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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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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이선 시해설

나의 하이퍼시 쓰기 / 이선
2019년 02월 01일 16시 50분  조회:1673  추천:0  작성자: 강려
나의 하이퍼시 쓰기
 
 
1. 상상력의 공간이동
 
파란 해바라기
 
이선
 
고흐의 해바라기 밭에서
노란 해바라기꽃 두 개를 꺾었습니다
 
 
샤갈 그림에서, 파랑색만 손가락에 묻혀
당신 등에 문질렀습니다
해바라기 언덕에는, 종일 해바라기꽃이 핍니다
 
 
나는 김병휘 그림-
파란 해바라기 세 송이를 들판에 남겨 두고
그냥 떠납니다
 
 
뒤돌아서는 발길은 초록 풀섶입니다
 
 
김병휘의 흰 얼굴은
큰 그림책
창백한 여백이 많습니다
 
 
나는 그 여백에 갇혀 온종일
파랑색, 분홍색,
색칠공부하며 놀고 싶습니다
 
 
 
 
 
 
 
2. 상상력의 시간이동
 
갈라파고스Galápagos 섬에서 2/ 이선
 
 
 
 
해초보다 미끄러운 피부의 ‘그녀’를
 
사람들은 ‘물고기자리’라고 부른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아들 에로스가, 접신한 몸
 
‘그녀’ 배꼽에서 적도좌표 원점이 시작된다
 
 
 
다윈핀치새가 뾰로로 쫑~쫑 휘파람소리로 유혹할 때
 
서쪽나라와 북쪽나라로, 적도의 꿈이 갈라진다
 
날카로운 톱날 지느러미, 펄쩍펄쩍 물살을 가르며
 
적도의 꼬리가 힘껏 하늘로 치솟는다
 
꼬리를 맞붙이고, 거대한 섬이 갈라져 서쪽과 북쪽으로 내달린다
 
연모하는 ‘붉은 해’를 향해 양쪽으로 몸을 서로 당기면서
 
 
 
오, 검은 괴수 ‘티폰'이여,
 
낮을 질투하는 밤의 마왕이여,
 
그는 마법을 걸어 아름다운 '이사벨라섬' 입속에
 
초록 ‘가시선인장’을 빼곡히 심는다
 
융기한 젖가슴― 납작한 아랫배
 
이사벨라섬은 발가락과 손가락까지 초록이다
 
 
이사벨라섬 항문을 간지럽히며, 춘분점이 지나간다
 
축축하고 비릿한 땅거미를 삼키는
 
갈라파고스거북,
 
 
 
용암(Lava)을 삼킨 '아술산' 입술, 석양에 붉다
 
 
3. 시간과 공간 순간이동
 
칼릴 지브란에게/ 이선
칼릴 지브란이여, 당신은 말합니다
“몸의 사랑을 나누면
당신과 영혼의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나의 하얀 목을 더듬는
당신 눈에, 그믐달 그림자가 얼룩집니다
백향목 향기 그윽한 ‘지혜의 숲’은 창백합니다
보랏빛, 달무리 스카프를 벗겨
내 벗은 몸에 칭칭 감아 주세요,
지혜라는 이름은 뱀의 혀처럼, 향기롭지만
당신 말씀은 수백 년 동안 느리게 자라서
우거진 ‘백향목 숲’이 될 것입니다
숲의 어두운 잔금을, 달빛이 환히 드러냅니다
내 머리를 틀어 올린, 황금 핀을 빼는 데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갈색 머리카락, 귓불은 조금만 드러낼 것
저 새의 울음소리는, 누구의 잃어버린 욕망입니까?
칼릴 지브란,
당신 詩를, 내 헐벗은 영혼의 이불로 덮고 누운 그 밤에
젊은 여자와 나눈, 정사고백을 내게 하던 당신
―감질나게, 벗었던 옷을 나는 도로 입었지요
내 몸은 난롯불 앞에서도 부끄러움으로 떨립니다
“메리 해스켈*의 별난 사랑을 위하여 건배!”
흰눈 덮인, 레바논 삼나무 숲에
아직 녹지 않은, 에로스의 뿌리를 묻어 둡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내 사랑을 폭력하지 않도록,
* 메리 해스켈: 미혼으로 평생 칼릴 지브란과 정신적 사랑을 나누며 헌신한 칼릴지브란의 책을 편찬한 출판인. 칼릴 지브란보다 훨씬 연상임.
 
4. 링크 - 각 연은 독립적이며 자립적이다
 
 
 
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서
 
 
이선
 
눈썹연필을 깎는데 심이 자꾸 부러집니다
랭보와 베를렌느, 사이에는
푸른 침대와 흰구름, 부러진 연필심이 있습니다
 
바다뱀이 S자로 리드미컬하게 헤엄칩니다
파란 발광채를 발사하는, 꽃등
깊은 바다에는 도로가 따로 없습니다
천지사방 어느 방향이든지 새 도로가 됩니다
물고기는 부리로 초고속 도로를 내며 헤엄칩니다
사랑에도 면허증이 필요합니까?
파도가 나선형을 그리며 밀려오는 긴 밤입니다
⊂거나 ∪∩거나
 
달빛은 어둑어둑 춥습니다
허공을 밀어내는 바람에서 두-둥 빈 소리가 납니다
 
젖은 낙엽 어디쯤에선가
살모사, 풀잎 위로 소리 없이 헤엄치던 밤
바람이 방향을 잃고, 내 속눈썹에 눕던 그 밤
당신은 첫눈처럼 어둠 속에서 빛났습니다
 
지느러미를 흔들며, 당신이 떠난 뒤
나는 미장원에서 긴 파마머리를 자릅니다
“진작, 보라색으로 염색할 걸” 후회합니다
 
랭보는 베를렌느의 마침표가 됩니다
 
 
 
5.
 
