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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 지성사, 2003
2019년 01월 09일 15시 16분  조회:1650  추천:0  작성자: 강려
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 지성사, 2003 
 
 
 
 
독자에게 
 
어리석음, 과오, 죄악과 인색에 
정신을 얽매이고 몸은 들볶이니, 
우리는 친숙한 뉘우침만 키운다, 
거지들이 몸에 이를 기르듯. 
 
우리의 죄는 끈질긴데 후회는 느슨하다 ; 
우리는 참회의 값을 톡톡히 받고 
가뿐하게 진창길로 되돌아온다, 
비열한 눈물에 때가 말끔히 씻긴다고 믿으며. 
 
악의 베갯머리엔 <사탄 트리스메지스트> 
홀린 우리 넋을 슬슬 흔들어 재우니, 
의지라는 우리의 귀금속도 
이 능숙한 화학자 손엔 모조리 증발한다. 
 
우리를 조종하는 줄을 쥐고 있는 건 저 <악마>! 
우리는 역겨운 것에 마음이 끌려 
날마다 <지옥>을 향해 한 걸음씩 내려간다, 
겁도 없이 악취 풍기는 어둠을 지나. 
 
늙은 갈보의 학대받은 젖퉁이를 
핥고 물어뜯는 가난한 난봉꾼처럼 
남몰래 맛보는 쾌락 어디서나 훔쳐 
말라빠진 귤인 양 죽어라 쥐어짠다. 
 
우리 머릿골 속에선 수백만 기생충처럼 
<마귀>..떼가 빽빽이 우글거리며 흥청대고, 
숨쉬면 <죽음>이 숨죽인 신음 소리 내며 
보이지 않는 강물 되어 허파 속으로 흘러내린다. 
 
강간과 독약이, 비수와 방화가 
비참한 우리 운명의 초라한 캔버스를 
그들의 짓궂은 구상으로 아직 수놓지 않았다면, 
아! 그건 우리의 넋이 그만큼 대담하지 못하기 때문! 
 
그러나 승냥이, 표범, 암 사냥개 
원숭이, 전갈, 독수리, 뱀, 
우리 악의 더러운 가축 우리에서 
짖어대고 악쓰고 으르렁거리고 기어다니는 괴물들 중에서 
 
제일 흉하고 악랄하고 추잡한 놈 있으니! 
놈은 야단스런 몸짓도 큰 소리도 없지만 
지구를 거뜬히 박살내고 
하품 한 번으로 온 세계인들 집어삼키리 ; 
그놈은 바로 <권태>!- 눈에는 무심코 흘린 눈물 고인 채 
담뱃대 빨아대며 단두대를 꿈꾼다. 
그대는 안다,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자 독자여, -내 동류, -내 형제여! 
 
 
 
 
 
 
축복 
 
전능하신 하느님의 점지를 받아 
<시인>이 따분한 이 세상에 나타날 때, 
그의 어머니는 질겁하고 신을 모독하는 마음 가득하여 
측은해하는 <하느님>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쥔다 : 
 
-“아! 이 조롱거리를 기르니느 
차라리 독사 한 뭉치를 몽땅 낳고 말 것을! 
내 뱃속에 속죄의 씨앗을 배버린 
덧없는 쾌락의 그 밤이 저주스럽다! 
 
내 초라한 남편의 미움거리로 
당신은 수많은 여자 중에 나를 골랐으니, 
그리고 연애 편지 던지듯 불꽃 속에 
이 오그라진 괴물을 내던질 수도 없으니. 
 
당신의 심술로 저주받은 이 연장 위에 
나를 짓누르는 당신의 증오를 퉁겨 보내고, 
독 있는 새싹이 피어내지 못하게 
이 역겨운 나무를 마구 비틀어놓으리!” 
 
그녀는 이렇게 원한의 거품을 삼키며, 
영원한 섭리도 알지 못하고, 
저 스스로 <게헤나> 계곡 밑에 
어미의 죗값에 바쳐질 화형의 장작을 쌓는다. 
 
허나 <;천사>의 보이지 않는 보살핌 아래 
이 불우한 <아이>는 햇볕에 취하고, 
마시고 먹는 모든 것에서 
신들의 양식과 주홍빛 신주를 찾아낸다. 
 
그는 바람과 놀고 구름과 이야기하고 
십자가의 길에 노래하며 취하니, 
그의 순례의 길을 따르는 <정령>은 
숲속의 새처럼 즐거운 그를 보고 눈물짓는다. 
 
그가 사랑하려는 이들은 모두 두려워 그를 지켜보고, 
아니면 그의 평온함에 대담해져, 
그에게서 탄식을 끌어내려 하고, 
자신들의 잔인함을 그에게 시험해본다. 
 
그의 입에 들어갈 빵과 술에 
더러운 가래와 재를 섞어놓고, 
그가 만지는 것은 착한 척 내동댕이치고, 
그의 발자국을 밟았다고 자신을 나무란다. 
 
그의 아내는 광장에 나와 외쳐댄다 : 
“남편이 나를 미인으로 여겨 우러러보니, 
나는 고대의 우상 역을 해야겠다, 
그녀들처럼 나도 몸에 금칠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향과 향유, 미르, 
아첨과 고기와 술에 취하리라, 
나를 찬미하는 마음에서 신에 대한 신의 경의를 
웃으며 가로챌 수 있는지 보기 위하여! 
 
그리고 이 불경한 익살극에 싫증이 나면, 
그에게 내 가냘프고 질긴 손을 얹고 
하르푸이아 손톱 같은 내 손톱으로 
그의 심장까지 길을 뚫으리라. 
 
떨며 딸딱거리는 새 새끼 같은 
새빨간 심장을 그의 가슴에서 도려내어, 
내 귀여운 짐승 물리도록 먹으라고 
땅바닥에 픽 던져주리라!” 
 
그의 눈에 빛나는 옥좌 보이는 저 <하늘>을 향해 
고요한 <시인>은 경건한 두 팔을 들고, 
그의 맑은 정신은 번개처럼 멀리 번득여 
미쳐 날뛰는 무리들을 그에게 가려준다 : 
 
-축복받으시라, 하느님이시여, 당신이 준 괴로움은 
우리의 부정을 씻어주는 신성한 약, 
강한 자들을 거룩한 쾌락에 준비시켜주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순수한 정수! 
 
나는 압니다, 거룩한 <성군>의 축복받은 서열 속에 
당신께서 <시인>을 위해 한 자리 남겨두시고, 
옥좌 천사, 힘의 천사, 주 천사들의 
영원한 향연에 <시인>도 불러주신 것을. 
 
나는 압니다, 고뇌야말로 유일하게 고귀한 것임을, 
이승도 지옥도 이것만은 물어뜯지 못할 것임을, 
또 내 신비로운 왕관을 엮기 위해선 
모든 시대와 전 우주의 동원이 절대로 필요한 것임을. 
 
허나 옛날 팔미르가 잃어버린 보석도 
알려지지 않은 금속도, 바다의 진주도 
설령 당신의 손으로 꾸민다 해도, 
이 눈부시고 빛나는 아름아운 왕관엔 미치지 못하리 : 
 
왜냐면, 그것은 창세기의 거룩한 광원에서 퍼낸 
오로지 순수한 빛으로만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리고 인간의 눈은 제아무리 찬란하게 빛난들 
흐려지고 애처로운 그 빛의 거울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알바트로스 
 
흔히 뱃사람들이 재미 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잡는다, 
이 한가한 항해의 길동무는 
깊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가는 배를 따라간다. 
 
갑판 위에 일단 잡아놓기만 하면, 
이 창공의 왕자도 서툴고 수줍어 
가엾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처럼 옆구리에 질질 끄는구나. 
 
날개 달린 이 나그네, 얼마나 서툴고 기가 죽었는가! 
좀전만 해도 그렇게 멋있었던 것이, 어이 저리 우습고 흉한 꼴인가! 
어떤 사람은 파이프로 부리를 건드려 약올리고, 
어떤 사람은 절름절름 전에 하늘을 날던 병신을 흉내낸다!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를 닮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 야유 속에 내몰리니, 
그 거창한 날개도 걷는 데 방해가 될 뿐. 
 
 
 
 
 
상승 
 
숱한 못을 넘고, 골짜기 넘고 
산을, 숲을, 구름을, 바다를 넘어 
태양도 지나고, 창공도 지나, 
또다시 별 나라 끝도 지나, 
 
내 정신, 그대 민첩하게 움직여, 
파도 속에서 황홀한 능숙한 헤엄꾼처럼, 
말로 다할 수 없이 힘찬 쾌락을 맛보며 
깊고깊은 무한을 즐겁게 누비누나 
 
이 역한 독기로부터 멀리 달아나 
높은 대기 속에 그대 몸 씻어라, 
그리고 마셔라, 순수하고 신성한 술 마시듯, 
맑은 공간을 채우는 저 밝은 불을. 
 
안개 낀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권태와 끝없는 슬픔에 등을 돌리고, 
고요한 빛의 들판을 향해 힘찬 날개로 
날아갈 수 있는 자 행복하여라 ; 
 
그의 생각은 종달새처럼 이른 아침 
하늘을 향해 자유로이 날아올라, 
-삶 위를 떠돌며 꽃들과 말없는 사물들의 언어를 
힘들이지 않고 알아낸다! 
 
 
 
 
 
교감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 살아 있는 기둥들에서 
이따금씩 어렴풋한 말소리 새어나오고 ; 
인간이 그곳 상징의 숲을 지나가면, 
숲은 정다운 시선으로 그를 지켜본다. 
 
밤처럼 그리고 빛처럼 끝없이 넓고 
어둡고 깊은 통합 속에 
긴 메아리 멀리서 어우러지듯, 
향기와 색채와 소리 서로 화답한다. 
 
어린애 살결처럼 싱싱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럽고, 초원처럼 푸른 향기들이 있고, 
-또 다른, 썩었지만 기세등등한 풍요한 향기들이 있어.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으로 확산되어, 
정신과 관능의 환희를 노래한다. 
 
 
 
 
 
저 벌거숭이 시대의 추억을 나는 좋아한다 
 
페뷔스 신이 상像들에 금칠하기를 좋아하던 
벌거숭이 시대의 추억을 나는 좋아한다. 
그때엔 사내도 계집도 몸이 민첩하고, 
거짓도 근심도 없이 삶을 누렸고, 
다정한 하늘은 그들의 등을 어루만져 
그들 몸의 귀중한 기관의 건강을 단련시켜주었다. 
시벨 여신은 그때 풍성한 산물이 넘쳐 
많은 아들들이 조금도 버거운 짐이 되지 않았고 
어미 이리 골고루 애정 쏟듯, 
검붉은 젖꼭지로 만물을 적셨다. 
사내는 멋있고 건장하고 억세니, 
자신을 왕이라 부르는 미녀들에 우쭐할 수 있었고 ; 
티없이 깨끗하고 흠 없이 자란 과일들의 
그 매끈하고 단단한 살점은 물어뜯고 싶었다! 
 
오늘날 남녀의 벌거벗은 몸을 볼 수 있는 잘이ㅔ서 
옛날 저 자연스런 위대한 모습을 
<시인>이 마음속에 그려볼 때면, 
공포만을 자아내는 그 끔찍한 그림 앞에 
그의 넋은 음산한 오한에 휩싸이는 것을 느낀다. 
오, 옷을 아쉬워하는 괴물들! 
오, 꼴좋은 몸뚱이들! 오 탈을 씌워야 할 몸통들! 
오, 비틀어지고, 말라빠지고, 튀어나온 배와 혹은 축 처진 가엾는 몸뚱어리들, 
<실용의 신>이 매정하고 태연하게 
어렸을 때, 그의 청동 배내옷 속에 둘둘 감아둔 몸뚱어리들! 
그리고 아! 그대 여인들이여, 양초처럼 창백하고, 
방탕이 좀먹고, 방탕이 길러주는 그대들, 
그리고 그대 어미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악덕과 
다산의 온갖 추악함 끌고 다니는 처녀들이여! 
 
정녕 우리 타락한 민족들은 
옛 민족들이 모르는 미美를 가지고 있다 : 
가슴의 궤양에 좀먹힌 얼굴들과 
우울의 미美라고나 할 그런 것을, 
그러나 늦게 온 우리 뮤즈의 발명품도 
우리 병든 인종이 젊음에 바치는 
깊은 흠모를 막지 못하리, 
-성스러운 젊음, 순박한 모습, 다정한 이마 
흐르는 물처럼 맑고 깨끗한 눈동자, 
그 향기, 그 노래, 그 부드러운 열기를 
하늘의 푸름처럼, 새처럼, 꽃처럼 무심코 
모든 것 위에 널리 퍼트려주는 젊음에! 
 
