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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 / 천병희 옮김
2018년 03월 10일 14시 34분  조회:4370  추천:0  작성자: 강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1) / 천병희 옮김
 
 
옮긴이 서문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은 공개용으로 저술된 것과 강의용으로 저술된 것으로 양분된다. 전자는 시기적으로 더 먼저, 그리고 광범위한 독자층을 위하여 대화 형식으로 저술된 것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그러나 키케로가 유창한 문체를 찬양한 바 있는 이 책들은 단편만 전해지고 있을 뿐 거의 다 망실되고 없다. 후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세운 학교 뤼케이온에서 제자들에게 강의하기 위하여 저술한 것으로서, 기원전 1세기 로마에서 로도스의 안드로니코스가 이를 편찬 간행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은 바로 후자에 속하는 저술들이다.
 그런데 이들 저술들은 지리멸렬하고 의미가 통하지 않으며 전후가 맞지 않는 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학>이다. <시학>의 텍스트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를 갖추기까지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교정되고 보완되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게다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시학>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이 망실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증거로 <시학>1449b 21을 보면 희극에 관해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하자는 말이 나오는데 그 후로는 희극에 관한 아무런 언급도 없으며, <정치학>1341b 38을 보면 '카타르시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관해서는 <시학>을 참조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시학>에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런대로 <시학>은 인류 최초의 과학자에 의하여 저술된 문예 비평에 관한 최초의 저술이란 점에서 후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시학>은 물론 시(詩)의 본질과 작시(作詩)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정립하려 했다는 의미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시도임에 틀림없다 하겠으나 아무런 전제나 배경 없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도 교육 및 축제와 관련해서 그리스 사람들의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시가 자주 논의의 대상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 점에 관해서는 굳이 다른 자료에 의하지 않더라도 <시학> 자체가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과 희극은 어디서 유래했는가(1448a 30). 플롯과 성격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우위에 놓아야 하는가(1450a 15~38). 단일한 결말을 가진 플롯과 이중의 결말을 가진 플롯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훌륭한가(1453a 13). 비극은 어떻게 결말짓는 게 좋은가(1453a 24) 하는 것 등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언급하고 있다. 문체와 문법에 관한 부분(제19~22)에서는 수사학(修辭學)에 관한 여러 저술과 소피스트들, 특기 프로타고라스의 언어에 대한 고찰(1456b 15)을 상당히 참고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는 제25장에서는 주로 호메로스의 작품에 대하여 제시되었던 쟁점들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이에 대한 답변을 전개하고 있다. 서사시와 비극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수한 형식의 예술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제26장에서는 자신의 견해와 상반되는 견해, 아마도 플라톤의 견해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밖에도 교육 문제 및 공연 문제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상이한 견해가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견해들은 직접 간접으로 <시학>의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기타 중요한 문제들을 취급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플라톤의 견해가 아닌가 생각된다.
 호메로스를 위시하여 시인들은 예로부터 자신들의 시에는 어떤 신적인 힘이 관여하고 있다고 즐겨 말해왔다. 헤시오도스는 자신의 시재(詩才)는 무사(Mousa) 여신이 부여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신통기>29~32행 참조). 아르킬로코스는 영감에 관하여 알고 있었다. 핀다로스도 습득한 숙련보다 타고난 재능이 더 우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올림피아 송시> 제2편 및 제9편 100행 참조). 한마디로 말해서 시는 어떤 도취 상태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였다. 플라톤도 시인과 철학자의 차이점은 전자는 자신의 행위에 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설명을 할 수가 없는 데 반하여, 후자는 자신의 행동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교육이 보급되고 문자의 해독력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독서 대상, 특히 호메로스의 교육적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시의 도덕적 가치를 부정한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예는 역시 플라톤이다. 그는 <국가>의 앞부분(379c~402a)에서 초보 교육을 위한 시인들, 특히 호메로스의 가치를 고찰한 다음 그의 작품 속에 내포되어 있는 도덕적 수준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미 이보다 앞서 <프로타고라스>에서 어른들은 시를 도덕적 문제에 관한 토론의 출발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그의 주된 공격은 <국가> 제10권에서 전개되는데,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이데아론에 입각하여 예술가들은 진실재(眞實在)인 이데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상(模像) 또는 영상(影像)을 모방하는 데 불과하므로 가장 위험한 존재들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그가 시를 공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시는 우리의 자제력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의 고삐를 풀어줌으로써 '우리가 마땅히 시들어지게 해야 할 것에다 물을 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605b~607b). 플라톤에게는 감정은 제거되어야 할 잡초과 같은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직접적인 답변은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우선 '천재' 또는 '영감(靈感)'의 문제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는 이 문제에 관하여 거의 또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필시 그와 같은 견해의 타당성 여부를 논하는 것은 시인이 아닌 자기로서는 가급적 회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든, 그의 귀납적 방법이 미칠 수 없는 영역에 속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든지, 또는 시가 비록 영감이나 천재에 의하여 만들어진다하더라도 표현의 수단인 언어라는 매체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측면에서 시와 작시술을 논하는 것이 철학자인 자기에게는 더 합당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학>을 쓴 목적은 당시의 비극 경연(競演)과 관련해서 작시술에 대한 실용적인 교시를 주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즉 드라마의 구성에 있어서 추구해야 할 점은 무엇이며 피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드라마가 추구하는 효과는 무엇이며 그와 같은 목적은 어떠한 수단에 의하여 달성될 수 있는가, 극작가가 무대상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평가들이 시인에 대하여 제기하는 비난은 어떤 것이며 이러한 비난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일종의 기술적인 교시를 주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인 측면은 후세에 와서, 시는 천재 또는 영감에 의하여 쓰여지는가 아니면 숙련 또는 작업에 의하여 쓰여지는가 하는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던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학>은 작시의 기술적인 측면을 극히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플라톤의 영감론(靈感論)을 은연중 반박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시인이 모방하는 것은 진실재인 이데아가 아니라 그 모상 또는 영상에 불과하다는 플라톤의 견해에 관하여 말하자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직접적인 답변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고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더 많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플라톤의 견해를 간접적으로 공박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시인의 모방은 아무런 통일성도 없는 사건의 복합을 사진사처럼 복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는 사건을 필연적인 인과 관계의 테두리 내에서 재현하는 데, 다시 말해서 하나의 보편적인 진리를 말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플라톤이 말하는 단순한 모방자가 아니라 일종의 '창작자'인 것이다.
 끝으로 시는 도덕적 가치가 없는 플라톤의 견해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계속해서 억압될 경우 언젠가는 위험하게 폭발할 수도 있는 감정을 안전하게, 관례적으로 그리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출케 하는 도덕적 기능, 즉 카타르시스의 기능을 드라마에 부여함으로써 간접적인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브레히트 이후의 서사극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지만, <오델로>나 <멕베드> 같은 위대한 환상극의 공연을 보게 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적 흥미에 끌려 작품 세계에 휘말리게 된다. 이러한 작품들의 주인공은 우리보다 어느 정도 더 위대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 자신과 대동소이한 인물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감정에 자신도 모르게 완전히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극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의 감정은 우리 자신의 감정이 된다. 극이 고조됨에 따라 우리의 감정도 고조된다. 그러다가 극이 끝나 흥분의 소용돌이가 가라앉게 되면 우리는 일종의 유쾌한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목적은 특정한 쾌감을 산출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그 이전에는 이러한 사실이 뚜렷하게 지적된 적이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문학에 심미적 가치를 부여한 최초의 문예 비평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도덕철학적 입장에서 말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쾌감 그 자체는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순조롭게 전개되는 활동에 자연적으로 수반되는 정신 상태로서 활동의 선악에 따라 그에 수반되는 쾌감의 선악도 결정된다. 그런데 비극이 제공하는 특정한 쾌감은 우리의 감정을 좋은 의미에서 구제해주는 선한 활동에 수반되는 쾌감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감정은 위험하게 폭발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비극에서 얻는 쾌감은 위험 부담을 남에게 전가하고 있는 경험의 쾌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는 우리 자신이나 이웃에 불행과 고통을 주지 않고는 배출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의 스릴을 비극이라는 안전판 위에서는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감정의 배출이 저녁마다 행해진다면 우리의 신경을 지치게 하여 오히려 역효과도 낼 수도 있을 것이나, 아테나이 인들은 1년에 한두 번씩 디오뉘소스 제전(祭典) 때에만 비극을 관람할 수 있었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들의 감정을 좋은 방향으로 억제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상으로 <시학>의 배경과 특징을 '모방'및 '카타르시스'에 대한 해설을 겸하여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시학>의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고 해설하는 것은 방대한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불필요한 일이므로 다음에는 현대 독자들에게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몇 가지 문제점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구성 요소를 논하면서 "비극의 제1원리, 즉 비극의 생명과 영혼은 플롯이고 성격은 제2위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비극을 관람하거나 읽을 때면 우리의 흥미는 등장 인물의 성격에 집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작품에서 발견하고 싶어하는 것은 플롯의 구성이 아니라 등장 인물들의 심리적 콤플렉스이며 우리는 때때로 무의식의 어두운 세계까지 투시하고 싶어한다. 플롯이 제일 중요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이해가 가지 않을 뿐 아니라 비지성적이라는 느낌마져 든다. 이 점에 있어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소 완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객관적인 사고방식과 확고한 이론을 생각해보라.
 비극의 목적은 관객에게 다른 예술이 제공할 수 없는 특정한 쾌감을 제공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비극이 성패도 이 목적과 관련해서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비극 작가는 이 목적을 어떻게 달성하는가? 그는 생활을 재현함으로써 관객에게 그들의 감정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는 스토리를 무대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생활을 재현한다. 물론 어느 스토리에나 사람들이 나오고 또 그들은 인간인 이상 일정한 도덕적, 지적 자질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극작가는 심리학에 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심리 묘사는 극작가에게 있어서는 스토리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 것에 비하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다. 성격 묘사, 음악, 시, 장면, 멋진 대사 - 이런 것들은 물론 그 나름대로 매력적이고 또 많은 다른 예술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 예술이다.
 아무리 훌륭한 색채가 있다 하더라도 밑그림이나 디자인 없이 그것만으로는 그림이 될 수 없듯이, 성격 묘사가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플롯 없이 그것만으로 드라마가 될 수 없다. 따라서 플롯은 비극에 필요불가결의 요소인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비극의 목적은 스토리를 무대 위에 올려놓은으로써 특정한 쾌감을 산출하는 데 있디. 지성적인 관객들은 플롯이 거의 없는 대화극에서도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나 비극의 진정한 효과는 면밀하게 구성된 스토리 없이는 도저히 산출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플롯이 제1위라는 것이다.
 비극의 주인공에 관한 그의 이론 역시 현대 독자들을 당황하게 할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비극의 주인공는 우리와 대동소이하지만 우리보다 어딘가 뛰어난 데가 있어야 하고, 덕과 정의에 있어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되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명망을 누리고 있는 인물이어야 하며, 그의 운명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어야만 하되 그 원인이 악덕이나 사악이 아니라 어떤 과오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비극에 친숙해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이론은 그가 수집한 방대한 자료에서 귀납적인 방법으로 추출해낸 것이다. 즉 그는 입수할 수 있는 모든 비극을 읽고 난 뒤 비극의 주인공에 적합한 인간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아테나이 연극 공연의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시 그리스 배우들은 관객의 눈에 잘 띄기 위하여 굽이 높은 반장화를 신고, 긴 의상을 입고, 확성기가 부착된 커다란 가면을 쓰고 노천 극장에서 수천명의 관객을 상대했는데, 이러한 조건 아래서는 리얼리즘은 불가능하다. 무대의 등장 인물을 일상생활의 수준으로 낮춘다는 것은 아테나이 무대 관례와는 양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극적 효과를 산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우리를 당황케 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주인공의 운명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어야만 한다고 주장해놓고는 범행하기 직전에 상대방이 친구 또는 친척임을 발견하고 범행을 그만두는 플롯이 가장 훌륭한 플롯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확실히 자기당착이며, 행복한 결말에 대한 감성적인 집착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서투른 극작가의 손에서는 행복한 결말이 진정한 비극적 효과를 망쳐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불행한 결말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며 꼭 감상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입센이 독일 연출자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인형의 집>의 결말을 행복한 결말로 바꾸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플롯을 구성하기게 따라서는 범행 직전에 상대방이 자기 친구 또는 친척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범행을 금만두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스릴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종일관 플롯의구성에 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극의 주인공의 운명이 행복에서 불행을 바뀌어야 한다는 견해는 어디까지나 그렇게 되어야만 비극의 효과를 보다 훌륭하게 산출할 수 있다는 일반론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시학>의 명백한 결점 하나는 내용상 '시학'이라기보다는 '드라마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만큼 거의 드라마에 관해서만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서사시조차 드라마와 비교하여 간단하게 논한 다음, 서사시는 비극보다 열등한 예술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서정시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그가 서정시를 음악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음악은 그가 별로 관심을 느끼지 못한 소수의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오늘날 누가 시론(詩論)을 쓴다면, 물론 자신의 주의력을 드라마에만 국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알고 있던 그리스 문학에서는 비극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당시의 비극은 코러스 속에 서정시를 포함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서사시보다 더 압축하여 더 효과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시대인들은 비극이 진지한 시의 완전한 형식이라는 그의 견해에 대부분 동조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점에 관해서는 너그럽게 보아 넘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학>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결점은 이라스토텔레스가 드라마의 역사적 발전에 관하여 언급한 최초의 저술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종교적 기원에 역점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스 비극의 최초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그것이 디오뉘소스 신의 예찬이라든가, 영웅 또는 반신(半神)들의 무더 위에서 행해지는 의식이라든가, 디오뉘소스 신에 대한 합창 찬미라든가, 그 밖에 다른 형태의 합창 서정시 같은 여러 가지 형태의 종교 의식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비극이 공연되던 대(大)디오뉘소스 제전만 하더라도 거국적인 종교 축제이며 이른바 비극의 기능이란 것도 서사시에 나오는 옛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하는 데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와서는 3대 비극 작가의 시대에 비하여 종교적 기능이 다소 약화되었다 하더라도 비극 시인이 언제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여 이야기했고 자신이 창작한 플롯으로 새로운 유형의 비극을 시도한 시인들은 거의 언제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을 미루어보면 비극이 여전히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종교적 기원에 역점을 두지 않은 것은 비극의 종교적 기능이 그의 시대에 와서는 많이 퇴색했거나, 또는 그 자신이 이 문제에 관하여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밖에도 문체에 대한 그의 논술이 피상적이고 불충분한 점이 많다든가, 플라톤의 시의 본질로 보고 있는 '영감'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않고 있는 등 우리의 요구에 미흡하게 느껴지는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관찰하고 분석하고 분류하고 일반화하는 귀납적 원리에 의햐여 문예 비평이 성취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선행자의 도움 없이 사실상 자력으로 성취했다. 그의 교리적인 사고방식의 제한된 시야로 말미암아 그의 이론은 때로는 온당하지 않거나 혼란을 야기할 때도 있지만 서양 문예 비평사에 그의 <시학>만큼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준 책은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2) / 천병희 옮김
 
 
1  
 
 
 우리의 주제는 시학(詩學)1)이므로 나는 먼저 시의 일반적 본질과 그 여러 종류와 각 종류의 기능에 관하여 말하고, 이어서 훌륭한 시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플롯의 구성과 시의 구성 요소의 수와 성질과 그 밖에 이 연구 분야에 속하는 다른 사항에 관하여 논하고자 한다. 그러면 자연적 순서에 따라 기본적인 사항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서사시와 비극, 희극과 디튀람보스2) 그리고 대부분의 피리 취주와 키타라 탄주3)는 전체적으로 볼 때 모두 모방의 양식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 가지 점에서 서로 차이가 있으니,그것들이 사용하는 모방의 수단이 그 종류에 있어 상이하든지, 그 대상이 상이하든지, 그 양식이 상이하여 동일하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색채와 형태를 사용하여 많은 사물을 모방 모사하고 - 어떤 이는 기술에 의하고, 어떤 이는 숙련에 의하여 - 다른 사람들은 음성을 사용하여 그렇게 하듯이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예술들도 모두 율동과 언어와 화성(和聲)을 사용하여 모방하는데 때로는 이것들을 단독으로 사용하고, 때로는 혼합하여 사용한다.
 말하자면 피리의 취주나 키타라의 연주나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것들, 예컨대 목적(牧笛)4)의 취주는 화성과 율동만을 사용하고, 무용술(舞踊術)은 화성 없이 율동만으로 모방한다.5) 그것은 무용가가 동작의 율동만으로 성격과 감정과 행동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화성 없이 언어만으로 모방하기 때문이다. 그 밖에 화성 없이 언어만으로 모방하는 예술이 있는데 이때 언어는 산문이 아니면 운문이며, 운문인 경우에는 상이한 운율이 혼용되기도 하고 동일한 운율만이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모방에는 오늘날까지도 고유한 명칭이 없다. 우리는 소프론과 크세나르코스의 소극(笑劇)6)이나 소크라테스의 대화7)에 공통된 명칭을 붙일 수 없으며, 누가 삼절운율(三節韻律)8)이나 비가운율(悲歌韻律)9)이나 밖의 다른 운율로 이러한 것들을 모방한다 하더라도 역시 공통된 명칭은 붙일 수 없을 것이다.10)
 사람들은 운율의 이름에다 '시인(詩人)'이란 말을 덧붙여 비가 시인이다, 서사 시인이다 하고 부르고 그것은 시인들이 행하는 모방의 양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시인들이 사용하는 운율에 근거하여 붙인 공통된 명칭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의학이나 자연철학에 관한 것이라도 운문으로 쓰여졌으면 그 저자를 시인이라 부르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메로스와 엠페도클레스11) 사이에는 운율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따라서 전자는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겠지만 후자는 시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철학자라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카이레몬12)의 랍소디아13) <켄타우로스>처럼 온갖 운율을 혼합하여 모방한 경우에도 우리는 그를 시인이라 부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기로 하자.
 끝으로 위에서 말한 모든 수단 즉 율동과 노래와 운문을 모두 사용하는 예술이 있는데, 예컨대 디튀람보스와 송가(頌歌)14)와 비극과 희극이 그렇다. 이들의 차이점은 어떤 것들은 앞서 말한 수단들을 동시에 모두 사용하고, 다른 것들은 따로따로 번갈아 사용하는 데 있다. 여러 가지 예술들의 이러한 차이점을 나는 모방 수단에 있어서의 차이라고 부른다.
 
1) '시학'의 원어의 본래 뜻은 작시기술(作詩技術)이다. 그러나 이 말이 지니는 의미의 제한성 때문에 문맥에 따라서는 시학, 또는 시로도 번역했다.
 2) 디튀람보스란 말의 어원은 확실치 않으나, 그리스 어에서 유래한 말이 아니라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되어 있다. 다튀람보스에 관하여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기원전 7세기 시인 아르킬로코스인데 그는 "나는 술을 마시면 디오뉘소스 신의 노래인 디튀람보스를 지휘할 수 있다"고 했다. 기타 문헌들에 의하더라도 디튀람보스는 일정한 문학적 형식을 갖추기 이전에는 디오뉘소스 신에 대한 합창가였음에 틀림없는 것 같다.
3)피리는 보통 디튀람보스에 사용되고 키타라(현악기 일종)는 송가(頌歌)에서 사용되었는데 이 두 악기는 연극 공연에도 사용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이란 말의 의미인데 일단 가사 없는 음악과 가사 있는 음악으로 구분해놓고 보면 그 뜻이 명백해질 것이다. 기원전 582년부터 가사 없는 피리 경연 대회가 퓌토 경기의 일부분이 되기는 했지만, 가사 없는 음악은 무용을 동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리 흔하지 않았다. 플라톤도 가사 없는 음악은 막연한 감정을 표현할 뿐 성격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짐승의 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4) 목적(牧笛)은 피리와 유사하나 피리에 비해 원시적인 악기로 주로 목자(牧者)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5) 그리스의 음악과 무용은 현대의 음악이나 발레보다 훨씬 더 모방적이었다고 한다.
 6) 소극(笑劇)은 원래 '흉내내는 극'이란 뜻인데 차차 일상행활의 여러 가지 면모를 그리는 드라마적 소묘를 의미하게 되었다.
7)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에게 먼저 질문을 던지고 이를 같이 문답해 나가는 동안 상대방으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는 대화 방식으로 철학을 했는데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문학 형식을 낳게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때로는 드라마 형식으로 때로는 서술체로 진행되는 플라톤의 대화편들이다.
 8) 삼절운율이란 단장(短長格) 삼절운율을 말하는데 단장격 운각(韻脚)을 중복한 것을 다시 세 번 반복한 운율이다.
9) 비가운율은 기원전 7세기 에페소스 시(市)의 칼리노스가 창안한 운율로서 장단단격 운각을 여섯 번 반복한 육절운율과 장단단격 운각을 두 번 반복한 오절운율이다. 이 운율은 주로 비가(elegy)에서 사용된 까닭에 비가운율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비가란 원래 비탄의 노래라는 뜻이었으나 일찍부터 시인들은 개인적 감정이나 훈계, 기타 여러 가지 주제(기쁜일이나 슬픈 일)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 운율을 사용했다
 10) 고대 그리스에는 오늘날과 같은 '문학'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11) 엠페도클레스는 기원전 5세기 초 시켈리아의 자연철학자이다. 그의 저술은 육절운율로 된 <자연론>과 퓌타고라스의 이론, 특히 윤회설을 증명한 <정화> 중에서 약 450행이 남아 있다.
 12) 카이레몬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시대에 살았던 아테나이의 시인이다. 그의 작품 <켄타우로스>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운율을 혼용했다는 것밖에는 달리 알려진 것이 없다. 이 시의 소재가 된 켄타우로스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켄타우로스 족은 익시온과 네펠레(구름의 여신) 사이에서 태어난 괴물족으로서 목과 머리와 가슴은 사람이고 나머지 부분은 말이었다. 이들은 텟살리아 지방에 살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라피타이 족의 왕 페이리토오스의 결혼 잔치에 초대받고 가서 신부 힙포다메이아와 다른 여인들을 납치하려다가 싸움이 벌어져 졌기 때문에 펠리온 산에 있던 소굴에서 쫒겨나게 된다.
13) 랍소디아란 랍소도스가 음송하는 시를 말한다. 랍소도스는 원래 여러 노래를 하나로 꿰메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자작시를 음송하는 방랑 시인이란 뜻도 있다. 후기에 와서는 대체로 호메로스의 시를 음송함으로써 이를 후세에 전한 자들에 대한 명칭이 되었다.
14) 송가는 그리스의 신들, 특히 아폴론 신에 대한 의식적인 성격을 띤 찬미가로서 원래는 합창가였으나 차차 키타라 반주에 맞추어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테르판드로스가 쓴 송시의 재목 몇 개와 약간의 단편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3) / 천병희 옮김
 
 
2 
 
 
 모방자1)는 행동하는2) 인간을 모방하는데 행동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선인(善人)이거나 악인이다. 인간의 성격이 거의 언제나 이 두 범주에 속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덕과 부덕3)에 의하여 그 성격이 구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방의 대상이 되는 행동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우리들 이상의 선인이거나, 또는 우리들 이하의 악인이거나, 또는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다. 그것은 화가들의 경우도 같다. 왜냐하면 폴뤼그노토스는 우리들 이상의 선인을, 파우손은 우리들 이하의 악인을, 디오뉘시오는 우리와 동등한 인간을 그렸기 때문이다.4)
 앞서 말한 여러 가지 모방도 각각 이러한 차이점을 가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상이한 대상을 이와 같이 상이한 방법으로 모방함으로써 각 모방이 상이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무용이나 피리의 취주나 키타라의 탄주에 있어서도 이러한 차이는 가능하며, 산문이나 음악의 반주가 없는 운문에 있어서도 이러한 차이는 가능하다. 예컨대 호메로스는 우리들 이상의 선인을, 클레오폰은 우리와 동등한 인간을, 그리고 맨처음으로 파로디아를 쓴 타소스의 헤게몬과 <데일리아스>의 작가 니코카레스는 우리들 이하의 악인을 그렸던 것이다.5) 디튀람보스와 송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있어서도, ----와 아르가스가 쓴-----6) 그리고 티모테오스와 필록세노스가 쓴<퀴클롭스>7)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등장 인물들을 상이하게 모방할 수 있을 것이다.
 비극과 희극의 차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희극은 실제 이하의 악인을 모방하려 하고 비극은 실제 이상의 선인을 모방하려 하기 때문이다.
 
