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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과 무의식 – 의식의 주인은 무의식
2019년 02월 01일 17시 24분  조회:883  추천:0  작성자: 강려
 
출처 방정민(hobero338)의 블로그 | 수풀넷
원문 http://blog.naver.com/hobero338/220699340656
3. 의식과 무의식 – 의식의 주인은 무의식
 
인간 행동이나 성격의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무의식은 직접 알 수는 없지만 행동으로 추론될 수 있다. 무의식에 대한 임상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1) 무의식적 욕구, 소망, 갈등의 상징적 표상인 꿈, (2) 말의 실수나 친숙한 이름 등의 망각, (3) 후최면 암시, (4) 자유연상으로부터 도출된 자료, (5) 투사법으로부터 도출된 자료, (6) 정신증적 증상의 상징적 내용.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무의식에는 모든 경험, 기억, 억압된 재료들이 저장되어 있다. 접근할 수 없는, 즉 의식영역 밖에 있는 욕구나 동기는 의식적 조절 밖에 있다. 대부분 심리적 기능은 의식 영역 밖에 존재한다. 동기를 의식할 수 있을 때만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적 치료의 목표는 무의식적 동기를 의식화하는 것이다.
무의식적 과정들은 모든 신경증적 증상이나 행동의 근원이다. 정신분석적 치료는 증상의 의미, 행동의 원인, 건강하게 기능하는 것을 방해하는 억압된 재료들을 밝히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지적 통찰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내담자의 전이왜곡의 훈습을 통해 직면시켜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나도 모르는 부분, 그것이 바로 무의식이다. 의식의 쌍둥이 같은 존재이면서 의식의 구박과 박대를 받아 언제나 의식의 뒤에 숨어 있는 무의식, 그러나 그러다가도 엉뚱하게 자신의 존재를 밖으로 불쑥 드러내곤 해서 우리를 당혹케 하는 무의식, 무의식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여러 학자들이 지적해 오고 있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과 의사로서 배운 최면술 덕분이었다. 최면술을 걸어 의식을 빼앗아야만 비로소 정체를 드러내는 기억, 그것을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 불렀다. 의식을 잃는 경우는 최면술 외에도 최소한 세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죽는 것, 그러나 이 경우에는 의식도, 무의식도 모두 사라지므로 논외다. 또 하나는 술이나 마약 같은 약물의 힘에 취하는 것, 그러나 이 경우에는 대개 무의식이라기보다는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마지막은 기절하는 것 혹은 잠드는 것인데, 이것이 무의식을 경험하는 기회다. 잠이 들면 꿈을 꾼다. 그런데 이 꿈은 의식의 소유자가 마음대로 내용을 선택하고 채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의 발현이라 여기고 꿈에서 나타난 상징을 해석하고자 했다.
흔히 말하는 잠재의식과 무의식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전 인사 나눈 사람 이름을 잊었다가 우연히 생각해 낸다든가, 아침에 흥얼거리던 노래 곡조가 오후에 다시 생각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은 잠재의식과 연관되는데, 프로이트는 이것을 전의식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의식의 일부이며 의식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그에 반해 무의식은 의식의 일부가 아니며, 의식에 의해 억압되어 있으므로 오히려 의식에 대해 대립적이다. 프로이트는 잠재의식과 달리 무의식은 의식으로 전환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의식은 의식만큼이나, 아니 의식보다 더 체계적이며 보편적인 것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그때까지 사람들이 자기 사고의 전부라고 생각해 왔던 의식이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오히려 의식의 수면 아래 잠겨 있는 무의식이 훨씬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더구나 그는 무의식도 의식처럼 나름대로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욕구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무의식 역시 의식을 통해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무의식은 의식에 비해 비체계적이고 우연적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또한 그렇게 때문에 무의식은 꿈이나 농담, 실언 등 우연적인 계기를 통해 그 존재의 징후를 드러내는 것이다. 무의식의 지위를 의식 이상으로 격상시키려면 무의식도 의식 못지않게 체계성을 지닌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다음 과제는 무의식의 구조를 밝히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무의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충동과 감정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이는 이드(id: 라틴어로 ‘그것’이라는 뜻이다. 즉 정체불명이라는 의미이다)다. 또 하나는 도덕적, 사회적 질서가 내면화되어 있는 초자아(superego)인데, 이것은 이드를 억압하는 역할을 한다. 무의식을 이루는 이 두 가지 요소는 서로 다투고 대립하는 긴장관계에 있는데, 이런 상태가 마냥 지속된다면 나는 견디지 못하고 박살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를 완화하고 조절하는 또 다른 요소가 필요해진다. 이것이 곧 자아(ego)인데, 이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에 속한다.
프로이트는 이드의 에너지가 특히 성욕에 집중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의 극단으로 제시하는 것이 이른바 외디푸스 콤플렉스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자고 싶다’는 원초적 욕망이 바로 외디푸스 콤플렉스다.
