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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2018년 04월 02일 17시 40분  조회:3932  추천:0  작성자: 강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1)  / 라이너 마리아 릴케
 
파리에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보내주신 편지는 수일 전에야 받았습니다. 편지에 담겨진 관대하고 친절하신 신뢰감에 우선 감사 드립니다. 그 이상 뭐라고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제게는 어떤 피평적인 견해라도 중요하게 여겨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비평으로는 도저히 예술 작품에 근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 하든 비평에는 다소간에 우스꽝스런 오해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모든 사물은 우리들이 믿고 싶은 이상으로 이해하거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저의 모든 사건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언어를 넘어선 영역 속에서 일어나며 무엇보다도 예술작품은 이러쿵 저러쿵 비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스쳐 지나가는 우리들의 보잘 것 없는 생명과는 달라서 영속되는 것이며 신비에 찬 존재입니다.
 이런 서두 말을 드리면서 저는 한 가지만은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록 당신의 시들은 개성(個性)에 도달하려는 은밀하게 숨겨진 씨앗은 보이나 독자적인 양식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특히 제일 마지막의 <나의 영혼 속에서>라는 시에서 그 점을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는 무언가 독자적인 것이 언어와 운율로 나타나려고는 합니다. <레로빨디에게 붙이는 헌시>라는 아름다운 시 속에도 그 위대했고 고독했던 분과는 친근감이 자라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취할 게 없으며 독자적인 게 없습니다. 마지막 시나 레오빨디에게 붙이는 헌시(獻詩)에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동봉해 주신 편지는 당신의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무언가 막연한 것을 설명해 주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시가 좋으냐고 물으셨습니다. 제게 말입니다.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도 물으셨을  것입니다 잡지사에 보내기로 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와 비교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편집자가 당신의 작품을 되돌리면 불안을 느꼈을 것입니다. 충고를 드려도 좋으시다고 하셨으므로 감히 말씀드리는데 제발 그런 일은 그만 두도록 하십시오. 당신은 자기의 밖을 내다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보다도 그러지 말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충고를 해 주거나 당신을 도와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沈潛)하십시오. 그리하여 당신께 쓰라고 명령하는 그 근거를 캐어 보십시오. 그리고 쓰고 싶다는 욕구가 당신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뿌리를 뻗어 나오고 있는지를 알아 보시고, 만일에 쓰는 일을 그만 둘 경우에는 차라리 죽기라도 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이런 의문을 우선 조용한 밤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나는 쓰지 않으면 안될까? 그리고는 마음 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대답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십시오. 만일에 그 대답이 그렇다고 하거나 쓰지 않고는 죽을 수 밖에 없다 라고 그 진지한 의문에 대해 명확하고 확고한 대답을 내릴 수 있거든 당신은 당신의 생애를 이 필연성에 의해서 세우십시오. 당신의 생활은 비록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좋거나 쓸데없는 순간일도 그 충동에 대한 증거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자연(自然)에 근접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게 될 것을 모방하지 말고 표현하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사랑의 시는 쓰지 않도록 하십시오. 우선 흔히 있는 일상적인 형태는 피하도록 하십시오. 그것들이야말로 가장 힘든 것입니다. 비록 얼마되지는 않지만 훌륭하고 빛나는  전통으로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숱하게 많은 판에 독자적인 것을 나타내자면 보다 힘차고 완숙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즐겨 택하는 보편적인 주제는 피하고 당신 자신의 일상(日常)이 주는 주제(主題)를 택하십시오. 당신의 슬픔과 그리고 열망을, 무엇이든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 자신의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나 믿음을 묘사하십시오. 그것들을 내심에서 훌려 오도록 은근하고 겸손하게 묘사하도록 하십시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사물들, 당신의 꿈의 영상(映像), 추억의 대상들을 인용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이 비록 빈약하게 보일지라도 그걸 탓하지 말고 당신 자신을 탓하십이오. 그리고 훌륭한 시인이 못되어 그 일상의 풍요(豊饒)를 불러낼 수 없음을 스스로 책하십시오. 창조하는 자에게는 빈곤도 없으며 그냥 지나쳐도 좋을 빈약한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당신이 감옥에 갇혀서 외계의 소음조차 당신의 의식에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에라도 당신에게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값비싸고 풍성풍성한 추억의 보고(寶庫)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주위를 돌리십시오. 아득하게 지나간 과거의 가라 앉아버린 감동을 다시 캐어내 보려고 애쓰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개성은 굳어지고 고독은 넓어져서 어둑어둑한 방(房)이 될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음은 멀리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안으로의 전환(轉換)에서, 자기 세계 속으로 침잠에서부터 시가 나오게 되면 당신은 그 시가 좋으냐고 누구에게 물 볼 염도 하지 않게 될 겁니다. 또한 잡지사에 보낸 그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갖게하려고 애도 쓰지 않게 됩니다. 당신은 자기 작품 속에서 자랑스럽고도 자연스런 재화(財貨) 즉 자기 생명의 한 편린(片鱗), 그 생명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적필연성(內的必然性)에서 이루어진 예술작품은 훌륭한 것입니다. 시의 원천에 따라서만 이시가 좋으냐 나쁘냐 하는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판단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드릴 수 있는 충고는 이것 뿐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파고 들어서 당신의 생명이 근원한 그 깊이를 음미하도록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 원천에서부터 반드시 창작을 해야할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해답이 어떻든 그걸 받아들이십시오. 모르긴 해도 당신은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 났다는 사실에 밝혀질 겁니다. 그러거든 그 운명을 받아들이도록 하시고 외부로부터 오게 될 보상(報償)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말고 그 무겁고 힘든 짐을 지고 가십시오.  창조자는 그 자신이 하나의 세계이어야만 하며 자신 속에서나 그 자신과 어울려 하나가 될 자연 속에서 모든 것을 찾아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 속, 당신의 고독 속으로 파고들고도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을 그만두어야만 될지도 모릅니다. 앞서도 말씀 드렸지만 시인의 될 수 없다는 것은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제가 말씀 드리는  바는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도 자기로의 복귀(復歸)는 전혀 무위(無爲)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생활이 어떻게 되든  거기서부터 독자적인 길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훌륭하고 풍요로우며 양양한 대로가 되기를,  저는 말로 나타낼 수 있는 이상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더 드릴 말씀이 있겠습니까? 제 생각으론 할 말은 다 한듯 싶습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당신께 충고할 것이 있다면 조용하고 진지하게 당신의 발전을 통해서 성장해 가도록 하십시오. 가장 은밀한 시간에 당신의 내심의 느낌을 통해서만이 해답을 내릴 수 있는 의문에 대해서 밖을 향하거나 외부로부터 그 해답을 구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처럼 당신의 발전을 가로막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편지 속에서 호라체크 교수님의 존함을 읽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아직도 고매하신 그 학자님에 대해 경외의 마음과 해를 두고도 변함없는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충정을 제발 그분께 사뢰어 주십시오. 그분께서 아직도 저를 기억해주시고 계신 점에 대해 무어라고 말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믿고 보내 주신 당신의 시들을 다시 회송합니다. 거듭 당신이 저를 믿어 주신 관대함과 솔직한 마음씨에 대해 감사 드리면서 낯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제가 아는 바대로 믿어 주신 점에 대해 보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충정과 변함없는 관심을 갖고---
 
                    1903년 3월 17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탈리아의 피사 근교 비아렛지요에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우선 저를 용서해 주셔야겠습니다. 2월 24일자의 댁의 편지에 오늘에야 비로서 감사를 드려야 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동안 계속 몸이 불편했습니다. 별다른 병은 아니었으나 인플렌자에 걸린 것처럼 나른해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해봐야 별다른 차도가 없기에 결국 이곳 남쪽 바닷가로 떠나왔습니다. 전에더 이곳에서 한번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도 아직 완쾌되지가 않아서 글 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몇 줄 되지 않는 편지지만 많은 것으로 혜량하여 주십시오.
 우선 당신이 주시는 편지마다 언제나 저를 기쁘게 해 준다는 사실을 아셔야만 합니다. 그러나 회답에 대해서만은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기대에 어긋나게 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응당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근본적으로 따져 본다면 우리들은 가장 심원하고 중요한 사물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고독합니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충고를 하거나 도움을 주자면 많은 일이 벌어져야만 합니다. 많은 일이 이룩되어 비록 단 한 번의 운좋은 결말을 맺기 위해서도 사물과의 완전한 상호관계가 이룩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두 가지만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한 가지는 아이러니입니다. 아이러니의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하십시오. 특히 창조력이 빈약한 순간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도록 하십시오. 순수하게 사용하면 아이러니도 또한 순수합니다. 그걸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것과 너무나 친숙해지는 것 같거나 아이러니와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게 두렵거든 보다 위대하고 진지한 대상들로 눈을 돌리십시오. 그런 대상들에 비하면 아이러니야말로 보잘 것 없이 무력하게 될 것입니다. 사물의 밑바닥을 추구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아이러니가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보다 큰 것의 언저리를 즉시 살펴 보십시오. 보다 진지한 사물의 영향을 받게 되면 아이러니가 우연한 것일 경우에 당신으로부터 떨어지게 될 것이며, 그것이 태어날 때부터 당신의 것이라면 진지한 도구(道具)로 강화(强化)되어 당신의 예술을 이루는데 쓰이는 한 가지 수단이 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오늘 말씀 드리고 싶은 두 번째 것은 이런 것입니다.
 저의 장서 중에서 무엇보다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은 불과 몇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중에 두 가지는 어디를 가든 언제나 지니고다니는 게 있습니다. 지금도 역시 저의 좌우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들은 성서(聖書)와 덴마크의 위대한 시인 덴 페터 야콥센(1847~1885)의 저작들입니다. 당신께서도 그의 작품들을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책들은 구하기는 쉬울 겁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 일부가 게크람판 세계문고로 훌륭하게 번역이 되어 출판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콥센의 <여섯 개의 소설>이 수록된 책과 그의 장편 <닐스 리네>를 구해서 첫째 권의 첫 소설 <모겐스>부터 읽어 나가기 시작하십시오. 한 세계가 당신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과 부(富), 세계가 지닌 불가해한 것이 찾아들 것입니다. 잠시 동안 그 책들 속에서 살아가시며 당신이 읽을 가치가 있어 보이는 그곳에서 배우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 책들을 사랑하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사랑이 어떻게 되든 이런 사랑은 수천배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 저는 그 점을 확신합니다. 그 사랑은 당신의 생성(生成)의 피륙을 뚫으며 당신의 경험, 환멸, 환희의 모든 올 속에서 가장 중요한 가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창조의 본질에 대해 그 깊이나 영원에 대해 제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배웠다고 한다면 제가 알고 있는 두 분의 이름을 들어야겠습니다. 한 분은 위대한 시인 야콥센이며, 또 한 분은 오늘날 살아 있는 모든 예술가 중에서 비견할 수도 없는 조각가 오거스트 로댕입니다.
 -당신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빌면서.
                        1903년 4월 5일 마리아 라이너 릴케
 
이탈리아의 피사 근교 비아렛지요에서(2)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부활절에 보내주신 편지로 해서 저는 여러 가지로 즐거웠습니다. 그 편지를 통해서 당신의 여러 가지 훌륭한 점을 듣게 되었으며 당신이 야콥센의 위대하고 훌륭한 예술에 대해 말씀하신 태도로 미루어 보아서 제가 당신의 삶과 그 삶이 가지는 많은 문제들을 충만한 곳으로 이끌어 갔을 때, 제가 과히 잘못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닐스 리네>, 그 호화롭고 찬란하며 깊이를 가진 책의 세계가 당신께 전개될 것입니다. 그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인생의 은밀한 향기로부터 삶의 묵직한 열매의 풍요하고도 위대한 맛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이 그 속에 어울려저 있는 듯합니다. 거기에는 이해되지 않았거나 파악되지 않은 것, 경험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늘거리는 추억의 여운 속에서 인식되지 않은 것도 없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체험이라도 중요하게 취급되었으며, 아무리 적은 사건이라도 운명처럼 전개되었습니다. 그 운명도 신비에 차고 크나큰 피륙 같아서, 그 속에서 한 올 한 올이 섬세한 손에 의해서 짜여졌으며 한 올 곁에다른 실오라기가 포개지고 수 백의 다른 실올에 의해 다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이 책을 처음으로 읽는다는 크나큰 행운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낯설은 꿈 속에서처럼 그 책이 주는 무한한 경이 속을 헤어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께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뒷날에 가서도 당신은 여전히 변함없이 놀라운 마음으로 이 책들을 탐독하게 될 것이며 삶에 대한 신념에 있어서는 보다 심화될 것이며 인생에 있어서는 보다 복되고 위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마리구릅뻬의 운명과 동경을 그린 그 놀랄만한 책을 읽어야 하며 야콥센의 서간문과 인기단편들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비록 번역은 시원치 않지만 무한한 격조 속에서 울려퍼지는 그의 시도 읽으셔야 합니다. 그럴 경우에 저는 전부가 수록된 야콥센의 멋진 전집을 사도록 권합니다. 이 전집은 3권으로 되어 있는데 번역도 훌륭하며 라이프치히의 오히겐 디트리히 서점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권당 5마르크 내지 6마르크면 살 것입니다.
  <여기에 장미꽃이 피어야> 라는 시(이 작품은 섬세한 점과 형식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작품입니다)에 대한 당신의 견해가 오히려 서문을 쓴 사람에 비해서 나무랄 데 없이 옳습니다. 여기서 한 말씀 드려도 좋다면, 될 수 있는데로 미학적이고 비평적인 글은 읽지 마십시오,  그런 것들은 편파적인 견해로서 굳어졌으나 생명력이 없는 고화상태(固化狀態)에서 무의미하게 되었거나, 노회(老獪)한 언어의 유희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들이란 오늘은 이 견해가 이기는가 하면 내일은 다시 뒤집혀지기가 일수입니다. 예술작품이야 말로 끝없는 고독에서 나오는 것이며 비평으로는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그것을 파악할 수도 지닐 수도 있으며 그것에 대해 불편부당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되든 당신은 자신과 자신의 감정이 옳은 것으로 알고 거기에 따르십시오. 그리고 모든 시비나 비평이나 해설서들은 무시하도록 하십시오. 설사 당신이 틀렸다 하더라도 당신은 당신의 내적인 삶이 지닌 자연스런 성장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다른 인식으로 이끌어가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판단으로 하여금 독자걱이고도 은밀하며 아무 것에도 구해받지 않고 스스로 발전을 하도록 두어 두십시오. 그런 발전은 모든 진보와 마찬가지로 깊이 내심에서 나와야 하며 강요되거나 채찍질이 되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은 만삭이 될 때까지 잉태되었다가 배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상과 감정의 싹으로 하여금 자기 속에서, 어둠 속에서, 무의식 속이나 이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불가사의 속에서 완성되도록 하시고, 겸허한 마음과 끈기로서 명료함이 새로이 분만될 시기를 기다리도록 하십시오. 그게 바로 예술적으로 살아가는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술을 이해하거나 직접 창작을 하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시간을 척도로 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횟수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10년이란 세월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바로 계산하지도 연수를 세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수목처럼 무성하도록 하십시오. 나무는 수액을 억지로 내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봄의 폭풍 속에서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혹시나 그 폭풍 끝에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쩔까 하고 불안감을 갖는 일도 없습니다. 여름은 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영원이 그들의 눈에 앞에 있듯, 근심 걱정없이 조용하고 침착하게 거기에 서 있는 참을성 있는 자들에게만 여름은 찾아옵니다. 저는 그걸 매일 익히고 있으며 그것도 괴로움을 찾아가며 배우고 있고, 또 그 괴로움에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끈기만이 전부입니다.
 리하르트 데멜(1863~1920 독일의 시인)의 책들에 대해서 말씀 드리자면,(덧붙이자면 그에 대해서는 저도 거의 모릅니다) 그의 책 속에서 아름다운 한 페이지를 발견했는가 싶으면 금세 다른 페이지를 펴기가 두렵습니다. 모든 게 다시 엉망으로 만들어져서 훌륭한 것을 보잘 것 없이 뒤바꿔 놓지나 않았나 하고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열성적으로 살며 시작(詩作)을 한다라는 말로 당신은 그 사람을 아주 훌륭하게 특징을 지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예술적인 체험은 성적체험(性的體驗)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가까우며 성적체험이 가진 바의 우수(憂愁)와 괴로움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서 두 가지 현실은 외형은 다르나 원래는같은 동경과 지복(至福)의 한 형태입니다. 열정이란 말 대신에 성욕이란 말을 대신 쓸 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 점에서는 그의 예술은 대단히 위대하며 무한히 중요합니다. 물론 교회적인 오류로 이상스럽게 일그러지지 않는 위대하고도 포괄적이어서 순수한 성이지만, 그 사람의 창작적인 힘은 무한히 커서 원초적인 힘처럼 세차며, 독자적인 운율을 그 속에 지니고 있어서 산에서 흘러내리듯 그 사람으로부터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의 이런 힘이 반드시 옳다거나, 척하는 게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런 점이 창작하는 자에게 가해지는 가장 힘든 시련이기도 하지요, 창작하는 사람은 언제나 의식하지 않는 자, 자기의 가장 훌륭한 덕성조차 느끼지 않는 자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가 자연스러움과 독자적인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 그의 존재가 살랑이는 소리를 내며 성적인 것에 도달하게 되어도 그 힘은 그힘이 필요로 하는 완전히 순수한 인간을 거기서 찾지 못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완벽하게 성숙되고 순수한 성의 세계란 없습니다. 있다고 한다면, 오직 비정적이며 남성적인 것 뿐이지요. 성욕이란 도취며 격정으로서 낡은 편견과 불손으로 짓눌린 것이며 사내가 그걸로 해서 사람을 일그러뜨리고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오직 사내로서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정감 속에는 무언가 편협한 것, 외형적으로 난폭한 것, 혐오스러움, 일시적인 것 등이 있어서 그의 예술의 폭을 좁히며 그것을 애매모호하고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데멜의 예술은 결코 완전무결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과 정열이란 낙인 찍혀 있어서 그의 예술 중에서 영속될 것은 거의 없습니다. 하기야 모든 예술작품이 모두 그렇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깃들인 위대한 것에 한없이 즐길 수는 있을 것입니다. 단지 거기에 빠지거나 데멜의 세계의 단순한 추종자가 되어서는 안 될 뿐입니다. 그 세계는 끝없이 불안스러우며 간통과 혼란으로 가득 차서 진정한 운명과는 아주 먼 거리에 있습니다. 진정한 운명이란 비록 일시적인 슬픔보다는 훨씬 괴로운 것이지만 보다 위대한 것에 도달할 기회와 영원으로 가는 용기를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그의 책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저로서는 당신이 기뻐하시도록 전부 보내드렸으면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저는 가난한 사람이라 출판과 동시에 그 책들은 이미 제 것이 아닙니다. 제 자신조차 그것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간절하나 저의 책에 대해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 분들에게 골고루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정이고 보니 당신에게도 저의 최근작의 제목과 출판사명을 적어 드리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직접 구입하셔야겠습니다. 최근작들은 모두 합해서 십이삼권이 출판되었습니다.
 저의 책들을 읽어 주시다면 고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03년 4월 23일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부레멘 근교 볼프스 베테에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십여일 전쯤에 저는 파리를 떠났습니다. 병들고 지쳐서 북쪽의 광활한 평야로 달려왔습니다. 평야의 광활함과 정적과 하늘이 다시금 저를 건강하게 해 주리라 생각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곧 오랜 장마가 계속되다가 오늘에야 겨우 불안스럽게 바람이 불어대는 대지 위로 하늘이 약간 개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청명한 순간을 틈타서 당신께 안부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친애하는 카프스 씨. 저는 당신의 편지에 오랫동안 답장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걸 잊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편지는 다른 편지 틈에서 눈에 뜨이던 다시금 읽게 되는 그런 편지였습니다. 저는 편지 속에서 당신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게 5월 2일 자의 편지였는데 당신도 틀림없이 그걸 기억하고 계실겁니다. 지금과 같이 멀리 떨어져 쓸쓸한 정적 속에서 그걸 읽으면 삶에 대한 당신의 아름다운 배려가 제가 파리에서 느꼈던 것보다는 훨씬 저를 감동시킵니다. 파리라는 곳은 사물들을 가볍게 떨게 하는 무지스러운 소음 때문에 모든 것이 음조와 반향이 다른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 억센 대지가 나를 둘러싸고 있으며, 그 위로 바다로부터 실려온 바람이 불어오는 이 속에서는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마음 밑바닥에 독자적인 생명을 지니고 있는 당신의 느낌이나 의문에 대해서는 어떤 사람도 해답을 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잡힐듯 말듯 아련한 것이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할 때는 언어의 오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에 현재 나의 눈이 안식을 취하고 있는 사물들과 비슷한 사물들에 의지하신다면 언제건 해결을 보실 것으로 믿기어집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만일에 당신이 자연에 의지하여 그 자연의 소박함, 눈에도 뜨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이긴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크고도 측량할 수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작은 사물들에 의지하시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도 사랑을 품으시고 단순한 봉사자로서 비록 빈약하게 보이는 것에라도 신뢰를 얻도록 애쓰신다면 당신에게는 모든 것이 보다 쉽게 될 것이고 통일을 간직하게 될 것이며, 어떻게 되는 타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비록 놀라서 뒤로 주춤하는 오성(悟性)으로는 불가능하드라도 당신의 깊숙한 의식과 각성과 인식 속에서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 젊으시며 무엇보다도 모든 것에서의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감히 부탁드리는 것인데, 제발 당신의 마음 밑바닥에 도사린 미해결의 문제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그 문제 자체를 밀폐된 방이나 낯선 말로 써진 책처럼 사랑하도록 하시고 지금 당장에 성급하게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까지 그 해답을 갖고 살아 보시지 않았으므로 아무리 해야 그 해답이 주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살면서 체험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우선 그 문제 속에서 살아 보십시오. 아마도 당신은 비록 먼 장래일지라도 모른는 사이에 그 해답 속에 들어가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복되고 순수한 삶을 형태로서 조형하고 형상화 할 가능성을 당신 속에 지지고 계실 겁니다. 그곳으로 자신을 이끌어 가십시오. 무엇이든 믿음으로써 그걸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의지에서. 당신의 내면의 어떤 필연에서 올 때만 그걸 감수하고 결코 그것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성(性)이란 과제는 어려운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과해진 괴로움입니다. 도대체가 진지한 것은 모두 어려우며 또 모든 것은 진지합니다. 당신이 만일에 그 점을 인식하시고 자신으로부터, 당신의 본성과 태도로서 당신의 경험과 소년 시절이나 그 시절의 힘으로 해서 인습과 관습에 물들지 않고 성(性)과의 완전하고 독자적인 관계를 얻게 되면 타락하지나 않을까, 당신의 가장 고귀한 소유물인 그 성에 대해 자격지심을 갖게 될까 두려워 해서는 안 됩니다.
 육체적인 환락은 관능적인 체험이며 그것은 순수한 정관이거나 아름다운 열매를 맛보게 되는 순수한 감정,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크나큰 체험이며 세계를 아는 인식이며 모든 앎의 충만이며 광휘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나쁜게 아니라 사람들이 그 체험을 오용하고 낭비하며 가장 지고한 곳으로 이르는 수단으로 쓰지 않고 그 체험을 단순한 방심상태나 자극으로서 그들의 삶의 지친 자리를 메꾸려는 게 나쁜 것입니다. 인간들은 먹는 일조차 이상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모자라는 데 다른 편에서는 남아 돌아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삶을 새롭게 해 주는 심오하고 단순한 욕구들이 모두 흐려졌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것들을 깨끗하게 할 수도 분명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나치게 타인에게 의존하는 개개인에게는 불가능하겠지만 고독한 사람은 그럴 수가 있습니다. 고독한 자는 온갖 동물이나. 식물 속에 깃들인 아름다움이 사랑과 동경의 은밀하고 지속적인 형태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 사람은 식물을 보듯 동물을 볼 수가 있습니다. 동물들은 참을성있게 기다리며 즐거이 두 몸이 하나로 되어 번식하며 성장하는데, 그것이 단순한 육체적인 쾌락이나 고통에서가 아니라 쾌락이나 고통보다 크며 의지와 저항보다도 힘찬 필연성에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인간이 그들의 가장 작은 사물에 이르기까지 대지에 넘쳐 흐르는 이 신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가볍게 느낄 것이 아니라 보다 진지하고 어렵게 느끼며 보다 엄숙하게 참아 나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신적으로 보이건 육체적으로 보이건 간에 인간이 하나 뿐인 자기의 생식능력에 대해 보다 경건한 자세를 가져 주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정신적인 창조도 육체에서 비롯되며 본질에서는 육체적인 창조와 같은 것이어서 더욱 은밀하고 황홀하며 영원한 육체적인 쾌락의 반복에 지나지 않습니다. 창조자가 되어 생산하고 형성한다는 생각은 이 세계에서 얻어지는 영속적이고도 보다 큰 확증과 현실화가 없이는 무(無)에 불과합니다. 사물이나 동물들로부터 수 천 가지의 동의(同義)없이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즐거움은 그것이 수백만의 생산과 잉태에 대해서 깨어날 때부터 얻어진 추억으로 가득차기 때문에 보다 아름답고 풍성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창조자의 사상 속에는 잊혀져 버린 수천 날의 사랑의 밤이 살아 있으며 그 사상을 고귀함과 존엄성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사랑의 밤에 서로 만나서 어울리는 사람들은 흔들리는 쾌락 속에 얽혀서 하나의 진지한 작업을 하는 것이며, 말할 수 없는 환희를 노래 부르기 위해서 나타나게 될 미래에 올 시인의 노래를 위해 힘과 깊이와 그 달콤함을 축적합니다. 미래를 불러오는 겁니다. 그들이 설사 잘못을 저지르며 맹목적으로 포옹을 한다고 하드라도 미래는 오게 마련이며 새로운 인간이 태어납니다. 저절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우연의 밑바닥에도 법칙은 눈을 뜨고 있어 그런 법칙에 따라서 저항력이 강하고 힘센 정자(精子)는 그걸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있는 난자(卵子)속으로 치밀고 돌입합니다. 당신은 피상적인 데에 속지 마십시오. 아무리 피상적인 것 속에라도 법칙은 생겨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 그 신비를 잘못 체험하거나 나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그 신비를 잃어버리며 봉함 편지처럼 내용도 모르는 체 남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그러니 명칭의 다양성과 사건의 복잡성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모르긴 해도 모든 것 위에는 공통의 동경으로 모성(母性)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게서 적절하게 표현하신대로 처녀의 아름다움은 아직 아무 것도 이루지 앟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며 동경하고 준비하고 불안을 느끼며 예감하는 모성이오, 어머니의 아름다움은 봉사하는 모성이며, 노파의 마음 속에는 위대한 추억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남성 속에도 역시 모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육체적이고도 정신적인 두 가지 모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남성이 하는 생산도 일종의 잉태이며 그의 창작으로 그의 내심의 충일에서 비롯된다면 그것도 바로 출산인 것입니다. 양성(兩性)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서로 가까운 것이며, 세계의 위대한 갱신(更新)도 남녀가 그릇된 감정과 혐오감에서 해방되어 대립적인 존재로 서로 상대방을 찾을 게 아니라 오누이와 이웃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결합되어 그들에게 과해진 그 어려운 성을 단순 소박하게 진지하고 참을성 있게 함께 짊어지고 나갈 때에 성립될 듯 싶습니다.
 장차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가능하게 될지도 모를 온갖 것을 고독한 사람은 일찍부터 미리 준비하며 실수가 없는 손으로 세워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께서는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시고 당신께 부닥쳐 오는 고통을 아름다운 음조로 참고 견디십시오. 당신의 말씀에 따르면 가깝던 사람들이 멀어져 간다고 하셨는데, 그건 당신의 주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의 이웃이 멀어진다면 당신의 영역은 이미 성좌(星座)에까지 도달하도록 넓어지고 커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와도 함께 갈 수 없는 당신 자신의 성장을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뒤에 처진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게 대하시고 그들 앞에서 확고하고 조용한 자세를 가질 것이며 당신의 절망으로 해서 그들을 괴롭히지 않도록 하고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확신이나 즐거움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설사 완전하게 달리 된다고 하더라도 필연적으로 꼭 변화해야 할 것까지는 없으며 그들과 더불어 단순 소박하게 성실한 공통점을 찾도록 하십시오. 그들에게서 벌어지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사랑하시고, 홀로 있기를 두려워하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는 관대하시고, 그 고독에 대하여 신뢰감을 갖도록 하십시오. 언제나 어린이들과 어른들 사이에서 팽팽히 맞서 있는 연극의 소재를 제공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어린이들의 힘을 소비시키며 설사 이해는 해주지 못하더라도 따뜻한 노인들의 사랑을 좀먹습니다. 노인에게서 충고를 바라거나 이해해 주길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나 유산처럼 당신을 위해 마련된 사랑을 믿고 그 사랑 속에는 힘과 축복이 있으므로 당신이 거기서 빠져나와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우선 당신이 어떤 직업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사실은 좋은 일입니다. 직업은 당신을 자립하도록 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으로 하여금 굳건하게 서도록 해 줍니다. 직업 때문에 당신의 내적인 생활이 제약을 받는다고 느낄 때까지는 우선 참고 기다리십시오. 저도 직업이란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직업에는 인습에 짓눌려 개인적인 견해는 발붙일 여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고독은 그런 속에서도 당신에게는 의지와 고향이 될 것입니다. 그 고독으로 해서 당신은 자신의 길을 발견할 것입니다. 저의 모든 소망은 즐거이 당신을 함께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며 저의 모든 신뢰감은 항상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1903년 7월 16일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마에서 (1) / 라이너 마리아 릴켸
 