 
1) '모방자'라는 말은 여기서는 시인을 의미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무용가나 배우를 의미하는 때도 있다. 소포클레스 이전까지만 해도 시인 자신이 주연 배우요, 연줄가요, 코러스를 위한 무용의 안무가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말을 이렇게 애매하게 사용한 것이 어느 정도 납득이 갈 것이다.
2) '행동하다'의 원어는 단순히 무엇을 행하는 것을 뜻한다기보다는 뚜렷한 목적 의식을 갖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에는 영어의 'act'처럼 '출연'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우에 따라 모방의 대상인 '행동하는 인간'에 대해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모방의 수단인 배우에 대해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3) 덕과 부덕의 원어(arete)와 (kakia)는 원래 사물이 그 고유한 기능을 잘 발휘하는 상태와 그렇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반드시 어떤 도덕적인 가치 기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4) 폴리그노토스(Polygnotos)와 디오뉘시오스(Dionysios)와 파우손(Pauson)은 모두 기원전 5세기 그리스 화가들이다. 성격 화가로 유명한 폴뤼그노토스의 그림에는 이상주의적 경향이 강했고. 셋 중에 가장 후기에 속하는 파우손의 그림에는 자연주의적 경향이 강했다고 한다.
5) 클레오폰은 일상생활에서 취재한 일종의 서사시를 썼다고 하는데 이 책 22장에 그의 문장이 저속하다는 말이 나온다. 헤게몬은 타소스 섬에서 태어나 기원전 5세기 후반의 아테나이에서 활동한 작가로서 <개구리와 쥐의 전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문체로 서사시의 파로디아(parody)를 썼다고 한다. 파로디아란 고의적인 과장이나 어울리지 않는 의상, 이러한 수법을 사용한 시를 말한다. 보잘것없는 사물을 장중한 시어체로 그리는 것 역시 파로디아의 특징이다. 니코카레스는 아리스토파네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희극 작가로 생각된다. <데일리아스>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어원적으로 보아(deilos는 '겁이 많다'는 뜻), 어떤 겁쟁이를 주제로 한 서사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6) --- 부분은 원전이 완전이 파손된 부분이다. 앞에 있는 ----는 시인의 이름이고 뒤에 있는 ----는 송가의 제목으로 생각된다. 아르가스는 파로디아 스타일의 송가를 썼다고 한다.
7) 필록세노스와 티모테오스(제1장 주2 참조)는 둘 다 퀴클롭스 족의 한 명인 폴뤼페모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여 디튀람보스를 썼는데 전자는 이를 풍자적으로 취급한 증거가 있으므로 후자는 이를 진지하게 취급하여 폴뤼페모스를 이상화한 것으로 추측해도 좋을 것이다. 퀴클롭스 족은 시켈리아 섬에 거주하는 거한(巨漢)들로 전해지고 있다. <오딧세이아> 제 9권 이하 참조.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4) / 천병희 옮김
 
 
3 
 
 
 이들 여러 가지 모방의 세 번째 차이는 각종 대상을 모방하는 양식에 있다. 동일한 수단으로 동일한 대상을 모방한다하더라도, 시인은  1> 호메로스가 한 것처럼 때로는 서술체로, 때로는 작중 인물이 되어 말할 수도 있고2> 그러한 변화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서술체로만 말할 수도 있고 3> 모방자1)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실연(實演)하게 할 수도 있다.2)
 이와 같이 모방은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수단과 대상과 양식이라는 세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하여 소포클레스의 모방은 선인을 모방한다는 점에서는 호메로스의 그것과 유사하지만 등장 인물들을 실제로 행동하는 자로서 모방한다는 점에서는 아리스토파네스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작품들3)이 드라마라고 불리게 된 것도 이러한 작품에서는 등장 인물들이 실제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도리스 인들4)은 자기들이 비극과 희극을 창안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희극은 메가라 인5)들이 창안해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리스 본토에 사는 메가라 인들은 메가라가 민주정체가 되었을 때6) 그곳에서 희극이 생겨났다고 주장하고 있고, 시켈리아 섬에 이주한 메가라 인들은 그곳 출신인 에피카르모스7)가 키오니데스나 마그네스8)보다 훨씬 이전 사람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기들이 희극을 창안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펠로폰네소스의 도리스 인들 중에는 비극도 자기들이 창안해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9)) 그들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komoidia(희극)와 drama(드라마)란 말을 내세우고 있다. 그들의 말인즉 자기들은 도시 주변의 촌락을 kome라고 하는데 아테나이 인들은 demos라 하며 komoidoi(희극배우)란 말은 이들이 음주유락(飮酒遊樂 komazein)하는 데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인기를 잃고 도시에서 쫓겨나 주변 촌락을 순회한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또 자기들은 행동하는 것을 dran이라고 하는데 아테나이 인들은 prattein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모방의 차이점의 수와 성질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기로 하자.
 
1) '모방자'란 여기서 배우를 가리킨다. '모방자'란 말의 또 다른 뜻에 관해서는 제2장 주1)참조.
 2) 이 구절은 <시학> 중에서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구두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의미상의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역자는 1 Bywater의 해석을 택하여, 번역했는데 사실 모방의 방식에 대한 이러한 분류는 플라톤(<국가>392d~394d 참조)의 분류와 일치하는 것같이 보인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와 신화 가운데 일부는 전적으로 모방에 의존하고 - 자네 말처럼 비극과 희극이 여기에 속하네 - 일부는 시인 자신의 서술에 의존하네. 자네는 그 가장 좋은 예를 디튀람보스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네. 다른 일부는 서사시와 기타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양자의 혼합에 의존하네" 시인은 (1)(a)호메로스처럼 작중 인물이 되어 말하거나 (b)그러한 변화 없이 서술체로만 말하거나 (2)모방자로 하여금 모든 것을 실연하게 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 두 번째 해석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크게 보아 두 가지 해석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3) 비극과 희극을 말한다.
 4) 도리스 인들은 북방으로부터 그리스로 남하한 종족 가운데 맨 마지막 종족이다(기원전 100~1000년경) 이들은 주로 엘리스, 라케다이몬, 아르고스, 코린토스, 메가라 등지에 정착했다.
5) 메가라 인들 역시 도리스 족으로 기원전 730~550년 사이에 여러 곳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는데 시켈리아 섬에 건설한 식민지는 메가라 휘블라이아 라고 불렀다.
 6) 기원전 600년경 참주(僭主) 테아게네스가 추방되었을 때를 말한다.
7) 에피카르모스와 포르미스는 '신(新) 희극'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평범한 인간들의 여러 가지 성격 유형을 묘사한 풍속 희극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에 관해서는 본서 제5장에 언급되고 있다. 에피카르모스는 기원전 5세기가 시작되 이전에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8) 키오니데스와 마그네스는 기원전 5세기 전반에 활동했다.
9) 특히 시키온 인들이 그랬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5) / 천병희 옮김
 
 
4 
 
 
 시는 일반적으로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두 가지 원인1)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모방한다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도 인간이 가장 모방을 잘하며, 처음에는 모방에 의하여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모방된 것에 대하여 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사실은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아주 보기 흉한 동물이나 시신의 모습처럼 실물을 볼때면 불쾌감만 주는 대상이라도 매우 정확하게 그려놓았을 때에는 우리는 그것을 보고 쾌감을 느낀다.
 그럴 것이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비단 철학자들 뿐만 아니라 그 밖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 비록 그들의 배움의 능력이 적다하더라도 - 최상의 즐거음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것은 봄으로써 배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건 사람을 그린 것이로구나' 하는 식으로 각 사물이 무엇인가를 추지(推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실물을 전에 본 적이 없는 경우에는 모방의 대상이 아니라 기교라든가 색채라든가 그 밖에 그와 유사한 원인에 의하여 쾌감을 느낄 것이다. 이와 같이 모방한다는 것과 화성과 율동에 대한 감각은(운율은 율동의 일종임이 명백하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 바 인간은 이와 같은 본성에서 출발하여 이를 점진적으로 개량함으로써 즉흥적인 것으로부터 시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런데 시는 시인의 개성에 따라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되었다. 고상한 시인들은 고상한 행동과 고상한 인물들의 행동을 모방한 반면 저속한 시인들은 비렬한 자들의 행동을 모방했는데, 전자가 찬가(讚歌 hymnos)와 찬사(讚辭 enkomion)2)를 쓴 것처럼 후자는 처음에는 풍자시를 썼다.
 호메로스 이전의 시인들이 쓴 풍자시는 한 편도 남아 있는 것이 없어 예를 들 수 없겠으나 그런 시를 쓴 시인은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호메로스 이후부터는 많은 예를 들 수 있는데, 예컨데 호메로스 자신의 <마르기테스>3)와 다른 시인들이 쓴 이와 유사한 작품들이 있다. 이를 풍자시 있어서는 단장격 시행(短長格詩行 iambeion)이 적합한 것으로 사용되었다. 이 운율이 오늘날에도 iambeion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그 까닭은 이 운율로 서로 iambizein(풍자-욕설)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옛 시인들 가운데 일부는 영웅시의 작가가 되고 일부는 단장격시의 작가가 되었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고상한 대상을 모방함에 있어서도 탁월한 시인이지만(그는 훌륭하게 작시했다는 점에서나 모방이 드라마적이란 점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인신공격이 아니라 우스꽝스런 것을 드라마화함으로써 맨 처음으로 희극의 윤곽을 보여주었다. 왜냐하면 그의 <마르기테스>가 희극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비극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 비극과 회극이 등장하게 되자 시인들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이 두 가지 경향 가운데 한쪽으로 쏠리게 되었다. 어떤 시인들은 단장격 시 대신 희극의 작가가 되었고, 어떤 시인들은 서사시 대신 비극의 작가가 되었다. 그것은 새로 등장한 형식이 옛 형식보다 더 위대하고 존경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비극이 그 구성 요소4)에 있어서 충분히 발전한 것인지 아닌지를 비극 자체의 테두리 내에서, 그리고 극장과 관련하에 고찰하는 것은 다른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다.
 아무튼 비극은 처음에 즉흥적인 것으로부터 발생했다. 희극도 마찬가지였다. 비극은 디튀람보스의 선창자(先唱者)로부터 유래했고,5) 희극은 아직도 많은 도시에 관습으로 남아있는 남근찬가(男根讚歌)의 선창자로부터 유래했다.6)
 그 후 비극은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계속 개량함으로써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많은 변화를 거쳐 본연의 형식을 갖추게 된 뒤에야 비로소 비극의 발전은 정지되었다.
 1)배우의 수를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린 것은 아이스퀼로스가 처음인데, 그는 또한 코로스(choros)의 역할을 줄이고 대화가 드라마의 중심이 되게 했다. 2)소포클레스는 배우의 수를 세 명으로 늘리고 무대 배경을 도입했다. 3)비극은 또한 그 길이7)가 길어졌다. 비극은 사튀로스 극8)으로부터 탈피함으로써 짧은 스토리와 우스꽝스러운 조사(措辭)를 버리고 위엄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는 후기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리고 그 운율도 장단젹(長短格)에서 단장격으로 바뀌었다.
 처음에 장단적 사절운율9)이 사용되었던 것은 당시의 비극에는 사튀로스 극의 요소와 무용적 요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가 도입되자 자연은 스스로 이에 적합한 운율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단장격 운율10)은 대화에 가장 적합한 운율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우리는 대화할 때 대개 단장격 운율을 사용하는 데 비해 육절운율11)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믈며, 그것은 보통 어조를 이탈하였을 경우에 한한다는 사실 들 수 있다. 4)그 밖에 또 한 가지 변화는 삽화(揷畵 epeisodiion)12)의 수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장식물13)과 그것이 첨가되게 된 경위를 일일이 설명한다는 것은 너무나 방대한 일이므로 이미 설명한 것으로 해두자.
 
1) '두 가지 원인'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는 (1) 모방에 대한 쾌감과 (2) 타인에 의하여 모방된 것에 대하여 느끼는 쾌감이고, 다른 한가지는 (1) 모방에 대한 쾌감(여기서는 모방에 대한 쾌감 뿐만 아니라 타인에 의하여 모방된 것에 대하여 느끼는 쾌감도 포함된다)과 (2) 화성과 율돌에 대한 본능이다.
 2) '찬가'는 신을 찬미하는 노래이고 '찬사'는 인간을 찬양하는 노래다. 이 말의 본래 뜻이 '술잔치에서의 노래'란 점으로 미루어보아 원래는 연희 주인에 대한 찬사를 의미하던 것이 차츰 찬사 일반을 가리키게 된 것 같다. 이러한 성격의 시에 처음으로 이 이름을 붙인 사람은 시모니데스라고 한다.
3) 마르기테스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나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떤 돈 많은 바보를 주인공으로 한 풍자적 서사시인데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메로스 작(作)이라고 하나 작가와 시대는 확실치 않다고 한다.
 4) 비극의 구성 요소에 관해서는 제6장 참조
5) 비극의 기원에 관해서는 결정적인 자료가 없어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비극이 디튀람보스에서, 그것도 디오뉘소스 신의 종자(從者)들인 사튀로스로 분장한 자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사튀로스 극(劇)을 곁들인 디튀람보스에서 유래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릭 그들은 '염소의 노래'란 말이 '염소의 발을 가진 사튀로스로 분장한 자들이 부르는 노래'를 의미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비극에 관한 최초의 문헌들에 나타난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점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1) 디튀람보스를 부르는 자들이 담쟁이덩굴로 만든 관을 썼다는 기록은 있어도 사튀로스로 분장하고 춤추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점 (2) 박퀼리데스 이전에는 디튀람보스에서 드라마적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 (3) 디튀람보스의 코로스는 원형인데 반해 비극적 코로스는 직사각형이라는 점 (4) 사튀로스 극이 비극 4부작의 1부가 되기(이는 강제 규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전에도 사튀로스적 요소가 없는 비극의 경연이 있었다는 점 (5) 비극에 관한 최고의 문헌에 의하더라도 비극은 디튀람보스만큼 디오뉘소스적 요소와 밀접한 관계를 보이지 않았고 당시의 사건도 영웅적인 요소가 있으면 비극의 소재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점 (6) 적어도 고전기(古典期)에는 디튀람보스와 비극, 또는 비극 코로스의 구별이 엄연했다는 점. (7) 염소의 노래(tragoidia)란 말이 '염소의 발을 가진 사튀로스로 분장한 자들이 부르는 노래'란 뜻이 아니고(사튀로스 극에 나오는 사튀로스는 일부는 사람이고 일부는 말이었지 염소는 아니었다). '상(償)으로 내놓은 염소를 얻기 위하여 다투어 부르는 노래'란 뜻이거나(최초로 독립된 배우와 프롤로고스와 대화를 도입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테스피스는 상으로 염소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한다), 또는 '제물로 바친 염소를 둘러싸고 부르는 노래'라는 뜻일 수 있다는 점을(이른바 비극이 비장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이러한 견해에서 유래했다) 들어 디튀람보스와 사튀로스 극과 비극은 모두 독자적인 발전 과정을 거쳐온 것으로 보고 있다. 비극이 일종의 종교의식인 디튀람보스에서 유래했다 하더라도 비극으로서의 형태를 갖추는 데는 기원전 6세기 초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쪽에 있는 여러 도시, 특히 코린토스와 사퀴온에서 개발되기 시작한 디오뉘소스 전설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영웅 전설을 소재로 한 장엄한 또는 비극적 합창 서정시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 뒤 기원전 6세기 말에 테스피스가 아테나이에서 이러한 종류의 비극적 합창 서정시를 부르는 코로스를 대사를 외우는 배우와 결합함으로써 비로소 그 초기 형태를 갖추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비극은 그 뒤 디튀람보스와 사튀로스 극과 더불어 대디오뉘소스 제전(아테나이에서 거행된 여러 가지 디오뉘소스 제전 가운데 규모가 제일 큰 제전으로 3월 말에 개최되었다)의 일부가 됨으로써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6)komoidia란 말이 komos(야단법석을 떠는 술잔치로서 이러한 술잔치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주로 디오뉘소스 제전 때 벌어졌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komo(도시 주변의 촌락)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도리스 인들의 주장(제3장 참조)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찬성의 뜻도 반대의 뜻도 표방하고 있지 않으나 komos에서 유래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희극이 남근찬가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희극이 남근찬가의 선창자에게서 유래했다는 설은 역사적 근거가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5세기에는 에피카르모스의 코로스 없는 희극과 코로스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테나이의 '고(古) 희극'의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전자는 에피카르모스 이후 차차 쇠퇴하여 소극으로 변질되었고, 후자는 기원전 486넌 아테나이에서 국가의 공인을 받게 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7) '길이'의 원어의 본래의 뜻은 '크기'인데 여기서는 물리적인 '길이'와 함개 '웅대함'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8) 사튀로스 극은 형식에 있어서는 비극과 유사하지만, 소재에 있어서는 전설 가운데 그로테스크한 부분을 택하거나 또는 전설을 그로테스크하게 취급하는 드라마를 말한다. 이 드라마의 코로스가 디오뉘소스 신의 종자들인 사튀로스로 분장한 까닭에 사튀로스 극이라고 불린다. 이들의 대사와 제스처는 흔히 음란했다고 하며 이들은 또한 시킨니스라고 하는 격렬한 춤을 추었다고 한다. 고전기에는 비극 4부작의 제4부를 이루고 있었지만 후기에 가서는 비극 경연 전체를 통하여 단 한 편만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플리우스나 프라티나스가 사튀로스 극을 찬양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 말은 그가 처음으로 사튀로스 극을 디오뉘소스 제전에 소개했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3대 비극 작가들은 모드 사튀로스 극을 썼는데 지금 온전하게 남아 있는것은 에우리피데스의 <퀴클롭스>뿐이다.
9) 사절운율(장단격 사절운율)이란 장단젹 운각을 중복한 것을 네 번 반복한 운율을 말하는데 이 운율은 격렬한 흥분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운율이다.
 10) 단장격 운율(단장격 삼절운율)은 그리스 비극의 대사에 쓰이는 운율이다.
11) 육절운율은 영웅시 운율 또는 서사시 운율이라고도 불린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의 시행들은 모두 이 운율로 되어 있다.
 12) 삽화란 코로스의 노래와 노래 사이에 삽인된 대화 부분을 말한다. '삽화의 수가 많아졌다'는 말은 근대극의 경우라면 막(幕) 또는 장(場)의 수가 많아졌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13) 의상이나 가면 따위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6)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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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극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1) 보통 이하의 악인의 모방이다. 이때 보통 이하의 악인이라 함은 모든 종류의 약(惡)2)과 관련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종류, 즉 우스꽝스런 것과 관련해서 그런 것인데 우스꽝스런 것은 추악3)의 일종이다. 우스꽝스런 것은 남에게 고통이나 해를 끼치지 않는 일종의 실수 또는 기형이다. 비근한 예를 들면 우스꽝스런 가면은 추악하고 비뚤어졌지만 고통을 주지는 않는다.
 비극의 여러 가지 발전 관정과 그 창안자들이 잘 기억되고 있는 반면 희극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희극이 초기에는 중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정관이 희극 시인에게 코로스를 공적으로 제공한 것은 후기의 일이고 처음에는 시인 자신이 자담(自擔)했다.4) 이른바 희극 시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에 관한 기록이 시작된 것은 희극이 이미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난 뒤부터였다. 누가 희극에 가면5)이나 프롤로그를 도입하고 배우의 수6)를 늘렸는가 하는 것 등은 알려져 있지 않다. 희극의 플롯을 구성하는 것7)은 시켈리아에서 유래된 것인데, 그것은 에피카르모스의 포르미스8)가  ----9) 아테나이의 시인들 중에는 크라테스10)가 최초로 인신공격의 형식을 버리고 보편적인 스토리, 즉 플롯을 구성하기 시작했다.11) 서사시는 장중한 운율12)로 고상한 대상을 모방한다는 점에서는 비극과 일치하지만, 1) 한 가지 운율만을 사용하며 서술체라는 점에서는 비극과 상이하다. 2) 양자는 길이13)에 있어서도 상이하다. 비극은 가능한 한 태양이 일 회전하는 동안14)이나 이를 초과하지 않는 시간15)안에 사건의 결말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는 데 반해 서사시는 시간적으로 제한이 없다. 이것이 양자의 차이점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비극에도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시간적 제한이 없었다. 3) 양자는 또한 구성 요소에 있어서도 상이한데 어떤 것은 양자에게 공통되고, 어떤 것은 비극에만 고유하다.16) 따라서 어떤 비극이 좋고 어떤 비극이 나쁜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서사시에 관해서도 판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사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는 비극에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극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가 서사시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1) 제2장 앞부분 참조
 2) '악'의 원어(kakia)는 제2장 주3)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원래는 사물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나 사악(邪惡)이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3) '추악'의 원어는 도덕적인 의미와 심미적인 의미가 다 함께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 인에게 '추악'은 곧 '악'과 같은 뜻이다.
 4) 희극이 국가의 공인을 받게 된 뒤에는, 경연에 참가하고 싶은 시인은 집정관에게 코로스의 비용을 요청했다. 그러면 집정관은 부유한 시민에게 공적으로 명하여 코로스 훈련과 장비에 드는 비용을 대게 했다. 그 비용을 부담하는 시민은 choregos라 불린다. 많은 시인이 경합할 경우 그 선발 기준이 어떠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희극이 국가의 공인을 받기 전에는 사비(私費)로 공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구절은 문맥상으로 보든 문헌에 따르든 시인 자신이 그 비용을 자담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실제로 비용을 누가 어떻게 조달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5) 가면이 도입되기 전에는 희극에서 포도주 찌꺼기를 얼굴에 칠했다고 한다. 비극의 가면은 테스피스가 발명해낸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이 말은 테스피스가 가면을 발명해냈다는 뜻이 아니라 개량했다는 뜻일 것이다.
 6) 대부분의 앗테케 희극에는 세 명의 배우가 츨연한다. 그러나 <뤼시스트라테>와 <개구리>의 어떤 부분에는 네 명 또는 다섯 명의 배우가 필요하다. 에피카르모스도 세 명의 배우를 사용했다고 한다.
7) '희극의 플롯을 구성했다' 함은 인신공격의 형식을 버리고 일반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를 취급했다는 뜻이다.
 8) 에피카르모스와 포르미스에 관해서는 제3장 주7)을 보라
9) ---부분은 완전이 파손된 부분인데 문맥상으로 보아 '그곳 출신이었으니까'라는 구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10) 크라테스는 기원전 450년경부터 430년까지 할동했는데 그 당시에는 크라티노스가 가장 저명한 희곡 작가였다고 한다.
11)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견해가 현존 희극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초기 작품은 인신공격으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구름>만 하더라도 소크라테스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 일색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클레온이 민중선동가의 대명사이듯 소크라테스도 소피스트의 대명사에 불과하며 <구름>이나 <기사(騎士)>는 단순한 인신공격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뚜렷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12) 서사시는 육절운율만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비극은 삼절운율과 사절운율 등을 사용하며 심지어는 서사시의 운율인 육절운율도 사용할 수 있다.(제26장 후반부 참조)
13) '길이'란 말에 대해서는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물리적인 의미의 길이, 즉 행수를 뜻할 수 있고(<일리아스>나 <오딧세이아>는 1만 수천 행에 달하는 데 비해, 비극은 대체로 1천행을 크게 초과하지 않는다) (2) 비극의 공연 또는 서사시의 낭송에 필요한 시간을 뜻할 수 있고(그리스 고전을 주로 책을 통해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첫 번째 가능성을 생각하기 쉬우나 보통 직접 보고 듣던 그리스 인들에게는 두 번째 가능성이 더 먼저 머리에 떠오를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사건의 경과 기간을 뜻할 수 있다. 그러나 '초기에는 비극에도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시간적 제한이 없었다'는 말을 비극도 공연하는 데 서사시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뜻으로 해석하거나, 서사시는 무제한 오래 계속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일 것이다. 가장 오래 된 비극들은 비교적 짧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제4장에서 초기 비극은 짦았다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길이'란 말이 사건의 경과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까닭은 그것이 비극과 서사시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더 명확하게 지적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는 모두 사건의 경과 기간이 수주일 이상씩이다. 그리고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비극에 있어서도 사건의 경과 기간은 제한되어 있지 않다. <아가멤논>의 사건만 하더라더 단 하루에 일어날 수 없으며, <자비로운 여신들>도 상당한 기간의 경과를 명백히 말해주고 있다.
 14) 24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태양이 지상에 떠 있는 시간, 즉 12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보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그리스 극은 보통 동틀 녘에 시작하며 또 실제로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모든 작품에서 드라마 내의 사건을 위하여 12시간이면 충분하다.
15)<제주(祭酒)를 바치는 여인들>은 날이 어두워진 뒤에 끝나고 <아가멤논>은 동트기 전에 시작하며 <레소스>는 밤에 일어난다.
 16) 제6장 및 제26장 참조, 비극의 여섯 가지 구성 요소 가운데 플롯, 성격, 조사, 사상은 서사시에도 공통되나 장경(場景)과 노래는 비극에서만 불 수 있는 것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7)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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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절운율에 의한 모방과 희극에 관해서는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1) 먼저 비극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로 하자.
 우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으로부터2) 비극의 본질을 정의해보자.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3)를 사용하되 각종 장식은 작품의 상이한 제부분에 따로따로 삽입된다.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4)를 행한다.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란 말은 율동과 화성을 가진 언어 또는 노래를 의미하고,'작품의 상이한 제부분에 따로따로 삽입된다'는 말은 어떤 부분은 운문에 의해서만 진행되고 어떤 부분은 노래에 의해서 진횅됨을 의미한다.
 배우가 스토리를 실연(實演)하기 때문에, 첫째 장경(場景, 또는 배우의 분장)5)이 불가피하게 비극의 일부분이 될 것이고, 다음은 노래와 조사(措辭)다. 왜냐하면 이 양자는 모방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조사란 다름 아니라 운문의 작성을 의미하며,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고, 행동은 행동자6)에 의하여 행해지는 바 행동자는 필연적으로 성격과 사상에 있어 일정한 성질을 가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 양자에 의하여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일정한 성질의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의 원인은 자연히 두 가지인데 사상과 성격이 그것이며 그들의 생활에 있어서의 모든 성공과 실패도 이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행동의 모방은 플롯이다.
 나는 플롯이란 말을 이러한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플롯은 스토리 내에서 행해진 것, 즉 사건의 결합을 의미한다. 한편 성격은 행동자를 일정한 성질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바를 의미하며, 사상은 행동자들이 무엇을 증명하거나 또는 보편적인 진리를 말할 때 그들의 언사에 나타나는 바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비극은 여섯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며 이 여섯 가지 요소에 의하여 비극의 일반적인 성질도 결정되는데, 플롯과 성격과 조사와 사상과 장경과 노래가 곧 그것이다. 이 가운데 두 가지는 모방의 수단에 속하고, 한 가지는 모방의 양식에 속하고, 세 가지는 모방의 대상에 속한다.7)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실상 모든 시인들이 이러한 요소들을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드라마는 장경, 성격, 풀롯, 조사, 노래,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섯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다. 비극은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생활과 행복과 불행을 모방한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행동 가운데 있으며 비극의 목적도 일종의 행동이지 성질은 아니다. 인간이 성질은 성격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행-불행은 행동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드라마에 있어서의 행동은 성격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격이 행동을 위하며 드라마에 포함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 비극의 목적이며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또 행동 없는 비극은 불가능하겠지만 성격 없는 비극은 가능할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 작가8)들의 비극에는 성격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시인들에게 공통된 결합이다. 그것은 화가들 중에서 제욱시스를 폴뤼그노토스9)와 비교할 때 볼 수 있는 바와 같다. 왜냐하면 폴뤼그노토스는 우수한 성격 화가인데 비해 제욱시스의 그림에는 아무런 성격이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시인이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그리고 조사와 사상에 있어서 훌륭하게 손질된 일련의 대사를 차례차례 내놓는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아직 비극의 진정한 효과를 산출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점에서는 다소 미비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플롯, 즉 사건의 결합을 구비한 비극이 훨씬 더 훌륭한 효과를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비극에서 우리를 가장 매혹하는 것은 급전(急轉)과 발견10)인데 이것들은 플롯에 속하는 부분이다. 또 한가지 증거로 작시의 초심자들이 사건의 결합보다 조사와 성격 묘사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초기 시인들11) 거의 전부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비극의 제1원리, 또는 비극의 생명과 영혼은 플롯이고 성격은 제2위인 것이다(이와 유사한 예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색채라도 아무렇게나 칠한 것은 흑백의 초상화만큼도 쾌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12) 
 비극은 행동의 모방이며 비극이 행동자를 모방하는 것도 주로 행동을 모방하기 위해서이다. 제3은 사상이다. 사상이란 상황에 따라 해야 할 말과 적당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사에 관한 한 이 능력은 정치학과 수사학의 연구 분야에 속한다. 왜냐하면 옛날 시인들은 등장 인물들로 하여금 정치가와 같이 말하게 했고, 오늘날의 시인들은 수사학자와 같이 말하게 하기 때문이다.13) 사상을 성격과 혼돈해서는 안 된다.
 성격은 행동자가 무엇을 의도하고 무엇을 기피하는지가 분명치 않을 때 그의 의도를 분명하게 해준다.14) 따라서 말하는 사람이 무엇을 의도하고 무엇을 기피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말은 성격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런데 사상은 무엇을 증명 또는 논박하거나 보편적인 명제(命題)를 말할 때 그 언사 속에 나타난다. 여러 가지 언어적 요소 가운데 제4의 것은 조사다. 조사란 앞서 말한 바와 같이15) 언어로 사상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역할은 운문에 있어서나 산문에 있어서나 동일하다. 나머지 두 개 가운데 노래는 비극의 쾌감을 산출하는 양념16)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장경은 우리를 매혹하기는 하나 예술성이 가장 적으며 작시술과는 가장 인연이 먼 것이다. 비극의 효과는 공연이나 배우 없이도 산출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장경의 준비에 관한 한 의상계17)의 기술이 시인의 기술보다 더 유력하다.
 
