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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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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김기덕시론

타로를 위한 시쓰기 / 김기덕 [한국]
2018년 01월 20일 12시 16분  조회:1588  추천:0  작성자: 강려
타로를 위한 시쓰기 / 김기덕 


 
1. 마법사(THE MAGICIAN) 카드를 통한 이미지의 구성
 
 
메이저 아르카나의 첫 번째인 마법사 카드는 좋은 두뇌, 손재주, 말재주를 상징하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음을 의미한다. 모두가 홀딱 반할만한 말재주로 사람을 사로잡으며,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자신감에 차있는 젊은이를 말한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영민한 두뇌로 인해 실수할 수 있는 불완전한 상태이다. 이러한 해석을 만들 수 있는 이미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마법사 카드의 이미지 조합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손바닥만 한 카드의 위쪽과 아래쪽엔 장미 줄기가 뻗어 있고 꽃들이 피어있다. 이 싱싱한 장미는 젊음과 청춘을 의미한다. 만개한 꽃들은 한창 전성기임을 표현하고 있다. 아래쪽에 장미 속에 서너 개의 백합은 순결과 고상함을 의미한다. 붉은 색 계열의 네모 탁자가 있고 그 위에 잔과 칼과 지팡이, 그리고 펜타클이 놓여있다. 황토색의 사각 탁자는 땅을 의미하며, 세상을 말한다. 또한 나의 관심사이며, 아직 모서리가 남겨진 인생의 미완을 의미한다. 컵은 감정, 영감, 정신세계와 무의식을 상징하고 있으며, 완즈인 지팡이는 불을 타오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불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자신감과 열정이 가득하여 활동적인 성격을 의미한다. 칼은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를 의미하며, 매혹적이지만 냉혹한 감성을 말한다. 카리스마는 대단하지만 믿음이 부족하고, 욕망이 대단하여 돌진하는 강한 활동력을 의미한다. 또한 펜타클은 땅과 물질적 기반, 물질적 세계, 실제적인 문제나 직업, 돈을 의미한다.
 
이러한 네 가지의 사물이 청년의 앞에 있는 현실의 탁자, 세상의 탁자에 놓여있다. 청년은 이 중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집을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꿈이 가득하다. 탁자의 다리는 검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검은 색은 부패와 소멸, 좌절과 절망이다. 우리 앞에 놓인 현실, 즉 세상은 절망의 기둥으로 세워진 탁자인 것이다. 언젠가 그 탁자가 무너질 때가 있겠지만 아직 현실은 튼튼하다. 이 카드의 배경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노란색의 의미는 황금, 번영, 여름, 봄, 날카로움, 영적임, 명랑, 환희, 경고 등을 의미한다. 또한 태양을 상징하여 중국에서는 황제만이 사용하기도 했다. 로마에서도 고귀한 색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유다의 옷으로 상징되어 악당, 겁쟁이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 카드에서의 상징은 태양처럼 꿈과 희망이 가득할 수도 있지만 겁쟁이처럼 가볍고 경솔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정중앙에 서있는 청년은 오른손을 높이 들고 있는데, 손에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가 들려있다. 이 지팡이는 마술사의 권위를 상징하며, 이 지팡이를 대는 곳마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그의 머리 위에는 무한대가 그려져 있다. 그의 상상력, 창조성은 무한하다. 흰옷에 붉은 외투를 걸쳤다. 흰옷은 순수와 순결, 성스러움을 상징하며, 붉은 외투는 열정과 권위를 상징한다. 그의 허리에는 뱀 모양의 흰 허리띠가 띠어져 있다. 뱀은 지혜인데, 허리에 둘러져 욕망과 정신의 중간에서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해석과 시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가이다. 시는 이미지의 배치이다. 이미지의 배치 속에서 상징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컵과 지팡이와 칼, 그리고 동전이 탁자 위에 놓여 있는가? 그것은 바로 이미지 배치의 묘미이다. 세상은 탁자로 상징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물들이 같은 공간에 배치될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에 칼이 청년의 손에 들려있다면 마법사의 이미지는 달라질 것이다. 이는 마법사이기 이전에 장수와 같은 이미지로 바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배경이 노란색이 아니라 검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면 창조성이 충만한 희망적 세계가 아니라 절망적 세계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배치 변화에 의해 상징의 세계는 다양하게 바뀔 것이다.
시에서도 이미지의 배치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느냐에 따라 시인이 의도하는 상징의 세계는 달라진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이미지의 배치인 것이다. 일반적인 시인들은 자신의 시적 주제를 어떻게 독자에게 전할까를 염두에 두고 시를 쓴다. 그러다보니 이미지는 끌어오지 못하고 관념어를 쓰게 되는 것이다. 관념어를 쓰게 되면 상징의 세계는 깨지게 된다. 곧 상징의 세계를 보여주지 못하는 시는 예술성이 없는 시가 될 수밖에 없다. 시는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저급독자를 위해 상징적 이미지의 사용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상징적 이미지를 포기하고 저급독자에게 다가서는 순간, 시는 설명적으로 바뀌게 된다. 설명적인 시는 독자의 상상력을 막고 단순한 자기 결론을 독자에게 강요하게 된다. 그것을 읽는 독자는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고 생각의 벽, 사고의 고정관념을 만들게 된다. 시는 자신의 의도 플러스 독자의 또 다른 해석이다. 작자의 의도가 100% 반영된다고 해도 독자가 200%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시가 되기 위해서는 이미지로 구성된 시이어야 한다. 관념으로 구성된 시는 작자가 100%의 의도를 집어넣었다면 독자도 아무리 크게 느낀다 해도 100%의 한계를 크게 넘어서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로 구성된 시는 작자가 100%로 의도했다면, 독자는 200%, 300%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데 있어서 이미지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어떤 이미지를 끌어오느냐이다. 주제를 생각하고 시 쓰기를 하든, 아니면 소재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시 쓰기를 하든, 먼저 시를 쓰기 위한 생각의 알맹이와 인접한 이미지, 유사한 이미지, 상징적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 둘째로 이러한 이미지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이다. 마법사에서 칼은 탁자 위에 배치되어 있다. 그것은 아직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는 인생의 청년기이며, 꿈과 희망이 넘치는 출발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칼을 손에 배치한다면 의미는 달라진다. 칼을 머리 위에 있는 무한대 대신에 배치했다면 희망적이기보다는 전쟁과 살상을 꿈꾸는 절망적 상황이 될 것이다. 이렇듯 이미지를 끌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시의 주제성이나 상징성이 달라진다.
중세시대의 그림을 오늘날에도 똑같이 시에 그릴 수는 없다. 과거의 상징물들을 오늘날의 상징물들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해진 공식과 같은 컵과 지팡이, 칼과 펜타클과 같은 이미지를 다른 이미지로 대체할 수 있는 전환이 필요하다. 하나의 카드가 하나의 문장이거나 단락이듯이 그 문장이나 단락을 타로카드의 이미지처럼 시에서도 이미지로 구성하여야 할 것이다. 그 이미지의 구성 속엔 바로 상징의 세계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출처] 1. 마법사(THE MAGICIAN) 카드를 통한 이미지의 구성|작성자 김기덕
 
2. 여사제(THE HIGH PRIESTESS)
 
여사제는 검은 기둥과 흰 기둥 사이에 있다. 이 두 개의 기둥은 양면성을 의미한다. 삶과 죽음, 선과 악, 음과 양, 진실과 거짓 등과 같은 양면성의 사이에 앉아있다. 중용의 세계,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꿈꾸는 세계에 있다. 흰 기둥의 J는 Jachin(권력, Strength)을 의미하며, 검은 기둥의 B는 Boaz(국가, Establish)말한다. 이 두 개의 기둥 뒤에는 석류가 열려있다. 이는 풍요로운 생산을 의미하는데, 힘 있는 국가가 얻을 수 있는 결실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여사제와 같이 배치시켰기 때문에 이 여사제의 생각이거나, 기도, 꿈을 상징한다. 그리고 석류와 같이 그려진 나무의 모습은 마치 켜진 촛불과 같다. 이는 경건한 세계를 의미하며, 정신적인 성숙과 결실을 말한다. 이 여사제의 가슴에 그려진 십자가는 종교심을 상징한다. 옷은 주름이 져있지만 십자가는 구겨지지 않았다. 이는 흔들림 없는 신앙을 의미한다. 여사제가 걸친 가운은 푸른 하늘색이다. 그리고 땅에 드리워진 치마는 흰 구름과 같은 색이다. 치마에 걸친 초승달은 구름이 걸친 초승달과 같아서 시간의 흐름, 지나가는 세월을 의미한다. 시간이 지나면 초승달은 커지는 것이다. 초승달의 색깔은 황금색으로 그렸다. 이는 석류의 색깔과 같은 색으로 꿈과 결실,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여사제의 치마에 걸려있기 때문에 성장하는 여사제, 성숙하는 여사제를 의미한다. 초승달은 상승하는 것이다. 만약 머리 위에 초승달이 걸려 있다면 금세 사라져버릴 것이겠지만, 치마에 걸려 있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치마의 아랫단은 물결과 같이 그려져 있다. 물결은 흐르는 것이다. 세월과 마찬가지로 지나는 것이고, 흐르는 시간과 같은 것이다. 여사제의 얼굴은 노련미가 없는 젊은 얼굴이다. 이는 미성숙, 아직은 삶의 연륜이 부족하지만 지혜와 총명함을 가지고 있다. 여사제가 손에 들고 있는 Tora는 유대인의 경전으로 신비주의적인 지식보다는 실생활과 인간관계에 대한 많은 조언을 담고 있다. 즉 토라는 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으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한다. 흔히 모세오경이라고도 하며, 히브리어로 가르침, 혹은 법을 뜻한다. 이는 정신적으로 안정된 사람을 의미하며,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머리에는 두 개의 뿔과 같은 모자를 썼고, 모자 중앙에는 보름달이 떠있다. 이 두 개의 뿔은 지혜의 날카로움, 확실한 자기주관과 엄격한 사고를 의미하며, 공격적인 지식의 예리함도 갖추고 있다. 보름달은 정확한 때를 의미하기도 하며 세상을 비추는 지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달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존재가 아니라서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토라를 믿고 신을 의지하는 의지자임을 암시한다. 초승달은 떠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발아래 두었고, 보름달은 지는 것이기 때문에 최고의 정점인 머리에 배치했다. 여사제는 풍요로움이 가득한 비밀의 정원 문을 지키고 있다. 굳게 다문 입술에서 정절을 지키고 비밀을 지킬 줄 아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문 앞에 앉아 있는 모습에서 이 여사제는 행동가가 아니라 침착한 사색주의자 임을 알 수 있다. 바닥에 황금색은 희망적이며, 꿈이 가득한 상황을 표현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의 카드에서 많은 의미를 살펴보았다. 하나하나의 그림 속엔 상징이 담겨 있어서 점을 치기 위해 카드를 뽑은 사람이 많은 암시를 받듯, 시도 읽는 독자들에게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한 편의 시를 읽고 그림을 떠올리며 많은 암시를 받을 수 있을 때 독자들은 시에 매료될 것이다. 어쩌면 우연히 만난 오늘의 시 속에서 영감을 받고 희망을 얻어 내일을 살 수 있는 생명시가 될 수도 있다. 절망과 좌절에 빠진 어느 날 한 편의 시를 읽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시, 미래의 운명을 보여줄 수 있는 시를 쓴다면 시는 오늘날과 같이 천대받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타로 점을 치며 하나의 그림 속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다. 타로의 묘미는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카드를 뽑는 제비뽑기 같은 과정을 통해 운세를 맞춰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선택은 자기가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은 또 다른 강력한 기운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게 끌리게 된다는 운명론적인 생각에서 타로는 존재해 왔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흔히 경험했으리라. 자다가 어느 날 문득 성경을 폈는데 그 성경구절이 자신에게 신이 하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기억을. 어느 날 문득 시를 읽었는데 자신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시, 어려운 삶을 보듬어주는 시가 된다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그러한 시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상징성을 담은 이미지의 시가 되어야 한다. 이미지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전해지는 감정은 천차만별이다. 여사제라는 하나의 그림 속에서 많은 의미를 발견했듯이 하나의 시 속에서 시인이 의도한 의미는 물론 그 이상의 상징적 의미까지도 독자들이 발견하고, 공감하며, 자신의 정서로 받아들여 힘과 위로를 주고, 미래의 삶에까지도 암시를 줄 수 있는 시를 써야할 것이다.
[출처] 2. 여사제(THE HIGH PRIESTESS)|작성자 김기덕
3. 여왕
 
포도가 그려진 옷을 입고 여왕이 추수를 앞둔 들판에 앉아 있는데, 이는 물질적인 풍요가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포도는 다산과 많은 생산을 의미한다. 포도 안에는 포도주와 같은 물질적 향락과 정신적인 쾌락이 공존한다. 포도의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은 것은 누리게 됨을 의미한다. 추수를 앞둔 들판은 누런 황금색을 띠고 있다. 모든 수고가 끝나고 이제는 거두어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런 물질적 풍요로움이 하늘의 황금색과 대비되고 있다. 역시 하늘의 노란색도 마찬가지로 풍요로움이 가득함을 의미한다. 여왕의 뒤로 상록수의 숲이 보인다. 상록수는 변함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풍요가 변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상록수 뒤로 활엽수의 숲이 같이 공존하고 있다. 곡식을 거두는 계절이지만 아직 잎은 푸르다. 이는 이러한 풍요가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같이 암시하고 있다. 숲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여왕의 발아래로 떨어진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모든 생명을 살리고 키울 수 있는 양식이다. 물줄기는 마르지 않고 넉넉하게 흘러 곡식이 익은 들판을 적시고 여왕의 주변을 적시고 있다. 현재는 풍요롭고 안락한 가운데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진주목걸이를 하고 황금레이스의 옷을 입고 있어도 그녀의 눈은 우수에 젖어 있다. 더 큰 영광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있으며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머리에 쓴 열두 별의 면류관은 장차 올 영광을 나타내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열두 별은 열두 제자를 의미하며, 구원받을 자가 얻을 영광을 상징하고 있듯이 여기서의 열두 별 또한 이 여왕이 꿈꾸고 기다리는 영광을 의미하고 있다. 이는 침대 밑에 있는 하트, 베개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며, 잉태의 상징이기도 하다. 여자의 면류관은 자식이며, 자식을 통해 과거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열두 별의 면류관과 이 모든 풍요는 자식의 유무와도 큰 관련성을 갖고 있다. 여왕의 이마에는 월계수관이 씌워져 있는데 이도 고대 올림픽의 승자에게 월계수관을 씌워줬던 것처럼 승자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다. 오른손에 들려있는 황금봉은 권위를 상징하며. 의자 위에 놓인 쿠션과 방석은 붉은 색인데, 이것도 권위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체 그림을 통해 볼 때 현재의 풍요와 권위 속에서도 여왕은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이 풍요와 영광은 지속될 수도 있고 지속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침대의 잉태와 무관하지 않으며 열두 별의 면류관을 쓰느냐와 큰 관련성을 갖고 있다. 이 카드는 욕망의 끝없음을 의미하지만, 지나친 욕망으로 인해 쇠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달도 차면 기울 듯이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현재의 부와 풍요를 즐길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타로의 그림과 시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주제의식을 강조하여 쓰던 시에서는 이미지보다는 전달하고자하는 주제의식 때문에 사건이나 감성의 흐름을 중시해야만 했다. 그래서 기승전결과 같은 의식의 변화, 감정의 진전이 이루어져야했다. 그 변화와 진전은 계단을 오를 때와 같이 납득할 수 있는 선의 보폭이 필요했다. 그래서 죽 시를 읽으면 이해가 가능했고,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전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의식의 순차적, 시간적 흐름에서 단절된,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고도의 집중된 의식의 집합을 통해 다양성과 무한변화의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는 몽타주 기법이 쓰이고 있다. 이 몽타주 기법은 이미지들의 결합이며, 적절한 배치이다. 이미지들 간의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상징성은 달라진다. 하나의 타로카드를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점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많은 상징적 요소가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보는 방향,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의미로 나누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침대 위에 베개가 있다면 동침을 생각할 수도 있고, 휴식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왕이 입고 있는 옷의 포도는 여성적인 성숙을 상징할 수도 있고, 다산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미지는 상징을 확장시킨다. 설명적이나 관념적인 접근을 통해 시의 문장을 쓰게 되면 상징성은 축소되고, 단순화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사람들은 단순화된 타로카드의 그림을 통해 인생을 해석하고 예언하려했을까? 거기에는 다양한 해석과 많은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상징성이 가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다. 은유나 상징을 통해 사실 그 이면에 숨겨진 뜻을 전하고자 하는 글이다. 그렇다면 숨겨진 뜻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시는 예술성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시도 단순한 자기감정을 전하는데 만족하지 말고 타로카드처럼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많은 이야기 꺼리가 있는 풍요로움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잡한 이미지들의 배치관계는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시를 읽고 생각하게 하는 시, 소설이나 연구서 같은 한 권의 책이 압축된 시를 쓰기 위해선 고농도의 이미지들이 적절히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에 오른손에 높이 들고 있는 황금 봉을 왼손에 들고, 밑으로 향해 있다면 권위의 상징에서 추락하여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또한 머리에 열두 별의 면류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썼다면 장차올 영광보다는 고난을 상징하게 될 것이다. 이미지에는 많은 언어가 담겨있다. 이미지 속에는 생각이 많은 벙어리가 살고 있다. 그래서 이미지는 독자를 생각하게 하고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결합을 통해 많은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시를 쓰야 할 것이다.
[출처] 3. 여왕|작성자 김기덕
 
4. 황제
 
타로의 네 번째 카드는 황제이다. 황제는 지배, 안정, 성취, 남성적 권위, 행동력, 의사, 책임감이 강함을 의미한다. 또한 한 명의 남성이 왕관을 머리에 쓰고 옥좌에 앉아 황홀을 들고 있는 그림은 황제의 권위를 나타낸다.
먼저 4라는 숫자는 4방위(동·서·남·북), 4원소(지·수·화·풍), 4성질(온·건·습·냉), 수학의 사칙연산(+·-·×·÷) 등을 나타내어 안정적이고, 확고부동한 권력자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황제카드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색깔은 주황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빨강과 노랑을 합친 주황은 붉은 색의 정열과 노란색의 영적 숭고함 사이에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오랜지색은 호사와 화려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불교 승려의 장삼처럼 금욕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러한 오랜지색과 빨간색이 섞인 주황은 영원불변을 상징하기도 하여 왕의 권위가 확고부동함을 나타낸다.
또한 황제는 부정적인 의미도 동시에 갖고 있다. 강한 남성성과 주도권을 의미하는 반면 사태를 외면하고 상황을 기피하려는 이미지를 나타낸다. 황제는 수많은 사람을 거느려야하기 때문에 책임에 대한 과중한 압박감이 있다. 따라서 황제의 표정은 밝지 않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누군가에게 대적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황제의 모습은 위풍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몸을 한껏 뒤로  젖힌 자세에서 오만함까지 느껴진다.
이 카드는 유대 왕(구세주)이 태어날 것을 풍문으로 들은 헤롯왕의 모습으로 권좌에 대한 불안감과 유아살해의 만행을 저질렀던 포악함의 이미지를 함께 담고 있다. 어쩌면 이 견해는 자신의 지배자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을 당시 평민들의 심리를 잘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불멸의 황금빛 목걸이를 두른 황제는 한쪽 손에 십자가 홀을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면 누군가 싸우려는 기세이다. 배경으로 나오는 돌산은 인간의 포부와 야망, 정복을 의미한다. 또한 돌로 된 왕좌는 권위의 단단함, 강한 지배력을 의미하며, 앙크 십자가는 지식의 열쇠, 힘, 권위의 상징이다. 보주는 창조적 힘을 상징하는 여성에너지와 남성에너지에 대한 소유와 지배력을 상징한다. 왕관은 권위와 왕권을 상징하며, 갑옷은 내적인 단단함과 강함, 그리고 보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염은 연륜 있는, 많은 경험과 풍부한 지식을 나타내며, 숫양은 독단적이고 강인한 힘과 고집스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정방향에 대한 해석은 권력, 상황을 지휘하고 이끌 수 있는 막강한 리더십, 탄탄한 미래, 인정받는 실력자를 의미하며, 냉혹한 현실과 막중한 책임감, 믿을 수 있는 신뢰와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이에 대한 역방향은 무기력한 존재를 나타내며 의지가 약하고 낭비가 심하며, 허세를 부리는 자를 의미한다. 미숙하고 마음이 약하며 망설임이 많은 사람을 나타내기도 한다.
타로는 상징적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그림카드이다. 시에서도 상징적 기법의 시를 쓸 수 있는데, 이미지를 이용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시를 써야 한다. 타로카드의 그림 대신 시에서는 이미지어의 사용을 통해서 상징성을 나타내어야 하는데, 이런 이미지어들이 시를 해석하는 키워드 역할을 하게 된다.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인 최은묵의 키워드라는 시를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징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키워드/최은묵
 
죽은 우물을 건져냈다.
 
우물을 뒤집어 살을 바르는 동안 부식되지 않은 갈까마귀 떼가 땅으로 내려왔다.
 
두레박으로 소문을 나눠 마신 자들이 전염병에 걸린 거목의 마을
 
레드우드 꼭데기로 안개가 핀다. 안개는 흰개미가 밤새 그린 지하의 지도
 
아이를 안은 채 굳은 여자의 왼발이 길의 끝이었다.
 
끊긴 길마다 우물이 피어났다. 여자의 눈물을 성수라 믿는 사람들이 물통을 든 채 말라가고 있었다.
 
잎 떨어진 계절마다 배설을 끝낸 평면들이 지하를 채워나갔다.
 
부풀지 못한 뼈들을 눕혀 물길을 만들면 사람들의 발목에도 실뿌리가 자랄까
 
안개가 사라진다. 흰개미가 우물 입구를 닫을 시간이다.
 
우물은 떠나지 못한 자의 피부이다.
 
