, 꽃다지 아냐?'
  할머니 손잡고 따라오던 손녀가 동요를 흥얼거린다.

  달래 냉이 꽃다지 나물 캐 보자.
  종달이도 봄이라 노래하잔다…….

  '그래, 맞아. 이게 꽃다지야, 꽃다지…….'
  그 때야 무리지어 반짝이는 풀 이름이 생각난 듯 할머니들께서 환하게 웃으신다. 할머니 웃음 속으로 새소리가 떨어진다.
  '짹짹, 짹짹…… 지지윗지, 지지윗지,지지윗…….'
  '어? 이거 무슨 소리고? 새소리네. 아! 가슴이 붉은 딱새야.'
  이번엔 할아버지들이 손뼉을 치며 나무위를 쳐다본다. 붉은 가슴털을 가진 작고 예쁜 새 한 마리.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호르르…… 날아간다. 건너편 나뭇가지 위로.
  '세상에! 이 큰 능 위에 저 나무 좀 봐. 느티나무지? 오랜 세월 거기에서 저렇게 자랐구나.'
  '오랜 세월? 그렇지. 이 능이 적어도 천 년은 넘었을 테니 오랜 세월이지.'
  '얼마나 깊으면, 얼마나 넓으면 한 그루도 아닌 나무들이 이리 크게 자랐을까?'
  경이롭게 능 주위를 바라보던 노인들이 능원을 빠져 나가자 그 곳은 텅 비었다. 햇빛이 이제 막 부풀어오른 잔디 위로 쏟아졌다. 가슴 붉은 어린 딱새가 다시 돌아와 느티나무에 앉는다. 하느님의 손길은 무섭게 빨랐다. 그리고 눈부셨다. 잔디가 파릇파릇 돋는가 싶더니 멀리 능 마을의 이팝나무가 꽃들을 피워댔다. 그것은 마치 흰구름 같았다. 그 사이 햇빛은 스스로 열에 들떠 안압지의 연못 물을 뜨겁게 달구었다. 가슴이 붉은 어린 딱새는 오늘도 느티나무에 앉아 무엇인가 찾고 있다. 생각에 잠겨 있다.
  '딱새야, 딱새야.'
  '네? 할아버지.'
  '뭘 찾고 있느냐? 찾는 게 보이느냐?'
  '아뇨. 보이지 않아요.'
  '무얼 찾는데? 먹이도 찾지 않고 그리 오래 앉아 있느냐?'
  '연못 물요. 연못 물이 매일 조금씩  조금씩 어디로 숨어 버려요. 어디로 숨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허허…… 연못 물이 어디로 숨는다? 어디로 숨는지 그걸 모르겠다, 궁금하다, 그 말이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딱새는 보이는 모든 게 다 신기했다. 능 마을의 이팝나무. 꽃처럼 피어오르는 흰구름. 하룻밤 새 분홍빛 세상이 되어 버린 벚꽃길. 꽃을 피우기 위해 오랜 시간을 견딘 보람도 없이 며칠 새 팔랑팔랑 나비처럼 날으는 분홍 꽃잎들. 그리고 연못 속의 물들은 어디로 숨어 버렸나?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딱새를 다시 할아버지께서 부르신다.
  '딱새야, 그래. 아직도 그게 궁금한 게냐? 그건 말이다. 숨은 게 아니고 하늘로 올라간 게다.'
  '네? 하늘로요?'
  '그래. 곧 그것들은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연못 속에도 나뭇잎에도 나무 뿌리로도, 그리고 땅 속에도 깊이 스며들지.'
  '땅속 깊이요? 그럼 할아버지도 비에 젖어……?'
  '나? 나는 흙이 되었다. 이미 오래 전에. 흙이 되어 이렇게 나무를 키우고 꽃과 열매를 맺게 하고 있지. 이건 내 힘만으론 되는 게 아니란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촉촉하게 나무들의 뿌리를 적셔줄 수 없지. 너 조금 전에 이런 생각하고 있었지? 꽃은 왜 질까?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나뭇잎은 왜 떨어질까?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나만큼 오래 살다보면 보지 않아도 다 알 수 있는 게야. 이제 정리를 해 주지. 모든 꽃과 식물들은 물만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고 양분이 있어야 하지. 떨어지는 나뭇잎이나 꽃들, 동물들의 죽은 몸은 다 거름이 되어 다시 탄생하는 것들을 키운단다. 나도 죽어서 몸은 오래 전에 흙이 되었고, 이제 영혼만 너하고 이야기하는 거야.'