 
동백꽃 잎, 또는 공룡의 입
 
이 선
 
 
 
남해안 붉은 동백꽃들은, 백악기의 거센 파도와 해일이 휩쓸어다 바닷가에 펼쳐 놓은 모래사장, 흰 동백꽃 따라 긴 해안선을 걸어간 프로토케라톱스 공룡발자국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지구에서 질식한 삼엽충 꽃말을,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주문하듯, 당신은 중얼거린다. 비릿한 미역냄새, 해풍과 접속한 빗방울의 DNA, 바닷물에 젖은 당신 눈동자에 파도의 페로몬이 묻어난다.
 
벽에 걸려있는 추시계는 몇 년째 1시 17분에 멈춰 있다. 말라버린 시간의 벽에 갇혀, 죽은 줄 알았던 몇 마리 거미가 몸을 움찔거린다. 당신은 첫눈이 내리는 광화문 거리에서, 시위대들과 함께 거리공연을 하는 풍물패를 찍고 있다.
 
악어도마뱀요리가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며 웃는 중국남자의 검은 이가 TV 화면에 클로즈업 된다. 동백 꽃잎, 붉디 붉은 페로몬 향기에 이끌려, 당신이 찍어 온 <여수 공룡발자국 화석 전시회> 사진을 들여다보며 나는 냉동오디를 먹는다. 어느새 화면은 딸기아이스크림 광고가 사라지고, 살품이춤을 추던 여인의 하얀 손가락이 사라지고, 사슴을 잡아먹는 악어의 노란 눈이 확대된다.
나는 타르보사우르스 공룡발자국 분지에서, 키가 ‘줄풀’만큼 자란 붉은 점박이별과 하늘을 날아다니며 노는 꿈을 매일 꾼다. 별똥별이 되어 곧 지구로 귀환할 점박이 아기공룡을 따라 나는 ‘솔잎란’ 꽃씨를 바구니 가득 딴다.
 
6. 중첩 이미지 만들기
세 개의 이미지
 
 
 
 
 
태양이 달의 입술에 엄지발가락을 집어넣는 날,
“지진과 전쟁의 소문이 무성하리라”
올리브나무는 비둘기 입맞춤을 물고
지중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잎사귀 귀를 떨고 있지
아담 겨드랑이에서는 싱싱한 유칼립투스 향기가 나지
 
문명의 아들들은 불의 고리 위에 수많은 대도시를 건설했지
- 화산과 전쟁의 흉터자국
투창과 방패를 베고 잠든 병사의 품에서
재간둥이 암고양이는 불의 고리를 훔쳐 앞발로 톡톡, 재롱을 부리지
나는 미네르바 여신의 어깨에 올려놓은 올빼미 눈이
머무는 곳마다, 두려움에 떨며 초록 세콰이어 나무를 심었네
 
전생 전부터 시작 된 불놀이야
손이 뭉툭한 어머니 지구는, 고막이 터지도록 열병을 앓고 있지
화성과 토성이 일직선상에 있는 날,
암코양이 수염을 자른 건, 이브들 잘못이지
바다가 대륙의 지진을 음모하는, 날에
 
 
7.
 
 
 
북극에서 온 편지
 
 
 
 
 
“툰드라의 아침밥상은 눈꽃 천지인 걸요…”
북극여우가 긴 꼬리로 허공을 흔들며, 빗줄기의 허리를 자릅니다
 
번식기 북극곰의 간식을 만들기 위해서
신은 고요라는 이름으로, 흰눈을 빙하 위에 내려놓으십니다
조용히
 
내 아버지는 툰드라가 되지 못한, 어둠
겨울을 낳다가, 바다로 침몰한 내 어미의 눈빛은
북극성
 
나는 얼음조각 유리바다에서 표류 중입니다
바다 거품과 “안녕!” 입맞춤을 하기엔 나는 아직 늙지 않았소만
―내 고향 그린란드,
 
내 털들이 하늘로 곤두섭니다
얼음판을 놓쳐서 -40℃ 얼음바다로 미끄러졌습니다
 
습지의 낮은 구릉을 지나, 수컷의 향기를 뽐내며
눈향나무 언덕 향해 달리는, 어린 순록의
맑고 유순한 눈빛을 나도 지닌 적 있는데
 
내 심장은 얼음바다를 부둥켜안고, 쪼그라듭니다
참, 내 꼬리가 퇴화한 사연은 짐작하시겠습니까?
―이글루에 발톱을 날카롭게 벼리다가, 수천 번
얼음빙판에 엉덩방아를 찧은 다음, 꼬리가 자라지 않는 겁니다?
내 참…
 
보름달을 사모하며 포효한 것도 죄입니까?
-40도의 얼음바다, 120km 강풍, 내 몸속 짐승의 비애
 
보름달 저주가 아직 풀리지 않았습니까?
얼음을 녹이는 것은, 내 원죄를 지우는 일
나는 퇴화한 꼬리를 치켜세우고, 어둠을 힘껏 문지릅니다
― 흰색이거나, 얼룩무늬거나
 
툰드라의 밤이 녹고 있습니다
순록의 뿔에 찔린, 달웅덩이
 
눈향나무 향기로
추위를 녹이며, 나의 젖은 몸을 말립니다
길은 추울수록, 달빛 투명하고 향기로와서
 
 
8.
 