2015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키워드’를 보면 상징적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치 타로카드가 상징적 사물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듯이 이 시도 상징적이 이미지들로 시를 구성하여 다양한 해석과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시의 첫 문장 “죽은 우물을 건져냈다”에서 ‘죽은 우물’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죽은 우물을 건져낸 것은 상징적인 기법인 것이다. “우물을 뒤집어 살을” 바른다는 표현이나, “부식되지 않은 갈까마귀 떼”, “흰개미가 밤새 그린 지하 지도”, “배설을 끝낸 평면”, “우물은 떠나지 못한 자의 피부” 등과 같은 표현은 상식적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문장이다. 이는 상징적인 이미지들로 결합된 문장이기 때문에 타로카드에서 이미지를 통해 하나하나 해석해 나가듯 이미지어의 결합들을 풀어나가야 알 수 있는 시이다. 이미지 속에는 이미 원형적인 상징성이 들어 있다. 물론 개인적이거나 공중적인 상징성이 들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인 상징성은 독자와의 소통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시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물 속에 담긴 원형적인 상징성을 이용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게 쓰려면 사물에 대한 상징성의 연구가 필요하다. 위 시에서 사용한 ‘우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삶의 원천을 의미한다. 죽은 우물은 병든 사회, 꿈을 상실한 인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치료하려고 뒤집어서 살을 바르지만 부식되지 않는 갈까마귀 떼들이 땅으로 내려 온다. 살은 생명의 요소라서 더 이상 같이 썩지 않게 하려고 하지만, 죽음의 사자와 같은 갈까마귀떼는 부식되지 않고 내려온다. 부식은 금속에서만 이루어지는 화학작용이다. 갈까마귀는 생물이지만 금속적 요소를 가지고 표현한 것은 언어적 결합에 있어서 어색할 수도 있으나 삭막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흰개미 또한 상징적 시어라고 할 수 있다. 개미의 종류에는 불개미, 침개미, 검정개미, 혹개미, 주름개미, 왕개미 등등의 많은 종류가 있지만, 왜 하필 흰개미라고 했을까? 흰색은 보호, 순수, 정직, 계몽, 깨끗함과 연결되며, 또한 생기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시에서 불개미라는 표현을 썼다면 의미는 달라졌을 것이다. 흰개미의 서민적 의미가 지하의 세계와 더불어 소외계층을 의미해주고 있다.
우리가 타로카드를 해석할 때처럼 상징적 이미지들로 조합된 시를 해석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공감되기 어렵고, 독자와의 소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렇게 어려운 시를 왜 써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피카소 같은 화가는 공감하기 어려운 그림을 그린 걸까? 예술에는 독자와의 자연스런 소통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부분도 있지만, 고도의 지적인 사람만이 느끼고 소유하고자 하는 지적유희가 있다. 특권층만이 누리고자하는 물질적 고품격의 세계와 같은, 고도의 상징체계를 통해 감추어진 의미의 세계를 누릴 수 있는 고차원의 지적인 유희의 쾌감을 누리고자하는 예술적 욕망이 깔려있다. 타로카드를 이용한 상징시쓰기의 기법은 이러한 고도의 지적유희를 성취시키고자하는 고급독자들을 위한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은묵의 키워드를 분석해보면 우물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있다. 우물은 생명을 말하는 것으로 시의 문장마다 생명을 상징하는 단어를 심어놓고 있다. 살이나 두레박, 레드우드, 아이, 여자, 길, 눈물, 물길, 실뿌리, 피부 등등이 모두 생명을 상징하는 단어들로 문장마다 키워드를 심어놓고 있다. 매우 난해한 시 같으나 이렇게 유사한 상징적 요소들을 배치함으로써 문장의 내용들이 이어질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다.
이처럼 황제의 타로카드에도 왕관, 돌산, 황홀, 수염, 갑옷, 숫양, 왕좌, 보주, 주황색 등등의 상징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상징물들을 통해 시를 쓰게 되면 언어의 상징성 때문에 서로가 다 이어지고 통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사물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정서적 분위기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시는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사물에는 음과 양의 요소가 공존하고 있다. 언어의 색깔을 잘 파악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림의 색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그림의 색을 표현하는 것은 동사와 형용사, 그리고 명사의 활용에서 나타나는데 그 예를 들면, 왕관이라는 사물에서 ‘왕관이 떨어졌다’와 ‘왕관을 썼다’와는 희망적 색깔과 절망적 색깔과의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형용사로 살펴보면 ‘빛나는 왕관’과 ‘퇴색한 왕관’을 볼 수 있다. 명사적인 차이를 보면 ‘보석 왕관’과 ‘플라스틱 왕관’ 등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타로카드를 활용한 시쓰기를 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상징물들을 찾고, 이 상징물들과 유사상징물을 찾아야 한다. 황제의 상징물은 공식과 같은 것이다. 이 공식에 대입될 수 있는 다른 상징물을 찾아야 한다. 먼저는 배경을 찾아야 한다. 배경이 없는 사건과 사물의 조합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물을 배경으로 잡는다면 황제카드의 상징물들과 유사한 사물들을 배치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황홀-태양, 수염-갈대, 갑옷-물결, 숫양-고사목, 왕좌-절벽, 보주-달, 주황색-노을, 왕관-배, 돌산-능선 등으로 상징적 유사관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직유나 은유적인 표현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짝을 이루는 이 상징물들을 활용하여 직유적, 은유적 관계의 문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태양 같은 황홀’, ‘수염 같은 갈대’ 또는 ‘숫양 뿔의 고사목’, ‘달의 보주’ 같은 표현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의 예술성은 다양한 시각과 복합적 상징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런 단순성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상징성을 끌어올 필요가 있다. 하늘의 황제는 독수리라고 할 수 있다. 바다의 황제는 고래나 상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황제와 유사한 사물을 끌어와 배치시킨다면 좀 더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사고가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황홀-태양-독수리의 눈동자, 수염-갈대-털, 갑옷-물결-발톱, 숫양-고사목-부리, 왕좌-절벽-허공, 보주-달-별, 주황색-노을-하늘, 왕관-배-날개, 돌산-능선-구름 등과 같이 유사한 상징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셋으로 짝이 이루어지면 문장을 만들기도 쉽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지게 된다.
황제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시를 써도 독자의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이 황제를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끌어와야 이 시는 살릴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배경이 중요하다. 황제는 과거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이 과거적 인물을 현재적인 우리의 삶과 연결시키기 위해선 현재적 공간으로 끌어오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만든 공간을 강물과 연결시켜서 절벽이 있고 산이 있고, 강물이 흐르는 자연적 공간이다. 이 공간을 도시와 연결시켜서 상징성을 만든다면 우리의 삶 가까이 끌어올 수 있다. 그리고 황제는 과거의 황제가 아니라 타로카드의 황제이며, 집안의 황제이며, 직장의 황제이며, 나라의 황제인 자존감을 주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공식적인 배치를 통해 완성된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시는 내 개인적인 역량의 작품이며, 잘 되었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을 터득하고 쓴다면 보다 명징한 상징적 시를 쓰게 될 것이다. 자기가 왜 썼는지도 모르고 쓴 모호한 시들이 너무 많다. 이것은 독자를 우롱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책임 있는 시를 써야 한다.
 
  
황제의 비밀
 
카페나 호주머니, 낡은 가방 속 그 어디에도 황제는 있다.
 
황홀을 든 태양의 눈동자가 물결 위를 지날 때마다
갈대들은 허리를 꺾었다.
 
갑옷 속에 감추어진 불안의 발톱이 물결을 할퀴며 건져 올린 안개의 거리는
마차소리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고사목의 뿔들이 내걸린 절벽, 죽음의 부리만이 서로를 쪼아댄다.
 
피로 번진 노을이 암투의 커튼을 드리운 하늘가
숨겨진 욕망이 치솟는 곳은 어디든 마천루다.
 
달의 보주를 차지하기 위해 밤마다 강물 위로 별들은 폭죽처럼 쏟아졌었지
 
물결을 거스르지 못한 왕관이 녹슨 세월을 흘러 정박하는 곳
아무것도 믿을 수 없던 독수리는 늘 땅으로 추락했다.
 
날을 세운 바위들만 송곳처럼 삐져나온 안개 속 철탑의 도시
뿔을 단 사람들이 황제가 되어간다.

​아기의 울음이 헤롯의 칼과 방패를 삼킨 후
스카이라운지나 전광판, 갤러리, 그 어디에도 황제는 없다.

대관식을 마친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로 떠난다.
 
(김기덕/시 전문)
[출처] 4. 황제|작성자 김기덕
5. 교황
 
교황은 마법사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신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로 한 손엔 황금색 지팡이를 다른 한 손은 축복의 표시로 세 개의 손가락을 펴고 있어 신뢰감이 강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있다. 황금색은 권위의 상징으로 신과 버금가는 연결자로서의 존귀함을 의미하는데, 십자가를 의미하고 있다. 이 십자가는 삼중십자가로써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의미한다. 또한 세 개의 손가락을 편 것은 삼위일체를 의미하며, 머리에 쓴 삼중왕관도 신적 권위와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또한 하늘, 땅, 사람 세 가지가 어우러짐을 뜻하기도 한다. 교황 발밑에 있는 두 개의 열쇠는 천국의 열쇠와 땅의 열쇠를 상징한다. 천국의 열쇠는 황금열쇠, 땅의 열쇠는 은열쇠로 되어 있는데, 천국의 열쇠는 베드로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베드로의 후손인 교황이 황금열쇠를 갖게 되어서 황금열쇠로 나타냈다.
​       실용적인 지혜와 신이 내린 지혜를 상징하기도 하는 열쇠 또한 십자가처럼 크로스해서 그림으로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양털로 짠 Y자형의 하얀 띠인 팔리움은 십자가가 수놓아져 있다.
어깨 위에 걸친 팔리움은 선한 목자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교황의 권력을 강조하기보다는 주교관처럼 겸손함을 나타내는 의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교황의 말씀을 듣고 서 있는데, 두 제자를 의미한다. 제자들의 옷엔 장미와 백합이 수놓아 있는데, 장미는 정열과 사랑을 의미하며, 백합은 순결과 순종을 의미한다.
    제자는 법률과 규칙, 전통을 의미하며, 대머리는 지식이 충만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원칙만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기둥이 좌우에 두 개인 것은 빛과 어둠, 선과 악, 남자와 여자와 같은 모든 대비를 의미한다. 그 기둥 사이에 교황은 위치해 있다. 이는 한 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며 절대로 심판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황의 푸른색 옷은 신의 무한한 지혜를, 붉은 겉옷은 신의 권위를 상징한다. 교황의 발아래 있는 체크무늬는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것으로 세상을 발아래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고 있는 신발은 흰색인데, 발은 행위를 의미하여 그 행위가 더럽지 않고 깨끗해야함을 상징하고 있다.
숫자 5에 교황을 놓은 것은 무슨 의미일까? 숫자 5는 다섯 손가락처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5는 예수의 몸에 난 상처를 의미하기도 하며, 5일 동안 세상의 완성과 동서남북과 중앙의 배치로 인한 오방의 안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우주의 기를 상징하는 목, 화, 토, 금, 수의 오행이 있다. 5의 다른 의미를 살펴보면 인, 의 예, 지, 신의 오상과 간, 심, 폐, 비, 신의 오장이 있고, 쌀, 보리, 조, 콩, 기장의 오곡이 있다. 인간의 오복인 수, 건강, 부, 덕, 고종명 등이 있다. 어쨌든 인간의 완성적 존재인 교황을 5번에 둠으로써 신성을 입은 최고의 권위를 상징했다.
지금까지의 해석을 통해 그 뜻을 살펴본다면 의식, 연민, 동정심, 친절함, 용서, 영감, 예속상태, 행동력 없음, 소심함, 고지식함, 정신적인 리더 등과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하던 상대에게서 결혼 승낙을 받거나, 결혼식 날짜가 정해진다는 의미가 있다. 계약이 맺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늘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갖고 있다.
만약에 이 카드가 거꾸로 뽑혔다면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어 화려함이나 사치가 가득한 사람이 되거나, 친절하지만 두려운 사람, 게으르고 못난 사람, 현재 상태를 벗어나길 거부하는 비개혁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지금까지 타로카드에서 쓰인 여러 가지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이미지들은 살아있고 혼을 가지고 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우리가 의도하는 시심을 나타낼 수 있다.
타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질문을 정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질문의 답을 얻기는 어렵다. “나의 인생에 대해서?”, “앞으로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와 같은 질문의 답은 사실상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주 구체적으로 “내일 면접을 봐야할까?”, “어느 대학에 입학할까?”와 같은 구체적 질문이 필요하다. 이처럼 시에서도 시를 쓸 때 구체적인 대상설정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이미지이어야 하며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 사물이나 명징한 대상이 먼저 선택되어야 한다. 지금 내가 슬프니까 막연히 ‘슬픔’을 가지고 시쓰기를 시작할 수는 없다. 슬픔이 담긴 사물이나 이미지, 정황, 스토리를 찾아야 한다. 그 대상을 먼저 정하지 않는다면 구체적 질문을 정하지 않고 타로점을 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구체적인 사물이나 이미지, 정황, 스토리를 정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 앞세워 시를 쓰게 되면 관념적인 시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현재의 많은 시인들이 테크닉의 발달로 언어를 꼬는 능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언어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미지의 활용은 되지 않고 있다. 확실한 시적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 안에 자신의 주제의식을 담을 수 있는 이미지의 배치가 필요하다. 타로카드 다섯 번째인 교황을 통해 우리는 많은 해석을 할 수 있었다. 이 교황카드 안에 배치된 이미지는 교황, 왕관, 기둥, 황홀, 열쇠, 팔리움, 붉고 푸른 옷, 백합과 장미, 체크무늬, 십자가 등 몇 안 되는 사물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많은 해석이 가능하다. 시도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이 정한 시적 대상에 필요한 이미지들을 끌어오고 그 이미지들을 적절히 조합하기 위해선 먼저 확실한 시적 대상 설정이 필요하다. 그 시적 대상은 반드시 이미지가 있는 대상이길 바란다.
[출처] 5. 교황|작성자 김기덕
 
6. 연인들
 
여섯 번째 카드는 연인들이다. 여자의 등 뒤에 있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그녀를 유혹했던 뱀과 진실의 나무이다. 나무는 삶과 죽음, 부활을 나타내는 상징이며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다. 나무는 풍요와 지식, 보호, 창조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여자의 뒤에 있는 나무는 지식의 나무로 선악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나무를 감고 있는 것은 하와를 유혹한 뱀으로 선악과를 먹게 된 이브의 모습을 나타내주고 있다.
우측에 있는 남자는 아담인데, 아담 뒤의 그림은 사막에서 불타올랐던 여호와의 가시떨기나무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고, 신의 현현이다. 곧 남자의 뒤에 있는 나무는 생명나무이다. 생명나무는 에덴동산 중앙에 있으며, 재생, 원초, 완전성을 의미한다. 생명나무의 12개의 불꽃은 태양의 순환주기 12개월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두 남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신의 사자이다. 천사를 보며 여자는 뱀의 유혹에 따를 것인가를 생각하고, 남자는 신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아직 옷을 입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은 상태가 아니라 그 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천사의 양쪽 날개는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상징한다. 사랑이란 긍정적으로 행복과 기쁨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 유혹과 파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아직 유혹에 빠지지 않았지만  갈등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붉은 색의 날개는 불타는 정열을 나타내며, 머리 위로 비치는 태양은 사랑의 긍정적인 행복과 기쁨을 나타내지만, 천사의 아래쪽에 있는 구름은 사랑의 부정적인 의미로 슬픔과 아픔을 상징한다. 뾰족이 솟은 산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다. 또한 구름은 물을 상징한다. 주역에서 택산함(䷞)은 산 위에 연못이 있는 형상으로 남녀의 교접을 의미한다. 산의 정기는 위로 치솟고, 물의 정기는 아래로 내려와 서로 교합함으로 사랑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의 상징이다.
천사의 보라색 옷은 고귀함의 상징이며, 신의 예지와 자애를 상징하기도 한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희생한 수난의 그리스도 옷 빛깔이 되기도 한다. 땅의 녹색은 사랑의 결실로 인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번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하늘은 푸른색을 띠고 있어서 영원성과 맑고 깨끗함, 무한한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연인들에게는 무한한 희망과 꿈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이 가야할 길은 평탄치만은 않다.
우리의 시각으로 카드를 보면 우측에 남자가 있지만, 천사의 입장에서 보면 좌측에 남자가 서있다. 좌측은 양을 상징한다. 양은 홀수, 아버지, 남자, 강함, 움직임, 위쪽방향, 좌측, 맑음, 밝음, 근본, 큼, 귀함, 줄기 등과 같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우측의 여자는 음을 상징한다. 음은 짝수, 땅, 어머니, 여자, 부드러움, 고요함, 아래쪽, 우측, 나중, 끝, 반대, 작음, 천함, 가지 등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특히 사랑도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행복할 수도 있지만 불행할 수도 있는 요소를 함께 갖추고 있다.
정방향의 해석은 사랑에 빠지게 됨을 의미하며, 유혹에 흔들림을 상징한다. 아름다운 사람과의 만남을 의미하기도 하며, 재판의 승리나 사랑의 승리로 인한 기쁨을 의미한다.
역방향의 해석은 준비가 덜 되어 사랑에 실패하게 됨을 의미하며, 실수로 창피를 당하거나 손실을 상징한다. 사랑의 상처로 힘들고 괴롭게 됨을 의미하고 있다.
타로카드에서 구체적인 질문을 정했다면 이제는 카드를 뽑아야 한다. 초보자들은 카드 뽑기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카드의 선택은 순전히 직감에 따라야 한다. 카드의 중간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해도 좋고, 바닥에서 선택해도 좋다. 하지만 카드를 일부 살짝 들어낸 후 적당히 꺼내어 배열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시에서 카드를 선택하는 것은 시적 대상을 잡는 것이다. 나무를 대상으로 잡든, 봄을 대상으로 잡든, 대상을 선택한 후 그 대상으로부터 이미지를 뽑는 것이다. 위의 연인들 카드에서 태양, 날개, 구름, 보라색 옷, 뱀, 선악과, 생명나무, 산, 남자, 여자, 대지 등과 같은 이미지를 뽑듯 하나의 시적 대상을 정하고 이미지를 뽑는 과정이 바로 카드의 선택과정인 것이다.
만약에 산이라는 시적 대상을 정했다면 산에 속한 이미지 나무, 돌, 계곡, 능선, 낙엽, 꽃, 열매, 산짐승 등등의 이미지를 뽑아야 하는데, 이러한 이미지를 뽑기 위한 대상, 즉 산을 먼저 정하는 것이 카드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시적 대상을 뽑을 때에는 이미지가 있는 대상을 뽑아야 한다. 그래야만 타로카드처럼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무수히 많은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갖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로카드를 뽑는 것은 내가 스스로 알아서 뽑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은 나의 의지가 아닌 어떤 기운의 흐름에 의해서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 타로카드의 선택에 초월적인 어떤 힘이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에 끌려 어떤 시적 대상을 선택할 때는 정서적 공감과 지적 합일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이 많거나 상상력이 풍부하면 시적 대상을 끌어오는데 어려움이 많지 않을 것이다. 타로기법에서 시적 대상을 정하고 시를 써나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징을 읽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징을 읽는 힘이 있을 때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밀하고 깊은 부분까지 나타낼 수 있는 이미지의 결합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시 ‘사막의 연인’은 타로카드의 여섯 번째인 연인에서 이미지를 뽑은 후, 그 이미지를 오늘날의 카페로 끌어와 이미지를 교차시켰다. 연인의 이미지는 아담, 하와, 태양, 구름, 선악과, 뱀, 생명나무, 산, 천사, 초원 등이 있다. 여기에 카페의 이미지를 찾으면 에스프레소, 남자, 여자, 생크림, 탁자, 카펫, 잔, 혀, 조명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연인의 긍정적인 색깔보다는 부정적인 색깔로 이미지화하여 표현하기 위해 타로카드의 정방향의 표현보다는 역방향의 표현을 선택하다보니 사막을 끌어왔다. 그리하여 사막의 이미지 인 모래, 가시, 오아시스, 바람, 선인장 등을 끌어올 수 있었다.
이렇게 뽑은 이미지들을 활용하여 아담과 하와-남자와 여자, 황무지-카페, 생명나무-장미, 태양, 달 등으로 대치시켰다. 또한 뱀의 혓바닥-꽃잎, 누드-옷을 입은 모습, 사막-에덴, 오아시스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분위기, 흐름, 감정, 색깔 등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의 연인(戀人)
 
아담과 이브가 바람뿐인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퇴색된 열두 개의 생명나무 불꽃이 일 년 열두 달 검은 장미로 피어났다.
 
생크림을 핥는 뱀의 혓바닥 위로 노을이 지고 꽃잎이 떨어진다.
 
선악을 알기 전의 남녀는 누드였다.
서로를 알고 난 후부터 아무리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몸에서 붉은 가시들이 솟아났다.
 
녹색의 초원이 놓인 탁자 위로 에스프레소가 쏟아지자 황무지가 펼쳐진다.
사막을 오가던 말들이 선인장이 되어 모래 속에 뿌리박고 피보다 진한 꽃을 피운다.
 
아담과 이브가 살던 동산엔 열두 개의 태양과 열두 개의 달이 뜨고, 보라색 옷을 입은 천사가 양팔저울에 해와 달의 열매를 달았지.
 
구름이 치마끈을 풀고 능선에 앉아 엉덩이를 흔들면 산은 잔이 되고, 잔엔 옥수로 가득했던 눈물을 안 후,
 
다시 누드로 돌아갈 수 없는 아담과 이브가 라이브 카페의 난간에 앉아 마시는 치사량의 검은 입술이 머그잔을 타고 흘러내린다.
 
카펫 위엔 엉겅퀴가 자라고, 독버섯이 피어난다.
구둣발에 짓밟힌 오아시스가 뱀처럼 몸을 말며 서로의 발뒤꿈치를 문다.
[출처] 6. 연인들|작성자 김기덕
 
7. 전차 (1)
 
이륜의 전차를 탄 젊은 왕의 모습인 타로 일곱 번째 카드인 전차는 명확한 목적을 행동으로 옮기는 첫 걸음을 내디딘 장면으로 해석된다. 전차는 승리, 전진, 이동, 자신감을 상징하지만, 전차는 변화와 인과법의 우주의 원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변화와 인연, 인과법을 의미한다. 왕의 양쪽 어깨에 있는 초승달과 얼굴 모양의 장식은 앞으로 겪어야 할 선택의 이중성을 보인다. 초승달은 변화하는 것이다. 이런 초승달이 얼굴과 배치됨으로 내면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머리에 쓴 왕관의 8방향의 별은 승계 받은 권력의 상징인 태양이다. 이 태양이 8방향으로 표현된 것은 사방팔방으로 그의 권력이 미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 젊은 왕은 뒤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추억을 회상하지 않는다. 오직 앞만을 바라보며 전진할 것이다. 그의 푸른 옷은 권력을 상징하며, 전차 위에 내려놓은 손은 그가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주어진 것임을 말한다. 뒤에 배경으로 보이는 서로 다른 도시는 대립되는 전쟁이나 내적 갈등을 상징한다. 휘장에 그려진 별들은 그가 겪어야 할 많은 일들을 상징한다. 별이 각각 크기가 다른 것은 그 사건이 크고 작은 많은 종류라는 걸 말한다.
 이 전차를 끄는 스핑크스는 인간의 머리와 가슴을 하고 날개를 단 사자로 이집트와 그리스 전통에서 신성한 장소를 지키는 수호자였다.
검은 색과 흰색의 두 스핑크스는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이렇게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스핑크스들이 이 전차를 끌 수 있을 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스핑크스는 악행과 덕행을 상징하며, 세상의 이원적 요소들을 의미하고 있다. 동양철학의 음과 양이며, 사랑에 있어서의 사랑과 증오이다. 세상은 이 이원적 요소들의 대립과 갈등 속에 형성되며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카드의 정방향을 뽑았다면 성공과 승리, 사랑, 정복, 원군, 행동력, 적극력, 돌진력, 개척정신, 독립, 해방을 의미하지만, 역방향의 카드를 뽑았다면 실패와 좌절, 이별, 폭주, 부주의, 제멋대로 함, 독단력, 방약무인, 초조, 호전성 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배경으로 칠 해진 노란색은 긍정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노란색은 예로부터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다. 중국 제왕의 의복 색깔과 황궁의 기둥이 노란색이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임금의 옷도 황금실로 수놓은 곤룡포였다. 또한 신성과 충성, 관용과 아량, 고귀한 성품과 지혜, 합리적 사고, 정신적 성숙, 수확 등과 같은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개인이나 사회에 있어서 황금시대, 황금시절 등과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한다.
7이라는 숫자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길한 숫자여서 그런지 수메르 신화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이는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큰 별이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일곱 개여서 그럴 것이다. 7은 행운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일상생활에서 무지개색이나 칠삭둥이, 북두칠성 등의 영향이 클 것이다. 종교에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칠일 동안 만드셨고,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도 일곱 번째로 예수님을 배치시켰다. 동양적 사상으로 살펴보면 천, 인, 지 3에다가 동, 서, 남, 북 4가 더해져 완전 숫자로 여기고 있다. 전차를 타로카드 7에 놓은 것은 행운의 상징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차 앞에 그려진 날개는 전진과 상승을, 팽이는 순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전 장에서는 타로카드를 뽑을 때 확실한 대상을 정하고 뽑아야 하는 것처럼 시를 쓸 때도 확실한 대상을 정하고 그에 대한 이미지를 뽑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 대상은 이미지가 있는 사물이나 사건, 정황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했다. 이번엔 이렇게 타로카드를 뽑되 몇 개의 카드를 뽑을 것인가? 뽑은 카드들에 대한 배치를 어떻게 하며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카드의 배열법은 카드를 펼치는 방법으로 스프레드(spread) 또는 레이아웃(layout)이라고도 한다. 즉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위치에 카드를 배열하는 것이다.
 
