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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시학』줄거리 [퍼온 자료]
2019년 02월 04일 20시 33분  조회:2244  추천:0  작성자: 강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줄거리 [퍼온 자료]

 
1. 모방에 관하여 
우리의 주제는 작시술(作詩術)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는 예술 일반의 본질 뿐 아니라 그 종류와 기능에 관해, 좋은 시에 요구되는 플룻의 구조에 관해, 시 구성성분의 요소와 본질에 관해, 그리고 같은 탐구과정에서의 다른 예술에 관해 살펴보기로 한다. 희곡은 물론이거니와 서사시와 극시, 그리고 많은 관현악곡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모방(模倣)의 양식이다. 동시에 이들은 모방매체, 즉 수단의 종류, 대상의 차이, 모방의 방법이라는 세 가지에 의해 구별된다. 모방매체로서의 수단은 전체적으로 리듬, 언어, 화음 등이다. 이는 단독적으로 혹은 복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에 차이를 가져오는 요소를 모방의 매체, 즉 수단이라 부른다. 
모방자가 모방하려는 대상은 인간의 행위인데, 이 행위자는 필연적으로 선인이거나 악인이다. 미덕과 악덕 사이의 경계가 모든 인간을 구분 짓는데, 모방의 대상으로서 인간은 선함에 있어 평균인 이상이거나 혹은 그 이하이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수준이다. 예술은 이러한 차이점을 인정해야 하며, 이러한 차이의 관점으로 표현된 대상에 의해 서로 분리된 예술이 나온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차이점은 비극과 희극을 구분 짓는 것이기도 한데, 후자는 오늘날의 평범한 사람보다 더 천한 인물을 만드는 것이라면 전자는 더 훌륭한 인간을 다룬다. 
예술의 차이 가운데 또 하나는 각 대상의 모방방법에 있다. 모방할 때 수단과 대상이 같은 종류라면, 시인은 어떤 때는 서술체로 어떤 때는 작중인물이 되어 말할 수 있다. 또는 그런 변화 없이 계속 자신에 머물 수도 있다. 모방자가 모든 것을 실제 행하는 것처럼 극적으로 전체 이야기를 표현할 수도 있다. 이들 예술의 모방에 있어서의 차이점은 결국 그 수단과 대상 및 방법이라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에 기인하는 것이다. 
 
2. 예술(시)의 기원 
시의 일반적 기원이 인간 본성의 각 부분인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모방적 창조물이며 모방에 의해 지식을 배우게 된다. 또한 모방에 의해 이루어진 작품에 기쁨을 느낀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철학자뿐 아니라 아무리 능력이 모자란 사람이라고 해도 최상의 기쁨을 선사한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모방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화음과 리듬도 역시 그렇다. 시는 각 시인의 성격 차이에 의해 두 종류로 나뉘는데, 찬가와 찬사, 그리고 풍자시가 그것이다. 비극과 희극이 실제로 나타나자 자연히 시적 취향에 따라 일부 시인들은 풍자시인 대신에 희극시인이 되었고, 다른 취향의 사람들은 서사시인 대신에 비극시인이 되었다. 이 새 예술형태가 전의 것보다 더 장엄하고 가치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희․비극은 즉흥적인 것에 기원을 둔다. 
희극은 보통 사람 이하의 악인을 모방한다. 모든 결점 때문이 아니라 특이한 결점, 추악함이라 할 수 있는 일종의 우스운 것 때문에 악한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이나 해를 주지 않는 과오 혹은 결함이라 규정할 수 있다. 웃음을 자아내는 가면은 고통을 주지 않는, 추하면서도 왜곡된 것이다. 서사시는 장엄한 체의 운문으로 진지한 주제를 모방한 점에서 비극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비극에서의 선악의 판단은 서사시에 있어서의 그것과 유사하다. 서사시의 모든 부분은 비극에 포함된 것이지만, 비극의 모든 부분이 서사시에서 발견되지는 않는다. 
 