 
 8월 29일자의 당신의 편지는 프로렌스에서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이나 지나서야 그 편지에 답장을 합니다. 너무나 지체하게 된 것을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저는 도대체 여행 중에는 편지를 쓰기가 싫습니다. 편지를 쓰는 데는 꼭 필요한 필기구 이외에도 제겐 더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약간의 정적과 고독과 과히 낯설지 않은 시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대략 6주일 전에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아직도 로마는 텅 비었으며 더운데다 열병의 소문이 떠돌던 때였습니다. 이런 형편에다가 실제적인 다른 제반 시설의  곤란한 점이 덧붙여져서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불안감은 끝날 줄을 몰랐으며, 고향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 외국인들을 짓눌러 주었습니다. 게다가 로마라는 곳은 아직 그곳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면 처음 며칠 동안은 기분을 짓누르는 슬픈 인상을 준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합니다. 이런 우울한 인상은 거기서 뿜어내는 활기가 없고 우울한 박물관의 느낌처럼 파헤쳐져서 애써서 유지 보존된 과거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보잘 것 없는 현재는 그 과거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없는 사물, 학자들과 문헌가들에 의해 괴로움을 받으며 범속한 이탈리아 여행객들에 의해 변형되는 썩은 사물에 대한 모방된 과대평가도 그러합니다. 그런 사물들은 실제에 있어서는 우리들의 것도, 또 우리들의 것이 되어서도 안될 다른 시대, 다른 삶의 우연한 잔재애 불과합니다. 매일매일 거듭 몇 주일이 지나고 나면 얼떨떨하지만 비로소 자기 정신을 되찾고 자기에게로 돌아와서 혼자말로 중얼거리게 됩니다. 이곳이라고 해서 다른 곳에 비해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는 건 아니다, 세대를 걸쳐오며 수선되고 보완이 되어 끊임없이 경탄을 받고 있는 대상들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바로 무(無)이며  그 자체는 아무런 마음도 가치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곳에도 아름다움은 많습니다. 어디에나 아름다움은 있는 법이지요. 무한이 살아서 움직이는 물줄기는 고대의 수로를 거쳐 대도시로 흘러나와 숱한 광장 위 석조의 흰 수반(水盤)위에서 춤을 추며 넓고 큼지막한 수조가 낮에는 살랑이고 밤에는 더욱 물소리가 높아집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정원들도 있고 잊을 수 없는 골목길과 계단들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에 의해 고안된 계단들은 흐르는 물을 본떠 만들어서 넓게 경사를 이루며 층계와 층계가 마치 파도에서 파도가 생겨나듯 잉태되었습니다. 이런 인상들을 통해서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말많고 지껄이기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니서 점차로 적은 사물들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 사물들 속에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영혼이 서식하고 소리없이 참여하는 고독이 서려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로마 예술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아름다운 기사상(騎士像),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에서부터 과히 멀지 않은 도심의 언덕 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 주일 내에 저는 조용하고 소박한 방으로 이사를 하겠습니다. 커다란 공원 속에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도시와 그 소음과 우연으로부터 숨겨진 다락방이지요. 거기서 겨울 내내 거처하며 크나큰 정적을 즐기며, 그 정적으로부터 활동적인 시간의 선물을 기대하게 될 듯도 싶습니다.
 거기라면 집처럼 정이 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께 보다 긴 편지를 쓰게 될 것이며 그 편지 속에서는 보내주신 편지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우선 한 말씀만 드려야겠습니다. 벌써 오래 전에 드렸어야 하는 건데, 보내 주신 편지에서 알려주신 책(댁의 작품이 실려 있다고 하는)을 아직 받아 보지 못했습니다. 그쪽으로 반송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혹 볼프스 베테르부터라도 말입니다. (소포는 외국으로 반송이 되지 않기에 말입니다)그럴 가능성이 가장 바람직한 가능성인데 그렇게 되었으면 합니다. 바라건대 분실이나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탈리아의 우편 사정으론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흔하니까요.
 그 책이 왔더라면 보내 주신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기쁘게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근간에 지은 시들도 보내 주신다면 언제나 읽고 또 읽어서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마음으로부터 그걸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바람과 인사를 보내며
 
                     1903년 10월 29일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마에서(2)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친애하는 카프스씨,
 제게서 인사말이라도 받으셔야겠습니다. 성탄절이 되어 그 축제의 기분 속에 빠지고 보면 당신의 고독은 어느 때보다도 더욱 참기 여려운 때가 되겠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 고독이 크다는 사실을 알았거든 그 사실을 기뻐하십시오. 스스로 물어 보십시오. 위대함을 지니지 않은 고독이란 대체 무엇인가. 고독이란 단 하나 뿐이며 그것은 크고도 참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들이 다가오게 마련입니다. 비록 부질없고 싸구려 연대감이지만 고독을 그것과 바꾸고 싶은 때도 있고 형편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겉치레 만으로라도 그들과 조금이나마 고독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런 시간들이 바로 고독이 자라나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고독이 자라나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 슬프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착각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은 이것 하나 뿐입니다. 고독, 크고도 내적인 그 고독 뿐입니다. 자기 자신 속으로 몰입하여 아무와도 만나지 않는 것-그런 것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처럼 고독하십시오. 어른들이 우왕좌왕하며 아이들 눈에는 중요하고 크게 보이는 사물에 휩싸여 돌아다니는 것을 볼 때 아이들은 얼마나 고독을 느꼈습니까? 어른들은 바빠 보이기만 하고 그들의 행동은 아무리 해야 이해할 수가 없었던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들의 사업은 보잘 것이 없으며 그들의 직업은 돌처럼 딱딱해서  생명과는 조금도 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도 무엇 때문에 어린 아이처럼 자기 세계의 깊이로부터 나와서 그 자체가 일이며 직위이며 직업인 자신의 고독의 넓이로부터 헤어나오려 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그것을 자기와는 상관없는 낯선 것으로 보지를 않습니까? 왜 어린아이의 현명한 몰이해를 반항이나 경멸로 바꾸려고 합니까? 몰이해라는 것은 그 자체가 고독이지만 반항이나 경멸은 이미 관여가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런 수단을 써서 그 관여(關與)로부터 떨어져 보려고 해도 말입니다.
 당신은 자신 속에 지니고 있는 세계를 생각해 보시고 그 사념을 원한대로 받아들이십시오. 그것이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이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동경이든 상관 없습니다. 단지 당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주위를 기울이시고 그것을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 위에 놓으십시오. 당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야말로 당신의 혼신의 사랑을 바칠만한 값어치가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당신은 어떻든 열심히 추구해야 되며 당신의 지위를 타인에게 확신시키려고 쓸데없이 많은 시간과 힘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런 지위를 갖고 있다고 누가 당신께 말이라도 해 주겠습니까? 당신의 직업이 어려우니 당신 자신에 대해서 까다롭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한탄을 예견했고 조만간 당신이 그런 한탄의 말을 하시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말이 드디어 나왔지만 별달리 위안의 말씀은 드릴 게 없습니다. 드릴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 직업 자체는 모두가 자신에게는 까다롭고 불만스럽지 않을까 하고 숙고해 보라는 말씀 뿐입니다. 개개인은 직업상에 있어서 투털대어 맥빠진 의무를 찾아내는 자들의 증오감을 흠씬 뒤집어 쓰는 게 아닐까요? 당신이 지금부터 살아가가야 할 지위는 인습과 편견과 오류에 짓눌려 있다는 점에선 오히려 다른 지위보다는 쉬운 것입니다. 설사 보다 큰 자유를 내세울 수 있는 지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의 내부가 크고 넓어서 진정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사물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지위란 없습니다. 고독한 개인만이 사물과 같이 심오한 법칙 밑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자가 밝아 오는 새 아침에 밖으로 나가거나 사건으로 가득찬 밤 속을 정관할 때, 그리고 거기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나를 느낄 때 모든 지위는 사자(死者)로부터 떨어져 나가듯 그로부터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니 카프스씨, 지금 장교로서 경험해야 할 일은 당신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더라도 비슷하게 느끼실 것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당신의 직위를 벗어나 버리고 사회와 가볍고도 독자적인 접촉만을 찾고 싶어 했더라도 당신에게 덮쳐 오는 그와같은 답답한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디서나 그런 법입니다. 그러니 슬퍼하거나 불안을 느끼실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들과 당신 사이에 소통이 없거든 사물들에 접근하도록 애를 쓰십시오. 그것들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전히 숱한 밤들도 그대로며 나무 사이와 대지 위로 불어 제치는 바람도 그대로 있습니다. 여전히 사물과 동물 가운데는 당신이 관여해도 좋을 사건으로 가득차 있으며 당신의 어린 시절처럼 행복하면서도 슬픔을 느끼는 아이들도 그대로 있습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당신은 다시금 그들 사이에 그 고독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어른들이란 아무 것도 아니며 그들의 권의는 별다른 가치도 없습니다.
 당신이 이제는 신(神)을 믿을 수가 없어서 어린 시절이나 그 어린 시절과 연결된 소박단순함과 정적을 생각해 보는 것이 두렵고 고통스럽거든 당신이 진실로 신을 잃어버렸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당신은 신을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기에 혹시 그런게 아닐까요? 언제 그런 것이 있었던가요? 어린이는 그 신을 지니고 있다고 믿으시는 건 아닙니까? 어른들도 겨우 그 무게를 감당할 정도요, 늙은이들은 그 무게에 짓눌리게 되는 신을 어린애가 어떻게 지닐 수가 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걸 가졌던 자가 그 신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만약에 당신의 어린 시절에도 신은 없으며 그 전에도 존재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신다면,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의 동경으로 마호메트는 그의 오만 때문에 신망을 받게 되었다는 점을 짐작하신다면, 그리고 무서운 일이지만 우리가 신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신은 없다는 사실을 느끼신다고 하면, 당신은 도대체 무슨 권리가 있기에 한 번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신을 과거를 동경하거나 찾듯이 마치 그 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찾고 계십니까?
 왜 당신은 그 신을 영원 앞에 서 있어서 다가올 미래에 나타날 분으로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 분이야말로 최후의 열매며 우리들은 그 분의 나무잎들이 아닐까요? 무엇이 당신을 막아서 신의 탄생을 생성되어 가는 시간 속으로 던져 넣으며, 당신의 삶을 위대한 잉태의 역사 속에 있는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날처럼 살아가지 못합니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처럼 언제나 시작은 있으며 또 그 시작 자체는 언제나 아름다워서 그것은 신의 시작이라고 해도 좋겠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신이 만일에 완전한 분이라면 그분 앞에는 저열한 것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자신 속에 포옹하려면 신은 결국 제일 끝으로 오는 분이 아닐까요? 우리가 열망하는 그 분이 만일에 과거에 이미 존재했었다면 우리들은 도대체 무슨 존재 의의가 있단 말입니까?
 꿀벌들이 꿀을 모으듯 우리들은 온갖 것으로부터 가장 달콤한 것만을 모아서 신을 만듭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것이라도 그것이 사랑에서 나오기만 한다면 우리들은 그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된 작업과 그 후에 오는 휴식, 침묵이나 하잘 것 없는 고독한 기쁨, 협력자나 추종자도 없이 우리들은 우리가 경험하게 되지도 못할 신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조상들이 우리들을 경험하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아득히 지나간 그분들은 소질로서, 우리들의 운명 위에 놓인 짐으로서 흐르는 피로서, 시간의 심연으로부터 솟아나는 몸짓으로서 우리들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분, 그 아득한 분의 내부에 궁극자로서 존재하고 싶다는 당신의 소망을 앗아갈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친애하는 카프스씨. 신은 당신에게서 이런 생의 불안을 필요로 할지도 모르다는 경건한 감정을 품으시고 성탄절을 즐기십시오. 당신이 지금 처한 과도기의 나날들이 아마도 숨도 쉬지 않고 그분을 위해서 일하던 어린 시절처럼 지금도 당신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이 신을 위해 일하는 순간들인지도 모릅니다. 불쾌한 감정을 버리시고 참으십시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조그만 일이나마 그 분을 위해서는 생성을 돕게 해 준다고 생각하십시오, 봄이 오려고 할 때 대지가 봄에게 해 주듯이 하십시오
 즐거운 기분으로 위안을 받으십시오.
 