1 카드 배열법
카드를 섞은 후 그 중에 한 장만 뽑는다. 가장 기초적인 배열법인데, 메이저와 마이너를 모두 섞은 다음 한 장만 선택하여 뽑는다. 그리하여 이 뽑은 한 장의 카드를 통하여 자신이 얻고자 하는 답을 찾는 방법이다. 시에서도 1 카드 배열법처럼 하나의 단락으로 시를 구성하는 방법을 말한다. 하나의 단락으로 구성된 시는 그 내용이나, 시점, 주제의 통일, 이미지의 통일 등과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카드 배열법
카드를 세 장 내려놓고 해석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어온 배열법으로써 초보자는 물론 능숙한 사람들까지도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카드는 잡은 순서에 따라 일관성 있게 배열해야 한다. 해석은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의미로 진행되는데, 시에서도 기, 서, 결과 같이 세 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것을 의미한다. 내용적으로도 과거, 현재, 미래가 되든, 아니면 하나의 대상에 대한 세 방향의 시각이든, 각각 다른 차원의 상징적 연결이든 상관없다. 유사성의 세 가지 사물이나 정황, 스토리를 배치시키는 것도 3 카드 배열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으로 표현하면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순차적 배열법(평면적 배열법)
 
 
 
순차적 배열은 이야기가 진행되듯이 내용이나 사건, 의미의 진행 또는 진전을 이루는 방법으로 평면적인 관계를 만든다.
 
비순차적 배열법(입체적 배열법)
 
비순차적 배열법은 입체성을 살리는 방법으로 유사 상징적 대상들로부터 뽑은 이미지를 무작위로 가져다가 배치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이미지를 무작위로 가져다가 배치해도 통할 수 있는 것은 유사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사한 상징성을 가진 이미지들이 다 통할 수 있는 것은 그 해석의 여지가 폭넓기 때문이다.
 
5 카드 배열법
5 카드 배열법은 다섯 장의 카드를 뽑아 각 위치별로 배치한 후 해석하는 방법으로 시에서는 복잡한 이미지의 결합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다섯 개의 단락을 만들든, 다섯 개의 구멍으로 사물을 보든, 다섯 개의 유상상징물들을 교차시키든 상관없지만, 그 관계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다섯이라는 수에 철저할 필요는 없다. 여러 시각과 여러 상징물들의 결합, 다층적 의미 등등의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결합하여 복잡한 예술적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밖에도 10 카드 배열법이라든지, 켈트 십자가 배열법 등이 있는데 이는 복잡한 방법으로 시에서는 장시적인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7. 전차|작성자 김기덕
 
8. 힘 (1)
 
타로카드 8번 힘은 여인이 사자를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어르는 그림이다. 미녀와 야수 같은 그림으로 진정한 강함은 부드러움에 있음을 상징한다. 꼬리를 내린 수사자는 혀를 내민 채 부드러운 여인의 손에 의해 온순해져 있다. 하지만 사자의 내성은 감추어진 발톱처럼 포악하고 위험하다. 언제 달려들어 물을지 모른다. 수사자는 동물적 본능을 의미한다. 또한 대자연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사자로부터 산과 계곡과 나무와 풀들이 살아 숨 쉬는 대자연의 힘이 뻗어 나오고 있는데, 이는 강력한 힘의 대자연이 창조적 여인에 의해 순화되고 길들여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미녀와 야수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다. 사자의 동물적 본능은 이성적인 힘에 의해 조절되고 다루어짐을 상징한다.
여인은 여왕이나 왕비의 옷이 아닌 서민적인 옷을 입었다. 여왕이나 왕비의 권력이 진정한 힘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은 봉이나 지팡이를 들지 않은 맨손이다. 이 맨손은 완력을 쓰지 않고 마음으로 다스릴 때 어떤 강한 것도 굴복시킬 수 있음을 상징한다. 몽둥이나 채찍을 들었다면 이 사자는 물으려고 대들었을 것이다.
​사람관계에서도 법이나 힘으로 억누르려한다면 강한 반발과 대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으로 다스린다면 스스로 굴복하고 애정으로 대하게 됨을 알 수 있다. 이 여인은 또한 흰옷을 입고 있다. 흰옷은 순수하고 깨끗함을 의미한다. 그 만큼 악의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여인의 머리와 허리에서 화초가 자라고 꽃이 피어난다.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러한 애정과 순수한 감정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감을 상징한다. 여인의 머리 위에는 뫼비우스의 띠가 그려져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지혜와 지식, 경험을 상징한다. 이 뫼비우스의 띠는 무한대를 그리고 있다. 그 만큼 많은 지혜가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타로카드 8번인 힘에서 상징하고 있는 것은 힘은 사자와 같이 폭력과 완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착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부드러움에서 나오며, 지혜와 풍부한 경험 속에서 진정한 힘이 나옴을 상징한 그림이다. 베이컨의 말처럼 아는 것이 힘인 것이다. 과거 자연에 대한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많은 자연재해를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과학의 발달로 닥쳐올 자연재해를 미리 예견하고 방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것도 역시 아는 것이 힘인 것이다. 또한 뫼비우스의 띠는 힘의 무한성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할 수 있다. 온 세상을 꽁꽁 얼려버리는 겨울의 힘이 강한 것이 아니라 눈과 얼음을 녹이고 온 세상에 새싹을 돋게 하고 꽃을 피울 수 있는 봄이 진정한 강함임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원래 8번에 있는 힘은 11번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8번 카드와 11번 카드가 지금도 맞바꿔져 사용되기도 한다. 뫼비우스의 띠는 1번 카드 마법사에서 한번 나오고, 11번째 카드 힘에서 두 번째 나온 후 21번 카드 세계에서 두 개가 한꺼번에 나온다. 타로카드 1~9까지는 정신세계 영역인 것이 10번 카드 운명에서 일단락 된 후, 11~20까지 현실세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21번 세계에서 두 뫼비우스가 동시에 하나로 엮어짐으로 두 세계의 통합을 의미한다.
배경으로 칠해진 노란색은 따뜻함과 긍정의 의미이다. 따뜻한 미소처럼 강한 것은 없다. 따뜻한 미소로 상대를 굴복시킬 수도 있다. 긍정적 마인드처럼 추진력 있는 힘도 없다. 눈에 보이는 총과 칼이 무서운 힘이 아니라 내면에 감추어진 부드러움이 또한 인간관계에서 진정한 힘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의 의미는 역량의 크기가 큼을 말하거나,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이성과 자제력이 있음을 의미하며, 실행력, 지혜, 용기, 냉정 및 지구전이 필요함을 상징한다.
역방향의 의미는 어리광 및 소극성, 무기력, 임무전가, 우유부단함을 상징하고 있다. 시에 있어서의 진정한 힘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서정성에 있었지만, 이제는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상징성은 평면적인 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시를 만든다. 그 입체성 안에 많은 방들이 있어서 다양한 물건을 숨겨 둘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의미를 감추어 둘 수 있다면, 어장에 많은 고기를 기르듯 정신적, 지식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시의 진정한 힘은 감성의 전달이 아니라 생각하게 하고 깨닫게 하는데 있다. 그러한 힘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다층구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다층구조는 유사성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이미지 간의 결합만으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층구조는 반드시 상징성과 철학성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유사한 이미지가 만드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유사한 이미지들은 심층적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수평적 구조를 만든다.
 
꽃 여자 향수
 
 
 
이 관계를 집합으로 표시한다면 꽃∩여자+여자∩향수+향수∩꽃=꽃∩여자∩향수의 관계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집합의 관계는 공통분모를 찾는 작업이며, 서로 간의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는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며, 다양성,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건물을 짓는 다면 위쪽으로 뻗어가는 것보다 옆으로 확장해 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강물
 
도시
세계
 
 
 
또한 위의 그림과 같은 관계를 집합으로 표시하면 강물⊂도시+도시⊂세계+강물⊂세계=강물⊂도시⊂세계의 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관계는 여집합의 관계로 복층적 관계를 만들며, 심오한 차원을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이다. 이러한 요소를 찾고 복층적 관계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개념적 요소를 알아야하며, 그 개념적인 요소는 이미지가 아닌 관념성 및 철학성에서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강물의 안개를 시적 이미지로 끌어왔다면 도시에서의 안개, 세계에서의 안개로 구분할 수가 있을 것이다. 같은 안개이지만 그 안개의 의미는 다른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찾는 것이 복층적 관계를 만드는 일인데, 이러한 연관관계를 찾기 위해서는 이미지 간의 연관관계보다는 의미의 연관관계, 철학성 및 관념성의 연관관계를 알고 연결시켰을 때만이 심층적인 깊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안개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안개와 유사한 이미지를 찾는다면 연기나 구름 등과 같은 이미지를 찾을 수 있겠으나 이러한 이미지의 관계는 심층적 관계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강물에서의 안개, 도시에서의 안개, 세계 속에서의 안개, 내 마음 속에서의 안개를 찾았을 때 심층적인 관계를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러한 관계는 똑같은 안개이지만 의미가 다른 것이다. 이렇게 다른 의미의 똑같은 이미지를 찾고 접속시키기 위해서는 관념성, 즉 철학성이 필요한 것이다.
위에 있는 타로카드 8번의 힘에 그려져 있는 사자는 맹수성, 폭력성, 완력성, 육체성 등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 맞는 상징적 요소를 찾는다면 폭군, 남자, 왕, 자연, 바다, 감정 등과 같은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유사성에서 연결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자가 가지고 있는 관념성에서 뻗어나간 사고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여자의 유사성은 꽃이나 천사와 같은 것이 되겠지만, 그것보다 폭군 같은 사자를 달랠 수 있는 부드러운 여성성이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폭군을 달랠 수 있는 여성성, 왕을 달랠 수 있는 여성성,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여성성, 바다를 잠잠케 할 수 있는 여성성,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이성과 같은 관념성으로 연결 관계를 찾아야 한다. 야수와 미녀의 관계는 가정과 사회, 세계의 보편적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미녀와 야수를 통해 세상과 사회와 가정, 내 마음 속의 야수성과 여성성을 함께 복층적으로 그려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복층적 상징관계를 그려주는 것은 유사한 이미지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철학성, 관념성의 상관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음은 타로카드 8번 힘의 손, 화관, 드레스, 여인, 뫼비우스의 띠, 꼬리, 이빨, 발톱, 사자, 벌판 등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봄과 겨울, 미녀와 야수, 가정의 남편과 아내, 폭군과 여인 등의 관계를 나타낸 시이다.
 
미녀와 야수
 
화관을 쓴 여인이 눈보라의 꼬리를 감춘 사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마와 목덜미를 간질이는 손에선 쇠사슬이나 망치보다 강한 쇳물이 흘러내리고
발톱을 숨긴 사자가 고개를 흔들며 얼음의 눈빛을 떨군다.
 
긴 혀를 빼문 태양이 핥아대는 거리엔 하루 종일 푸른 잎들이 돋아나와 갈기를 흔들었다.
 
꽁꽁 얼어붙은 설산의 이빨
폭군의 뇌성은 밤에 더욱 빛났었다.
 
흰 드레스에서 쏟아지는 꽃잎들로 벌판엔 초록빛이 물들고 가시뿐인 사내들의 몸에선 새싹이 돋아난다.
 
성해 속에 감추어진 이빨들이 물어뜯던 유리창마다 햇살 같은 눈웃음이 물방울로 맺힌다.
 
허리에 두른 꽃잎들 속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빙판을 녹이며 강물로 흘러가는 꽃향기
갈색 사자의 세포마다 새싹이 움트고
초록빛 갈기를 휘날리던 사내의 전성기는 여인의 손끝에서 왔다.
 
뫼비우스 머리띠를 한 여인이 꽃잎으로 피어나는 밤
얼어붙은 도시의 벌판을 지나온 발가락마다 으르렁으르렁 발톱들이 잘려나간다.
[출처] 8. 힘|작성자 김기덕
 
9. 은둔자
 
타로카드 9번째 은둔자는 별이 들어있는 등불을 높이 든 늙은 남자가 지팡이를 들고 설산 위에 서있는 그림이다. 은둔자는 고독과 현인, 현자를 상징하며, 정신과 마음의 정화와 치료를 의미한다.
노인이 오른손에 든 별이 들어있는 등불은 세상을 밝히는 지혜를 상징한다. 등불 속에 들어있는 별은 꺼지지 않는 불이다. 바람과 같은 외부의 자극에 영향을 받지 않는 마음의 지혜를 상징한다. 별의 빛깔은 황금색이다. 황금색은 고귀함을 의미하며, 차원이 높은 영적 고매함을 뜻한다. 이 노인은 오른손에 등불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이는 세상 멀리까지 비추기 위함이다. 몽매한 세상을 밝히고자하는 현자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
왼손에 든 지팡이 또한 황금색인데, 이것도 고귀함의 상징이며, 크고 긴 지팡이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가졌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팡이가 짧고 가늘었다면 이는 자신의 몸을 의지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겠지만, 크고 긴 지팡이는 자신을 의지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될 수 있는 영적 깨달음의 지팡이인 것이다.
​또한 이 늙은 남자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눈을 감고 있다. 세상을 보고 있지만 눈을 감고 있는 것은 눈으로 세상을 보지 않고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인 세상에 치우친 자가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존재인 것이다. 하얀 수염의 노인은 많은 것을 말하지 않지만, 핵심을 찌르는 조언을 하고, 정신적이며, 조용하고, 영웅과 같은 존재로 오랜 여행을 하고 돌아온 듯한 모습이다. 영혼을 인도하는 신인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를 연상케 하는 이 노인은 현자이지만, 혼자이기 때문에 고독하며, 반성적, 또는 성찰적이다. 사려 깊음과 신중함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긴 수염은 지성과 연륜, 지도자, 권위자, 세상을 탈속한 신선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맨발의 이 노인은 긴 회색 옷을 입고 설산 위에 서있다. 맨발은 고행, 무소유를 의미하며, 긴 회색 옷은 승복이나 수도사의 옷을 연상케 한다. 승복은 청빈한 삶, 흑과 백의 초월, 원융의 색이기도 하며, 무소유, 신성, 경외감을 상징한다. 자유의 색, 아름다움을 숨겨놓은 색이라고도 한다. 또한 회색은 검정도 하양도 아닌 기회주의자, 중립자, 자연물에 대비한 인공물, 존재감이 없는 회색분자, 우울, 노인의 색깔을 의미하기도 한다. 설산은 고행의 세상길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가운 현실을 상징하며, 얼어붙은 마음의 세계를 뜻한다. 이러한 설산의 꼭대기에 서있음은 성숙된 차원의 사람임을 나타내주고 있으며, 지성의 최고도에 있음을 의미한다. 냉철한 지성의 소유자이며, 인간 세상과는 어느 정도 격리된 초월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디디면 추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언제든지 가지고 있는 위치에 있다.
이 카드의 배경은 온통 파란색으로 되어 있다. 파란색은 맑게 개인 하늘, 넓은 바다, 희망과 미지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신선함을 주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갖게 한다. 청순, 청아하며, 깨끗함의 상징이다. 천국을 의미하며, 안전, 정적인 신뢰, 명예와 세련미를 아울러 갖추고 있다. 성공이나 꿈을 상징하며, 자립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수심과 비애, 우울, 미숙함, 차가움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은둔자 카드는 주역의 천산돈(䷠)과 같다. 천산돈은 위에 하늘(☰:乾)이 있고, 아래에 산(☶:艮)이 모양으로 세상을 피해 은둔하며 하늘이 부여한 명을 지키는 상이다. 遯은 돼지와 같이 어리석은 체하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를 닦는 의미가 있다. 遯은 안으로 산과 같이 굳건한 절개와 자제를 행하고 밖으로는 하늘과 같이 강건한 도로써 소인을 교화하고, 소인배적인 생각, 즉 형이하적인 감정을 억제하고 형이상적으로 종교적, 철학적 성향을 띠게 된다.
은둔자를 왜 타로카드 9번에 놓았을까? 9는 한자리수 중 가장 큰 숫자이다. 완전, 완성, 전체성을 상징한다. 균형, 질서, 최상의 완전을 표현한 거룩한 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속세로부터 초월된 의미가 있으며, 무한과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 만큼 은둔자는 개인적 완성, 속세와의 단절, 무한한 이상을 추구하는 의미가 숫자 9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의 해석은 조언, 신중, 배려, 독립, 지혜, 은신, 상담, 지식, 근심, 현명함, 판단의 자유, 경고, 경계, 신중히 관찰함, 자기부정, 후퇴, 퇴화, 역행, 취소, 감정을 억누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한다.
역방향은 폐쇄성, 소극성, 무계획, 오해, 비관적, 경솔함, 성급함, 무모함, 미성숙, 바르지 않은 충고, 우울함, 실패, 일의 지연 등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타로카드를 활용한 시쓰기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의 색깔을 맞추는 것이다. 언어의 색깔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백색과 흑색의 대비라고 할 수 있다. 색은 감정을 대변해주고 있다. 밝은 색은 기쁨과 환희, 희망, 꿈 등과 같은 감정을 표현해주지만, 어두운 색은 절망, 좌절, 고통, 슬픔, 역경 등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시쓰기에서 슬프다느니 기쁘다느니 말하기 전에 언어의 색깔을 표현해주면 그 감정을 이미지로 표현할 수 가 있을 것이다.

먼저 이미지의 색깔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미지에는 다 색깔이 담겨있다. 그 색깔은 한 가지의 색이 아니라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동시에 같이 공존한다. 예를 들면 나무라고 하는 이미지 속에는 여러 이미지가 들어 있겠지만, 크게 밝은 색과 어두운 색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푸른 잎들이 반짝이는 나무’ 라고 한다면 이 나무의 이미지는 밝은 색을 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쓰러져 말라비틀어진 나무’ 라고 한다면 이 나무의 이미지는 어두운 색을 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모든 이미지에는 크게 두 가지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색깔은 감정적인 색깔인 것이다. 시는 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글이기 때문에 그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설명적인 언어로 구성된 시는 일차원의 평면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는 예술적인 가치가 없는 시이다. 생각할 거리가 없는 것이다. 고급독자들은 이러한 시를 읽고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시의 생명은 상징성이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복층적으로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느냐에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예술작품에는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고도의 예술성을 구현한 특수층들을 위한 예술이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은 같이 갈 수도 있지만, 어느 정점을 지나면 함께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고도의 예술성을 추구하고자 하는데 대중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요즘의 예술작품들은 복잡해지고 상징화 되어가고 있다. 미술작품을 보더라도 복잡해지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더욱 추상화되어가고 있다. 인터넷이 활발히 활동하는 시대에 가상세계의 현실적 출현과 맞물려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과거의 풍경화 같은 그림만 고집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한 그림들은 식상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예술적인 감각을 갖고 보다 심오한 예술적 쾌감을 추구하는 세대들에게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될 수가 없게 되었다. 풍경화는 정서의 환기, 복잡한 도심을 벗어난 편안과 위로의 마음은 줄지언정, 예술적인 깊이와 쾌감을 주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유독 시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시대적인 흐름을 역행하는 시를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시의 기능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정서적 기쁨을 주는 것이라는 이유를 달고 있다. 시는 복잡해서는 안 되고, 고도의 상징성을 가져도 안 되고, 난해해도 안 된다는 생각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단 말인가? 독자들이 외면한 현실을 개탄하며.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 독자에게 방향타를 맞춘 시의 뱃머리는 대양을 향하지 못하고 뭍을 기어오르려고 하는 상황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시들이 식상한 감정들만 반복적으로 양산해내고 있다. 시에는 왜 고급독자는 없고 수준이하로 평준화 되었는가. 복잡한 추상화들이 화랑에 내걸려 사람들을 상상의 나라로 이끌며 꿈꿀 수 있게 하는데, 시는 복잡하다는 의식으로 외면당하고 내팽개쳐져야 하는가에 반성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 속에 시는 복잡하면 안 된다는 의식으로 자신의 게으름을 자위하며, 더 이상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은 안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의식, 새로운 시각, 새로운 방법이 우리 시에도 필요하다.
시는 의식의 표현이다. 표현은 이미지의 실현이며, 이 이미지는 감각적이어야 한다. 이 감각은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시각적인 비중이 가장 많이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시각적인 시대, 영상의 시대에 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도 시각적인 이미지를 살려야 한다. 이러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모든 사물의 색깔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색깔을 팔레트에서 섞어 여러 가지 색을 만들 듯 사물들을 조함하여 자신이 원하는 언어의 색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캔버스에 붉은 색만 칠해놨다면 그림을 감상하는 감상자들은 나름의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붉은 색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혁명이나 피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녁노을이나 용광로, 불속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다. 그걸 일일이 설명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붉은 색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설명해서 자신의 의도를 말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의도는 창작자와 독자가 꼭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창작자는 자신이 만들었지만, 무한한 상상력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 상상력을 단절시키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의 동기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지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고, 혼이 있다. 그 이미지 속엔 곧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상징성을 살려서 이미지들을 조합하고 색감을 표현한다면 독자들이 스스로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예술적 세계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타로카드 은둔자에서 우리는 등불이나 지팡이, 설산, 수염, 맨발 등과 같은 이미지를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먼저 이 이미지들 속에 들어있는 색깔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색깔은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등불은 밝은 색이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환한 색이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지혜나 지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지팡이 또한 앞길을 예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밝은 색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카드에도 이 둘은 황금색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시를 쓰면서 이러한 이미지를 사용하게 될 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대로 색을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이다. ‘별이 들어 있는 등불’은 밝고 희망적인 색이다. 하지만 ‘불 꺼진 등불’은 같은 등불이지만 세상을 밝힐 수 없는 어두운 등불인 것이다. 그래서 밝은 색이 아니라 어두운 색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시를 쓰는 것은 감정으로 언어를 통해 그리는 그림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밝은 색, 즉 기쁨이나 행복, 평안, 환희 등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이미지를 밝은 색으로 나타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색, 슬픔이나 좌절, 아픔, 고독, 고통 등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면 이미지를 어두운 색으로 나타내야 할 것이다.
 