1) 육절운동에 의한 모방, 즉 서사시에 관해서는 제23,24,26장에서 거론되고 있으나 희극에 관한 논술은 없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비극의 정의가 전개되는 제6장은 <시학>의 핵심으로 앞서 나온 장들은 비극의 정의를 위한 기초가 되는 장들이고, 뒤에 나올 장들은 이를 부연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3) 원의는 '양념을 친'이란 뜻이다.
4) 카타르시스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보아 카타르시스는 '감정의 정화'를 의미한다는 윤리적 견해와 '감정의 배설'을 의미한다는 의학적 견해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금세기에 들어와서도 여러 학자들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으나 카타르시스의 본질에 관한 연구는 비극 그 자체의 본질에 관한 연구에 비하여 퇴조하고 있는 편이다.
5) 장경의 원어가 배우의 분장만 의미하는지, 또는 무대상의 장면과 광경도 포함하는지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spectacle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문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분명히 분장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그리스의 무대에서는 장경이라고 해보았자 배우의 분장 외에는 별로 볼 만한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제14장 첫부분에서는 눈에 띄는 무대상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같이 보인다.
비극 배우들은 배역에 맞는 가면을 썼고, 긴 의상을 입었으며(적어도 아이스퀼로스 시대부터는 그랬다.) 굽이 높은 반장화를 신었다. 무대 배경은 소포클레스가 도입했다고 한다(제4장 중간 부분 참조)
6) '행동자'란 여기서는 배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제2장 주2 참조)
7) 두 가지안 조사와 노래를, 한 가지란 장경을, 세 가지란 플롯, 성격, 사상을 말한다.
8) '현대 작가'란 에우리피데스 이후의 작가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9) 폴뤼그노토스에 관해서는 제2장 주4 참조. 제욱시스에 관해서는 제25장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기원전 5세기 말에서 4세기 초에 걸쳐 활동한 남부 이탈리아의 헤라클레이아 출신 화가이다.그는 이상적인 여성미(女性美)를 그려 사람들을 경탄케 했다고 한다.
10) 급전과 발전에 관해서는 제11장과 16장에 설명이 나온다.
11) 아이스퀼로스 이전 시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12) 드라마에 있어섯의 플롯과 성격을 그림에 있어서의 밑그림과 색채에 비교하고 있다. 그림의 경우 아무리 아름다운 색채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밑그림이 잘못되면 훌륭한 그림이 될 수 없듯이, 드라마에 있어서도 성격 묘사와 조사가 아무리 잘 되었다고 하더라도 플롯이 잘못 구성되면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13) 정치학은 국가가 생기면서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수사학은 비교적 후기에 생긴 학문 분야이다.
14) 의도는 등장 인물이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 가장 잘 나타난다. 예컨대 복수를 택하느냐 안전을 택하느냐 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때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그 의도를 통하여 등장 인물의 성격을 알면 그가 이때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그 의도를 예측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격'은 의도를 분명하게 해준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무엇을 택할 것인지가 명백한 경우에는 의도는 성격을 나타내지 못한다. 예컨대 맛없는 음식을 택하느냐 맛있는 음식을 택하느냐 하는 경우가 그렇다.
15) 조사에 관한 언급은 '조사란 운문의 작성을 의미한다'는 말뿐이다. 조사의 원어는 대부분의 영역본에는 'diction'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루카스는 '말을 이해힐 수 있도록 결합시키는 전 과정을 포함한다'고 말하고 있다.
16) 양념이란 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17) 의상계의 원어는 주석이나 문헌에 의하면 가면과 의상이 그의 주요, 또는 유일한 업무 분야였던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8)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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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극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를 분석해보았으니 이번에는 플롯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로 하자. 왜냐하면 이것이 비극의 최우선적이며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비극이 완결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전체적인 행동의 모방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왜냐하면 전체 중에는 아무런 크기를 가지지 않은 전체1)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체는 시초와 중간과 종말을 가지고 있다.
 시초는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다른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되는 성질의 것이다. 반대로 종말은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또는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그것 다음에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중간은 그 자체가 다른 것 다음에 존재하고, 또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플롯을 훌륭하게 구성하려면 아무 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내서는 안 된다. 앞서 말한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아름다운 것은 생물이든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물이든 간에 그 여러 부분의 배열에 있어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크기와 질서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너무 작은 생물은 아름다울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지각은 순간적이므로2) 분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2)또 너무 큰 생물, 이를테면 길이가 수백 척이나 되는 생물도 아름다울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대상은 단번에 관찰할 수 없고, 그 통일성과 전체성이 시계(視界)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사물이나 생물이 일정한 크기를 가져야 하고 그 크기는 쉽게 통관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하듯이 플롯도 일정한 길이를 가져야 하는데 그 길이는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길이의 제한은 경연3)과 관람에 관계되는 한, 작시술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다. 1백 개의 비극을 경연해야 할 경우에는, 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바와 같이 물시계로 시간을 재야 할 것이다.4) 그러나 사물의 성질 자체에 기인하는 제한에 관하여 말한다면, 전체를 쉽게 통관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스토리가 길면 길수록 그 크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대체로 말해서 주인공의 운명이 일련의 개인적 또는 필연적 경로를 거쳐 불행에서 행복으로 또는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뀔 수 있는 길이라면 스토리 크기의 한계로서 충분할 것이다.5)
 
1) 너무 작아서 구분이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전체를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266a 10 참조.
2) 따라서 여러 부분들을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비례 감각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3) 다른 디오뉘소스 제전에서 개최된 비극 경연에 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대디오늬소스 제전에서 개최된 비극 경연에는 세 사람의 시인이 참가했고, 하루에 한 시인의 4부작(보통 비극 3편과 사튀로스 극 1편으로 된)이 공연되었다.
4) 여기서 말하고 있는 그극의 '크기'니 '길이'니 하는 말은 제5장에서 비극과 서사시를 비교해서 말할 때 사용한 '길이'란 말과는 의미가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9) / 천병희 옮김
 
8
 
 
 
  플롯의 통일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한 사람을 취급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사건이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데 그 중에는 통일을 이룰 수 없는 것도 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행동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통일된 행동을 이룰 수 없는 것이 허다하다. 그러므로 헤라클레스전(傳)1)이나 테세우스전2)이나 이와 유사한 시를 쓴 시인들은 모두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은 헤라클레스가 한 사람이니까 스토리도 당연히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다른 점에 있어서도 뛰어나지만, 이 점에 있어서도 숙련에 의했든 친분에 의했든 바로 이해했던 것 같다. 그는 <오딧세이아>를 쓸 때 주인공에게 일어난 사건을 모두 취급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오딧세우스가 파르낫소스 산에서 부상당한 일이라든지,3) 출전 소집을 받았을 때 광증(狂症)을 가장한 사건은4)은 취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 두 사건 사이에 필연적 또는 개연적 인과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은 통일성 있는 행동을 주제로 하여 <오뒷세이아>를 구성했던 것이다. <일리아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다른 모방 예술에 있어서도 하나의 모방은 한 가지 사물의 모방이듯, 시에 있어서도 스토리는 행동의 모방이므로 하나의 전체적 행동5)의 모방이어야 하며 사건의 여러 부분은 그 중 한 부분을 다른 데로 옮겨놓거나 빼버리게 되면 전체가 뒤죽박죽이 되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으나마나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1) 헤라클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 영웅으로 그에 관한 전설은 서로 상관이 없는  세 가지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일생을 소재로 한 시는 자연히 통일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생애를 소재로 하여 쓰를 쓴 사람은 키나톤(기원전 8세기). 페에산드로스(기원전 7세기 또는 6세기), 파뉘아시스(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숙부(?)로서 기원전 460년 경에 죽었다) 등이 있다.
2) 테세우스 역시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 영웅으로 그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크레테의 왕녀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다이달로스가 설계한 미궁에 갇혀 있던 반인반우(伴人半牛)의 식인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그는 또한 아테나이의 전설적 건설자이기 때문에 어테나이 인들은 애국심에서 다른 데 속하는 전설도 그에게 귀속시키는 예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관한 시도 자연히 통일을 이루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생애를 시의 소재로 택한 시인으로는 조퓌로스(기원전 6세기), 디필로스(기원전 5세기) 등이 있다.
3) 오딧세우스가 파르낫소스에 사는 외조부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멧돼지 사냥을 하다가 멧돼지 엄니에 부상당했다는 이야기는 <오딧세이아>제 19권(394행 이하 및 405행 이하 참조)에 잠깐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메로스가 이 사건을 취급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그가 <오딧세우스>에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거나 아니면 그가 가진 원전에는 이 사건이 빠져 있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제16장에서 당시의 부상에서 생긴 흉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오히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부분을 단순한 에피소드로 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오딧세우스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두고 트러이아 전쟁에 출전하고 싶지 않아서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의 친구이자 에우보이아 왕 나우폴리오스의 아들인 팔라메데스가 데리러 왔을 떼 소와 나귀를 함께 쟁기에 매고 밭을 갈며 밭이랑에다 씨앗 대신 소금을 뿌리면서 광증을 가장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오딧세이아>에는 나오지 않고 <퀴프리아>에 나온다.
5) 하나의 이야기라 해서 반드시 '전체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10) / 천병희 옮김
 
 
9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사실들로부터 명백한 것은 시인의 임무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개연성 또는 필연성의 법칙에 따라 가능한 일을 이야기하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가와 시인의 차이점음 운문을 쓰느냐 아니면 산문을 쓰느냐 하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헤레도토스의 작품은 운문으로 고쳐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율이 있든 없든 그것은 역시 일종의 역사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1)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는 보편적인 것을 말하는 경향이 더 강하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것을 말한다' 함은 다시 말해 이러이러한 성질의 인간은 개연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말하거나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시가 등장 인물들에게 고유한 이름을 붙인다 하더라고 시가 추구하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다. '개별적인 것을 말한다' 함은 이를테면 알키비아테스는 무엇을 행했는가 또는 무엇을 당했는가를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희극의 경우에는 이는 이미 명확해진 사실이다. 왜냐하며 희극에 있어서는 개연적 사건에 의하여 플롯이 구성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맞는 임의의 이름이 등장 인물들에게 붙여지기 때문이다.2) 이것은 풍자 시인들이 특정한 개인에 대하여 시를 쓰던 것과는 다른 수법이다. 그러나 비극의 경우는 기존 인명3)에 집착하고 있다. 그 까닭은 가능성이 있는 것은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일어나니 않은 것의 가능성은 아직 믿지 않지만 일어난 것은 가능성이 있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불가능한 것이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비극에 있어서도 유명한 이름은 한 둘 정도고 나머지는모두 가상적인 이름뿐인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유명한 이름이라고는 아예 하나도 나오지 않는 작품들도 있다. 예컨대 아가톤4)의 <안테우스>의 경우가 그렇다. 이 작품에서는 사건도, 등장 인물의 이름도 모두 시인의 창작이다. 그렇다고 쾌감이 덜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극의 소재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꼭 여기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사실 그와 같은 집착은 가소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유명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아는 사람은 소수뿐이고,5) 아는 사람이 소수 있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여러가지 사실들로부터 명백한 것은 시인6)은 모방하기 때문에 시인이요, 또 그가 모방하는 것은 행동인 이상 시인은 운율보다도 플롯의 창작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소재로 하여 시를 쓴다 하더라도 그는 시인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일어난 사건 중에도 개연성과 가능성의 법칙에 합치되는 것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이상 그는 이들 사건의 창직자7)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플롯8)과 행동 중에서 최악의 것은 삽화적인 것이다. 나는 여러가지 삽화들이 상호간에 개연적 또는 필연적인 관계도 없이 잇달아 일어날 때 이를 삽화적 플롯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종류의 행동을 졸렬한 시인들은 자신들의 무능으로 인해 구성하고, 우수한 시인들은 배우에 대한 고려에서9)에서 구성한다. 경연을 위하여 작품을 쓰다 보면 우수한 시인들을 종종 무리하게 플롯을 연장하여 사건의 전후 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10)
 그런데 비극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일 뿐 아니라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의 모방이다. 이러한 사건은 불의에, 그리고 상호간의 인과 관계 속에서 일어날 때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 사건은 이와 같이 발생할 때 저절로 또는 우연히 발생할 때보다 더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우연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의도에 의하여 일어난 것 같이 보일 때 가장 놀랍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르고스에 있는 미튀스11)의 조상(彫像)이 그 조상을 국경하고 있던 미튀스의 살해자 위에 떨어져 그를 죽게 한 사건이 그 한 예이다. 이와 같은 사건은 단순한 우연지사로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와 같은 플롯은 필연적으로 다른 플롯보다 훌륭하게 마련이다.
 
1) '철학적'이란 말 대신 '학문적'이란 말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는 개별적인 사실로부터 보편적인 진리를 귀납하기 때문이다. 연대기 편찬자와는 달리 시인은 인생을 알고 보편적인 원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시인은 우리에게 인간성으 변함없는 여러 가지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시적 진실이 현실과 일치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딱 잘라 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 단순한 연대기의 단계를 넘어서서 여러 가지 사건 사이의 복잡한 내면 관계를 규명한다고 할 때 우리는 과연 역사가 단순히 개별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데 그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에서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 관계가 시의 플롯만큼 뚜렷하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2) 이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이론은 실재 인물들 많이 취급한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에는 그대로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여기서는 가상적 인물을 통하여 당시의 여러 가지 성격 유형을 묘사하던 '신(新)희극'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신희극의 경우에는 먼저 플롯을 구성한 다음에 그 플롯에 맞는 임의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상례였다. 이것은 비극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극의 등장 인물들은 실재 인물들로 생각되긴 하지만 그들은 모두 유형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7장에서 비극 작가는 등장 인물의 이름과 삽화를 삽임하기 전에 먼저 수미일관한 플롯의 윤곽을 잡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3) '기존 인명'의 원뜻은 '실제로 있었던 사람들의 이름'인데 여기에는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우스 같은 전설적 인명과 좁은 의미의 역사적 인명이 모두 포함된다.
4) 아가톤은 3대 비극 작가의 계승자들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시인이다. 그는 기원전 416년에 레이나이아 제전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는데 이 우승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의 집에서 벌어졌던 잔치가 바로 플라톤의 <향연>의 배경이다. 그는 비극 사상 처음으로 코로스로 하여금 플롯의 내용과 관계가 없는 막간가(幕間歌)를 부르게 했고(제18장 참조). 처음으로 가상적인 사건과 가상적인 등장 인물로 꾸며진 비극을 소개했다. 현재 남아 있는 그의 작품은 40행이 못된다. <안테우스>에 관해서는 이 작룸의 사건과 등장 인물이 모두 시인의 창작이라는 점만 알려져 있는데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 작품은 후기 아테나이의 비극을 중기 및 신희극 사이에 교량적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5)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시 그리스 인들은 초보적인 교육만 받아도 시와 친숙해 질 수 있었고, 또 디오뉘소스 제전과  레이나이아 제전 때면 디오뉘소스 극장이 으례 만원을 이루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비극과 친숙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유명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아는 사람은 소수 밖에 없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그리고 비극 시인과 희극 시인의 임무를 비교한 안티파네스의 유명한 단편 <시>에도 비극의 플롯은 청중들에게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작품이 <시학>보다 그리 오래 전에 나온 것이 아니란 점을 생각한다면 그 동안 사정이 완전히 달라졋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6) 이 구절에 나오는 '시인'이란 말과 '창작자'란 말의 원어는 같다. 문맥에 따라 '시인' 또는 '창작자'라고 번역하였다.
7) 역사상 많은 사건들 중에는 시인(여기서는 형태적 의미의 역사가도 포함된다)이 그 전후 관계와 인과 관계를 밝힘으로써 스토리를 '창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설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8) '단순한 플롯'에 관해서는 다음 장 참조
9)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만 하더라도 시인보다는 배우(또는 심판관)의 비중이 더 컸던 것 같다. 아리스토렐레스 <수사학>1403b 33 참조.
10) 시인들은 경연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하여 예술가로서의 양심을 외면하면서까지 배우들이 요구하는 발언이나 쟁점 같은 것을 무리하게 작품 속에 집어넣는 사례가 비일비배했다.
11) 플루타르코스의 <에티카>에 따르면 미튀스는 기원전 4백년 경에 아르고스에서 당쟁으로 인하여 피살되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11) / 천병희 옮김
 
 
10
 
 
 
 플롯에는 단순한 것도 있고 복잡한 것도 있다. 그것은 플롯이 모방하는 행동이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이 앞서 규정한 바와 같이,1) 연속성2)과 통일성을 가지고 진행된다 하더라도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가 급전이나 발견3) 없이 이루어질 때 나는 이를 단순한 행동이라고 부르고,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가 급전이나 별견, 또는 이 양자를 다 수반하여 이루어질 때 복잡한 행동이라고 부른다. 급전이나 발견은 플롯의 구성 자체로부터 발생해야만 하므로 선행 사건(先行事件)의 필연적 또는 개인적 결과라야 한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과 다른 사건에 '이어서' 일어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1) 제7장 및 제8장 참조
2) '연속성을 가진다' 함은 플롯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건, 즉 삽화적 사건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같다.
3) 급전과 발전에 관해서는 다음 장 참조.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12) / 천병희 옮김
 
 
11
 
 
  급전이란 앞서 말한 바와 같이,1) 사태가 반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변화는 앞서 말했듯이 개연적 또는 필연적 인과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오디이푸스 왕>2)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자(使者)는 오디이푸스를 기쁘게 해주고 그를 모친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줄 목적으로 왔지만, 그의 신분을 밝힘으로써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우리는 또한 <륑케우스>3)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있다. 륑케우스는 처형되기 위해서 끌려가고 타나오스는 그를 처형하기 위해서 데리고 가던 도중 이에 선행했던 사건의 결과로 후자는 죽고 전자는 구출된다.
 발견이란 그 말 자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무지(無知)의 상태에서 지(知)의 상태로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등장 인물들이 행운의 숙명을 지녔느냐 불행의 숙명을 지녔느냐에 따라 우호 관계를 맺기도 되고 적대 관계를 맺게도 된다.4) 그런데 발견은 <오디푸스>에 있어서와 같이 급전을 수반할 때 가장 훌륭한 것이다. 물론 이와는 다른 종류의 발견도 있다. 왜냐하면 생명이 없는 사물이나 우연한 사물5)에 관해서도 앞서 말한 바가 어떤 의미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아니했는지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플롯 및 행동과 가장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발견은 처음에 말한 발견이다. 이와 같은 발견은 급전과 결합될 때 연민이나 공포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비극이 이와 같은 행동의 모방임은 이미 규정한 바 있다 - 그리고 불행해지느냐 행복해지느냐 하는 것도 발견과 급전에 의해 야기된 사태의 변화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발견은 인간 상호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한쪽의 신분이 이미 알려져 있는 경우에는 한쪽에서만 상대방의 신분을 발견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양쪽이 모두 상대방의 신분을 별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이피게네이나는 편지를 보냄으로써 오레스테스에게 발견되지만 오레스테스가 이피게네이나에게 알려지기 위해서는 다른 발견이 필요했던 것이다.6)
 플롯의 두 부분, 즉 급전과 발견은 이상과 같은 사항에 관한 것이다. 제3의 부분은 파토스8)다. 파토스란 무대 위헤서의 죽음, 고통, 부상 등과 같이 파괴 또는 고통을 초래하는 행동을 말한다. 이 가운데 나머지 두 부분, 즉 급전과 발견에 관해서는 이미 설명한 바 있다.
 