  '아, 그런가요? 물·구름·비·싹·꽃…… 진다. 양분, 다시 틔운다……. 그런데 할아버지…… 정리가 잘 안 돼요.'
  '정리할 게 뭐 있노? 돌고 도는 거지. 물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비가 되고, 나무가 되고, 다시 물이 되고…… 내가 너고 네가 나고…… 서로 돕고 도우며 산다는 것.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으면 되는 게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돌고 도는 것. 비도, 구름도, 나무도, 새도, 사람도. 하나 되어 살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서로 도와 함께 사는 것. 내가 너고 네가 나고…… 지지윗지, 지지윗지, 지지윗지지윗, 짹 짹 짹…….'
  혼자 중얼대던 가슴 붉은 어린 딱새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능원에 선생님과 함께 소풍 나온 학생들이 가까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신라의 능들은 대부분 어느 왕의 능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요? 왜 그랬을까요? 왜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까요?'
  '그건 수수께끼란다. 신라의 수수께끼지. 천마총 무덤 안에도 그 당시의 부장품들은 들어 있지만 어느 왕이란 이름도 흔적은 없었다 한다.'
  어린 딱새는 궁금한 게 또 하나 생각났다.
  '할아버지도 옛날 신라의 왕이셨죠? 그런데 왜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으셨어요?'
  '내가 왕이었을 때 말이다. 많은 신라의 백성들이 내 앞에서 벌벌 떨었지. 왕은 백성들에겐 너무나 위대한 사람이었단다. 그런데 왕이라 해서 천 년 만 년 살지도 못하면서 그게 무슨 소용이고? 이렇게 한 줌 흙이 되어 나무의 거름밖에 되지 못하거늘……. 흔적을 남긴들 무엇하겠느냐? 그래서…….'
  '찍짹, 찍짹…… 지지윗지, 지지윗, 지지윗…….'
  가슴 붉은 어린 딱새는 알 듯 말 듯 꽁지를 아래 위로 흔들기만 했다. 아른아른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찍 짹, 짹 찍…… 지지윗지, 지지윗지, 지지윗 지지윗…….'
  가슴이 붉은 어린 딱새, 느티나무 가지에 앉아 눈부신 봄날을 갸웃거리며 꽁지를 흔들고 있다. 아직도 알 듯 말 듯 아래위로 꽁지만 흔들고 있었다. 산수유꽃 사이를 지나온 연두빛 바람이 아지랑이 속을 맴돌며 능원에 노란 향기를 하늘 가득히 뿌리고 있었다.

(2005년 5월『월간문학』)

  <작품 감상>
  강순아가 ''왕릉과 가슴이 붉은 딱새'에서 시도한 자연과 인간의 일체화는 동심의 한 특성인 물활론적 사고 영역에서 가능하다. 무생물인 왕릉과 자연물인 새의 대화를 알아듣는 이는 어린이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린이는 동화 문학의 독자인 어린이와 동심을 소유한 어른을 통칭한다. 작가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자연을 인간과 조화시킨다.  어린이들의 공간 구성력을 감안했으면 한다.
  작가는 역사적 소재인 왕릉을 작품 공간으로 옮겨와 환상의 기법을 보인다. 산수유 노란빛에 취한 궁궐터와 왕릉에서 할머니와 손녀의 대화 장면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천 년이 넘은 왕릉을 보고 감탄하는 딱새로 오버랩되는 환상적인 장면이 사실성을 더한다.
  작가의 의도가 과다하게 노출되지 않고 환상적 요소를 가미하여 동화의 본질에 닿아 있다. 자연 회귀가 인간성 회복을 위한 궁극적 해결책임을 담아 낸다. 
(최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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