자서전
 
 
 
 
 
레몬 유카리(Eucalyptus citriodora) 향기가
화장대 거울 위로 흘러내린다
(상큼한 유칼립투스 향수)
 
당신이 ‘망상 중독’이라고 말하는-
유칼립투스 꽃을 채취하던, 푸른 달빛을
흰 샴 고양이, 어깨 위에 올려놓는다
(당신의 웃음소리거나, 나의 울음소리거나)
 
키가 10km까지 자란, 파란 하늘지붕
뭉게구름 발톱에 긁힌
아담의 방언 몇 개, 선캄브리아기 폭풍에 떠밀려
유칼립투스 숲으로 날아갔다는데,
Queensland 북부에서- Victoria 남동부까지
 
늙은 회색코알라는, 아담의 방언을 해독하듯, 말없이
태고의 눈으로, 내 입술을 지긋이 바라본다
“태초에 말씀이 잉태하였나니,”
 
- 나의, 맹장은 2.5cm
나는 이국의 유칼립투스 향기에 취한다
한때는 유칼립투스 꽃의 꽃술이었을지도 모를, 내 입술
천식에 걸린 캥거루처럼,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며
나는, 노랗게 어지럽다
 
- 코알라, 맹장은 3m
독성이 엷어진, 늙은 잎만 골라 먹는 어미코알라
어미의 배설물만 먹으며, 면역력을 키우는 아기코알라
“나의 뇌에는 독성이 없어요.
코알라는 하루 2시간 먹고, 종일 22시간 잠만 자는 걸요“
 
호주 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뉴칼레도니아 독감에 걸렸다, 콜록
 
 
 
 
 
9.
겨울, 카페테라스에서 바라본 TV풍경
 
 
 
 
 
“당신의 연애는 언제부터 해빙을 시작한 것일까요?”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만, 울고 있다
나는 그녀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파랑색 벽을 칠한다
그녀 눈빛은, 비의 얼룩 같은 것이어서
 
네모난 탁자 위에선 레몬차 식어가고
 
그녀의 툰드라 언덕에, 나는 야생 히아신스 꽃밭 향기를 내려놓는다
두꺼운 스웨터처럼, 내 몸은 그녀의 향기로 체온이 급상승한다
여자의 하늘색 머리카락이 허공을 흔들며, 어둠을 자른다
흰 망사장갑은, 여자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조용히 빠져나간다
북극곰 발톱처럼 뾰족한 그녀 손가락이, 움켜 쥔 공허
 
해빙기, 그녀 심장은 더 이상 얼지 않아서
습지의 낮은 구릉을 지나, 노을빛 구름을 뱉어내는
북극양귀비꽃 언덕을 지향하고 있다
 
―40℃ 빙하기 옷을 벗고
다시 사랑을 시작할까? 예감하는 저녁에
 
백야의 푸른 들판을 건너가는 순록 떼,
툰드라가 녹고 있다
 
그녀의 눈꼬리가 내 눈을 어루만진다
 
“빙하는, 빗방울의 힘을 버틸 수 있을까요?”
 
 
10.
 
칵테일파티 효과
 
 
 
 
 
 
새벽 로데오 거리, 안개 숲은 포옹을 풀고
창세기 1장 28절은, 개화와 낙화를 반복합니다
 
내 입술은 당신의 펜촉 끝에서, 빨갛게 착색되거나
억압된 욕망은, 당신의 손바닥에서 결박이 풀립니다
당신, 기억의 저장고에는
패턴분리가 되지 않은, 욕망 알갱이들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당신은 창세기를 거꾸로 읽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여자여, 당신의 욕정은 아직 생리를 합니까?
 
당신 심장의 빠른 박동은, 욕정의 첫단계
그 긴장과 공포를 압축하여 옥죄면, 오르가즘이 증폭됩니다
양버즘나무 열매가 슬몃슬몃, 떨어집니다
잎새들 눈빛이 흔들립니다
 
가로수들은, 등과 등이 결박당하는 꿈에서 깨어나
허공을 잉태합니다
 
결박된 거리의 욕정이 해체되며, 2단계로 발효 중입니다
 
11.
 
 
저녁에 드리는 기도
 
 
이 선
 
 
주여, 내 몸의 마디는 부끄러움과 죄로 뚱뚱합니다
매조히즘으로 뭉쳐진, 내 관절의 혹들
겨울밤, 가난한 초록별들은 내 지독한 마디의 아픔에 <보라색 형벌> 이란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만,
학자들은 나의 혹을 분류하여 <밤나무혹벌>이라 명명합니다
내 마디의 벌레혹들, 초봄에 비밀리에 잉태하여
보리밭에 종달새 알을 낳을 때쯤, 무성하게 자랍니다
눈의 조직들, 3-6개씩 무더기로 산란하고 유충을 부화시켜
원죄의 잎사귀 왕국을 번식시킵니다
 
천둥이 칩니다, 내 죄 때문입니까?
지진과 해일 소문이 무성합니다
남은 죄가 더 있습니까?
 
중독성 강한 밤나무꽃에 모여, 꿀벌들이 춤을 춥니다
반전과 아이러니의 원을 그립니다
원죄의 껍질은 두껍고 질깁니다만, 그 속살은 여리고 아릿합니다
 
내 죄의 유충은 2.5mm, 몸은 유백색, 또는 반투명 회백색-
기름지고 달달하여, 벌레들이 탐냅니다
주여, 벌레들이 갉아 먹다 남긴 부끄러움으로
겨울 별꽃 밭에, 하얗게 한 줄 시를 쓰게 하소서
 
12. 복합적 구성
 
 
저녁입니까?
 
 
이 선
 
 
 
꽃잎 문을 닫는, 저녁입니까?
별빛 부엉이 항문을 닦는, 저녁입니까?
 