 
1) 제7장 마지막 부분에 있는 '불행에서 행복으로 또는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뀔 수 ---'라는 구절을 말한다.
2) 소포클레스의 <오디푸스 왕> 911~1805행 참조
오디푸스는 자기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아폴론 신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코린토스를 떠난다. 그는 코린토스 왕 폴뤼보스와 왕비 메로페가 자신의 양친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유랑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어떤 삼거리에서 마차를 탄 일행과 마주쳐 서로 길을 비켜라 못 비킨다 하여 하며 언쟁을 하다가, 마차에 타고 있던 노인에게 채찍질을 당하여 격분하여 노인을 때려 죽인다. 그런데 그 노인은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였다. 그 뒤 오디푸스는 테바이에 가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그 공으로 테바이의 왕이 되고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한다. 그리고 라이오스가 살해될 때 도망쳐 온 라이오스의 시종은 테바이의 신왕(新王)이 라이오스임을 알고 테바이를 떠난다. 그리하여 오이디푸스는 자기가 실부(實父)를 죽이고 생모와 결혼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이오카스테와의 사이에 네 명의 자녀까지 낳고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여기까지가 <오이디푸스 왕>의 전제이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코린토스에서 한 사자(使者)가 와서 폴뤼보스 왕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코린토스 시민들이 오이디푸스를 새왕으로 모시고 싶어한다는 뜻을 전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오이디푸스는 아폴론 신의 예언 가운데 전반부는 실현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나, 아직도 후반부는 실현이 가능하다면서 두려움을 표시한다. 그러나 사자는 오이디푸스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볼뤼보스 왕과 메로페 왕비가 그의 친부모가 아님을 밝힌다. 그러나 도리어 이것이 화근이 되어 모든 진상이 밝여짐으로써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맹인(盲人)이 되어 유랑의 길을 떠나고 이오카스테는 목매어 죽는다.
3) <륑케우스>는 아리스토텔레스 당시의 인기 작가 테오덱테스(기원전 4세기)의 작품으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으나 륑
케우스의 전설은 다름과 같다.
이집트 왕 아이귑토스와 다나오스는 형제 간으로 전자는 50명의 아들을 후자는 50명의 딸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귑토스의 아들은 다나오스의 딸들과 결혼하기를 원하지만, 이를 완강히 반대하는 다나오스와 그의 딸들은 친족들에게 구원을 청하기 위하여 아르고스로 달아난다, 그러자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은 결혼하기 위하여 아르고스로 뒤쫓아간다. 그리하여 다나오스는 마지못해 결혼을 승낙하게 되지만 첫날밤에 삳대자를 모두 자살(刺殺)하도록 딸들에게 명한다, 다른 딸들은 모두 부명(父命)에 따르나 휘페름네스트라만은 상대자인 륕케우스를 죽이지 않고 도망시킨다. 이 비밀 결혼에서 두 사람 사이에 아바스라는 아들이 태어나는데 이 아들이 발각됨에 따라 모든 비밀이 드러나게 되어 륑케우스도 체포된다. 그리하여 륑케우스가 처형되려는 순간 다나오스의 잔인무도한 처사에 분격한 아르고스 시민들은 륑케우스를 구출하고 다나오스를 죽인다.
4) 이온은 자기를 죽이려 하던 여인이 자기 어머니임을 발견한다, 에우리피데스의 <이온> 참조
아이기스토스는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길보(吉報)를 전해준 자기 바로 오레스테스 자신임을 발견한다,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참조.
5)  <이온>에 나오는 목걸이처럼 발견의 근거가 되는 표지(標識)를 말한다.
6)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720행 이하 참조
이피게네니아는 트로이와 전쟁 때 그리스 군의 총수였던 아가멤논의 딸이다. 그리스 군이 출범하기 위하여 아울리스 항에 집결했을 때 아가멤논은 잘못하여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성한 사슴을 죽였기 때문에 여신의 노여움을 산다. 그래서 아가멤논은 여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하여 딸 이피게네이나를 여신께 제물로 바친다. 그러나 여신은 이피게네이가 제물로 바쳐지는 순간 그녀를 납치하여 타우리케로 데리고 가 그곳에 있는 여신의 신전에서 사제(司祭)가 되게 한다. 이피게네이아의 임무는 이곳에 표류해오는 이방인들을 여신께 재물로 바치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레스테스와 그의 친구 퓔라데스가 아폴론 신의 신탁에 따라 이곳에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상(女神像)을 훔치러 왔다가 체포되어, 제몰로 바쳐지기 위하여 이피게네이아 앞으로 끌려간다. 그녀는 자기를 제물로 바쳤던 그리스 인들을 마음속으로 늘 원망하고 미워하면서도 두 청년을 보자 왠지 고향 생각이 나서 그들의 고향을 묻게 된다. 두 청년이 그리스 인임을알게 된 이피게네이나는 고향의 안부를 묻고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통하여 고향에 있는 동생 오레스테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 가운데 퓔라데스가 가기로 결정된다. 그녀는 도중에 파선(破船)되어 편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편지의 내용을 읽어준다. 그리하여 오레스테스는 그녀가 자기 누이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어서 오레스테스는 자기가 그녀의 아우임을 밝히게 되는데, 그 방법이 약간 인위적이다. 그는 자기가 오레스테스임을 믿게 하기 위하여 그녀가 '황금 양 모피 이야기'를 수놓은 적이 있다는 사실과 펠롭스의 오래된 창이 그녀의 침실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6장에서 이피게네이아가 오레스테스에게 발견되는 방법은 훌륭하지만 오레스테스가 이피게네이아에게 발견되는 방법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7) 파토스에 관해서는 제13장 및 제14장에 언급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13) / 천병희 옮김
 
 
121)
 
 
  비극의 구성 요소로서 사용되어야 할 여러 부분에 관해서는 앞서 말한 바 있다.2) 그러나 양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비극은 프롤로고스(Prologos)와 삽화(epeisodion)와 엑소도스(exodos)와 코로스의 노래로 구분되며, 코로스의 노래는 다시 등장가(登場歌 parodos)와 정립가(停立歌 stasimon)로 구분된다.3) 이 두가지는 모든 비극에 공통된 것이나 본무대(本舞臺) 위에서 부르는 노래와 애탄가(哀歎歌 kommos)4)는 소수의 비극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프폴로고스는 코로스의 등장가에 선행하는 비극의 전체5)부분이고, 삽화는 코로스의 전체 노래와 노래 사이에 삽입된 비극의 전체 부분이다. 엑소도스는 코로스의 마지막 노래 다음에 오는 비극의 전체 부분이다. 코로스의 노래 가운데 등장가는 코로스의 최초의 발언 전체이고, 정립가는 단단장격 운각과 장단격 운각이 사용되지 않는코로스의 노래이고,6) 애탄가는 코로스와 배우가 합창으로 부르는 비탄의 노래이다. 비극의 구성 요소로서 사용되어야 할 여러 부분에 관해서는 앞서 이야기한 바 있고, 양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비극은 이상과 같은 여러 부분으로 구분된다.
 
1) 아리스토텔레스는 제6장에서 먼저 비극의 본질을 정의하고 이어서 비극의 질적 또는 내적 구성 요소를 구분한 다음, 제7장부터 제14장까지 계속해서 플롯에 관해서 논술하고 있다. 따라서 본장은 논지상 본론에서 이탈한 감이 없지 않으나, 이미 <시학>의 맨 첫 구절과 맨 마지막 구절에서 비극의 질적 요소와 양적 요소의 구분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 걸 보면 비극의 양적 부분에 관해서도 설명하려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다만 그 위치가 좀 납득하기 어려울 뿐인데, 아마 비극의 질적 구성 요소를 구분한 제6장 다음에 있었더라면 논리상 합당한 위치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실제로 하인시우스(7세기) 같은 사람은 본장은 제6장 뒤로 보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2) 제6장을 말한다.
3) '프롤로고스'는 드라마의 주제와 상황을 설명하기 위하여 드라마의 맨 처음에 나오는 독백 또는 대화 부분이다. 테스피스의 창안이란 걸 보면 아주 초기에 속하는 작품에서도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프롤로고스라는 용어는 적어도 아리스토파네스 시대에는 통용되었음이 분명하다. 아리스토파네스 <개구리> 1119행 참조.
그러나 소수이긴 하나 코로스의 등장가와 더불어 시작되는 비극도 있다.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 인들> 및 <탄원하는 여인들>이 그 예다.
 '삽화'는 근대극의 막이나 장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원래 코로스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인 개량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코로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으며 대화 부분은 부차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차츰 개량되어 배우의 역할이 중심이 되고 코로스의 역할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삽화란 배우가 연출하는 장면과 대화를 말한다. 삽화란 말은 원래 코로스에게 무엇을 알리기 위하여 배우가 무대 위에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등장가'는 코로스가 자신들의 위치인 오케스트라를 향해 걸어가면서 부르는 노래다.
 '정립가'는 코로스가 오케스트라 위에서 부르는 노래인데 원래는 선행 삽화에 대하여 느낀 바를 읊었다. 그러나 아가톤 이후부터는 플롯의 내용과 무관한 막간가(幕間歌)로 변질되었다.(제18 참조)
 엑소도스는 원래 코로스가 오케스트라에서 물러날 때 부르는 합창가였다. 그러나 시인들 대부분 코로스의 지휘자와 배우 간의 대화로 이를 대신했으므로, 엑소도스는 최후의 정립가 댜음에 오는 모든 장면과 대화를 의미하게 되었다.
4) '본무대'란 코로스의 자리인 오케스트라에 대하여 배우가 공연하는 무대를 말한다. 그리고 본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란 배우가 부르는 노래(여기에는 애탄가와 서정적 독창가가 포함된다)를 말한다.
 '애탄가'로 번역한 kommos는 가슴을 치며 애통해한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로 코로스와 배우(보통 한 사람이나 때에 따라서는 두 사람)간의 서정적 대화에 대한 전문 용어이다. kommos는 대부분이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가이므로 나중에 모든 애도가에 대하여 kommos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5) '전체'란 말이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는데, 경우에 따라 '다른 부분에 의하여 중단되지 않는' '그 자체로 하나의 통일적인 전체를 이루고 있는'이란 뜻이 되겠으나 단순히 강조의 의미로도 쓰이고 있는 것 같다.
6) 이 말은 현존 작품에는 적용될 수 없을 것이다. 이들 가운데 많은 작품에서 단단장격 및 장단적 운각을 사용하고 있는 정립가의 행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기원전 4세기의 비극에는 적용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18장 마지막 부분에 3대 비극 작가 이후 코로스의 사용법이 많이 변했다는 말이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14)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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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논의한 것에 이어서 우리는 1) 플롯을 구성함에 있어 무엇을 택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가 2)어떻게 해야 비극의 효과가 산출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1)
 가장 휼륭한 비극이 되려면 플롯이 단순하지 않고 복잡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모방하지 않으면 안된다.2)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종류의 모방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세 가지 플롯은 당연히 피해야 한다.
 1) 유덕한 자가 행복하다가 불행해지는 것을 보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포의 감정도 연민의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고 불쾌감만 자아내기 때문이다.
 2) 약한 자가 불행하다가 행복해지는 것을 보여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비비극적(非悲劇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극의 필요조건을 하나도 구비하고 있지 않다. 즉 그것은 인정에 호소하는 점도 없고 연민의 감정도 공포의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3) 극악한 자가 행복하다가 불행해지는 것을 보여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플롯으 구성은 인정에 호소하는 점은 있을지 모르나 연민의 감정도 공포의 감정도 불러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연민의 감정은 부당하게 불행을 당하는 것을 볼 때 환기되며, 공포의 감정은 우리 자신과 유사한 자가 불행을 당하는 것을 볼 때 환기된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연민의 감정도 공포의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남은 것은 이들3)이 중간에 있는 인물이다. 덕과 정의에 있어 탁월하지는 않으나 악덕과 비행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과실4) 때문에 불행을 당한 인물이 곧 그러한 인물인데, 그는 오이디푸스나 튀에스테스5)나 이와 동등한 가문의 저명인ㄷ물들처럼 튼 명망과 번영을 누리는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어야 한다.
 따라서 훌륭한 플롯은 단일한 결말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며, 일부 사람들이 말하듯이 이중의 결말을 가져서는 안 된다6). 주인공의 운명은 불해에서 행복으로 바뀌어서는 안 되고,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어야 한다7). 그러나 그 원인은 비행에 있어서는 안 되고 중대한 과실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우리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인물이거나. 혹은 그보다 훌륭한 인물이어야야지 그보다 열둥한 인룸이라서는 안 된다. 사실이 또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초기에 시인들은 암 스토리나 닥치는 대로 취급했으나 오늘날 가장 훌륭한 비극들은 몇몇 가문의 스토리에서 취재하고 있다. 예컨대 알크메온8)이나, 오이디푸스나, 오레스테스9)나 멜레아그로스10)나, 튀에스테스나, 텔레포스11)나 기타 무서운 일을 당했거나 저지른 인물들을 비극의 소재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이론적으로 보아 가장 훌륭한 비극은 이와 같은 플롯을 가진다.
 따라서 에우리피데스가 그의 비극에서 이러한 원칙을 따르고, 그의 비국이 대부분 불행한 결말로 끝난다고 해서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올바른 원칙이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증거로, 그러한 비극은 무대상에서 그리고 경연 때 잘하기만 하면 가장 비극적이라는 인상을 주며, 또 에우리피데스는 다른 점에서는 결점이 있다 하더라도12) 시인들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시인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오딧세이아>처럼 이중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성인과 악인의 운명을 반대 방향으로 결말짓는 플롯13)의 구성을 제1위로 간주하지만 이러한 플롯의 구성은 역시 제2위이다. 이러한 플롯의 구성이 제1위로 간주되는 것은 관중위 약점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인들은 관중에 추종하여 관중이 원하는 대로 작품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의 쾌감은 비극적 쾌감이 아니라 희극적 쾌감이다. 희극에 있어서는 오레스테스와 아이기스토스14)같이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전해지고 있는 사람들도 종국에 가서는 친구가 되어 퇴장한고 살인자나 피살자는 산 사람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15)
 
 
1) 이 두 가지 문제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플롯을 구성하고자 함은 비극의 효과를 산출하기 위함이고, 또 비극의 효과를 산출하고자 함은 비극의 궁극 목적인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2) 제10장 참조
3) '이들'이란 유덕한 자와 악한 자를 가리킨다.
4) 여기서 '과실'이라고 번역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상당히 의견이 구구하다. 일부 학자들은 도덕 및 성격적인 결함을 의미하거나 그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또 일부 학자들은 그와 같은 도덕적인 의미 없이 단순히 판단 착오나 실수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루카스(D.W, Lucas)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를 들어 후자의 견해가 타당함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이 말이 성격적인 결함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둘째. <시학>의 이 부분에서 논하고 있는 것은 성격이 아니라 플롯이며, 또 제15장에서 성격 문제를 취급하고 있으나 어떤 결함이나 결점에 관한 언급이 없고, 셋째. 아리스토텔레스가 의미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 자주 인용하는 <오이디푸스 왕>을 예로 들더라도, 오이디푸스의 불행은 어떤 성격적인 결함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자기 부모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과실에 기인하며, 넷째. 제14장에서 비극에 가장 적합하다고 추천하고 있는 상황도 오이디푸스의 그것과 같은 과실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훌륭한 비극은 소수의 가문에서 취재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그러한 가문만이 비극적 과실의 공식에 맞기 때문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만약 성격적 및 도덕적 결함이 문제라면 굳이 소수의 가문에 국한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14장에서 언급되고 있는 여러 가지 플롯에서 보면 이 말은 상대방의 신분을 모르고 있다는 그런 종류의 과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5) 튀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와 더불어 펠롭스의 아들이었다. 형제는 아버지 사후(死後) 번갈아 뮈케네를 통치하기로 약속하나 튀에스테스의 차례가 되자 아트레우스는 약속을 어기고 주권을 앙도하려 하지 않는다. 이에 튀에스테스는 아트레우스의 처 아에로페를 유혹하여 주권의 상징은 황금 양 모피를 훔치다가 아트레우스에 의하여 뮈케네에서 추방된다, 아트레우스는 후일 그를 다시 불러들인 다음, 그의 자식들을 죽여 그 고기로 그를 대접한다. 튀에스테스는 이 사실을 알고 질겁하고 달아나면서 아트레우스 가(家)를 저주한다, 그는 자기 딸 펠로피아와 교합하여 아이기스토스라는 아들을 얻게 되는데, 아이기스토스는 후일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트로이아로 원정가고 없을 때 그의 처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유혹하여 그가 원정에서 돌아왔을 때 둘이 공모하여 그를 살해한다. 그러나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후일 누이 엘렉트라의 도움으로 아이기스토스와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 소포클레스도 그를 주인공으로 하여 비극을 썼는데 단편만 남아 있다. 
6) '단일한 결말'이란 주인공의 운명이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는 것을 말하고, '이중의 결말'이란 악한 자의 운명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선한 자의 운명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결말이 '단일'이냐 '이중'이냐 하는 문제는 플롯이 '단순'하냐 '복잡'하냐의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7) 비극의 주인공의 운명은 행복에서 불해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어디까지나 운명이 이렇게 바뀌어야만 비극의 효과를 훌륭하게 산출할 수 있다는 일반론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는 제14장에서 오히려 범행 직전에 상대방이 자기 친구 또는 친척임을 발견하고는 범행을 그만두는 플롯을 가장 훌륭한 플롯이라고 칭찬하면서 <이피게니아>의 예를 들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머리말 참조.
8) 알크메온은 암피아라오스와 에리퓔레의 아들이다. 암피아라오스는 예언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테바이를 공격한 7인' 가운데 아드라스토스만 살고 나머지는 모두 전사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출전을 거부하지만 그의 처(妻) 에리퓔레는 폴뤼네이케스의 목걸이에 매수되어 남편의 출정을 강요한다. 그래서 암피아라오스는 마지못해 떠나면서 자기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어머니를 죽일 것과, 다시 테바이를 칠 것을 아들 알크메온에게 명령한다. 그 뒤 알크메온은 아버지의 명령대로 테바이에서 전사한 7인의 아들들과 같이 테바이를 치고 돌아와서 어머니를 죽인다. 그리고 에리퀼레의 목걸이는 그 뒤에도 수많은 불행의 원인이 된다. 그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여 작품을 쓴 시인으로는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가톤 등이 있다.
9) 오레스테스에 관해서는 본장 주5 참조.
10) 멜레아그로스는 칼뮈돈 왕 오이네우스와 알타이아의 아들로 그가 태어나던 날 운명의 여신들이 나타나 화덕에서 타고 있는 장작개비가 다 타고 나면 아이는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들은 어머니는 타고 있는 장작개비를 난로 속에서 끄집어내어 불을 끈 다음 조심스럽게 감추어둔다. 후일 멜레아그로스가 성인이 되었을 때, 오이네우스가 아르케미스 여신에게 재물 바치기를 소홀히 하여 여신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큰 멧돼지 한 마리를 보내 칼뮈돈을 쑥대밭으로 만들게 한다. 이에 멜레아그로스는 많은 영웅들을 모아 그 멧돼지를 잡게 되는데, 멧돼지의 목을 찌른 것은 그였지만 맨 먼저 부상을 입힌 것은 아칼란테라는 처녀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평소부터 그녀를 연모하던 멜레아그로스는 멧돼지의 머리를 그녀에게 준다. 그러나 그의 외삼촌들이 불공평한 처사라며 이를 도로 빼앗으려 하자 그는 외삼촌들을 죽인다. 자기 오라비들이 자기 아들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알타이나는 감추어 두었던 장작개비를 불 속에 던진다. 그것이 다 타고 나자 멜레아그로스는 죽고 그녀도 자살한다. 그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여 비극을 쓴 시인으로는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프뤼니코스 등이 있다.
   11) 텔레포스는 헤라클레스의 아들로 뮈시아의 왕이다. 그는 그리스 군이 트로이아로 가던 도중에 뮈시아에
상륙했을 때 아킬레우스와 싸우다가 부상당한다. 그 후 그는 부상을 입힌 자가 상처를 낫게 해 줄 것이라는 신탁에 따라 아울리스 왕으로 아킬레우스를 찾아간다. 그러나 신탁이 말한 부상을 입한 자란 아킬레우스 자신이 아니라, 그의 창을 의미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그는 아킬레우스의 창에 슨 녹으로 상처를 고치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여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퀼로스가 작품을 썼다고 하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12)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하고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결점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a)그의 작품 <메데이아>에서 주인공 메데이나는 자기 자식들을 의식적으로 죽인다. 제14장 참조. b)메데이아가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에게 추방 명령을 받고 난처하게 되었을 때 선행 사건과 아무런 인과 관계도 없이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가 나타나 그녀에게 피난처를 제공한다. 제25장 참조. c)<메데이아>에서 사건의 해결이 플롯 자체에 기인하지 않고 기계 장치에 의존한다. 제15장 참조. d)그의 코로스의 노래는 소포클레스의 그것에 비해 플롯과 연관성이 적다. 제18장 참조. e)그의 작품 <아울리스의 이피게네니아>에서 주인공 이피게네이아의 성격이 일관성이 없다. 제15장 참조. f)그의 작품 <오레스테스>에서 플롯이 요구하지도 않는데 멜라닙페의 성격이 쓸데없이 비열하다. 제15장 참조. g)그의 작품 <현명한 멜나닙페>에서 궤변을 늘어놓는 멜라닙페의 성격이 여자로서는 너무 지적이다. 제15장 참조. h)그의 작품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오레스테스의 신분이 플롯 자체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발견되지 않고 본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밝혀진다. 제16장 참조.
13) 본장 주6 참조
14) 본장 주3 참조
15) 현존 희극에서는 이러한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15)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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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와 연민의 감정은 장경(場景)1)에 의하여 환기될 수도 있고 사건의 구성 자체에 의하여 환기될 수도 있는데 후자가 더 훌륭한 방법이며 더 훌륭한 시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플롯은 눈으로 보지 않고 사건의 경과를 듣기만 해도 그 사건에 전율과 연민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끔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단순히 듣기만 해도 느끼게 되는 감정인 것이다. 장경에 의하여 이와 같은 효과를 산출하는 것은 비예술적이며 많은 비용이 든다. 공포를 환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기괴한 것을 보여줄 목적으로 장경을 이용하는 자들은 비극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왜냐하면 비극으로부터 모든 종류의 쾌감을 구할 것이 아니라 비극에 고유한 쾌감만을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극의 쾌감은 연민과 공포에서 오는 쾌감인 바 시인은 이러한 쾌감을 모방에 의하여 산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시인이 모방하는 사건에는 이러한 쾌감의 원인이 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면 어떤 종류의 사건이 무섭다는, 또는 가엾다는 인상을 주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와 같은 사건에 있어서 당사자들은 필연적으로 서로 친구이거나, 적이거나 또는 그 어느 것도 아닌 사이일 것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서로 적대 관계에 있을 때는 피해자의 고통을 제외하고는 그 행동에 있어서나 의도에 있어서나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이 점은 당사자들이 친구도 적도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극적 사건이 친근자(親近者)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면, 예컨대 살인이나 기타 이와 유사한 행위를 형제가 형제에게,2) 혹은 아들이 아버지에게,3) 혹은 어머니가 아들에게4) 혹은 아들이 어머니에게5) 행하거나 기도한다면 이와 같은 상황이아말로 시인이 추구해야 할 상황이다.
 따라서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오레스테스에게 피살된다든가6) 에리퀼레가 알크메온에게 피살되는7) 것과 같은 전래의 스토리는 그대로 보전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전래의 소재를 올바로 취급하는 방법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올바로 취급한다' 함은 무엇을 뜻하는지 좀더 분명하게 설명해보기로 하자.
 무서운 행위는 옛 시인들의 작품에서 불 수 있는 바와 같이 고의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행하여질 수 있다. 예컨대 에우리피데스가 메데이아로 하여금 자기 자식들을 죽이게 하는 경우가 그렇다.8)
 또 자기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행위인지 알지 못하고 행한 뒤에 나중에 가서야 친근 관계를 발견할 수도 있다.9) 예컨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의 경우가 그렇다. 여기에서는 무서운 행위가 드라마 밖에 있다. 그러나 비극 자체에 있을 수도 있다. 예컨대 아스튀마다스10)의 작품에 나오는 알크메온이나, <부상당한 도딧세우스>11) 나오는 텔레고노스의 행위가 그렇다. 제2의 가능성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고 무서운 행위를 저지르려 하다가, 실행에 옮기기 전에 상대방이 누구인지 발견하게 되는 경우이다. 그 밖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 왜냐하면 행위는 필연적으로 실행되든지, 실행되지 않든지, 알고 하든지, 모르고 하든지, 그 중 어느 것이기 때문이다.12) 이상의 여러 가지 상황 가운데 최악의 것은 알고 행하려 하다가 실행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것은 불쾌감만 자아내며, 또 아무런 고통도 없기 때문에 비극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안티고네>13)에서 아이몬이 크레온을 죽이려 하다가 실행하지 않은 것과 같은 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그와같이 행동하는 인물을 그린 작품은 없다. 그 다음 가는 것14)은 알고 행하려 하던 행위를 실행하는 경우다. 이보다 나은 것은 모르고 행했다가 행한 뒤에야 발견하는 경우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불쾌감을 자아낼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발견은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것은 마지막 경우이다. 이를테면 <크레스폰데스>15)에서 메로페가 아들을 죽이려다가 아들임을 발견하고 죽이지 않는다든가, <이피게이아>16)에서 아들이 어머니를 그녀의 적에게 넘겨주려다가 어머니임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이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18) 소수의 가문만이 비극의 소재가 되는 이유를 설명해줄 것이다. 시인들이 소재를 구하다가 이러한 종류의 사건을 자신들의 플롯 속에 구현하게 된 것은 기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19) 그러므로 시인들은 아직도 이와 같은 무서운 사건이 일어난 가문을 소재로 하지 않을 수 없다. 플롯의 구성과 플롯이 이러한 종류의 것이어야 하는지에 관해선 이상으로 충분히 이야기했다.
 