          1903년 12월 23일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마에서(3)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경애하는 카프스씨.
 당신의 먼저번 편지를 받은 이래로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제발 저를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일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쓸데없는 일들과 병 때문에 회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실은 좀 더 안정되고 기분이 좋은 날에 당신께 해답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제 기분이 약간 좋아졌습니다. 여기서도 극악스럽고 변덕스런 초봄의 환절기가 지독스러웠습니다. 경애하는 카프스 씨. 이제야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게 되었으니 즐거이 보내 주신 편지에 대해 이것 저것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당신의 소네트를 베꼈습니다. 그 소네트는 아름답고 소박하며 형태에 있어서도 고요하고 단아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었던 당신의 시 가운데서 가장 좋은 시들입니다. 이제 제가 필사筆寫한 것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자기의 작품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필사된 것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며 새로운 경험으로 가득차게 된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기에 그랬습니다. 그걸 다른 사람의 시인양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마음 밑바닥에서 그게 얼마나 당신 것인가 하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소네트와 당신의 편지를 가끔 읽어보는 게 제게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에 대해 당신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내부에 있는 어떤 것이 당신의 고독으로부터 빠져 나가고 싶어한다고 해서 당신의 고독에 대해 어리둥절하시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그런 희망을 냉철하고 침착하게 도구처럼 사용하시면 바로 그런 희망은 당신의 고독이 넓은 대지 위로 넓혀지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습이란 것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일을 쉬운 방향으로 해결해 왔으며 그것도 가장 안이한 방법으로 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려운 쪽을 붙잡아야만 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도 없습니다. 생명있는 것은 모두가 어려운 쪽에 의지하고 있으며 자연 속에 있는 만상은 자라며 자기 방법에 따라 저항하며 자기로부터 독자적인 것이 되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들이 아는 것은 적지만 우리들이 어려운 쪽에 의지해야 된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 확신은 결코 우리들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고독한 것은 좋은 일입니다. 고독이란 어렵기 때문이죠. 그게 어렵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그걸 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요?
 사랑한다는 것도 또한 좋은 일입니다. 사랑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우리들에게 부과된 가장 어려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최후적이며 마지막 시련이며 시험이요, 일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다른 일들은 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점에서 초심자인 젊은이들은 아직 사랑을 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을 배워야 하지요. 전 존재로서, 전심전력으로, 고독하고 불안하며 위로 치닫는 마음으로 그들은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수련기修鍊期는 언제나 지루하고 폐쇄된 기간이므로 사랑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인생의 속까지 깊이 파고드는 고독이며, 사랑하는 자를 위해선 사랑이란 승화되고 심화된 독거獨居입니다. 우선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며 헌신하며 제2의 인간과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직도 깨어지지 않은 자와 미완성자, 헝클어진 자와의 합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끼? 사랑은 개인이 자기 내부에게 무엇이 되며, 세계가 되고 자기 자체로서 타인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될 숭고한 계기이며 자기에 대한 크나큰 요구며 자기를 뽑아내어 보다 넒은 곳으로 불러내는 그 무엇입니다. 사랑을 하나의 임무로 여기고 밤낮으로 귀를 기울리고 수련을 해 나간다는 의미에서만 젊은이들은 그들에게 부과된 사랑을 쓸 수가 있습니다. 몰임하며 헌신하고 타인과 어울린다는 모든 형태는 아직도 오래 오래 힘을 저축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아마도 인간 생활에서 지금까지 도달할 수 없었던 궁극적인 것일 겁니다.
 그러나 참을성이 없다는 것이 젊음의 본질이기는 하지만 젊은이들은 그 점에 있어서 곧잘 착각하고 어렵게 여기기 때문에 사랑이 그들 위에 닥쳐오더라도 그들은 서로 몸을 던져 버리거나 자신을 흩뜨려 버립니다. 그들이 난잡과 무질서, 혼란 속을 헤아나지 못하듯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의기소침한 그 무리들에게 삶이 어떻게 해줘야 되겠습니까? 그런 무리들을 사람들은 오히려 결합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행복이니 자신들과 관계되는 미래니 하고 부르고 싶어하는 터에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각자는 타인 때문에 자기 자신까지 잃게 되며 상대방과 또 앞으로 오고 싶어하는 많은 타인들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넓이와 가능성을 잃고 예감에 가득찬 사물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가 지나가는 것도 붙잡지 못하고 아무 소득도 없는 곤혹困惑과 바꿔버리고 맙니다. 그리하여 남는 것이라곤 구역질과 실망과 빈곤 뿐으로 이 위험한 도정에 수없이 설비된 공동이 대피소로 피하듯 여러 가지 인습에서 구조를 청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체험치고 이것처럼 인습이 많이 갖추어진 분야는 없습니다. 거기에는 가지가지의 구명대나 보우트들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통념은 온갖 도피처를 만들어 낼 줄을 압니다. 사회적인 통념은 애정생활도 오락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어서 공공연한 오락처럼 그것도 값싸고, 위험이 없는 안전한 것으로 만들어 내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대개가 그러듯 잘못 살아가는 젊은이들, 간단하게 몸을 내던지고 무리에 싸여 사는 많은 젊은이들은 과오의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이 처한 상태를 그들의 독자적이고 독특한 방법으로 살아갈 수가 있도록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려 합니다. 그럴 수밖에 별 도리가 없는 것이, 그들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자연이 그들에게 이렇게 애기를 해 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랑의 문제는 공공연한 어떤 결합이나 협조를 얻어서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 그 문제들은 개개인의 경우에 따라서 모두가 새롭고 특별해서 각자 독자적인 해답을 필요로 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절실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함께 어울려서 경계도 구별도 지을 수 없게 되었고 자기의 독자적인 것을 지니기 못하게 된 그들이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이미 붙어버린 고독의 깊이로부터 출구를 발견해 낼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누구나 겪는 곤혹에서 행동하며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결혼 같은 인습을 피해보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결국은 그것보다는 약간 덜 시끄럽더라도 치명적이고 인습적인 해결로 빠져들고 맙니다. 그럴 경우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주위의 모든 것은 인습이기 때문입니다. 일찍부터 합류한 혼탁한 결합에서 어떤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어떤 행동이든 결국은 인습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설사 비관습적이든 일반적인 의미로서 비도덕적이라고 하든 그런 혼란으로 이끌어가는 어떤 관계라도 결국은 인습이란 것을 지니게 됩니다. 심지어 헤어짐까지도 인습적인 발걸음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힘도 성실도 없는 비개성적인 우연한 결심에 불과합니다.
 누구나 진지하게 들여다 보는 사람은 어려운 죽음의 경우처럼 괴로운 사랑의 경우에도 설명이나 해결, 암시의 길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열어 보지도 못한 채, 겉봉체로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하는 이 두 가지, 죽음과 사랑의 과제는 어떤 고통적인 규칙이나 약속에 의해 탐구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체로서 삶을 탐구해 나기지 시작하는 정도에 따라서 이 위대한 과제들은 보다 가까이 우리들과 근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란 그 어려움이 우리들의 발전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엄청나게 큰 것이며, 초심자인 우리들로서는 그 요구에 부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참고 견디며 이 사랑을 우리들에게 덮쳐오는 짐이나 수련기로 받아들일 것이며, 인간들의 존재 중에서 가장 참된 진심을 숨기는 가벼운 유희에 스스로를 잃지 말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보다 뒤에 오게 될 자들에게는 조그만 발전과 안도의 기분이라도 느끼게 해 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만 해도 수확이 많은 것이라 하겠지요.
 우리는 이제야 개개 인간과 제2의 개개인과의 관계를 편견이 없이 사실대로 관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살아 보려는 우리들의 시도에는 어떤 규범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는 우리들의 주저하는 초심자들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새롭고 독특한 발전을 해 나가는 처녀와 부인은 우선은 사내들의 좋은 버릇이나 나쁜 버릇을 흉내내는 모방자나 남성의 직업을 반복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런 과도기의 불안정한 상태가 지나가면 여인들은 충만과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변혁을 통해 타성他性의 일그러진 영향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존재를 정화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보다 직업적이며 생산적이고 신뢰 가득한 삶이 머무르고 있으며 그 삶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여인들은 근본에 있어서는 남성보다 훨씬 완숙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남성은 잉태의 산고에 의해서 한 번도 삶의 하층까지 내려가보지도 못했으며 오만하고 경박하며 성급하여 자기가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낫게 평가하는 무리가 아닙니까? 만일에 여인들이 그들의 외적인 신분의 변화를 겪으며 오로지 여성적이라는 인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런 고통과 굴욕에서 참고 견뎌온 여인의 인간상이 밝게 드러날 것이며 아직도 느끼지도 못하는 남자들은 그 사실에 놀라서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도 북쪽 나라 들에서는 믿을만한 징조가 엿보이고 있지만 어느 날엔가는 그들의 이름이 남성의 대립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무언가 보충이나 경계로 여겨지지 않고 삶과 존재만을 생각하게 하는 처녀와 여인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즉 여성적인 인간상이 말입니다.
 이런 발전은 현재로선 오류에 가득 차고 우선은 뒤쳐진 남성들의 의지와는 반대되고 있지만 사랑의 체험을 변화시킬 것이며 그것을 근본적으로 개조시켜서 남성 대 여성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이란 고통의 관계를 이룩하게 될 것입니다. 무한의 사려 깊고 조용하며 결합과 별리에서 명백하고 휼륭하게 이룩될 이런 인간적인 사랑은 우리들이 싸워서 획득하고 애써서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들이며, 두 사람의 고독자가 서로 부축해 주고 보완해 주며 인사를 나누게 될 사랑과 비슷합니다.
 어린 시절 당신에게 있었던 그런 크나큰 사랑이 잃어버렸다고는 생각지 마십시오. 그 당시에는 오늘날도 당신께서 믿으며 살고 싶은 훌륭하고 위대한 소원과 의도가 아직 익지 않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당신의 추억 속에 강하고 힘차게 아직도 머물러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당신의 최초의 고독이었으며, 당신의 삶에 대해 당신이 행했던 최초의 진지한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애하는 카프스 씨. 당신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1904년 5월 14일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소네트
 
나의 생명을 뚫고
비탄도 한숨도 없이
칠흑같은 우수가
떨고 있구나.
나의 꿈들의
순결한 눈꽃들은
나의 평화로웠던 날들의
잔치.
 
때로는 크나큰 의문이
나의 노정에 교차되는구나
수심水深조차 재어볼
염도 못 내는
호수가를 지나듯
서성이며
그 길을 지나간다
 
슬픔이
내게로 가라 앉는구나
 
때로는 반짝이는
별 하나,
빛에 주린
여름밤 회색처럼
 
나의 손은
사랑을 찾아 헤맨다.
뜨거운 입김으론
찾아낼 수 없는
노래를
기도 드리고저.
               -프란즈 카프스
 
스웨덴의 보리비 고르 프레디에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잠시 동안이나마 당신과 다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카프스 씨, 비록 도움이 되거나 소용에 닿은 말은 드릴 수가 없어도 말입니다. 이미 지나가기는 했지만 당신은 많은 크나큰 슬픔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지나쳐 간 것까지도 고통스럽고 비위에 거슬리는 거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크나큰 슬픔들이 오히려 당신의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지나 않았나 한 번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당신이 슬퍼하고 있는 동안에 당신의 내부에서는 많은 것이 혹 변했거나, 당신의 본질의 어느 곳이든 스스로가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더욱 큰 소리를 내도록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어 가지려는 슬픔만이 위험스럽고 나쁠 뿐입니다. 그것은 우선 일시적인 치료를 받은 질병과 같아서 다시 나타날 뿐더러, 짧은 잠복기가 지나면 더욱 무시무시하게 폭발하거나 내부로 응고되어 생명있는 것이 되며 으깨어지고 타락한 삶이 되어 버려서 도저히 거기서 살아 남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에 우리들의 지식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멀리를 내다보고 우리들의 예감 이상으로 조금만 밖을 볼 수만 있어도 우리들의 슬픔을 보다 크나큰 신뢰감을 갖고 견딜 수가 있을 것입니다. 슬픔은 무언가 새로운 것, 알려지지 않은 것이 들어오는 순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 우리들의 감정은 놀라서 멍하니 입을 다물며 우리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은 뒤로 물러서고 거기에 고요가 생겨나며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것이 그 가운데에서 침묵합니다.
 우리들의 온갖 슬픔은 긴장의 순간인데 우리들은 그것을 오히려 마비된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낯선 감정의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이며, 우리집에 들어 선 낯선 손님과 단 둘이서만 있게 되는 탓이며, 순간적으로 모든 모든 친근한 것들과 낯익은 것들이 우리로부터 앗아지게 되기 때문이며, 더 이상 버티어 볼 수 없는 과도기에 우리들이 서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슬픔 역시 자나갑니다. 우리 내부에 있는 새로운 것, 첨가된 것은 우리의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 깊숙한 내심방(內心房) 속으로 들어갔는가 하면 곧바로 혈액 속으로 들어가 섞여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그게 무엇이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기가 쉽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들은 손님을 맞이한 집처럼 변화를 일으겼습니다. 우리들은 그게 누구였던지, 그게 무엇이었던지조차 알아 차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거 가지 징조가 있어서 미래는 그것이 생기기 훨씬 이전에 우리 내부에서 변화하기 위해 그런 방식으로 우리들 속으로 들어 온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슬플 때는 고독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미래가 우리에게로 들어오는 그 굳어버린 듯한  순간이 겉으론 전연 사건이 없어 보이지만 미래가 외부로부터 우리에게 생겨날 때의 시끄럽고 우연스런 순간들보다는 훨씬 생명 가까이에 서 있는 탓입니다. 슬픔을 느끼는 자로서 조용하고 참을성이 있을수록 새로운 것은 보다 깊숙이 곧바른 길을 찾아 우리 내부로 들어오며 우리들은 그것을 훨씬 쉽게 얻을 수도 있고 그것을 우리들에게 더욱 가까운 운명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설사 어느 날엔가 훨씬 뒷날에 우리들에게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은 그것의 내부에서 변화되고 그것에 가까이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건 아주 필요합니다.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점차로 우리들의 발전이 그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부딪치게 되는 것으로 낯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래 전부터 이미 우리 것이 되게 해야합니다. 우리들의 운동개념이 이미 잘못 생각될 수 밖에 없었지만 우리들은 점차 우리들이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인으로 부터 나와서 외부로부터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란 점을 서서히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운명이 그들 내부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 그걸 흡수해서 자신속으로 변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로부터 무엇이 생겨나는지도 모르고 지냈던 탓입니다. 운명은 자기들에게 너무나 생소해서 그들은 당황하고 놀란 나머지 그게 바로 지금 순간에 그들 내부로 들어갔을 거라고 확신을 합니다. 그리하여 전에는 한 번도 그와 비슷한 것조차 본 적이 없노라고 맹세까지 합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태양의 운동을 착각했던 것처럼 다가오는 자의 움직임에 대해 속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애하는 카프스 씨. 미래는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우리들만이 끝없는 천공(天空) 속에서 헤매일 따름입니다.
 어떻게 우리들이 그걸 어렵게 여기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다시금 고독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필경에 가서는 인간이 선택하거나 방치해야 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 집니다. 우리들은 고독합니다. 단지 그렇지 않는 것처럼 위장하거나 행동할 뿐입니다. 모든 일이 그런 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고독하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물론 어질어질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의 눈을 쉬곤하던 시점이 빼앗겨서 가까운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먼 것은 무엇인가 무한히 멀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한 채 자기 방으로부터 느닷없이 산정(山頂)으로 끌려 올라간 사람이 그와 유사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비할 데 없는 불안감, 이름도 없는 것에 몸을 맡겼다는 감정이 그 사람을 파멸시킬지도 모릅니다. 그는 추락할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허공 중에 내던져졌다고 믿거나, 수 천 개의 조각으로 산산이 찢겨졌다고 믿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의식상태를 회복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의 뇌수는 무지스런 거짓말을 찾아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되어 고독해지는 사람에게 모든 거리와 척도가 달라집니다. 이런 변화로 해서 그의 눈 앞에는 모든 것이 느닷없이 일어나며 산정에 오른 사나이의 경우처럼 인내의 한계를 넘는 이상스런 공상과 감정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 역시 경험한다는 일은 필요합니다. 우리들의 존재를 그것이 미치는 범위 이상으로 넓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든 것, 언어도단인 것도 역시 그 속에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들과 만나게 되는 가장 이상한 것, 가장 놀라운 것, 아무리  불가사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서 용기를 갖는다는 것이 궁극적으론 우리에게 요구되는 단 한 번의 용기입니다. 인간들이 이런 의미로서 비겁하다는 사실은 삶에 대해 무한한 해독을 끼쳤습니다.
 <환상>이라고 부르는 체험, 이른바 <영혼의 세계>, 죽음 따위와 같이 우리에게 너무도 친근한 것들이 매일매일 우리 생활로부터 쫓겨났기 때문에 잘만하면 파악할 수도 있는 의미들이 오히려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신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불안은 우리 개개인의 존재만을 빈약하게 만들었을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그것으로 해서 제한을 받게 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하상(河床)으로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불모의 강안(江岸)으로 끌어 올려진 셈입니다. 인간관계를 그토록 말할 수 없이 단조롭고 구태의연하게 사건과 사건의 맥빠진 반복으로 만든 것은 우리들의 게으름 탓만은 아닙니다. 견딜 수 없다고 믿는 세롭고도 보이지 않는 체험에 대해 우리가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대해 각오가 되어 있고 무엇이든, 심지어 수수께끼 같은 것도 포옹하는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도 무언가 살아 있는 것으로 체험할 것이며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만끽할 것입니다. 개개인의 존재를 크든 적든 하나의 영역으로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영역의 한쪽 구석이나 창가나 그들이 오르내리는 소로만을 겨우 알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한 탓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겨우 어떤 확신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에드가 알랜 포우의 얘기에 나오는 죄수들이 무시무시한 감옥을 손으로 더듬으며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자신들의 처지를 친근하게 해 보려고 애쓰는 그런 위험스런 확신이 훨씬 인간적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수인(囚人)들도 아니며 우리 주위에는 함정도 적도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겁을 주거나 괴로움을 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생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어서 대개는 거기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수천년에 걸친 적응생활을 통해서 우리들은 이 삶과 너무나 닮아 버려서 조용하게 버티고 있기만 하면 우리가 쓰고 있는 다행스런 보호색(保護色) 때문에 우리들을 에워싼 다른 것들과 구별이 될 리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세계에 대해 불신감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그 세계는 우리에게 적대시된 것이 아닌 탓입니다. 그 세계가 공포를 가졌다면 그건 바로 우리들이 공포며 심연(深淵)을 가졌다면 그건 우리들의 심연이요, 위험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랑해 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언제나 어려운 쪽에 붙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서 우리의 생활을 이룩해 간다면 지금까지는 낯선 것으로 보이던 것도 우리들의 신뢰자요, 귀중한 재보(財寶)가 될 것입니다. 지상의 모든 민족의 초창기에 생겨난 신화(神話)들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으며 아슬아슬한 순간에 공주님들로 변하는 용(龍)의 전설들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우리들의 생활의 모든 용들은 언젠가는 우리들이 아름답고 용기있게 보일 때를 기다리고 있는 공주들인지 모릅니다. 깊은 심연에 도사린 무서운 것들도 실은 전부가 우리로부터 오히려 도움을 원하는 무력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친애하는 카프스 씨. 설사 당신이 지금까지 접해 보지도 못한 정도로 크나큰 슬픔이 당신 앞에 버티고 서 있을지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불안이 불빛과 암운(暗雲)처럼 당신의 손과 당신이 행하시는 모든 것 위로 스쳐 지나가도 의연하십시오. 그리고 당신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구나,  삶이 당신을 잊지는 않았구나, 그 삶은 당신을 손아귀에 꽉 잡고 있어서 절대로 당신을 떨어뜨리지 않을 거구나 하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당신은 불안이나 우수나 슬픔 따위를 당신으로부터 추방하려고 하십니까? 그런 상태가 당신에 대해 오히려 어떤 일을 해 줄는지 알지도 못하시면서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런 것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려는지 하는 문제를 갖고서 왜 괴로워 하십니까? 당신은 과도기에 처해 있으며 스스로 변화가 되기를 무엇보다도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당신의 길에 무언가 병적인 것이 있거든 병이란 것은 유기체가 이질적인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하여 유기체를 도와서 제대로 병이 되도록 해야 하며 그 병이 밖으로 곪이 터져 나오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게 바로 유기체를 위해선 하나의 발전이기 때문입니다. 경애하는 카프스 씨. 당신 내부에서는 지금 숱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병자이지만 그 병이 나아가는 회복기의 환자일는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서 당신의 병을 감시를 해야 할 의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병이건 간에 의사도 기다려야만 하는 많은 날들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일이야 말로 의사로서의 당신이 지금 무엇보다도 해야할 일입니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관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당신에게 벌어지는 일로부터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일어나도록 그냥 버려 두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현재 당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에 관여되어 있는 당신의 과거를 질책의 눈으로 보기는 쉽습니다. 그런 일이 도덕적이라고 부를 수는 있겠지만 당신의 어린 시절의 감동이나 동정, 소원에서 생긴 일로서 현재 당신의 내부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에 회상하거나 판단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고독하고 무력한 어린 시절의 일상적이 아닌 관계들은 너무나 어렵고 복잡하며, 여러가지 영향에 몸을 내맡기고 있을 뿐더러 실제의 상활관계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악덕이 그 속으로 끼어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악덕이라고 이름 지어서는 안 됩니다. 도대체가 이름이란 것에 대해서는 조심을 해야 합니다. 한 생명을 파멸시키는 것도 범죄라는 이름일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아마도 이 생명의 어떤 필연성일 수도, 그 생명으로부터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힘의 낭비가 당신에게는 중대하게 보이겠지만 그것은 당신이 승리라는 것을 지나치게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신의 감정으론 정당하겠지만 승리란 당신이 이룩했다고 믿는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것은 이미 거기 존재했던 것이며 속임수 대신에 무언가 절실한 것, 현실적인 것입니다. 이런 것이 없이는 당신의 승리란 단순한 도덕적인 반응에 불과할 것이며 별다른 의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는 벌써 당신의 생활의 한 단편이 되었습니다. 경애하는 카프스 씨. 제가 그렇게도  소원을 품고 생각하고 있는 당신의 생활의 한 단면이란 말입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에서부터 얼마나 삶의 위대함을 동경했었나 회상해 보십시오. 이제 그것이 큰 것에서부터 더욱 큰 것을 동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삶은 언제나 어려우며 그러면서도 그것은 성장을 멈추지 않습니다.
 제가 이제 또 한 마디 해야 할 게 있다면 이런 것입니다. 당신을 위로하려고 애쓰는 이 사람은 당신에게 때로는 즐거움을 주는 이런 단순하고 조용한 말들 속에서 아무런 고통도 없이 편하게 살고 있다고는 믿지 마십시오, 이 사람의 삶도 고난과 슬픔을 갖고 있으며 당신보다는 훨씬 뒤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람은 그런 말들을 찾아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1904년 8월 12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스웨덴의 후른보리 욘세레트에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경애하는 카프스 씨
 편지를 드리지 못하고 지냈던 기간 동안 저는 여행도 했고 분주하기도 해서 편지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도 역시 편지 쓰기가 힘이 듭니다. 벌써 여러 통의 편지를 써서 손이 피로하기 때문입니다. 구술(口述)이라도 할 수 있다면 당신께 많은 얘기를 써보낼 수가 있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사정이고 보니 긴 편지 대신에 몇 마디의 짧은 편지라도 그냥 받아주십시오.
 카프스 씨, 저는 가끔 당신에 대한 저의 열렬한 소망이 당신께 어떤 도움이 되어야 할텐데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나의 편지가 정말로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가끔 의심이 가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시지는 말고 그냥 편지를 받아주십시오.
고맙다는 말은 그만 두십시오. 무엇이 나을지 기다려 보도록 합시다.
 당신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대해 언급을 한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회의(懷疑)를 하시곤 하는 당신의 성품에 대해서, 내외적인 삶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당신의 능력에 대해서, 당신을 그렇게도 괴롭혔던 모든 것에 대해 제가 말씀 드릴 수 있는 점은 제가 이미 말씀 드린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제가 바라는 바는 당신이 내부에서 충분하게 인내력을 발견하여 참으며 단순성을 갖고 믿어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당신의 고독에 대해서, 더 많은 신뢰감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이외에는 삶이 제 길을 가도록 그냥 맡겨 두십시오. 저의 말을 믿으십시오. 삶은 어느 경우에서든 올바른 것입니다.
 감정이란 것에 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당신을 송두리째 포옹하고 지양시켜 주는 감정이란 모두가 순수하나 당신의 존재의 일면만을 부여잡고 당신을 일그러뜨리는 감정이라면 불순합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을 앞에 두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좋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가졌던 멋진 시간을 당신에게 보다 더 많이 만들어 주는 것들은 옳은 것들입니다. 그들이 당신의 혈액 속에 있어서 도취도 아니고 혼탁도 아니고 투명하게 보이는 기쁨이라고만 한다면 어떤 상승발전도 좋은 것입니다. 저의 말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당신의 회의(懷疑)도 길만 잘 들이면 당신의 좋은 특질이 될 수 있습니다. 회의는 지적(知的)이어야 하며 비판적이어야만 합니다. 회의가 당신에 대해 무언가 파괴를 하려하거든 왜 그것이 그토록 미운가를 그 회의에게 물어 보도록 하십시오. 회의에서 증거를 요구하고 그것을 시험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아마도 당황하고 무력해져서 필경에는 그것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그만 두지 마시고 논증을 요구하면서 조심스럽고 일사불란하게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어느 때건 회의는 파괴자로부터 당신의 가장 훌륭한 조력자가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아마도 회의는 당신의 삶을 구축하는데 가장 현명한 조력자일 것입니다.
 경애하는 카프스 씨. 이것이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전부입니다. 프라하의 <독일작품>에 실렸던 저의 조그만 시의 별책을 동봉합니다. 거기에서 저는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다 훌륭하고 위대한 것이란 점에 대해 더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1904년 11월 4일   라이너 마리아 릴케
파리에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카프스 씨, 당신에게서 그런 아름다운 편지를 받고 제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아셔야 합니다. 제게 주신 소식들은 다시금 현실적이고도 명백하며 아주 징조가 높다고 생각이 됩니다. 제가 그걸 생각해 보면 생각할수록 저는 실제 이상으로 좋게 여겨집니다. 원래는 이 편지를 성탄절 날 쓰려 했으나 이번 겨울 내내 파묻혀 지내던 일 때문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그 축제도 너무나 빨기 다가와서 당장에 긴급한 일을 처리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편지 쓸 시간은 고사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축제 기간에 저는 답신을 자주 생각해 보았으며, 당신의 텅 빈 산(山) 속의 쓸쓸한 요새에서 얼마나 적막하게 살아가야만 할까 하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산 위로는 남쪽의 바람이 산을 송두리째 삼켜 버리려는 듯 불어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소음과 움직임 속에서도 용납이 될 정적이라면 틀림없이 측량도 할 수조차 없을 고요일 것입니다. 멀리 떨어진 태양의 존재가 거기에 덧붙여지고 선사시대(先史時代)의 조화 속에서 깊은 음조도 함게 어울려 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당신에게 바랄 것은 참을성 있고 신뢰할 수 있도록 그 어마어마한 고독이 당신 자신에게 작용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 뿐입니다. 이제는 그 고독을 결코 당신의 삶으로부터 쫓아버릴 수도 없으며 당신이 체험하고 행하는 모든 것 속에 숨은 영향력으로서 조용하지만 결정적인 작용을 계속 미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내부에서 조상들의 피가 끊임없이 움직이며 우리 자신의 피와 섞여서 유일한 것, 반복할 수 없는 것으로 어울려 가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이 굳건하고도 명백한 실존을 몸에 니지고 칭호와 제복이나 직무,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것, 제약을 받고 있는 것들을 갖고 계셔서 기쁩니다. 그런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고독한 장병들만 모여 있는 그런 상황에서는 진지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유희적이고 허송세월의 군인 직분을 뛰어 넘어서 보다 주의 깊은 응용을 의미하며, 독립적인 주의력을 갖도록 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렇게 되도록 길을 들여줍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도록 하며 위대하고 자연적인 사물 앞에 가끔 우리들을 세워둔다는 게 무엇보다도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예술도 역시 살아가는 한 방법이며 어떻게 살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그 예술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갖출 수 있게 됩니다. 현실 속에 있는 것이 비현실적이며 반예술적인 직업에 종사하기보다는 차라리 예술에 가깝게 됩니다. 그런 직업이란 예술에 가까운 척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예술의 존재를 부정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전체 저널리즘이 그러하며 모든 비평이 그러하고 문학이라 부르고 또 부르고 싶어하는 4분의 3이 모두 그러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당신이 그런 곳에 빠질 위험성을 이미 극복하셨고 거친 현실 속에서 고독하고 용기있게 살아 가시니 즐겁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한 해가 그런 의미에서 당신을 지켜주고 튼튼하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1908년 성탄 이틀째 날에     항상 함께 있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노동자의 편지 