파꽃을 잘라 줄까요?
대파 줄기를 잘라야 튼실한 새 줄기가 난다네요
 
구기자, 인동초, 컴프리, 비비추, 만수국, 두릅, 뽕나무, 칠자화, 산딸나무
- 서로 엉기어, 밀치고 밀치며, 키가 자라는 데
안경을 맞춰야 하늘이 보인다며, 농성을 벌이는데 말입니다
 
동네 노인네들 제초제를 마구마구, 뿌리는 날 말입니다
초복날 잡는다고 개를 부지런히 키우는데 말입니다
산수유, 매실, 개복숭아, 농약을 함초롬히 맞고 서 있습니다
 
고비사막, 켜켜이 쌓인 주름살커튼을, 펼치는 저녁
두물머리에는, 황사비, 초미세먼지 자욱자욱,
물결을 지우는 데 말입니다
 
아홉 개 꼬리에서 훌훌, 치솟는 불길 끄려고
여우가 강물에 풍덩풍덩, 뛰어들어
목욕하는, 은근한 저녁에 말입니다
 
민들레 다복다복, 노랗게 핀
계절을 건너
들국화 듬뿍듬뿍, 핀 가을언덕으로
비늘구름 내달리는 저녁 때, 말입니다
저녁 한 끼 건너뛰어도 좋은 그 저녁에 말입니다
 
맨드라미 꼬불꼬불, 꽃길에 갇혀
별빛에 몸을 적시며, 잠들어도 좋은 저녁인데 말입니다
-쉿,
꽁지 붉은 어미 새,
대문 우편함에, 새끼 일곱 마리를 부화시키고 있습니다
- 사람을 경계하며, 대문 맞은편 매실나무 가지에서
수컷 작은 새가 쏘로롱, 쏘로로롱 보초를 서고
 
 
13.
 
 
이브의 예언
 
 
 
이 선
 
 
 
내 꿈을 도둑맞은 적이 있어
내 과거가 나를 협박하는 이상한 날이었지
 
그날 내 전생의 남자가 나를 방문하였지
오늘 내가 탄 파랑색 택시는
2년 전, 대학로 연극이 끝나고 자정에 탔던 택시였어
“아직도 배우세요?”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게 아는 척을 했어
八자 콧수염, 방점처럼 찍힌 미간의 사마귀, 그가 분명해
 
인도 시장 골목을 헤매다, 전생에서 건너온 듯,
상처투성이 맨발 계집아이를 만났어
그 아이의 날갯죽지에 난, 혹을 만져보았지
"갠지스 강에 알을 낳은 네 자매니라"
우렁우렁 물속에서 말하는 것 같은
미세한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증폭되어 들렸어
그 계집아이는 물고기의 DNA를 지니고 있었어
그 계집아이가 바로 나라는 걸, 난 금방 알아챘지
 
2천 년 전 그날부터, 이브의 딸들 DNA는 슬픔을 직감했어
날지 못하는, 남자의 깃털은 부드럽지
아담의 이마엽 향기를 맡아봤니?
지구에서 사라진 새들은, 여자의 심장에 부리를 모아놓은 걸까?
수다의 색깔은, 늘 친절한 빨간색이지
 
자, 시조새로 바비큐 파티를 할 시간입니다!
(마을회관 노인들도 후다닥, 화투판 접고, 소주병 들고)
 
 
14.
 
0, 또는 Oh~ Henry
 
이 선
 
 
 
 
교도소에서 탈옥한 바람은 조금 홀쭉하거나 눈매가 어둡습니다
풋사과 꽃, 수정하기 좋은 날 당신 회색눈동자는 출소했습니다만
 
"O. Henry~"
당신이 잃어버린 미래는 무엇입니까?
감탄사 O든지, 또는 아라비아 숫자 0든지
 
결핵에 걸린 당신처럼, 회색도시의 두툼한 입술은 육감적입니다
당신의 아내 ‘아솔’을 닮은,
 
야생 길고양이가 신발이 닳도록 어슬렁거리며 찾는
달빛꼬리처럼 낭낭하오
 
당근주스 꼴깍꼴깍 마시고, 입을 쓱 닦은 별무리들
입을 O로 벌리고, Oh~ Oh~
"Oh~~ 헨리,"
 
토요일 저녁, 홍대역 9번 출구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마지막 잎새’처럼
3포 시대, 합병증에 걸린 청춘의 클럽문화를 소개하겠소
저들 청춘의 잃어버린 113페이지
의식의 두피에 낀 비듬을 먹고 자란, 가로수의 비애를 논쟁합시다
광란의 춤과 음악으로 밤새 자라난 가시를, 서로 어루만져 주며
새벽거리는 구토를 합니다
가로수의 굽은 줄기를 펴기엔, 네온사인 불빛 허리가 연약합니다만
 
식탁 위에 올려놓은 수박을 닮은, 0의 줄기세포
(햇빛을 못 본 탓인지, 당신 왼쪽 눈이 파르르, 떨립니다)
 
 
이방인 0, 당신에게 나는 집착합니다
천재를 뽐내시는 겁니까?
(나는 0를 질투하며 비아냥거린다)
0는 큰 눈을 몇 번 껌벅이더니, 눈을 감아버린다
(실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 폰을 꺼버린 거지만)
연일 번성하는 ‘0’ 왕국을 지지합니다만,
유행이란 변덕스럽고, 외도가 심한 법인걸요
 
15.
 