절벽에 선 나무
김 기 덕
 
바다로 향해 가는 불빛들의 검은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뼈만 남은 어깨엔 눈과 비와 바람을 채색한
누더기뿐.
 
바람의 난간에 선 맨발
실금 하나 사이로 생존과 파멸이 공존하고 있었다.
뜬구름 접어서 종이비행기로 날려준 바람 줄을
나는 놓지 못하는 걸까.
 
절벽에 매달려 힘줄이 불거진 나무의 발은 평생 수직의 길을 걸어왔다.
담쟁이 더듬거리던 길로
나의 발도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못 박혀 직각의 모서리를 걸었다.
 
날개 접은 종이비행기들의 풍문이 떠다니며
벼랑 끝으로 낙엽들을 몰아갔다.
 
달은 지프라이터에 갇혀 초승달로 사그라지고
담배 불빛 깜박이던 옥상에 올라 마지막 어둠을 태우던 눈빛들
 
절벽에 매달려서야 창틀의 위대함을 알았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유리창을 껴안고 절벽에 매달려 본 적이 있던가.
내 몸 하나도 붙들지 못했던 옹벽
 
바위를 껴안던 지네발 같은 뿌리가 뽑혀
내 척추로 이식되던 밤
신경마다 흐르고 있는 이빨들의 강을 보았지.
 
무너질 수 없다고 이를 앙다문 뼈들이 빌딩처럼 일어선
절벽에 매달린 절규.
 
 
10. 운명의 수레바퀴
 
타로카드 10번째인 운명의 수레바퀴는 카드 위에 TARO라고 쓰인 거대한 수레바퀴가 있고, 그 위에 칼을 들고 있는 스핑크스가 보인다. 그 오른쪽엔 아누비스가, 왼쪽엔 티몬이 있고, 카드의 네 귀퉁이에는 사람, 독수리, 사자, 황소가 책을 보고 있는 그림이다.
수레바퀴는 순환을 의미한다. 윤회나 계절의 변화, 시작과 끝을 의미하며, 시간의 변화, 운명, 금전, 전환기, 예측할 수 없는 결과, 지구의를 상징한다. 사진이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의 방향타나 비행기의 방향타, 자동차의 운전대도 같은 상징적 존재이다.
수레바퀴의 중앙 꼭대기에 칼을 들고 앉아있는 스핑크스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판단을 의미한다. 정확함은 수레바퀴의 정중앙에 앉아 좌로나 우로 치우침이 없음을 상징하며, 칼은 그 판단이 예리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스핑크스의 색깔은 하늘색이다. 하늘색은 맑고 바른 정신을 의미한다. 흑심으로 더럽혀지지 않고 깨끗하기 때문에 그 판단이 바를 수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지혜로움, 위엄, 경고, 신비주의, 수수께끼 등을 상징한다. 스핑크스는 원래 전지의 신이다. 그래서 모르는 것이 없기 때문에 무지로 인한 잘못된 판단은 하지 않음을 의미하고 있다.
왼쪽엔 뱀이 거꾸로 추락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뱀은 죽음과 파괴를 상징하며, 나락으로 떨어짐을 의미한다. 그래서 뱀을 아래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뱀은 인간을 타락케 한 존재이다. 본능적이며, 성적이며, 욕망을 상징한다.
오른쪽에서 등으로 바퀴를 밀어 올리는  아누비스는 죽은 자의 수호신이며,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이다. 시체 방부처리를 하는 신이기도 하며, 지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누비스의 방향은 위쪽을 향해 있고, 상승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수레바퀴 안에 그려진 네 개의 선들은 중세 연금술사들이 믿고 있던 세상의 구성요소 4원소 소금, 수은, 유황, 공기를 의미하고 있다. 이 그림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은 스핑크스와 티몬, 아누비스인데, 윤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스핑크스는 인간의 죄에 따라 판단을 하고, 뱀은 그 판단에 따라 나락으로 떨어드리고, 아누비스는 죽은 영혼을 다시 저승으로 옮김으로 삶과 죽음, 그리고 심판을 나타내주고 있다.
카드의 네 귀퉁이에는 책을 읽고 있는 네 형상이 그려져 있다. 먼저 위쪽엔 사람과 독수리가 그려져 있다. 위쪽은 신에 가까운 단계, 아래쪽은 짐승의 단계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황금색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다 같이 구름 속에 있다. 구름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인생의 모호함이 담겨있다. 또한 네 귀퉁이의 사자가 바람을 붙들고 있는 성경상의 표현을 통해본다면 구름 속에는 바람이 들어있고, 비가 들어있다. 바람은 변화이고, 환란이고, 고통이고, 능력일 수도 있다. 그것은 구름 속에 담긴 비와 바람의 능력 때문이다. 이 네 형상들이 갖고 있는 것은 책인데, 책은 진리를 의미하며, 법칙, 원리, 철칙을 의미한다. 좌측 위에 있는 사람은 물병자리를 의미하며, 정신적인 부분을 상징한다. 우측의 독수리는 직관력과 통찰력을 의미하며, 전갈자리를 나타낸다. 좌측 아래에 있는 황소는 의지력을 상징하며, 황소자리를 나타낸다. 우측의 사자는 추진력, 실천력을 의미하며, 사자자리를 나타낸다. 이 네 상징물은 동서남북, 춘하추동을 의미하며, 주역의 건곤감리와도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아직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변화하게 되며, 새로운 다음단계로 전환하게 된다.
운명은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여 다시 돌아오는 계절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굴곡이 있고, 온대로 다시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운명의 수레바퀴를 10번에 놓은 것은 숫자 10이 10>1+0=1이 되어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10은 근원, 신, 탄생, 중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은 전환, 행운, 기회, 변화, 결과, 운명, 인연, 성장, 순리, 전환기, 완성, 문제해결 등을 의미한다. “행운의 별은 당신 머리 위에 있다. 또한 이전에도 이후에도 당신은 행복을 맛볼 것이다. 무언가 시작하고 싶으면 지금이 기회이다.” 라는 말을 해줄 수 있는 카드이다.
역방향은 상황의 악화, 이별, 사고, 하강기, 시기상조, 불리한 입장, 궁핍함, 실연, 어긋난 사랑. 불운, 방해, 단절 등을 의미한다. 하지만 금전 보유량이 증가하는 상징적 의미가 있으며, 마음은 여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과 같은 타로카드의 해석을 통해 운명의 수레바퀴에 대한 상징성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상징적 이미지들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이미지의 색깔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내가 밝고 기쁘게 시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이미지의 색깔을 밝게 표현해야 하지만, 어둡게 시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이미지들의 색깔을 어둡게 바꾸어주어야 한다.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얻을 수 있었다. 수레바퀴, 스핑크스, 아누비스, 뱀, 독수리, 사람, 사자, 황소, 구름, 책, 칼 등과 같은 이미지들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해석할 수 있는 암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이미지들을 내 맘대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이 이미지들의 색깔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이미지들의 색깔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명사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다른 이미지의 명사를 사용하여 원하는 이미지의 색깔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명사와 명사의 연결 관계를 통해 직유, 또는 은유적 연결을 만들어 줌으로 감정의 색깔을 덧입히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수레바퀴라는 이미지가 있다면 이 수레바퀴를 밝게 표현하려면 ‘부챗살 같은 태양의 수레바퀴’나, ‘부챗살 태양 같은 수레바퀴’의 표현은 수레바퀴를 밝은 색으로 채색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수레바퀴를 어둡게 표현한다면 ‘살이 부러진 녹슨 세월의 수레바퀴’, 또는 ‘살이 부러진 녹슨 세월 같은 수레바퀴’로 표현한다면 수레바퀴를 어두운 색으로 바꾸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의 색깔은 자신의 감정을 대변해 준다. 슬픔과 고통, 좌절을 쓰려면 이러한 이미지를 어둡게 변화시켜주면 된다. 자신의 감정을 밝게 표현해 주려면 이미지의 색깔을 밝게 표현해 주면 된다.
 
밝은 색 이미지                    어두운 색 이미지
스핑크스 - 하늘색 스핑크스         칼의 스핑크스
뱀 - 꽃 같은 뱀                          악마의 뱀
독수리 - 황금 독수리                  저승사자 같은 독수리
구름 - 솜사탕 구름                     먹물 같은 구름
사자 - 불꽃 갈기의 사자              마른 풀잎 갈기의 사자
황소 - 구릿빛 황소                     지푸라기 황소
 
둘째는 형용사로 바꿀 수 있는 표현 방법이다. 시에서 가급적 형용사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은 직접적인 표현이 되기 때문에 시의 상징성이 떨어지게 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형용사, 부사는 시의 표현문장에서 가급적 빼기를 권한다. 더욱 부사는 문장을 표현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빼어야 한다. 그리고 부사를 쓰려면 다른 이미지로 바꾸어 표현해 주어야 한다. ‘빨리 달리는 말’과 같은 문장을 쓰고 싶다면 부사 ‘빨리’를 빼고 ‘바람 같은 말’과 같이 바꾸어 표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형용사는 필요에 따라 사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붉은 말’, ‘검은 말’과 같은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형용사를 사용해 이미지의 색깔을 바꾸어준다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밝은 색                             어두운 색
스핑크스 - 파란 스핑크스            검은 스핑크스
뱀 - 어린 뱀                              독한 뱀
독수리 - 용감한 독수리               겁먹은 독수리
구름 - 흰 구름                           터진 구름
사자 - 눈부신 사자                     파리한 사자
황소 - 살찐 황소                        어룽진 황소
 
세 번째로는 동사로 바꾸어 줄 수 있는 방법이다. 상승적, 희망적, 긍정적인 동사들은 모두 밝은 색깔의 언어들이기 때문에 살아 생동하는 이미지로 바꾸어준다. 하지만 하강적, 절망적, 부정적인 동사들은 어두운 색깔의 동사들이기 때문에 소멸적, 축소적인 이미지로 만들어준다.
 
밝은 색                                  어두운 색
스핑크스 - 스핑크스가 날아간다          스핑크스가 추락한다
뱀 - 뱀이 고개를 쳐든다                     뱀이 고개를 움츠린다
독수리 - 독수리가 하늘로 오른다         독수리가 죽어간다
구름 - 구름이 떠오른다                      구름이 눈물을 흘린다
사자 - 사자가 초원을 달린다               사자가 쓰러진다
황소 - 황소가 노래한다                      황소가 운다
 
이상과 같은 방법으로 이미지의 색깔을 변화시켜주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에 맞게 문장을 만들어줄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직선적으로 표현하려해서는 좋은 시를 쓰기 어렵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언어의 색깔을 맞추어 이미지를 표현해 주면 그 안에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많은 감정들이 담기기 때문에 폭넓은 표현이 가능하다. 자신이 원하는 감정을 직선적으로 표현하면 독자는 그 이상 상상할 수가 없다. 자신이 10의 분량을 전하고 싶었다면 10 이상을 독자가 얻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직선적인 표현 속에는 다른 상상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치료나 미술심리연구에 관한 이론들이 요즘 많이 나오고 있다. 그림 속에서 아이의 마음의 병을 읽고 치료의 방법을 찾는 학문들이 대부분이다. 어떠한 색을 썼는가만으로도 그 아이의 심리를 알고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듯이, 언어에도 색깔을 맞추어 문장을 만들면 그 색깔에 따라 감정을 읽을 수 있고 시적 작자가 의도하는 방향의 의미를 유추할 수가 있다. 이미지의 색깔을 맞추어 시를 쓰면 상징성이 커지기 때문에 상상력의 여지가 많아진다. 그리고 작자가 독자에게 주입하는 시가 아니라 독자가 상상하고 유추하며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시를 쓰게 된다.
[출처] 10. 운명의 수레바퀴|작성자 김기덕
 
11. 법(JUSTICE)
 
붉은 옷에 녹색 망토를 걸친 왕이 두 개의 기둥 사이에 앉아 오른 손에는 양날의 검을,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카드는 전통적인 법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그는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칼을 사용할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판결은 곧 이루어질 것이다. 그 판결은 전통적인 것이어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왕은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 옛날에는 붉은 염료가 비쌌기 때문에 귀족, 또는 왕족이 입는 옷이었다. 동양에서는 가장 고귀한 색이 황색이고, 두 번째로 고귀한 색이 붉은 색이었다. 서양의 경우는 자주색이 가장 고귀한 색이고, 그 다음 붉은 색이 두 번째로 고귀한 색깔이었다. 자주색이 황제의 옷이고 붉은 색이 귀족, 왕족의 색이었다. 빨간색은 피와 연결되어 폭력과 잔인성으로 상징되기도 하지만, 생명과 정열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 왕이 입은 붉은 법의는 권위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또한 보랏빛 휘장도 법의 권위와 무게감, 신뢰감 등을 의미하고 있다. 보라색은 외고집, 심술, 비사교적, 자기중심적, 투쟁을 나타낸다. 이는 자신의 판단에 누구의 말이나 행동에 흔들림이 없음을 상징한다. 보라는 여성을 상징하는 빨강과 남성을 상징하는 파랑과의 조합으로 생긴다. 또한 따뜻한 색의 빨강과 차가운 색의 파랑이 만나 중성적 요소를 나타낸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정할 것을 암시한다.
보라색은 귀함과 아웃사이더의 두 가지 의미가 강하다. 달팽이 만 마리에서 손수건 한 장을 물들일 만큼의 보라색을 얻을 수 있었다니 희소한 색이어서 그 가치가 더했을 것이다. 긍정적으로는 부귀와 권력을 상징하지만, 부정적으로는 우울과 허영, 동성애 등을 상징한다.
두 개의 기둥은 좌우의 선과 악, 애정의 사랑과 증오 등을 나타내며, 두 기둥의 색깔에 차이가 없음은 편파적으로 흐르지 않고 양면을 똑같이 생각하며 다루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오른손에 들린 양날의 칼도 이중성, 양면성에 대한 공평을 나타내고 있다. 칼은 집중력, 지배의 상징이며, 결단력, 이성적, 분석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왼손에 든 양팔저울은 평행을 이루고 있다. 좌로나 우로 기울지 않은 저울의 모습을 보임으로 완벽한 평행, 공정성, 균형과 조화, 냉철한 판단력을 상징하고 있다. 머리에 쓴 왕관은 뛰어난 지혜를 의미하며, 상황판단 능력이 대단함을 나타내준다. 이 왕은 지혜가 출중했던 솔로몬 왕을 상징하며, 그의 냉철한 판단력을 나타내주고 있다.
눈가리개를 안 한 이 왕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만든 법의 작용보다 성스러운 정의를 의미하며, 오류나 편견이 없는 신성의 법칙을 상징한다. 이 왕이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것은 즉각 칼을 사용할 준비가 끝났음을 의미하며, 판결이 임박했음을 상징한다.
이 카드의 정방향을 해석하면 이치에 맞는 정의, 조화, 평등, 올바름, 미덕, 명예, 순결, 적당한 보상 등을 상징한다. 마음에 들건 아니건 최후의 결과는 공정할 것이다. 균형, 평형, 침착, 냉정함을 아울러 상징한다.
역방향의 뜻은 선입관, 잘못된 고소, 편협적이고 엄격한 재판, 조금의 동정도 용납지 않는 판결 등을 의미한다.
이 카드의 그림은 하나같이 정의와 공정성 나타내주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은 사물의 상징성 때문이다. 이 상징성은 사물에 담긴 정신, 혼과 같은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 의미는 사물을 새롭게 만들며, 살아있는 존재로 생명력을 갖게 한다. 움직이지 돌과 담과 철기둥까지도 살아있는 존재다. 그 안에는 자석과 같은 기를 가지고 있으며, 표면적인 역할 뿐만 아니라 상징적, 이면적인 의미를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호흡하며 움직이는 목숨이 있어서 활동하는 것만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부패하고 있는 시체까지도 실은 냄새를 풍기며 분해되는 활동 속에 살아있는 존재인 것이다. 생물학적인 생존만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와 역할과 존재의 상징성 속에 만물은 살아 활동하는 존재인 것이다. 시인은 죽은 것들을 살리고, 살아있는 것들을 조합하고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여야 한다. 그것은 그 사물 속에 담긴 정신을 찾는 것이며, 상징성을 통하여 혼을 부여하는 작업인 것이다.
하나의 시 속엔 인간의 정서와 혼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 정서와 혼이 관념적으로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 왜 관념적이어서는 안 되는 걸까? 관념성은 시인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한정시키고 의미의 폭을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관념으로 이루어진 글은 전달문이며, 설명문과 같은 것이다. 관념으로 이루어진 문장 속에서 시적, 예술적인 표현을 읽을 수는 없다. 시는 고도로 압축된 알집 속의 추상화처럼 많은 생각들로 집적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념적인 언어를 피하고 상징적 생명으로 가득 찬 사물이나 이미지를 끌어오지 않을 수 없다.
이미지엔 혼이 담겨있다. 우리 인간은 육체라는 물질 속에 정신, 또는 혼이 담겨있다. 육체라는 표면적인 구조물 속에 숨겨진 존재가 담겨있는 이중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육체는 현실적이며, 가시적이고, 감각적이다. 하지만 내면엔 비현실적이고 초월적이고, 비감각적인 정신이 존재하듯이 하나의 이미지에도 표면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이 존재하지만, 그 내면엔 초월적이고 비감각적인 상징성이 담겨있다. 이러한 이중구조가 분리된 것을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육체와 영혼의 분리, 식물과 생기의 분리, 스크린과 빛의 분리 와 같은 것을 또 다른 죽음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 속에도 새로운 이중구조가 생성되고, 새로운 생명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생명은 바로 이미지와 그 안에 담긴 상징성으로 존재하는 생명인 것이다.
혹자들을 중심으로 상징성을 배제한 이미지만 가지고 시를 쓰고자하는 운동이 있었다. 기호시, 사물시와 같은 것들인데, 이러한 시는 이미지만 있고 상징성이 없기 때문에 죽은 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에서 아무리 관념성을 제거한다고 해도 그 이미지 속에 담긴 상징성은 나무속에 나이테처럼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완전한 상징성을 제거한 이미지만의 시를 쓰기는 불가능하며, 쓴다손 치더라도 그 안에 생명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감응을 줄 수가 없게 된다. 신이 창조한 존재물들에는 다 의미가 있고, 존재가치가 있다. 짐승이 남긴 분비물마저도 분해되어 거름이 되고, 곤충들의 먹이가 되어 살아있는 활동을 한다. 하물며 시인이 창조한 창조물이 이미지만 있고 그 안에 상징성이 없다면 죽은 것이며,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호시나 사물시처럼 이미지에서 관념성을 배제하고자 쓴 시도 그 안에는 아직 관념성, 즉 상징성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시인 자신의 주관적 상징성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모호하게 함으로 독자들의 다양한 상징성을 살리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읽는 독자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끌어내고, 상징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상징에는 많은 길들이 있다. 그 길은 복잡하고 미묘하여 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하지만 어떤 상징은 오랫동안 익숙해진 길로 인해 더 이상의 새로움이 없는 죽은 존재로 남아 있는 것들도 있다. 빨간 신호등은 정지를 의미한다. 빨간 신호등은 죽은 상징으로 더 이상 새로움이 없고, 기호화한 것이다. 무관념의 이미지들만을 쌓아서 탈관념의 시를 쓰려고 한다는 것은 실은 불가능한 일이다. 돌만으로 탑을 쌓는다 해도 그 탑에는 이미 상징성이 담겨있다. 죽은 나무로 십자가를 만든다면 이미 그 안에 상징성이 담겨있는 것이다. 상징성은 이미지의 정신이고 혼이기 때문에 이미지만 존재할 수 없다. 정신과 혼이 없는 이미지로 시를 쓸 수도 없겠지만, 쓴다 해도 죽은 시를 쓰는 것이다. 시인은 사물 속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창조자이다.
살아있는 존재들은 시간 속에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인간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 하나의 돌이나 보석까지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 언어의 이미지도 빨간 신호등처럼 오래 쓰다보면 언젠가는 새로움이 사라지고 기호화하여 생명력을 잃게 된다. 시인은 이러한 이미지들에게 새로운 상징성을 부여하여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또한 뚜렷한 존재가치를 찾지 못했던 이미지들 속에 새로운 상징성을 부여하여 살아갈 수 있는 혼을 불어넣어야 한다. 타로의 이미지를 연구하고, 그 이미지를 활용하여 시를 쓰고자 하는 타로 시쓰기의 기법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고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11. 법(JUSTICE)|작성자 김기덕
 