 
1) 제18장을 읽어 보면 극적 효과를 장면이나 분장에 의존한 작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이스퀼로스의 <자비로운 여신들>에 나오는 복수의 여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임부들이 유산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다른 작품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서도 소의 머리를 한 이오와 오케아노스의 날개 달린 말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아이스퀼로스만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2) 에우리피데스의 <포이니케 여인들>에서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에케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는 1대 1로 싸우다가 둘 다 죽는다.
3)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한다.
4) 알타이아는 아들 멜레아그로스를 죽인다. 제13장 주 10 참조
5) 아이스퀼로스는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과 소포클레스 및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에서 오레스테스는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한다.
6) 제13장 주5 참조
7) 제13장 주8 참조
8) 에우리피데스의 <베데이아>1236행 이하 참조
메데이나는 콜키스의 공주인데 황금 양 모피를 구하기 위하여 그곳을 찾아온 이아손을 보고 첫눈에 반해서 고국과 부모형제를 배반하고 그를 따라 그의 고국인 이올코스로 달아난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하자 남편을 위하여 그의 숙부 펠리아스를 죽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추방되어 코린토스로 도망쳐 그곳에서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여기까지가 에우리피데스의 작 <메데이아>의 전제다.
그러던 어느 날 코린토스 왕 크레온이 이아손에게 메데이아와 헤어지고 자기 딸과 결혼하면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원래 야심이 많은데다 메데이아에게 싫증이 난 이아손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메데이아의 복수가 겁이 난 크레온은 그녀와 그녀의 두 자식에게 추방 명령까지 내린다. 배은망덕한 남편의 처사에 격분한 메데이아는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마술과 간계(奸計)를 써서 코린토스의 공주를 죽인 다음 자기 자식들을 의식적으로 죽인다.
9) 오이디푸스는 어떤 삼거리에서 라이오스와 만나 서로 길을 비키라고 시비하다가 자기 아버지인 줄 모르고 그를 죽인다. 이 무서운 살부 행위는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전제 부분에 속하며 비극 안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10) 아스튀다마스는 기원전 4세기에 활동한 다작(多作)의 비극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에서 알크메온은 에리퀼레를 어머니인 줄 모르고 살해한다.
11) 텔레고노스는 오뒷세우스와 키르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아버지를 찾아 이카케에 갔다가 아버지인 줄 모르고 그를 살해한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는 <부상당한 오뒷세우스>는 현존하지 않으나 소포클레스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12) 아리스토텔레스는 상대방이 누구인 알고 행하려 하다가 실행하지 않은 제4의 가능성을 빠뜨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확실히 비극적인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13)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1231행 이하 참조
오이디푸스의 아들 폴뤼네이케스는 형 또는 아우닝 에테오클레스에게서 왕위를 돌려받기 위하여 6인의 장수를 데릭 테바이로 진격했다가 에테오클레스와의 1대 1 싸움에서 둘 다 전사한다. 그러자 새로 왕이 된 크레온은 테바이를 위하여 싸우다 죽은 에케오클레스는 후하게 장사지내되 테바이를 치러 왔다가 죽은 폴뤼네이케스의 시체는 땅에 뭊디 말고 들에 그냥 내버려두라는 포고를 내린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혈육의 정에 끌려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들에 버려진 오라비 폴퓌네이케스의 시체를 몰래 묻어준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크레온은 그녀를 생매장 형에 처한다. 그러나 평소 그녀를 연모하던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그녀와 생사를 같이하기로 결심한다. 이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은 크레온은 아들을 구하기 위하여 안티고네가 생매장된 곳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하이몬은 아버지를 보자 격분하여 칼을 빼들고 덤벼든다. 크레온은 놀라 도망치고 하이몬은 그 칼로 자기 가슴을 찔러 이미 목매어 죽은 안티고네의 발 아래에 쓰러진다.
14) 최악의 것 다음 가는 것, 즉 그 다음으로 나쁜 것이란 뜻이다.
15) <크레스폰테스>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으로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이 작품의 소재가 된 전설은 다음과 같다.
반역자 폴뤼폰테스는 멧세네 왕 크레스폰테스를 살해하고 왕비 메로페를 빼앗는다. 왕이 살해될 때 두 아들도 같이 살해되고 막내아들 아이귑토스만 어머니의 도움으로 외조부인 아르카디아 왕 큅셀로스에게 도망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폴뤼폰테스는 이 아이의 머리에 현상금을 걸고 사방으로 수배케 한다. 많은 세월이 흘러간 뒤 이미 성인이 된 아이귑토스는 복수하기 위해서 멧세네로 돌아와 일단 적을 안심시킬 목적으로 자기는 아이큅토스를 잘 아는데 곧 잡아 바치겠다고 장담한다. 이 말을 듣고 놀란 메로페는 아이귑토스에게 주의들 주기 위하여 노복(老僕) 한 명을 아르키디아로 보내는데, 그곳은 그곳대로 아이큅토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야단들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메로페는 아이귑토스를 잡아 바치겠다고 장담한 그 젊은이가 아이귑토스를 이미 죽인 것으로 단정하고 복수하기 위하여 노복을 데리고 밤에 그 젊은이의 침실로 잠입한다. 그를 죽이려고 메로페가 도끼를 쳐드는 순간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을 본 노복은 그가 바로 아이큅토스 자신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어서 그들은 힘을 모아 소기의 복수를 단행한다.
16) 제11장 주6 참조
17) <헬레>에 관해서는 작가도 작품 내용도 달리 알려진 것이 없다. 헬레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남편 아타마스로부터 이혼당한 네펠레는 자기 두 자녀 프릭소스와 헬레를 황금 털을 가진 날개 달린 양(羊)에 태워 콜키스로 보내는데 헬레는 도중에 바닷물에 떨어져 죽고 - 그래서 이 해협을 헬레스폰토스('헬레의 바다'란 뜻)라고 부른다.  - 프릭소스는 무사히 도착한다. 이 양은 그 뒤 제우스 신에게 바쳐졌는데 이 양의 양피가 저 유명한 '황금 양 모피'이다.
그러나 이 전설은 이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18) 제13장 참조
19) 일반적으로 경험이 이론에 앞서듯이 비극 시인들도 작시 이론이 아니라 경험에 의하여 비극의 효과를 산출하기에 적합한 소재를 구하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만일 그들이 작시 이론에 의하여 작품을 썼더라면 자신들이 원하는 플롯을 무엇이나 창안해낼 수가 있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16)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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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격에 있어서는 추구해야 할 점이 네 가지가 있다. 그 중 첫째는 성격이 선량해야 한다는 것이다.1) 앞서 말했듯이2) 등장 인물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도를 명시할 경우 그는 성격을 가지는데 이때 의도가 선량하면 성격도 선량할 것이다. 선량한 성격은 모든 종류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와 노예도 - 비록 전자는 열등한 존재이고 후자는 전혀 무가치한 존재이지만 - 선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성격은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여자도 용감할 수 있다.3) 그러나 용감하거나 똑똑한 것은 여자의 성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셋째는 작품 속에 나오는 성격이 전래의 스토리에 나오는 그 원형(原型)과 유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방금 규정한 바 있는, 성격이 선량하고 적합해야 한다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넷째는 성격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방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 일관성이 없는 성격을 가진 인물이라면 그는 시종일관 일관성이 없어야 한다.
 를롯이 요구하지도 않는 비열한 성격의 예는 <오레스테스>4)의 메넬라오스에게나 볼 수 있고, 맞지 않고 부적합한 성격의 예는 <스퀼라>5)나오는 오뒷세우스의 통곡과 멜라닙페6)의 변론에서 볼 수 있으며, 일관성 없는 성격의 예는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7)에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이피게네이아는 나중의 이피게네이아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성격에 있어서도 사건의 구성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필연적인 것 혹은 개연적인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이러이러한 사람이 이러이러한 것을 말하거나 행할 때 그것은 그의 성격의 필연적인 혹은 개연적 결과라야 하며, 두 사건이 이어서 일어날 때는 후자는 전자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라야 한다. 따라서 사건의 해결도 플롯 자체에 의하여 이루어져야지, <메데니아>8)나 <일리아스>9)에서 그리스 군의 출범이 저지당했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계 장치10)에 의존해서는 안 됨이 명백하다. 기계 장치는 드라마 밖의 사건, 즉 인간이 알 수 없는 과거의 사건이나 예언 또는 고지(告知)할 필요가 있는 미래의 사건에 한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11) 왜냐하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신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비극 내의 사건에는 사소한 불합리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불가피한 경우에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비극 밖에 있어야 한다.12)
 비극은 보통 이상의 인간의 모방이므로 우리는 훌륭한 초상 화가들을 본보기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훌륭한 초상 화가들은 실물의 고유한 형상을 재현함에 있어 실물과 유사하게 그리되 실물보다 더 아름답게 그린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성미가 급한 사람이나 성미가 느린 사람이나 이와 유사한 성격상의 특징을 가진 인물로 그리되 선량한 인물로 그려야 한다. 우리는 그 예를 아가톤13)과 호메로스가 그린 아킬레우스에게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상과 같은 여러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밖에도 작시술에 직접 관련되는 범위 내에서의 무대 효과14)에 관한 여러 가지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이 점에 있어서도 종종 과오를 범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관해서는 이미 간행된 바 있는 저술15)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1) 비극이 소기(所期)의 효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선량한 성격이 반드시 필요하다. '등장 인물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도를 명시하는 경우 그는 성격을 가지게 마련이므로' 성격은 곧 의도에 의해서 결정된다. 만일 주인공이 나쁜 의도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그 결과 불행해진다고 한다면, 이러한 상황은 연민이나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불쾌감만 자아낼 것이다. 그래서 제13장에서도 비극의 주인공은 악덕이나 비행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과실 때문에 불행을 당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 비극은 원래 종교 의식에서 기원했기 때문에 <오델로>에 나오는 이아고같은 악당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엄숙한 예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제6장 참조
3) 루카스의 견해
4) 에우리피데스의 <오레스테스>에서 오레스테스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간부(姦夫)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한 지 6일째 되던 날 아르고스 시민들은 모친 살해범인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를 돌로 쳐 죽이기로 결정한다.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 두 남매는 마침 트로이아 원정에서 돌아온 숙부 메넬라오스가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해주리라 믿고 그에게 구원을 청한다. 그러나 가련할 정도로 비겁해진 메넬라오스가 그들의 요청을 외면한다.
5) <스퀼라>는 티모테오스(제1장 주2 참조)의 디튀람보스인데 이 시에서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전우들이 괴물 스퀼라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보고 통곡한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오뒷세우스 같은 영웅이 통곡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과 그러한 오뒷세우스는 우리가 전설을 통하여 알고 있는 오뒷세우스와 다르다는 점이다.
스퀼라는 멧시나 해협의 동굴에 사는 괴물인데 지나가는 선원들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호메로스는 <오뒷세아> 제12권 85행 이하에서 오뒷세우스의 배가 이 해협을 통고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6) 현재 단편만이 남아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현명한 멜라닙페>의 주인공 메라닙페는 탯살리아 왕 아이올로스의 딸로 해신(海神) 포세이돈과 교합하여 쌍둥이를 낳게 되자 이들을 외양간에 감추어두고 쇠젖을 먹여 기른다. 이 사실을 안 아이올로스가 쌍둥이를 내다버리게 하고 그녀를 감금하려 하지 그녀는 쌍둥이는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아니라 소가 낳은 아이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교묘한 궤변을 늘어놓는다.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성격이 여자답지 않게 지적이란 점이다.
7)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1211행 이하 및 1306행 이하 참조.
트로이 원정군이 아울리스 항에서 순풍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아가멤논은 아르케미스 여신의 신성한 사슴을 쏘아 죽이고 나서 여신 자신도 더 훌륭하게 쏘아 맞힐 수는 없을 것이라고 호언한다. 이에 노한 여신은 역풍을 보내 그리스 군이 출범할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예언자 칼카스에게 묻자 그는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기 전에는 여신의 노여움을 풀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가멤논은 중의에 따라 마지못해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킨다는 핑계로 이피게니아를 그곳으로 데려오게 한다. 그곳에 도착하여 내막을 알게 된 이피게네이아는 제발 살려 달라고 아버지에게 애원하다가 갑자기 심기일전하여 조국을 위하여 제물이 되기를 자원한다.
8)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1317행 참조
메데이아는 배은망덕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마술의 드레스로 먼저 자기 남편과 결혼하게 될 코린토스의 공주를 죽인 다음 이어서 자기 자식들을 죽인다. 이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남편이 그녀를 잡으려고 하나 그녀는 이미 마술로 불러낸 태양신 헬리오스의 수레를 타고 공중에 떠 있다.
9) <일리아스> 제2권 110~206 참조,
그리스 군이 트로이아의 포위를 풀고 귀국하려 할 때 아테네의 신이 나타나 오뒷세우스를 통해서 그들의 출범을 제시한다.
10) '기계 장치'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구구하나 사람이나 신이 공중에 떠 있는 장면을 연출하는 데 사용되는 일종의 기중기인 듯하다. 이이스퀼로스나 소포클레스는 기계 장치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나 에우리피데스 이후부터는 많이 사용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무대에서 사용된 기계 장치 또는 장치는 여러 종이 있는데, geranos는 아이스퀼로스가 고안해냈다고 하는 장치로 배우를 무대 위로 들어올리는 데 사용되었다고 하며, theologeion은 무대의 지붕으로 신이 등장할 때 사용되었다고 하며, ekkyklema는 집이나 신전(神殿) 내부를 보여주기 위하여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조립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에우리피데스 이후의 시인들은 사건의 해결을 플롯의 구성에 의존하지 않고 신에게 맡기는 경향이 많았다. 따라서 자연히 기계 장치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았는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기계 장치를 타고 나타나는 신을 테우스 막스 아키나라고 부른다.
11) 예를 들면 에우리피네스의 <이온>의 첫머리에는 헤르메스 신이, 그리고 끝 부분에는 아테네 여신이 나타나 인간이 알 수 없는 일을 알려준다. 그리고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첫머리에도 아테네 여신이 나타나 인간으로는 알 수 없는 미래사를 알려준다.
12) 제14장 주9 참조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죽음에 대하여 백방으로 조사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조사를 게을리 한다. 그리고 자기가 노상에서 죽인 노인이 라이오스가 아닐까 하고 의심조차 해보지 않은 것은 불합리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살인 사건은 드라마가 시작되기 이전에 일어난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독자나 관객은 이 불합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13) 아가톤이 어떤 작품에서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를 다루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14) 장경 일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동작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15) 현재 남아 있지 않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권으로 된 대화편 <시인론>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17)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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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견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앞서 설명한 바 있다.1) 발견의 종류에 관하여 말한다면 1) 맨 먼저 언급되어야 할 것은 가장 비예술적인 것으로서 시인들이 창의(創意)의 부족으로 인하여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인데, 그것은 표지(標識)에 의한 발견이다. 이들 표지 가운데 일부는 '땅에서 태어난  자들이 지니고 있는 창 끝'2)이나 카르키노스3)의 <튀에스테스>4)에 나오는 '별'5)과 같이 선천적인 것이고 다른 일부는 후천적인 것이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은 흉터와 같이 신체에 있는 표지이고 어떤 것은 목걸이6)이나 또는 <튀로>7)에서 발견의 근거가 된 조각배처럼 외적인 것이다. 이러한 표지들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우열이 있다. 예컨대 오뒷세우스는 똑같은 흉터에 의하여 유모에게도 발견되고,8) 돼지치기에게도 발견되지만9) 그 방법이 서로 다르다. 남을 믿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표지를 사용하는 발견이나 이와 유사한 발견은 모두 비예술적이다. 이에 비해 <세족(洗足) 이야기>10)에서와 같이 급전의 장면에 이루어지는 발견은 훌륭하다,
 2) 그 다음은 시인에 의하여 조작된 발견인데, 그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예술적이다. 예컨대 <이피게니네이아>에서 오레스테스는 자기가 오레스테스임을 밝힌다. 이피게네이아는 편지에 의하여 발견되지만 오레스테스는 플롯이 아니라 시인이 요구하는 바를 스스로 말한다.11) 따라서 이것은 처음에 말한 결점과 대동소이하다. 왜냐하면 오레스테스는 어떤 표지를 제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12) 소포클레스의 <테레우스>13)에 나오는 '베틀북 소리'도 역시 이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3) 세 번째 것은 기억에 의한 발견인데, 그것은 무엇을 보자 지난 일이 회상되어 이로 인하여 발견되는 경우다. 예컨대 디카이오게네스14)의 <퀴프로스 사람들>에서 주인공은 초상화를 보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또 <알키노스의 이야기>15)에서 오뒷세우스는 키타라의 탄주를 듣고 지난 일이 생각나 눈물을 흘린다.16) 이로 인하여 두 사람은 발견된다.
 4) 네 번째 것은 추리에 의한 발견이다. 예컨대 <제주(祭酒)를 바치는 여인들>17)에서 '나를 닮은 사람이 왔다 갔다, 나를 닮은 사람은 오레스테스 밖에 없다. 그러므로 오레스테스가 왔다갔음에 틀림없다'고 추리한다. 소피스트 폴뤼이도스가 <이피게네이아>에 관하여 제안한 것18)도 이 경우에 속한다. 왜냐하면 오레스테스가 '누이는 제물이 되었다. 나도 누이와 같이 제물이 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또 테오덱테스19)에서 '아들을 찾으로 왔다가 내가 죽는구나'라고 추리한 것이다. <피네우스의 딸들>에서 여인들이 어떤 장소를 보고 전에도 그곳에서 버림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자신들의 운명을 추리한 것은 모두 발견의 근거가 되었다.20)
 5) 또 상대방의 오류 추리에 의한 복잡한 발견도 있다. 추리는 그 예를 <거짓 사자(使者) 오뒷세우스>21)에서 볼 수 있다. 오뒷세우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활에 대해서 자기는 그 활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 활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 추리이다.
 6) 모든 발견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나 에우리피데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처럼 사건 자체로부터 유발되는 발견인데, 이 경우에는 사건의 자연스런 진행에 위하여 경악이 야기된다. 왜냐하면 이피게네이아가 집으로 편지를 보내려고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발견만이 조작된 표지나 목걸이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 다음가는 것은 추리에 의한 발견이다.
 
1) 제11장 참조
2) 튀로스 왕 아게노르의 아들 카드모스는 부명(父命)에 따라 유괴 당한 누이 에우로페를 찾아나섰다가 아폴론 신의 신탁에 따라 누이 찾기를 그만두고 카드메이아(후일 테바이 성)을 건설하기 위하여 그곳으로 가서 군신(軍神) 아레스의 용을 창으로 찔러 죽인다. 그가 아테네 여신의 지시에 따라 그 용의 이빨들을 땅에 뿌리자 땅에서 무장한 전사들이 나온다. 카드모스가 그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자, 그들은 서로 죽이기 시작하는데 마지막에는 5명만 남게 된다. 이 5명의 Spartoi(뿌려진 자들이란 뜻)들이 카드모스를 도와 카드메이아를 건설하게 되는데 이들의 후손들이 후일 테바이의 귀족이 된다. 이들의 몸에는 창끝 모양의 사마귀가 있었다고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안티고네>에서 크레온은 이 사마귀를 보고 아이몬과 안티고네의 자식을 알아본다.
3) 카르키노스는 기원전 4세기의 비극 시인이다.
4) 튀에스테스에 관해서는 제13장 참조
5) 탄탈로스는 신들의 전지를 시험해보기 위하여 아들 펠롭스를 죽여 그 고기로 신들을 대접한다. 다른 신들은 미리 알고 먹지 않지만 납치된 딸 페르세포네 때문에 깊은 수심에 잠겨 있던 여신 테메테르는 아무 영문도 모르고 어깨 부분을 먹는다. 그뒤 펠롭스는 원상복귀 되고 어깨 부분은 상아로 대치된다. 이 일이 있은 후로부터 펠롭스의 자손들은 어깨에 별 모양의 흰 반점이 있었다고 한다.
6) 현존 비극 가운데 목걸리에 의하여 발견되는 예는 에우리피데스의 <이온>에서 뿐이다.
7) 살모네우스의 딸 튀로는 해신 포세이돈과 교합하여 필리아스와 넬레우스 라는 쌍둥이을 낳게 되나 계노 시데로의 학대 때문에 쌍둥이를 조각배에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낸다. 현재 단편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는 어머니가 이 배를 보고 자식들을 알아본다.
8) <오뒷세이아> 제19권 386~475 참조
오뒷세우스는 다년간의 유랑 끝에 거지로 변장하고 고향에 돌아온다. 당시에는 하인을 시켜 손님의 발을 씻겨주는 풍속이 있었는데 마침 오뒷세우스의 발을 씻어주게 된 하녀는 오뒷세우스의 어릴 때의 유모였다. 유모는 그의 발을 씻다가 그가 옛날 파르낫소스 산에서 사냥하다가 멧돼지에게 부상당한 흉터를 보고 그가 주인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른바 <세족 이야기>란 <오뒷세이아>의 이 부분을 말한다.
9) <오뒷세이아> 제21권 205~225행 참조
오뒷세우스는 거지로 변장하고 자기 집에 머무는 동안 자기 처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이 온갖 횡포를 부리는 것을 목격하고 그들을 죽이자면 몇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옛날부터 집에거 가축을 치던 하인들을 찾아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 증거로 다리의 흉터를 보여준다.
10) 본장 주8 참조
11)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727행 이하 및 800행 이하 참조. 그리고 제11장 주6참조
12) <오이디푸스 왕>과 <타우리케의 이피기네이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 기준은 엄격한 감이 없지 않다. 사실 오레스케스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방법은 그러한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어쩌면 그 이상 더 훌륭한 것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는 이피게네이아에게 그들의 고향집에 살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실을 말한다. 그런데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와 같은 방법은 남을 믿게 하기 위하여 표지를 제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13) 소포클레스의 <테레우스>는 단편만이 남아 있는데 그 소재가 된 전설은 다음과 같다.
트라제의 왕 테레우스는 아테나이의 전설적인 왕 판디온의 딸 프로크네와 결혼하나 처제 필로멜레를 연모하게 된다. 그 뒤 그는 처제를 유혹하여 폭행한 다음 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그녀의 혀를 자르고 감금한다. 그러나 필로멜레는 자신의 불행을 베로 짜서 프로크네에게 보낸다. 그래서 이 사실을 할게 딘 프로크네는 필로멜레를 찾아낸 다음 그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자기와 테레우스 사이에서 난 아들 이튀스를 죽여 그 고기로 남편을 대접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테레우스가 두 자매를 죽이려 하자 제우스 신은 테레우스는 오디새가 되어 두 자매를 쫓게 하고, 필멜레는 제비가, 프로크네는 꾀꼬리가 되어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게 했다. '베틀북 소리'란 직물을 짤 때 베틀의 북에서 나는 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필로멜라가 프로크네에게 알리기 위하여 자신의 불행을 그려 넣은 직물을 비유해서 이른 말이다.
14) 다카이오게네스는 기원전 5세기 후반의 비극 시인인데 그의 작품 <퀴프로스 사람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다. 테우크로스의 이야기에서 취재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형 아이아스와 함께 그를 살라미스에서 추방한다. 그래서 그는 퀴프로스 섬으로 건너가 그곳에 살라미스를 세우고 살다가 아버지의 사후에 변장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아버지의 초상화를 보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신분이 밝혀졌다.
15) <알키노오스의 이야기>란 오뒷세우스가 알키노오스 왕에게 자신의 지난 일을 이야기해주는, <오뒷세이아>의 제8권부터 제12권까지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따라서 '알키노오스에게 해준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16) <오뒷세이아> 제8권 521행 이하 참조
오뒷세우는 가인(歌人) 데모도코스가 자신이 트로이아 전쟁에서 행한 일들을 노래하는 것을 듣고 눈물을 흘린 까닭에 신분이 밝혀진다.
17) 아이스퀼로스의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166~234행 참조 이 작품은 오레스테스가 누이 엘렉트라의 도움으로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간부(姦夫) 아이기토스를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고향인 아르고스에 잠입한 뒤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 자신의 머리털를 잘라 바친다. 이때 누이 엘렉트라가 시녀들을 데리고 제주를 바치려 오자 그는 몸을 숨긴다. 오레스테스의 머리털를 본 엘렉트라는 그것이 자기 머리털과 같은 빛깔임을 발견하고는 오레스테스가 돌아온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리고 실제로 오레스테스가 나타나자 그녀는 자신의 추리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증거를 요구한다.
18) 폴뤼이도스에 관해서는 <시학>의 다른 곳에는 언급되고 있지 않다. 폴뤼이돗의 제안이란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에서 오레스테스가 제물이 되려는 순간 그로 하여금 '누이는 제물이 되었다. 나도 누이와 같이 제물이 되려고 하는구나'라고 부르짖게 하면 일찍이 우울리스에서 제물이 된 적이 있는 이피게네이아는 그가 자기의 오라비임을 발견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19) 테오덱테스에 관해서는 제11장 주3 참조
20) <튀데우스>와 <피네우스의 딸들>에 관해서는 달리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문맥으로 보아 이 두 경우 다 무의식 중에 큰 소리로 자신의 운명을 추리한 것이 발견의 근거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1) <거짓 사자 오뒷세우스>도 작가와 내용을 알 수 없으나 트로이아 원정에서 귀국한 오뒷세우스가 사자(使者)로 가장하여 자기 처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속이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18)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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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플롯을 구성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함에 있어서 1) 되도록이면 실제 장면을 눈앞에 그려보아야 한다. 그렇게하면 시인은 사건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모순된 점을 관과하는 일이 가장 적을 것이다. 카르키노스1)에 대한 비난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암피아라오스가  신전에서 돌아오는 장면이 문제의 장면인데2) 이 장면은 관객들이 무대 위에서 실제로 보지 않았더라면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무대 위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관객들은 이 사건의 모순에 불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2) 또한 시인은 되록이면 작중 인물의 제스처로 스토리을 실연(實演)해볼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의 재능이 같은 경우에는 표현되어야 할 감정을 실제로 느끼는 쪽이 더 설득력있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격정과 분노는 이러한 감정을 실제로 느끼는 사람에 의하여 가장 절실하게 그려진다. 그러므로 작시술(作詩術)은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이나 광기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전자는 쉽사리 필요한 기분이 될 수 있고, 후자는 정상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3)
 3) 스토리에 관하여 말하자면, 기존의 것이든 시인 자신의 창작이든 간에 먼저 대체적인 윤곽을 잡은 다음 삽화를 삽입하여 늘여야 한다. <이피게니아>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대체적인 윤곽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어떤 처녀가 제물로 바쳐졌다가 그녀를 제물로 바친 사람들로부터 감쪽같이 납치되어 이국(異國)으로 옮겨진다. 그곳에는 이방인들을 여신에게 제물로 자치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녀는 이 의식을 주관하는 여사제가 된다. 후일 여사제의 오라비가 이곳에 오게 된다. 그러나 신탁4)이 모종의 이유에서 그를 그곳에 가게 한 사실과 그가 간 목적은 플롯 밖에 있다.5) 그는 도착하자마자 체포되고 제물이 되려는 순간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그 방법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이나6) 또는 폴뤼이도스가 제안한 것처럼7) '그러니까 나도 누이처럼 제물이 될 운명이었구나'라는 있음직한 부르짖음에 의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신분을 밝힘으로써 구원받는다.
 그 다음에 등장 인물들에게 적절한 이름을 붙이고 삽화를 삽입해야 한다. 이때 유의해야 할 점은 삽화들이 오레스테스가 광증으로 인하여 체포되는 삽화8)나 세정(洗淨)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삽화9)처럼 플롯에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삽화가 짧으나 서사시는 삽화에 의하여 길어진다. <오뒷세이아>의 줄거리는 길지 않다. 어떤 사람이 다년간 이역(異域)에 나가 있다. 그는 늘 해신(海神) 포세이돈의 감시를 받고 있고 고독하다. 그런가 하면 고향에서는 아내의 구혼자들이 그의 재산을 탕진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 모의하고 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와 사진의 신분을 밝히고 적에게 덤벼든다. 그는 구원받고 적은 살해된다. 이것이 골자고 나머지는 삽화다.
 