 지난 주, 목요일에 어느 모임에서 사람들이 선생님의 시를 낭송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그리하여 저는 지금 선생님께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현재 저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들은 가능한 한 그대로 써서 선생님께 보내드려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 낭송회가 있던 다음 날, 저는 우연히 어느 기독교에 관계된 회합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아마도 어떤 계기가 되었던가 싶습니다. 그것이 불씨가 되어 이제 온 힘으로 선생님에게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무릇 무슨 일이나 시작하는 데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는 차근차근 처음부터 시작할 수가 없어서 꼭 첫 머리에서 말해야 할 것을 그냥 뛰어 넘습니다. 침묵보다 강한 것은 없습니다. 만약 우리 인간들이 서로 말을 주고 받은 가운데서 태어나지 않았던들 그 침묵은 절대로 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생님. 저는 지금 선생님의 시가 낭송되는 그날 밤의 일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것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를 끊임없이 몰고 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문입니다. 달리 표현할 수가 없으므로 단도직입으로 말하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에나 관여하고 있는 그리스도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는 우리들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는 우리들이 매일처럼 행하고 겪고 만들어내는 우리들의 일이라던가 환난이라던가 우리들의 기쁨같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들의 삶에서 제 일인자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만 같습니다.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저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데 불과한가요? 그는 우리들을 구원해 주겠노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곁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연자실합니다. 그가 처한 환경과 상황, 그 모든 것들은 너무나 동떨어졌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환경의 차이만이 문제되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만약에 그가 이리로 와 저의 방으로 들어온다고 하면, 혹은 제가 일하는 공장 안으로 들어온다고 한다면 모든 것이 당장에 달라지고 좋아질까요? 저의 기분을 말씀드린다면 그는 절대로 올 수 없습니다. 거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세계는 외적으로만 다를 뿐만이 아니라 그와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습니다. 그에게서 비쳐 오는 빛은 우리들이 입고 있는 기성복을 뚫고도 비쳐올 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기성복을 뚫지는 못합니다. 그리스도는 꿰맨 자죽이 없는 옷을 입고 돌아다녔다 하는데,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를 밤낮으로 그토록 강렬하게 빛나게 했던, 그의 내부의 발광체는 이제는 아무래도 꺼져 버리고 다른 곳으로 흩어져 버린 것 같습니다. 지난 날 그가 그토록 위대했다 하더라도 이제 우리들이 그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하찮은 것도 어디론가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십자가는 영원히 존속된다는 것도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일종의 십자로(十字路)에 불과했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낙인처럼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어디에나 새겨져서는 안될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오히려 그리스도에 의해 제거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이 보다 성숙할 수 있도록 높은 나무를 마련코자 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이유에서 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는 신의 내부에 있는 이 새로운 나무이며 우리들은 그 나무에 매달린 따뜻하고 복된 열매여야 합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해서는 또 다시 이야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후>가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이 나무는 이미 우리들과 하나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됩니다. 아니면 우리들은 그 나무와 더불어, 혹은 그 나무에 매달려 있어 언제나 분주히 그들 찾을 것이 아니라 조용히 신과 함께여야 하며 또한 우리들을 그 신에게로 가져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신의 의도였습니다.
 저는 신(神)이란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신은 저의 마음속에 도사린, 그 어느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은 위대한 확신입니다. 저의 생각으론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신이라는 말을 하는데 있어 설사 아무리 깊은 명상이라도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을 도와서 더욱 맑은 목소리로 우렁차게 신을 입에 올리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수록 더욱 좋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는 내버려 두도록 합시다. 우리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가 맛보았던 슬픔과 고통 속으로 우리들을 강요하지 맙시다. 이제는 그 구원의 존재를 밟고 뛰어 넘도록 하십시다. 그런 목적으로는 오히려 구약 성서가 더욱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펴보면 어디에나 그에게로 이르는 가르침이 있으며 우리들 하나하나가 무르익어 무거워지면 곧장 신의 품안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언제인가 저는 <코란>을 한 번 읽어보려 했습니다만 그렇게 많이 나아가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저는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에서도 신을 가르키는 힘찬 손이 있으며 그 방향의 끝에는 결국 신이 서 있습니다. 영원히 완전한 것이 될 수 없는 동방 세계 속에, 그의 영원한 상승 속에 신이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도 틀림없이 그와 똑같은 것을 바랬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신으로 이르는 길을 가르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무지스러운 개와 같아서 그 손가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그 손가락을 핥을 수 밖에는 없습니다. 희생을 바친 암흑의 밤 속에 이정표가 우뚝 서 있는 십자로, 그 십자로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기독교는 그 자리에 안주하여 이제 그리스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는 그럴 만한 여지가 없습니다. 성모를 받아들일 여지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현자(賢者)에게는 누구에게 그러했듯 그리스도는 몸짓에 불과하며 그의 유숙지는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그리스도 속에서 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외곬수로 빠진 고집 쎈 사람들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다시 일으켜 세우며 완전히 기울어져 날려버린 십자가를 세우는 일에 골몰합니다. 그들은 거기에만 안주합니다. 때문에 십자가가 가르쳐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그들의 책임입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소시민들의 일상적인 일처럼 하나의 <사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기독교를 물을 빼었다 다시 채우곤 하는 못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명을 가진 생명체인 이상에는) 그들의 억누를 수 없는 자연적인 욕구에 의해서 볼 때,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은 이 기묘한 저수지와 모순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물을 흐려 놓고 다시금 그 물을 갈아넣어야 합니다.
 그들은 조급한 나머지 우리들 인간이 기쁨과 신뢰를 가져야 할 이 속세의 삶을 더럽고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속세의 생활은 의심스럽고 잘못된 것으로 변하여 영원한 삶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게 되었으며 속세의 것을 일시적인 허무한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삶이 이토록 점점 황폐하여 가는 것은 여러 세기를 걸쳐가면서 소계의 생활이 값어치를 잃게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이 할 일과 기대와 미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피안으로 유혹하는 것은 그 얼마나 미친 짓입니까. 속세의 황홀한 정경을 몰래 천국과 바꾸려는 것, 그게 사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토록 가난해진 세속의 생활은 지금껏 빌려왔던 모든 것을 다시 회수해야 될 시기가 이미 지난지 오래입니다. 미래의 아름다운 피안을 꾸미기 위하여 우리들이 꾸어 주었던 모든 것을 되찾아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죽음은 그것들이 끌고 다니는 광원(光源)에 의해 실제로 무시될 수가 있습니까? 죽음으로 빛을 잃은 대지는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 없으므로 그 대지의 공허는 다시 허구에 의해 세워지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대도시들이 온갖 추악한 인공적인 빛과 소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도 우리들이 참된 빛과 노래를 미래에 가서야 상관하게 될 예루살렘으로 넘겨준 탓이 아닐까요? 그리스도는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은 나쁘다고 말했는데. 잎이 다 떨어진 시들은 신들로 가득 찼던 시대였음을 감안할 때, 그의 말은 당연했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지상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들을 우리들이 틀림없이 산다면 반드시 인간의 마음을 충만시켜 주는 기쁨이 있을 터이므로 그것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돌아 보지도 않는다면 과연 신에 대해 모독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달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올바르게 쓴다는 것은 바로 이러합니다. 지상의 것을 올바르게 손아귀에 넣고 애정을 갖고 경탄하면서 그것이 우선은 우리들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 붙잡는 일입니다. 속된 표현일런지 모르나 이렇게 하는 것이 말하자면 신이 가르쳐 준 위대한 사용법입니다. 그리고 앗씨시의 성 프란시스가 쓴 <태양에 부치는 노래>에 이러한 사용법이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종의 자리에 있었던 그 성자에게는 십자가 보다 태양이 더 찬란했습니다. 십자가는 태양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이미 시끄러운 소음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죽음을 앞에 둔 성자의 노랫소리를 그 소음으로 하여 이미 들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것은 몇몇의 가난한 수도승 뿐이었고 그것이 옳다고 말한 것은 앗씨시의 그 고아한 풍치(風致)뿐이었습니다.
 속세를 거부한 그리스도교의 태도와 속세가 보여주는 친근감이나 그 화려함을 저하시켜 보겠다는 시도가 얼마나 여러 번 되풀이 되었던가요? 교회의 내부, 교회의 왕관이 자리한 곳에서도 세속적인 것은 넘쳐 흐르고, 타고난 생의 물결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법왕들의 옥화는 사생아와 매춘부와 살인자들에 의해 핍박을 당하고, 법왕들이 지녔던 이러한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허물어지지 않고 여태껏 지탱해 온 교회를 사람들은 왜 찬양하지 않는 것일까요? 발랄한 생명을 억누를 수 없으며 그렇기에 자유자제로 변화하는 기독교적인 것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위대한 그리스도의 교리가 장차 어떻게 될런지 모르겠으나 우리들은 그 교리가 그저 흐르는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옳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갈라진 인간 생활의 틈으로 흘러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땅 밑에서 꿈틀거린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절대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날, 저는 몇 달 동안 마르세이유에서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로서는 특별한 의의를 갖는 시기여서 거기에 감사드려야 마땅합니다. 그 당시, 우연히도 어떤 젊은 화가와 친해져서 그 화가는 죽을 때까지 저의 참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는 폐를 앓고 있는 몸으로 튀니스에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의 일이 끝나갈 무렵, 그도 빠리로 돌아가게 되었으므로 우리들은 아비니용에서 함께 며칠을 보내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비니옹에서의 그 며칠이 제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도시 자체가 주는 인상 때문에 건물들과 그 주위의 환경 때문에 그러했고 한편으로는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친구는 매일처런 여러가지에 대해서, 특히 자신의 내적인 삶이 가지는 갖가지 미묘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교제는 정말로 차원이 높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웅변은 결핵 환자가 어느 시기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정열로 넘쳤으며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이상한 예언자의 말 같았습니다. 그기 끊임없이 계속하는 말을 통해서 저는 소위 <심연>을 보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 암석도 보았습니다.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들이 흔히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자연 그 자체, 자연의 근원이었으며, 우리들이 아무리 떨어져 나가려해도 결국은 예속될 수 밖에 없는 것, 그리고 그 경사도가 우리들의 그것을 결정짓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거기에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행복한 연애의 체험이 그에게 닥쳐 왔습니다. 그의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그런 상태가 하루종일 계속되어 그것이 저에게도 전염되었고 그의 생명이 춤추는 광채가 드높이 올라가는 게 제게도 보였습니다. 이러한 심리상태에 있는 친구와 아비니용이라는 득특한 도시, 그런 것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저로서는 참으로 귀한 체험이었습니다.
 돌이켜 보건데, 아비니용에서 지냈던 정겨우면서도 열정적이었던 그 봄날의 며칠은 제 일생에서 유일한 휴가였습니다. 시간은 이상스럽게도 빠른 속도로 흘러갔습니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을 터이지만 일찌기 휴가다운 휴가를 맛보지 못했던 저로서는 그 때의 시간은 실로 큰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시간이라 부르기가 오히려 부당하게 느껴졌고 시간이란 그 때껏 모르고 지냈던, 자유로운 존재의 그 어느 상태, 어느 공간으로 느껴졌으며 그것이 무엇인가 훤하게 내다보이는 것으로 둘러 싸인듯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아무렇게나 흘러가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말하자면 그 때 어린 시절을 되찾았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을 다시 맛보았다 해야 옳겠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마음에서 생기는 일을 시간이란 것으로 따지고 어림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린이의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배웠고 터득했습니다.
 <신>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게 그렇게 쉽고도 진실하다는 체험도 그때 비롯되었습니다. 그 친구의 이야기에 의한다면 <신>을 부르기란 그토록 쉬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아비니용의 법왕청 건물은 제게는 어마어마하게 보였습니다. 그 안에 방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오직 거대한 돌덩이만 쌓아올린 집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고 아비니용으로 추방당했던 법왕들은 인간이 짊어지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그 법왕권이라는 무거운 짐을 역사라는 저울에 쌓아올리느라 무진 애를 썼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비니용의 법왕철은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스 흉상을 그 초석으로 썼다고 하니 그 건물은 해라크레스를 짓밟고 우뚝 솟아있는 셈입니다. 저의 친구, 삐엘은 해라클레스의 종자로부터 저런 어마어마한 건물이 생겨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역시 자유로이 변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형태임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라는 한 줌의 차(茶) 찌꺼기를 언제까지 새로운 것인양 달이는 것 같은 맥빠진 종교에서 저는 그리스도교가 본래부터 갖고 있는 힘이나 그 의미를 느낄 수는 없습니다.
 성당의 장엄한 건축 역시 그러한 그리스도교의 본래적인 정신이 육체화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성당의 초석 밑에는 여기저기 그리스 여신의 입상이 누워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성당은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불안에 의해 세워진 건축물이며 초석속에 유폐된 육체로부터 하늘을 향해 올라가 보려는 고민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수많은 개화(開花)와 인간 생활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성당의 위대한 종소리는 인간이 오르고자 노력하는 천공(天空)의 방향을 언제까지고 가르켜 주는 것 같습니다. 
 아비니용에서 돌아오자 저는 자주 성당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녁에 혹은 일요일, 처음에는 혼자였으나 나중에는---
 그랬습니다. 제게도 애인이 생겼던 것입니다. 아직 어린애라 부를 정도의 소녀였습니다. 내근(內勤)을 하는 여자였으므로 일거리가 적을 때는 딱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손재주가 있었으므로 공장같은 곳에 쉽게 취직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그녀는 혹 공장같은 데서 생기게 될지도 모를 <파트론>을 두려워한 것이지요. 자유에 대한 그녀의 관념은 무한정해서 그녀가 <신>도 일종의 <큰 파트론>으로 생각했다 해서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게 그렇게 말할 때 그녀는 웃기는 했으나 그 눈에는 말할 수 없는 공포가 서려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저는 그녀더러 오순절이 종교음악을 듣기 위해 곧잘 찾던 성 토스타슈에 가자고 하자 그녀가 선뜻 따라나서지를 않아서 한참이나 애를 먹었습니다. 또 한 번은 둘이서 모오까지 가서 성당안의 묘비명을 함께 둘러본 적이 있는데, 그녀도 차츰 신은 성당안에서 인간에게 안식을 주나 요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신>이란 어디에고 존재치 않는 것이라고 제가 평소의 생각을 말하려 하는데 저의 마르테는 성당안에는 신은 없으나 무언가 사람을 끄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르기는 하지만 성당안에는 인간들 자신이 오랜 세월을 두고 그 압축된 독특한 대기속으로 들여다 놓은 것 만이 존재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혹은 어떻게 해도 빠져 나갈 데가 없이 막힌 아름답고 힘찬 종교음악의 물결이 벽을 이룬 돌틈으로 배어 들어가서 문설주도 그 천개(天蓋)도 그 음악을 흡수해 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아무리 굳고 아무리 절벽인 귀머거리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틀림없습니다. 매일같이 불리워지는 합창 풍금으로부터 가해지는 쉴새없는 공격, 홍수처럼 넘쳐 흐르는 선율, 일요일과 축제 때마다 이는 태풍, 그런 것들을 돌로 막아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원래 낡은 성당안에서 주인처럼 지배하는 존재는 바람 한 점 없는 침묵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침묵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마르테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고 돌이라는 바람 한 점 없는 고요 속에서 함께 귀 기울렸습니다. 마르테도 그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녀는 무엇이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느 천성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우리들은 노랫소리가 들리면 어느 곳, 어느 때에라도 성당으로 들어가 귀를 기울렸습니다. 그 중에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들이 거처하는 바로 앞에 서있던 성당에서였습니다. 그림이 그려진 유서깊은 유리창은 창마다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갖가지 형상과 혹은 커다란 문 혹은 조그마하게 배경을 이룬 칼의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림은 모두가 이상했습니다. 성, 전쟁터의 모습, 수렵하는 광경이었고 순백의 순록이 뜨거운 분홍빛과 타는 듯한 곤색 속에 돋보이기도 했습니다.
 언제인가 마셔 본 포도주는 입 속에서 짙은 분홍빛깔의 맛이 났었는데, 그 유리창에는 그 맛과 똑같으면서도 곤색과 보라색과 초록의 맛까지 곁들여 있는 것입니다. 유서 깊은 오랜 성당 안에는 인생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두려워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 점이 새로운 교회와 다른 것이어서 새로운 교회에서는 다만 훌륭한 모범만이 보입니다. 그러나 옛 성당에는 사악한 것도, 두려움의 대상도 있습니다. 절박한 상태에 놓인 것도 추악한 것도, 부정한 것도 있지만 그런 것들도 결국은 신을 위한 것이며 신으로부터 사랑받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존재하지 않는 천사도 존재하지 않는 악마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그들 사이에 끼어 함께 존재합니다. 뭐라 해야 좋을런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비현실성이 오히려 저에게는 인간을 더욱 현실화시켜 줍니다. 저는 이렇게 느껴집니다. 무엇으로도 구별되지 않는 거리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보다 이런 성당안에서 인간이 더욱 잘 이해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런지 어렵기만 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파트론>에 관한 일입니다. (둘이서 음악에 귀 기울리며 서 있을 때 성당안에서 조금씩 알게 된 것이지만) 권위라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대항하려면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그 권위 자체보다 앞서 가는 방법 말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들에게 권리를 주장해 오는 온갖 권위를 <신>이 가진 권위라 생각하도록 애써야 합니다. 권위란 단 하나 뿐이라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보잘 것 없는 권위라 하더라도 그것이 권위인 이상은 우리들에게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만이 그 권위는 무력해지지 않을까요? 어떤 악랄하고 짖궂은 권력에 대해서도 그 권위를 인정하는 것, 다시 말해서 결국에는 그것이 옳다는 것을 인정해 주고서야 겨우 우리들은 부당함과 그 방자스러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들은 지금까지 미지의 거대한 힘들에 대해서는 보다 이렇게 대해오지 않았던가요? 어떠한 힘도 그 순수한 의미로서는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여러가지 결점을 함께 지닌 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그것은 어쩌면 우리들의 결점과 상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학자들이나 발명가나 발견자들의 경우 에는 그들이 처음으로 무엇인지 모르는 힘과 씨름을 하고 있다는 전제 조건이 그들을 가장 위대한 <힘>으로 인도하는 게 아닌가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저의 마음속에는 누를 길 없는 불같은 욕심이 우글거립니다. 지금 말씀드린 대로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바르게 행동해 나갈 수가 있다고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경우, 저는 참지 못하고 불쾌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 밑바닥에서는 반항보다는 복종이 오히려 힘에서 우월함을 인정합니다. 복종은 덤벼드는 폭력을 무색케 합니다. 복종은 올바른 힘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방법으로 찬양하게 되지 않는가요? 반항은 하나의 중심에서 출발하는 견인력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치며 힘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할 수 있을테지요. 그러나 일단 거기에서 벗어나고 보면 그는 다시 공허에 빠지게 되며 다른 견인력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반항자가 새로 찾아낸 견인력은 처음의 것보다 하찮은 합법성을 갖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목전에 있는 것을 가장 위대한 힘으로 보려 하지 않을까요? 애매한 것으로 해서 절대로 마음이 흔들려서도 안됩니다. 이러한 자의적(恣意的)인 것도 결국은 어떤 법칙에 부딛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모든 일을 그 흐르는 대로 내맡기고 자연스러운 전환을 기다리는 게 수고를 더는 방편이 아니겠습니까. 이 방법은 물론 현대가 가지고 있는 휘몰아치는 특성과는 상반이 되는, 너무나 느린 방법인지도 모르나 그러나 성급한 움직임과 더불어 느린 운동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진행 속도를 알아볼 수 없는 아주 느린 운동말입니다. 인류하고 하는 것은 개개인이란 존재를 넘어서 무한에 도달하기를 기다리는 존재여서 인류라는 관점에서는 느린 것이 오히려 가장 빠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다만 그 속도를 측량할 수 없는 까닭에 느리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이 세상에는 그 무엇으로도 측량할 수 없는 존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인간들은 그런 것을 지칠 줄 모르게 계산하며 환산함으로써 스스로를 모독합니다. 사랑이란 것을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이란 절실한 애정 문제를 모멸과 욕정과 호기심이 뒤섞인, 찾을 수 없는 감정으로 그것을 <관능적>이라 부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이 세속의 생활에 대해 마련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러한 부당한 멸시를 거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본다면 우리들은 심오한 사랑의 행위로부터 태어났고 스스로도 이 행위에서 환희의 절정을 맛보면서도 그것이 곡해되고 짓눌려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스스로 타고난 자연의 성스러운 섭리를 주장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데 인간만이 그 즐거움을 부정합니다. 더우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교리가 아직은 뚜렷한 확증은 없으나 지속성을 지니고 계속 주장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앞에서 말한 저의 죽은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해 봅니다. 때는 봄날이었고 우리들은 바르트라스 섬의 풀밭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후로 같은 화제를 나눈 적이 또 한번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죽기 전 날 밤이었습니다. (그는 그 다음 날 오후 5시를 조금 지나서 죽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그가 걸어왔던 괴로움에 찬 삶의 그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깨끗한 마음이 저의 마음을 그 구석구석 비추어 주어 저의 마음 속에서 생명이 다시 움트기 시작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거기에 대답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말을 듣지 않았으며 환희의 눈물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도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는 어쩌면 마음 날이면 죽어갈 친구의 손에 얼굴을 묻고 어린애처럼 울었습니다. 뻬엘이 혈관에 생명이 다시 한 번 물결치는 것이 느껴졌으며 그것이 저의 뜨거운 눈물과 뒤섞여 넘쳐 흐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감상적이어서 도에 넘는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감히 선생님께 묻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을 도와 주려고 한다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무력한 우리 인간을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만약 우리들이 온갖 체험의 그 근원에 놓인 가장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게 되면 왜 우리들을 매정스럽게 내버려 두는 것입니까. 왜 입니까? 저 세상에 가서 우리들을 도와준다면서 우리들의 이 세계를 아무렇지도 않은듯 무심히 대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들은 그에게서 아무 것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저 세상에서 구원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들이 이 세상의 삶과 함께 성장하며 함께 커지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들의 생활이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누가 있어서 우리의 본질, 그 가장 밑바닥에다 무엇을 가져다 놓을까요? 우리들은 도둑이나 침입자처럼 발소리를 죽이며 가만 가만 우리 자신의 그 아름다운 성(性)의 세계로 숨어서 들어가야만 합니까? 인간 심성의 내적인 긴장을 위해 죄라든가 잘못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왜 우리들은 우리 육체의 한 부분에 그것을 연결지우지 않으며,  왜 그 육체의 탓으로 돌려 그 죄나 잘못이 우리들의 순수한 <성>이란 원천에서 녹아 독소를 퍼뜨려 그 샘물이 흐려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까? 왜 우리들은 그 성이란 것을 고향이 없는 것으로 만듭니까? <성>이란 오히려 우리 인간의 관할권을 확대시키고 키워주는 축제가 아니겠습니까?
 좋습니다. 저는 인정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에게는 그러한 무한정의 지복(至福)을 보장하고 통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왜 우리들은 <성>에 의해 신에게로 귀속되어서는 안되는 겁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는 <결혼>이란 것이 있지 않느냐고 제게 말할 것입니다. 그 자신은 결혼이란 어떤 제도인지도 모르면서 아마 그렇게 답변할 것입니다. 대를 잇는다는 인간의 의지를 은총이라 해석해 보았자 아무런 도움이 못됩니다. 저의 <성>이란 대를 잇는다는 것과 결부될 뿐만이 아니라 저 자신의 생명의 비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성>을 생활의 그 중심에 놓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억지로 한구석으로 밀어 붙여서 우리 인간의 생활이 균형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저는 생각합니다. 현대가 안고 있는 허위와 불안이 <성>의 즐거움을 쓸데없이 부인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이런 괴상하게 이그러진 빛은 점점 늘어만 갑니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 의외의 자연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가며 마침내는 어린아이로부터도 떨어져 나가고 맙니다. 삐엘은 죽음을 앞에 둔 그 잊을 수 없는 밤에 제게 말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순진한 까닭은 아직 <성>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는 단순한 설명은 옳지 않다고 말입니다. 뻬엘의 목소리는 거의 들릴락말락하였으나 하여간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인간이 서로 포옹할 때, 부드러운 육체 그 어느 부분에 눈을 뜨는 그 알 수 없는 환희는 인간의 육체, 그 어느 곳에나 남모르게 골고루 배분되어 있다.>
 인간의 관능이 갖는 미묘한 본성을 표현하려고 하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한때 우리들은 육체의 그 어느 곳에서도 어린아이였으나 이제는 오직 한 곳에서만 어린 아이라고. 만약에 이러한 미묘한 사실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 인간들 가운데 있고, 또 그것을 실증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고 한다면, 우리 인간들은 몇 세기를 거쳐오면서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편견 밑에서 신음하게 내버려 두었겠습니까? 왜 우리는 암흑 속에 갇힌 가사자(假死者)처럼 거부만이 존재하는 그 비좁은 속에서만 움직였습니까?
 선생님, 저는 쓰고 또 씁니다. 거의 하룻밤이 지새도록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신을 가다듬어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어떤 공장의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으나 기계에 붙어 일을 할 때도 많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비록 얼마 안되는 기간이었으나 대학에도 다닌 적이 있습니다. 저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현재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서 신에게로 향하고자 생각합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계속하면서 점점 <신>에게로 가까이 하자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괜찮다면, 저는 이 길이 그리스도에 의해서든 혹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든 어떤 훼방을 받아 중단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때 그리스도는 여러 사람들에게 있어 사랑의 물줄기였다고 하는데, 저는 홀로 꿋꿋하게 서서 외로이 저의 하늘을 향해 치솟는 한줄기 분수이고자 합니다. 예컨대 제가 저의 공장의 기계를 그리스도에게 설명한다면 그리스도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이야기를 드려도 이것이 진실한 이야기이므로 선생님께서는 웃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나 <신>을 다릅니다. 그러므로 저는 안심하고 <신>에게 기계를 가져다 보일 수가 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신에게 바칠 수 있습니다. 저의 기계와 제일 첫 생산품을, 아니 저의 제작품 전부를 말입니다. 제가 느낀 그대로입니다. 저의 일은 <신>의 품 안으로 직결되었다고 느껴지는데, 그것은 그 옛날 목자들이 신들의 제단에 양을 바치거나 곡식이나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바친 일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고 손쉬운 일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이 긴 편지를 쓰는데 <신앙>이란 단어를 한번도 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신앙이란 말은 제게는 귀찮고 까다로운 문제같아 보이며, 또한 그것은 저의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리스도로 해서 스스로를 약하게 하고 싶지 않고 오히려 신에 대해 선하고 싶습니다. 머리부터 <죄인>이라 부르기 싫습니다. 어쩌면 저는 죄인이 아닐런지 모릅니다. 이렇게도 맑은 아침을 맞이할 수가 있는데, 왜 죄인이란 말입니까? 저느 또한 직접 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으므로, 그 누구에게 대서를 부탁하여 <신>에게 부치는 편지를 쓰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선생님의 시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씀드린 날 밤에 있었던 낭송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한두 권 예술에 관한 책자와 우연한 기회에 구하게 된 몇 권의 역사서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므로 시는 처음으로 선생님 덕분으로 저의 마음에 감동을 준 셈입니다. 저의 친구는 속세를 기리는 스승이 있었으면 좋겠다 말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이야말로 바로 그런 스승의 한 분입니다.