12. 매달린 남자
 
타로카드 12번은 T자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남자의 그림이다. 성경상의 베드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으며, 시련의 시기, 움직일 수 없는 입장, 괴로운 체험, 과도기를 의미한다. 또한 거꾸로 매달린 점으로 보아 새로운 시작, 새로운 관점,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이해를 의미한다. 형틀에 매달린 시간은 고통을 의미한다. 사형수를 의미하는 그림은 반성의 시간을 의미하며, 재앙이나 갈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형틀은 T자형의 나무로 되어있다. 십자가의 형틀은 원래 T자형이었다고도 한다. T자형의 형틀엔 푸른 잎들이 자라고 있다. 이 형틀은 죽음의 형틀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의미하는 형틀이다. 그래서 이 형틀에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얻어 새롭게 될 것을 암시한다. 형틀에 매달린 왼쪽 다리를 묶은 줄도 연약하게 보인다. 머지않아 충분히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은 모양이다. 이것도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 새롭게 탈출하게 될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한 쪽 다리가 매달린 이 남자의 다리는 4자 모양을 만들고 있다. 이 4자는 육체의 죽음, 표면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다리의 붉은 타이즈는 희생적 죽음과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열적 활동을 예고한다. 즉 희생을 통한 영혼의 자유와 성숙을 의미한다. 상의의 푸른 옷은 지식이 충만하며, 지혜가 가득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보다 희망적인 삶을 말한다.
형틀에 매달린 발에는 황금색 신발이 신겨져 있다. 발은 행실을 의미하며,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의미한다. 황금색 신발은 새롭게 변화하여 밝은 미래로 향해 갈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바르게 행동할 것을 의미한다. 또한 매달린 남자의 손은 뒤로 하고 있다. 손을 앞으로 내밀지 않음은 나서지 않을 것과 자신을 내세우지 않을 것을 상징한다.
매달린 남자의 머리는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그의 아이디어는 반짝이고, 기발한 상상력을 가져서 엉뚱하지만 항상 재밌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이 카드의 정방향은 희생, 인내, 시련극복, 성장의 시기, 자기희생, 때를 기다림을 의미한다. 또한 태도변화, 고정관념의 변화, 회개, 후회를 의미한다. 올바른 판단이라도 때에 따라 침묵해야하며, 인내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지혜가 있어 손해는 보지 않지만, 지금은 활약할 시기가 아님을 상징한다.
역방향은 불가항력의 시기, 겸허함이 필요한 시기, 남을 위해 움직여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불륜이나 비밀이 탄로 남을 의미하며, 무의미한 희생이나 처벌을 상징한다. 때로는 자신이 행동해야할 때도 있지만, 주변에서 원하지 않으면 떠나야 하는 상황을 상징한다.
매달린 남자의 그림은 T자 형틀, 거꾸로 매달린 남자, 4자형의 다리, 붉은 타이즈, 푸른 옷, 신발, 빛나는 머리, 발을 묶은 끈 등의 이미지들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조합되어 있지만, 이 조합된 이미지들을 통해 의미를 읽을 수 있는 것은 그 내면에 관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시의 관념은 시적 표현에 있어서 배격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미지를 강조하며, 설명적이 아닌 표현을 강조하다보니 관념은 제거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시에 있어서 직접적인 관념의 표현은 지양되어야 한다. 슬픔이나 기쁨과 같은 관념어를 직접적으로 쓴다면 예술적인 깊이가 느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념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이미지만의 시는 존재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미지 속엔 이미 관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옥구슬이라는 이미지 속엔 이미 귀함과 순수함과 같은 관념의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념을 제거하고 시를 쓰고자했던 기호시 운동이나, 디카시, 탈관념을 중시한 하이퍼시 등의 운동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지만, 실질적으로는 완벽하게 이론에 맞게 구현하기 어려운 시의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대한의 관념적 표현을 배제함으로써 이미지가 충만한 회화적 현대시의 길을 열 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현대시는 이미지의 결합과 유사이미지의 건너뛰기를 통해 사고의 확장을 꾀하여 왔고, 다초점적인 다양성을 추구해 왔다. 특히 하이퍼시는 큐비즘적 다양성과 리좀적인 사고의 확장, 현실과 이상과 같은 대립 점들의 건너뛰기를 통해 작자가 주입하고 리드하는 시가 아니라 독자가 생각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시를 쓰고자 했다. 이러한 시들은 다층적인 표현을 통해 관념이 제거된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래서 유사한 이미지들을 접속시키고, 유사한 상황과 이야기를 연결시켜 사고의 확장을 꾀하여왔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의 결과물로 나온 시들은 복잡하고 다양했지만, 마음에는 감동과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음미하고 생각해 볼만한 깊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에서의 철학성, 상징성은 생명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를 읽고 정신적인 의미나 깨달음, 마음의 감동이 없다면 그 시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자가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질적 수준이 안 되어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더욱 문제는 그 깊이마저 없다는 점이다. 그 깊이는 다층적 상징성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들의 연결 관계에서 유사성에 집중하여 심층적 깊이를 만들지 못하고 평면적 다양성, 즉 흩어놓기의 기법이 됨으로 지저분하고 복잡하지만 그 안에서의 심층적 사고의 깊이를 읽기는 어려웠다. 시를 읽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집중해야 했지만, 집중한 만큼의 효과, 시적 쾌감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고급독자들마저도 회의감을 갖게 하였다.
여기에는 이미지만을 중시하고 관념을 배제함으로 인간이 표면적이 아니라 심층적으로 느끼는 원초적 내면의 쾌감을 무시하게 된 결과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미지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표면적인 자극이다. 이러한 표면적인 자극이 표면에 그치지 않고 내면까지 연결되기 위해서는 관념적인 요소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느 화가가 캔버스에 노란색만 칠해놨다면 그 노란색을 보고 감상자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유채밭이나 은행잎이 떨어진 길 등과 같은 저마다의 이미지를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의 다양한 연상만으로 감동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유채밭에서의 사랑하는 사람과의 입맞춤이나 은행잎이 떨어진 길에서의 이별 같은 구체적 사건이나 경험으로 인한 개인의 체험적 슬픔이나 기쁨 때문에 노란색의 그림만으로도 감동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미지만으로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속에 들어 있는 구체적 사건이나 의미로 인해 감동, 즉 관념성으로 인해서 감동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지에서 관념성을 무조건 제거할 것이 아니라 관념을 이용한 이미지의 활용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시 쓰기에 있어서의 관념의 활용
 
현대시는 평면적인 시 쓰기가 아니라 입체적인 시 쓰기라고 했다. 건물로 말한다면 1층짜리 초가집이나 기와집이 아니라 10층이나 100층과 같은 빌딩을 짓는 것이다. 이러한 빌딩을 짓는 데에는 일층자리 집을 짓는 것과는 공법부터가 다르다. 다층으로 갈수록 콘크리트에 철근을 넣든지, 철골을 써야한다. 시도 평면적인 시가 아니라 입체적인 시를 쓰기 위해서는 다층적 사고를 엮어줄 수 있는 상징적 철골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 철골은 이미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안개에 대한 유사 이미지를 찾는다면 연기나 구름, 입김, 가스와 같은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의 조합으로는 수평적인 관계는 만들 수 있어도 심층적인 관계를 만들기는 어렵다. 안개에 대한 심층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안개의 관념성, 즉 답답함이나 소통부재와 같은 관념성이 철골을 이룬 안개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찾아야 한다. 강가의 안개, 도시의 안개, 국가의 안개, 세계의 안개, 마음의 안개, 정신의 안개와 같은 다양한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이미지의 발견은 유사한 이미지를 통해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관념의 상황적 변화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같은 관념의 상황적 변화는 입체적인 공간성을 만들어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삼차원의 공간을 뛰어넘어 그 이상의 많은 차원의 공간성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심층적 사고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 수백 미터 암반을 뚫고 생수를 뽑아 올리는 데는 관정이 필요하다. 이 관정을 통하여 암반 속에 들어있는 생수를 끌어 모아 지상으로 뿜어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정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해 주는 관념인 것이다.
강가의 안개가 도시의 안개, 국가의 안개, 세계의 안개, 내 마음의 안개가 된다고 했는데, 만약 파도라면 도시의 파도, 나라의 파도, 세계의 파도, 내 마음의 파도와 같이 일률적으로 나간다면 더 이상의 다양성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강가의 안개에서 도시의 안개로 확장했다면 도시의 안개적 요소는 다 안개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강가의 안개와 연결될 수 있는 도시의 안개에 대한 상징적 요소는 대모나 폭력배의 활동, 경기의 침체, 정치의 불안, 환경적 저해요소인 매연이나 황사, 도시인들 간의 소통부재 등의 셀 수 없이 많은 안개적인 요소가 다 접속 가능한 안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적 안개 요소들을 끌어와서 직접적 이미지로 쓸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깔며 보이지 않게 내면으로 그려줄 수도 있는데, 이는 투명한 유리건물과 같이 실질적으로는 존재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잠재적 존재인 것이다. 시에서는 이런 잠재적인 존재들이 많을수록 상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강가의 안개나 도시의 안개, 세계의 안개와 같은 변화도 있겠지만, 과학적 안개, 예술적 안개, 종교적인 안개 등등의 많은 안개를 끌어올 수가 있을 것이다. 과학적, 예술적, 종교적, 도시적, 세계적 등과 같은 구분은 커다란 구멍과 같은 것으로 그 안의 많은 이미지들을 취사선택하고 접속시켜 활용할 수가 있는 구분된 창고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창고 안에는 자신이 쓰고자 하는 시적 이미지에 대한 무수히 많은 상징적 이미지들이 담겨 있어서 맘먹은 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시적 이미지에 대한 유사이미지를 찾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적 대상인 이미지에 대한 유사이미지를 찾는 것과 시적 대상인 이미지의 관념성을 중심으로 한 상징적 이미지를 찾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태양에 대해 시를 쓴다면 태양의 유사이미지 불꽃, 눈동자, 심장 등과 같은 이미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사이미지로는 깊이 있는 시를 표현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유사성이 너무나 표시가 나기 때문에 시의 모호성을 살리거나 고도의 상징적 구조를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태양의 관념성, 즉 열정이나 밝음, 영광, 희망 등과 같은 관념성을 중심에 놓고 내 마음의 태양, 가정의 태양, 도시의 태양, 국가의 태양, 세계의 태양을 종교의 태양, 예술의 태양, 철학의 태양 등등의 많은 태양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의 태양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부모님, 직장, 돈, 지식, 명예, 종교, 예술, 건강 등등의 많은 태양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태양이라면 정치적 지도자, 상징적인 탑, 숲이나 공원, 발전시설 등등의 많은 이미지를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미지를 끌어오든, 아니면 암묵적 배경으로 깔고 사용하든지 하여 포괄적인 상징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작품 최은묵의 키워드도 바로 이러한 구조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키워드는 관념어 생명이다. 이 관념어 생명에 대한 이미지 우물, 피부, 아이, 여인, 길, 나무, 눈물, 물길, 실뿌리 등을 찾고, 그 이미지의 연결을 통하여 암담한 현실 속에서의 참 생명을 추구한 시이다.
[출처] 12. 매달린 남자|작성자 김기덕
 
 
13. 죽음
 
 타로카드 13번 죽음은 백말을 탄 검은 기사가 장미와 백합이 그려진 검은 깃발을 들고 있다. 두 벽 사이에서는 태양이 떠오르고, 말 앞에는 교황이 서서 기도하고 있다. 땅에는 황제가 쓰러져 있고, 어린아이가 꽃을 들고 있다. 그 뒤쪽엔 흰옷을 입은 여인이 외면하고 있다. 멀리 강물이 흐르고 돛단배가 떠간다. 땅은 온통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다.
백말은 새로운 시대가 다가옴을 의미한다. 백마 위에 탄 검은 기사는 흑사병과 같은 질병이며, 재앙과 전쟁, 죽음을 상징한다. 그가 든 검은 깃발은 전염병이나 전쟁, 죽음의 기세가 클 것임을 상징한다. 검은 깃발 안에 그려진 십자군 원정대의 흰 장미와 백합은 물과 불의 결합, 십자가를 의미하며, 반대되는 것들의 통합을 의미한다. 해골은 수많은 희생을 뜻하며, 새로운 시대를 몰고 오는 희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죽음의 신을 상징하는 해골의 기사는 삶의 투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말 아래 쓰러진 황제는 교권에 의해 추락한 황제의 권한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버려진 왕관처럼 아무리 강한 힘도 언젠가는 죽음 수밖에 없는 종말을 예고한다.
​황제는 보수적인 인물을 의미하며, 기득권의 몰락, 포기를 상징한다. 흰말 앞에 선 교황은 흰말이 당도하고자 하는 목적적 존재이다.
​이는 종교로 황권을 무너트리고 교권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의도가 그림에 담겨 있다. 교황은 신의 축복이며,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말의 머리 쪽에 있는 두 탑 사이의 태양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종말 이후의 재탄생을 상징하며, 부활을 뜻하고 있다.
말 앞에 있는 어린아이는 새로운 시작과 성장을 의미하며, 변화할 미래를 상징한다. 손에 든 꽃다발과 머리에 꽂은 꽃은 새로운 희망을 상징한다. 어린아이는 말을 바라보며 환영하는 신진세력이다. 어린아이 뒤에서 외면한 여인은 타로카드8번에서 사자를 다스리던 여인이다. 이 여인은 운명을 억누르던 여인이며,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지 못하고 외면하는 기성세대를 의미한다.
멀리 보이는 강물은 세월의 흐름을 말하며, 그 강물 위에 있는 배는 한 배를 탄 시대적 존재를 의미한다. 황금색 땅과 교황의 옷 색깔이 하나로 통일된 것은 세상에 팽배한 황금만능주의와 그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종교의 세속화를 상징한다.
13이란 숫자에 죽음이라는 카드를 놓은 것은 예수와 그의 제자 12명을 상징하며, 최후의 만찬과 같은 마지막을 의미한다. 13일의 금요일을 서양에서는 기피하는 날로 인식했던 것도 그리스도와 제자들을 의미하는 13과 십자가에 박은 못(金)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한 13과 못을 의미하는 금이 겹친 날을 특히 불운의 날로 생각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은 파멸, 결말, 죽음을 의미한다. 또한 새 시대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는 의미가 있다. 남은 것은 하나도 없이 끝남을 의미한다.
역방향은 새로운 시작, 변화, 상속을 의미한다.
 
타로를 이용한 시 쓰기에 있어서 적절한 칼라의 사용과 이미지의 배치는 시의 생명적인 요소이다. 위의 그림에서도 흰말과 검은 기사가 대비를 이루고 있다. 또한 검은 깃발과 흰색의 백합과 장미의 그림도 대비를 이루고 있다. 세상은 흑과 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 위에 탄 기사와 말을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표현했고, 깃발의 흑과 백 역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표현했다. 말의 발굽 아래 황제가 쓰러진 것은 쇠퇴와 멸망이며, 말 앞에 교황은 새로운 시대를 의미한다. 말의 발 앞에 아이는 새롭게 자라날 성장의 시기를 의미하며, 외면한 여인은 기성세대이다. 멀리 강물이 흐르고, 돛단배가 떠간다. 그리고 성벽 사이로 태양이 떠오른다. 태양의 아래쪽은 아직 어둠이 묻어있다. 태양이 막 떠오르는 것에 비해 땅은 너무 환하고 황금색이다. 그리고 교황의 옷과 같은 색이다. 이는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세상과 속화된 종교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교황의 힘으로 세상이 밝아질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이미지의 배치는 참으로 치밀하고 의도적이다. 만약에 말이 검은 색이고 기사가 흰색이었다면 의미는 달라졌을 것이다. 교황이 쓰러져 있고, 황제가 말 앞에 서있다면 그 시대성 또한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태양과 땅이 황금색이 아니고 붉은 색이었다면 피로 물든 세상이 될 테지만, 황금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피로 정복된 세상이 아니라 고귀함으로 가득한 세상이 되는 것이다. 버려진 황제의 왕관과 지팡이니 손을 모은 교황의 모습 등, 이미지 하나하나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상징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시에서도 이미지의 배치는 많은 상징적 관계를 나타내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이미지 간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중심이미지에 대한 수직적 이미지인지, 수평적 이미지인지를 파악하고 사용하여야 한다. 중심이미지는 시를 쓰고자 하는 핵심이미지로서 마인드맵의 둥치와 같으며, 시를 쓰고자 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막에 대해 쓰고자 한다면 사막은 중심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또한 중심이미지는 사막뿐만이 아니라 사막에 속한 모든 이미지는 중심이미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사막의 모래나 바람, 선인장, 낙타, 오아시스 등은 모두 중심이미지에 속하는 것이다. 이 이미지들은 중심이미지 사막에 대한 하나의 몸체이며, 함께 따라가는 부속물이다. 사막에 속한 이러한 이미지들은 주변 정황이나, 사막에 대한 묘사는 가능하나 사고의 입체성이나 의미의 심층적 관계를 만들어주지 못한다. 사막에 대해 시를 쓰고자 할 때 이러한 이미지를 끌어들이는 것은 시 쓰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에서 그림의 기본이 정물화나 풍경화 인 것처럼, 시에서도 사막에 속한 이러한 이미지들은 1차원적인 이미지이다. 즉 이어진 하나의 선처럼 모두가 사막에 속한 이미지들이기 때문에 그림은 나타내줄 수는 있겠지만, 깊은 의미나 환기된 상징성을 나타내주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심층적 상징성을 만들어주기 위한 이미지의 배치는 어떻게 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사막이 없는 곳에서 사막을 만들어줄 때 입체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하라 사막이나 고비 사막 같은 것을 나열한들 입체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막이 없는 곳에서 사막을 만들었을 때 입체성이 생긴다는 것은 사막이 추상성으로 갔을 때 입체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음의 사막, 도시의 사막, 하늘의 사막, 역사적 사막 등과 같은 것은 실재 사막이 없지만, 사막을 만듦으로써 그냥 입체성이 아닌 심층적 입체성이 생기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보면 마음의 사막은 메마른 사랑의 강이나, 갈라진 마음의 틈, 건조한 눈빛 등과 같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도시의 사막에서 이미지를 찾으면 아스팔트길이나, 콘크리트 광장, 빌딩의 사구, 황사의 유리창, 스모그의 하늘, 낙타를 닮은 느림보 차들, 모래알처럼 흩어진 사람들 등 모두가 도시의 사막을 이루는 이미지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의 사막도 살펴보면 구름이나, 매연, 황사, 새떼, 행성들, 은하수 등도 다 하늘의 사막을 만들 수 있는 이미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의 배치는 이미지를 통해 건물을 짓는 것과 같다. 사막에 대해 시의 방향을 잡고 이미지를 배치하여 입체적 사고의 건물을 짓고자 할 때 사막에 속한 모래나 바람이나 오아시스와 같은 이미지들은 건물의 기초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기초 위에 마음의 사막, 도시의 사막, 하늘의 사막, 연인 간의 사막, 역사적 사막, 종교적 사막을 세웠을 때 심층적인 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막과 유사한 이미지의 배치관계는 수평적 관계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산만해질 수 있어서 너무 많이 끌어들이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타로카드 13번 죽음의 이미지에서 볼 때 말 앞에 있는 어린아이나 여인의 설정 같은 이미지의 배치는 사실성과는 관계가 없지만, 주제성, 즉 목적한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이미지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시에서도 주제성, 목적된 의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비현실적인 이미지의 배치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위
김 기 덕
 
하늘을 오린 가위들이 황사로 날아왔다.
조각난 모래 바람은 찢어진 헝겊조각처럼 펄럭였다.
 
가위질할 수 없는 밤과 아침 사이로 빠져든 도시는 사막에 잠기고
낙타로 깨어난 차들은 느릿느릿 사구를 넘었다.
 
죽은 태양을 파묻은 땅에선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비릿한 악취를 풍겼다.
스펀지 같은 폐에 꽂힌 바늘들은 찢긴 상처를 꿰매지 못해
수풀로 짠 바람을 밀어 넣어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북북 찢어버리고 싶은 하루의 책장을 오리면
태양처럼 떠오를 꽃과 아이들, 이슬방울 영롱한 아침과
가위를 부서뜨릴 바위덩어리. 가위! 바위! 보!
 
간밤에 내 몸을 짓눌렀던 검은 가위는 어디부터 오려내고 싶었을까.
담배연기 가득한 폐, 이미지를 상실한 뇌
황사로 뿌연 내 가슴 속 하늘도 오려내고 싶었겠지만
난 공포감으로 상영 중인 꿈의 필름을 소리 내어 잘랐다.
 
비단 폭처럼 찢어진 어둠 속에서 보았던
잠든 여인의 눈부신 속살,
창가에서 그믐달이 코를 골고 있었다.
새벽은 동녘부터 야금야금 오려져 능선을 만들어갔다.
 
오늘밤 머리맡엔 어머니가 쓰시던 가위 하나 놓고 자야겠다.
 
[출처] 13. 죽음|작성자 김기덕
 
14. 절제
 
타로카드 14번 절제는 붉은 날개의 천사가 흰옷을 입고 손에 든 두 개의 컵으로 물을 따르고 있다. 머리는 황금같이 빛나고 한 발은 연못 속에, 한 발은 땅을 밟고 있다. 연못가에는 수선화가 피어있고, 연못에서 난 길은 두 산 사이로 나있는데, 길 끝엔 왕관처럼 빛나는 불꽃이 있다. 이 그림의 뜻은 절제와 균형, 중용, 조절, 비율이 맞게 뒤섞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붉은 날개의 천사는 미카엘 천사로 태양의 천사이며, 전쟁의 수호천사이다. 붉은 날개는 불처럼 분명한 신의 의지를, 그의 빛나는 머리는 진리의 빛을 의미하며, 깨달음을 의미하는 노란색으로 칠해져 정신적인 깨달음을 의미한다. 신성, 태양을 힘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천사가 입은 흰옷은 순결함을 의미하며, 가슴에 있는 삼각형의 문양은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두 개의 컵을 손에 들고 컵 속의 물을 서로 교환하고 있다. 물은 융통성을 의미하며, 순리를 상징한다. 두 개의 컵은 고인 물과 신성한 물,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 남성과 여성, 음과 양, 영혼과 육체, 의식과 무의식 등과 같이 대칭, 또는 대립을 의미하는 물이다. 
​서로의 물을 교환함으로 절충점 찾기, 정화작업, 균형과 조화, 교감을 의미한다. 물고기가 없이 맑은 물은 순결한 마음을 상징하며, 발은 추구하는 진리를 상징한다. 물에 담근 발은 무의식, 정신세계를 의미하며, 땅을 밟고 있는 발은 의식, 물질세계를 의미한다. 발이 두 곳을 다 밟고 있기 때문에 융통성을 의미하며,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상징한다.
수선화는 자기애, 자기주의, 고결, 신비, 자존심 등의 꽃말을 갖지만, 여기에서는 수련과 자기정화의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연못에서 시작된 길은 산과 산 사이로 나서 왕관과 같은 태양빛을 향하고 있다. 이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갔을 때 빛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두 산은 포도주와 물, 뜨거운 물과 찬물, 감정과 욕망의 대립적 관계를 의미하며, 치우치지 않고 균형과 조화의 중용의 도를 추구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왕관과 같은 불꽃은 세상을 두루 살피는 신의 불꽃이다. 곧 목표나 이상을 의미하며, 영광의 빛, 성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타로카드 14번은 이미지들의 대칭을 이루고 있다. 컵과 컵, 천사의 후광과 왕관의 빛, 산과 들, 또는 두 개의 산, 물속의 발과 땅의 발, 연못과 땅 등 모두가 대칭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대칭적 관계에서 치우침이 없는 양면성의 추구를 통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만이 절제가 가능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시를 씀에 있어서도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이미지에만 치우쳐도 가벼워지며, 관념에만 치우쳐도 싱거워지는 것이다. 시는 막힘이 없는 소통이다. 지금까지 거론한 시 쓰기의 방법이 이미지의 배치와 접속의 관계를 말해왔지만, 기계적인 이미지의 접속만으로 시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 이미지 안에 담긴 관념성과 철학성을 보고 이미지를 끌어오고 조합을 시켜야 한다. 하나의 시를 쓰는 과정은 세상과의 소통이며, 사물 하나하나와의 결합이고, 세상을 다스리는 신과의 통섭이다. 타로카드는 점을 치는 도구이다. 점을 치는 도구는 신성한 것이며, 단순히 그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그림 속에 신령함이 같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로카드를 뽑을 때 단순히 재미로 뽑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적절한 카드를 뽑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 힘은 우리의 내부에서 나오는 예지적 능력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고, 외부적인 절대적 힘에 의해 나도 모르게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타로카드를 가지고 점을 보는 순간만큼은 초원적인 순간이며, 영적인 작용에 의해 이루어지는 고도의 영감이 교감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신의 경지에 다다른 창조자이다. 여호와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신 것은 언어 속에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빛이 있으라 하심으로 세상엔 빛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언어로 빛을 창조한 것이다. 빛의 재료는 곧 언어이다. 그러므로 빛과 언어는 무관한 관계가 아니며, 이질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빛은 언어가 될 수 있으며, 언어는 빛이 될 수 있다는 상관관계를 갖는다. 이처럼 세상 모든 만물이 신의 언어로 지어졌다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언어가 될 수 있고, 언어는 다시 세상만물이 될 수 있는 순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시를 쓰는 작업은 세상을 창조하는 작업이다.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현실로 불러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 속엔 이미지가 들어있다. 언어 속엔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아니면 추상적이든 비추상적이든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 사물 속에도 역시 마찬가지로 관념적이든 이미지적이든 상징의 언어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이는 서로 공통적 요소를 갖추고 있어서 언어가 세삼만물이 되고 세상만물은 또 다시 언어가 될 수 있는 상호교환성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시는 언어로 세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언어로 언어적인 요소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즉 관념적인 요소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만물적인 요소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관념적 설명이나 단지 언어에 그치는 요소들의 집합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인은 신과 마찬가지의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창조하는 것도 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한 것처럼 언어로 이루어진 사물적인 존재의 현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물과 언어는 상호교환성이 있음을 알았듯이 사물과 사물 간에도 상호 교환성이 존재하며, 언어와 언어 간에도 상호 교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물질은 나노의 세계로 가면 결합과 분해가 가능해진다. 우리 인간의 몸도 나노의 물질로 분해되고 결합할 수 있다면 순간이동도 가능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어도 언어 간의 상호 접속과 새로운 배치를 통해 무한한 의미의 변화를 이룰 수가 있는 상호교환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호 교환성은 물질적, 표면적, 형식적인 결합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정신적, 내면적, 실질적인 결합의 관계를 만든다. 시인은 이러한 모든 사물과의 상호소통과 교접, 임신과 출산, 분리와 결합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를 갖지 않으면 혼이 담긴 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며, 신이 내재한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깨달음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이러한 세계를 읽고 느끼며, 깨닫게 하기 위해서 신적 차원, 아니 신과 사물, 인간이 우주만물과 혼재된 세계를 창조하고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겠는가. 시인의 정신은 시공을 초월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일곱째 하늘까지도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 14. 절제|작성자 김기덕
 