 
 
 
 
등대들 
 
루벤스, 망각의 강, 나태의 정원, 
그곳에서 사랑하기엔 너무 싱싱한 살 베개, 
그러나 거기선 생명이 끊임없이 넘치고 용솟음친다, 
하늘에 바람처럼, 바다에 밀물처럼 ; 
 
레오나르도 다 빈치, 깊숙하고 어두운 거울, 
거기서 사랑스런 천사들, 신비 가득한 
다정한 미소지으며 그들의 나라 에워싼 
빙하와 소나무 그늘에 나타난다. 
 
렘브란트, 신음 소리 가득한 음산한 병원, 
장식이라고는 커다란 십자가 하나, 
눈물 섞인 기도가 오물에서 풍기고 
겨울 햇살 한 줄기 불쑥 스친다 ; 
 
미켈란젤로, 어렴풋한 곳,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헤라클레스 무리들과 그리스도 무리들이 어울리는 곳 
억센 유령들이 꼿꼿이 일어나 땅거미 어스름 속에서 
손가락 뻗쳐 저희들 수의를 찢는 모습 ; 
 
권투 선수의 분노도 목신의 뻔뻔함도 
천민들의 미美는 잘도 긁어모을 수 있었던 그대, 
자존심에 부푼 마음은 넉넉하나, 허약하고 누렇게 뜬 사나이, 
퓌제, 고역수들의 우울한 재앙 
 
와토, 수많은 병사들이 나비처럼 
번쩍이며 이리저리 거니는 사육제, 
샹들리에가 비춰주는 산뜻하고 경쾌한 배경은 
소용돌이치는 무도장에 광란을 퍼붓는다. 
 
고야, 낯선 것들로 가득한 악몽, 
마녀들 잔치 판에서 삶는 태아들이며 
거울 보는 늙은 여인들과 마귀 꾀려고 
양말을 바로잡는 발가숭이 아가씨들 ; 
 
들라크루아, 악천사들 드나드는 피의 호수, 
거긴 늘 푸른 전나무 숲으로 그늘지고, 
우울한 하늘 아래 기이한 군악대 소리 
베버의 가쁜 한숨인 양 지나간다. 
 
이 모든 저주, 이 모독, 이 탄식들, 
이 황홀, 이 외침, 이 눈물, 이 <찬가>들, 
그것은 수천의 미로에서 되울려오는 메아리 소리 ; 
결국 죽게 될 인간의 마음에는 성스러운 아편! 
 
그것은 수천의 보초들이 되풀이하는 부르짖음, 
수천의 메가폰이 보내는 하나의 망령, 
그것은 수천의 성 위에 밝혀진 하나의 등대, 
깊은 숲속에서 방황하는 사냥꾼들이 부르는 소리! 
 
왜냐면 주여, 이것은 진정 
우리의 존엄을 보일 수 있는 최상의 증거, 
이 뜨거운 흐느낌은 대대로 흘러흘러 
당신의 영원의 강가에서 스러져갈 것이니! 
 
 
 
 
 
병든 뮤즈 
 
아 내 가엾은 뮤즈! 오늘 아침 무슨 일이오? 
그대의 파인 두 눈은 밤의 환영들로 가득하고 
그대 얼굴에 차갑고 말없는 광란과 공포가 
번갈아 비치는 것이 보이오. 
 
푸르스름한 음몽마녀와 분홍 꼬마 요정이 
그들 항아리 속에 담긴 두려움과 사랑을 그대에게 쏟았는가? 
악몽이 사납고 억센 주먹질로 
전실의 늪 깊은 곳에 그대를 빠뜨렸는가? 
 
바라나니, 건강의 향기풍기는 
그대 가슴에 굳센 사상이 언제나 찾아들고, 
그대 기독교의 피가 고동쳐 흐르기를, 
 
노래의 아버지, 페뷔스와 추수의 영주인 
위대한 <팡> 牧神이 번갈아 다스리던 
옛날 음절의 수많은 선율처럼. 
 
 
 
 
돈에 팔리는 뮤즈 
 
오, 내 마음의 뮤즈, 그대는 궁궐을 바라는데, 
<정월>달이 그의 <북풍>을 풀어놓을 때, 
눈 오는 밤의 울적한 권태의 시간 동안 
그대의 시퍼래진 두 발을 녹여줄 깜부기불이라도 마련해두었는가? 
 
그래, 대리석 같은 그대 어깨를 
덧문 스며드는 밤 빛으로 되살리려나? 
그대 지갑 그대 궁궐처럼 텅 비었으면, 
창공의 금별이라도 따올 작정인가? 
 
그대는 날마다 저녁의 빵을 벌기 위해 
성가대 아이처럼 향로 떠받들고, 
믿음 가지 않는 <찬가>도 불러야 하고, 
 
아니면 속물들 마냥 웃기기 위해, 
굶주린 어릿광대처럼 아양 떨고, 
남모를 눈물에 젖은 웃음도 팔아야 하리. 
 
 
 
 
 
 
무능한 수도사 
 
옛날의 수도원은 그 널따란 벽을 
성스러운 <진리>의 그림으로 꾸몄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신심信心을 부추기고 
엄숙한 찬바람도 진정시켰다. 
 
그리스도가 뿌린 씨가 꽃피던 그 시절엔 
지금은 그 이름도 잊혀진 한둘 아닌 명수도사가 
장례마당을 아틀리에 삼아 
자연스럽게 <죽음>을 찬미했다. 
 
-내 넋은 하나의 무덤, 이 무능한 수도사 
나는 허구헌 세월 거기서 돌아다니며 살고 있으되, 
아무것도 이 흉측한 수도원의 벽을 치장하지 않는다. 
 
오 게으름뱅이 수도사여! 언제 나는 
내 서글픈 빈곤함의 생생한 광경을 그리기 위해 
내 손에 일감 주고 내 눈에 즐거움 줄 수 있으랴? 
 
 
 
 
 
원수 
 
내 젊은 날은, 여기저기 찬란한 햇살 비추었어도, 
캄캄한 뇌우雷雨에 지나지 않았고 ; 
천둥과 비바람에 그토록 휩쓸리어 
내 정원에 남은 건 몇 개 안 되는 새빨간 열매. 
 
이제 나는 사상의 가을에 다가섰으니, 
삽과 쇠스랑을 들어야겠다, 
홍수로 무덤처럼 커다란 구멍이 파인 
물에 잠긴 대지를 새로이 갈기 위해. 
 
그러나 누가 알랴, 내가 꿈꾸는 새로운 꽃들이 
갯벌처럼 씻겨진 이 흙 속에서 
신비한 생명의 양식 찾아낼 수 있을지? 
 
오 이 괴로움이여! <시간>은 생명을 좀먹고, 
이 보이지 않는 <원수>는 우리 심장을 갉아먹어 
우리가 잃은 피로 자라고 튼튼해진다! 
 
 
 
 
 
불운 
 
이토록 무거운 짐을 들어올리려면, 
시지푸스여, 그대의 용기가 필요하리! 
아무리 일에만 전념한다 해도 
<예술>은 길고 <시간>은 짧은 것. 
 
유명한 무덤들에서 멀리 떨어져 
외딴 묘지를 향해 
내 마음은 목이 쉰 북처럼 
장송곡 치며 간다. 
 
-수많은 보석들이 잠자고 있다, 
어둠과 망각 속에 파묻혀, 
곡괭이도 측심기도 닫지 않는 곳에서 ; 
 
수많은 꽃들이 아쉬움 가득, 
깊은 적막 속에서, 
비밀처럼 달콤한 향기 풍긴다. 
 
 
 
 
 
전생 
 
나는 오랫동안 널따란 회랑 아래 살았다. 
바다의 태양은 수천의 불빛으로 그곳을 물들였고, 
곧고 장엄한 큰 기둥들로 
저녁이면 그곳이 마치 현무암 동굴 같았다. 
 
물결은 하늘의 그림자를 바다 위에 떠돌게 하고, 
그 풍부한 음악의 전능한 화음을 
내 눈에 비치는 석양빛 속에 
엄숙하고 신비롭게 섞어놓았다 
 
그곳이 바로 내가 살던 곳, 고요한 쾌락 속에서, 
창공과 물결과 찬란한 빛 가운데서 
온통 향기 배어 있는 발가벗은 노예들에 둘러싸여, 
 
그들은 종려 잎으로 내 이마를 식혀주었고, 
그들의 유일한 일은 내 마음 괴롭히는 
고통스런 비밀을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었다. 
 
 
 
 
 
길 떠난 보헤미안들 
 
눈동자 뜨거운 점쟁이 종족들이 
어제 길을 떠났다, 새끼들 
등에 들처업고, 또는 새끼들 걸신 든 아가리에 
늘 마련된 보물, 축 처진 젖꼭지 내맡긴 채. 
 
사내들은 번쩍이는 무기를 지고 걸어서 간다, 
제 식구들 웅크리고 있는 마차를 따라, 
사라진 환영 좇는 서글픈 미련 때문에 
무거워진 눈을 하늘 쪽으로 보내며. 
 
모래 성 안쪽에서 귀뚜라미는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목청 돋우고, 
그들을 사랑하는 시벨 여신은 그들 앞에 녹음을 펼쳐, 
 
바위에 물 솟게 하고 사막에 꽃을 피운다, 
이 나그네들 앞에 열린 것은 
어두운 미래의 낯익은 세계. 
 
 
 
 
 
인간과 바다 
 
자유로운 인간이여, 그대는 언제나 바다를 사랑하리! 
바다는 그대의 거울, 그대는 그대의 넋을 
끝없이 펼쳐지는 물결에 비추어본다, 
그리고 그대의 정신 역시 바다 못지않게 씁쓸한 심연. 
 
그대는 그대 모습의 한가운데 잠기기 좋아한다 ; 
그대는 그것을 눈과 팔로 껴안는다, 그리고 때로 
사납고 격한 이 탄식의 소리에 
그대 가슴의 동요도 잊는다. 
 
그대들은 둘 다 컴컴하고 조심스럽다 ; 
인간이여, 아무도 그대 심연의 밑바닥 헤아릴 길 없고, 
오 바다여, 아무도 네 은밀한 보물 알 길 없다, 
그토록 악착같이 그대들은 비밀을 지킨다! 
 
그러나 그대들은 아득한 세월을 두고 
연민도 후회도 없이 서로 싸워왔다, 
그렇게도 그대들은 살육과 죽음을 좋아한다, 
오 영원한 투사들, 오 가차없는 형제들이여! 
 
 
 
 
 
지옥의 동 쥐앙 
 
동 쥐앙이 삼도내로 내려가 
샤롱에게 배 삯을 치르니, 
한 음울한 거지, 앙트스텐처럼 오만한 눈초리를 하고 
억센 복수의 팔로 노를 잡았다. 
 
늘어진 젖퉁이 드러내고, 옷자락은 흐트러진 채, 여자들은 어두운 하늘 아래서 몸을 비틀고, 
제물로 바쳐진 한떼의 짐승들처럼, 
그의 뒤에서 긴 울부짖음 소리 내고 있었다. 
 
스가나렐은 낄낄대며 판돈을 내라 조르고, 
판편 동 뤼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강가를 떠도는 모든 망령들에게 
백발 덮인 제 머리를 비웃던 뻔뻔한 아들을 가리킨다. 
 
정결하고 야윈 엘비르는 상복 속에 떨면서, 
지난날 애인이던 배신한 남편 곁에서 
최초의 맹세의 다정스러움이 다시 빛날 
마지막 미소를 그에게 구하려 하는 듯. 
 
갑옷 입고 똑바로 몸을 세우고 있는 큰 석상의 사나이 
키를 꽉 쥐로 검은 물결 헤쳐 나간다, 
그러나 이 침착한 영웅은 장검을 짚고 서서 
지나간 배의 자취만 굽어보며 아무것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교만의 벌 
 
<신학>이 활기와 힘에 넘쳐 꽃피던 
저 희한한 시대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 
어느 날 세상에서도 이름난 어느 박사가 
-믿음 없는 사람을 억지로 믿게 하고 ; 
캄캄한 마음 깊숙이에서 그들을 뒤흔들고 : 
아마도 순수한 <성령>만이 다닐 수 있는 
박사 자신은 가본 적 없는 기이한 길을 
하늘의 영광을 향해 넘어갔는데, - 
너무 높이 올라간 사람처럼 겁에 질려, 
악마 같은 교만심으로 우쭐해 외쳤다 : 
“예수여, 아기 예수여! 나는 매우 높이 그대를 치켜올렸다! 
그러나 갑옷으로 막지 않고 그대를 치려는 마음 내게 있었다면 
그대의 치욕은 그대의 영광 못지 않았으리, 
그리고 그대는 일개 보잘것없는 태아에 지나지 않았으리!” 
 