빌헬름 숄츠에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베르린 근교, 스마르겐 도르프에서 1899년 4월 10일




 빌헬름 씨.
 저는 그 후론 아르고에 머물면서 만족스러울 정도의 체념을 간직하고 이탈리아의 변두리에 주저 앉아 지냈습니다. 그러나 새 시즌의 시작과 로리이스의 초연(初演)을 맞이해서는 비인에 있었고 프라하에서는 인플렌자로 병상을 지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광폭스러운 봄의 어수선함과 공연히 슬퍼지는 계절과 함께 러시아 여행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이 곳의 부할절은 내게는 너무나 약하고 무기력한 음성이어서 종소리가 가득히 울려퍼지는 곳에서 부할절을 다시 한번 맛보고 싶습니다. 클레슬린 성당의 종소리는 한층 고아하여 경건하게 귀 기울리는 이 사람에게 영광을 받게해 주리가 확신합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얼마간은 별로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가족이 있고 가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먼 곳을 다녀온 뒤에는 언제나 귀향을 축복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쩌면 완전한 원(圓)이 될 때까지 고향을 향해 돌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고향에 대해서 조금은 기묘하게 때로는 슬픈 꿈처럼 알고 있습니다. 마치 고향이란 것을 이미 잃어버린 적이 있는 양 말입니다.
 출판사에 부탁해서 최근에 나온 저의 졸저, <프라하의 두 이야기>룰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눈도 발걸음도 뒤로 하는 책이라 해야 옳은 표현일 겁니다. <가신봉폐>에 넣지 못했던 찌거기라고 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그것을 받아 주십시오. 1900년에는 저의 일로 해서 당신을 더욱 기쁘게 해 드릴 작정인 까닭에 그렇게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당신의 친구 라이너 마리아 릴케

빌헬름 폰 숄츠: 파울 에른스트와 더불어 신고전파의 대표적 시인으로 시나 희곡 작품 외에도 역사소설을 써서 많은 독자층을 가졌던 인물

게하르트 하우프트만에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볼프스베테에서  1901년 12월 16일




 당신이 1년 전 당신의 저작인 <미하엘 크람머>를 제게 주시면서 <12월 19일>이라고 책에다 날짜를 써 넣어 주시지 않았더라도 저는 이 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당시 나비니용에서 있었던 일을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리지도, 또 편지로 드리기도 하던 일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오늘 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이후로 제가 체험한 일체의 소박한 것, 아름다운 것 속에는 언제나 <미하엘 크람머>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를 기쁘게 해준 모든 것, 저의 번민과 성장에 관련되는 모든 것, 삶의 온갖 중요한 일에서 저는 언제나 미하엘 크람머를 증인으로서 내놓고 이야기합니다.
 존경하는 게르하르트만 선생님, 1년 전에 감사드렸듯 오늘도 감사드리며 또한 12월 19일이 되돌아 올 때마다 저는 제가 갖고 있는 최선의 것으로 당신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여기에 세 개의 소품을 담은 회색빛의 조그마한 책자를 동봉합니다. 98년에서 99년으로 옮겨지는 시점에서 이룩된 것이었으나 이제야 겨우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끄러운 선물과 함께 염치없는 부탁을 드리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의 시작(詩作) 가운데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들을 새로운 시집으로 묶기로 한 바, 거기에 선생님의 서문을 싣고 싶어서입니다. 이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으시다면 저는 그것을 제게 대한 크나큰 신뢰로 알 것이며, 그것이 또한 제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되겠습니다.
 저는 가끔 선생님이 사시는 고장의 일을 생각해 봅니다. 그곳도 우리들의 변두리 농촌처럼 조용하고 대범하며 선생님의 집도 이제 기분좋도록 아늑해져 하얀 겨울의 그 한가운데 서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하루하루가 길고 조용합니다. 그리고 눈에 파묻힌 길을 뚫고 우리에게로 올 수 있는 외부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최근에 우리들의 딸이 이 집에서 태어난 일은 이렇게 기대로 충만한 크리스마스 같은 나날을 더욱 알차게 해 주었다 생각됩니다.
 다시 2,3주 뒤에는 제각기 자기의 일에 매달릴테지요. 조각가인 아내는 그녀 자신의 일에, 저는 저의 일에 아기는 아기의 어려운 일에 각기 매달릴 것입니다. 아기의 본질은 태어나는 순간부터의 임무이자 미래에 대한 의무인 생활이란 것 속에서 성장하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일입니다.
 얼마전 잡지에서 선생님과 댁의 세 아이들이 함게 찍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저는 늘 이 사진을 생각하면서 사진에 의해 진지하고 엄숙한 그 무엇이 표현되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생활 속에 함축된 사랑스러운 것, 소박한 것, 행복, 균형, 이 모든 미래가 함께 표현되었다 생각합니다. 이 사진은 비록 잡지에 실려 여러 사람들의 눈에 뜨인 것이기는 하나 그래도 주의를 다하여 성실하고 예리한 관찰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선생님 자신의 말씀처럼 생각이 됩니다.

                             항상 존경을 보내며,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엘렌 케이 여사에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로렌스에서   1903년 4월 3일