3. 비극의 정의와 효과 
비극은 진지함과 그 자체로서 완전한 일정한 길이의 행동을, 즐거움을 주는 장식적 요소와 어울리는 언어로 모방하는 것이다. 비극은 극적이거나 비설명적 형태로, 연민과 공포를 일으켜 주는 사건들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감정의 정화, 즉 카타르시스를 이룩하게 해준다. ‘기쁨을 주는 장식적 요소의 조화된 언어’라는 것은 언어에 리듬과 화음, 혹은 노래가 부가되어짐을 의미하며, ‘분리된 종류’라는 것은 어떤 작품은 운문으로만 완성되고 어떤 작품은 역으로 노래로만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1) 이야기가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첫째로 장경(場景)이 전체의 몇 부분이어야 한다는 사실과, 둘째로 가락과 조사법이 그들 모방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뒤따르게 된다. 여기서 ‘조사법’(diction)이란 그저 운문의 작법을 의미하며, 가락이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어 더 이상 설명을 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표현된 주제 역시 행동을 통해 구현되며, 행동은 성격과 사상 양면에서 현저한 특질을 필연적으로 지녀야 하는 행위를 통해 이뤄진다. 어떤 특질을 그들의 행위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므로 사물이 자연적 질서를 이룸에는 그 행위의 두 원인이 있으니 성격과 사상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 결과로 그들 삶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현실의 행동이 극에서는 이야기와 구성에 의해 표현된다. 행동의 모방이 바로 플롯이다. 우리가 현재 생각하는 ‘구성’이란 용어의 의미는, 이야기상에서 이루어지는 사건과 행위의 결합이며, 거기에서 성격이라는 것은 어떤 도덕적 특질이 행위자에 기인한다고 우리에게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또한 사상이라는 것은 특이한 점을 증명하거나 혹은 보편적 진실을 드러내려할 때 그들이 말하는 모든 언어행위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비극은 그 질을 결정하는 여섯 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니, 구성, 성격(인물), 조사법, 사상, 장경, 그리고 멜로디가 그것이다. 이들 중 조사법과 멜로디는 모방의 수단에서, 장경은 모방의 양식에서, 나머지 셋은 모방의 대상에서 나온 것이다. 
2) 여러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상의 사건을 결합하는 것, 즉 구성이다. 비극은 본질적으로 사람의 모방이 아니라 행동과 삶, 행복과 불행의 모방이다. 모든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행동양식을 취하며 우리 삶의 궁극목적도 어떤 종류의 활동이지 성질은 아니다. 성격이 인간의 성질을 알려주지만, 우리가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극에서 그들은 성격을 전해주기 위해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함으로써 성격을 그 속에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비극의 결과이며 목적인 것은 단편적 이야기와 구성 속에 있는 행동이며, 그 결과는 어디서나 중요한 것이다. 또한 비극은 행동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인물의 성격 없이는 가능할 수 있다. 비극에서 흥미를 끄는 가장 강한 요소인, 급전(急轉)과 발견은(發見)은 구성의 일부분이다. 그 증거의 하나로, 시작 초보자들은 이야기의 구성보다 조사법과 성격에 쉽게 능하게 되는데, 거의 모든 초보 극작가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가장 본질적이고도 핵심적인 비극의 생명이며 영혼인 것은 구성이고, 성격은 이차적으로 오는 것인즉, 이는 무질서하게 아름다운 색깔만 칠해 놓아, 단순하게 흑백으로 그린 초상화만큼의 기쁨도 주지 못하는 그림에 비유할 수 있다. 비극은 일차적으로 행동의 모방이며, 그것이 행위자를 모방함은 주로 행동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결국 비극의 핵심원리는 구성이고 성격은 두 번째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오는 요소는 사상, 즉 말하려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 경우에 꼭 맞는 것을 말하는 힘이다. 이것은 비극의 대사에서 나타나며, 정치학과 수사학의 영역에 공통으로 속한다. 극에 있어서의 성격은 행위자의 도덕적 목적을 보여 준다. 한편 사상은 어떤 특별한 점을 밝히거나 덮어주거나, 혹은 보편적 명제를 밝힐 때 인물이 말하는 언사에서 드러난다. 네 번째 것은 조사법이다. 즉 실제 운문이나 산문이 같다고 할 수 있겠는데, 언어로 그들의 사상을 포현하는 것이다. 멜로디는 비극에서 가장 즐거움을 주는 장식적 요소이다. 장경은 흥미를 끄는 것이지만 모든 요소 중 가장 미미한 미적 요소이며, 작시술과 관계가 가장 적다. 
 
4. 비극의 구조 
비극에 있어 일차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점이라 할 수 있는 단편적 이야기나 사건이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본다. 비극은 전체적이면서도 부분적으로 완전하며 또한 일정한 행동의 길이를 가진 행동의 모방이라고 했다. 그런데 전체적인 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길이 그 자체는 아니다. 전체라는 것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지는 것이다. 시작이라는 것은 어떤 것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것이다. 끝이라는 것은 어떤 것에 이어지면서 또한 그것의 필연적이고도 자연스런 결과이어야 하며, 뒤에 아무 것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중간이라는 것은 어떤 것에 이어지면서 또한 무엇인가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구성은 아무데서 시작하거나 끝나서는 안 된다. 시작과 끝은 지금 말한 것에 적절하게 어울려야 한다. 아름다운 것은 살아있는 생물체이건 부분으로 이루어진 전체이건 모두가 여러 부분의 배열에 있어 어떤 질서를 필요할 뿐 아니라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이란 크기와 질서의 문제인 것이다. 부분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전체나 아름다운 생물체가 눈으로 보아 파악할 수 있는 크기여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나 구성도 적절한 길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주인공이 개연적 혹은 필연적인 일련의 과정을 거쳐 불행에서 행복으로, 혹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전도하기까지의 길이’는 이야기의 길이 제한에 있어 충분한 여유를 주어야 할 것이다. 
 