그 순간 그의 이성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 태양의 반짝임은 베일에 가려지고 : 
온갖 혼돈이 그의 지성 속을 뒤흔들었다, 
옛날에는 질서와 풍요 가득한 살아 있는 신전, 
그 천장 아래서 그토록 화려함이 빛났건만. 
흡사 열쇠 잃은 지하실처럼 
침묵과 어둠이 그의 내부에 자리잡았다. 
그때부터 그는 거리를 헤매는 짐승처럼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여름과 겨울도 
분간 못하고 들판을 쏘다니고, 
폐품처럼 더럽고 쓸모없고 흉측해져, 
어린애들의 놀림감과 웃음거리가 되었다. 
 
 
 
 
 
 
아름다움 
 
나는 아름답다, 오 인간이여! 돌의 꿈처럼, 
그리고 누구나 차례차례 상처받은 내 젖가슴은 
물질처럼 말없는 영원한 사랑을 
시인에게 불어넣기 위해 빚어진 것. 
 
나는 불가사의의 스핑크스처럼 창공에 군림하고 ; 
눈 같은 마음을 백조의 흰 빛에 잇는다 ; 
나는 선線을 흐트러뜨리는 움직임을 미워한다, 
그리고 나는 아예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다. 
 
가장 위풍당당한 기념비에서 빌려온 듯한 
내 고상한 몸가짐 앞에서 시인들은 
엄격한 추구로 일생을 탕진하리라. 
 
왜냐면 이 온순한 애인들을 홀리기 위해, 
나는 모든 것을 한결 아름답게 하는 순수 거울을 가졌기에. 
그것은 나의 눈, 영원한 빛을 발하는 커다란 눈! 
 
 
 
 
 
이상 
 
나 같은 사람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천박한 시대가 낳은 썩어빠진 산물인 
가두리 장식된 미인도도 아니고, 
긴 구두 신은 발도, 캐스터네츠 낀 손가락도 아니다 
 
병원의 수다 떠는 그 미인들의 무리는 
위황병 걸린 시인 가바르니에게나 맡기련다, 
그 창백한 장미들 속에선 
내 붉은 이상을 닮은 꽃을 찾아낼 수 없을 터이니. 
 
심연처럼 깊은 이 마음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대, 맥베스 부인이여, 죄악에 강한 꿋꿋한 넋, 
폭풍우 속에서 꽃핀 에쉴르의 꿈이어라, 
 
아니면 너 거대한 <밤>, 미켈란젤로의 딸, 
<거인>들의 입에 길들여진 젖가슴을 
야릇한 자세로 한가로이 바트는 너. 
 
 
 
 
 
거녀 
 
<자연>이 힘찬 기운에 넘쳐 
날마다 괴물 같은 아이를 배던 그 시절 
나는 젊은 거녀 곁에 살았으면 좋았으리, 
여왕 발 밑에서 사는 음탕한 고양이처럼. 
 
그녀의 몸이 그 넋과 더불어 피어나 
끔찍한 희롱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 ; 
그녀의 가슴 검은 열정 품고 있는지 
그녀의 눈에 서린 젖은 안개로 짐작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그녀의 웅대한 형체 위로 한가로이 노닐며 ; 
그녀의 거대한 무릎을 비탈인 양 기어오르고, 
또 때로는 여름날 몸에 해로운 뙤약볕에 지쳐 
 
그녀가 들판을 가로질러 드러누울 때, 
나는 그 젖가슴 그늘에서 한가로이 잘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평화로운 마을이 산기슭에 잠들 듯이. 
 
 
 
 
 
가면 
-르네상스식 우의寓意적 조상彫像 
조각가 에르네스트 크리스토프에게 
 
저 플로렌스식 멋 풍기는 보물을 들여다보자 ; 
근육 발달한 저 몸뚱이의 요동 속에 
멋진 자매, <우아함>과 <힘>이 넘친다. 
진정 기적 같은 작품인 이 여인, 
기막히게 튼튼하고 사랑스럽게 가냘파 
호사스런 잠자리에 군림하고 
대주교 아니면 군주의 여가를 즐겁게 해주기에 제격이네. 
 
-그리고 또 보라, 저 미묘하고 육감적인 미소를, 
거기엔 <자만>이 절정을 이룬다 ; 
저 앙큼하고 번민하는 조롱하는 듯한 눈길 ; 
망사에 둘러싸인 저 교태 넘치는 얼굴, 
그 모습 하나하나 우리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 
<쾌락>이 나를 부르고, <사랑>이 내게 왕관을 씌운다!” 
보라, 그토록 위엄 타고난 저 인물에 
상냥함이 얼마나 자극적인 매력을 주고 있는가를! 
자, 우리 다가가 저 미녀의 주위를 돌아보자. 
 
오 예술의 모독이여! 오 불길한 기만이여! 
신성한 육체의 여인, 행복을 약속하더니, 
위쪽이 머리 두 개 달린 괴물로 끝나 있다니! 
 
천만의 말씀! 그것은 한 개의 가면, 유혹적인 겉 장식일 뿐, 
찌푸린 묘한 매력으로 빛나는 이 얼굴은. 
그러나 보라, 여기 끔찍하게 오그라든 
진짜 얼굴을, 거짓 얼굴 뒤로 
뒤로 젖힌 진정한 얼굴을. 
가련한 절세의 미인이여! 그대 눈물의 
찬란한 강물이 근심 많은 내 가슴속에 흘러든다 ; 
그대의 거짓이 나를 취하게 하고, 내 넋은 
<고뇌>로 솟아나는 그대 눈의 물결에 목을 축인다! 
 
-헌데 어찌하여 그녀는 울고 있는가? 정복된 인류를 
제 발 아래 무릎 꿇게 할 만한 완벽한 미인, 
무슨 수수께끼 같은 병이 튼튼한 그녀 옆구리를 갉아 먹는단 말인가? 
 
-그녀는 하염없이 울고 있다, 인생을 살아왔기에!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기에! 하지만 그녀가 특히 한탄하는 건, 
그녀의 무릎까지 떨게 하는 건, 
아, 슬프다! 내일도 살아야 하기에!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언제까지나! -우리들처럼! 
 
 
 
 
 
 
아름다움에 바치는 찬가 
 
그대 무한한 하늘에서 왔는가, 구렁에서 솟았는가, 
오 <아름다움>이여! 악마 같으면서도 숭고한 그대 눈길은 
선과 악을 뒤섞어 쏟아부으니, 
그대를 가히 술에 비길 만하다. 
 
그대는 눈 속에 석양과 여명을 담고 ; 
폭풍우 내리는 저녁처럼 향기를 뿌린다 ; 
그대 입맞춤은 미약, 그대 입은 술 단지, 
영웅은 무력하게 하고, 어린애는 대담하게 만든다. 
 
그대 캄캄한 구렁에서 솟았는가, 별에서 내려왔는가? 
홀린 <운명의 여신>은 개처럼 그대 속치마에 따라 붙는다 ; 
그대는 닥치는 대로 기쁨과 재난을 흩뿌리고, 
모든 것을 지배하되,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이여, 그대는 죽은 자들을 비웃으며 그 위로 걸어간다 ; 
그대의 보석 중 <공포>도 매력이 못하지 않고, 
그대의 가장 비싼 패물 중 <살인>이 
그대의 거만한 배 위에서 요염하게 춤춘다. 
 
현혹된 하루살이가 그대 촛불에 날아가 
탁탁 타면서 말한다, “이 횃불에 축복을!” 하고 
정부의 몸에 기대고 헐떡이는 사나이는 
흡사 제 무덤 어루만지는 빈사의 병자. 
 
그대 하늘에서 왔건, 지옥에서 왔건 무슨 상관이랴? 
오 「아름다움」이여! 끔찍하되 숫된 거대한 괴물이여! 
그대의 눈, 미소, 그리고 그대의 발이 
내가 갈망하나 만나보지 못한 <무한>을 열어줄 수만 있다면 
 
<악마>로부터 왔건 <하느님>에게서 왔건 무슨 상관이랴? <천사>이건 <시레네스> 이건, 무슨 상관이랴? -빌로드 같은 눈을 가진 요정이여, 
운율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내 유일한 여왕이여! - 
세계를 덜 추악하게 하고, 시간의 무게를 덜어만 준다면! 
 
 
 
 
 
이국 향기 
 
어느 다사로운 가을 저녁 두 눈을 감고 
훈훈한 그대 젖가슴 내음 맡으면, 
단조로운 태양 볕 눈부신 
행복한 해안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그것은 게으르게 하는 섬나라, 
거기서 자연은 키운다, 
진귀한 나무들과 맛있는 과일들, 
날씬한 체구에 활기 찬 사나이들은, 
순진한 눈빛에 놀라운 여인들을. 
 
그대 내음을 따라 매혹적인 고장으로 안내되어, 
나는 본다, 바다의 파도에 흔들려 아직도 몹시 지쳐 있는 
돛과 돛대 가득한 어느 항구를, 
 
그 동안 타마린의 초록색 향기는 
대기 속을 감돌매 내 콧구멍을 부풀게 하고, 
내 마음속에서 수부들의 노래와 뒤섞이누나. 
 
 
 
 
 
머리타래 
 
오 목덜미까지 곱슬곱슬한 머리털! 
오 곱슬한 머릿결! 오 게으름 가득한 향내여! 
황홀함이여! 오늘 밤 이 어두운 규방을 
그대 머리 속에 잠자는 추억으로 채우기 위해 
손수건처럼 공중에 그대 머리칼을 흔들고 싶어라! 
 
나른한 아시아, 타오르는 아프리카, 
거의 사라져버린 이곳에 없는 아득한 전 세계가 고스란히 
그대 깊은 곳에 살아 있구나, 향기로운 숲이여! 
다른 사람들이 음악에 따라 노를 젓듯, 
내 마음은, 오 사랑하는 님이여! 그대 내음 따라 헤엄친다. 
 
나는 가련다, 저 곳으로, 생기 찬 나무와 남자가 
작열하는 풍토 아래 오래도록 몽롱해 있는 곳, 
거센 머리채여, 나를 데려갈 물결이 되어다오! 
칠흑의 바다여, 그대는 눈부신 꿈을 품고 있다, 
돛과 사공과 불꽃과 돛대의 꿈을 : 
 
거기 우렁찬 항구에서 내 넋은 가득 
들이마신다, 향기와 소리와 색깔을 ; 
거기서 황금빛 물결 위로 미끄러지는 배들은 
거대한 두 팔 벌려 껴안는다, 
영원한 열기 흔들리는 순수 하늘의 영광을. 
 
나는 담그련다, 도취를 갈망하는 내 머리를 
다른 바다 숨기고 있는 이 검은머리 바다 속에 ; 
그러면 애무 같은 배의 흔들림이 어루만지는 
내 예민한 정신은 되찾으리, 
향기로운 여가의 끝없는 자장가를, 오 풍요한 게으름이여! 
 
펼쳐진 어둠의 정자 같은 푸른 머리여, 
그대 내게 무한한 둥근 하늘의 푸름을 돌려주고, 
비틀어 꼬여 내린 그대 머리타래의 솜털로 뒤덮인 기슭에서 
나는 타는 듯이 취한다, 야자수 기름, 사향, 
그리고 역청 뒤섞인 향기에. 
 
오랫동안! 영원히! 내 손은 그대 묵직한 갈기 속에 
루비와 진주와 사파이어를 뿌리리라, 
내 욕망에 그대 귀를 절대 막지 않도록! 
그대는 내가 꿈꾸는 오아시스, 또 추억의 술을 
오래오래 들이마시는 표주박이 아니던가? 
 
 
 
 
 
나 그대를 밤의 궁륭처럼 열렬히 사랑하오 
 
나 그대를 밤의 궁륭처럼 열렬히 사랑하오, 
오 슬픔의 꽃병이여, 오 말없는 키 큰 여인이여, 
내 사랑은,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가 내게서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그리고 내 밤을 장식하는 그대가 
비웃듯이, 푸른 무한으로부터 내 팔을 가르는 공간을 
더욱 멀게 하면 멀게 할수록 그만큼 더 깊어만 가오 
 
나는 공격을 위해 전진하고 돌격을 위해 기어오르오, 
시체를 향해 달라붙는 구더기처럼, 
그리고 무자비하고 매정한 짐승이여! 
그대의 냉담함조차 귀여워하오, 그럴수록 내게는 더 아름답기에! 
 