 엘렌 케이, 말할 수 없을만큼 사랑이 담긴 두 통의 편지에 대해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가능하다면 당신에게 긴 편지로 정리된 한 권의 책을 써서 저의 모든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마침내 힘든 결심을 하고 빠리를 떠나왔습니다. 우선은 기비에라 등지에 머물려 했었으나 어디나 찌는 듯한 더위와 사람으로 발을 디딜 여지조차 없는 방처럼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거친 파도가 이는 이 해변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이곳의 여름은 들끓는 해수욕장이지만 지금은 인적이 끊기고 해송(海松)에 둘러 싸여서 망망한 바다를 향해 툭 터있는 조그만 소읍에 지나지 않습니다. 5년 전에도 한 번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곳에서 보낸 나날들은 기쁨으로 충만되고 수많은 노래가 잉태된 태양의 나날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곳을 믿고 있어 잠시 여기에서 살아볼 작정입니다.
 한 편, 당신께서도 여행중이어서 친절한 말씀을, 그런 것에 굶주려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날라다 주고 계십니다. 저의 사념이나 희망이 언제나 당신의 여행과 함께 합니다. 이 편지와 함께 이번에 겨우 출판된 <로댕>을 보내 드립니다. 이 책이 당신에게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저는 당신의 이해와 호의를 얻게 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이 모든 것을 돌려 드립니다. 저의 책이 당신의 손 가까이에 있을 때 만큼 호감을 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여태껏 나의 책을 그토록 호의를 갖고 응석을 받아주듯 맞이해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당신의 두번 째 편지는 빠리에서 이 곳으로 회송되어 왔습니다. 그 편지가 빠리에 도착했을 때는 저는 이미 그 곳을 떠난 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아내가 그 편지를 빠리에서 개봉하여 당신이 부탁한 일들을 모두 보우즈 가(家)에 전하였다 합니다. 아내는 곧잘 그 집 사람들과 만나며 일에 열중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게 좋은 소식을 보내줍니다.
 될수록 빨리 우리 가족 사진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3장은 더 보낼 것이 있으리라 생각되며 우리들은 하루라도 당신과 사귀게 되기를 모두 다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딸아이, 루트의 사진도 보내겠습니다. 인화된 것이 없으면 다시 현상을 시키겠는데, 그럴 경우에는 2,3주는 더 기다려 주셔야 겠습니다.
 헌 책을 보내 드리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책을 한 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몇 권 있는 것은 상자에 넣어 볼프스베테에 두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구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지에 논문을 쓴 빌헬름 비히겡이 몇가지 자료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당신의 소원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여서 저로서는 실로 유쾌하고 행복합니다.
 이밖에 저의 과거가 어떠했던가를 말씀 드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우리들이 머지않아 만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데, <그것도 아마 이탈리아에서겠지만> 그 때야말로 당신이라면 당연히 이미 알고 계실 것을 다시 되풀이 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는 것으로 느껴져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의 가계(家系)는 아무래도 오랜 집안이어서 1376년에는 이미 케른텐이 귀족이 되었고 그후 일부는 작센이나 브렌덴브르크로 이주하였으며 17세기에서 18세기 초에 걸치는 약 이삼십년 동안에 크게 세 파로 분파되어 부와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후에 몰락해 버렸습니다. 소송에 계류되어 전 재산은 물거품이 되고 토지는 없어지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적빈(赤貧)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캄캄한 세월이 거의 1세기나 흘러가고 드디어 저의 증조부 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분이 다시 권세를 되찾아 린테 하반의 성주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당장에라도 소멸되어 영원한 망각의 늪으로 빠질 일족의 오랜 이름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다음 대에 또 다시 쇠미해졌습니다. 조부는 어린 시절은 린테에서 보냈으나 후에는 다른 집의 토지 관리인으로 지냈습니다.
 아버지로 말씀드리자면, 아버지는 일가의 전통에 따라 장교 생활을 시작했으나 곧 관리의 신분으로 옮겼습니다. 그 분은 철도 관리로서 어느 사철(私鐵)의 꽤 높은 지위까지 올라가기까지 성실히 근무해 왔습니다. 그 분은 지금도 프라하에 살고 계시는데, 저는 거기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의 일입니다. 세례명은 르네 마리아였습니다.
 어머니의 가계(家系)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외할아버지는 거상(巨商)이었으나 방탕한 아들 때문에 가산이 탕진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외가는 프라하에서 비좁은 셋방에서 형편없는 살림을 꾸려 나갔습니다.
 제 양친의 결혼 생활은 내가 태어났을 때에는 이미 맥이 빠진 상태였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아홉 살 때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대단한 신경성의 체질에 피부가 검었으며 인생에 대해 무언가 막연한 것을 바라온  그런 여자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금도 변함없이 그대로입니다. 두 분은 똑같이 인생에 있어서 외관(外觀)을 중히 여기기 때문에 어쩌면 서로를 잘 이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실제로는 형편없는 소시민의 생활을 하면서 부모는 언제나 우리들의 가난한 집이 충만해 있는 것으로 보이려 했고 우리들이 입는 옷은 외양만 화려한 것이었으며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당연한 것으로 눈감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저의 모습이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언제나 예쁜 옷을 입어야 했고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계집애같은 차림으로 뛰어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커다란 인형처럼 가지고 놀았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아씨>라 불리우는 것을 좋아했으나 자신이 젊고 고민있는 여자이며 불행하게 보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실제로 불행했습니다. 어머니 뿐이 아닙니다. 생각컨데 우리 모두는 불행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집을 버리고 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저는 우리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열 살이었습니다. 응석받이로 유약하게 자라온 제가 50명의 소년들과 한 패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가 적의와 모멸감을 갖고 저를 대했습니다. 병적인 데에다 학교에 대한 반항심에 불타고 있으면서도 제가 그 학교에서 겯녀낸 5년이란 세월은 제게는 참으로 고통스러웠던 삶이었습니다. 저의 부모는 오늘 날까지도 제가 그때 얼마나 괴로운 삶을 견뎌냈던가를 모릅니다. 그들로서는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 학교에서 퇴교를 하고 제복을 벗었을 때, 저는 부모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그 뒤에도 몇 번이나 되풀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어 상업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거기에서도 몇 번이나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파멸될 뻔 하였으나 삼촌이 서둘러 저를 인문계 고등학교로 입학을 시켜주었습니다. 그 때 저는 이미 16세가 되었습니다. 이 학교에 와서 비로소 열심히 공부를 해서 3학년에 8학기를 끝내고 고등학교 졸업시업에 합격했습니다. 저는 그 시절 너무나 지쳤습니다. 그 후, 어느 시기에선가 부모를 그중에도 특히 어머니를 미워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런 잘못된 생각을 버리게 되었고 가끔 어머니를 만났고 어머니가 무척이나 불행하고 고독한 여자라른 것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두 분에게 될수록 다정하게 대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부모에 대해 말할 수 없는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에 대해서 그러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저의 생활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일상의 걱정거리입니다. 아버지는 도대체 저라는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또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알고 싶어서 안달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눈에 두드러지게 뜨이는 것은 우리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계를 꾸려가는지 하는 문제입니다. 때문에 아버지는 저의 능력을 믿어 주지 않으며 저는 고통스러운 것인 줄 알면서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저로서는 달리 도망할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작품에 대하여 빵을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신을 버는 자와 창조하는 자로 분리시킬 힘이 없음을 압니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힘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내부의 중요한 것에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제발 말씀해 주십시오.
 결국 이후 이 2년간, 저는 실제로 매일 일을 해서 빵을 벌려 하였으나 별로 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해서 무엇이든  잃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물론 저는 내적인 필연성에 의해 글을 쓸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쓰는 일로 돈을 벌려 생각할 때도 이런 내적 필연성이 나를 찾아주리라 기대했으나 외부적인 강요가 가해지고부터 이 펼연성이 저를 찾아주는 일이 뜸해졌고 최근에는 아예 끝나 버렸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엘렌 케이 여사, 제가 얼마나 번민해 왔는지, 특히 최근에 몇 달동안 얼마나 고민해 왔는지, 상상도 못할 지경입니다. 자신이 완전히 소모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일상의 생활과 거기에 따르는 하찮은 여러가지 일에 보내게 되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혼돈되어 이미 작품은 염두도 내지 못합니다. 당신에게 어떻게 말씀드려야 옳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전에는 마음속의 온갖 소리를 알아 들었으나 이제는 노래가 들려오는 정원을 향한 창문을 누구인가 닫아버린 모양입니다. 멀리에서 무언가 들여와 귀기울여 듣기는 하면서도 이미 들리지가 않습니다. 머리가 쓸데없는 걱정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돈벌이가 되어서 이제는 자신의 것을 위해 정신을 집중할 수가 있겠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또 다음의 벌이를 어디서 찾으며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만 합니다. 때문에 신경의 힘은 사라지고 시간은 위축되고 용기는 좌절됩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외톨이로 남겨져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는 만개된 꽃으로 가득하지만 그 냄새는 저의 가슴을 무겁고 괴롭게 짓누를 뿐입니다. 물론 이런 감정이 처음 겪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예술은 처음부터 저항에서 출발했습니다. 사관학교에서 받았던 하사관들의 비웃음과 놀림에 저항하여, 아버지에 저항하여, 그리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저항하며 저의 예술은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위험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돈벌이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되고 외부로부터 온 저항이 이제는 자신의 틀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거기에서 도망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걱정입니다. 실로 끝이 없는 근심걱정입니다. 
 지금은 휴양으로 정신을 집중하기 위하여 과거가 그대로 지켜져 있는 이 곳에서 자신으로 되돌아 가 보려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곳에 온 지가 벌써 2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건강해지지가 않습니다.--
 옛날에는 제게 있어서 이다지 독립된 존재가 아니었던 돈에 대한 생각이 지금은 또 다른 괴로움을 불러냈습니다. 가령 제가 쌓은 교양은 일정한 지위를 얻기에 미흡하며 저널리스트로서의 일을 하기에도 부족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져 괴로워지기 시작한 것이 그러합니다. 물론 저널리스트의 일이야 말로 제가 그 무엇보다 혐오하는 일입니다. 문학과 저널리스트가 갖는 친근관계가 외관상으로만 그럴 뿐임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쪽은 영원을 의미하며 다른 한 쪽은 시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시대라던가 시대의 온갖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저는 시대와 일을 함께 할 수가 없으며 시대 속에서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합니다. 심지어 거기에는 자신의 집까지 갖고 있지 않습니다. 꿈 속에서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실을 바라고보 살고는 있습니다마는 이 현실이란 아마 미래의 것인 모양입니다. 두 번이나 돌아다녔던 아득히 먼 러시아 여행길에서만 저는 고향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하간에 거기에서 쉬었는데, 아마도 거기에는 시대와 시대적인 것이 인정되지 않아서 그러했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미 미래가 존재하고 시간이 한층 영원에 가깝게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젠가는 거기에서 살아야 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아무 계획이 없습니다. 신변의 하찮은 일과 문제들이 마음에 걸려 게획을 세운다는 자체가 오만으로 생각될 지경입니다. 자신이 그물에 걸려서 자유가 되려고 움직일 때마다 두 손이 자꾸만 조여드는 느낌입니다. 
 어느 날은 살기 위해, 또 자신을 되찾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음 날은 또 어떻든 시작(詩作)은 끝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자신을 거지로 생각지 않고 저의 괴로운 처지를 이해해 줄 사람은 없겠는가 찾아보게 되는 일입니다. 그러느라고 결국에는 아무 것에도 손을 댈 시간이 없어집니다. 압박해 오는 이런 여러가지 우려 속에서 저는 이제 그것을 물리칠 저항력을 잃어버렸고, 오히려 주위의 모든 것이 제 마음속의 꽃을 향해 도전해 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저는 11권인가 12권의 책을 썼으나 그것으로 보수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4권에 대해서는만은 약간의 보수를 받았고 그 외의 출판업자는 저의 책을 내주는 것만으로 그쳤습니다. 볼프스베테의 화가들에 대해 쓴 글은 미리 청탁을 받아서 쓴 것이었으므로 보수도 괜찮은 편이었으나 몇 달이나 생활을 내던지고 몰두했던 <로댕>은 겨우 150마르크를 받았을 뿐입니다. 이와 함께 저의 마음 그 깊은 밑바닥에는 이런 책들을 무용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는 소원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명(無名)으로 있고 싶다는 동경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의 민족들처럼 자신의 노래, 그 뒤켠에서 말해 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의 말처럼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저는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엘렌 케이, 젊은 아내는 저의 고뇌를 알며 저와 함께 성실히 견딜 뿐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똑같은 운명도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진지한 일 때문에 저는 사랑하는 어린 딸고 떨어져서 사는 아픔을 감내합니다.
 그러나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은 이제 그 무게가 대단해졌습니다. 나를 이해해 주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히 묻고 싶습니다. 오랜 휴양을 거쳐서 저의 작품이 사방에 울려 퍼지는 것을 듣기 위해서는 기적이 일어나야만 하는가, 그리고 기적이 있어야 한다면 그 기적을 믿고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이 생생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는데 마음으로는 중요한 것을 밤낮으로 그리워하여 마음에 상처받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러나 저는 그것이 살아있는 목소리가 아니라 믿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삶을 사랑하며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마음 속의 일체가 삶임을 믿습니다.
 당신은 저의 편지에 번민과 걱정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다고 느끼시는 모양입니다. 때문에 최근에 당신이 보내주신 편지에는 삶이 긍정적이라는 아름다운 종소리가 맑은 말로 담겨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모두가 내게 불친철했을 때. 자신은 지금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 속에서 헤매고 있다고 느껴졌을 때, 그 시절에는 어디엔가로 가 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인간이란 것이 나와 무관(無關)한 것이 되었을 때 저는 사물(事物)에 끌렸습니다. 그리고 사물 속에 기쁨이 존재한다는 즐거움이 저로 하여금 숨을 붙어 있게 하였고 이 기쁨은 언제나 다름없이 조용하나 강한 것이어서 거기에는 절대로 주저하든가 회의하는 게 없었습니다. 육군학교에서는 오랜 싸움을 거쳐 <신>을 포기하였으나 사물에서는 그 깊은 인내와 단단함으로 보다 경건하고 새로운 사랑, 불안도 한계도 없는 어떤 신앙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신앙 속에서는 삶도 그 일부분입니다. 정말로 저는 이 삶을 믿습니다. 제가 믿는 삶은 시대가 만들어 내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삶, 하찮은 사물이나 동물이나 모두 광활한 대지(大地)의 삶입니다. 수천년 계속되는 이 삶은 얼핏 무정하게 보이나 움직임이나 성장이나 그 온갖 것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시는 제게는 무척이나 무거운 짐입니다. 저는 먼길을 걸어서 모래알 하나 소홀리하지 않으며 세계에 갖가지 모양을 부여하여 자신의 몸에 부여하여 느끼게 하고 사물과 부딛쳐서 거기서 친밀감을 찾아내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한 인연이 먼 것이기에 커지거나 자라지 않는 단순한 생활 의식에 접근시키기 위해 가능한 소채를 먹으며 살아갑니다. 뿐만이 아니라 한 방울의 포도주도 마시지 않습니다. 채액(體液)만을 위해 이야기하고 그것이 소리를 내어 흐르게 하며 어린 아이나 동물에 있어서처럼 자신의 깊이에서 지복을 빼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저는 오만을 버리고 자신을 가장 천한 동물 이상으로 높이지 않으며 자신을 굴러다니는 이름없는 하나의 돌맹이 이상으로 보지 않겠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내게 주어진 삶을 살며, 나 이외에는 누구도 낼 수 없는 울림을 내려 할 것, 내 마음에 배분되어 있는 꽃을 피울 것, 이것이 바로 제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어라 해도 이렇게 하는 것이 절대로 불손일 수는 없습니다. 
 저의 나날은 고통스러우나 이 이상 더 고통스럽게 되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당신은 저의 편지를 다 읽고 나면 제가 지금 무언가 힘을 되찾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호의를 베풀 준비를 갖추고 계셔서 제가 아무래도 가망이 없을 때는 프라하에서 사무직을 얻어 주겠노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이 제게는 또 다른 <사관학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저로서는 그러한 구원은 감옥처럼 두렵습니다. 하루의 4분의 3이상을 한 사무실에 앉아서 숫자를 써 가며 살다가는 저는 틀림없이 죽고 말 것입니다. 그 때는 끝장입니다. 영원한 끝장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까 두렵습니다.--- 계시는 곳은 지금도 눈이 보이는 겨울입니까? 부활절의 아침은 어떻게 밝아집니까? 시골의 봄은 언제쯤 시작됩니까? 사랑과 감사와 신뢰로 언제나 당신을 생각합니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엘렌 케이는 스웨덴의 여류사상가로 근대 여성 운동의 선구자이다. 릴케는 이 편지를 쓴 다음 해인 1904년 엘렌 케이 여사의 권유로 스웨덴 여행을 떠나 여사를 방문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후흐에게(2)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비알렛지요에서  1903년 4월 1일


 프리드리히 후흐 씨, 저의 편지가 당신에게 그렇게 비쳤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런 결과가 되리라는 것을 제가 예측 못했던 게 큰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쓰는 동안, 저는 당신과 당신의 필연성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으며 <페터 미히헬>을 읽은 뒤에는 더욱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정말로 작품의 의도에 대해 말했습니다. 실로 이상한 일입니다. 성공이라는 것은 바람에 날려 쓰려져도 다시 몸을 일으키는 벼이삭같은 성공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저 자신이 모르고 말씀드렸을까요.
 저의 마음 속에는 응석을 부리기 좋아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작품이 우리 모두에게 기쁨이었으며 은혜였을 뿐만이 아니라 불의의 습격같은 것으로 우리들을 놀라게 했다는 사실에서 저는 응석을 부렸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유약해진 저는 무언가 새로운 대기에 민감하게 되었는데 당신의 새 작품에서 어느 과도기의 건강한 바람이 불어오자 저는 그것이 틈으로 들어오는 사잇 바람이라 외쳤던 것입니다. 저는 비평가가 아니며 또한 어떤 일이 있어도 비평가가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게 주는 행복의 척도에 의하여 예술작품을 잽니다. 그리고 행복과 저와의 관계는 살아가면서 익어가고 커지는 까닭에 이 척도도 제가 성장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평하게 해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저는 비평가로서가 아니라 주의깊은 사랑의 길을 걸어 볼프스베테의 화가들에게로 접근해 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고독한 생성의 꽃이 피는 곳이면 어디에고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보낸 편지 속에는 무엇인가 비평가의 몰염치나 조급함이나 거짓스러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런 재난을 가져 왔습니다. 만약 그 편지가 여기에 있다면 편지 전체에 독기를 품게 한 이 극히 적은 이질적인 것을 가려낼 수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쩌다가 그런 독기가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요. 그 편지를 쓴 것이 너무 빨랐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아직 준비가 갖추어지기도 전에 저 자신의 말이 앞으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아니라면 저의 마음 속에 있는 그 어느 도시보다 견디기 어려운 빠리라는 도시에서 이 겨울을 보내느라 심신이 다같이 편치 않았던 때문일 것입니다. 게다가 새해가 되면서는 인프렌자에 시달림을 받아 초조하고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트리노와 지잇노아를 거쳐 이 보잘 것 없는 곳으로 왔습니다. 과거에 이곳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 적이 있어 그 때부터 이곳을 희망이나 추억의 보석으로 장식해 왔었으나 현재의 상황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모든 것이 건강 탓입니다. 광대한 숲과 바다, 이 모든 것들이 주는 은혜에 기뻐할만큼 건강을 되찾기 위한 충일이란 것을 아직 갖지 못한 까닭입니다. 비알렛지요는 들끓는 해수욕장으로 원근에서 사람들이 마구 몰려듭니다. 이곳에 대해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거의 꼭같은 긴 도로로 되어있는 조그마한 시가지, 밤낮으로 그 아름다움과 위용을 자랑하는 바다, 바다를 따라 뻗어있는 해송, 멀리 보이는 피사의 대사원, 대개 이런 것들입니다. 요즈음은 몇 사람의 영국인들이 묵고 있을 뿐입니다.
 빠리에 남아 일에 파묻혀 있는 아내, 클라라로부터는 종종 좋은 소식이 옵니다. 벌써 혼자서 뛰어 다니며 오랑캐 꽃이나 아네모네를 찾아내는 작은 루트의 귀여운 모습에 대해서는 많이 듣기 때문에 가끔 그 아이와 함께 지내고 싶다는 괴로움에 시달리곤 합니다. 그 아이는 지금 브레멘 근방에 있는 그 아이으 외가의 영지에서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추신: 당연히 저의 <볼프스베테>를 보내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극히 제한된 저의 증정본은 단번에 없어지고 제게는 그것을 살만한 돈이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발송한다는 수고가 저를 압박합니다. 때문에 저는 발송하는 일 자체를 포기했었으므로 당신이 그 책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무척이나 지쳐 여러가지로 우울하게 지냈던 탓입니다. 
 근간 발행된 <로댕>도 발송한 것이 한 권도 없습니다. 하지만 출판사에 부탁해서 당신에게 일부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만약 한 권의 책이라도 타인의 손에 닿게 되면 거기에는 애정과 호의가 함께 한 것이라 살펴 주십시오,   / R.M.R. 


아드레아스 살로메에게(1)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마에서   1904년 5월 12일