15. 악마
 
염소 이마에 그려진 펜타클은 실용적이며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욕망을 상징한다. 박쥐는 예로부터 서양에서는 마녀, 악마로 상징되어왔다. 낮에는 숨기고 밤에만 펴는 어둠의 존재로 인식되어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악마의 오른손은 중지와 약지를 벌린 저주의 각인을 하고 있다. 떳떳하지 못한 돈이나 관계를 의미하며, 왼손은 횃불을 거꾸로 들고 있는데, 이는 신을 부정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악마의 발은 몸집에 비해 작게 그려져 있다. 이는 나중에 강한 욕망으로 인한 빚더미에 앉거나 돈관리가 안 됨을 의미한다. 악마의 발밑에는 옷을 입지 않은 남녀가 쇠사슬에 목이 매어있다. 옷을 입지 않은 남녀는 성적인 타락을 의미한다. 육체적인 욕망이나 유혹으로 인해 헤어나오지 못함을 의미한다. 머리에 난 뿔도 욕망이나 욕심을 상징하며, 쇠사슬은 구속, 집착, 중독을 의미하는데, 느슨해서 마음먹으면 풀고 나올 수 있으나 스스로 풀고 나올 수 있는 의지가 없음을 상징하고 있다. 남자의 꼬리는 불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꼬리에 악마가 횃불을 대어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 불꽃은 욕정의 불꽃이며, 남녀관계의 지나친 욕망인 것이다.
     여자의 꼬리에는 포도가 달려있는데, 포도는 다산을 의미한다. 본능을 의미하는 꼬리를 어디에 두고, 어떻게 흔드느냐에 따라 그 처신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타로카드 15번 악마는 6번 연인과 관계가 있다. 선악과를 먹기 전의 아담과 하와는 6번 연인으로 표현되고, 선악과를 먹은 후 인간의 모습은 15번 악마로 표현되어 있다. 숫자 15는 1+5=6의 관계로 6번 유혹, 선택의 관계에서 15번 상통, 연합, 통합, 재편, 신장의 의미를 가진다. 또한 6번 연인은 정신적인 의미이며, 15번은 육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타로카드 15번 악마의 정방향은 타산적이며, 야심, 권력을 상징한다. 또한 유혹에 약한 것을 의미하며, 게으른 성격을 의미한다. 이기주의, 속박, 향상심 결여, 불륜, 폭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역방향의 해석은 야심, 권력, 반성 등을 의미하며, 개방되어 있거나 출구가 보이는 현실적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관계를 끊어야 할 때이거나 이별, 이혼 등을 의미한다.
 
타로카드는 몇 개의 상징적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상황과 입장에 따라서 무수히 많은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그림의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시쓰기에 있어서도 이러한 상징성을 살리고 상황에 따라서 많은 독자들의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미지의 결합이 필요하다. 이미지의 결합은 단순하다. 하지만 그 해석은 참으로 다양하다.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서 다른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지의 힘이고, 이미지 속에 담긴 생명성 때문이다. 주역에서 우주가 아무리 큰 것이나 태극 안에 있고, 아무리 작은 존재일지라도 태극을 그 안에 갖고 있다고 했다. 太는 하나(一)에서 둘(人)이 생기고 그 둘이 사귀어 자식(•)을 낳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모든 만물은 태극에서 탄생하였지만, 그 안에는 각각 태극의 존재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 태극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든 사물은 음과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를 분해해 봐도 거기엔 음의 전자와 양자가 존재하듯이 아무리 큰 우주도 태극이요, 아무리 작은 입자도 태극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 만물이 창조되었지만, 세상 그 어디에도 안 계신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태극은 곧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모든 만물에는 신의 정신이 깃들고, 살아있는 혼이 존재한다. 우리가 느끼는 생물학적 살아있음이 생존이 아니라 무궁한 세월 속에서 광물질까지도 변화생성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이러한 살아있는 존재를 느껴야 한다. 내가 산이 되고 바위가 되고 물이 될 수 있는 소통과 변환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는 살아서 서로 소통하고 유체이탈하며 몸을 맞바꿀 수 있는 빙의적 사고가 필요하다. 인간이라는 고등동물을 놓고 그 주변에 하등동물을 배치하는 것과 같은 사실적 시각으로는 이미지의 조합을 이룬 그림을 그리기는 실상 어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극은 모든 사물을 낳았고, 모든 사물은 태극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의 존재가 산이 될 수 있고, 산이 나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몸도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태극이요, 우주도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태극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소우주요, 세상 우주는 대우주인 것이다.
시쓰기는 인접이든, 유사든, 상징이든 서로 관계된 사물을 끌어오고, 그 사물 간의 상동성을 이용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위해 포괄적, 확장적으로 결합하여 표현하는 글쓰기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시쓰기는 나와 우주와의 소통인 것이다. 그 소통은 유체이탈, changing of body and mand의 기법이며, 정신과 혼을 발견하는 일이다. 또한 죽은 것들, 의미 없는 것들, 그리고 의미는 있으나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것들을 위해 새롭게 혼을 불어 넣으며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창조를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존의 인간 우월적인 고정관념을 벗어버리고 먼지 하나까지도 수평적 관계로 바라보고 생명성을 부여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바람 속에서 신의 소리를 듣고, 혼의 부르짖음을 듣고, 사랑하는 사람의 휘파람소리를 듣고, 풀과 나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면 그 사물 안에 담긴 혼의 존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 혼의 존재를 볼 수 있을 때 시를 쓰고자 하는 내가 그 혼과 맞바꿔 나무의 혼이 되고 풀의 혼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시를 쓸 때 그 시는 살아있는 시가 될 수 있고, 마음을 울리고, 혼을 울리는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악마의 중독
김 기 덕
 
 
염소가 검은 상자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열어보였다.
젖이 가득한 젖꼭지에서 강이 흘러나왔다.
어둠 속에 뿔들은 왕관처럼 반짝였고
이마에 새겨진 모조품 별에선 가식적인 웃음이 새어나왔다.
박쥐의 은빛 날개를 퍼덕이며 펼친 오른손엔 못 자국이 선명했다.
중지와 약지를 땐 저주의 각인에 혀를 끼우고
왼손에 들었던 횃불로 바람의 꼬리에 불을 붙이자
악성 루머가 피어났다.
사람들은 스스로 검은 상자에 매달린 중독성의 쇠사슬을 목에 걸었다.
자동조절 되지 않는 나의 몸에서도 고열이 일었다.
통증으로 웅크렸던 배를 독수리의 발톱이 휘젓자
거친 호흡으로 흔들리던 종잇장이 찢겨나갔다.
꺼낸 폐를 독수리가 인공호흡기처럼 입에 물고 숲을 흡입했다.
노을이 빠져나간 얼굴에선 어둠이 흘러나왔다.
달의 내장을 꺼낸 굴뚝들은 목에다 구름을 뱀처럼 두르고 방안을 들여다봤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구멍 난 튜브 속에서 지독한 황사와 매연,
미세먼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의 목구멍에서도 뱀의 혓바닥이 아지랑이로 피어올랐다.
독수리가 홀연히 날아간 후에야, 검은 상자 위에 염소가 목의 쇠사슬을 풀었다.
재가 된 사람들이 마른 풀처럼 공중에 떠다녔다.
한 모금의 백색연기였다.
[출처] 15. 악마|작성자 김기덕
 
16. 탑
 
타로카드 16번 흔들리는 탑은 번개 맞은 탑이 무너지고 불이 나면서 사람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한 것으로써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말하고 있다. 지나친 교만과 물욕, 권력욕으로 주어진 재난을 의미하며, 겸손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탑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을 의미하는데, 인간이 교만해져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보다 높아지려 탑을 쌓았으나 신께서 무너뜨리고 언어들을 흩어놓음으로써 결국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재난은 이유가 있는 재난으로써 자초한 부분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악마의 구속이 깨어짐을 의미하기도 하며, 영감, 자유, 실재를 상징한다.
탑은 강금, 환각의 장소를 의미하며, 속박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를 얻음을 의미한다. 탑은 하나의 아성과 같은 것으로 야욕과 착각의 성이며, 정신적인 감옥, 벗어나지 못할 틀을 의미하기도 한다. 탑의 꼭대기는 왕관의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높은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며, 욕망과 오만이 가득함을 의미한다.
성을 파괴한 번개는 외부적인 강박이나 압력, 물리적 강압에 의해 변화가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지속되던 상황이 변화를 맞이하는데, 그 변화는 부정적 결과인 사고나 재난으로 찾아온다. 쌓아가던 노력이나 공력이 종말을 고하게 되며, 많은 상실과 손해가 따르게 됨을 의미한다.
성에서 떨어지는 불꽃은 22개인데, 22의 숫자는 메이저카드의 숫자를 의미한다. 또한 10행성의 12개의 별자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떨어지는 사람은 남과 여인데, 여자는 붉은 망토를 걸치고, 남자는 왕관을 쓰고 있어서 이것도 역시 오만과 권위에 가득 차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이렇게 권위의식과 오만에 가득 차게 되면 반드시 추락하게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감옥이나 아성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내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탑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이 솟아있고 주변에 구름이 모여 있는 것도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을 상징하고 있다. 탑 밑을 고이고 있는 뾰족한 돌들은 따뜻하고 온화한 마음들이 아니라 날카롭고 강한 마음의 소유자들임을 상징한다.
타로카드 16은 1+6=7로써 7번 전차카드와 수비학적으로 연관이 있어서 권력과 많은 관련성을 갖고 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의 해석은 파산선고나 실연 통보를 의미한다. 사기를 당하여 집안이 폭삭 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정리해고를 당하여 지금까지 쌓았던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경우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루아침에 사고를 당하거나, 지위의 하락, 사랑의 파국, 급변, 파산, 안정된 기반의 상실을 의미한다.
역방향의 카드가 나오면 불가능적인 상황을 의미하며, 손해나 위기, 폭행, 모욕, 비난이나 압박을 받게 됨을 상징한다. 스트레스의 급증이나 숨겨진 진실의 폭로와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을 의미한다.
 
타로카드 16번 탑은 상승이미지와 하강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산과 탑, 구름, 하늘, 왕관 등은 상승이미지이며, 번개와 떨어지는 남녀, 불꽃 등은 하강이미지이다. 이미지를 통하여 감정을 표현하고 나타내기 위해서는 이미지의 특징을 잘 파악해야 한다. 모든 이미지들은 상승적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하강적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 내면에 음과 양이 존재하듯, 밝고 어두움이 같이 공존하듯이 상승적 이미지와 하강적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낙엽이 하강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춤추는 낙엽으로 표현한다면 결코 하강적 이미지에만 국한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내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모든 이미지의 느낌을 조정하고 바꾸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상승적인 삶, 하강적인 삶, 그리고 머물러 있는 삶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승적인 삶은 성장이나 성공, 깨달음과 같은 것으로 현재보다 나아지고자 하는 지향성을 갖고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다. 성공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거나, 천국에 가기 위해 종교에 심취해 있다거나, 사랑으로 인해 기쁨과 환희가 충일해 있다면 이 것은 모두 상승적인 상태나 감정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만나고자 바벨탑을 쌓았던 행동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곤 한다.
하지만 하강적 삶은 실망이나 낙심, 절망적 상황을 의미한다. 별똥별이 떨어지듯 인간의 죽음이나 상실, 실패와 같은 것으로 자신이 현재 처한 위치에서 낮아지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아무리 높은 곳에 있다고 할지라도 방향성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면 하강적 삶인 것이며, 하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하강적 이미지는 지상이나 나락, 죽음과 연결되어 있으며, 육체적, 정신적 종말을 향하고 있다.
수평적 삶은 특별한 변화가 없는 밋밋한 반복을 의미하며, 성장도 실패도 없는 잠과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삶을 방향성을 가지고 구분하는 이유는 이미지의 사용상 방향성을 이용하여 감정을 나타내 줄 수 있다면 시를 쓰는데 있어서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미지의 사용에 있어서 색깔을 구분하고, 그 색깔을 이용하여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적이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삶의 방향성, 사물의 방향성을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자신의 감정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희극과 비극의 씨줄과 날줄로 짠 옷감과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희극과 비극의 상승과 하강 곡선을 그리는 그라프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슬프다느니, 기쁘다느니 말하지 말고 상승과 하강의 곡선을 그림으로 그라프와 같이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시의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식의 하루 삶은 상승과 하강의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상승과 하강의 곡선만 보면 주식의 하루 상황을 다 알 수 있다. 우리의 감정에도 곡선이 있다. 상승하든 하강하든 그 곡선을 주시하여 본다면 하루의 모든 삶을 들여다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양을 가지고 이미지를 그린다면 ‘태양이 뜬다’, ‘태양이 솟는다’, ‘태양이 빛난다’ 등은 태양의 상승적 이미지이나 ‘태양이 진다’, ‘태양이 가라앉는다’, ‘태양이 시든다’ 등과 같은 표현은 하강적 이미지일 것이다. 인간은 신과 동물 사이에 놓인 밧줄을 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신의 모습처럼 상승했다가도 어느 순간 동물만도 못한 존재로 추락하는 게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상승과 하락의 관계를 알고 잘 표현할 수 있다면 관념성에서 벗어나 이미지로 충만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흔들리는 탑
김 기 덕

벽돌들은 구름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서로를 밀쳐내며 부서져 내렸다. 조각난 족속과 언어들이 굴러 떨어진 계곡엔 낮선 눈들이 채워지고, 돌 틈마다 방언들이 피어났지. 융기와 침강을 반복해 온 꽃의 단층들. 창밖에선 구름이 천둥소리를 내며 빗방울로 무너졌어. 고함과 그릇 깨지는 소리로 조각 나기 시작한 방안은 어둠이 밀려와 빛의 휘장이 찢겨졌지. 기둥이었던 그녀가 빠져나간 후 기울기 시작한 허리뼈. 가슴을 열고 바람을 들이려했던 심장의 창문마다 불꽃 연기가 피어올랐어. 하늘을 닮고 싶었던 나의 푸른 옷들이 찢겨져 내리던 잎새. 무지개다리를 건너던 빨간 장화가 벗겨진 하늘가엔 발목이 시린 나목들이 발을 동동 굴렀지, 날개가 되지 못한 붉은 망토가 노을 속에 너울거리던 저녁을 기억해. 시계탑 앞에 모였던 펭귄들도 조각조각 떨어져 내리는 시간의 퍼즐을 맞추다 길을 잃었지. 떼어진 간판들도 눈처럼 비처럼 거리를 적셨지. 어둠이 쓰러진 밤, 내 몸의 장기와 기관들도 꽃의 성벽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해. 감각의 천장을 만들며 하늘 떠받치던 뼈들이 땅으로 꺼져가. 추락하는 수직의 화살들, 젖은 새가 날개를 접으면 바벨탑은 또 가을, 새로운 언어와 족속을 남기고 무너질 거야. 허물어진 어미의 성에서 기어나오는 어린 거미들. 내 몸의 자궁이 열린다.
[출처] 16. 탑|작성자 김기덕
 
class="fil5 pcol2b" v:shapes="_x0000_i1032">17. 별
 
타로카드 17번 별은 파란 하늘 중앙에 큰 별이 떠있고, 주변에 7개의 작은 별들이 그려져 있다. 나신의 여자가 연못에 한 발을 딛고 두 손에 든 항아리의 물을 쏟는다. 대지엔 꽃들이 피어나고,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는 그림이다.
중앙에 있는 황금색의 커다란 별은 큰 꿈을 의미하며, 큰 목표나 영적 직관력을 의미한다. 별의 황금색은 이 여인의 머리색과 같은 색으로 연결되어 있다. 별빛이 머리의 색과 같이 빛남은 하늘의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또 연결되어야함을 나타내고 있다. 주변에 있는 흰색의 일곱 개 별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희망적 미래를 상징한다. 북두칠성의 일곱 개의 별과 같은 것으로 큰 별보다 작은 꿈들이나 이성적 상태 등을 의미한다. 또한 내면의 단편적 무능을 커다란 별인 영적 직관을 통하여 일깨워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신의 여인은 이러한 꿈과 희망의 영적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두 손에 든 항아리로 물을 뜨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옷을 입지 않은 나신은 자신, 그리고 자아를 의미한다.
 
​  물을 뜨는데 몰두한 모습은 넓은 세상을 두고 자아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의 현실에 몰두하고 있는 상태이다. 물은 정화, 인내를 의미하며, 일이나 놀이, 자아, 차가운 이성을 상징한다. 이러한 물을 두 개의 항아리로 떴다가 부었다가를 반복한다. 이는 자기의 세계에 빠져 원대한 꿈과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여인의 등 뒤에서 새가 초록빛 나무 위에 앉아 속삭인다. 새는 하늘을 나는 존재로 영적인 존재이며, 신령한 존재인 것이다. 별과 하늘과의 연결 관계로 새는 이 여인에게 충고를 한다. 하지만 새의 속삭임을 이 여인은 듣지 않는다. 열심히 물을 퍼서 쏟는 대지는 푸른 초원으로 펼쳐져서 생명이 가득하다. 세상은 이러한 자기 몰입과 열심히 이루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물을 담는 행위는 감정의 조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격앙된 상태의 감정에 물을 끼얹어 냉정한 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이성적 행위, 자기몰입을 통한 자신만의 이상추구로 인해 해야 할 더 큰 일을 잊어버리고 사는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물을 퍼내는 작업은 남의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드는 행위이다. 남의 것을 약탈한다는 의미도 있으며, 연애 상대를 바꾸는 의미도 있다.
이 카드의 정방향의 의미는 상상했던 것이 이루어지거나, 파산에서 벗어남의 의미가 있으며, 소원성취, 희망의 미래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래의 큰 가능성, 계시나 영적 호기심을 상징하며, 충분한 감성적 본능, 순수를 의미하기도 하여 이성이 필요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방향의 의미는 해낼 수 없는 일을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나, 타인에게 사기를 치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거짓으로 돈을 뜯거나 과대포장, 말로만 해결, 힘든 현실, 희망이 보이지 않음을 상징한다.
 
타로를 이용한 시쓰기는 이미지 속에 내재된 상징성을 활용하여 이미지 간의 조합, 배치를 통해 시인이 나타내고자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미지로 감정을 표현하게 되면 관념적 단순한 개념에서 보다 확장된 종합적 감정을 표현할 수가 있게 된다. ‘슬프다’라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눈물’이나 ‘이슬’ 등과 같은 이미지를 불러온다면 슬픔의 관념적 감정보다 확장된 눈물의 상징적 의미들이 독자에게 폭넓은 감정을 갖게 한다.
시적 방법으로 오랫동안 활용되어 온 은유적 기법은 ‘A=B이다’와 같은 형식을 갖는다. 또한 A는 C, D, E, F…… 등의 다른 존재로 치환을 하게 된다. 오규원 시인은 “오랜 기간 시인들은 시적 대상에 대한 의미화 작업을 해오며 시적 대상을 명확히 하는 일을 해온 듯하다. 하지만 사실은 시적 대상을 파편화하고, 덧칠하는 작업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존재의 언어는 왜곡되지 않는 ‘사실적 현상’을 통해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은유의 세계에서 환유의 세계로 전환되어 한다고 말한다. 환유는 한 낱말 대신 그것과 가까운 다른 낱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은유는 유사성을 통하여 다른 사물을 끌어오고 환치시키는 것이지만, 환유는 인접성을 통하여 사물을 끌어오는 방법이다.
 
그 마을의 주소는 햇빛 속이다
바람뿐인 빈 들을 부둥켜안고
허우적거리다가
사지가 비틀린 햇빛의 통증이
길마다 널려있는
논밭 사이다
반쯤 타다가 남은 옷을 걸치고
나무들이 멍청이 서서
눈만 감았다 떴다 하는
언덕에서
뜨거운 이마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소름끼치는, 소름끼치는 울음을 우는
햇빛 속이다
 
(오규원/ ‘그 마을의 주소’ 일부)
 
 
 
그의 방에는 침대가 하나 식탁이 하나
의자가 둘
그의 방에는 조리대가 하나 가스레인지가 하나
수도꼭지가 하나
조리대가 붙은 벽면 보이지 않는
화장실 하나
그의 방에는 낡은 냉장고 하나 방바닥에 놓인
전기밥솥 하나 비닐로 만든 간이 옷장
천장에는 동그란 형광등 하나
(오규원/ ‘그의 방’ 일부)
 
위의 두시를 비교하면 그 마을의 주소는 은유적으로 쓴 시이고, 그의 방은 환유적으로 쓴 시이다. 오규원은 은유적인 시보다는 환유적인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언어적 측면이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 두 시를 비교해보면 그의 방은 너무 사실적이고, 생각의 여지가 많지 않다. 관념이 배제되고 이미지만으로 쓴 시이며, 환유적인 기법으로만 써서 방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만 한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외곡되지 않은 언어, 그 자체로 순수한 이미지의 언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는 것이 대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는 언어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 만큼, 사물자체가 사실적이든, 본질적이든 간에 언어자체만으로서 존재하고 쓰이기는 어렵다.
오래전부터 시인들은 인간과 언어를 분리하고자 노력해 왔다. 사물과 관념의 분리를 통해 언어 자체가 사물이 되는 즉물적인 언어를 시에서 사용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즉물적인 언어들의 나열을 통하여 시를 썼지만, 그 시에선 살아있는 존재성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인접성을 통하여 현상자체가 된 언어들을 끌어오다 보면 이미지의 나열이 될 수가 있다. 그림으로 말하면 사실화나 풍경화에 가깝게 된다. 관념을 모두 걸러내고 이미지만 가지고 쓰고자하는 디카시가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다. 디카시는 말 그대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듯이 시를 쓰고자 하는 기법인데, 사실적인 풍경을 보여줌으로써 관념성을 배제하고 현상자체, 사물만을 보여주고자 하는 기법이었다.
 