 
 
 
 
넌 전 우주를 네 규방에 끌어넣겠구나 
 
넌 전 우주를 네 규방에 끌어넣겠구나, 
더러운 계집이여! 권태로 네 넋은 잔인해지는구나. 
그런 괴상한 놀이에 네 이빨을 단련시키자면, 
날마다 염통 하나씩 네 이빨에 넣어주어야 하겠구나. 
네 두 눈은 진열장처럼, 축제에 타오르는 등화대처럼 
번뜩이며 빌려온 위력을 함부로 행사한다, 
제 아름다움의 법칙 알지도 못하고.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눈멀고 귀먹은 기계여! 
사람들 피를 빠는 유익한 연장이여, 
어찌 너는 부끄럼을 모르는가, 그리고 어찌 
네 매력이 퇴색하고 있음을 거울에 비춰보지 못하는가? 
깊은 뜻을 감추고 있는 위대한 자연이 
너를 가지고, 오 계집이여, 오 죄악의 여왕이여, 
-천한 짐승 너를 가지고-하나의 전체를 빚어낼 때, 
아무리 죄악에 능숙하다 자부하는 너라 해도, 
그 엄청난 죄악에 질겁하여 뒷걸음질친 적은 없었던가? 
 
오 더러운 위대함이여! 숭고한 치욕이여! 
 
 
 
 
 
그러나 흡족하지 않았다 
 
밤처럼 컴컴한 괴상한 여신이여, 
사향과 하바나 향기 섞인 내음 풍기는 
아프리카 마술사의 작품, 대초원의 파우스트, 
흑단의 옆구리 가진 마녀, 캄캄한 한밤의 아이여, 
 
내가 더 좋아하는 것은 콩스탕스 술, 아편, 그리고 밤의 술보다 
사랑이 으스대는 네 입의 선약, 
내 욕망이 너를 향해 떼지어 갈 때, 
네 눈은 내 권태가 목을 축이는 물웅덩이. 
 
네 넋의 창 같은 그 검은 커다란 두 눈으로, 
오 잔인한 악마여! 내게 그토록 불꽃을 쏟지 말아라 ; 
삼도내를 따라 흘러흘러 가도 너를 아홉 번이나 껴안을 수 없으니, 
 
아 슬프구나! 방자한 메제르 여신이여, 
네 용기를 꺾고 너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네 잠자리의 지옥에서 내가 프로세르핀이 될 수는 없구나! 
 
 
 
 
 
물결치는 진줏빛 옷을 입고 
 
물결치는 진줏빛 옷을 입고, 
걸을 때도 그녀는 춤을 추는 듯, 
신성한 요술쟁이의 막대기 끝에서 
박자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기다란 뱀처럼. 
 
인간의 고뇌에는 아랑곳 않는 
사막의 우중충한 모래와 창공처럼, 
바다 물결이 파도치며 얽히듯, 
그녀는 무심코 몸을 펼친다. 
 
반들반들한 두 눈은 매혹적인 광석, 
그리고 야릇한 상징적인 그 천성 속에 
순결한 천사를 고대 스핑크스에 섞어놓은 듯, 
 
모든 것이 금과 강철, 빛과 금광석뿐, 
아기를 낳지 못하는 여인의 차가운 위엄이 
쓸모없는 별처럼 영원히 빛을 발한다. 
 
 
 
 
 
춤추는 뱀 
 
나는 보고 싶다, 태평한 님이여, 
그토록 아름다운 그대 몸에서 
하늘거리는 천처럼 
살갗이 빛나는 것을! 
 
짙은 그대 머리칼에서 
풍기는 짭짤한 내음 
푸른색과 갈색의 물결 위에서 
넘실대는 냄새나는 바다, 
 
거기 아침 바람에 잠깬 
한 척의 배처럼, 
내 꿈꾸는 넋은 떠날 준비를 한다, 
어느 먼 하늘을 향해. 
 
달콤함도 쓰라림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대의 두 눈은 
금과 쇳가루 섞인 
차가운 두 알의 보석. 
 
박자 맞추어 걸어가는 그대를 보면, 
초연한 미인이여, 
막대기 끝에서 춤추는 
한 마리 뱀 같아. 
 
게으름의 무게에 짓눌린 
앳된 그대 머리는 
흐물흐물 좌우로 흔들거린다, 
코끼리 새끼처럼, 
 
또 몸을 구부리고 드러누우면, 
가느다란 배처럼 
좌우로 흔들리다 물 속에 
활대를 잠근다. 
 
와르르 녹아내린 빙하로 
불어난 물결처럼, 
그대 이빨 가장자리에 
침이 솟아오르면, 
 
나는 씁쓸하고 기분 북돋우는 
보헤미아의 술을 마시는 듯, 
내 마음에 별들을 뿌려주는 
흐르는 하늘을 마시는 듯! 
 
 
 
 
 
시체 
 
기억해보라, 님이여, 우리가 보았던 것을, 
그토록 화창하고 아름답던 여름 아침 : 
오솔길 모퉁이 조약돌 깔린 자리 위에 
드러누워 있던 끔찍한 시체, 
 
음탕한 계집처럼 두 다리를 쳐들고, 
독기를 뿜어내며 불타오르고, 
태평하고 파렴치하게, 썩은 
냄새 가득 풍기는 배때기를 벌리고 있었다. 
 
태양은 이 썩은 시체 위로 내리쬐고 있었다, 
알맞게 굽기라도 하려는 듯, 
위대한 「자연」이 한데 합쳐놓은 것을 
백 갑절로 모두 되돌려주려는 듯, 
 
하늘은 이 눈부신 해골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어나는 꽃이라도 바라보듯, 
고양한 냄새 어찌나 지독하던지 당신은 
풀 위에서 기절할 뻔했었지. 
그 썩은 배때기 위로 파리떼는 윙윙거리고, 
거기서 검은 구더기떼 기어나와, 
걸쭉한 액체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살아 있는 누더기를 타고. 
 
그 모든 것이 물결처럼 밀려왔다 밀려나갔다 하고, 
그 모든 것이 반짝반짝 솟아나오고 있었다 ; 
시체는 희미한 바람에 부풀어올라, 
아직도 살아서 불어나는 듯했다. 
 
그리고 세상은 기이한 음악 소리를 내고 있었다, 
흐르는 물처럼, 바람처럼, 
또는 장단 맞춰 까불리는 키 속에서 
흔들리고 나뒹구는 곡식알처럼. 
 
형상은 지워지고, 이제 한갓 사라진 꿈, 
잊혀진 화포 위에 
화가가 기억을 더듬어 완성하는 
서서히 그려지는 하나의 소묘. 
 
바위 뒤에서 초조한 암캐 한 마리 
성난 눈으로 우리를 쏘아보고 있었다, 
놓쳐버림 살점을 해골로부터 
다시 뜯어낼 순간을 노리며. 
 
-허나 언제인가는 당신도 닮게 되겠지, 
이 오물, 이 지독한 부패물을, 
내 눈의 별이여, 내 마음의 태양이여, 
내 천사, 내 정열인 당신도! 
 
그렇다! 당신도 그렇게 되겠지, 오 매력의 여왕이여, 
종부성사 끝나고 
당신도 만발한 꽃들과 풀 아래 
해골 사이에서 곰팡이 슬 즈음이면. 
 
그때엔, 오 나의 미녀여, 말하오, 
당신을 핥으며 파먹을 구더기에게, 
썩어문드러져도 내 사랑의 형태와 거룩한 본질을 
내가 간직하고 있었다고! 
 
 
 
 
 
심연에서 외친다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그대의 연민을 비오, 
내가 빠져 있는 어두운 구렁의 밑바닥에서. 
그곳은 납빛 지평선이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세상, 
공포와 모독이 어둠 속에서 헤엄을 친다 ; 
 
열기 없는 태양이 여섯 달 그 위에 뜨고, 
나머지 여섯 달은 어둠이 땅을 덮어 ; 
이곳은 극지보다 더한 불모의 세계, 
-짐승도 없고, 냇물도, 풀밭도, 숲도 없는! 
 
얼어붙은 태양의 차가운 냉혹함, 
옛날 <혼돈>의 세계 같은 끝없는 이 어둠, 
아, 이보다 더한 공포는 세상에도 없소. 
 
미련한 잠에 빠질 수 있는 
천한 짐승의 팔자가 나는 부럽소. 
시간을 감는 실꾸리가 그토록 더디구려! 
 
 
 
 
 
흡혈귀 
 
슬픈 내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든 너 ; 
악마의 무리처럼 억세고 
화사하고 광기 서린 넌 
 
창피 당한 내 정신으로 
잠자리 삼고, 집을 삼는다 ; 
-끔찍한 너에게 나는 얽매어 있다, 
사슬에 매인 도형수처럼, 
 
노름판을 못 떠나는 노름꾼처럼, 
술병을 못 떼는 술꾼처럼, 
구더기에 먹히는 시체처럼, 
-저주받은, 저주받은 계집이여! 
 
나는 자유를 얻기 위해 
날쌘 칼에 빌기도 했고, 
내 비겁함 도와달라고 
더러운 독약에 하소연도 해보았다. 
 
그런데, 아! 독약과 칼날은 
나를 깔보며 이렇게 말했다 : 
“넌 저주받은 노예 처지에서 
구해줄 가치도 없다, 
 
바보야! -설령 우리의 노력이 
그녀의 지배에서 너를 구해준다 해도, 
네 입맞춤은 네 흡혈귀의 시체를 
되살려낼걸!” 
 
 
 
 
 
끔찍한 유대 계집 곁에 있었던 어느 날 밤 
 
어느 날 밤, 끔찍하게 생긴 유대 계집 곁에, 
시체 곁에 또 하나의 시체 있듯이 나란히 누워, 
그 돈에 팔린 몸뚱이 곁에서 나는 생각했다, 
내 욕망이 포기한 저 서글픈 미녀를. 
 
나는 눈앞에 그려보았다, 그녀의 타고난 위엄을, 
힘과 우아함을 갖춘 그녀 시선을, 
그녀 머리카락은 향내 나는 투구, 
생각만 해도 사랑이 내게 되살아난다. 
 
고상한 그대 몸에 열렬히 입맞추고, 
싱싱한 그대 발끝에서부터 검은 머리칼까지 
깊은 애무의 보물을 펼쳤으리, 
 
만일 어느 날 저녁,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로 인해, 
오 잔인한 계집들의 여왕이여! 그대 
차가운 눈동자의 광채를 흐리게 할 수만 있다면. 
 
 
 
 
 
사후의 회한 
 
검은 미녀여, 새까만 대리석으로 만든 
무덤 속 깊은 곳에 그대가 잠들어, 
잠자리와 집이라곤 비에 젖은 
땅속과 움푹 파인 구덩이뿐일 때 ; 
 
무덤 돌이 그대 겁먹은 가슴 짓누르고 
달콤한 나태에 젖은 그대 옆구리 짓눌러, 
그대 심장 뛰지도 바라지도 못하게 하고, 
두 발로 쾌락 찾아 뛰어다니지 못하게 할 때, 
 
내 끝없는 몽상을 들어줄 무덤은 
(무덤은 언제나 시인을 이해할 것이니) 
잠 달아난 그 긴긴 밤 동안 
 
그대에게 말하리 : “어설픈 유녀遊女여, 망령들이 한탄하는 까닭을 
넌 알지 못했거니, 그게 이제 무슨 소용이랴?” 
-그리고 구더기는 회한처럼 그대 살갗을 파먹으리. 
 
 
 
 
 
고양이 
 
오너라, 내 예쁜 나비야, 사랑에 빠진 내 가슴 위로 ; 
발톱일랑 감추고, 
금속과 마노 섞인 아름다운 네 눈 속에 
나를 푹 잠기게 하렴. 
 
내 손가락이 네 머리와 유연한 등을 
한가로이 어루만지며 
내 손이 전기 일으키는 네 몸을 
만져보며 즐거움에 취해들 때, 
 
나는 마음속에서 내 아내를 본다, 그녀 눈매는 
사랑스런 짐승, 네 눈처럼 
그윽하고 차가와 투창처럼 꿰뚫고,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미묘한 기운, 위험한 향기 
그녀 갈색 몸 주위에 감돈다. 
 
 
 
 
 
결투 
 
두 전사가 마주 달려들었다 ; 그들의 무기는 
불꽃과 피를 공중에 튀겼다. 
이 놀이, 이 요란한 칼부림 소리는 
신음하는 사랑의 포로가 된 젊음의 소동. 
 
칼은 부러졌다! 우리의 젊음처럼, 
님이여! 그러나 이빨과 날카로운 손톱이 
이내 배신한 장검과 단검에 복수한다. 
-오 사랑의 상처로 곪은 가슴의 분노여! 
 
살쾡이와 표범이 넘나드는 골짜기에 
우리 병사들은 짓궂게 맞붙어 뒹굴고, 
그들의 살가죽은 메마른 가시덤불을 꽃피게 하리. 
 
-이 심연, 그건 지옥, 우리 친구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 거기서 뒹굴자, 미련도 없이, 매정한 여장부여, 
우리 증오의 뜨거운 불꽃 영원히 타오르게! 
 
 
 
 
 
발코니 
 
추억의 샘이여, 애인 중의 애인이여, 
오 그대, 내 모든 기쁨! 오 그대, 내 모든 의무! 
그대 회상해보오, 애무의 아름다움을, 
난로의 다사로움, 저녁의 매혹을, 
추억의 샘이여, 애인 중의 애인이여! 
 