데카르트 이래 자아의 동일성은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일단 자아를 선험적으로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만 근대의 철학과 학문은 가능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그런 선험적 자아의 환상을 무참히 깨부순다. 우선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근대 철학의 출발점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나도 모르는 나, 나도 모르게 하는 나의 행동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인간 주체를 분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무의식이 의식의 수면 아래에 거대한 빙산처럼 잠겨있다는 사실은 의식을 기준으로 주체를 구성한 근대적 관점을 아예 초토화시킨다. 나도 모르는 나, 나도 모르게 하는 행동이 오히려 더욱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면, 투명하고 자명한 나에 기초한 근대 철학이 설 땅은 이미 없다.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무의식을 정립하면서 자연히 뒤따르게 된 이 명제는 이후에 ‘그럼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구조주의자들은 그것을 ‘구조’라고 보았으며, 프로이트의 뒤를 이은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그것을 언어라고 보았고,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라고 보았다. 20세기 지성사에 컨 영향을 미친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엄청난 반발에 시달렸다. 그것은 바로 무의식도 의식을 통해 말해질 수밖에 없다는 모순, 즉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말로 할 수밖에 없다는 무의식과 의식의 모순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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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프로이트 이론의 핵심 개념은 아마 ‘무의식’일 것이다. 이 개념은 프로이트가 최초로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그 의미는 고대 그리스철학자들도 언급했다고 하고, 특히 니체가 현상학자들도 주목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우리는 너무 흔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상 그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전문가라 해도 거의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독일어의 Unbewuβte, 영어 Unconscious를 우리말로 일반적으로는 무의식(無意識)이라고 변역하는데, 프로이트 전문가라 하는 이무석 박사는 자신의 논문이나 책에서 비의식(非意識)이라고 표현한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이 프로이트의 Unconscious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서 쓰거나, 아니면 한자를 모르고 쓰거나 둘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을 제기하면 정말 무의식이 있냐 하는 것이다. 최근 뇌과학이 발달하고 있지만 이쪽 분야가 아무리 발달한다고 해서 우리 인간의 뇌를 완전히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무튼 개념적으로만 설명하면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의식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무석 박사의 표현인 비의식이 맞다. 왜냐하면 한자의 ‘비’(非)와 ‘무’(無)는 비슷하게 ‘아니다’라는 의미로 쓰일 때가 있지만 철학적 의미는 완전 다르다. ‘비(非)’자는 단순 부정이다. 다음에 오는 단어를 단순 부정하는 단어로 쓰이기 때문에 비의식이라고 하면 의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무(無)’자는 철학적 단어로 그 의미가 상당히 복잡하다. 단순 부정이 아니라 다음에 오는 단어의 근원적 존재(자)가 된다는 의미다. 즉 무의식이라고 하면 의식의 근원적 존재가 바로 ‘무(의식)’라는 것이다.
무사상은 특히 노자의 사상에서 두드러지는데, 노자의 무는 유의 원인이 아니다. 무가 유를 생기하게 한다는 사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형이상학적이고도 존재론적인 표현인데, 무가 유를 창조한 초월적 원인이 아니라, 자기 안에 유가 이미 내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근거라는 것이다. 무가 유를 생산한 원인이 아니라 무의 바탕 안에 이미 유의 무늬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임을 말한다. 즉 허공의 무가 그릇과 바퀴살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는 말이다. 그릇과 바퀴살의 유용함은 그것이 비워있어서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그릇과 바퀴살을 만든 원인은 외부에 있는 장인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존재론적 근거를 제공해주는 것은 바로 무라는 것이다. 집이 집이 되는 존재론적 근거는 그 집을 생산한 목수(집이 집이 되게 한 원인이 됨)가 아니라, 그 집을 자기 안에 품고 있는 허공인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프로이트가 죽기 직전 무의식은 없다고 고백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우리가 의식도 제대로 모르면서 함부로 무의식을 언급하는 것은 큰 오류의 가능성을 늘 안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마음, 또는 의식을 총 8식으로 나눈다.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말나식(末那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다. 말나식, 특히 아뢰야식은 심층의 근저에 도달하는 것으로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무의식보다 훨씬 복잡하고 심오하다.
우리 수업 부재인, ‘시각경험과 이미지’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프로이트는 신경증의 원인을 파헤치면서 성욕의 억압이 환상으로 나타난다고 했는데, ‘매 맞는 아이’는 결국 왜곡된 성욕의 환상(시각 이미지)인 셈이다. 가령, 들뢰즈의 ‘시뮬라크르’처럼 진정한 자기 존재가 아닌 복제물인 것이다. 그러나 이 복제물이 왜곡된 환상(이미지)-이것은 가짜임-이라 할지라도 자기 지속성과 동일성, 내지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는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데아는 아니므로 진리(그 아이의 정체성 내지 성적 욕구)를 알기 위해 복제물인 시뮬라크르, 즉 ‘매 맞는 아이의 환상’, 이 시각 이미지를 잘 분석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출처] [공유] 3. 의식과 무의식 – 의식의 주인은 무의식|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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