1) 카르키노스에 관해서는 제16장 주3 참조
2) 암피아라오스에 관해서는 제13장 주8 참조
암피아라오스의 전설에서 취재한 카르키노스의 작품은 현재 남아 있지 않아 여기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문맥으로 보아 카르키노스는 읽을 때 눈에 뜨지 않으나 무대 위에서는 눈에 띄는 그러한 종류와 과오를 범했던 것 같다.
3) '광기 있는 사람'이란 단순히 격정적인 사람이란 뜻인 것 같다. '쉽사리 필요한 기분이 될 수 있다'함은 작가가 감정이입의 능력을 통하여 여러 가지 역(役)에 쉽사리 적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상에서 벗어난다'함은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정상적인 심적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이 양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대조적인 것이 아니라 마치 천재가 광기와 통하듯이 일맥상통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 에우리피데스의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에 나오는 신탁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어머니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간부(姦夫) 아이기스토스를 죽이지만 그 뒤부터 늘 복수의 여신들의 추격을 받는다. 복수의 여신들 중 일부는 아테네 여신의 주재 아래 아테나이의 아레이오스 파고스에서 열린 재판의 결과에 승복하고 추격을 그만두지만, 다른 일부는 계속해서 그를 추격한다. 그래서 오레스테스는 아폴론 신에게 구원을 청한다. 그래서 아폴론 신은 그에게 타우리케로 가서 그곳에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상(女神像)을 가져오면 모든 불행으로부터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신탁을 내린다.
5) '플롯 밖에 있다'함은 플롯의 필요불가결한 부분은 아니라는 뜻이다. 즉 오레스테스는 다른 사명을 띠고도 그곳에 갈 수 있다는 뜻이다.
6) 제11장 주6 참조
7) 제12장 주18 참조
8)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나: 281행 참조
타우티케에 도착한 오레스테스는 피에 물든 아르테미스 여신의 제단을 보고 겁에 질여 도로 고향으로 올아가려 하나, 같이 간 친구 퓔라테스의 조언에 따라 야음(夜陰)을 타서 거사하기로 하고 일단 해안에 있는 높은 바위 밑에 몸을 숨긴다. 이때 목자들이 소를 씻기기 위하여 소 떼를 몰고 바닷가로 온다. 그 순간 오레스테스는 소가 울부짖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복수의 여신들이 지르는 소리로 착각하고 발광한다. 그는 날개 돋친 괴물이 자기가 죽인 어머니를 안고 불을 토하며 덤벼드는 환영을 보고 이를 퇴치해겠다는 생각으로 칼을 빼들고 덤빈다는 것이 소 떼에게 달려들어 닥치는 대로 소를 찌른다. 잠시 후 발작이 가라앉자 그는 거품을 토하며 쓰러지고 만다. 이어서 체포되어 제물이 되기 위하여 이피게네이아 앞으로 끌려간다.
9) 같은 곳 1163행 이하 참조
오레스테스와 남매 간임을 알게 된 이피게네이나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훔쳐 함께 고향으로 달아나기 위하여, 타우리케 왕 토아스에게 제물이 될 두 사람이 여신에게 구원을 청하려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여신상이 저절로 돌아서며 눈을 감기에 그 이유를 알아봤더니 그들은 공모하여 어머니를 살해한 자들임을 밝여졌는데 일단 그들이 손이 닿은 이상 여신상은 바닷물로 세정(洗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거짓말을 하고 여신상을 가지고 바닷가로 가서는 오레스테스와 퀼라데스와 함께 배를 타고 그리스로 도망친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19) / 천병희 옮김
 
 
18
 
 
 4) 모든 비극은 '분규' 부분과 '해결' 부분으로 양분된다. 드라마 밖의 사건과 그리고 종종 드라마 안의 사건 가운데 일부가 '분규'를 구성하고 나머지는 '해결'을 구성한다. 나는 스토리의 시초부터 주인공의 운명에 전환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를 '분규'라 부르고 운명의 전환이 시작된 뒤부터 마지막까지를 '해결'이라 부른다. 테오텍테스의 <륑케우스>1)의 경우를 예로 들면,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에 일어난 사건과 아기가 체포되고 이어서 부모가 체포되는 부분까지 '분규'이고, 살인죄에 대한 고발에서부터 마지막까지가 '해결'이다. (그런데 어떤 비극이 다른 비극과 동일하다거나 또는 동일하지 않다고 말할 때는 플롯에 의거하여, 다시 말해서 '분규'와 '해결'에 있어 양자가 동일한가 동일하지 않은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좋다. '분규' 부분에서는 훌륭하지만 '해결' 부분에서 실패하고 마는 시인들이 허다한데 양자에 항상 능해야 한다.)2)
 5) 비극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바 있는 구성요소의 수도 넷이기 때문이다.5) 첫 번째 종류는 복잡한 비극인데 그것은 전체가 급전과 발견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 것은 파토스적 비극인데, 아이아스4)나 익시온5)을 주인공으로 하는 여러 비극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세 번째 것은 <프티아의 여인들>6)이나 <펠레우스>7)와 같은 성격 비극이다. 네 번째 것은 단순한8) 비극인데, 우리는 <포르퀴스의 딸들>9)이나 <프러메테우스>10) 명부(冥府)를 무대로 하는 비극11)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시인은 되도록이면 이러한 요소들을 전부 결합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최대한 많이 결합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시인들이 부당한 비평을 받고 있는 오늘날에는 특히 필요하다. 이전에는 각 종류의 비극마다 개별적으로 능한 시인들이 배출되었지만, 오늘날의 비평가들은 한 사람이 옛 시인들의 개별적인 장점을 모두 능가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6) 시인은 또한 이미 누차 말한 점12)을 명심하여 서사시적 구성 -서사시적 구성이라 함은 다수의 스토리를 를 가지고 있는 구성을 말한다-을 토대로 하여 비극을 써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일리아스>의 전(全) 스토리를 드라마화하려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 서사시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각 부분이 적당한 길이를 가질 수 있지만, 동일한 스토리를 드라마화할 경우에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일리오스13)의 함락을 에우리피데스처럼 부분적으로 하지 않고 전부 드라마화한 사람들이나 니오베14)의 이야기를 아이스퀼로스처럼 부분적으로 하지 않고 전부 드라마화한 사람들은 완전히 실패하거나 아니면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입중해주고 있다. 아가톤도 바로 이 점에서 실패하지 않았던가.15) 그러나 그들은 급전과 단순한 플롯에 있어서는 그들이 의도하는 효과, 즉 비극적이며 인간적인 감정을 충족시켜주는 효과를 놀라우리만큼 훌륭하게 산출한다. 이러한 효과는 시쉬포스16)같이 지혜는 있으나 사악한 자가 사기를 당한다든가, 또는 용기는 있으나 불의한 자가 패배할 때 산출된다.17) 이러한 일은 아가톤이 말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만 있음직한데, 아가톤은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 흔히 일어나는 것도 있음직하다'18)고 말하고 있다.
 7) 코로스도 배우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지 않으면 안 된다. 코로스는 전체의 한 부분이 되어 극의 행동에 참가한다. 그러나 이때 에우리피데스19)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할 것이 아니라, 소포클레스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해야 한다. 후기 시인들에 있어서는 코로스의 노래가 그 비극의 플롯과 무관하기 때문에 마치 다른 비극의 플롯에 속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코로스가 막간가(幕間歌)20)를 부르게 된 것은 이 때문이며 이러한 관례는 아가톤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막간가를 부르는 것과 대사나 삽화 전체를 한 드라마에서 따서 다른 드라마에 끼워넣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1) <륑케우스>에 관해서는 제11장 주3 참조
2) ( )안에 든 부분은 codex Parisinus 1456a 7~10에 해당하는데 Susemihl에 따라 1455b로 옮겨 읽었다.
3) 이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제6장에서 열거하고 있는 비극의 구성 요소는 물론 플롯, 성격, 사상, 조사, 장경, 노래의 6개이고 제10장에서는 플롯을 다시 단순한 것과 복잡한 것으로 구분하고 있다. 제11장에서는 플롯을 급전, 발견, 파토스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고 있다. 아마도 이 모드를 막연하게 지칭하는 것 같다,
4) 아이아스는 살라미스 왕 텔라몬의 아들로 트로이아 전쟁에서 크게 용맹을 떨친다. 그리스 군이 제1영웅 아퀼레우스가 죽자 그의 무구(武具)를 둘러싸고 오뒷세우스와 다투는데, 그리스 장군들 또는 중재자로 뽑힌 트로이아의 포로들이 투구를 오뒷세이아에게 주라고 판결하자 격분하여 그리스 장군들을 모조리 죽이려 한다. 그러나 아테네 여신이 그를 발광케 하자 그는 가축 떼를 그리스 장군들로 잘못 알고 닥치는 대로 찔러 죽인다. 여신이 이때 그의 정신을 정상 상태로 돌려주자 그는 자신의 행동을 부끄럽게 여겨 자살한다. 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비극을 쓴 시인들은 소포클레스 외에도 아이스퀼로스, 카르키노스, 테오텍테스 아스퀴다마스 등이 있는데 소포틀렛의 작품만이 남아 있다.
5) 익시온은 장인을 불구덩이에 밀어넣는 등 악행을 많이 저지르지만 제우스 신의 용서를 받는다. 그런데도 배은망덕하게 제우스 신의 아내인 여신 헤라를 범하려 하자 제우스 신은 네펠레(구름의 여신)를 헤라처럼 보이게 하여 그를 속인다. 악시온이 헤라를 정복했노라고 자랑하자 제우스 신은 그를 타르타로스(감옥)에 가두고 쉬지 않고 빙빙 도는 불타는 수레바퀴에 묶어둔다. 아이스퀼로스와 에우리피데스가 그의 이야기를 소재로 작품을 썼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6) 이 말은 codex Parisinus에는 파손된 글자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 파손된 글자가 장경, 얼굴의 파자(破字)이므로 장경, 혹은 얼굴로 읽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읽을 경우에는 본분장을 '네 번째 구성 요소는 ----과 같은 장경이다'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보아 그렇게 번역하는 것은 다소 이상한 감이 없지 않을 뿐 아니라 위의 손상된 글자는 형용사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제24장 맨 첫구절에서 서사시의 종류도 비극의 종류와 동일해야 하므로 단순한 것과 복잡한 것과 성격적인 것과 파토스적인 것으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논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단순한'의 파자(破字)로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참고로 Schrader은 '무서운'으로 G.F. Else는 '삽화적'으로 읽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9) '포르퀴스의 딸들'이란 제목으로 우리들에게 알려진 것은 단편만 남아 있는 아이스퀴로스의 사튀로스 극(劇)밖에 없는데, 여기서 어떤 작품을 가리키는지 확실치 않다. 이러한 성격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거의 대부분 극적 효과를 주로 의상이나 분장에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포르퀴스의 딸들이 나오는 모든 드라마를 막연하게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라고도 생각된다.
포르퀴스의 딸들로는 (a) 한 개의 눈과 한 개의 이빨을 함께 사용하는 노파로 태어난 세 자매 그라이아이들 (b) 하도 무섭게 생겨 보는 이를 돌로 변하게 한다는, 머리털이 뱀인 고르고 세 자매 (c) 고운 노랫소리로 지나가는 뱃사람을 홀려 난파케 한다는 바다의 요정들인 세이렌 자매 (d) 머리 여섯에 발이 열둘인 괴물 스퀼라 등이 있다.
10) '프로메테우스'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작품으로는 아이스퀼로스의 <불을 가져다주는 프러메테우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만 남아 있다. 여기서는 이 중 어느 작품을 가리키는지 확실치 않다. 어떤 사람들은 <불을 가져다주는 프로메테우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와 <풀린 프로메테우스>도 무대가 인적 드문 외딴 곳이고 주인공이 고통받는다는 점에서 여기서 말하고 있는 취지에 어긋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11) 아이스퀼로스의 <사자(死者)의 영혼을 인도하는 자들>과 <시쉬포스> 및 에우리피데스의(?) <페이리토오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
12) 제5장에서 '서사시는 시간적 제한이 없다'고 말한 것과 제7장에서 전체에 대한 부분의 관계와 스토리길이에 관하여 논술한 것과 제17장에서 서사시는 상황에 의해서 길어진다고 한 것 등을 가리킨다.
13) 일리오스는 트로이아의 다른 이름이다. <일리오스의 함락>은 원래 <일리아스>에 이어 트로이아가 함락되는 장면과 전쟁이 끝나 그리스 군이 출범하는 장면까지를 그린 서사시의 이름으로 밀레토스의 아르크티노스 작이다. 이 이야기를 전부 드라마한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으로는 <헤가베> <트로이아의 연인들>이 남아 있다.
14) 디오베는 탄탈로스의 딸로 테바이 왕 암피온과 결혼하여 아들 일곱과 딸 일곱을 낳는다. 니오베가 남매밖에 낳지 못안 여신 레토보다 자기가 더 많은 자식을 낳았다고 자랑하자 레토의 아들 아폴론은 니오베의 아들 여섯을, 레토의 딸 아르테미스는 니오베의 딸 여섯을 쏘아 죽인다. 그 뒤 니오베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돌로 변했는데 돌이 된 뒤에도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니오베의 이야기를 전부 드라마한 시인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리고 니오베의 이야기 가운데 어느 부분을 아이스퀼로스가 드라마화했는지도 확실치 않다.
15) 아가톤의 어떤 작품을 가리키는지 확실치 않다. <그리스 비극 단편>의 편찬자 나우크는 이 구절을 보고 아가톤이 <일이오스의 함락>이란 작품을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학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견해로 보고 있다.
16) 시쉬포스는 코린토스의 왕으로 하도 교활하여 오뒷세우스의 실부(實父)라고 전해질 정도이다. 언젠가 이웃에 사는 사기꾼 아우틀뤼코스가 그의 가축을 훔친 다음 그 외모를 감쪽같이 바꾸어놓았으나 그는 발굽에다 표를 해놓았기 때문에 자기 가축을 가려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또 죽음의 신이 자기를 데리러 왔을 때 꾀를 써서 그를 사슬로 묶어버렸기 때문에 군신(軍神) 아레스가 와서 풀어줄 때까지 죽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또 죽음의 신에게 끌려 저승으로 가면서 아내에게 자기의 시신을 정식으로 매장하지 말라고 일러놓고, 저승에 가서는 아내가 자기를 매장해주지도 않는다고 불평하며, 아내에게 복수하고 돌아올 테니 한 번만 세상에 나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여 세상에 나간 뒤에는 늙어 죽을 때까지 저승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간계에 못지 않게 그가 받은 벌도 유명한데, 그는 저승에서 큰 돌덩이를 산꼭대기까지 굴려 올리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산꼭대기 가까이 그 돌을 굴려 올리면 그 돌은 저절로 밑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어 있어 그는 다시 그 돌을 산꼭대기로 굴려 올려야 한다. 그는 이 가망 없는 고역을 영원히 반복하는 벌을 받았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3대 비극 작가뿐 아니라 많은 시인들에 의하여 드라마화되었으며 그 중에는 사튀로스 극도 있었다고 한다.
17) 제13장 비극의 주인공은 선인(善人)이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사악한 자나 불의한 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것은 이 원칙에 어긋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 이 경우 '주인공'이란 말이 교활한 자를 속이고 무뢰한을 무찌르는 다른 등장 인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 가운데 전자의 경우는 복잡하고, 후자의 경우는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플롯은 인정에 호소하는 점은 있겠지만 비극적인 효과, 즉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18) 아가톤 단편 9 참조. 이 2행 연구(二行聯句)를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에게 있음직하지 않은 일이 흔히 일어나는 것, 그것 또한 임음직함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로다."
이 2행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19) 에우리피데스의 초기 작품에서는 코로스의 역할이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뚜렷한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의 후기 작품에서는 코로스가 극중의 행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예가 흔히 있다. 예컨대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나오는 코로스도 단순한 호기심에서 그리스 군에 진중(陳中)에 와 있던 아울리스의 처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서정적 독창자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코로스와 코로스 장(長)의 발언이 다른 등장 인물들에 의해 구사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심지어는 디오뉘소스 신앙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코로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박코스의 여신도들>에 있어서도 한 명의 배우가 코로스와 함께 무대 위에 서 있는 짤막한 두 구절을 제외하고는 코로스의 존재와 발언은 배우들에 의해 언제나 무시되고 있다.
20) 제12장에서 말한 정립가와 여기서 말하고 있는 막간가의 차이점은 전자는 플롯의 내용과 연관성이 있는 것임에 비해 후자는 연관성이 거의 또는 전혀 없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20) / 천병희 옮김
 
 
19
 
 
 플롯과 성격에 관해서는 이미 설명했으므로 이제 남은 것은 조사(措辭)와 사상에 관햐여 설명하는 일이다. 사상에 관해서는 <수사학>에 말한 바를 여기서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왜냐하면 사상에 관한 연구는 시학보다는 수사학의 연구 분야에 속하기 때문이다.1)
 등장 인물의 사상은 그들의 언어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것, 다시 말해 무엇을 증명하려 하거나, 반박하려 하거나, 감정(연민, 공포, 분노 등)을 불러일으키려 하거나, 과장하려 하거나, 과소평가하려는 그들의 노력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의 행동이 연민이나 공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또는 중요하다거나 개인적이라는 인상을 주기를 바란다면 그들은 행동에 있어서도 언와 동일한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2)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행동의 경우는 효과가 설명 없이 산출되어야 하는데 반하여3) 언어의 경우에는 화자(話者)의 언어에 의해서 산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사실 화자의 말 없이도 사태가 올바로 표현될 수만 있다면 화자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조사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 분야에 속하는 여러 가지 연구 대상 가운데 하나는 어조,4) 다시 말해 명령, 기도(祈禱), 단순한 진술, 위협, 질문, 답변 등등의 차이를 연구하는 일인데 이러한 사항에 관하여 연구하는 것은 웅변술에 속하며 그 방면의 전문가가 할 일이다. 시인이 그러한 것들을 알든 모르든 간에 그의 시인으로서의 예술은 그 때문에 주목할 만한 비난을 받지는 않는다.
 프로타고라스는 호메로스가 '여신이여,분노를 노래하라'5)고 한 데 대하여, 어떤 이를 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욕하는 것은 명령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호메로스는 기구(祈求)한다고 생각하면서 사실은 명령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호메로스의 이러한 표현에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따라서 이 문제는 작시술이 아닌 다른 예술에 속하는 것이므로 생략하기로 하자.
 