이글대는 숯불로 밝혀진 저녁, 
발코니에 깃든 장밋빛 너울 자욱한 저녁. 
아 다사로왔던 그대 가슴! 고왔던 그대 마음! 
우린 자주 불멸의 것들을 얘기했었지, 
이글대는 숯불로 밝혀진 저녁. 
 
다사로운 저녁 태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공간은 얼마나 그윽한가! 마음은 굳건하고! 
연인 중의 여황, 그대에게 몸 기대면, 
그대의 피 냄새를 맡는 듯했지, 
다사로운 저녁 태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밤은 칸막이 벽처럼 깊어만 갔고, 
내 눈은 어둠 속에서 그대 눈동자 알아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대 숨결을 마셨지, 오 그 달콤함! 오 그 독기여! 
그대 발은 내 다정한 손 안에서 잠이 들었다. 
밤은 칸막이 벽처럼 깊어만 갔고. 
 
나는 알고 있다, 행복한 순간들 되살리는 법을, 
그리고 나는 본다, 그대 무릎 속에 숨겨진 내 과거를, 
따스한 그대 몸과 그토록 포근한 그대 마음 아닌 다른 곳에서 
그대 번민하는 아름다움 찾아본들 무슨 소용이랴? 
나는 알고 있다, 행복한 순간들 되살리는 법을! 
 
그 맹세, 그 향기, 그 끝없는 입맞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다시 살아날 것인가, 
깊은 바다 속에서 멱감고 
다시 젊어진 태양이 하늘에 떠오르듯? 
-오 맹세! 오 향기! 오 끝없는 입맞춤이여! 
 
 
 
 
 
홀린 사내 
 
태양은 검은 베일에 가려졌다. 그처럼, 
오 내 생명의 달이여! 그대도 어둠으로 푹 둘러싸이렴 ; 
네 멋대로 자고, 담배 피우고, 입 다물고, 우울한 채 있으려므나, 
그리고 끝 모를 <권태>에 온통 잠기렴 ; 
 
나 그처럼 그대를 사랑한다! 허나 오늘 그대가 원한다면, 
어둠에서 벗어나는 가리어 있던 별처럼 
<광란>이 법석대는 곳에서 으스대고 싶다면, 
그것도 좋아! 매혹적인 단도여, 그대 칼집에서 나오렴! 
 
샹들리에 불빛으로 그대 눈동자에 불을 밝혀라! 
촌뜨기들 눈 속에 욕망의 불을 지피렴! 
그대의 모든 것이 내게는 즐거움, 병적인 것도 발랄한 것도 ; 
 
그대 원하는 대로 되렴, 검은 밤이든, 붉은 여명이든 ; 
떨리는 내 온몸에서 이렇게 외치지 않는 세포 하나도 없으니, 
오 내 사랑 마왕이여, 나 그대를 끝없이 사랑하오! 
 
 
 
 
 
환영 
 
1. 어둠 
<운명>이 이미 나를 유배 보낸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굴 속 ; 
장밋빛 즐거운 햇살 한 줄기 들지 않고 ; 
침울한 여주인 <밤>과 홀로 사는 
 
나는, 아! 조롱하는 <신>의 강요로 
어둠의 화포 위에 그림 그리는 화가라고나 할까 ; 
거기서 나는 음산한 식욕 가진 요리사, 
내가 내 심장을 끓여 먹는다. 
 
거기 때로 아름답고 찬란한 유령 나타나 
번쩍이며 몸을 뻗치고 펼쳐 보인다. 
꿈꾸는 듯한 동양적인 자태로. 
 
그녀 온전히 몸 드러내면, 
나는 알아본다, 날 찾아온 미녀를 : 
그것은 <그녀>! 어둡고 동시에 빛을 발하는 여인. 
 
2. 향기 
독자여, 그대는 취해 서서히 음미해가며 
맡아보았는가, 
성당 가득한 훈향을, 
또는 주머니에 깊이 밴 사향 냄새를? 
 
현재 속에 되살아난 과거가 우리를 
취하게 한다, 깊고 마술 같은 매혹으로! 
그처럼 애인도 사랑하는 육체에서 
추억의 절묘한 꽃을 꺾는다. 
 
살아 있는 향주머니, 규방의 향로, 
그녀의 탄력 있고 묵직한 머리칼에서 
야생의 사향 냄새 피어오르고, 
 
순수한 젊음 흠뻑 밴 
모슬린, 혹은 빌로드 옷에서 
모피 냄새 풍겨나왔다. 
 
3. 그림들 
아무리 칭송받는 화가의 작품이라도, 
무한한 자연에서 떼내어 
아름다운 그림틀을 붙여야만, 뭔지 모를 
신기하고 매혹적인 운치가 살아나듯이, 
 
그처럼 보석과 가구, 금속과 금박은 
보기 드문 그녀의 아름다움에 꼭 어울리었다 ; 
아무것도 그녀의 완벽한 광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이 그녀에게 장식틀이 되어 보였다. 
 
때로 그녀는 모든 것이 자신을 
사랑하려 한다고 생각했을까, 
관능에 젖어 제 알몸을 
 
명주와 린네르 속옷의 입맞춤 속에 잠그고, 
느리게 또는 갑자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원숭이 같은 앳된 교태를 보였다. 
 
4. 초상화 
<병>과 <죽음>은 모조리 재로 만든다. 
우리를 위해 타오른 불길을 
그처럼 뜨겁고 다정하던 그 커다란 눈, 
내 가슴 적신 그 입술, 
 
향유처럼 힘찬 그 입맞춤, 
햇빛보다 더 뜨거운 그 격정, 
그중 무엇이 남아 있는가? 오 두렵다, 내 넋이여! 
남은 건 오직 퇴색한 삼색의 소묘 하나뿐, 
 
그것도 나처럼 고독 속에 스러져가고, 
몹쓸 늙은이 <시간>은 
날마다 그 거친 말개로 문지른다…… 
 
<삶>과 <예술>의 검은 말살자여, 
너는 내 기억 속에서 절대로 죽이지 못하리라, 
내 기쁨, 내 영광이던 그 여인을! 
 
 
그대에게 이 시구를 바치노라 
 
그대에게 이 시구를 바치노라, 내 이름 
다행히 먼 후세에 전해져 
저녁 사람들을 꿈에 잠기게 한다면, 
거친 북풍에 실려가는 배여, 
 
그대 기억이 희미한 전설처럼, 
팀파논처럼, 독자들 귀를 지치게 울리고, 
우정 어린 신비한 사슬고리로 
내 고고한 시편에 매달리듯 길이 남아 있도록 ; 
 
저주받은 그대, 저 깊은 나락에서 
높은 하늘까지 나말고 누가 대답해줄까! 
-오 그대, 흔적 곧 지워지는 망령처럼, 
 
그대를 가혹하다 여길 어리석은 인간들을 
가벼운 발걸음과 싸늘한 시선으로 밟고 간다, 
흑옥 같은 눈동자의 상像, 의연한 대천사여! 
 
 
 
 
 
언제나 이대로 
 
그대는 말했었지, “저 벌거벗은 검은 바위 위로 바닷물 치솟듯 
그 야릇한 슬픔 어디서 당신에게 밀려오는가?” 라고. 
-우리 마음이 일단 수확을 끝내고 나면, 
산다는 것은 고통, 그건 누구나 다 아는 비밀. 
 
그것은 극히 명백한 고통, 신비할 것도 없고, 
그대 기쁨처럼 누구에게나 드러나는 것, 
그러니 그만 묻지 마오, 오 캐기 좋아하는 미인이여! 
그대 목소리 달콤해도 입을 다물어주오! 
 
입을 다물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언제나 기쁨에 찬 여인이여! 
천진한 웃음 짓는 입이여! <삶>보다 <죽음>이 더 
그 정교한 줄로 우리를 자주 옭아맨다. 
 
제발 내 마음 미망에 취해 
아름다운 꿈에 파묻히듯 그대 눈 속에 파묻혀, 
그대 눈썹 그늘 속에 오래 잠들게 해주오! 
 
 
 
 
 
그녀는 고스란히 
 
<악마>가 높은 내 방으로 
오늘 아침 날 찾아와, 
내 흠집 잡아내려 애쓰며, 
하는 말이, “정말 알고 싶구나, 
 
그녀의 매력 만들어주는 
갖가지 아름다운 것 중에, 
매혹적인 그녀의 몸을 이루는 
검거나 붉은 것 중에, 
 
무엇이 제일 좋은가?” -오 내 넋이여! 
너는 이 <가증스런 놈>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 
“그녀 속에는 모든 것이 향기, 
어느 것도 고를 수 없다. 
 
모든 것이 나를 황홀케 하니, 나는 모른다, 
무엇에 내가 끌리는지, 
그녀는 <새벽>처럼 눈부시고 
<밤>처럼 위안을 준다 ; 
 
또 그녀 아름다운 몸에 온통 감도는 
조화 너무도 오묘하여, 
그 숱한 화으믈 적어내기에는 
서툰 분석으로 불가능하다. 
 
오 신비한 변모여, 
내 모든 감각이 하나로 녹아든다! 
그녀 숨결은 음악이 되고 
그녀 목소리는 향기를 풍긴다!” 
 
 
 
 
 
오늘 저녁 무엇을 말하려는가 
 
오늘 저녁 무엇을 말하려는가, 외로운 가엾은 넋이여, 
무엇을 말하려나, 내 마음, 일찍 시든 마음이여, 
더없이 아름답고 착하고 사랑스런 여인에게? 
그 거룩한 눈길에 너는 갑자기 피어났었지. 
 
-우리 자랑스레 그녀를 찬미하여 노래부르자 : 
아무것도 그녀 위엄 속에 숨겨진 다정함만 못하다 ; 
맑은 그녀 살결은 천사의 향기 지녀 
그녀 눈동자는 우리에게 광명의 옷을 입힌다. 
 
밤중이든 고독 속에서이든 
거리에 있든 군중 속에 있든 
그녀 환영은 공중에서 횃불처럼 춤춘다. 
 
때로 그 환영 내게 말하기를 : “나는 아름답다, 나는 명하노니, 
나에 대한 사랑을 위해 그대 오직 <미>만을 사랑하라, 
나의 <수호천사> <시의 여신> 그리고 <마돈나> 
 
 
 
 
 
살아 있는 횃불 
 
빛 가득한 그 두 <눈>, 그들이 내 앞을 걸어간다, 
박식한 <천사>에게서 아마 자력을 받았으리라 ; 
그들은 걸어간다, 거룩한 형제들은, 내 형제들은, 
금강석처럼 반짝이는 그들 불꽃을 내 눈 속에 흔들면서. 
 
온갖 함정, 온갖 중죄에서 날 구해, 
그들은 <미>의 길로 내 발걸음 이끌어준다 ; 
그들은 내 하인, 나는 그들의 노예 ; 
내 존재는 온통 이 살아 있는 횃불을 따른다. 
 
매혹적인 두 <눈>이여, 너희는 한낮에 타오르는 
촛불의 신비한 빛으로 빛난다 ; 햇빛이 
붉게 비추어도 그 엄청난 불꽃은 끄지 못한다 ; 
 
촛불은 <죽음>을 기리고, 너희는 <소생>을 노래한다 ; 
내 넋의 소생을 노래하며 걸어간다, 
어떤 햇빛도 그 불꽃 사그라뜨리지 못할 별이여! 
 
 
 
 
 
공덕 
 
기쁨이 넘치는 <천사>여, 그대는 아는가 고뇌를, 
수치심을, 회한을, 흐느낌을, 권태를, 
그리고 종이 구기듯 가슴을 짓누르는 
저 무서운 밤들의 막연한 공포를? 
기쁨이 넘치는 <천사>여, 그대는 아는가 고뇌를 
 
그지없이 착한 <천사>여, 그대는 아는가 증오를, 
<복수>의 악마가 지옥의 나팔 불고 
우리의 능력을 멋대로 지배할 때, 
어둠 속에서 불끈 쥐는 주먹을, 원한의 눈물을? 
그지없이 착한 <천사>여, 그대는 아는가 증오를? 
 
건강이 넘치는 <천사>여, 그대는 아는가 <열병>을, 
우중충한 양로원 높은 담을 따라 
가느다란 햇볕 찾아 입술을 떨며, 
유형자처럼 발을 질질 끌고 가는 사람들을? 
건강이 넘치는 <천사>여, 그대는 아는가 <열병>을? 
 
아름다움 넘치는 <천사>여, 그대는 아는가 주름살을, 
늙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그리고 우리의 탐욕스런 눈이 
오래 세월 빠져 있던 두 눈 속에서 헌신을 꺼리는 
숨은 낌새 읽어내는 그 무서운 고통을? 
아름다움 넘치는 <천사>여, 그대는 아는가 주름살을? 
 