이브의 예언
 
 
 
이 선
 
 
 
내 꿈을 도둑맞은 적이 있어
내 과거가 나를 협박하는 이상한 날이었지
 
그날 내 전생의 남자가 나를 방문하였지
오늘 내가 탄 파랑색 택시는
2년 전, 대학로 연극이 끝나고 자정에 탔던 택시였어
“아직도 배우세요?”
그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게 아는 척을 했어
八자 콧수염, 방점처럼 찍힌 미간의 사마귀, 그가 분명해
 
인도 시장 골목을 헤매다, 전생에서 건너온 듯,
상처투성이 맨발 계집아이를 만났어
그 아이의 날갯죽지에 난, 혹을 만져보았지
"갠지스 강에 알을 낳은 네 자매니라"
우렁우렁 물속에서 말하는 것 같은
미세한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증폭되어 들렸어
그 계집아이는 물고기의 DNA를 지니고 있었어
그 계집아이가 바로 나라는 걸, 난 금방 알아챘지
 
2천 년 전 그날부터, 이브의 딸들 DNA는 슬픔을 직감했어
날지 못하는, 남자의 깃털은 부드럽지
아담의 이마엽 향기를 맡아봤니?
지구에서 사라진 새들은, 여자의 심장에 부리를 모아놓은 걸까?
수다의 색깔은, 늘 친절한 빨간색이지
 
자, 시조새로 바비큐 파티를 할 시간입니다!
(마을회관 노인들도 후다닥, 화투판 접고, 소주병 들고)
16.
 
그 숲속, 바람소리처럼
 
이 선
 
 
 
파가니니의 손가락이 지향하는, 바이얼린 현의 능선에는
군화를 벗어던지고 뛰쳐나온, 야생화 구호가 함몰되어 있다
 
“꼭지점에서 뒤돌아 서!”
 
‘처녀치마’의 레이스자락을 밟는 군화소리
거꾸로 힘껏 능선을 뛰어내려오는 ‘노루귀’의 절규
 
캐비어는 철갑상어 가죽의 상처를 기억하지 않는다
어린 풀꽃들은 속기 쉽지
 
‘각시붓꽃’은 사관의 모자를 쓰고
사열을 흉내 내려다가 ‘복수초’ 목을 투두둑, 꺾는다
 
백화점에서 빌린 유모차처럼, 색깔과 모양이 똑같은 지식을 만나면
‘너도바람꽃’
‘꿩의 바람꽃’
 
‘쇠뜨기’ 생식줄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는, 밤
여자들은 ‘얼레지’ 꽃잎 물고, 사내를 유혹하고
-‘홀아비바람꽃’ 씨눈 품는, ‘요강꽃’
사내들은 술과 혁명을 모의하며, ‘양지꽃’ 언덕 구석기시대를 꿈꾼다
 
고라니, 바람을 껴입고
피아노 선율처럼 개울을 건너는, 밤
 
흐느적거리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뿌리에서 다시 뿌리가,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17.
 
기억의 초상(肖像)
- 기형도 시인에게 바칩니다
 
 
이 선
 
 
신들이 잠들어 있는 도시, 족자카르타에는
보름달 뜨는 밤에, 북극성을 찾아 산을 넘는 표범이 살고 있다
 
그믐밤엔, 특히 꿈을 조심하라
꿈 조각 틈새로, 악마의 날갯짓소리 범람하리라
 
아담의 얼굴은 불의 고리- 환태평양 지진대 불의 왕국
손이 뭉툭한 어머니 지구는, 고막이 터지도록 열병을 앓고 있다
-화산과 전쟁의 흉터자국
 
83세의 늙은 어머니는,
2014년에야 한글을 터득한 늙은 어머니는,
암호처럼, ‘입 속에 검은 잎을 물고’
퍼즐보다 어려운 아들의 시를, 읽는다
 
피카디리 극장에는 XXXX년 3월 7일,
기형도의 지문을 기억하는, 아침 9시에 눈을 뜨는 의자가 있다
붉은 의자는 기형도의 이름을 만지작거리며
짜라투스트라의 눈빛은, 버드나무 잎사귀를 닮았다고 중얼거린다
 
27살의 기형도 이름이 요절한, P영화관
극장 입구에는 노란색 리본을 단, 동성애자들이 피켓을 흔들고 있다
 
18.
 
바람기둥에 대하여
 
이선
 
사막의 허공에, 남북으로 길게 카페트를 깔면서 날아가는
시조새를 잡아주겠소?
 
한랭하고 몹시 건조한 내 목소리는, 모래언덕에 분양하여도 좋소
잠자거나
깨어 있거나
 
파랑색 대문 안, 그 책상서랍은 아직 수리되지 않았소?
닫혀 있거나
열려 있거나
 
서랍 속에서 하얗게 질려 기절한, 그녀 목소리는 가늘고 앙칼지오
점심‘전갈비빔밥’양념으론 충분하오
참회의 땅은, 붉은 입술 건너편
고백의 땅은, 무지개 건너편
비늘구름 켜켜이 우거진, 오아시스가 적당하겠소
 
하늘에는 모시조개 구름
땅에는 가시도마뱀
 
직경 10km 크기
시속 7만 km
소행성, 내 식구들 목소리 아직도 울창, 울창 기억하오
 
그 파랑색 구름대문을, 내가 아직 열어두고 나왔소?
 
 
 
20.
 