  사랑하는 루, 보내준 편지는 되풀이 해서 여러 번 읽었습니다. 친절한 편지였습니다. 마침 편지가 왔을 때는 뜰은 조용한 크나큰 초저녁이었습니다. 나는 단층 집의 베란다에서 천천히 읽어가며 편지의 뜻을 음미해 보았습니다. 내 마음에 무언가 있어서 말해 주었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무언가 좋은 일을 시작하리라. 그리고 아무리 희망이 짓눌려 있어도 내 마음에는 하찮은 기쁨이나마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아직 개화되지 않았습니다. 휴가의 무거운 짐이 나날이 더하여 가기 때문입니다. 날씨는 서늘해지고 방해가 될 것은 사라져 갔으나 아직 마음은 쾌유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결심이 필요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루, 그리고 그런 결심을 하기 전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시점에 가능한 한 나의 일을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말도 내게는 중요하기 때문이며 당신은 또한 그것이 왜 중요한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일을 하고 계시다면 이 편지는 지금 무척 안절부절 못하는 한 인간이 써 보낸 것으로 치고 기다리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이 편지는 당신이 원할 때까지 개봉을 기다려도 괜찮습니다.
 10월까지 별장을 하나 빌렸습니다. 여름을 여기에서 참고 기다리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으로는 이 집을 1년쯤 더 썼으면 싶습니다. 어디에 가서 이런 집을 구할 수가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내게는 알맞습니다. 커다란 창문과 발코니가 붙어 있고 넓고 밝은 장식없는 방이 있으며 깊숙한 뜰에 자리잡아서 아무도 쉽게 근접할 수 없도록 고립되어 사람들의 내왕이나 거기의 소음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집---
 이곳의 가을은 고약했습니다. 겨울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래 내려 답답했으며 사람들이 그렇도록 찬양해 마지 않는 봄은 멈출 사이도 없이 위험한 여름으로 급히 들어가 버립니다. 이 곳 사람들은 말합니다. 로마의 기후는 처음 겪는 사람에게는 견디기 쉬우나 1년이 지나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견디기가 어려워지고 바람이 부는 배멀리같은 날씨에 저항하는 힘이 점차 없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로마는 내게 쉴새없이 이야기를 걸었습니다. 그것은 입을 다물지 않고 계속 말합니다. 그렇다고 미친듯 날뛰지는 않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때때로 이것도 나를 위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가 생각해 봅니다.
 북쪽의 여러 나라들이 나의 감각을 꾸밈없는 소박한 것으로 향하도록 길러 주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이탈리아의 사물을 투명한 그림처럼 대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낭비적인 봄 전체를 관망하기에 따라서 갖추어지는 객관적이고 조용한 주위력을 기울여 모든 것을 식물학적으로 다루게 되었고 봄의 속삭임이나 움직임, 새들의 비상, 이 모든 것을 객관적인 흥미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한가지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사물을 관찰하거나 단순히 바라보는 것에도 초심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관찰력이 발전해 나가는 데에 만족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전체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하거나 무엇을 요구할 때면 나의 마음은 무척 굶주렸습니다. 탁한 공기가 자욱한 방 안에서 느껴지는 폐의 고통처럼 봄이 되어도 무언가 새로운 것, 아득한 것,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일어나지 않는 피폐한 세계에서 괴로워졌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을 느낀 것입니다. 고국에서는 한 송이 꽃, 애써서 개화된 처음 피는 한 송이의 작은 꽃이 그런대로 하나의 세계이며 행복이어서 그 행복에 참여하는 것이 끝없는 즐거움이었는데. 여기에서는 꽃이 떼지어 피어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것, 다른 것 속에서 자신이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는, 그러한 예감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더욱 손쉽게 해결됩니다. 꽃이 벌어지고 아네모네가 피고 데루꽃이 피어 우리들은 귀먹은 사람에게 하듯 몇 번이고 자신에게 이 모든 일들을 들려줍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이 함정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의지가 되지 않습니다. 색깔은 있으나 언제나 싸구려 채색을 뒤쫓으며 발전하여 자신에게 무언가 터져 나온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박태기꽃이 만발하여 그 줄기에까지도 울혈된 내장처럼 비생산적인 꽃이 넘쳤고 2,3주 뒤에는 다시 아네모네도 크로바도 접골목도 성상화도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등한해서인지 아니면 순응해서인지, 혹은 자기 착상이 없기 때문인지 박태기꽃은 보라색이었고 시들어 가는 빨간 장미도 죽고 사체처럼 보라색으로 물들어가고 딸기도 날이 지날수록 보라색이 됩니다. 그리고 황혼도 보라색으로 부풀어 오르고 구름 속에도 아침 저녁으로 그 보라색이 나타납니다. 싸구려 색조의 변화가 계속되는 하늘은 얕아서 모래에 파묻힌 것 같습니다. 이곳 하늘은 어디에고 다 있는 것이 아니라 소택지와 바다와 평야의 하늘처럼 무한한 넓이를 가진 하나의 시작이 아니라 그로서 완전히 끝나는 종결이며 이 무심한 배경 위에 무대의 배경처럼 서 있는 나무 뒤에서 일체가 끝납니다. 이곳 하늘은 과거를 차단하며 모든 것을 다 흡수하여 속이 텅빈 황량한 하늘이며 그 옛날에 이미 마지막 단맛을 다 마셔버린 껍데기만의 하늘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그러하다면 밤도 또한 그러하며 밤이 그러하다면 소쩍새의 울음 역시 그러합니다. 밤이 넓은 곳이라면 소쩍새의 울음소리는 깊습니다. 소쩍새는 아주 먼 곳에서 그 울음소리를 가지고 와서 다시 끝까지 가지고 갑니다.--
 이 도시의 특색이랄 수도 있는 전람회같은 분위기는 로마가 갖는 맑은 봄의 특색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이곳에서 일어나는 것은 봄의 전람회일 뿐 봄은 아닙니다. 이런 때 외국인들은 그래도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이 장식되었다 느끼고 기뻐하는데, 특히 독일인들에게는 이탈리아는 꽃과 불꽃, 개선문과 같은 여행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로서는 그들은 옳습니다. 추운 겨울날 불을 땐 방과 어둠에 만족하던 그들이 막상 이곳에 와 보면 양지와 쾌적함이 마련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요구는 필요치 않습니다. 내가 아르고나 프로렌스에 대해 그 이전에 느꼈던 감정도 확실히 이런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이곳 사람이 되어 겨울 그 전부를 여기에서 보아버리면 일어나야 할 기적이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것은 결코 봄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서서히 이 모든 것을 체험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내게 있어서 이탈리아는 변함없는 미완성의 삽화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태연히 이탈리아를 떠날 수 있습니다. 여기는 끝장인 난 까닭입니다.
 물론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괴롭습니다. 이 조그마한 집을 함께 옮겨 좀더 북쪽 나라의 정원에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괴롭습니다. 또한 부숴 버리고 또다시 시작하는 일에는 이미 지쳤기에 괴롭습니다. 그리고 이런 집은 스스로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는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다음에 체류할 장소를 고르는 일이 현재로서는 왜 문제가 되지 않는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떠한 변화가 있을 때마다 협박이나 경쟁을 하듯 나타나는 돈 문제에 대해 나는 이제 눈을 감지는 않으며 그 문제가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음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장소를 고르는데 문제삼지 않는 이유는 나의 입에서 언제인가는 틀림없이 빵이 나오리라는 확신이 차츰 커져가기 때문입니다. 나의 일은 틀림없는 일이며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일이 훌륭하게 된다면 일을 하고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술이란 실로 먼 인생항로입니다. 내가 이제까지 이룩한 것은 너무나 초보적인 것이어서 그것이 나를 살찌우고 길러주지 않은 것도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계획만으로는 열매를 맺지 못하며 일찍 뿌린 씨앗은 싹트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내와 일은 언제나 효력이 있어 빵으로 변할 수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일을 해야한다>라고 로댕은 언제나 말합니다. 내가 그에게 생활의 자초지종을 호소하려 할 때마다 그는 그렇게만 말합니다. 그는 그밖의 다른 해결책은 알지 못합니다. 그는 몇 십년이란 세월을 인정을 받지 못하고 불운하게 살았는데, 만약 그 경우에 그가 계획만으로 살고 보다 나은 날이 오리라는 기대만으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모든 것이 무(無)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끈기와 인내로 열심히 일을 해왔던 까닭에 막상 그의 세계가 사람들의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거기에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일만을 고집하고 신뢰로써 일에만 매달리는 것 그것이 바로 인내라는 점을 그에게서 배웠습니다. 물론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경험으로 체득했습니다. 때문에 이럭저럭 잘 되어가는 한 두가지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예컨대 수입과 일과를 떼어놓지 않을 것이며 어떻게든 돈벌이와 일과, 그 양쪽을 찾아내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나의 인생은 무언가 필연적인 것이 되며 갈갈이 찢긴 현재 상태를 치유하여 열매 맺게 할 수가 있습니다.
 때문에 나는 모든 일을 팽개치고 오직 일만을 위해 다음 체류지를 정하려 합니다. 나 자신이 지금 발전하고 변하기 시작한다고 느껴지는 까닭으로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러한 발전이나 변화는 끊임없이 일을 할 가능성이 될 것이며 이 가능성에 의하여 실제로 온갖 내외적인 곤란과 위험과 혼돈이 어떤 의미로든 극복될 것입니다. 끊임없이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갈 수가 있고 또 당연히 살아갑니다. 이런 뜻에서 당장 실천에 옮길 몇 가지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내가 계획하여 차례로 착수할 일은 다음과 같은 일입니다.
 첫째는 <시도 시집>. 이것을 계속 쓸 작정이며, 둘째로는 새로운 산문을 시작하는 일이며 셋째로는 희곡의 집필을 계획하는 일이고 넷째로는 논문을 두어 편 쓰고 시인, 야콥센과, 화가, 이그나지오를 연구하는 일입니다.
 이 가운데 마지막 네번째의 일을 위하여는 무엇보다 여행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콥센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코펜하겐에 체류해야 하고 이그나지오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스페인 여행이 필요합니다. 이그나지오는 로댕과 마찬가지로 내가 빠리에 체류할 당시 깊이 접촉한 사람입니다만 그가 가지는 중요성과 값어치는 실제로 느끼고 언제라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언제든 기회가 있을 때 당신께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행은 시급하지는 않습니다. 직접 만나지 않아도 나는 여러 길을 통해 매일 야콥센과 통하고 있습니다. 아내도 그의 작품을 애정을 갖고 읽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그의 말과 로댕의 말은 정확히 일치가 됩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말이 일치할 때, 맑은 수정같은 깨끗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감정은 마치 수학의 공식을 증명할 때, 두 개의 선이 한 점에서 만난다든가 두 개의 수가 동시에 줄어들어 결국은 합쳐셔서 단 하나의 간단한 부호로 귀결되는 순간에 주어지는 그러한 감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순결한 기쁨이 솟아나는 법입니다.
 이런 일들과 함께 나는 한 두가지 공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덴마크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야콥센과 키에르케고르의 작품들을 원어로 직접 읽기 위해서 입니다.
 빠리에서는 또 다른 일을 시작했는데, 그 일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림 형제의 대독일어 사전을 읽는 일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이 사전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탓입니다. 임시변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속에 직접 들어가 거기에 내재하는 모든 것을 알고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계기로 중세의 시인들을 읽는 일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크고 넓은 것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던 고딕, 그것이 조각같은 언어와 열주(列柱)같은 행문(行文)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도 이런 일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여렸을 때는 노인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물이 많습니다. 어른이 되면 그러한 사물을 아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됩니다. 하늘에는 별이 있습니다. 그러나 별들에 대해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나는 모릅니다. 실제로 별의 위치까지도 나는 모릅니다. 그리고 꽃에 대해서도, 동물에 대해서도, 그밖에 몇 발자국으로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빠져나갈 수 있는 극히 간단한 법칙에 대해서도 나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생명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미생물에서 생명 현상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생명은 어떻게 분리되며 증식되는가, 생명은 어떻게 꽃피우고 열매맺는가. 이런 모든 일을 나는 알고 싶습니다. 이런 일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어떻든 부정적인 현실에 확고히 자신을 결부시키는 일, 애정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지식에 의해서도 존재할 것, 이것이야말로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언제나 안심하고 고향이 없다는 느낌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도 그러합니다.
 당신은 내가 지금 학문을 구하는 게 아님을 느끼실 것입니다. 학문이란 어떤 것이든 거기에 일생을 걸 필요가 있으며 어떤 일생도 그것을 시작하기에는 충분치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말하자면 따돌림 받는 사람, 미래 뿐만이 아니라 과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대를 읽을 수 없는 사람, 모든 것을 막연히 느끼기는 하면서도 주야와 절기(節期)를 확실히 모르는 수인(囚人),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가 만약 시골에서 좀더 현명한 사람들 곁에서 어른이 될 수 있었더라면 지금쯤은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되는 것들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개성과는 무관한 조급한 학교가 내게 가르쳐 주지않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예술사나 역사철학의 본질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만인을 위해 존재하는 두어가지 간단하면서 확실한 일만을 가려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말하자면 국외자에게는 지리멸멸하게 보이지만은 그 소박함으로 해서 꼭 알고 싶은 몇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안드레아스 살로매에게(2)/ 라이너 마리아 릴케 
                                            1904년 5월 13일




 이제까지 대학이라는 곳이 실제로 내게 준 것이 없습니다. 대학의 개선점이 한 두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어디에서든 받아들일 줄 모르는 내 탓도 있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인식할 만큼 침착한 마음가짐을 갖지 못한 나의 잘못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여러가지 나의 결함은 이제는 상당히 보완되었다고 생각되며 적어도 인내에 있어서는 그렇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여간 이제는 이런저런 불유쾌한 일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조용한 마음으로 참고 견딜 수가 있습니다.
 내게는 수학기간(修學期間)이 모자랍니다.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본질적인 것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 수학기간이 훗날 내게 반드시 필요한 것만을 얻게 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늘 믿는 탓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못한다는 사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홀로 남겨진 듬직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 나는 아직 데리고 다녀야할 어린아이라는 사실, 이런 모든 사실들이 나를 붙잡고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좌절시키며 슬프게 합니다. 내가 만약 학문에 종사하여 그 결과로 참고서를 골라 읽고 고서(古書)나 고사본(古寫本)까지 연구할 능력을 얻는다면, 요컨대 내가 사가(史家)의 고증력이나 기록계(記錄係)의 참을성을 조금이나마 습득할 수 있어 두어 가지 참된 진리나 인식의 언어를 들을 수가 있다면 어떤 장소라도 나로서는 상관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런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으로 나아가는 진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로댕>을 쓴 뒤에 다시 다른 예술가에 대한 논지를 쓸 작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쓰는데 있어 내게 부족한 것은 예술사가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연구자가 가지는 기술적인 고증력과 숙련이어서 젊은 사람들이 그런 것을 갖추고 있을 때 나는 무척 부럽습니다. 이곳이나 빠리의 대도서관에 들어가기 위한 내적인 사용설명서(대단히 평범한 말투입니다만)가 내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나의 독서는 준비가 소홀했던 탓으로 낭독에 불과하였고 내가 받은 교육은 계획적인 것이 못되었으며 어디서나 두려워 몸을 움추린 상태로 양육되었기에 누구에게나 안락한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기술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무엇인가 알며 깊이 생각지 않고 다만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보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당황한 나머지 타인들의 일을 훔쳐 보기만 했던 그런 순간들의 추억들로 가득합니다. 마치 규칙을 모르는 운동경기에 참여한 사람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훼방꾼이며 불만의 씨앗이어서 나 자신을 멈추게 하고 이즈러지게 합니다.
 언제인가 시에나이히의 영지에서 한 여름을 서고(書庫)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옛날 편지나 연대순으로 정리된 문서목록과 서류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나의 온 신경은 갖가지 운명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으며 지나간 세월의 온갖 모습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기호을 해독하여 서류를 정리할 수 없는 무능력과 어리석음으로 해서 나는 결국 그것들로부터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내게 기록계의 마음가짐이 조금이라도 갖추어졌다면 그 여름은 얼마나 멋지고 유익했겠습니까. 그런데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 거기에서 제외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날마다 절감했고 또 그것을 증명받았을 뿐입니다. 이런 감정은 비단 그 여름만의 일은 아니어서 내가 어디엔가 접근하려고 할 때는 되풀이 되어 느껴지던 감정이었습니다.
 가령 눈문을 쓸 때 처럼 어느 한가지 사항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내게는 그에 따르는 준비가 부족합니다. 러시아 여행 계획에 있어서도 그런 점이 장애가 되어 그것을 실천하는데 그토록 시간이 걸립니다.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계획을 요약한다면 이렇습니다.
 첫째, 자연과학과 생물학에 관한 책을 읽고 이에 대한 강연을 들으며 실험을 하고 표본을 볼 것.
 둘째, 역사 연구가 일종의 기술이며 공증력이 필요한만큼 그것을 배울 것.
 셋째, 그림 형제의 사진과 함께 중세 문학을 탐독할 것.
 넷째. 덴마크어를 배울 것.
 다섯째. 러시아어를 계속 읽어서 가끔 러시아 작품을 번역할 것.
 여섯째, 프랑스어를 읽고 번역할 것.
 나는 이런 계획을 코펜하겐에 가서 실행에 옮겨 보려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첫째, 내가 그 나라의 말을 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나라에 가서 강의를 듣는다는 게 무의미하며 도서관이나 실험실의 이용이 거추장스럽다면 계획에 차질이 오리라는 생각.
 둘째, 코펜하겐은 너무 큰 도시여서 건강을 해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여기에서 생각한 것은 내가 바라는 바를 시작하는 데에는 비교적 규모가 조그만한 독일의 대학가가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옳으리라 생각됩니다. 대도시는 싫습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베를린은 싫습니다. 대도시 중에서도 그래도 가장 호감이 가는 뮌헨도 여러가지 점으로 미루어 보아 내게는 부적합니다. 물론 도시 쪽을 택하는 것이 홀로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대신에 조언이나 조력자가 필요할 때 문제가 됩니다. 게다가 일반 학생들에 비해서는 나이가 먹었으므로 학생 단체같은 것이 잘 되어가고 있는 조그만 단과대학 같은 곳에서는 언제나 고립해서 지낼 수가 있습니다. 당신에게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나는 지금 자연과학에 관한 훌륭한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역사 연습에 참여할 수가 있으며 도서관같은 공공시설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독일의 조그마한 대학 도시를 물색중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첫째로 그곳이 지나치게 서생풍(書生楓)의 관습이 깃든 곳이 아니어야 하며, 둘째로 시골이 가까와 주거비가 적게 들고 가능하다면 값싸게 야채류를 구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선 고려에 넣어야 할 실제적인 사정이라 생각됩니다.
 루, 이번에는 충고를 부탁드립니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의 계획 가운데서 괜찮은 것이 어떤 점인지 제발 충고를 부탁드립니다. 만약 내가 찾는 곳이 괴팅겐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솔직히 말해줄 것이기에 묻습니다. 그리고 어떤 곳이 선정되든 그 곳은 푸른 숲 속에 자리잡은 당신의 집으로부터 반나절 정도의 여행길쯤 떨어진 곳이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당신의 남편에게도 충고 부탁합니다. 우선 나의 계획이 쓸만하고 장소 문제에 의견이 일치되면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켜 주는 일을 당신과 당신의 남편에게 부탁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게는 생소하고 어렵게 여겨지는 많은 것들을 보다 용이하게 해줄 것이며 다른 학생들이 거둘 수 있는 성과보다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보다 밀접한 인간관계를 갖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학식이 넘쳐 흐르는 사람이 있어 그에게 직접 질문을 한다면 보다 생생한 지식이 흘러 들어오고 뜻하지 않은 고무를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런 특전이 당장에 베풀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걸어갈 길을 계속 걸어갈 작정입니다.
 혹시 당신은 나의 계획을 실현시킬 곳으로 외국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스의스의 쥬리히가 생각납니다. 그곳은 당신이 공부하던 곳이며 기억이 틀림없다면 베레르가 거기서 강좌를 맡고 있어서 사람들을 소개해줄 것이고 알맞는 주거를 찾을 수 있으며 다른 곳보다 값싸고 손쉽게 생필품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혹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거기에는 러시아인들과 그밖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몰려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게를 더해줄 것이며 그 곳의 맑은 공기는 바람에 시달린 내게는 좋은 변화가 되리라 여겨집니다. 아니면 바아젤은 어떨까요?
 그렇다면 제일 먼저 말씀드렸던 코펜하겐이 그 다음의 적지(適地)가 되겠군요. 거기에서 나는 서서히 야콥센 연구로 옮겨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연구는 무엇보다 기초작업을 기본으로 하여 정성스럽게 조립된 것이어야 합니다. 논문을 위해서는 따라서 준비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 코펜하겐에서 나의 저서가 논의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사실입니다. 엘렌 케이가 나의 작품에 관한 것만을 쓴 강연원고를 들고 스톡홀름과 코펜하겐, 그밖의 나로서는 잘 모르는 수웨덴의 여러 도시를 순방하는 중입니다. 나를 위해서 그녀는 나의 일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녀가 얼마전 편지로 알려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합니다. 물론 나를 위해서 그녀가 동분서주한 덕택이지만 그녀는 거기에 만족치 않고 강연의 결과로 얻어진 초록을 스웨덴의 잡지(번역하여)와 독일의 잡지에 발표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나와 아내, 그리고 딸, 루트에 있어서까지 없어서는 안될 친절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조언과 도움을 충심으로 감사하면서도 그것이 너무 과분하다고 느껴집니다. 그녀가 하는 일을 생각할 때 솔직히 말해서 진땀이 흐릅니다. 실제로 별다른 호의를 갖지 않은 눈으로 본다면 나는 아직 아무 일도 한 것이 없으며 내놓을 것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느님 이야기>와 <형상 시집>에 대해 그녀는 좋게 말해준 터이지만 모든 것을 지나치게 순수한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사람들이 나의 세계는 이미 완성된 것이란 인상을 받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나의 세계는 아직 미완성의 단계여서 나의 저서를 사는 사람들이 기만당했다는 느낌을 받겠지요. 그리고 그녀는 지난 수년간의 내가 보낸 편지를 근거로 하여 나의 작품에서 귀결되지 않은 것들을 찾아 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활을 지탱해주며 나로 하여금 일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그 가능성을 연장시켜 주는 것들을 나는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나의 이름이 거론되고 알려진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이것이 주의깊고 섬세한 사람의 입을 통해서 일어난 일이기에, 지나치게 빠른 감이 없지는 않으나, 그다지 결과가 나빠지지는 않겠지요.
 하여간 이런 시기에 스웨덴의 각지에서 이미 나를 알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게 명백해졌으며 그들이 나의 시를 즐겨 읽는다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스웨덴의 젊은 학자 한 사람은 엘렌 케이의 계획과는 전혀 별도로 나의 작품에 대한 자료를 수집중이라는 것도 밝혀졌습니다.
 아시겠지만 나의 작품을 출판하는 출판업자들은 일이 이런 식으로 발전되기를 바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이야기>의 신판 (이것은 곧 나올 예정입니다)과 <로댕>(이것은 가을에 나옵니다) 이외에는 재판을 찍을 계획이 없기 때문에 내게는 멀리 나돌아 다닐 재력이 없습니다. 때문에 우선은 이 곳 로마의 조그마한 우거에서 머물면서 서서히 답답증과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되어 무언가 유용한 일을 시작해 볼 작정입니다.
 지금 뇌우가 가까와지고 산들바람이 불어와 다시 한번 허약한 몸을 이겨내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전부터 라뵈로에 가볼 생각을 해왔는데, 이 기회에 나폴리와 폼베이와 남쪽의 푸른 바다를 보고 6월이나 7월에 여기가 견딜 수 없어지면 성 프란시스의 영원한 축복이 깃든 아씨시로 주거를 옮겨볼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아씨시에 산다 해도, 2,3주간의 체재에 불과하겠지요. 싫든 좋든 열병이나 여러가지 위험을 무릎쓰고 여름을 여기에서 견뎌낸다는 일은 한 겨울을 더 로마에서 체재할 경우에만 그 의미가 더해집니다. 다음으로는 독일에도 가게 되겠지요. 도망길이 될 법도 합니다. 이 경우 독일을 거쳐 가게 될 것입니다. 물론 독일에는 나를 불러주는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오버 노이란트에 살고 있는 딸,  루트에게도 여러가지 이유로 갈 수 없는 탓입니다. 그러나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전람회를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전람회에는 로댕이 60점의 작품을, 이그나즈가 19점의 작품을 출품했는데, 이그나즈의 예술은 내게는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계획이 어떻게 정해지든 7월이나 8월에는 틀림없이 뒤셀도르프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는 쾨팅겐이 가깝기 때무에 하루쯤은 당신을 뵙고 당신의 집과 뜰에 인사를 드릴 것이며 이처럼 장문의 편지에서도 못다 쓴 여러가지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여 아무 쓸데없는 나의 한 여름은 가장 사랑스럽고 은밀한 가치를 얻게 될 터이므로 지금부터 이 기쁨이 힘이 되어 모든 것을 향한 용기가 백배됩니다.
 그러나 혹 당신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 그 곳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돌연 러시아로 떠나 나의 질문이나 부탁이 미치지 못할만큼 멀리 떨어지게 될까 언제나 걱정입니다.
 루, 만약 이 여름에 만날 수가 있다면 제발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먼 곳을 내다보아도 나를 믿게 하고 도와주려는 어떤 구체적인 확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틀에 걸쳐 쓴 이 편지가 여러가지로 부당한 것을 요구하였으나 너그럽게 보아주십시오. 이것을 쓰는 것이 내게는 대단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몇 주일에 걸친 경직된 마음이 풀리는 그런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스치거나 부닥치면 일시 생명할동을 정지하는 이러한 경직상태에 빠지는 갑충이나 곤충류가 생각납니다. 그들은 크나큰 위험이 다가올 때 자신을 보존키 위해 그렇게 합니다. 내 경우에도 그런 원인이 있는게 아닐까요. 나의 마음 깊숙히 들어와 마음의 창문 앞에 와 있는 경직상태나 정체상태는 어쩌면 본능적인 자기 방어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믿음으로 시간을 재지않고 이 상태가 지나도록 기다릴 작정이며 그 다음에 일을 하겠습니다. 아직 무엇 하나 완성된 일이 없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제가 그리스도 승천제였기에 성령강림제가 머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는 당신 뜰의 봄은 이미 온갖 위험을 넘어서서 자신을 갖고 기쁨만으로 충만되겠지요. 정원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좋은 축제일과 하루하루가 충만되기를 바랍니다. 남편되는 분에게 안부 전해 주시고 틈이 나시는 대로 나의 계획과 바램에 대해 그분과 당신의 의사를 알려 주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계속하겠습니다. 여러가지로 고맙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역주: 릴케보다 13년이나 연상이었던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는 러시아 장군이었던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녀로서 릴케와 친교가 있기 전에 이미 니이체의 애인이자 조수이기도 했다. 그녀는 서아시아 어학교수인 F. 카알 안드레아스와 결혼을 한 부인이었으므로 이 편지에 등장하는 그녀의 남편은 바로 이 교수이다. 살로메는 뒷날 <생애의 회고록>에서 자신은 릴케의 아내였다고 중대한 고백을 할 정도로 릴케와 살로메의 친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릴케는 그녀와 더불어 두 번에 걸친 여행을 했으며 거기에서 톨스토이를 방문했고 광막한 러시아의 평원과 러시아 농민들에게서 중세적인 신비주의와 범신론적인 종교를 체험하게 된다.