행복과 기쁨과 빛이 넘치는 <천사>여, 
죽어가는 <다비드> 왕이라면 매혹적인 
그대 몸에서 발산되는 건강을 구했으리, 
그러나 천사여, 그대에게 내가 구하는 것은 오직 그대 기도뿐, 
행복과 기쁨과 빛이 넘치는 <천사>여! 
 
 
 
 
 
고백 
 
한 번, 단 한 번, 사랑스럽고 다정한 사람, 
당신의 미끈한 팔이 
내 팔에 기대었다 (내 넋의 어두운 밑바닥에서 
이 추억은 바래지 않는다) ; 
 
늦은 밤이었다 ; 새 메달처럼 보름달은 
하늘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엄숙한 밤은 잠든 파리 위로 강물처럼 
흥건히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집들을 따라 대문 아래로 
고양이들은 살금살금 빠져나와, 
귀를 쫑긋 세우고, 또는 정다운 그림자처럼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문득 창백한 달빛 아래 피어난 
거리낌없는 친밀감 속에서 
쾌활한 소리만 울리는 소리나는 
풍요한 악기, 당신의 입에서 
 
빛나는 아침 화려한 군악 소리 울리듯, 
밝고 즐거운 당신 입에서 
흐느끼는 가락, 기이한 가락이 
비틀거리며 새어나왔다. 
 
가족들조차 부끄러워 사람들 눈을 피해 
남몰래 오랫동안 굴 속에 
숨겨두었던 허약하고, 흉측하고, 어둡고, 
불결한 계집애처럼. 
 
가엾은 천사여, 당신은 목청껏 노래불렀다 : 
“이승에는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고 
아무리 애써 꾸며본들 언제나 
사람의 이기심은 드러나는 법 ; 
 
미인 역을 하기도 고된 일, 
그것은 억지 웃음 지으며 
흥겨워하는 경박하고 쌀쌀한 무희가 부리는 
진부한 재주 같은 것 ; 
 
사람들 마음 위에 집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 ; 
사랑도 아름다움도 모두 부서져버린다, 
마침내 <망각>이 <영원>에게 되돌려주려고 채롱 속에 
그것을 던져줄 때까지는!” 
 
나는 때로 회상했다, 그 황홀한 달을, 
그 적막, 그 번민을, 
그리고 가슴속 고해실에서 속삭인 
그 무서운 고백을. 
 
 
 
 
 
영혼의 새벽 
 
방탕아의 방에 희뿌연 새벽이 
마음을 괴롭히는 <이상>과 함께 비쳐들면, 
신비한 응징자에 휘둘려 
졸던 짐승 속에서 천사가 깨어난다. 
 
다가갈 수 없는 <영혼의 푸른 하늘>은 
아직 꿈속에서 고통받는 기진한 사나이 앞에 
심연의 매혹으로 열리며 파고든다. 
이처럼, 다정한 <여신>이여, 맑고 순수한 <사람>이여, 
 
어리석은 향연의 연기 나는 잔해 위로 
한결 또렷한 당신의 매혹적인 장밋빛 추억은 
크게 뜬 내 두 눈 앞에 쉴새없이 나풀거린다. 
 
햇빛은 이제 촛불을 흐려놓았다 ; 
이처럼 언제나 승리에 찬 그대 모습은, 
찬란한 넋이여, 불멸의 태양을 닮았구려! 
 
 
 
 
 
저녁의 조화 
 
이제 바야흐로 줄기 위에 떨며 
꽃송이 하나하나 향로처럼 향기를 뿜고 ; 
소리와 향기 저녁 하늘 속에 감돈다 ; 
우울한 왈츠, 나른한 어지러움! 
 
꽃송이 하나하나 향로처럼 향기를 뿜고 ; 
바이올린은 상처받은 마음인 양 떤다 ; 
우울한 왈츠, 나른한 어지러움! 
하늘은 큰 제단처럼 슬프고 아름답다 
 
바이올린은 상처받은 마음인 양 떨고, 
어둡고 끝없는 허무를 미워하는 애틋한 이 마음! 
하늘은 큰 제단처럼 슬프고 아름답고 ; 
태양은 얼어붙은 제 피 속에 빠진다. 
 
어둡고 끝없는 허무를 미워하는 애틋한 이 마음, 
빛나는 과거의 온갖 흔적을 긁어모은다! 
태양은 얼어붙은 제 피 속에 빠지고…… 
당신의 추억은 내 맘속에 성체합처럼 빛난다! 
 
 
 
 
 
향수병 
 
어떤 물질이라도 뚫고 스며나오는 강한 
향기가 있다, 그것은 유리라도 뚫으리라. 
<동양>에서 건너온 작은 함, 오만상 찌푸리고 
삐걱거리는 자물쇠 열면, 
 
또는 버려둔 집에서 세월의 지독한 냄새 가득 밴 
먼지 수북한 더러운 옷장 열면, 
더러 옛 추억 간직한 오래된 향수병 눈에 띄는데, 
되돌아온 넋 거기서 생생하게 떠오른다. 
 
서글픈 번데기처럼 온갖 생각들 거기 잠들어, 
무거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떨고 있다가, 
날개 펴고 힘껏 날아오른다, 
창공의 빛으로 물들고 장밋빛으로 칠해지고 금박으로 장식되어. 
 
이제 취한 추억이 흐린 대기 속에서 
나폴거린다, 눈을 감는다 ; <현기증>이 
쓰러진 넋을 쥐어 잡고 두 손으로 밀어낸다, 
인간의 악취로 어두어진 구렁 쪽으로 ; 
 
그리고 천 년 된 깊은 구렁 가로 넘어뜨린다, 
거기서 제 수의 찢는 냄새나는 나사로처럼, 
썩고 매혹적이고 음산한 옛사랑의 
유령 같은 송장이 잠깨어 꿈틀거린다. 
 
그처럼 나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해묵은 향수병처럼 늙고, 먼지가 끼고, 더럽고, 
천하고, 끈적거리고, 금이 가 
음산한 옷장 구속에 내던져졌을 때, 
 
나는 네 관이 되리, 사랑스런 악취여! 
네 힘과 독기의 증인이 되리, 
천사가 마련해준 사랑하는 독약이여! 나를 
좀먹는 액체, 오 내 마음의 <생명>이자 <죽음>이여! 
 
 
 
 
 
독 
 
술은 아무리 누추한 오두막이라 해도 
기적같이 호화롭게 옷 입히고, 
붉은 안개의 금빛 속에 한둘 아닌 
동화 같은 회랑을 솟아나게 한다, 
흐린 하늘에 노을지는 태양처럼. 
 
아편을 끝없는 것을 더욱 넓히고, 
무한을 더욱 늘이며, 
시간을 키우고 쾌락을 더욱 파고들어, 
우울하고 서글픈 쾌락으로 
내 넋을 채운다, 넘치도록 가득. 
 
그러나 그 모든 것도 그대 눈에서 흘러내리는 
독만 못하다, 그대 초록색 눈, 
내 넋이 떨며 거꾸로 비춰보는 호수…… 
내 꿈 떼지어 가 
그 호수의 쓰디쓴 심연에서 갈증을 푼다. 
 
그 모든 것도 나를 깨무는 그대 침의 
무서운 위력만 못하다, 그대 침은 
내 넋을 후회 없이 망각 속에 잠그고, 
현기증을 실어, 
죽음을 강가로 내 쇠잔한 넋을 굴리어 간다! 
 
 
 
 
 
흐린 하늘 
 
당신의 시선은 안개로 덮인 듯 ; 
신비한 당신 눈은(푸른빛일까, 잿빛일까, 아니면 초록빛일까?) 
다정하다가는 꿈꾸는 듯하고, 그러다가 매정해지며, 
무심하고 파리한 하늘을 비추고 있다. 
 
당신은 생각나게 한다. 저 따스하고 안개 낀 하얀 날들을, 
홀린 마음을 눈물로 녹이는 날들을, 
가슴을 쥐어짜는 알 수 없는 아픔에 흔들려 
너무 곤두선 신경이 잠자는 정신을 비웃을 때에. 
 
때로 당신은 안개 자욱한 계절, 
태양이 비춰주는 저 아름다운 지평선 같다…… 
안개 낀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이 불태우는 
젖은 풍경처럼 당신은 얼마나 찬란한가! 
 
오 위험한 여인이여, 오 매혹적인 기후여! 
나는 또한 당신의 눈雪과 서리마저 사랑하여, 
얼음보다 칼보다 더 날카로운 쾌락을 
혹독한 겨울에서 끌어낼 수 있을까? 
 
 
 
 
 
고양이 
 
내 머리 속을 걸어다닌다, 예쁜 고양이 
제 방안 거닐 듯, 
힘세고 온순하고 매혹적인 잘 생긴 고양이, 
야웅 하고 우는 소리 들릴까말까, 
 
그토록 그 울림 부드럽고 은근하지만 ; 
차분할 때나 으르릉거릴 때나 
그 목소리 언제나 풍요하고 그윽하다. 
바로 그게 그의 매력, 그의 비밀. 
 
내 마음 가장 어두운 맡바닥까지 
구슬처럼 스미는 그 목소리, 
조화로운 시구처럼 나를 채우고, 
미약처럼 나를 즐겁게 한다. 
 
그 목소리는 지독한 고통도 가라앉히고 
갖가지 황홀을 간직하고 있어 ; 
긴긴 사연을 말할 때도 
한마디의 말도 필요가 없다. 
 
그렇다, 이 완벽한 악기, 내 마음 파고들어, 
이보다 더 완전하게 
내 마음으 가장 잘 울리는 줄을 
노래하게 할 활이 이밖에 없다, 
 
네 목소리밖엔, 신비한 고양이여, 
천사 같은 고양이, 신기한 고양이여, 
네 속에선, 천사처럼, 
모든 것이 미묘하고 조화롭구나! 
 
금빛과 갈색이 섞인 그의 털에서 
풍기는 냄새 그토록 달콤해, 
어느 날 저녁 한 번, 꼭 한 번 
어루만졌는데, 그 냄새 내 몸에 배어들었다. 
 
이거야말로 이곳을 지켜주는 수호신 ; 
제 왕국에 있는 모든 것을 
판결하고 다스리고 영감을 준다 ; 
그것은 요정일까, 신일까? 
 
사랑하는 내 고양이 쪽으로 
자석에 끌리듯 끌린 내 눈이, 
순순히 내 몸으로 돌아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나는 그만 깜짝 놀란다, 
창백한 눈동자의 빛나는 불, 
밝은 신호등, 살아 있는 오팔, 
지그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눈. 
 
 
 
 
 
아름다운 배 
 
네게 들려주고 싶다, 오 나른한 매혹의 여인아! 
네 젊음을 꾸며주는 갖가지 아름다움을 ; 
어린 티와 성숙함이 한데 어우러진 
네 아름다움 네게 그려보이고 싶다 
 
네 폭넓은 치맛자락 펄럭이며 갈 때, 
넌 흡사 난바다로 떠나는 아름다운 배, 
돛 달고 떠간다, 
감미롭고 나른하고 느린 리듬을 타고. 
 
포동포동 굵은 목, 통통한 어깨 위에서 
네 머리는 야릇한 매혹 풍기며 건들거린다 ; 
조용조용, 그러나 의기양양하게, 
위풍당당한 아이, 너는 네 길을 간다. 
 
네게 들려주고 싶다, 오 나른한 매혹이여! 
네 젊음을 꾸며주는 갖가지 아름다움을 ; 
어린 티와 성숙함이 한데 어우러진 
네 아름다움 네게 그려보이고 싶다. 
 
물결무늬 옷을 밀고 불쑥 내민 네 젖가슴, 
당당한 네 젖가슴은 아름다운 찬장, 
볼록하고 환한 그 널판은 
방패처럼 번갯불을 맞부딪는다. 
 
장밋빛 젖꼭지로 무장한 도전적인 방패여! 
달콤한 비밀을 감춘 찬장, 술, 향료, 음료, 
갖가지 맛좋은 것 가득 차 
사람들의 머리와 마음 열광시킬 찬장이여! 
 
네 폭넓은 치맛바람에 펄럭이며 갈 때, 
넌 흡사 난바다로 떠나는 아름다운 배, 
돛 달고 떠간다, 
감미롭고 나른하고 느린 리듬을 타고 
 
당당한 네 다리는 밀어내는 치맛자락 밑에서 
컴컴한 욕정 돋우고 부추긴다, 
깊숙한 단지 속에 검은 미약을 
휘젓는 두 마녀처럼. 
 
어린 장사는 우습게 알 만도 한 네 팔은 
번득이는 왕뱀의 강한 적수, 
가슴에 애인의 모습을 새기려는 듯, 
단단하게 껴안도록 만들어진 것. 
 