무릎 자서전
 
 
이선
 
 
 
한 각도에서 떨어져 나온 연골이 삐그덕, 소리를 낸다
 
행성의 틈새로 푸른 잉크빛 바람이 흐른다
무릎연골에서 잘 익은 과육이 빠지고 있다
 
심층 해류가 사는 어느 몬순 기후에서 불어온 습한 바람인가?
-이 비릿한 살바람
 
무릎과 무릎, 사이
관절과 관절, 사이
 
사막모래 언덕에도 선인장 꽃은 핀다
스크린의 검은 자막처럼, 선명한 초원의 배꼽
허공으로 튀어오르는 날치의 은빛 몸부림을 닮은
줄무늬
초록빛 오로라, 모래언덕에 켜켜이 쌓인 빛의 스크럼
아침을 떠나서 저녁의 사랑을 이야기할 시간이다
 
산호섬 저 너머
사막여우, 사막뱀, 전갈 꼬리 저 너머
 
사막의 갈비뼈를 더듬으며 낙타는 모래벌판에
하얀 발을 내딛는다
비릿한 붉은 살점 같은, 텁텁한 공기는
귀납법이거나 점층법
 
은빛 물방울무늬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엔
달빛조차 무너진, 오늘 같은 한밤중이 알맞다
 
“긴 혀를 내밀어 선인장꿀을 맛볼 황홀한 시간입니다. ”
 
무릎 활막 기포들이 헉헉, 숨가쁘게
모래방파제 안개더미 위로, 은밀한 기표들을 뱉어놓는다
(스콜 내리기 10분 전)
 
낙타는 인어공주가 사는 <물고기마을> 전설을 나타샤별에게 듣는다
(무릎 관절이 시릴 때, 미완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21.
 
 
소금꽃을 꺾다
 
 
이선(李仙)
 
 
모래고양이 발톱과 사막의 낙타 발자국은 푸른색인가요, 신이여
그래, 새끼낙타를 삼켜버린 밤도 푸른색이지
어미낙타 눈동자가 점점 줄무늬하이애나를 닮아가요
괜찮아 곧 나이를 먹을 테니까,
뱀의 푸른 눈이 살아 있어요
그래 파푸아뉴기니로 날아가는 8000피트 상공에서도 살아 있더구나
모래고양이가 파 놓은 토굴에 숨어
새끼를 낳는 도마뱀 빨간 엉덩이를 보았지?
거울 속, 염색한 내 빨강 머리카락을 보고 있어요
오늘을 부정하면서, 벌써 내일을 초대한 거니?
이 거리에서 입양에 대하여 말하는 건 금기어예요
그 아이들은 곧 자기의 성이나 이름을 버리게 될 거다
14세 여중생이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았어요
신이여, 날기를 거부한 새가 새벽 공원에는 많아요
밤새 도둑고양이를 피해 잠을 설쳤나보다
그래 삭제할 게 많은 서울거리는 참 부지런하구나
경계경보를 울릴까요, 지금?
땅! 총을 쏘기 전에 선을 넘으면 아웃이라고
 
23.
 
대륙붕 크루즈여행 체험기
 
 
 
이 선
 
 
 
차가운 눈(雪)과 어두운 박쥐가 악수를 하는 저녁
우아한 손님처럼, 경쟁은 또 시작되곤 했지
 
희고 정갈한 탁자 위에
하얀 케이크와 촛불을 켜 놓을까요?
-가면무도회처럼, 23:00 정각에
 
바다는 달빛에 취한 흰 파도 위에, 낯선 물고기들 이름을
샴페인처럼 터뜨린다
청춘이 저지른 실수를 위해 건배!
늙은 가수의 흘러간 팝송이 끝나기 전에
다행히 사람들은 수다를 멈추었다
 
바다는 잃어버린 산호숲을 다시 찾아 나선다
스마트폰에서 삭제된 이름들이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번진다
 
바다 속 200미터 대륙붕 정거장엔
자유를 예약한 크루즈여행 궁전엔
과열경쟁에 지친 탁자들이, 담뱃재를 털러 모여들고 있었다
 
 
 
25. 무의미 불확정 무제한적 상상력의 최대치 확대
 
탁상공론 문명일지
 
 
 
이 선(李 仙)
 
 
 
책꽂이에 거꾸로 돌아앉은 사르트르는
더러운 손과 지저분한 손, 그 차이점을 모르지
바람이 꽃씨의 발화점을 외우는 동안
바다는 구름을 잉태하지
늙은 토인 여자의 자궁은, 그린파파야 향기
 
 
“당신은 곧 당신이 먹은 것”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몸은 화학적으로 다르다는군
프랑스 남자가 고급 바닷가재 요리를 먹을 때
아프리카 아이들은 쓰레기더미를 뒤지지
부자가 먹은 바닷가재 '수은, 비소'가
더 고가의 죽음이라고 현대문명은 우기지
 
 
아프리카 처녀, 녹슨 깡통이 익히고 있는 흰개미죽은
21c 서울처녀가 꿈꾸는 다이어트 음식,
파파야 통조림은 고갱의 여인, 젖은 머리카락 냄새가 나지
 
 
현대문명이 5분 동안 끙끙, 자동차 바퀴를 굴리는 동안
아프리카 사슴은 태어난 지 5분 만에 걷는다네
탯줄 피막 피냄새를 맡고
곧 달려들 맹수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동물들 연애사를 들먹이는 건
철학의 수치라고 사르트르는 주장하지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던 사자의 갈퀴 따윈 잊었다고
현대문명은 또 곧 우기겠지만,
 
26.
 
결론
 
 
이선
 
 
곁가지, 원가지보다 더 길게 뻗은
새벽 찔레꽃길, 건너왔구나.
기어이, 구렁이 입속에서
뒷다리부터 몸통 반쪽 물린, 개구리 울음소리를 만나는구나.
“웩, 웩”
거꾸로 뒤집혀
쑥을 부둥켜안고 파닥이는 장수풍뎅이 집착을 만났구나.
“놓아라, 놓아야 네가 살아”
 
헌 벽난로 연통에서 부화한, 오색무늬 새끼 새들
오늘도 기다리는구나
찌찌찌찌 삐삐삐삐, 요란했던 여섯 바퀴 비행연습
4년째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두나무
자를까, 말까 또 3년을 지켜보는구나
 
꽃뱀이 목 치켜세우고, 코앞에서 나를 노려보는구나
장맛비에, 엄지손톱만한 청개구리 스물세 마리
여기서 톡, 저기서 톡
온 천지가 미끌, 미끌 흐르는구나
―양평군 양평읍 대흥리 300번지, 여름
 
 
27.
 