쿠사벨 모오스에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폰 모오스 씨, 당신의 편지가 멀리 길을 돌고 돌아서 이제야 겨우 내 손에 닿았습니다. 물론 편지가 이렇게 늦게 닿은 것은 이 쪽의 책임은 아니나, 편지를 읽고 그 회답을 조금이라도 늦춘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라 생각되어 서둘러 답장을 씁니다.
 우선 당신의 시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이 시들은 나를 경탄과 기쁨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보내주신 4편의 시들은 그 가운데서 어느 특정한 한 편을 내세울 수 없도록 똑같이 훌륭합니다. 여하튼 시는 모두가 균형이 잡혔으며 순수하고 속임수가 없습니다. 만약 보내주신 필사본을 내가 계속 보관해도 좋다면 앞으로도 되풀이해서 읽겠으나 아무래도 내가 시에서 받은 최초의 인상이 결국은 정당하리란 확신이 듭니다. 미리 알려 드리고 싶은 사실은 나는 이러한 젊은이의 투서에 찬성합니다. 그것이 그리 빈번히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더욱 기쁜 일입니다.
 만약에 내가 베르하렌이라면 행복하다고 썼을 것입니다. 그 분은 어디에서나 수작(秀作)을 찾아낼 때는 행복했었습니다. 남에게 감동을 베풀거나 남에게서 감동을 받거나 하는 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젊은 예술가의 정신이나 힘이 부정할 수 없을 만큼 확실히 눈 앞에 나타나고 비록 그것이 한 행의 싯귀라도 순수한 존재로서 지탱되어 있다면 그 분은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때, 그의 확신은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것으로서 그분은 혼신의 힘과 의식(意識)으로 주장합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의 신뢰와 격려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힘을 미칠 수있을런지 상상해 보십시오.
 나는 행복하게도 그 분과 가까이 지내던 몇 년 동안 그의 신뢰와 격려를 아낌없이 받은 몸입니다. 그 분에게는 나의 언어는 닫혀진 것이어서 그 분이 나의 작품을 진실로 안 것은 아니었으나 나의 일을 믿고 내 마음 속의 일을 힘찬 성정(性情)으로 지지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일이 참되고 필연적인 것이라 믿어주어 처음부터 나를 그렇게 대우해 준 사실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중요했습니다. 나는 이 위대한 벗으로부터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지지는 내가 남성간의 우정이라는 것을 비교적 늦게야 알게 된 만큼 내 마음속에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그와의 우정과 로댕과의 사귐은 내게는 끝을 모를 만큼 감동을 준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두사람의 영향이 나의 마음 속에서 만들어 내고 물을 뿌려준 그 전체를 내가 아직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점이 유감이라면 유감이라 하겠습니다.
 베른하렌에 대한 저의 예찬은 우리들의 교제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의 일이었습니다. 거의 12년간에 걸친 빠리 체재기간 가운데서 최초의 몇 년 동안 그 분의 초기 작품에 심취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에 그 분이 직접 내게 건네준 <찬란한 광휘>를 접했을 때, 이미 나의 마음 밑바닥에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들은 종종 만났습니다. 물론 아무리 자주 만난다고 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는 만남이었습니다. 그 분은 매년 겨울을 빠리의 교외에서 살았는데 외출하는 경우 훌쩍 나를 찾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때는 언제나 내게는 더할 수 없는 좋은 때여서 그의 마음의 움직임 하나 하나가 내게 크나큰 힘으로 돌진해오곤 했습니다. 빠리에서의 내 생활은 언제나 고독한 것이어서 이 쪽에서 그를 찾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가 사는 집에 닿아 고풍스러운 요령줄을 잡아 당기고 그 집의 문지방을 넘는 순간, 나는 언제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분의 반김이 너무나 크고 솔직하고 완전한 것이었기에 그것과 균형을 잡은 것만으로도 이쪽으로서는 원객이요 진객이란 느낌을 갖게해 주었습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은 에밀 베른하렌의 작품을 사랑하고 그것을 상세히 연구하시고 계시므로 그의 작품을 열심히 독일어로 변역하고 있는 슈테판쯔바이크가 자신과 베른하렌과의 관계와 교류에 대해 한 권의 책으로 묶으려 시도한 사실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은 아직 나의 손에 없습니다. 그러나 폰 슈베일르씨의 소저(小著)는 아직 모르실 것이기에 동봉하오니 필요할 때 돌려주십시오. 이 작품에는 대전(大戰)의 비통과 흥분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쓰여졌을 때는 이미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른하렌이 이미 타계한 것입니다.
 이 편지가 당신이 하는 강연에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 위대한 시인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이 있으면 보여주십시오.


                                   당신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내며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에밀 베른하렌(1855~1916): 벨기에의 대표적인 시인.

모으스에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스 뮈조트 성에서  1921년 12월 12일


 바쁜 일로 나의 편지에 대한 당신의 친절하신 답장에 대하여 오늘에야 겨우 감사의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시 같은 것을 등기로 보낸 것은 극히 드문 일로 이 영역에서 완성에 이르려는 당신의 희망에 대해서는 나는 절대로 실망을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침체된 시대에 당신의 이러한 자세를 보이고 계시다는 사실에 오히려 기쁘게 생각됩니다. 어떤 일정한 직업을 갖는다는 일은 당신이라면 그 때가 왔을 때 이미 그에 대한 준비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책임을 질 수가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당신에 대한 나의 신뢰가 이런 의미로 확고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직업을 가지면서 시들 쓴다는 것, 그러한 선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말라르메의 경우도, 발레리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발레리는 약 20년간을 입을 다물고 수학(數學)을 연구했을 뿐만이 아니라 관리직에도 봉직했었지만, 그의 시문이 그토록 간결하고 침착한 것은 이 참을성스러운 절제가 있었던 덕택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아버지가 예술을 천직으로 여기더라도 사관직이나 법률가로서의 직업을 함께 갖도록 하라고 요구했을 때, 나는 물론 거기에 끈질기게 저항하였습니다. 그것은 모두 오스트리아의 사정과 내가 자라온 비좁고 답답한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과 전세기(前世紀) 1880년대의 토박한 분위기에서 예술적으로 어떤 결정적인 일을 해내기에는 분열된 힘으로서는 뷸가능한 까닭이었습니다. 실제로 나는 가족이나 고향이 주는 제약에서 벗어나 뒤늦게 선택한 고향에서 겨우 자신의 피의 진함을 시험할 수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후로 많은 것이 변하여 예술의 길에도 여러가지 방해물이 제거되고 호흡할 공기도 일할 장소도 그것을 절실하게 필요로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베풀어졌습니다. 적어도 대전(大戰)이 있기 이전에는 그러했습니다.
 나 자신이 흔적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매일 깨끗하고 산뜻하게 수행할 수가 있는 직업을 갖지 못했던 일을 종종 후회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자신을 예술가라는 준엄한 요구와 일치시키기 이전에 이런 관계에 폭넓게 숙달되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새해가 진보와 성취의 해가 되기를 빕니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추신:베른하렌의 번역의 교정본을 그대로 갖고 계십시오, 모두 당신에게 드리려던 것들입니다.

해르만 풍크스 교수에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뮈조트 성에서    1924년 8월 17일


 ----이제는 지난 번의 편지와 당신의 질문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편지에 대한 답장에 손을 댈 때마다 유감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두 사람에게 다같이 힘드는, 편지를 통해 주고 받는 이러한 대화 대신에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자리를 함께 하여 직접 대화를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입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면밀한 흥미가 귀찮다는 게 아니라 고통스럽고 억압당하여 지녔던 그 몇년간의 세월이 문제가 되는 까닭입니다. 게다가 나의 기억력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물론 억압의 그 수년간이 문제가 안된다면 나의 기억력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겠습니다만 여하간 그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다는 것 자체가 불유쾌합니다.
 당신이 내게 전기적(傳記的)인 사실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러나 나 자신의 초기 작품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혐오감을 갖고 있는가를 알아주시게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전기적인 사실을 조금은 언급해야겠습니다.
 17세 때 나는 인생이나 내가 실현하려는 일에 대해 너무나 부주의했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받은 5년의 훈련생활은 결국 몸과 마음에 다같이 불합리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으므로 중도에 끝내야 했습니다. 그다음 1년은 건강 때문에 또한 무위로 흘러갔습니다. 결국 육군유년학교를 졸업한 뒤에 입학했던 바이스커르텐에 있는 육균사관학교는 사회적 평판은 무척 좋은 곳이었으나 내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 지방의 풍토조차 나의 몸에는 견디기 어려웠으므로 마지막 1년반 동안은 거기에서 행해지고 있는 편협하고 천박한 교육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 엄격한 학교에서는 실로 용의주도하게 소년을 속박했기 때문에 나는 나이에 맞고 자양분이 되었을 책의 세계도 몰랐으며 삶 속에 들어와 영향을 미치는 현실의 조그마한 단편조차 몰랐습니다.
 프라하의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우선 한없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해방으로 여겨졌으나 실제 그 결과는 낭패와 혼란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어디에 몸을 바치려하는가가 명백하여질수록 점점 심해갔습니다. 어쩌면 장교라는 직업이 내게는 가장 부적당한 직업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한없이 요구되어야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직업이라 생각하는 그 모든 것과는 조금도 걸맞지 않는 천직을 자각했기에 감히 어떻게 아버지의 승낙을 받겠다 하겠습니까.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겨우 인문학교로 나가는 과업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만 열살짜리들과 인문학교의 초년기를 함께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개인교수가 따르게 되고 나 역시 대단한 각오로 임했으므로 라틴어 학교의 처음 6학기를 1년으로 끝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2학기는 서두르지 않고 다른 학생들과 보조를 맞추었고 보통의 학교 과정을 거친 학생들에 비해 별로 늦지 않게 고등학교 졸업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숨쉴 수 없을 정도로 막혀 있던 그 몇 년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왕성한 창조력이 솟아난 시기였습니다. 지나치게 일찍 발표한 나의 시작(詩作)들과 즉흥시들이 모두 그 시기의 것들인데, 뒷날 나는 그것들을 발표하지 말고 그냥 서랍에 넣어두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온작 수단을 다하여 그것을 무리하게 밀어낸 어리석은 짓을 감행한 것은 주위의 반대에 대한 나의 권리를 주장하고 싶다는 성급한 소원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절, 나는 이 세상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들을 찾으려 했고 실제 프라하에서도 그런 손들을 찾아내기도 했습니다만 가장 힘찬 손은 멀리 북쪽으로부터 뻗어왔습니다.
 제일 처음 나를 고무해 주고 나로 하여금 비교적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해준 사람은 시인, 데오도르 폰 밀리엔크론이었습니다. 나는 아무리해도 그 사람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가 편지에서 <르네 마리아씨>라고 정중하게 수취인의 이름을 밝혀줄 때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미래를 지시해 주는 가장 확실한 신뢰라고 생각하였고 어떻게하든지 이 확신을 가족들에게도 심어 주려 했습니다.
  여하간 밀리엔크론의 시적 영향이 내게 대단히 강렬하게 나타났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미숙하기 짝없는 나에게 야콥센이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데 있는 것에서 무한히 먼 곳으로 뛰어들 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비약에 의해 나는 깊어지고 넓어져서 불가사의한 자신을 경험할 수가 있었는데, 그런 경험은 그 어떤 칭찬보다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야콥센에 관한 한은 뒷날에도 오랜 세월을 두고 글로 다할 수 없는 것을 그에게서 체득하였으므로 바로 그 몇 년간에 그에게 받은 것만을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빠리 시절에 이르기까지 그는 나의 정신의 반려자로서 항상 마음 속에 살아 있었습니다.
 그가 이미 타게계여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견딜 수 없이 애석스럽게 여겨졌으나 그를 알았다는 기연이 고인에 대한 자유롭고 솔직한 마음을 키워 주었습니다. 후에 야콥센의 고향이나 스웨덴에서 받은 감화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의 <시인, 닐스니네>는 마리아 폰 보르히의 번역판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만 이 번역은 내가 덴마크어를 얼마간 읽을 수 있게 된 후에도 제일 좋아하던 것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뮌헨 시절에는 흐프만스타일과 슈테판 게오르게를 알게 되었고 당신이 알고 계시는 러시아의 영향은 미래로 향하게 하는 준비를 갖추어 주었습니다.
 <기병>은 어느 가을 밤의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로서 밤바람에 흔들거리는 두 자루의 촛불 밑에서 단숨에 쓰여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노래>와 <처녀의 노래>는 토스카나의 프로렌스에서 얻은 선물입니다.
 만약 이 노래들이 키워진 종교적인 밑바탕에 대하여 여기에서 밝히자고 한다면 훨씬 그 이전의 일부터 상세하게 이야기해야만 될 것입니다. 종교적 감흥이 최고조에 달했던 곳이 그 가혹했던 육군사관학교였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내게 요구되었던 너무나 큰 고독이 나로 하여금 신과의 교류를 무분별하게 이용하도록 했던 까닭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먼저의 편지도 함께 동봉합니다. 회답이 충분치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라도 주저치 말고 계속 요구하십시오.  다음 번에는 조금은 더 잘 알려드릴 수 있겠지요. 다음에는 질문 옆에다 대답을 써 넣을 여백을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이 방법은 최근 폴란드에 사는 나의 작품을 번역하는 어느 번역자와의 교신으로 아주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당신과의 교신에도 이것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단언합니다만 나는 당신의 견해이든 그때그때의 추측이든 흔쾌하게 따르겠습니다. 물론 나는 나 자신의 작품을 논한 비평은 절대로 읽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지만 당신의 경우처럼 신뢰할만한 견해엔 원칙을 고수할 수는 없습니다.
 제게 그토록 주의를 돌려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R.M. 릴케 
 추신: 방금 당신의 펀지 끝에 추서가 있음을 알았으나 유감스럽게도 <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시는 어떻게하여
          쓰여졌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데오도르 릴리엔크론: 독일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헤르만 풍크스 교수에게(2)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뮈조트 성에서     1924년 10월 2일




---- 톨스토이를 방문한 일이 당시 나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면 잘못된 생각이겠지요.  그는 내게 있어서는 실로 결정적이었던 러시아의 발견을 보증해준 데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모습은 내게는 오해의 화신이었습니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번뇌하는 한 사람이 멋대로 선정한 부당함을 내게도 또 다른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가하려 준비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은 자신의 가장 위대한 사명에 배반한다는 점에서 역시 정당하다는 인상을 주었고 그로 인해 내게는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일생을 예술에 바치겠다고 결심한 나로서는 모순 투성이의 이 노인을 그렇게 밖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인은 마음속에서 가장 신성한 의미로 자신에게 과하여진 과업을 끊임없이 억압하고 스스로 부정하는 자신의 예술적인 기질 속에서 용솟음치는 온갖 위대한 힘을 힘겨워 했습니다. 일생을 이 힘을 염려하여 창조력이 쇠약해지거나 멈추어지는 것을 숨기려고 애쓰는 유럽사람들 위에 이 노인은 순수하게 서 있는 것입니다. 그의 도덕적인 순진성은 조금도 나의 마음을 끌지 못했습니다. 두번째의 러시아 여행 직전에 나는 그의 <예술론>을 손에 넣었으나 쓸데없는 짓이었습니다. 그와의 만남은 그가 그를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려고 겨냥한 것 같은 그 책자의 본래의 의도와는 전혀 정반대의 것을 나의 마음에 심어주었을 뿐입니다.
 그의 자의적인 자기부정과 체하지 않는 태도에서도 나는 그의 예술가적 기질이 남몰래 숨겨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생활을 직접 대하면서 나의 마음에는 예술에 정진한다는 것은 올바른 일이며 그것을 천직으로 삼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라는 생각이 더욱 생생하게 새겨질 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에 갖게된 로댕과의 해후, 그리고 그 로댕과의 수년간에 걸친 교제, 이런 것이 다시 예술에 대한 나의 관념을 강화시켜 주었으며 또한 그러한 생각이 아무래도 정당하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로댕과의 관계에 대한 당신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야 되겠습니다. 당신의 질문대로 일종의 고용관계라는 의미로서는 나는 절대 로댕과 함게 있지는 않았습니다. 1902년 빠리 체재 당시에 리하르트 뮈다가 나한테 로댕에 관한 글을 쓰라는 제의를 했었습니다. 나는 아직 조형미술의 그 본질적 가치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시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나 처가 로댕의 제자로 있는 한은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를 통해 나의 마음에 어떤 방향변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술작품을 구성면에서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고 형성을 통해 예술작품의 그 내용을 파악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내가 빠리로 왔을 때는 그의 작품은 룩셈부르크 박물관의 새 소작품 가운데 들어있는 몇 점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아직 로댕이 직접 소장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종종 그가 살고 있는 뮈똥을 찾았고 마침내 그 방문이 나날의 일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활발하게 이어진 우리들의 대화에서 이미 참된 관계가 성립되었습니다. 나로서는 그에 대한 외경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고 그러한 나의 감정에 대하여 이 거장으로부터는 즉각 응답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이미 그 해의 연말에는 로댕의 그 해답을 나는 우정으로 부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내가 여행길에 올라 그와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내게 관심을 보여오는 로댕의 말이 종종 나 자신을 무장시켜 주었습니다. 1905년의 일이었습니다. 내가 스웨덴의 어느 조그만 고성에 우거하고 있을 때,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각지에서 나에게 로댕에 관한 강연을 해 달라는 청탁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끊임없이 계속 성장하고 있는 작품에 접하지 않고는 사람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로댕의 양해을 얻어서 예정보다 일찍 빠리로 돌아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뒤똥에서 만날 수 있겠는가를 확인했더니 로댕이 괜찮다는 회답을 보내왔을 뿐 아니라 이번에는 그의 집에 머물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함게 보내 왔습니다.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한 직후로 생각됩니다만, 다시 로댕의 비서에게서 전보가 왔습니다. 그 권유를 되풀이하는 내용의 전보로서 로댕이 간절한 대화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결국 그 권유에 따르기로 하였고 이것으로 <참으로 로댕과 함께 있었던> 5개월이라는 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손님으로서 그의 집에 묵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에 나는 나 자신의 일인 <로댕론>의 제2부를 끝냈습니다. 그러나 그후 무엇인가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이런 후대를 계속 받아드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여가를 틈타서 그에게로 배달되어 오는 수많은 편지들에 대한 회답을 쓰는 일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물론 로댕을 대신하여 쓴 그 편지들은 결코 자랑거리가 못됩니다. 급한 것을 모르는 나의 펜은 이런 경우 별로 유능한 것은 아니었으나. 얼마 뒤에는 도저히 그 일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들의 격의없는 유쾌한 대화 대신에 편지를 써야 한다는 무담감과 촉박한 시간이 우리들의 관계를 본래의 의미에서 삐뚤어지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다음 해 5월에는 완전히 홀가분한 마음으로 빠리로 돌아왔고 불유쾌하게 옮겨졌던 로댕과의 관계는 다시 이전의 하상(河床)으로 돌아가 몇 년 동안 혹은 강하게 혹은 약하게 흐르며 그 하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당신의 질문으로 미루어 당신이 소위 내가 받은 <영향>을 찾고 있는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나는 이 위대한 조각가의 직접적인 영향이 문학에서 받은 영향을 훨씬 능가했으므로 다른 영향들은 거의 무력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해 주고 싶습니다. 우리들은 마침 알맞은 시기에 만났습니다. 나로서는 마음을 정하는 시기가 무르익어 갈 때였고 로댕으로서는 숙련을 거듭한 그의 에술을 일체의 것에 응용할 시기가 도래한 때였으니 말입니다. 로댕에게서는 톨스토이에게서 인식한 것과는 반대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에서는 형성의 천재가 내심에 깃드는 신과 같은 무한한 기쁨을 긍정하고 거기에서 얻어진 인식에 의해 묶여서 잡을 수가 없었던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그에게로 몸을 바쳐오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가장 높은 것을 생각하는 예술가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단순한 직업인에 있어서도 자긴의 일의 그 근본을 연구하고 그 핵심을 파악하기만 하면 그렇게 되는 모양입니다. 작품 속에서 얻어지는 강도(强度)가 이것과 맞먹는 강도로 상응하는 현존하는 모든 것이나 과거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직업인의 놀랄만한 지혜가 나오고 목자의 기질 속에 있는 위대한 혼이 나옵니다.
 ---시가 어떻게 하여 태어났는가, 그 원인을 찾는 일은 곤란한 경우에 부닥치기 마련입니다. 당신은 <흰 옷을 입은 후작부인>을 묻고 계신데, 이 시의 동기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비아렛지요에서 나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정원이 딸린 어느 큰 별장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오후의 일이었습니다. 교단(敎團)을 위해 희사금을 모으는 어떤 수도승이 하얀 승모(僧帽)를 깊숙히 내려 쓰고 그 정원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아무리 보아도 집안으로 들어오려는 기색은 없이 자기의 모습이 남의 눈에 뜨이기를 기대하는 듯 약간 떨어져서 정원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높은 창에 기대어 서 있는 나를 보았는지 모르나 나는 얼굴을 완전히 가린 이 기분 나쁜 미지의 객이 이 쪽의 조그마한 움직임이라도 그것을 신호로 알고 들어올런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리고 공포 때문에 나는 묘한 마비상태에 빠져서 완전히 굳어버렸습니다. 같은 날 밤에 <때문에 나는 그 날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집의 사냥개가 죽었습니다. 다름 날 아침, 그렇게 나를 따르고 좋아하던 그 개가 무한한 생각에 잠겨 긴 얼굴을 벽을 향해 돌리고 죽어있는 것을 나는 발견했습니다.
이런 동기에서 해방이 되었다고나 말할까요, 그 때부터 1년 뒤에 <흰 옷을 입은 후작부인>이라는 시가 나왔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당신의 표현대로 우리를 시인이란 사람들은 아무래도 기묘하게 만들어진 존재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이름을 칭찬해준 당신의 네살 짜리 아드님에게 안부 부탁드립니다.
                                                                              R.M.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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