포동포동 굵은 목, 통통한 어깨 위에서 
네 머리는 야릇한 매혹 풍기며 건들거린다 ; 
조용조용, 그러나 의기양양하게, 
위풍당당한 아이, 너는 네 길을 간다. 
 
 
 
 
 
여행에의 초대 
 
아이야, 누이야, 
꿈꾸어보렴 
거기 가서 함께 살 감미로움을! 
한가로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으리, 
그대 닮은 그 고장에서! 
그곳 흐린 하늘에 
젖은 태양이 
내 마음엔 그토록 신비로운 
매력을 지녀, 
눈을 통해 반짝이는 
변덕스런 그대 눈 같아.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뿐. 
 
세월에 닦여 
반들거리는 가구가 
우리 방을 장식하리 : 
진귀한 꽃들 
향긋한 냄새, 
용연향의 어렴풋한 냄새와 어울리고, 
호화로운 천장, 
깊은 거울, 
동양의 찬란함, 
모든 것이 거기선 
넋에 은밀히 
정다운 제 고장 말 들려주리.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뿐. 
 
보라, 저 운하 위에 
잠자는 배들을, 
떠도는 것이 그들의 기질 : 
그대의 아무리 사소한 욕망도 
가득 채우기 위해 
그들은 세상 끝으로부터 온다. 
-저무는 태양은 
옷 입힌다, 들과 
운하와 도시를 온통 
보랏빛과 금빛으로 ; 
세상은 잠든다, 
뜨거운 빛 속에서. 
거기엔 모든 것이 질서와 아름다움 
호화와 고요, 그리고 쾌락뿐. 
 
 
 
 
 
돌이킬 수 없는 일 
 
저 오래된 지겨운 <회한>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까? 
그것은 살아 움직이고 꿈틀대며 
우리를 먹으며 살아간다, 송장 파먹는 구더기처럼, 
떡갈나무의 송충이처럼. 
저 끈덕진 <회한>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까? 
 
무슨 미약, 무슨 술, 무슨 탕약으로 
이 오래된 원수 달랠 수 있을까? 
창녀처럼 욕심 많고 우리 몸 파괴하고 
개미처럼 끈덕진 이 원수를 
무슨 미약, 무슨 술, 무슨 탕약으로? 
 
말하오, 아름다운 마녀여, 오! 그대 알거든 말하오, 
부상병이 짓밟고 
말발굽이 짓이긴 죽어가는 병사처럼 
고통에 허덕이는 이 마음에게 
말하오, 아름다운 마녀여, 오! 그대 알거든 말하오. 
 
늑대가 이미 냄새를 맡고 
까마귀가 감시하는 이 빈사자에게 
말하오, 기진한 이 병사에게! 십자가도 무덤도 없이 
이대로 절망해야 하는지를 ; 
늑대가 이미 냄새를 맡은 이 가엾은 빈사자에게! 
 
진흙처럼 컴컴한 하늘을 가치 밝힐 수 있을까? 
아침도 없고 저녁도 없고, 
별도, 음산한 번개도 없이 송진보다 더 짙은 
저 어둠을 찢어버릴 수 있을까? 
진흙처럼 컴컴한 하늘을 가히 밝힐 수 있을까? 
 
<주막집> 유리창에 반짝이는 <희망>의 불은 
숨이 끊겨 영원히 꺼져버렸다! 
달도 불빛도 없이 험한 길 찾는 순교자는 
어디서 묵을 곳을 찾아내랴! 
<주막집> 유리창 불을 <악마>가 모두 꺼버렸으니! 
 
귀여운 마녀여, 그대는 천벌받은 자를 사랑하는가? 
말하라, 용서받지 못할 것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우리 심장을 독살로 겨누고 있는 
저 <회한>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귀여운 마녀여, 그대는 천벌받은 자를 사랑하는가?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은 고약한 이빨로 쏠아먹는다, 
가여운 기념비 우리의 넋을 
그리고 자주, 흰개미처럼, 먹어 들어간다, 
건물의 기반에서부터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은 고약한 이빨로 쏠아먹는다! 
 
-나는 언젠가 보았다, 어느 신통치 않은 극장 안에서 
오케스트라 우렁차게 울려퍼질 때, 
선녀 하나 나타나 지옥처럼 캄캄한 하늘에 
신기한 새벽의 불을 켜는 것을 ; 
나는 언젠가 보았다, 어느 신통치 않은 극장에서 
 
빛과 금과 망사로만 싸인 사람 하나 
거대한 <마귀>를 때렵눕히는 것을 ; 
그러나 한번도 황홀이라곤 찾아온 적 없는 내 가슴은 
헛되이 기다리는 극장,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망사 날개 돋친 그 <사람>을! 
 
 
 
 
 
 
정담 
 
그대는 맑은 장밋빛 아름다운 가을 하늘! 
그러나 슬픔은 바닷물처럼 내게 밀려와, 
썰물 때는 실쭉한 내 입술에 
씁쓸한 진흙 같은 쓰라린 추억을 남긴다 
 
-허탈한 내 가슴 그대의 손이 쓸어주어도 헛일 ; 
사랑하는 사람아, 그대 손이 찾는 건 이미 
여자의 잔혹한 이빨과 손톱으로 헐린 곳, 
내 가슴 찾지 마오, 짐승들이 이미 먹어치웠으니. 
 
내 가슴은 군중들에게 짓밟혀 망가진 궁전 ; 
사람들 거기서 술 취하고 서로 죽이고 머리채 낚아챈다! 
-어떤 향기 감돈다, 당신의 벌거벗은 앞가슴 주위에서! …… 
 
오 <아름다움>이요, 넋에 가하는 가혹한 벌이여, 그대는 그것을 원하겠지! 
축제처럼 환히 빛나는 불 같은 그대 눈으로 
모조리 태워버려라, 짐승들이 먹다 남긴 이 찌꺼기 조각들! 
 
 
 
 
 
가을의 노래 
 
머지않아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 ; 
안녕, 너무 짧았던 우리 여름의 찬란한 빛이여! 
내겐 벌써 들린다, 음산한 소리 울리며 
안마당 돌바닥 위에 떨어지는 장작 소리. 
 
분노, 미움, 떨림과 두려움, 그리고 강요된 고역, 
이 모든 겨울이 이제 내 존재 속에 들어오면, 
내 가슴은 지옥 같은 극지의 태양처럼 
얼어붙은 붉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으리. 
 
나는 듣는다, 몸을 떨며, 장작개비 떨어지는 소리 하나하나 ; 
교수대 세우는 소리도 이보다 더 음산하지 않으리. 
내 정신은 지칠 줄 모르고 쳐대는 육중한 망치질에 
허물어지고 마는 탑과도 같아. 
 
이 단조로운 울림 소리에 흔들려 
나는 어디선가 급히 관에 못박히는 소리 듣는 것 같다. 
누구를 위해서인가? -어제만 해도 여름, 그러나 이제 가을! 
저 신비한 소리는 출발을 알리는 신호처럼 울린다. 
 
사랑하오, 그대 갸름한 눈에 감도는 푸르스름한 빛을, 
다정한 미녀여, 하지만 오늘은 모든 것이 씁쓸하오, 
그 무엇도, 당신의 사랑도, 규방도, 난롯불도 
내겐 바다 위에 빛나는 태양만 못하오. 
 
그러나 사랑해주오, 다정한 님이여! 어머니가 되어주오, 
은혜 모르는 사람, 심술궂은 사람일지라도 ; 
애인이여, 또는 누이인 님이여, 찬란한 가을의, 
아니면 지는 태양의 짧은 감미로움이나마 되어주오. 
 
그것은 잠시 동안의 노고! 무덤은 기다린다, 굶주린 무덤음! 
아! 제발 내 이마 그대 무릎에 파묻고, 
작열하던 하얀 여름을 아쉬워하며, 
만추의 노란 다사로운 빛을 맛보게 해주오! 
 
 
 
 
 
 
어느 마돈나에게 
 
-스페인 취향의 봉헌물 
 
내 사랑 <마돈나>여, 나 그대 위해 세우리, 
내 슬픔 깊은 곳에 지하의 제단을, 
그리고 내 마음 가장 어두운 구석에, 
속세의 욕망과 조롱하는 시선에서 멀리 
하늘빛과 금빛으로 온통 칠해진 둥지를 파고 
그곳에 눈부신 그대의 <상>을 세우리. 
수정의 운韻으로 정성 들여 뒤덮은 
순금의 그물, 다듬은 내 <시구>로 
그대 머리 위에 커다란 왕관을 만들어주리 ; 
그리고 죽음을 면할 수 없는 <마돈나>여, 내 <질투>로 
그대에게 외투를 재단해주리라, 의심으로 안감을 넣고 
딱딱하고 묵직하고 야만스럽게, 
초소처럼 그대 매력을 거기에 가두리라 ; 
<진주> 아닌 내 <눈물> 모두 모아 수를 놓아서! 
그대의 <옷>은 떨며 물결치는 나의 <욕망>, 
봉우리에서 흔들거리고 계곡에서 휴식하며 
장밋빛 하얀 그대 온몸을 입맞춤으로 덮으리, 
내 <경건한 마음>으로 신성한 그대 발밑에 밟힐 
고운 비단 <구두> 그대에게 만들어주리, 
그것은 푹신하게 그대 발 조여주고, 
정확한 거푸집처럼 그대의 발 모양을 간직하리라, 
만일 내 정성 어린 온갖 기술에도 
그대의 <발판> 위해 은빛 <달>을 새기지 못한다면, 
내 창자 물어뜯을 <뱀>을 그대 짓밟고 비웃도록 
그대 발꿈치 아래 갖다놓으리, 
속죄로 넘치는 승리의 여왕이여, 
증오와 침으로 뒤덮인 이 괴물을. 
그대는 보리라, 나의 모든 <상념들>이 꽃으로 뒤덮인 
<동정여왕>의 제단 앞에 늘어선 <촛불>처럼, 
파랗게 칠한 천장을 별 모양으로 비추면서 
불타는 눈으로 언제나 그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 
그리고 내 모든 것 다해 그대를 사랑하고 숭배하기에, 
모든 것이 <안식향>과 <훈향>, 그리고 <유향>과 <몰약>이되니, 
백설이 덮인 봉우리, 그대를 향해 
끊임없이 폭풍우 실은 <정신>은 <증기> 되어 올라가리. 
 
마침내 그대 <마리아>의 역할을 완수하고, 
또 사랑을 잔인함으로 뒤섞기 위해, 
오 어두운 쾌락이여! 한 많은 사형집행관 나는 
일곱 가지 <중죄>로 
일곱 자루 날이 잘 선 <칼>을 만들어 
가차없는 요술쟁이처럼 그대 사랑 깊은 곳을 과녁 삼아 
팔딱이는 그대 <심장>에 모두 꽂으리라, 
흐느끼는 그대 <심장>에, 피 흐르는 그대 <심장>에! 
 
 
 
 
 
오후의 노래 
 
짓궂은 네 눈썹이 
기이하게 보이지만 
천사 같지는 않다, 
매혹적인 눈을 가진 마녀여, 
 
오 변덕스런 여인이여, 
내 끔찍한 정열이여! 
우상 섬기는 제관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난 너를 열렬히 사랑한다. 
 
사막과 숲의 향기가 
뻣뻣한 네 머리채에 풍기고, 
네 머리는 비밀과 
수수께끼 같은 모습. 
 
향로 주위처럼 
네 살결엔 향기 감돌고 ; 
저녁처럼 사람을 홀리누나, 
어둡고 뜨거운 요정이여. 
 
아! 제아무리 강한 미약도 
네 나태함과 견줄 수 없으리, 
넌 죽은 자 되살려내는 
애무를 알고 있다! 
 
네 날씬한 허리는 
등과 젖가슴을 원하는 듯하고, 
나른한 네 자태는 
방석마저 반하게 하누나. 
 
때때로 알 수 없는 네 광란을 
잠재우기 위해 
넌 진지하게 아낌없이 
깨물음과 입맞춤을 퍼붓는다. 
 
갈색머리 여인이여, 
넌 쌀쌀한 비웃음으로 내 마음 찢어놓고, 
달빛 같은 다정한 시선을 
내 가슴에 던지는구나. 
 
네 비단 구두 밑에 
네 귀여운 명주 발 아래, 
나는 놓으리라, 내 큰 기쁨을, 
내 재능과 내 운명을. 
 
빛이며 색채인 너, 
너로 인해 치유된 내 넋을! 
어두운 내 마음의 시베리아 벌판에 
폭발하는 정열이여! 
 
 
 
 
 
시지나 
 
상상해보라, 근사한 차림을 한 <다이아나>가 
숲을 가로지르고 가시덤불 헤치고 가는 모습을, 
머리칼과 가슴은 바람에 맡기고 몰이꾼의 환성에 취한 
그 늠름함, 최상의 기사들도 무색하리! 
 