 
 
할(喝)!/나석중

자꾸 뒤돌아보았다
너무 어이없는 놈이라고
크게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엔 디카시가 디지털카메라 사진을 배경으로 하여 함축적인 시를 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디카시는 사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반쪽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처음에 생경한 느낌을 주었지만, 인간의 감정과 정서, 깨달음을 표현하는 시의 본질적 시각에서는 독자에게 감응을 줄 수가 없었다.
요즘 사실적인 풍경화를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에 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풍경화나 정물화는 또 다른 세계의 복사에 가깝다. 이 복사는 한꺼번에 수십 장, 수백 장 베낄 수 있는 눈코 없는 계란 같은 존재다. 위의 시처럼 방에 침대가 있고, 식탁이 있고, 의자가 있고 등등의 표현은 누구라도 쓸 수 있는 복사물 같은 것이다.
시는 언어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의 파편화나 덧칠하기와 같은, 사물의 편협한 해석을 피하고 보다 확장된 의미의 이미지를 사용하기 위해선 상징적 방법을 써야 할 것이다. 즉물적 언어의 독자성을 위해 인간의 감정이 배제되는 시는 생명 없는 사물의 나열에 불과할 수 있다. 시는 인간중심으로 선회해야 한다. 현대는 과학이 발달하고, 생활의 복잡성으로 인해 그 만큼 인간의 심리도 복잡다변화 되었다. 이러한 인간 심리를 표현하고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이미지의 다양한 사용이 불가피하다. ‘A=B이다’와 같은 일대 일의 유사성도 표현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인접한 것만을 끌어오는 환유적인 기법도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대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유사성, 인접성, 상징성의 복합적인 기법이 필요하고, 사실적 묘사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사고의 건너뛰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현실의 공간뿐 아니라 가상공간의 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성, 즉물성, 파편화 되지 않는 사실적 현상들만을 추구한다면 시는 움직임이 없는 사물로 고착될 수 있다. 그 안에는 예술적 생명력이 없다. 시가 예술적 활동이라면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예술적 요소가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적 요소는 입체적 의미를 가져야 하며, 조화와 균형, 아름다움과 같은 미학 속에서 사고의 심층적 깊이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입체적 의미는 단순하고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미묘해야 한다. 한 눈에 다 들어오는 글이나 단번에 터득될 수 있는 경지라면 그것은 예술성이 높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방에 침대가 하나, 식탁이 하나, 의자가 하나라는 것과 같은 표현은 거의 생각할 거리가 없는 평면적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보는 것마다 이름을 지을 때, 그 언어는 즉물적인 언어였다. 그 즉물적인 언어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쪽이 환유적 시나, 디카시, 하이퍼시, 즉물시 등등의 시가 있다. 이러한 시들은 언어의 독자적 존립 쪽에 그 비중을 두고 있다. 하지만 시는 언어의 독자적 존립, 즉 사물 자체의 가공 없는 존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사물을 통해 효율적, 확장적, 예술적,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느냐에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출처] 17. 별|작성자 김기덕
 
타로카드 18번 달 (1)
 
타로카드 18번 달은 파란 하늘에 여러 모양의 달이 떠있고, 달 아래에서 개와 늑대가 울고 있다. 연못에선 가재가 달을 향해 길을 떠나려고 하나 길은 너무나 멀다.
하늘에 떠있는 달은 변화와 불안감을 나타낸다.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의 모습을 합친 달의 모습은 다양한 변화를 나타낸 것이며, 눈 감은 사람의 어두운 표정은 불안감을 상징한 것이다. 그리고 달은 뒷면을 숨기고 앞면만 보여줌으로써 이중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달은 밤, 어둠, 음, 무의식을 의미하며, 여성적 감정의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달이 밝으면 늑대에게 발각될 것이고, 어두우면 길을 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근심하고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늑대와 개의 두 마리 동물은 미약한 자극이나 별것 아닌 사건을 의미한다. 개는 인간에게 길들여진 모습이나 의식을, 늑대는 감춰진 내면과 보이지 않는 적을 상징한다. 그래서 개는 의식을, 늑대는 본능이나 무의식을 상징한다.
달 옆의 두 개의 탑은 남성과 여성의 공존, 이중성, 대칭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연못에서 나온 가재가 가고자 하는 길은 꼬불꼬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길은 아무리 가도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태를 상징한다. 연못에서 나온 가재는 약한 자신을 숨기기 위해 강한 척 하는 내면의 모습이다. 가재는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럽다. 탑의 길을 따라 가야하는 먼 여정의 두려움과 불안을 나타내고 있다.
연못은 감정을 의미하는데, 물결이 일렁이고 있는 모습은 감정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의 동요, 무의식의 동요를 일으키는 연못의 물결은 가재가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도록 부추기고 있다. 물은 감정과 무의식을 상징한다.
숫자 18은 1+8=9의 의미로 완성, 승화, 이상, 휴머니즘, 끝을 상징한다. 타로카드 9는 은둔자인데 달의 얼굴은 은둔자를 닮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카드의 정방향은 생각지도 않던 사람이 적이 되거나, 상황변화로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소문들이 상처를 주거나, 나쁜 결과, 불안, 현실도피를 의미하며, 기만, 불안정한 상태를 의미한다.
역방향의 의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나, 작은 사건, 불안한 생활, 회사의 감원위기, 집중력 약화, 과거에서 벗어남, 희망, 직감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시는 발견이다. 하늘에서 별을 발견하듯, 일상의 평범 속에서 특별한 진리나 원칙, 새로운 이미지의 결합, 특별한 깨달음, 사물의 재해석과 같은 발견이 필요하다. 남들이 감히 생각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고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시는 식상하지 않을 것이다. 시의 가치는 새로움에 있다. 그 새로움은 지금까지 아무도 쓰지 않은 방법이며, 인간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어야 한다.
일상적인 사물이나 현상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상징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고, 새로운 상징성의 창조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많은 상징적 요소로 표현될 수 있다. 볼을 간질이는 손, 불을 키우는 부채질, 귓불을 할퀴는 손톱, 돛단배를 미는 덩치 큰 사내의 팔뚝 등과 같은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표현들은 바람에 대한 상징성의 다양한 해석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바람에 대한 유사성만을 바라보게 된다면 다양성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표현의 깊이도 덜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발견은 바람 속에 잠재하여 있는 다양한 상징성을 볼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상징성에는 죽은 상징성과 살아 있는 상징성,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상징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죽은 상징성은 오랜 동안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누구나 다 알게 되고, 통속적으로 사용될 때 그 사물의 상징성은 죽은 상징인 것이다. 빨간 신호등은 정지를 의미한다.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누구나 다 정지하게 되고, 가던 길을 멈추게 된다. 이 빨간 신호등의 상징성은 이미 다 아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움이 없다. 새로움이 없는 상징성은 죽은 것이다. 이미 널리 통용되어 기호처럼 굳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생명성이 없다.
둘째로 살아 있는 상징성은 지금 현재 사용되고, 어느 정도 상징성이 살아있어서 의미를 확장해주고, 사고의 전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상징성을 의미한다. “나는 거울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라는 문장을 썼다면 거울은 자아성찰이나 반성의 상징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징성은 두루 쓰이고 있지만 이미 굳어진 것이라고까지는 볼 수 없다. 지금 사용이 가능하고, 시에서 사용이 되고 있다. 하나 더 예를 든다면 “붉은 양수가 터진 바다에서 태양이 태어나고 있었다.” 라고 표현했다면 붉게 물든 바다는 아이를 낳기 위한 양수를 상징하며, 태양은 귀하게 태어나는 아이를 상징한다. 이러한 상징은 그 동안 다른 시인들이 사용했던 이미지이며,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 상징성인 것이다. 사물의 이러한 상징성을 살아있는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새롭게 태어나는 상징성은 지금까지 통용되지 않았던 상징성을 새롭게 탄생시켰을 때 이를 태어나는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가치는 창조의 능력에 있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상징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창조했을 때 그 시는 참신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시인은 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는 자이다. 시대를 앞서고, 평범한 사고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비록 언어의 한계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언어의 한계성을 뛰어넘어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시인의 몫이다.
이렇게 새로 태어나는 상징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남들이 다루지 않은 신선한 소재를 찾아야 한다. 돼지고기로 요리한 음식은 아무리 새롭게 해도 대부분 다양한 종류의 요리로 먹어본 음식이기 때문에 새로움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베리아 눈밭에서 자란 순록을 요리로 선택한다면 재료 그 자체로 새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재료는 과거적인 것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 현대의 시인은 오늘날을 사는 사람으로서 현실을 대변하고 현실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샘은 어디가나 있는 흔한 존재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샘이 사라지고 수도문화로 바뀌었다. 이러한 삶의 변화 속에서 샘을 끌어와 시로 쓴다면 그 속에는 새로움이 있을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시인의 눈이 필요하다. 또한 새로움은 새로운 지식에서 생성된다. 그래서 시인들은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과거적인 철학과 삶의 원칙들에 매이지 말고 보다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주역은 B.C.3000년경 복희씨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리고 2천년이 넘게 지나 오늘날에 이르다보니 경의 문구들이 오늘날과 맞지 않고 비유 또한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주역을 삼사십년 했다는 분들의 대부분은 이러한 경구를 달달 외우다시피해왔다. 그래서 과거적으로 해석하고 과거적으로만 바라보니 오늘날에는 주역이 맞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기도 한다. 괘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새롭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지수사는 땅 속에 물이 고인 상태를 말하는데, 군중이 모인 형상으로 과거에는 군사들이 전쟁을 위해 모이거나, 농번기에 농사일을 위해 모이는 경우 외에는 평민들이 모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군중들이 모여야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지수사괘가 나오면 전쟁으로 해석해 왔지만 이제는 전쟁으로 해석해서는 맞지 않는다. 이처럼 아무리 수천 년을 경서로 간직해 왔지만 오늘날의 상황과 맞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를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과거를 토대로하여 시를 쓰더라도 오늘날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과학의 시대가 되었다. 과거의 사람들이 꿈꾸던 낙원의 삶이 오늘날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삶속에 살면서 언제까지나 과거의 농경적인 삶을 그리며,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함으로 시를 쓸것인지 답답하다. 시인은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 과거의 훌륭한 시인들이 시대의 몽매함을 깨우고 미래를 내다보며 시를 썼듯이 오늘날의 시인들도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 인간성 상실의 절망과 무가치해지는 허무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예술적 시각을 통해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무한 상상의 세계를 탐험하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창조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터진 신발 밑창에서 땅과 연결된 문을 발견했다
발을 움직이자 나무뿌리 틈으로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발가락에 힘을 주고 지냈으니 눌린 것들의 소란은 도무지 위로 오르지
못했던 거다
 
나무 밑동이 전해주는 야사(野史)나, 자식들 몰래 내뱉는 어머니의
한숨, 대개 이런 소리들은 바닥으로 깔리는데
 
누워야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
 
퇴적층의 화석처럼 생생하게 굳어버린,
이따금, 죽음을 맞는 돼지의 비명처럼 높이 솟구치는,
발자국을 잃고 주저앉은 소리들
 
소나무는 자신이 들은 소리를 잎으로 콕콕 찍어 땅 속에 저장하고
땅에 발자국 한 번 남기지 못한 채 지워진 태아는 소리의 젖을 먹고
나무가 된다는 걸, 당신은 알까
 
낡은 라디오 잡음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는 뿌리 곁에
밑창 터진 신발을 내려놓았다l
서서히 땅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오래된 소리들을 다 비워낸 문은 새로운 이야기로 층층이 굳어지고
나무들은 땅속에 입을 둔 채 소리들의 발자국으로 배를 채울 것이다
  「땅의 문」 전문/최은묵 시인
 
위의 시는 최은묵 시인의 「땅의 문」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최은묵 시인은 찢어진 신발 밑창에서 땅의 문을 발견했다. 이는 지금까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상징성을 발견한 것이다. 찢어진 신발에 대한 시는 여러 편 발견할 수 있으나, 그 찢어진 신발의 밑창을 통해 땅의 문을 발견하고 땅의 문을 통해 들리는 영혼들의 소리를 표현한 시인은 없었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을 접할 때 뒤통수를 맞은 듯 전율하게 된다.
 
하늘을 오린 가위들이 황사로 날아왔다.
찢어진 헝겊조각처럼 펄럭이는 내 봄날의 모래바람
 
가위질할 수 없는 밤과 아침 사이로 빠져든 도시는 사막에 잠기고
낙타로 깨어난 차들은 느릿느릿 사구를 넘었다.
 
죽은 태양을 파묻은 땅에선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비릿한 악취를 풍겼지.
스펀지 같은 폐에 꽂힌 바늘들은 찢긴 상처를 꿰매지 못해
수풀로 짠 바람을 밀어 넣어도 숨을 쉴 수가 없었어.
 
찢어버리고 싶은 하루의 졸린 책장을 오리면
태양은 다시 떠오를까. 꽃과 아이들, 이슬방울 영롱한 아침과
가위를 부서뜨릴 바위덩어리. 가위! 바위! 보!
 
간밤에 내 몸을 짓눌렀던 검은 가위는 어디부터 나를 오려내고 싶었을까.
담배연기 찌든 폐, 이미지를 상실한 뇌
황사로 뿌연 내 가슴 한 귀퉁이도 오려내고 싶었겠지만,
난 공포감으로 상영 중인 가위 꿈의 필름을 소리 내어 잘라냈어.
 
비단 폭처럼 찢어진 어둠 속에서 보았지
잠든 여인의 눈부신 속살,
등 돌린 창가에서 그믐달이 새벽을 꿈꾸고 있는 것을.
아침이 동녘부터 야금야금 오려져 능선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어.
 
흐린 유리창을 오리면 무지개가 뜨던
오늘밤 머리맡엔 어머니가 쓰시던 가위 하나 놓고 자야겠다.
「가위로 오린 풍경」전문/김기덕 시인
 
위의 시 「가위로 오린 풍경」은 가위에 대한 큐비즘적 접근이 이루어진 시이다. 가위는 색종이를 오리고 헝겊을 오리는 가위뿐만이 아니라 꿈에 눌리는 가위와 가위 바위 보의 가위, 시간의 가위, 하늘에 뜬 그믐달과 같은 이미지의 가위, 기억을 잘라올 수 있는 상상의 가위 등의 다양한 가위를 시 한편에 담았다. 가위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접근은 가위에 대한 새로운 상징성의 발견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시의 새로움은 사물에 대한 상징성의 새로운 발견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다양한 접근, 다촛점의 바라봄이 없이는 접근하기가 불가능하다. 요즘 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는 시가 말장난에 그쳐서가 아니라 새로운 상징성의 창조와 다양한 상징성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사물에 대한 새로운 상징성과 다양한 상징적 접근에 대한 이해와 그 사용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정체된 사고를 새로운 상상적 사고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사물에 대한 한방향의 바라보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을 만들 수 있는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을 통해 사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봄이 필요하다.
[출처] 타로카드 18번 달|작성자 김기덕
 
19. 태양 (1)
 
 
타로 카드 19번째는 태양이다. 태양은 하늘에 강렬한 태양이 떠있고, 백말을 탄 어린 아이가 붉은 깃발을 들고 있는 그림이다. 태양은 24개의 햇살이 그려진 황금색으로 활력의 근원이며, 행복을 의미한다. 또한 금전운이 좋으며, 부의 상징이다. 태양이 하늘에 떠서 환하게 빛나고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존재를 상징하며, 어디에서든 중심인물이 됨을 의미한다. 24개의 햇살은 24절기를 의미하기도 하고 24시간을 의미하는데, 만족할만한 결과, 완벽한 승리를 상징한다. 하지만 태양은 하늘에 홀로 떠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외로움이 있게 됨을 상징하기도 한다. 정상에 선자는 고독하고 외로운 결정을 하게 된다. 그 누구와도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위치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백말을 탄 어린아이는 원하는 결과물을 말하며, 능력 이상의 성과를 상징하기도 한다. 어린아이는 풍요와 성장할 것을 의미하지만, 어디든지 떠나야할 역마살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이가 들고 있는 날카로운 창은 방심하면 다칠 수 있는 위험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함을 상징한다.
창에 달린 붉은 휘장은 열정, 자신감을 상징하며 승승장구할 것을 의미한다. 위로부터 휘장이 물결을 이루듯 내려온 것은 윗사람으로부터 힘을 얻고 도움을 받게 됨을 상징한다. 또한 아이가 타고 있는 백말은 움직이는 돈이나 도움, 명예, 성취를 의미한다. 백마는 아이를 등에 태우고 아이가 원하는 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이것은 일을 이루기 위한 큰 도움을 의미하며, 자산과 같은 것을 상징한다.
아이의 뒤에 세워진 벽돌담은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만약에 이 담이 검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장벽이나 위험을 상징할 것이다. 이 담은 아이를 위해 쳐진 보호벽이며, 안전과 더불어 무모한 행동을 자제시키는 긍정적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다.
담 뒤에 있는 해바라기는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해바라기가 해를 쳐다보지 않고 해에 대해서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자만으로 기고만장하게 되면 주위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담 너머에 해바라기가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나 기타 세력을 등에 업지 말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태양에 대한 정방향의 해석은 행복을 누릴 것을 의미하며, 목적한 바를 성취하게 됨을 상징한다. 만족한 결과를 의미하며, 활약기를 상징하고, 진보와 발전, 강력한 체력, 그리고 큰 기쁨을 상징한다.
반대로 역방향의 카드는 일등은 아니지만 대학에 들어 갈만한 성적을 얻는다든지, 승진은 안 되지만 원만한 직장생활, 아이는 없어도 행복한 부부생활, 뛰어나진 않아도 노력하는 부부 등과 같은 정도의 큰 결과를 얻지는 못해도 소규모의 결과는 얻을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불행이나 외로움, 계획의 취소 등과 같은 부정적 결과를 얻게 됨을 상징한다.
 
시에서 태양과 같은 존재는 독자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는 반짝이는 문장일 것이다. 시 속에 단 한 줄이라도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문장이 있다면 그 시는 독자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핵심적인 주제의식이고, 말하고자하는 철학성이나 참신한 이미지의 공감적 표현일 것이다. 이러한 표현을 위해선 사물을 통한 통찰이 필요하다.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깨닫고, 간직하고 싶은 금언과 같은 생명력이 충만한 문장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장은 삶에 대한 철학이 담기던지, 아니면 예술적 차원의 표현이든지, 아니면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는 어머니의 채취 같은 것이어야 한다.
시의 문장 하나하나를 다 이러한 문장으로 갈고 다듬으면 더욱 좋겠지만, 문장 모두를 다 그렇게 표현하기는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물에 대한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이라 해도 금석의 문장으로 만드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다. 시에서 언어의 조탁은 고대로부터 추구되어온 필수 요소이며, 시의 표현에 핵심적 사항이었다.
하나의 문장이 독자의 감성을 건드리고, 눈물짓게 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그 시는 살아있는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감성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해도 그 안에 더욱 심오한 철학성이나 예술성이 담겨 있다면 그 시는 어쩌면 더 큰 의미를 갖는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미성 없이 문장을 만들거나, 독자의 주관적 시각에서 빗어낸 자기만의 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빛나는 문장을 만들라. 사금처럼 반짝이는 문장을 만들어 보는 이에게 인생의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그 문장, 그 시는 태양처럼 세상을 두루 비출 수 있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부싯돌 속에서 태어난 씨앗들은 별처럼 반짝거렸지.

마른 쑥잎에서 실연기로 성장해 바람결에 눈을 뜬 불씨들
석유나 나무나 양초 위에서 붉은 혓바닥을 놀렸지.

태풍처럼 커질 풍문을 기다리며​
순식간에 집을 삼키고도 남을 불새들은 몸을 웅크리고
담배와 폭죽과 수류탄 속에 잠들어 있었어.
 
성냥골 같은 뇌관을 건드리면 언제 터질지 모를 불장난으로
단 한 번 불꽃이 되고 싶은 봉오리들이
재가 될 운명의 껍질 속에 몸을 숨겨왔지.

태양을 먹고 살아온 잎들은 불을 토하려 물을 뽑아 올리는데
단 한마디 기도로 피어나기 위해 침묵해온 향불
흐릴수록 세상에 진동하는 번개이기 위해
태풍의 고요와 심해의 어둠이 감싸온 심장이 꿈틀거렸지.

가시덤불에서 타오르던 야훼의 불꽃이 몸속에서 타오르지만 않았다면,
불이 빚어서 혼이 된 흙이
도자기처럼 간직하고 싶은 불의 추억

감출 수 없는 뜨거움 때문에 성화는 분수처럼 타올랐어.

악을 용서하며 꿈을 재생하는 연금술사의 손이
풀무 불로 지나는 계절,
껍질이 깨진 은행에서 천년의 줄기와 가지들이 폭발하고​
아기의 입술에선 태초의 말씀이 울음을 터트리는데

재가 되기 전 마지막 바람의 입술을 기다리는 ​숯
「불의 기억」 전문/김기덕 시인
 
위의 시는 필자의 졸시 「불의 기억」의 전문이다. 위의 시에서 마음에 와 닿을 수 있는 문장은 많지 않다. 독자에 따라서는 한 문장도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단락에서 “재가 되기 전 마지막 바람의 입술을 기다리는 숯”에서 우리 인생의 내면에 깔려있는 마지막 꿈꾸고 있는 절실한 사랑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고자 했다. 서정주 시인하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나 보다.”가 생각난다. 김소월 하면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보내드리오리다.”가 생각나고, 김수영 하면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난다.”와 같은 구절이 생각난다. 시인은 이러한 명구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태양 같은 구절, 태양 같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출처] 19. 태양|작성자 김기덕
 
20. 심판 [ 글 올린 분 한글파일로 올려서 중국파일로는 열수없음]
 
21. 세계
 
21. 세계(THE WORLD

타로카드 21번은 월계수 화환 속에서 누드의 여인이 지휘봉을 들고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이다. 월계수의 화환은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의미하며, 또한 벗어나야할 틀을 의미하기도 한다. 월계수의 관은 승리자에게만 주어진 왕관과 같은 것이다. 이 월계관 안의 여인은 승리에 도취되어 있으며, 원을 이루고 있는 자신의 세계에서 성공한 것이다. 손에 들고 있는 지휘봉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나 주인공이 됨을 의미한다. 이 원 안의 세계는 자신의 지휘 안에 있는 세계인 것이다.
아름다운 육체에 보라색 천이 둘러져 있는 것은 아름답고 존귀한 존재임을 상징한다. 여인의 머리가 금발인 것도 황금과 같이 귀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월계수 관 안의 세계는 좁아서 알껍질처럼 깨고 새롭게 나와야 하는 세계인 것이다.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과감히 새로운 세계를 향해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자주색 천으로 묶여진 뫼비우스의 띠는 무한대와 영원함을 상징한다. 위와 아래에 묶여진 것은 하늘과 땅의 영원함을 상징하며, 처음과 끝, 그리고 시작과 마침을 의미한다.
원 밖의 네 생물은 사람, 독수리, 황소, 사자인데, 각각 구름 속에 들어 있다. 타로카드 10번 운명의 수레바퀴에서는 네 생물이 구름 위에서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책을 본다는 것은 공부하고 노력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학업이 풍부함을 의미하며, 독수리는 추진력, 통찰력을 상징한다. 황소는 재물이나 신용, 안정성을 의미하며 사자는 카리스마나 리더십을 의미한다. 이 네 생물이 원 안에 있지 않고 원 밖에 있는 것은 또 다른 목표, 새로운 세계를 향한 노력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구름 속에 있다는 것은 아직 확실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타로 21번 세계카드의 정방향은 애착, 완성, 완벽함, 궁극적인 변화, 모든 노력의 결과가 나온다. 성공, 종합, 통합, 실현, 능력, 수완, 맡았던 일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또한 다른 이들의 존경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역방향은 불완전, 시작한 일을 완성시킬 수가 없다. 비전 부족, 실망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타로는 상징적 사물들로 짜진 그림이다. 그 상징적 사물들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많은 상징적 의미들을 나타내주고 있다. 시도 역시 사물어로 구성된 언어적 회화에 가깝다고 본다면 타로와 같이 어떤 사물들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시의 상징성이 깊으면 깊을수록 시의 예술적 차원은 달라진다.
 