 
 
서론
 
 
이 선
 
 
그 밤, 성경의 <아가서>를 읽었지
생선비린내가 베어있는 작은 다락방에서
잃어버린 내 청춘, 116페이지 원고를 넘겼지
혁명을 외치는 낡고 더러운 붉은 양탄자 위로
검정도둑고양이가 먼저 지나갔지
앞집 길고양이와, 내 집 길고양이가
네 팔, 네 다리 서로 껴안고, 한데 엉겨붙어
가파른 언덕을 데굴데굴 굴렀지,
 
붉은 단풍나무 그림자가 누워있는
내 의식의 흐름을 흔드는, 개울물소리
자갈 밟히는, 소리
 
냇물 속으로 뛰어든 단풍잎들은
계절을 순환하며,
흰돌을 암갈색으로 물들였지
구름발바닥에서는 풀꽃향기가 났지
똑바로 걸어오던 바람이 뒤돌아섰지
 
‘서다’라는 이미지를 잡고
치타가 긴 꼬리를 돌려, 방향을 바꾸는 밤에
 
 
 
인연론
 
이선
 
불광사, 스님 황금빛 옷자락에
기와지붕 씻어낸 처마 물이 떨어진다
저 빗물은 내가 아침밥상에서 먹은
한강 물이다
 
한 컵 푸른 유리컵 안에는
계곡을 온 몸으로 휩쓸고 내려온
비의 DNA가 숨어 있다
비릿한 살내음이 묻어 있다
 
어제 먹은 쑥차는
오늘 내 몸에서 들풀의 생각을 키운다
 
물길은 제 근본을 버리지 않는다
어제 골짜기에 남겨놓은 비의 족보를
또 다른 빗줄기가 오늘 읽어내린다
 
지금, 계곡 돌틈에 남겨놓은
물의 DNA 족보를, 스님의 젖은 법의가 기운차게 읽어낸다
계곡 물은 넓적한 바위를 지날 때
몸을 납작 업드려 바위인양 딱 달라붙어 낮게 흐르고
높은 언덕에선 눈을 질끈 감고
천길 아래 바위로 뛰어내려, 몸을 만신창이로 부서뜨린다
낮은 골짜기를 지날 때에는
가로 막는 바위를 비껴서
제 몸을 아프게 찢어,
유순하게 두 갈래로 갈라져 길을 내며 흐른다
안개숲을 지날 땐 몸을 가볍게 오므린다
그대여,
 
석촌호수 혼탁한 물에도, 오늘 아침엔
맑은 이슬, 통통 튀며 빗방울 내린다
 
그대여, 콧물을 훔치는가
역한 냄새로 숨어들어, 숨 가쁜 비의 DNA
당신께 무어라 웅얼거리는가
 
 
이사도라 덩컨
 
이선
 
 
아프로디테의 부서진 거품 알갱이들이 얼어붙어
내 몸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나는 믿는다
내 춤의 원소는
1905년 1월 5일, 겨울궁전에서 학살당한 노동자들의 맨발이다
-47˚c 가로수 잎, 잎사귀에 맺혀 얼어붙은
눈물(雪淚)은 내 춤의 세포조직,
 
내 몸의 원소는 바다와 바람,
러시아 설원에 첫발을 내딛는 순록의 맑은 눈망울,
첫눈,
첫 입맞춤
 
“내 영혼이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때까지, 지상을 떠나지 않을 거야”
 
발끝으로 세상을 밟으며
허공을 껴안고 춤추던, 그 밤
별빛에 내 몸이 쓰러지던, 그 밤
안개 숲을 헤치고, 맨몸으로
나이어린 가로수가 나를 부둥켜안고 키스를 퍼부었지
그 밤, 어린 날 사고로 강물에 빠져죽은 내 아들 패트릭
깃털처럼 가볍게 내 품속을 파고들었어
“내가 어떻게 그를 상처낼 수 있겠어?”
―예세닌 내 아들, 내 남편
 
밤마다 그의 꿈은 신경쇠약, 알코올 중독, 간질,
술과 폭력의 공포에 떨며 자살을 기도한다
―젊은 천재시인, 예세닌
 
“내 안의 詩가 날 잠재우지 않아”
내 춤의 날개인, 우주의 긴 푸른 스카프에
소리와 빛을 담고, 나는 뜬 눈으로 그의 꿈을 지킨다
 
 
* 이사도라 덩컨: 1877~1927년 미국 출신의 현대무용의 개척자.
전통 발레를 거부하고 맨발로 춤을 추었다.
 
 
28.
 
 
달팽이 학습일지
 
이선
 
 
월요일 나는 앞얼굴과 뒷얼굴이 다른
껍질이 부서진 달팽이,
내 주인은 아픈 나를 ‘옐로우 트리’라고 불러요
그녀와 나는 자웅동체 한 몸이예요
나처럼 그녀도 우렁이 껍질같은, 곱사등을
형벌처럼 짊어지고 살지요.
작고 왜소한, 달팽이 껍질 같은 그녀
나는 광렌즈 끼고, 매일 그녀를 은밀하게 관찰합니다.
-한번 뒤집어지면 말라죽어버리는,
그녀도 나처럼 똑바로 누울 수가 없어요.
 
화요일 그녀는 매일 달팽이를 관찰합니다
달팽이똥을 이쑤시개로 뒤적이며 근심스레 살핍니다
-녹색, 빨강색, 노란색
나도 그녀 몸을 관찰합니다
그녀 정수리, 미간, 목울대
그녀가 나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나는 그녀를 애처롭게 쳐다봅니다.
그녀가 오늘 밥을 얼마나 조금 먹었는지
내 더듬이는 그녀에게 예민합니다.
 