1)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 제1권 제2장에서 '수사학은 주어진 경우에 설득 가능한 수단을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수사학의 기능을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또 <시학> 제6장에서
'사상은 상황에 따라 해야 할말과 적당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사상을 정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사상에 관한 연구는 시학보다 수삭의 연구 분야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등장 인물의 사상과 감정은 그들의 언어뿐만 아니라 행동에 의해서도 표현될 수 있다. 그러므로 소기의 효과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양자에 동일한 원칙, 즉 수사학에 속하는 제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3) 단지 상황에 의해서만 산출되는 것을 말한다.
4) 어조란 상이한 법, 시제 등이 사용에 의하여 의미의 변화를 초래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5) <일리아스>의 첫 행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소피스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인물로서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이다. 그는 또한 문법의 창안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호메로스가 여신에게 명령법으로 지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21)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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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措辭)는 전체적으로 볼 때 문자와 음절과 접속사와 관사와 명사와 동사와 격(格)과 문(文)으로 구성된다.
 1) 문자는 불가분의 음(音)이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불가분의 음이 아니라 유의미(有意味)란 음을 구성할 수 있는 특수한 종류의 불가분의 음이다. 왜냐하면 짐승도 불가분의 음을 발(發)하기는 하나 그 중 어느 것도 내가 말하는 문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불가분의 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불가분의 음은 모음과 반모음과 무성음으로 구분된다. 모음은 혀를 움직이지 않더라도 들을 수 있는 음을 가진 문자이고, 반모음은 예컨대 S나 R과 같이 혀를 움직여야만 들을 수 있는 음을 가지는 문자이다. 무성음은 예컨대 G나 D와 같이 혀를 움직여도 단독으로는 아무런 음을 가지지 않고 오직 모음을 덧붙일 때에만 들을 수 있게 되는 문자이다. 문자는 또한 발음할 때의 입 모양이 어떠한가, 입 안의 어느 부분에서 발음되는가, 기음(氣音)1)이 있는가 없는가, 장음인가 단음인가,2) 높은 음인가 낮은 음인가 중간음3)인가에 따라 구별된다. 그러나 이에 관하여 상세히 고찰하는 것은 운율학(韻律學)에서 할 일이다.
 2) 음절은 무성음과 모음으로 구성되는 무의미한 음이다. 왜냐하면 A가 없는 GR은 음절이 아니지만, A가 있는 GRA는 음절이기 때문이다.4) 음절의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차이를 연구하는 것 역시 운율학에서 할 일이다.
 3) 접속사는 ㄱ) 몇 개의 음으로부터 하나의 유의미한 음이 형성될 수 있을 때 그 결합의 방해하지도 않고 돕지도 않으며, 이렇게 하여 형성된 문(文)이 다른 문들과 떨어져서 독립해 있을 때 그 문의 첫머리에 놓은 것이 적당치 않은 무의미한 음이거나, ㄴ) 또는 몇 개의 유의미한 음을 하나의 유의미한 음으로 결합할 수 있는 무의미한 음이다.
 4) 관사6)는 문(文)의 처음이나 끝이나 구분점을 표시하는 무의미한 음으로서 보통 문의 양쪽 가에나 중간에 위치한다.
 5) 명사7)는 시간 관념을 포함하지 않는 유의미한 복합음(複合音)으로서 그 어떠한 부분도 단독으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우리는 복합명사에 있어서 개개의 부분이 단독으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6) 동사는 시간의 관념을 포함하는 의미 있는 복합음으로서 명사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다. 그 어떠한 부분도 단독으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사람' 또는 '희다'란말은 시간 관념을 나타내지 않지만 '그는 걷는다' 또는 '그는 걸었다'라는 말은 '걷는다'는 관념에 덧붙여 전자는 현재 시간의, 후자는 과거 시간의 관념을 포함한다.
 7) 격(格)9)은 명사나 동사에서 볼 수 있는데 어떤 것은 '의'나 '에게'나 그와 유사한 관계를 표시하고, 어떤 것은 '사람들' 또는 '사람'과 같이 단수 복수를 표시하고, 어떤 것은 질문, 명령 등과 같은 어조의 차이를 나타낸다. '그는 걸어갔느냐?' 또는 '걸어가거라!'는 '걷는다'는 동사의 이 마지막 종류에 속하는 것이다.
 8) 문(文)10)은 유의미한 복합음으로서 그 부분 중의 어떤 것은 단독으로 어떤 의미를 가진다. 모든 문이 다 명사와 동사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정의(定義)11)와 같이 동사가 없는 문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은 언제나 유의미한 어떤 부분을 가질 것이다. 예컨대 '클레온이 걸어간다'는 문에 있어서 '클레온'이란 말이 그러한 부분이다. 문은 두 가지 이유에서 하나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데, 말하자면 하나의 사물을 의미하기 때문이든지, 또는 몇 개의 문이 접속에 의하여 하나로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리아스>는 접속에 의한 하나의 문이고 인간에 대한 정의는 하나의 사물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의 문이다.
 
1) 기음은 H음을 말한다. 그리스어에는 H라는 문자가 없는 대신 단어의 맨앞에 있는 모음 또는 중모음은 반드시 기음 유무의 표시를 가진다. 그리고 R도 단어의 맨 앞에 있을 때는 반드시 기음을 가진다. 무성음으로 기음을 가지는 것은 X(=ch) ?(=ph) 뿐이다.
2) 장음은 H(=e)와 ?(=0)이고, 단음은 E(=e)와 O(=o)이다. 그 밖에 다른 모음은 경우에 따라 장음도 될 수 있고 단음도 될 수 있다.
3) 높은 음이란 acute accent를 가지는 음율, 낮은 음이란 grave accent를 가지는 음율, 중간 음이란 circumflex accent를 가지는 음을 말한다.
4) 이 구절은 D.W. Lucas가 제안한 아랍어 번역에 따라 고쳐 읽었다.
5) 여기서 말하는 접속사란 후치불변화사(後置不變化詞), 연결 접속사 및 불변화사, 전치사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6) 여기서 말하는 관사란 (a) 관계대명사 및 관계부사와 조건적 및 원인적 접속사. (b) 목적격 및 추론격 접속사. (c) 이접(disjunctive)접속사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a)는 명제(命題)의 시초를, (b)는 종결을, (c)는 명제 중의 분할을 나타낸다. 이들은 그리스 어에 있어서 관사와 같거나, 관사의 변형이 많다. 그래서 이들을 일괄하여 '관사'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7) 여기서 말하는 명사에는 형용사와 대명사도 포함된다.
8) Theodoros라는 인명은 theos(神)란 말과 doron(선물)이란 말의 복합어이지만 일단 복합된 다음에는 각 부분은 원래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9) 여기서 말하는 격이란 명사의 곡용(曲用)과 동사의 활용(活用)을 뜻한다.
10) 여기서 말하는 문어란 다음에 설명이 나오지만, 명사와 동사로 구성되는 문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명사만으로 구성될 수도 있고, 무한정 연장될 수도 있는 유의미한 단어의 집합을 말한다.
11) 아리스토렐레스는 인간을 '이족동물(二足動物)'이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이족동물'이란 '문'은 동사 없이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22) / 천병희 옮김
 
 
21
 
 
 명사(名詞)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1)그 중 하나는 단순명사다. 나는 '띵'과 같이 무의미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명사를 단순명사라고 부른다. 2)다른 하나는 복합명사이다. 복합명사 가운데 어떤 것은 유의미한 부분과 무의미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1)(그러나 일단 복합된 뒤에는 이러한 구별은 없어진다). 어떤 것은 유의미한 부분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합명사는 또한 서너 개 또는 그보다 더 많은 부분을 가질 수도 있다. 맛살리아 인들의2) 대부분의 명사가 그러한데 Hermokaikoxanthos3)가 그 한 예다.
 모든 명사는 1)일상어이거나, 2)방언이거나, 3)은유이거나, 4)장식어이거나, 5)신조어(新造語)이거나, 6)연장어(延長語)이거나, 7)단축어(短縮語)이거나, 8)변형어이다. 일상어란 한 지방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말을 의미하고, 방언이란 다른 지방에서 사용되는 말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일한 말이 방언도 되고 일상어도 될 수 있음은 명백하다. 예를 들면 '창(槍)'은 퀴프로스 인들에게는 일상어이고 우리에게는 방언이다.
 은유란 유(類)에서 종으로, 혹은 종에서 유로, 혹은 종에서 종으로, 혹은 유추에 의하여 어떤 사물에다 다른 사물이 속하는 이름을 전용(專用)하는 것이다. 유에서 종으로 전용한 예는 '여기 내 배가 서 있다'4)는 표현에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정박한다는 것은 어떤 특수한 사물이 서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종에서 유로 전용한 예는 '오뒷세우스는 실로 만 가지 선행을 행했다'5)는 표현에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다수의 한 가지 종인 만(萬)이 유(類)인 다수 대신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종에서 종으로 전용된 예는 '청동으로 생명을 푸면서'라는 표현이나 '블멸의 청동으로 베면서'6)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푼다'는 말은 '벤다'는 의미로, '벤다'는 말은 '푼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양자가 다 무엇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추에 의한 전용은 A에 대한 B의 관계가 C에 대한 D의 관계와 같을 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럼 때에는 B대신 D를, 그리고 D 대신 B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은유에 의하여 대치되는 말의 관계어가 은유에 부가될 때도 있다.7) 예컨대 잔(B)이 주신(酒神) 디오뉘소스(A)에 대하여 갖는 관계는 방패(D)가 군신(軍神) 아레스(C)에 대하여 갖는 관계와 같다. 따라서 잔을 '디오뉘소스의 방패'(A+D)라고 말하고, 방패를 '아레스의 잔(C+B)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저녁때(B)가 날(A)에 대해 갖는 관계는 노령(老齡)(D)이 인생(C)에 대해 갖는 관계와 같다. 따라서 저녁때(B)를 '날의 노령'(A+D)이라고 하든지, 혹은 엠페도클레스와 같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9) 그리고 노령(老齡)을 '인생의 저녁때' 혹은 '인생의 일몰'10)(C+B)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추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는 특별한 명칭이 없는 것들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은유적 표현은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씨를 살포하는 것을 '뿌린다'고 한다. 그러나 태양이 그 화염을 살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특별한 명칭이 없다. 아무런 명칭도 없는 이 행위(B)가 태양(A)에 대해 갖는 관계는 뿌리는 행위(D)가 씨(C)에 대해 갖는 관계와 같다. 그러므로 '신이 만든 화염을 뿌리면서'11)(A+D)라는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종류의 은유는 다른 방법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사물에다 다른 사물에 속하는 명칭을 부여하되 그 명칭에 고유한 속성의 하나를 부정하는 방법인데, 예컨대 방패를 '아레스의 잔'이라 하지 않고 '술 없는 잔'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12)
 신조어란 한 국민 사이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말을 시인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을 의미한다(아닌 게 아니라 이와 같은 말이 약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뿔의 의미로 사용된 '어린 가지'와 사제(司祭)의 의미로 사용된 '기도자'13)가 그렇다.
 연장어란 본래 단모음이던 것이 장모음이 되었거나, 혹은 가외의 음절이 삽입된 말이다.
 단축어란 그 일부분을 상실한 말이다.
 변형어란 일부분은 그대로 남아 있고 일부분은 시인이 조작한 말이다.
 그러나 명사 자체는 남성이거나 여성이거나 중성이다.
 
1)명사 또는 동사와 결합된 전치사가 그렇다. 전치사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명사나 동사와 같은 수준에서 의미가 있다고는 볼 수 없으며,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제20장에서 다른 '관사' 및 '접속사'와 함께 전치사도 무의미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2)맛살리아 인들의 '대부분'의 명사가 복합명사라는 말은 특수한 종류의 말에 국한해서 생각해야지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3)소아시아에 있는 세 개의 강 이름은 복합어인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 않다.
4)<오뒷세이아> 제1권 183행 및 제24권 308행 참조. 여기서는 '서 있다'는 유개념이 '정박하고 있다'는 종개념 대신 사용되고 있다는 뜻이다.
5)<일리아스> 제2권 272행 참도
6)전자는 '청동의 칼로 베어 피를 흘리게 하면서'라는 뜻이고, 후자는 '청동으로 만든 그릇으로 물을 푸면서'라는 뜻으로 얼핏 보기와는 전혀 그 의미가 다르다. 그러나 '벤다'와 '푼다'는 둘 다 '제거한다'는 유개념의 종개념이기 때문에 종으로의 전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7)예를 들어 꽃(A):들(B)=별(C):하늘(D)이라고 한다면 (B)대신 (D)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대치되는 말인 들(B)의 관계어 꽃(A)을 은유인 하늘에 부가하면 '꽃의 하늘'이라는 은유적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반대로 하늘을 들로 대치하고 그 관계어를 부가하면 하늘을 '별의 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8)생략(그리스어 자판을 사용할 줄 모르기에)
9)엠페도클레스의 어느 말을 가리키는지 확실치 않다.
10)플라톤의 <법률>771a 참조.
12)이 파손된 부분에는 '장식어'에 대한 설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식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어떤 사람들은 언의 시적 및 비정상적인 사용을 모두 포함한다고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또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란 표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항상 붙어다니며 어떤 성질을 나타내는 부가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13)<일리아스> 제1권 참조
14)서사시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15)보리,또는 집의 단축형(?)이다
16)'두 사람의 얼굴이 하나가 되었다'는 뜻인데 여기서 쓰인 단어는 '얼굴'의 단축형이다.
17)<일리아스> 제5권 393행 참조. '오른쪽 가슴에'라는 뜻이다.
18)장음이 될 수 있는 모음은 A,I,Y이다.
19)단모음은 E(=e)와 O(=o)이다.
20)도시,무릎,겨자,양 떼가 그것이다.(그리스 어는 생략)
21)본장 주18 참조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23) / 천병희 옮김
 
 
22
 
 조사(措辭)는 무엇보다도 명료하면서도 저속하지 않아야 한다. 일상어로 된 조사는 가장 명료하기는 하나 저속하다. 클레오폰1)과 스테넬로스2)의 시가 그 예다. 이에 반해 생소한 말을 사용하는 조사는 고상하고 비범하다. 생소한 말이란 방언과 은유와 연장어와 일상어가 아닌 모든 말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부가 이러한 말들로만 시는 수수께기나 야만족의 말이 되고 말 것이다. 즉 은유로만 되었다면 수수께기가 될 것이고 방언으로만 되었다면 야만족의 말3)이 되고 말 것이다.
 수수께기의 본질은 사물을 말의 불가능한 결합에 의하여 표현하는 데 있다(이는 사물의 일상 명칭의 결합에 의해서는 불가능하나 은유의 결합에 의해서는 가능하다). 예컨대 '나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불로 놋쇠를 용접하는 것을 보았다'4)는 표현이나 이와 유사한 표현이 그렇다. 방언만 사용하면 야만족의 말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말들을 어느 정도 혼용할 필요가 있다. 생소한 말, 즉 방언, 은유, 장식어 및 기타 앞서 말한 말들은 조사를 평범하거나 저속하지 않게 할 것이도, 일상어는 명료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조사를 명료하면서도 저속하지 않게 하는 데는 연장어와 단축어 변형어가 적잖은 도움이 된다. 이러한 말들은 일상어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언어를 관용어와 다르게 만듦으로써 언어를 비범하게 하는 한편 또 관용어와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언어를 명료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어법을 비난하거나, 또는 이러한 어법을 사용했다 하여 시인을 조롱거리로 삼는 자들은 옳지 못하다. 예컨대 노(老)에우클레이데스3)가 그 중 한 사람인데, 그는 말을 마음대로 연장할 수 있다면 작시(作詩)하기는 쉬울 것이라고 말하고는 스스로 이러한 어법을 사용하여 풍자시를 지음으로써 그 어법을 조롱거리로 삼았다. 사실 이러한 수법을 너무 노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중용(中庸)은 시어(詩語)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에 다 적용되는 원칙이다. 은유나 방언이나 기타 다른 말도 부적당하게 그리고 웃음을 자아낼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적당하게 사용하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서사시의 한 행(行)을 일상어로 바꾸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방언이나 은유나 그 밖에 다른 말들의 경우에도 이를 일상어로 바꾸어보면 우리의 주장이 진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아이스퀼로스와 에우리피데스는 똑같은 장단격(長短格) 시를 썼는데 전자의 시는 평범한 데 반해 후자는 단 하나의 단어를 바꿈으로써, 즉 일상어 대신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시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중략, 그리스어 시편)
 아리프라테스16)도 또한 비극 시인들이 일상 대화에서 사용하지 않는 말을 사용한다고 하여 그들을 비웃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모두 일상어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조사를 비범하게 하는 것인데도 아리프라데스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앞서 말한 여러 가지 시어체(詩語體)와 복합어와 방언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은유에 능한 것이다. 이것만은 남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천재의 표징이다. 왜냐하면 은유에 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여러 가지 말 가운데 복합어는 디튀람보스에 가장 적합하고, 방언은 영웅시에 적합하며, 은유는 단장격 시21)에 적합하다. 영웅시에서는 앞서 말한 여러 가지 말을 모두 사용할 수 있으나, 가능한 한 일상 대화를 모방하려고 하는 단장격 시에서는 일상어나 은유나 장식어와 같은 일상 대화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말이 적합하다.
 비극, 즉 무대 위에서의 행동에 의한 모방에 관해서는 이상으로 충분한 것으로 해두자.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24) / 천병희 옮김
 
23
 
 
 단지 서술만 하는 시, 즉(무대 위에서의 행동 없이) 운문에 의해서만 모방하는 시1)에 관하여 말하자면, 그것이 비극과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1)그 스토리의 구성은 드라마의 그것과 같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스토리는 시초와 중간과 종말을 가진 하나의 전체적이고 완결된 행위를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작품은 유기적인 통일성을 지닌 생물과도 같을 것이며, 그에 고유한 쾌감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스토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역사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행위를 취급하지 않고 한 시기와 그 시기에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에게 일어난 모든 사건을 취급하며 사건 상호 간에는 연관성이 없어도 무방하다. 살라미스 해전과 시켈리아 섬에서의 카르케돈 인들과의 전투는 동시에2) 일어났지만 동일한 결말을 향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 전후하여 일어난 경우에도 그로부터 하나의 결말이 생기지 않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시인들은 이와 같은 식으로 작시(作詩)하고 있다.
 그러므로 호메로스는 앞서도 이미 말한 바 있지만,3) 이 점에서도 다른 시인들보다 탁월한 것 같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이 시초와 종말을 가진 전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부 다 취급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필시 그 스토리가 너무 방대하여 통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든지, 혹은 그 길이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그 속의 사건이 다양해서 너무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전체에서 한 부분4)만 취하고, 그 외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하고 있다. 예컨대 <함선 목록>5)이나 다른 사건은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기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시인들은 한 사람 또는 한 시기를 취급한다지만 그들이 취급하는 행위는 하나라 하더라도 그 속에 여러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퀴프리아>6)와 <소(小)일리아스>7)의 작가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 결과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로부터 각각 한 편, 또는 많아야 두 편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데 비하여 <퀴프리아>로부터는 다수의 비극이,8)이 그리고 <소일리아스>로부터는 8편 이상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무구 채판(武具裁判)>9) <필록테테스>,10) <네옵톨레모스>,11) <에우뤼퓔로스>,12) <걸인 오뒷세우스>,13) <라케다이몬의 여인들>,14) <일리오스의 함락>,15) <출범(出帆)>,16) <시논>17)및 <트로이아의 여인들>18)이 그것이다.
 
1) 서사시를 말한다.
2) 시켈리아의 참주(僭主) 겔론이 카르케돈 인들을 패퇴시킨 것과 아테나이 인들이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 인들의 함대를 무찌른 것은 같은 해(기원전 480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두 사건은 같은 날에 일어났다고 한다.
3) 제8장 참조
4) <일리아스>의 주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이다.
5) <일리아스> 제2권 484~785행 참조. <일리아스>의 이 부분은 그리스 장군들이 인솔해온 함선들의 수를 열거하고 있기 때문에 흔히 <함선 목록>이라고 불린다.
6, 7) <퀴프리아>와 <소일리아스>는 둘 다 이른바 '서사시'에 속하는 시들로서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스타시노스 작(作)이라고 하는 <퀴프리아>는 파리스의 심판으로부터 그리스 군의 트로이아 도착까지를 취급했다고 하며, 아르크티노스 작(作)이라고 알려져 있는 <소일리아스>눈 아킬레우스의 사후 그의 무구를 둘러싸고 아이아스와 오뒷세우스가 서로 다투던 일부터 트로이아의 함락 후 그리스 군의 출범까지를 취급했다고 한다.
8) <파리스의 심판>, <헬레네의 납치>, <그리스 군의 집결>, <스퀴로스의 아킬레우스>, <텔레포스>,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말다툼>,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등 많은 비극의 소재가 되었다.
9) <무구 재판>은 아이스퀼로스의 <아이아스> 3부작 가운데 첫 작품의 제목이라고 한다. 내용은 아킬레우스의 사후 그의 무구를 둘러싸고 아이아스와 오뒷세우스가 벌인 다툼에 관한 것인데 이에 관해서는 제18장 주4 참조.
10) 여기서 말하는 <필록테테스>는 소포클레스의 현존하는 비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트로이아의 필록테데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1) 누구의 비극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다. 오뒷세우스가 신탁에 따라 스퀴로스 섬에 있던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옵톨레모스를 트로이아로 데려온 다음 그의 죽은 아버지의 갑옷과 무기를 돌려준 이야기를 취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2) 누구의 비극인지 확실치 않다. 텔레포스의 아들 에우뤼퓔로스가 트로이아를 도우러 갔다가 네옵톨레모스에게 죽은 이야기를 취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3) 누구의 비극인지 확실치 않다. 오뒷세우스가 정탐할 목적으로 거지로 변장하고 트로이아 성으로 들어간 이야기(<오뒷세이아> 제4권 247행 이하 참조)를 취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4) 이 비극은 소포클레스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오뒷세우스와 디옴데스가 트로이아 성에 잠입하여 헬레네와 그녀의 시녀들인 라케다이몬 여인들의 도움으로 앝케네 여신상을 훔쳐낸 이야기를 취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5) <일리오스의 함락>은 이오폰의 비극이라고 하는데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목마의 입성으로부터 트로이아의 함락까지를 취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6) <출범>이란 제목을 가진 비극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 그리스 군이 트로이아를 함락한 후 트로이아 왕 프리아모스의 딸 폴뤽세네를 아킬레우스의 무덤에 제물로 바치고 나서 고국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취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7) 소포클레스의 비극으로 생각된다. 그리스 군이 첩자 시논이 의도적으로 트로이아 군의 포로가 된 다음 목마를 입성시키도록 설득한 이야기를 취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8) 에우리피네스의 현존하는 비극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비극은 포로가 된 트로이아 여인들의 비참한 운명을 소재로 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25)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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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그 밖에도 서사시의 종류는 비극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것은 단순하든지, 복잡하든지,1)
성격적이든지, 파토스적이어야 한다. 또한 그 구성 요소도 노래와 장경(場景)을 제외하고는 비극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사시에서도 급전과 발견과 파토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2) 그리고 사상과 조사(措辭)도 그 나름대로 훌륭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최초로 그리고 적절하게 사용한 시인은 호메로스이다. 그의 두 시는 각각 그 구성이 상이한데, <일리아스>는 단순하고 파토스적이며, <오뒷세이아>는 복잡하고(이 시에는 도처에 발견이 있다) 성격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두 시는 조사와 사상에 있어서도 다른 작품들을 모두 능가한다.
 그러나 서사시는 그 길이와 운율에서 비극과 상이하다.
 1)길이에 관하여 말하자면, 앞서3) 말한 바 있는 한계면 충분할 것이다. 즉 작품의 시초와 종말을 통관할 수 있는 정도라야 한다. 이러한 조건은 작품의 길이가 고대의 서사시4)보다는 짧고 한 번의 관람에 제공되는 분량의 비극만큼5) 길다면 충족될 수 있을 것이다. 서사시는 길이를 늘이는 데 있어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 비극은 여러 부분이 동시에 진행되는 사건을 모방할 수 없고, 오직 무대 위에서 배우에 의하여 연출될 수 있는 부분에만 국한되는 데 반해, 서사시는 서술 형식이므로 동시에 일어나는 많은 사건을 그릴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들이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경우 시의 분량은 늘어난다. 그것은 시의 규모를 웅대하게 하고 듣는 이의 기분을 전환시키고 여러 가지 삽화를 삽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극이 무대 위에서 실패하기 쉬운 것도 그 사건의 단조로움에 관객들이 곧 싫증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2)운율에 관하여 말하자면, 영웅시의 운율6)이 서사시에 적합하다는 것이 경험에 의하여 알려졌다. 누가 이와는 다른 한 가지 또는 몇 가지 운율로 서사시를 써보려고 한다면 그 부적당함이 드러날 것이다. 영웅시 운율은 실로 모든 운율 가운데서 가장 안정성 있고 무게 있는 운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운율은 다른 운율보다도 방언과 은유를 더 너그러이 받아들이며, 이 점에서 또한 서사시는 다른 시들을 능가한다. 이에 비하여 단장격 운율과 장단적 운율은 동적인 운율로서 전자는 행동에, 후자는 무용에 적합하다.7) 누가 카이테몬8)처럼 여러 가지 운율을 혼용하여 서사시를 쓰려고 한다면 더욱더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지금까지 영웅시 운율 외에 다른 운율로 긴 스토리를 구성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자연 자체가 그와 같은 스토리에 적합한 운율을 선택하도록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9)
 호메로스는 다른 많은 점에서도 칭찬받을 만하지만 시인들 중에서 그만이 작품 내에서의 시인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특히 칭찬받을 만하다. 시인 자신이 작품 속에 나타나서 말하는 것은 되도록이면 피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는 그는 모방자가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계속해서 작품 속에 나타나고 모방하는 것이 적은 데 비하여, 호메로스는 짧은 머리말을 앞세운 다음 바로 한 남자나 한 여자나 혹은 다른 인물을 등장시키는데, 그 어느 인물도 무성격하지 않고 모두 성격이 뚜렷하다.
 비극에도 경이로운 것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서사시에는 경이로운 것의 주된 요인인 있음직하지 않은 것이 더 많이 허용된다. 그 까닭은 서사시에는 행위자가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헥토르를 추격하는 장면10)이 무대 위에서 연출된다면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 그리스 군은 멈춰 서서 그를 추격하지 않고 아킬레우스는 그들에게 참견하지 말라고 머리를 흔들고, 그러나 서사시에서는 그런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아무튼 경이로운 것은 쾌감을 준다. 그 증거로 모든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할 때는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하려는 생각에서 과장해서 말한다는 사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을 제대로 조작하는 방법을 다른 시인들에게 가르쳐준 사람은 누구보다도 호메로스였다. 거짓말을 조작한다함은 오류 추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A가 존재하거나 일어나는 경우 B가 존재하거나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B가 존재하면 필연적으로 A가 존재하거나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류 추리다. 그러므로 A는 거짓이지만 A가 존재할 경우에 B가 필연적으로 존재하거나 일어난다고 한다면 거짓말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A에다 B를 부가하면 될 것이다. 즉 우리는 B가 참(眞)임을 알기 때문에 A도 참이라고 마음속으로 그릇된 추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세족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11)
 가능하지만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것을 택하는 편이 좋다. 스토리는 있음직하지 않은 사건으로 구성되어서는 안 되며 그와 같은 사건은 되도록이면 하나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불가피한 경우에는 <오이디푸스>에서 주인공이 라이오스의 죽음의 전말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처럼 작품 밖에 있어야지,12)<엘렉트라>13)에서 퓌토 경기에 관하여 보고하는 사람들이나 <미쉬아 인들>14)에서 테게아로부터 뮈시아까지 말 한마디 않고 온 사람처럼 작품 안에 나타나서는 안 된다. 따라서 그와 같은 부분이 없었더라면 플롯이 손상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그와 같은 플롯은 처음부터 구성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시인이 그와 같은 플롯을 구성했을 경우에 좀더 합리적으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인상을 준다면 그는 예술상의 과오만 범한 것이 아니라 불합리도 저지른 셈이 된다.
 <오뒷세이아>에서 오뒷세우스가 해변에 버려지는 것15)과 같은 있음직하지 않은 일은, 졸렬한 시인이 그렸다면 확실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도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호메로스는 그의 여러 가지 장점으로 양념을 쳐서 불합리한 점이 눈에 띄지 않게 하고 있다. 그러나 조사의 조탁(彫琢)은 아무런 행동도 없고 따라서 아무런 성격도 사상도 표현되지 않는 부분에만 필요하다. 지나치게 화려한 조사는 오히려 성격과 사상을 모호하게 할 것이다.16)
 