천부경은 천제 환국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다 5대 환웅 때에 이르러 신지 현덕에게 명하여 녹도문자로 기록하게 한 81수의 시이다.(<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최치원이 천부경이 세겨진 옛날비석을 발견하여 신지의 전문을 첩으로 기록하였다. 고구려 멸망 후 발해의 대야발이 천부경의 내용을 담은 단기고사를 편찬하였고, 광성문 황제는 태학을 세워 천문경, 환단고사를 강의하였다. 하지만 조선의 숭유정책으로 천부사상이 소멸하게 되었다가 숙종 때 이맥이 규원사화를 통해 천부경을 부활시켰고, 명종 때는 남사고가 격암유록을 썼다. 계연수는 1911년 <삼성기> <단군세기> <본부여기> <태백일사>를 합해 환단고기를 발간하였다.
하늘의 인장(印章)을 말하는 천부(天苻)는 우주존재계의 심벌(상징)을 의미하며, 카발라의 생명나무를 말한다. 카발라는 서양 정신세계의 배후에 있는 모태이다. 모든 철학과 종교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신비철학체계이며, 오컬트, 마법사, 연금술사들에 의해 연구 발전되어온 형이상학체계이다.
천부경은 글자에는 어려움이 없으나 내용이 심오하여 해석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상징성을 알고 나면 의외로 쉽다고 할 수 있다. 천부경은 압축적으로 우주를 해설한 지상 최고(最古), 최고(最高)의 경전으로 명확성과 논리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부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간직한 이유는 지혜의 보존에 있다. 언어는 시대가 지나면 변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상징은 변하지 않고 오래도록 의미를 간직할 수 있다. 둘째는 천부경을 알 수 없는 무자격자를 배제하기 위함에 있다. 셋째로 진리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천부경의 가치는 카발라를 거론했다는데 있다. 카발라(Kabblah)는 입에서 귀로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 카발라는 스승에서 제자에게로 직접 전수되었던 비밀스런 신비의 진리였다. 그래서 카발라라는 이름이 붙여졌는지 모른다. 카발라의 종류는 두 가지가 있다. 씌어지지 않은 카발라와 씌어진 카발라로 나눌 수 있는데, 씌어지지 않은 카발라는 내용의 심오함으로 무자격자를 배제하기 위해 직접 입으로 전수된 카발라를 말한다. 씌어진 카발라는 서기 200년 이후 세펠 에트지라가 쓴 <창조의 서>와 서기 1,200년경 모세 드 레온이 쓴 <조하르> 같은 책을 말한다.
천부경의 의미는 씌어진 카발라라는 것이다. 천부경은 환인시대에 구전되다가 환웅시대, B. C 3898년 문자로 정착하였다. 세계 최초의 씌어진 카발라로 서양보다 4000년이 앞선다.
 
一始無始一
일시무시일은 하나가 시작되었지만 시작된 하나가 없다는 뜻이다.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과 연관하여 끝없이 순환하는 우주의 섭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체적 해석으로 보면 불완전하다. 析三極 된 객체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一始는 하나가 시작된 생명나무의 케텔을 의미한다. 無始一은 그러나 시작된 하나는 시작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析三極은 시작되었지만 시작되지 않은 하나가 삼극으로 나뉘었다는 말이다. 1이 케텔이면 시작되지 않은 1은 케텔 중의 케텔 ‘호아’, 대일(大一)을 의미한다. 케텔은 무한자(숫자값 0)로부터 나왔다. 케텔이 케텔로 완성되는 시기는 호크마가 나올 때이다. 그릇이 넘치듯 케텔이 완전히 형성된 그 이후에 호크마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무한에서 케텔이 나오는데,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닌 상태는 케텔 이전의 무한자와 연결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는 생명나무 형성과정과 동일한 미시적 발출과정을 의미한다. 즉 케텔 이전의 케텔 상태를 말한다. 케텔은 옆얼굴로 묘사되는데 이는 이중성을 의미한다. 1번 세피라는 케텔의 안 보이는 얼굴을 말하며, 10번 세피라는 보이는 얼굴을 의미한다. 호아(Hoa)는 우리나라 말로 대일(大一)을 뜻하는 것으로 비현현계, 무한계로 불교의 공(空), 도교의 도(道), 유교의 무극, 카발라의 아인소프를 말한다. 아인소프는 창조가 없는 무의 상태, 공상태를 말하며, 물질계(아시아계) 및 예트지라, 브리어, 아트질루트 이전의 세계를 의미한다.
 
析三極 無盡本
석삼극 무진본은 삼극으로 나뉘었지만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 삼극은 대일(大一)에서 케텔, 호크마, 비나가 발출하여 생명나무의 기반을 이룬 세 개의 세피로트를 말한다. 도덕경에 보면 ‘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이라는 글이 있다. “도가 하나를 낳고, 하나가 둘을 낳고, 둘이 셋을 낳고 셋이 만물을 낳는다.”는 언급에서 보듯이 카발라에서 보면 무한에서 케텔이 나오고, 케텔에서 호크마가 나오며, 호크마에서 비나가 나와 삼자로부터 만물이 생성, ‘셋이 만물을 낳았다.’ 라고 한다. 이로부터 생성된 것들은 헤세드, 게부라, 티페레트, 네자흐, 호드, 예소드, 말쿠트 등인데 말쿠트는 물질세계를 의미한다.
이렇게 생성된 카발라는 가로구조와 세로구조로 구분할 수 있다. 가로구조는 제1 트리아드인 케텔, 호크마, 비나로 이루어지고, 제2 트리아드는 헤세드, 게부라, 티페레트로 이루어졌다. 또한 제3 트리아드는 네자흐, 호드, 예소드이다. 세로구조는 좌측기둥 비나, 게부라, 호드이며, 우측기둥은 호크마, 헤세드, 네자흐이다. 중간기둥은 케텔, 티페레트, 예소드, 말쿠트로 이루어져 생명나무가 삼극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天一一地一二人一三
천일일지일이인일삼은 天 하나가 하나요, 地 하나가 둘이요, 人 하나가 셋이라는 말이다. 주역에서 天一, 地二, 人三에서의 의미는 첫째, 둘째, 셋째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뒤에 언급된 一積十鉅 無匱化三을 보면 ‘하나가 쌓여 십으로 커지고 무의 궤가 셋으로 하였다.’ 라고 표기하여 주역과 다름을 알 수 있다. 천부경은 십수로 우주구조를 설명한 경전이다. 천부경의 천, 지, 인은 카발라의 세로구조의 세로기둥들을 지칭한다. 그래서 천수는 2, 4, 7을 말하고, 지수는 3, 5, 8을 말하며, 인수는 1, 6, 9, 10을 말한다. 여기에서의 일은 대일(大一)을 의미하며, 대일은 석삼극된, 대등한 가치를 지니는 각각의 극을 암시한다. 이 세 극은 생명나무 우측기둥, 좌측기둥, 중앙기둥을 말하는데, 우측기둥은 남성을 의미하며, 천극을 지칭한다. 좌측기둥은 영성과 지극을, 중앙기둥은 양성원리와 인극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천극, 지극, 인극을 삼극으로 나타내고 있다. 역학은 이분법적인 접근을 하고 있어서 역리상 수체계는 천부경 적용에 오류를 가져온다.
 
一積十鉅 無匱化三
일적십거 무궤화삼은 하나가 쌓이고 십으로 커져서 무의 궤가 십으로 화하였다는 뜻이다. 케텔 1에서부터 말쿠트 십까지 숫자가 쌓여가지고 무괘(無의 궤짝)인 생명나무가 삼극으로 화하였다는 것이다. 無란 생명나무 최초의 세피라인 케텔을 낳은 존재인 아인소프(무극, 공, 도)를 의미한다. 이 무의 담긴 것을 무궤로 보고 세 개의 기둥으로 화했음을 주장한 것이다. 化三은 곧 析三極을 곧 말한다. 무궤는 無의 궤짝, 케텔이 아닌 大一, 호아를 의미한다. 一積十鉅 無匱化三에서 일적은 십거, 결과에 대한 원인이 된다. 무궤도 화삼이라는 결과에 대한 원인이 됨으로써 아주 짜임새 있는 문장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81수의 천부경은 고도로 집약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명나무를 탄생시킨 무한자는 세 개의 베일로 가려져 있는데, 아인(AIN: 무), 아인소프(AIN SVP: 무한), 아인 소프 아우르(AIN SVP AUR: 무한광)로 나뉘어져 세 개의 영광을 나타낸다. 첫 번째 베일인 아인(A, I, N)은 케텔, 호크마, 비나 세 숫자(1, 2, 3)를 잠재적으로 포함한다. 두 번째 베일인 아인 소프(A, I, N, S, V, P)는 케텔, 호크마, 비나, 헤세드, 게부라, 티페레트의 여섯 숫자(1, 2, 3, 4, 5, 6)를 포함한다. 세 번째 베일은 아인 소프 아우르(A, I, N, S, V, P, A, U, R)를 포함하는 아홉 숫자(1, 2, 3, 4, 5, 6, 7, 8, 9)를 잠재적으로 포함한다. 이 베일들은 현현된 것이 아니며, 세피로트가 나오기 이전의 원형적 상태를 말한다. 이를 카발라의 음의 18베일이라고 한다. 아인이 아인 소프로, 아인 소프에서 아인 소프 아우르로 형성된 無가 응고되어 케텔이 형성된다. 최종분열수 9에서 더 이상 확장되지 않고 다시 최초의 1로 현현된다. 케텔에서 말쿠트의 단계로 생명나무가 현현되는데, 음존재의 9단계는 케텔 형성 이전 음존재의 말쿠트에 해당된다. 생명나무는 케텔 중의 케텔의 말쿠트에서 고형화되어 무한자의 최초 고형화 단계이다. 여기에서의 무궤는 케텔 중의 케텔인 대일을 의미한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를 보면 이와 비슷한 내용이 보인다. “一積而陰位 十鉅而陽作 無匱而衷生焉”인데, “하나가 쌓여서 음을 이루고, 십으로 커져서 양을 만들고, 무궤에서 충이 생겼다.”는 뜻이다. 하나가 쌓여서 음을 이루었다는 말은 아인, 아인 소프, 아인 소프 아우르의 단계인 음존재를 의미한다. 십으로 커져서 양을 만들고는 이러한 음존재들이 케텔의 단계에서 말쿠트의 단계로 발전하여 양을 만들고, 무궤에서 충이 생겼다는 것은 음존재에서 케텔이 생겨남을 말한다.
 
天二三地二三人二三
천이삼지이삼인이삼은 천일일지일이인이삼과 비슷하지만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생명나무의 수평구분은 존재의 제계를 설명한다. 세 개의 세피로트를 하나로 묶은 것을 기능삼각형이라고 하기도 한다. 1트리아드는 케텔, 호크마, 비나이며, 2트리아드는 헤세드, 게부라, 티페레트이고, 3트리아드는 네자흐, 호드, 예소드를 말한다. 트리아드는 세 개의 세피로트가 삼위일체로 하나의 기능을 수행한다. 1트리아드와 2트리아드 사이에는 심연이 놓여 있는데, 이는 다른 존재차원을 말한다. 2트리아드와 3트리아드 사이에는 베일인 파로케트가 드리워져 있다. 천이삼지이삼인이삼 뒤의 삼은 기능삼각형인 트리아드를 이루는 천수 둘, 지수 둘, 인수 둘을 의미한다. 그래서 천수는 2와 4를, 지수는 3과 5를, 인수는 1과 6을 나타낸다.
 
大三合六生七八九
대삼합육생칠팔구는 대삼이 합하여진 여섯 수가 7, 8, 9를 낳았다는 뜻이다. 대삼은 1트리아드, 2트리아드를 의미하며, 1트리아드와 2트리아드가 합하여 3트리아드인 7, 8, 9를 낳았다는 말이다. 여기에서의 육은 십수 체계상의 여섯 번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상위의 두 기능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여섯 개의 세피로트 수를 의미한다. 천수 2와 4, 지수 3과 5, 인수 1과 6, 이 여섯 개의 수가 합하여져서 7, 8, 9로 이루어진 트리아드를 낳음을 뜻한다. 비유적으로 1트리아드는 오시리스, 재생의 뜻이 있는 망자의 군주를 의미하기도 하며, 2트리아드는 이시스로 모성, 마술, 생산의 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3트리아드는 호루스로 복수, 하늘, 수호의 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말쿠트를 호루스의 자식이라고 하기도 한다. 카발라의 1트리아드는 부성계이며, 2트리아드는 모성계를 나타낸다.
 
運三四成環五七
운삼사성환오칠은 삼과 사를 운용하여 오와 칠의 환을 이루었다는 말로 천부경 중 가장 해석이 어려운 부분이다. 천부경은 우주의 현상과 존재의 구조를 설해 놓은 경전이다. 굳이 81자로 이루어진 데는 우주론적 이유가 있다고 본다. 우주의 형상이고 우주의 구조인 카발라 생명나무는 10光 22의 길로 이루어져 있다. 이제까지는 생명나무의 십광인 세피로트를 주요 골격구조로 하여 수직구조와 수평구조로 설명했다. 하지만 22개의 카발라 길의 설명이 필요하다. 81자로 카발라의 생명나무길 22개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심벌을 이용하여 7자로 멋지게 표현해 놓았다. 그것이 운삼사환오칠인데, 삼과 사를 운용하여 환을 만들되 그 환은 5, 7의 환이어야 한다. 여기에서의 삼과 사는 삼각형과 사각형을 말하고 환은 원을 의미한다. 원방각도는 삼각형과 사각형과 원이 합체된 심벌을 의미한다.
카발라의 22길은 히브리어의 삼모자(三母字), 칠복자(七復字), 12단자(單字)에 함축된 의미인 3+7+12=22로 이루어졌다. 히브리어 22자를 살펴보면 3모자는 알프레, 쉬, 멕이다. 7복자는 베트, 카프, 기멜, 페, 레쉬, 탈레트, 타우이며, 12단자는 바우(와우), 차데, 테트, 요드, 라메인, 아인, 사메크, 포프, 레트, 자인, 눈, 헤 등이다.
운삼사성환오칠에서 삼사는 삼각형과 사각형을 말한다. 환오칠은 원이 다섯 개의 면과 일곱 개의 면으로 나뉘어짐을 의미한다. 7복자는 원방각도에서 만들어 낸 7개의 분할 면을 나타낸다. 운삼사성환오칠의 해석이 어려운 이유는 천부경이 ‘생명나무’의 심벌을 설명하는 것인데다가 그 심벌을 또 하나의 심벌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를 심벌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천부경이 갖는 고도의 축약성 때문이다. 애초 천부경의 작가는 글자수를 정했음이 분명하다. 81자 속에 우주의 원리를 담기 위해서는 일일이 설명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81자여야 하는가? 이를 밝히기 위해 사전작업으로 천부경 본문의 81개의 한자를 전부 하나의 점으로 생각하여 카발라의 기본적 우주론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중앙을 기준으로 하여 네 겹의 사각형과 8개의 축을 그릴 수가 있다. 사각형의 중심은 호아(대일)이며, 대일을 상징하는 점을 둘러싸고 있는 네 겹의 사각형은 안쪽에서부터 각기 존재의 4계인 아트질루트계, 브리어계, 예트지라계, 아시아계를 상징한다. 중심점을 기준으로 하여 8방으로 뻗어나간 8개의 축상에는 32개의 점이 있다. 즉 중심점+32의 구조로 배열되어 있다. 카발라에 의하면 신은 32개의 길을 따라 내려왔다고 한다. 즉 1+32는 우주의 기본 법칙을 상징하고 있다.
 
一妙衍萬往萬來 用變不動本
일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은 하나가 묘하게 넘쳐서 무수히 오가며, 쓰임은 변하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피라에서 다른 세피라로 움직임을 카발라에서는 ‘넘친다’로 표현한다. 다이온 포춘이 쓴 <신비의 카발라> 40쪽을 보면 “각 세피라는 물웅덩이와 같아서 그것이 꽉 찬 뒤 아래의 웅덩이로 흘러간다.” 라고 표현했다. 한 세피라에서 다른 세피라로 발출되어 나오기 위해서는 선행하는 세피라 안에서 10단계에 걸친 성숙 단계를 거친다. 카발라의 가르침은 존재의 4계(아트질루트계, 브리어계, 예트지라계, 아시아계)는 각각 10개의 세피로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하나하나의 세피로트는 다시 10개의 세피로트로 이루어져 있다.
 
本心本 太陽昻明
본심본 태양앙명은 본심은 본래 태양을 우러러 밝힌다는 뜻이다. 천부(天符)는 생명나무를 말하는데, 생명나무는 10세피로트와 22라인으로 이루어져 신이 내려온 32길을 보여준다. 운삼사성환오칠은 22법칙을 설명한 것으로 생명나무의 기본구조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그 다음부턴 부연설명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묘연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태양 일중천지일은 생명나무 전체의 본질을 말하고 있다. 이런 말이 왜 천부경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천부경이 카발라를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이해하기 힘들다. 본심이란 인간의 본품성, 자성, 고급자아를 의미한다. 생명나무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에너지, 의식, 형상을 대표하는 기둥 중 우측기둥은 에너지를, 좌측기둥은 형상을, 중간기둥은 의식을 나타낸다. 우측기둥은 자비의 기둥으로 포지티브, 남성의 원리를 내포하며, 적극성과 건설, 유동적인 에너지이다. 좌측기둥은 엄정의 기둥으로 네거티브, 여성의 원리, 소극성을 나타낸다. 파괴적이며 구체적 형상을 나타낸다. 중간기둥은 의식을 나타내며, 의식의 차원들, 의식의 차원들이 작용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중간기둥 중에는 말쿠트, 예소드, 테페레트, 케텔이 있는데, 말쿠트는 감각의식을, 예소드는 아스트랄 심령인 달의 사이킥 의식을 의미한다. 티페레트는 일루미네이션을 얻는 의식으로 저급자아와 고급자아의 합일을 이루어 태양이 상징하는 진정한 자아를 형성한다. 케텔은 신성을 의미한다. 이렇듯 중간기둥은 인간의식의 성장, 깨달음의 단계를 나타낸다. 신성에 이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을 나타내는 것이며, 화살의 길, 불의 길이라고도 한다.
 
人中天地一
인중천지일은 ‘사람 가운데 천과 지가 하나다.’ 라는 뜻이다. 천부경은 생명나무를 말한 것으로 생명나무의 범주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생명나무의 중간기둥인 인극 가운데 우측기둥인 천극과 좌측기둥인 지극이 하나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나무 중간기둥이 남성원리인 양과 여성원리인 음이 합일된 양성일체의 합일임을 언급한 것이다. 균형의 기둥이라 한 중간기둥은 의식을 의미하며, 의식의 성장은 음과 양의 균형, 즉 중도의 길에서만 가능하다. 요가에서의 깨달음을 보면 음의 채널인 이다(Ida)와 양의 채널인 핑갈라(Pingala)가 균형 잡혔을 때 중간의 수슘나가 활동하고, 척추 끝의 쿤달리니가 중간기맥인 수슘나의 관을 따라 머리로 상승하여 사하스라라 차크라를 일깨운 상태라고 한다.
 
一終無終一
일종무종일은 하나가 끝났으나 그 하나는 끝난 것이 아니다 라는 뜻이다. 하나의 시작은 케텔이며 하나의 끝은 말쿠트이다. 하나의 끝남이 말쿠트이지만, 말쿠트는 다시 케텔로 시작된다. 말쿠트 숫자값은 10인데, 10은 완전수로 1로의 회귀를 상징한다. 10=1+0으로 1을 나타낸다. 신의 속성은 질서와 균형이다. 신의 부재는 무질서와 불균형인데, 카발라에서 신의 부재를 네거티브 생명나무, 암흑의 나무,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생명나무의 말쿠트는 암흑의 나무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말쿠트의 우리 인간은 암흑나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내적인 무질서와 불균형을 극복한다면 생명나무의 길을 따라 의식을 각성시켜 신과 합일될 수 있다. 카발라에서 인간존재의 이유를 악인 무질서와 불균형을 선인 질서와 균형으로 변형시키는데 있다고 한다. 이렇듯 카발라에서는 어둠을 빛으로 변화시키는 인간의 사명을 티쿤(Tikkun)이라고 한다.
 
시를 쓰는 것은 티쿤적 삶을 사는 것이다. 지식과 언어, 감정으로만 쓰는 작업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을 밝혀가는 신적인 사명을 이루어가는 일이다. 현란한 언어의 테크닉과 정리되지 않은 정신적 무질서 속에서 시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시는 언어를 다루는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숭고함에서 나온다. 언어의 숭고함은 세상만물이 언어로 지어졌고, 언어 속에서 진리로 살다가 마지막 언어로 마칠 것이기 때문이다. 숭고한 언어를 사용하여 시를 쓰기 위해서는 언어에 살아있는 혼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을 멘탈체, 아스트랄체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한다. 시인은 하나의 언어 속에 멘탈계와 아스트랄계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를 통해 케텔 이전의 케텔을 보여주면서 생명나무의 길을 가야 한다.
한민족의 조상인 환인들 시대의 천부경이 유대교의 하나님, 엘로힘의 제사장으로서의 반차를 쫓은 멜기세덱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전해주었던 카발라를 설명하고 있었다는 점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 편의 시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 왔던 모든 고정관념들이 깨어지는 통렬한 희열을 느낀다.
[출처] 21. 세계|작성자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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