수요일 달팽이는 어둡고 조용하며 따뜻한 곳을 좋아해요
좁고 아늑한 그녀 방이 좋습니다
그녀는 오늘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싱싱한 상추, 당근, 바나나를 먹여주고 싶어요
그녀 속을 말갛게 헹궈주고 싶어요
 
목요일 새벽이슬은 허기져요
삭제된 그녀의 뇌도 허기져요
신경섬유의 다발성 병변(neurofibrillary tangle)과
초로성 반점(neuritic plaque)
-옐로우 트리,
그녀에게 Dr. 알츠하이머씨가 왕진을 왔냐고요?
 
금요일 기억장애로 햇빛을 폭식하는, 그녀
하루종일 달팽이가 몇 cm 기어갔는지
집착하는, 그녀
솔론드 박사에게 내일은 편지를 부쳐야겠어요
그녀의 알츠하이머 10번 염색체,
11번 염색체에 이상이 생겼는지?
 
토요일 20121213 암호처럼 비종일비 주룩주룩비 주룩
그녀가 연애를 하냐고요?
14살, 소녀의 꿈을 임신중절수술 시킨, 친 오빠
곁가지 꺾인 뒤, 말을 놓아버린 그녀
그녀 속잎이 아파요
오, 나는 그녀와 짝짓기를 할 수 없어요
 
일요일 그녀 베개 밑에 구겨진, 예로우 트리
잠든 그녀 손가락에 더듬이가 닿았습니다
 
달팽이,
뿔에 붙은
꽃불,
 
 
29.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
 
 
이 선
 
나의 젖가슴은 보름이면 살이 오르고
조금 때는 살이 빠진다
해와 달과 별이 내 줄기세포를 키우는가보다
누군가 나를 지었다,
작은 키, 급한 성격, 갈색 눈동자, 예민한 입맛
가는 목소리, 위의 크기와 창자길이,
누군가 내 유전자를 조립한 거다
 
내 정신의 줄기세포는 어디에서 이식받은 것일까?
 
페이지가 접혀,
뇌혈관 어디쯤 파묻혀 있을 니체, 보들레르, 토스토에프스키,
이사도라 덩컨, 까미유 끌로델, 열기와 헛소리
내 피는 샤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가?
파랑색 스카프, 파랑색 가방, 파랑색 원피스,
나의 詩도 파랑색이다.
착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은 나의 詩,
나의 詩에는 적도의 피가 들끓고 있는데
러셀의 연애론보다 더 겁쟁이인 불쌍한 나의 詩,
감염되지 않은 단어가 내 시에 한 줄이라도 있을까?
생각의 껍질까지, 타인의 유전자가 흐른다
(어머니의 눈으로 본 아버지,)
(언니의 코로 맡은 돈 냄새,)
내 몸의 세포조직엔 적도의 바람과 햇빛이 녹아 있다
(한국인의 조상은 동남아인이라고 흥분하던 KBS,
9시 뉴스앵커, 내 두툼한 입술과 주먹코는 분명 남방계다)
 
하늘은 초록색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나무들 밑둥 잡고, 오늘도 땅에다 열심히 글씨를 쓴다
제 생각을 뿌리 채 땅속에다 모두 이식하고 싶은 거다.
 
나뭇잎의 떨림을 이식받아
바람 앞에 내 줄기가 떨리듯
내 굴절된 파장이
혹, 누군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당신 심장 한쪽을 떼어내
내 할딱이는 심장에 마저 붙여주고 갔듯이,
 
지금, 나는 누구의 푸른 눈동자로 응고되어 가는 너를 보는가?
 
* 셀룰러 메모리Cellular Memory: 장기이식 후 기증자의 성격과 습성까지 전이되는 현상.
애리조나주립대학 심리학 교수 게리 슈왈츠(Gary Schwartz)가 처음 발견함.
* 2011년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시> 100인 선정 작품
 
 
30.
 
까미유 끌로델의 외출
 
이선
 
빨강, 주황, 흰색 아네모네 꽃을 내 젖가슴에
탐스럽게 그려줄래요?
나는 연보라색 줄무늬 드레스를 벗고
바람 앞에 가슴을 드러내고, 달빛에 젖을 거예요
북쪽 작업실 창문 모서리엔 노란 수은등
북두칠성 자리에 둥둥 떠 있어요
나는 그 별을 ‘나의 거북이별’이라고 불러요
나는 ‘나의 별’에 천년 동안 등뼈를 문질러댔죠
몽블랑, 에펠탑, 미라보다리 건너
오늘밤에도 내 침실로 달려오신, 당신
오, 나의 어여쁜 신神이여
 
나는 우주의 원기元氣를 빨아들인, 흰돌
로댕의 긴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요
나는 그 커다란 손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껴요
부드럽게 열리는, 돌의 입술
오, 돌의 처녀성
 
“아~악, 난 미치지 않았어요!”
 
로댕의 길고 하얀 손톱이 돌의 입술을 찢어요
점점 야위어가는, 수백만 년 풍화된 흰돌의 갈비뼈
달그락, 누군가 내 전두엽 뚜껑을 열어요
내 천재를 염탐질하는, 당신
차가운 회색눈,
 
별똥별 우르르 쏟아지는, 봄밤
아직, 아기별은 등불을 끄지 않았나요?
로댕, 당신 눈동자가 어두워요
나의 미소로,
당신 눈동자를 반짝반짝 닦아 드릴게요
 
1억 5천만년 후,
 
 
 
로댕, 나는 당신의 초록별로 다시 태어날 거예요,
[출처] 나의 하이퍼시 쓰기|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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