당신은 보았는가, 살육을 즐기는 테루아뉴를, 
맨발의 민중을 선동해 돌격하게 하고, 
뺨과 눈은 불타오르고, 제 맡은 역도 충실하게, 
주먹에 검을 쥐고 궁궐의 계단을 오르는 그녀를? 
 
시지나 또한 그런 모습이다! 허나 다정한 이 여장부는 
살육을 즐기는 만큼 따뜻한 마음도 지녀 ; 
그녀의 용맹은 화약과 북소리에 끓어올라도 
 
애원하는 자 앞에서는 무기를 내려놓을 줄 알고, 
정열의 불꽃이 휩쓴 그녀 가슴은 
그럴만한 사람에겐 언제나 눈물의 저수지 같다. 
 
 
 
 
 
 
나의 프란시스카를 찬양하도다 
 
새 현악기로 그대를 노래하리, 
오 고독한 내 마음속에 
즐겁게 하늘대는 어린 나무여. 
 
그대 꽃다발을 몸에 감으렴, 
온갖 죄악 씻어주는 
사랑스런 여인이여! 
 
축복받은 <망각의 강>처럼 
자력 감도는 
그대의 입맞춤으로 목마름을 끄리라. 
 
궂은 정열의 폭풍이 
모든 길 위로 휘몰아칠 때, 
그대는 나타났다, 여신이여, 
 
고통스런 파선을 당했을 때 
발견한 구원의 별처럼…… 
이 마음 그대 제단에 바치리! 
 
덕으로 넘치는 연못이여, 
영원한 청춘의 샘이여, 
다문 입술 열어주렴! 
 
그대는 추한 것을 불사르고 
거친 것은 고르고 
약한 것은 굳히었다! 
 
굶주릴 땐 나의 안식처, 
어둠 속에선 나의 등불, 
항상 바른 길로 이끌어다오. 
 
내게 힘을 북돋워다오 
향긋한 향기 풍기는 
다사로운 목욕이여! 
 
내 허리 둘레에서 빛나라, 
오 성수에 적신 
순수한 갑옷이여. 
 
보석 박힌 잔, 
짭짤한 빵, 맛좋은 음식, 
오 신의 술, 프란시스카여! 
 
 
 
 
 
식민지 태생의 한 백인 부인에게 
 
태양이 애무하는 향기로운 나라에서 
나는 만났다, 게으름이 비오듯이 사람들 눈 위로 내리는 
종려나무와 새빨갛게 물든 나무 그늘 아래서 
알려지지 않은 매력 지닌 식민지 태생의 한 백인 부인을. 
 
얼굴 빛은 연하고 따뜻한 이 매혹적인 갈색의 여인, 
목은 고상하게 교태부린 모습이고 ; 
걸을 땐 사냥꾼처럼 훤칠하게 날씬하다, 
미소 짓는 모습 잔잔하고 눈빛은 자신만만하다. 
 
부인, 당신이 만일 진정한 영광의 나라, 
센 강변이나 루아르 강변에 간다면, 
고풍스런 저택에 알맞은 <미인>이여, 
 
당신은 그늘진 은신처에 깊숙이 들어앉아 
그 커다란 두 눈으로 시인을 검둥이들보다 더 온순하게 만들고, 
시인의 가슴속에 수많은 소네트를 싹트게 하리. 
 
 
 
 
 
 
슬프고 방황하여 
말해봐요, 아가트여, 그대 마음 때때로 날아가는지, 
이 더러운 도시의 검은 대양에서 멀리 떠나, 
처녀성처럼 푸르고 맑고 또 깊은 
찬란하게 빛나는 또 하나의 대양을 향해! 
말해봐요, 아가트여, 그대 마음 때때로 날아가는지? 
 
바다, 망막한 바다는 우리네 노고를 달랜다! 
요란한 바람의 거대한 풍금에 맞추어 
노래하는 쉰 목소리의 여가수 바다에게 어떤 악마가 
자장가라는 숭고한 재주를 부여했는가? 
바다, 망막한 바다는 우리네 노고를 달랜다! 
 
날 실어가렴, 수레여! 날 데려가렴, 돛단배여! 
멀리! 멀리! 여긴 우리 눈물로 만들어진 진창! 
-진정 아가트의 슬픈 마음이 때때로 외치는가? 
“뉘우침과 죄악과 고통에서 멀리 
날 실어가렴, 수레여! 날 데려가렴 돛단배여!“ 라고 
 
향기로운 낙원이여, 넌 멀기도 하다. 
맑은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사랑과 기쁨뿐인 그곳, 
거기선 사랑하는 모든 것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고, 
순수한 쾌락 속에 마음이 잠기는 곳! 
향기로운 낙원이여, 넌 멀기도 하다! 
 
그러나 앳된 사랑의 푸른 낙원은, 
달음박질과 노래와 입맞춤과 꽃다발은, 
저녁이면 숲속에서 술잔과 함께 
언덕 저쪽에서 떨며 울리는 바이올린은, 
-그러나 앳된 사랑의 푸른 낙원은, 
 
은밀한 기쁨 가득한 순결한 낙원은, 
이미 인도나 중국보다 더 멀어졌는가? 
흐느끼는 부르짖음으로 그걸 되불러와 
은방울 같은 목소리로 되살릴 수는 없는가, 
은밀한 기쁨 가득한 순결한 낙원을? 
 
 
 
 
 
유령 
 
야수의 눈을 가진 천사들처럼 
나는 그대 규방으로 되돌아와 
밤의 어둠을 타고 
소리 없이 그대를 향해 스며들어가리, 
 
그리고 갈색머리의 여인이여, 그대에게 주리, 
달빛처럼 차가운 입맞춤을, 
웅덩이 주변을 기어다니는 
뱀의 애무를. 
 
희뿌연 아침이 오면, 
그대는 보게 되리, 내 자리 빈 것을, 
그곳은 저녀까지 싸늘하리. 
 
남들이 애정으로 그러하듯, 
나는 공포로 군림하고 싶어라, 
그대의 생명과 그대 젊음 위에. 
 
 
 
 
 
가을의 소네트 
 
수정처럼 맑은 그대의 눈이 내게 묻기를 : 
“야릇한 님이여, 당신에게 내가 무슨 매력 있나요?” 
-그저 귀엽게 입 다물고 있어다오! 내 마음은, 
태곳적 짐승의 순박함 빼놓고는 모든 것이 성나게 하는 내 마음은, 
 
그대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의 끔찍한 비밀을, 
또 불꽃으로 씌어진 그 슬픈 전설도, 
부드러운 손으로 날 흔들어 오래오래 잠들게 하는 요람이여, 
나는 정열을 증오하고, 정신은 날 아프게 한다! 
 
우린 그저 조용히 사랑하자구나, <사랑의 신>이 
제 집에 몰래 숨어 운며의 활을 당긴다, 
그 낡은 무기고 속의 무기를 난 알고 있다 : 
 
죄악, 공포, 광기를! -오 파리한 데이지꽃이여! 
그대 또한 나처럼 가을의 태양이 아니던가? 
오 그토록 새하얀, 그토록 차가운 나의 데이지꽃이여! 
 
 
 
 
 
달의 슬픔 
 
오늘 밤 달은 더욱 느긋하게 꿈에 잠긴다 ; 
겹겹이 쌓아놓은 보료 위에서 잠들기 전에 
가벼운 손길로 무심히 제 젖가슴 주변을 
어루만지는 미인처럼, 
 
부드러운 눈사태 같은 비단결에 등을 기대고, 
죽어가듯 오랫동안 멍하게 몸을 맡긴 채 
창공을 향해 피어오르는 
하얀 허깨비들을 둘러본다. 
 
때때로 한가로운 나태함에 지쳐, 
남 몰래 이 지구 위로 눈물 흘려보내면, 
잠과는 원수인 경건한 시인은 
 
이 파리한 달의 눈물 손바닥에 옴폭 받아, 
오팔 조각처럼 무지갯빛 아롱진 이 눈물을 
태양의 눈이 못 미치는 먼 곳 가슴속에 간직한다. 
 
 
 
 
 
고양이들 
 
열렬한 애인들도 근엄한 학자들도 
중년이 되면 하나같이 좋아한다, 
집안의 자랑거리, 힘세고 다정한 고양이들을, 
그들처럼 추위타며 움직이기 싫어하는 고양이들을. 
 
학문과 쾌락의 친구 고양이들은 
어둠의 정적과 공포를 찾아다닌다 ; 
<에레보스>는 그것들을 상여말로 부렸겠지, 
그것들이 자존심 굽히고 시중을 들 수만 있다면. 
 
생각에 잠겨 의젓한 자태를 취할 때는 
깊은 고독 속에 누워 있는 거대한 스핑크스를 닮아, 
끝없는 꿈속에 잠들어 있는 듯 ; 
 
풍만한 허리에는 마법의 불꽃 가득해, 
고운 모래알 같은 금 조각들이 
그 신비한 눈동자에 어렴풋이 별을 뿌린다. 
 
 
 
 
 
올빼미들 
 
검은 주목나무 아래 몸을 숨기고, 
올빼미들이 줄지어 앉아서, 
이방의 신들처럼 붉은 눈으로 
쏘아보며, 명상에 잠겨 있다. 
 
비낀 태양 밀어내고 
어둠이 깔릴 
저 우수의 시간까지 
꼼짝 않고 저렇게들 있으리라. 
 
저들의 몸가짐이 현자를 가르치리, 
이 세상에서 두려운 것은 
법석과 움직임이라고, 
 
지나가는 그림자에 취한 사람은 
자리를 옮기고 싶어한 것에 대해 
언제고 벌을 받는다고. 
 
 
 
 
 
 
파이프 
 
나는 어느 작가의 파이프지요 ; 
아비시니아나 카프라리아 여자 같이 
새까만 내 얼굴 유심히 들여다보면 알게 되죠, 
우리 주인님이 굉장한 골초란 걸. 
 
주인님이 괴로움에 잔뜩 휩싸일 때면, 
나는 마구 연기를 뿜어대죠, 
일터에서 돌아오는 농부 위해 
저녁 준비하는 초가집처럼. 
 
불붙은 내 입에서 솟아오르는 
움직이는 파란 그물 속에다 
그의 넋을 얼싸안고 달래주지요. 
 
그리고 강한 향기 마구 감돌게 하여 
그의 마음 홀리고 
지친 그의 머리 식혀주죠. 
 
 
 
 
 
 
음악 
 
음악은 흔히 나를 바다처럼 사로잡는다! 
창백한 내 별을 향해, 
안개의 지붕 아래, 또는 망막한 창공 아래 
나는 돛을 올린다 ; 
 
돛처럼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허파는 부풀어, 
나는 기어오른다, 밤이 내게 가려준 
겹겹 물결의 등을 ; 
 
나는 느낀다, 요동치는 배의 온갖 격정이 
내 안에서 진동함을 ; 
순풍과 태풍, 그리고 그 진동이 
 
끝없는 심연 위에서 
나를 어른다, 때로는 평온하고 잔잔한 바다, 
그것은 내 절망의 커다란 거울! 
 
 
 
 
 
무덤 
 
어느 어둡고 갑갑한 밤에 
한 착한 기독교인이 자비심으로 
어느 오래된 폐허 뒤에 
으스대던 그대 몸 묻어준다면, 
 
청초한 별들이 
무거워진 눈꺼풀 감고, 
거미가 그곳에 줄을 치고, 
독사가 새끼 칠 시각 
 
일년 내내 그대는 듣게 되리, 
벌받은 그대 머리 위에서 
늑대들 구슬픈 울음 소리, 
 
그리고 굶주린 마녀들 울부짖음을, 
음탕한 늙은이들 희롱도, 
음흉한 야바위꾼들의 음모도. 
 
 
 
 
 
환상적인 판화 
 
이 별난 유령, 걸친 것이라곤 
해골 이마 위에 괴기하게 올려놓은 
사육제 냄새 나는 끔찍한 왕관 하나. 
그는 박차도 채찍도 없이 말을 숨가쁘게 휘몰아간다, 
이 황량한 늙다리 말도 그처럼 하나의 귀신, 
간질병 걸린 듯이 콧구멍에서 거품을 내뿜는다. 
그것들은 둘 다 허공을 가로질러 질주하며, 
무모한 발굽으로 무한한 공간을 짓밟는다. 
기사는 그의 말이 짓뭉개는 이름 없는 궁중 위로 
번득이는 칼을 휘두르며 두루 돌아다닌다, 
제 궁궐 검열하는 왕자처럼, 
지평도 없이 아득한 차가운 묘지, 
거기 희뿌연 햇빛 받으며 
고금의 역사 속의 온갖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쾌활한 사자死者 
 
달팽이 우글대는 기름진 땅에 
내 손수 깊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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