1) 제10장 참조
2) 제11장 참조
3) 제7장 참조
4,5) '고대의 서사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실치 않다. 어떤 사람들은 호메로스 이전의 서사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주로 호메로스의 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자의 논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호메로스의 시를 완벽한 것으로 보고 있는 이상 굳이 이상적인 서사시의 길이가 그의 시보다 짧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상 모순이 아니겠느냐는 것이고, 후자의 논지는 호메로스 이전에 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문헌상으로 입증되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문헌상으로 입증된 범위 내에서 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고대'라는 명칭을 붙일만한 서사시 가운데 가장 길이가 긴 것은 호메로스의 시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호메로스 이후에 나온, 이른바 '서사시권'에 속하는 서사시들 중에서 가장 길이가 길다는 <퀴프리아>만 하더라도 전(全) 11권에 그 길이가 <일리아스>의 반도 채 안 된다. 어느 쪽의 견해를 택하느냐에 따라 다음에 나오는 '한 번의 관람에 제공되는 분량의 비극'이란 말도 그 의미가 달라진다. 전자의 견해를 따르면 디오뉘소스 제전 때 제공되는 비극 전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기원전 5세기에는 디오뉘소스 제전 떼 세 사람의 시인이 각각 비극 3부작과 사튀로스 극 1편을 가지고 하루에 한 사람씩 사흘 동안 경연을 벌였는데, 그 전체 분량을 합치면 대략 15,000행 정도가 된다. 그것은 <일리아스>의 길이에 가깝다. 그러나 후자의 견해를 따르면 한 번 앉아서 관람하는 분량의 비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당시에는 제전 때 사퀴로스 극은 통틀어 1편 밖에 공연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 당시의 비극의 평균 길이가 기원전 5세기의 그것과 거의 같았다고 본다면 비극 3편의 길이는 대략 4~5,000행 정도가 된다. 이것을 다 공연하자면 한나절이 넘게 걸릴 것이다. 서사시는 물론 이 시간에 더 많은 행을 들려줄 수 있겠지만 사실 이보다 더 오래 끌면 청중의 주의력이 산만해지고 말 것이다. 후자의 견해를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여기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한 번에 들려줄 수 있는 서사시 가운데 가장 긴 시가 아니라, 적정 규모의 짜임새 있는 시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기원전 3세기 초의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의 <아르고 호 선원들의 이야기>가 대략 이 길이에 해당될 것이다.
6) 장단단격 육절음율을 말한다.
7) 제4장 참조
8) 카이레몬에 관해서는 제1장 주12 참조 
9) 제4장 참조
10) <일리아스>제22권 205행 이하 참조
11) <오뒷세이아> 제19권 220~248행 참조
    '세족 이야기'에 관해서는 제16장 주8 참조, 이 부분은 엄격히 말하면, '세족 이야기'에 선행하는 부분이다. 다년간의 유랑 생활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오뒷세우스는 거지로 변장하고 작 집에 머물면서 아내 페넬로페에게 자기는 크레테에서 온 사람인데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로 출정하던 도중 풍랑을 만나 크레테에 왔을 때 자기 집에 유숙한 적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는 이 거짓말을 믿게 하기 위하여 당시의 자기 용모와 의복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한다. 이말은 들은 페넬로페는 그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12) 제14장 주9 및 주 12 참조
13) 소포틀레스 <엘렉트라>600~763행 참조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친구 퓔라데스와 노복(老僕) 한 명을 데리고 고향인 아르고스에 잠입한다, 그는 적을 일단 안심시키기 위하여 노복을 퓌토에서 온 사자(使者)로 가장시켜 어머니 클뤼차임네스트라에게 가서 오레스테스는 그곳 경기에서 사고로 죽었다고 전하게 된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불합리하다고 하는 점은, 오레스테스 시대에는 아직 퓌토 경기가 없었는데도 그가 그곳에서 죽었다는 것은 시대 착오라는 점이거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곳에는 그리스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노복으로부터 그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처음 듣는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퓌토(Pytho)경기는 올림피아 경가, 이스트모스 경기, 네메아 경기와 그리스 4대 경기이다.
14) <뮈시아 인들>은 아이스퀼로스 아니면 소포클레스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인공 텔레포스가 테게아에서 소아시아에 있는 뮈시아까지 말 한마다 않고 간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그의 침묵은 중기(中期) 희극에서도 희극적 풍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침묵을 지킨 것은 테게아에서 숙부를 살해한 죄로 누구와도 접촉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15) <오뒷세이아> 제13권 115행 참조
16) 화려한 조사는 불합리한 점을 가려주는 역활도 하지만 주위를 요하는 것에 대하여 주의를 산만하게 할 우려도 있다. 그러므로 행동이 없는 부분에 국한시켜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비극의 경우라면 사자(使者)의 보고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26)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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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문제점1)과 그 해결에 관하여 말하자면, 이것들의 종류가 얼마나 되며 또 어떠한 성질의 것인지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고찰하면 명백해질 것이다.
 1) 시인은 화가나 다른 모상 작가(模像作家)2)와 마찬가지로 모방자이므로 사물을 언제나 그 세 가지 국면 중 한 국면에서 모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는 사물이 과거나 또는 현재에 처하고 있는 상태를 모방하거나, 혹은 사물이 과거나 또는 현재에 처해 있다고 말해지거나 생각되는 상태를 모방하거나, 혹은 사물이 마땅히 처해야 할 상태를 모방하지 않을 수 없다.3)
 2) 시인은 이러한 모든 것을 언어로 표현함에 있어 방언이나 은유나 여러 가지 변화된 상태의 말을 혼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러한 말들의 사용을 시인들에게 허용하기 때문이다.4)
 3) 또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시학과 정치학,5) 또는 기타 예술에 대하여 동일한 정당성의 기준이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시학 자체의 테두리 내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과오가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작시술(作詩術)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발적으로 관련되는 것이다. 시인이 사물을 올바로 모방하려고 했으나 능력 부족으로 인하여 실패했다면 그것은 그의 작시술 자체에 관련되는 과오이다. 그러나 시인이 달리는 말을 그리는데 동시에 두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게 그림으로써 사물을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그리는6)기술상의 과오(예컨대 의술이나 기타 기술상의 과오)를 범했거나, 또는 여하한 종류의 것이든 불가능한 것을 그렸다면 이때 그가 범한 과오은 작시술 자체에 관려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들로부터 출발하여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을 검토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먼저 작시술 자체에 대한 비판에 관하여 말하자면, 시인이 불가능한 것을 그렸다면 그는 과오를 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오도 그것이 시의 목적(시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이미 설명한 바 있다)을 달성하는 데 이바지하거나, 그것이 속한 부분이나 다른 부분을 보다 놀라운 것으로 만든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 헥토르의 추격7)이 그 한 예다. 그러나 이러한 점에 있어 기술상의 과오를 범하지 않더라도 시의 목적이 그에 못지 않게 또는 더 훌륭하게 달성될 수 없는 경우에는 과오는 정당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되도록이면 모든 점에서 과오는 범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과오가 어떠한 종류의 것인지, 즉 작시술에 직접 관련되는 사항에 관한 것인지 또는 우발적으로 관련되는 사항에 관한 것인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암사슴에는 뿔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을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경미한 과오이기 때문이다.
 2) 다음, 시인이 그린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바판을 받는다면, 우리는 이에 대하여 소포클레스가 자기는 이상적인 인간을 그리고 에우리피데스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그린다고 말한 것과 같이 시인은 사물의 이상 상태를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그린 것이 그 어느 것도 아닐 경우에는, 그것은 세인들의 견해와 일치한다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여러 신들에 관한 전설은 크세노파네스8)가 생각하고 있는것처럼 부도덕한 것으로서 사실도 아니고 이상을 말하는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아무튼 세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종류의 서술에 관해서는 시인이 그것을 그린 것은 그것이 이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에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라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그들의 창은 창날을 위로 하고 꼿꼿이 서 있었다'9)는 무기에 관한 묘사가 그렇다. 왜냐하면 창을 이렇게 세워놓는 것은 오늘날에도 일뤼리콘 인들에게서 볼 수 있지만 당시의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등장 인물들의 언어나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판단하려면 행동이나 언어 자체만 보고 그것이 고상한 것인지 저속한 것인지 검토할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자나, 말하는 자, 그 상대자, 때, 수단, 동기(예컨대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더 큰 손해를 피하기 위해서인가)를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다른 비판에 대해서는, 시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고찰함으로써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어떤 말이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것같이 생각될 경우에는 문제의 구절에서 그 말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그곳에서 청동 창이 제지되었다'10)는 구절에서 '그곳에서 제지되었다'는 말의 가능한 모든 의미를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어떤 의미로 취해야 글라우콘11)이 말하는 과오를 잘 피할 수 있느지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부당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제멋대로 그렇게 정한 다음 거기에서 추론한다. 그리고 시인이 한 말의 진의가 자신들의 해석하는 바와 같기나 한 양 시인의 진술이 자신들의 견해와 상반될 때는 시인을 비난한다.' 이카리오스12)의 경우가 그 한 예이다.
 비평가들은 이카리오스가 라케다이몬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텔레마코스가 그곳에 갔을 때 그를 만나지 않은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케팔레니아 사람들의 말과 같이 오뒷세우스의 아내는 케팔레니아 출신이고,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은 이카리오스가 아니라 이카디오스인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 문제는 비평가들의 과오로 인히여 제기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1)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시의 목적에 이바지하거나, 혹은 이상 상태를 말하거나, 혹은 세인들의 견해일 경우에는 정당화될 수 있다. 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믿어지지 않는 가능사보다는 믿어지는 불가능사를 택해야 한다.13) 그리고 제옥시스14)가 그린 것과 같은 인간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역시 그와 같은 인간들을 그리는 편이 더 좋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모델보다 더 나은 것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2) 불합리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세인들의 견해라고 말하거나, 혹은 불합리한 것도 때로는 불합리하지 않을 때가 있다고 답변함으로써 정당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있음직한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도 있음직하기 때문이다. 3) 시인의 언어에서 발견되는 모순점을 검토할 때는 토론에서 상대방의 논박을 검토하듯 해야 한다. 즉 시인이 자신이 한 말이나 또는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의 견해와 모순된 말을 하고 있다고 단정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가 과연 동일한 사물을 동일한 관계에서 동일한 의미로 말하고 있느지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메데니아>에서의 아이제우스의 불합리한 등장이나15) <오레스테스>에서의 메넬라오스의 비열한 성격16)처럼 불합리한 플롯이나 비열한 성격이 아무 필요 없이 도입되었을 경우에는 이를 변명한 여지가 없다.17)
 따라서 비평가들의 비판은 결국 다섯 가지 과오에 기인한다. 그들의 주장인즉 어떤 것이 1) 불가능하거나, 2)불합리하거나, 3) 유해(有害)하거나,18) 모순을 내포하고 있거나, 5) 기술상의 과오19)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한 해결은 앞서 말한 여러 가지 항목에서 찾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것은 열두20) 가지이다. 
 
 
1) 여기서 문제점이라고 하는 것은 시작(詩作)에서 비평가들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로 <일리아스>에 대해 제기되었던 비판과 이에 대한 반론을 토대로 자신의 견해를 전개하고 있다.
2) 예컨대 조각가
3) 제2장 참조
4) 제21장 참조
5) '정치학'이란 말은 그리스 인들에게는 광범위한 뜻을 가지는 말로서 개인의 사회적 처신으로부터 사회도덕 일반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정치학과 시학의 관계는 인생과 예술의 그것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인데 이 양자에게 동일한 가치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 예컨대 오이디푸스는 사회적으로는 중대한 결함을 가진 인물일 수 있으나 비극의 주인공으로서는 더없이 훌륭한 인물이다.
6) 시인의 착상은 처음부터 올바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착상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면 시인이 이때 범한 과오는 예술상의 과오는 아니다. 예컨대 뿔 달린 암사슴을 그린 편이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린 편보다는 더 낫다는 것이다. 이때의 과오는 동물학상의 과오이지 예술상의 과오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릇되 착상의 한 예로 두 오른발을 동시에 앞으로 내딛는 말을 들고 있는데, 실제로 말은 경우에 따라 두 오른발을 동시에 움직인다고 한다.
7) <일리아스> 제22권 205행 이하 참조
8) 크세노파네스는 기원전 6세기의 철학자로서 호메로스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인격화된 다신교적 신관(神觀)을 부도덕한 것이라고 하여 통열히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시인은 '나는 세인들의 통념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라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9) <일리아스> 제10권 152행 참조. 창을 이렇게 세워놓는 것은 여러 가지로 위험하므로 옳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하여 시인은 '그러나 당시에는 실제로 그랬고 오늘날에도 일뤼리콘 인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10) <일리아스> 제20권 272행 참조
이 구절은 트로이아의 영웅 아이네이아스가 창을 던지고 아킬레우스가 방패로 이를 막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이킬레우스의 방패는 다섯 겹의 금속판, 즉 창동판을 두 겹, 주석판 두 겹, 금판 한 겹으로 되어 있다. 주석판 두 겹은 맨 안쪽이다. 금판은 장식이므로 바깥쪽에 있을 것이 틀림없는데 창이 두 겹을 뚫고 들어간 다음 그곳(금관)에서 제지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지 않으나 아리스타르코스의 해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리스타르코스는 창이 금판 밑에 있는 청동관 두 겹을 뚫고 들어간 것은 사실이나 그 이상 뚫지 못하게 제지한 것은 바깥에 있는 금관의 힘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11) 글라우콘이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인데 여기서는 플라톤의 <이온>530d에서 호메로스에 관하여 '여러 가지 훌륭한 견해'를 가진 학자로 언급되고 있는 그 글라우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2) 이카리오스는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의 아버지이다.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라케다이몬에 갔을 때 (<오뒷세우스> 제4권 참조) 그곳에 사는 외조부를 만나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는 비평가들의 비판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비평가들의 그릇된 선입견 때문이라고 답변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카리오스는 <오뒷세이아>에서는 이타케나 그 가까운 곳에(제2권 52행 참조) 살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3) 제24장 참조
14) 제욱시스에 관해서는 제6장 주9 참조
15)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663행 이하 참조. 주인공 메데이아가 코린토스 왕 크레온에 의하여 추방되어 난처하게 되었을 때, 돌연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가 나타나 피난처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는데, 그의 등장은 선행 사건과 아무 인과 관계도 없으므로 불합리하다는 것이다(제15장 참조)
16) 제15장 주4 참조. 제 15장 본문에는 '플롯이 요구하지도 않는 비열한 성격의 예는 <오레스테스>의 메넬라오스에게서 볼 수 있고'라는 말이 나온다.
17) 비극에 나오는 '성격은 선량해야 하며'(제15장 참조) 플롯이 요구하지도 않는 비열한 성격은 피해야 한다.
18) '유해하다'는 데 관해서는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플롯이 요구하지도 않는 메넬라오스의 비열한 성격이라든가 신들에 관한 거짓 이야기 등이 여기게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세인들의 견해'라고 말하면 된다고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19) '기술상의 과오'란 일반적으로 작시술상의 과오가 아닌, 기타 기술상의 과오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20) 지금까지 말한 항목을 다 합치면 전부 14항목이 되는데 이를 12항목으로 줄이는 것은 방법론상의 문제에 속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 / 천병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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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서사시적 모방과 비극적 모방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수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1) 덜 저속한 모방이 더 우수한 모방이고 더 훌륭한 관걕을 상대하는 모방이 항상 덜 저속한 모방이라면 아무나 가리지 않고 상대하는 모방이 저속한 모방임이 명백하다. 배우들은 자신이 무엇을 보태지 않으면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할 줄 알고 별의별 동작을 다 하는데, 예컨대 졸렬한 피리 취주자들은 원반 던지기를 모방할 때면 몸을 빙글빙글 돌리고 스퀼라가 작품의 주제일 때면 코로스 장(長)을 잡아당긴다.2)
 그런데 비극은 이러한 종류에 속하는 예술로서 옛날 배우들이 볼 때 요즘 배우들이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과 같은 결함을 갖고 있다고들 한다. 이를테면 뮌니스코스는 칼립피데스를 그의 연기가 지나치다고 하여 '원숭이'라고 불렀고 핀다로스도 그와 유사한 평을 들었는데,3) 서사시에 대한 모든 비극의 관계도 옛날 배우들에 대한 요즘 배우들의 그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사시는 제스처가 필요 없는 교양있는 관객들을 상대하고, 비극은 교양 없는 관객들을 상대한다는 것이다.4) 비극이 이처럼 저속한 예술이라면 그것은 서사시보다 열등한 예술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답변이 가능하다. 첫째, 1) 이러한 비판은 비극 시인의 작시술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에 관련된 것이다. 왜냐하면 지나친 제스처는 소시스트라토스5)에게서 그 예를 볼 수 있듯이 서사시의 음송에서도 가능하고, 오푸스의 므나시테오스6)에게서 그 예를 볼 수 있듯이 노래 시합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2) 우리는 모든 동작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 그렇지 않다면 무용까지도 배척해야 할 것이다 - 교양 없는 사람들의 동작만을 배척해야 할 것이다.7) 바로 이 점이 과거에 칼립피데스가 그리고 오늘날 다른 배우들이 비난받고 있는 점인데, 말하자면 그들이 모방하는 여인들이 숙녀답지 않다는 것이다.8) 3) 비극 역시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동작 없어도 효과를 산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작품을 단지 읽기만 해도 그것이 어떤 성질9)의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극이 다른 모든 점에서 더 우수하다고 한다면, 이 점10)은 비극에 꼭 필요한 부분은 아니다.
 둘째, 1) 비극은 서사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서사시의 운율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11) 그 밖에 중요한 요소로서 음악과 장경을 가지고 있는데 전자는 드라마의 쾌감을 가장 생생하게 산출한다. 2) 비극은 우리가 그것을 읽을 때에도 무대 위에서 연출되는 것은 관람할 때나 다름없이 생생하게 실감된다. 3) 비극적 모방은 더 짧은 시간에 그 목적을 달성한다. 보다 압축된 효과는 많은 시간에 걸쳐 분산된 효과보다 더 큰 쾌감을 준다. 예컨대 소포틀레스의 <오이디푸스>를 <일리아스>와 같은 정도의 행수로 늘였을 때의 효과를 생각해보가. 4) 서사시인들의 모방은 통일성이 적다. 그 증거로 그들의 어떤 작품으로부터라도 여러 개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12) 따라서 그들이 취급하는 것이 단 하나의 스토리일 경우 짧막하게 표현되면 꼬리가 잘린 것 같은 인상을 줄 것이고, 서사시가 보통 갖는 길이로 표현되면 물을 많이 탄 술과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서사시가 통일성이 적다 함은 서사시가 다수의 행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그와 같은 부분을 많이 갖고 있는데 각 부분은 또 그것대로 일정한 크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두편의 시는 가능한 한 가장 완전한 구성을 갖고 있으며 가능한 한 하나의 행위를 모방하고 있다. 따라서 비극이 이러한 모든 점에서 그리고 또 시적 효과를 산출함에 있어(왜냐하면 비극과 서사시는 임의의 쾌감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특정한 쾌감13)을 산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더 우수하다면 서사시보다 시의 목적을 더 훌륭하게 달성하므로 더 우수한 형식의 예술임이 명백하다.
 비극과 서사시의 일반적 본질과 그 종류, 구성 요소의 수와 성질, 성공과 실패의 여러 가지 원인, 비평가들의 비판과 그에 대한 해결에 관해서는 이쯤 해두기로 하자.---14)
 
1) 예컨대 플라톤의 <법률> 658d에서 비극은 교양 있는 부인들과 소년들이 애호하지만 서사시는 나이 든 점잖은 사람들이 애호한다 하여 서사시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다
2) 여기서 비극의 지나친 연기를 디튀람보스 공연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디튀람보스에 관해서는 제1장 주2 참조. '원반 던지기를 모방할 때면 몸을 빙글빙글 돌린다'함은 원반이 빙들빙글 날아가는 모양을 흉내내는 것을 말하고, '스퀼라가 작품의 주제일 때면 코로스 장을 잡아당긴다'함은 머리 여섯에 발 열둘을 가진 괴물 스퀼라가 오뒷세우스 일행을 잡아당기는 모양을 흉내내는 것을 말한다. 스퀼라에 관해서는 제15장 주5 참조. 그리스 음악은 원래부터 모방적인 제스처를 수반하는 경향이 많았는데(제1장 주3 참조) 후기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 뚜렷해진 것 같다.
3) 뮌니스코스는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로 기원전 422년에 배우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주로 그의 후기 작품에 출연했던 것 같다. 킬립피데스는 기원전 418년 레나이아 제전에서 젊은 나이에 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 관해서는 크세노폰의 <향연>3.11에 그가 관객의 눈물을 짜낼 수 있다고 자랑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핀다로스에 관해서는 달리 알려진 것이 없다.
4) 누구의 말인지 확실치 않으나 원전에 '말하고들 있다'고 복수형이 나오는 걸 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견해였던 것 같다
5,6) 소시스트라토스와 므나시테오스에 관해서는 달리 알려진 것이 없다.
7) 즉 교양 없는 사람들의 제스처나 태도로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8) 그가 품위 없는 여인의 역을 맡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동작에 품위가 없었다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자 역도 남자 배우가 맡았다.
9) 개개의 작품의 성질이 아니라 비극 일반의 본질을 말한다.
10) '이 점'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11) 극히 드믄 일이지만 비극에도 육절운율이 상용된 예가 있다. 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의 여인들> 및 에우리피데스의 <탄원하는 여인들> 참조.
12) 제23장 참조.
13) 제14장 참조. '비극의 쾌감은 연민과 공포에서 오는 쾌감인 바, 시인은 이러한 쾌감을 모방에 의하여 산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사시의 쾌감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있지만 문맥으로 보아 비극의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함이 옳을 것이다.
14) 이 파손된 부분에서는 희극과 비극의 비교론이 전개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
 
천병희: 서울대학교 독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한 문학박사로,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5년간 독문학 및 고전문학을 수학하였으며, 북바덴 주정부 시행 그리스어 검정시험 및 라틴어 검정시험에 합격한 바 있다. 현재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서로 <그리스 비극의 이해>가 있고, 주요 역서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 <코에포로이>, <자비로운 여신들> <경박한 프로메테우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앨렉트라> <필록테테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나> <힙폴뤼토스> <알케스티스> <박코스의 여신도들> <퀴클롭스>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새> <뤼시스트라데> <개구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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