5. 비극의 특성과 시의 본질 - 문학의 허구성 
행동의 모방은 하나의 전체적 행동, 완전한 전체를 표현해야 한다. 그에 부수되는 여러 사건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어 어느 한 사건이라도 위치를 바꾸거나 삭제하면 전체 연결과 배치가 일그러지게 구성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집어넣거나 빼는 것이 현저한 차이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전체에 필요한 부분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기능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개연적 혹은 필연적으로 가능성을 가진 사건을 기술하는 것이다. 역사가와 시인의 구별은 산문으로 쓰느냐 운문으로 쓰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가는 일어난 일을 쓰고 시인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쓴다. 그러기에 시는 역사보다 더욱 철학적이고 중요하다. 왜냐하면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는데, 시의 서술은 본질적인 좀더 구체적으로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서술이라 함은 일반적인 인물이 개연적 혹은 필연적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서술한다는 의미이다. 시인이 단순히 운문 창조자라기보다는 이야기나 플롯의 창조자이어야 함은 분명하다. 그의 작품에 모방적 요소가 있다 하여도 그는 시인인 것이며, 그가 모방하는 것은 바로 행동인 것이다. 단순한 구성이나 행동에서 가장 나쁜 것은 삽화적인 것이다. 삽화의 상호간에 어떤 개연성이나 필연성이 없을 때 그것을 구성에서 삽화적(揷話的)이라고 부른다. 어쨌든 비극은 완결된 행동의 모방일 뿐 아니라 연민과 공포를 일으켜주는 사건의 모방이다. 그런 사건은 돌발적이면서도 다른 것의 결과로 일어날 때 마음에 대단히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그 사건이 재발성, 즉 스스로에 의하거나 우연에 의해 일어났을 때보다 훨씬 경탄스런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이런 필연의 구성은 다른 어떤 것보다 훌륭한 것이다. 
 
6. 구성의 종류와 요소 - 복합구성과 단순구성, 급전과 발견, 비극의 구성단계 
구성은 단순하거나 복잡한데, 그것은 사람의 행동이 자연히 이 두 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일한 행동이란 하나의 연속적 전체를 이루고 있는 행동을 말한다. 이때 주인공의 운명변화는 급전이나 발견 없이 일어난다. 복잡한 행동이란 급전과 발견 중 어느 하나 혹은 이들 두 요소를 모두 포함할 때 일어난다. 이것들은 모두 구성 자체의 구조에서 생겨나며, 앞 사건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이어야 한다. 필연적 관련으로 맺어지는 두 사건과 단순한 시간적 병렬의 두 사건 사이에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급전(Peripety)이란 극내에서 어떤 일이 한 상태로부터 그 반대 상태로 급격히 변화함을 말하는데, 이것은 또한 사건의 개연적 혹은 필연적 결과이다. 발견(Discovery)이란 말의 의미에서도 그렇듯이 행운이나 불운을 숙명으로 가진 인물이 무지의 상태에서 깨달음의 상태로 바뀌게 되고, 그래서 뜨겁게 사랑하거나 적대적으로 증오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급전을 내포하는 발견은 동정심과 공포감을 일으킬 것이다. 구성의 두 부분인 급전과 발견은 이러한 것이다. 세 번째 부분은 파토스(pathos)인데, 우리는 그것을 파격적이고 고통스런 본성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양적인 관점 즉 개별부분으로 구분할 때 비극은 다음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서사(Prologue), 삽화(Episode), 결미(Exode), 합창가요(Choral) 부분이 그것이다. 
 
7. Catharsis - 비극의 목적, 예술적 쾌락 
시인은 구성을 짜는데 있어 무엇을 택해야 하며 무엇을 피해야 하는가. 비극의 목적은 어떠한 수단에 의하여 달성될 것인가. 비극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위하여 구성은 단순함을 피하여 복잡하여야 하며, 모방의 뚜렷한 기능으로 보아 동정심과 공포심을 일으켜 주는 행동을 모방한 것이어야 한다. 완전한 구성은 단일해야 하며 두 가지 일을 함께 다루어서는 안 된다. 주인공의 운명은 비참함에서 행복으로가 아니라, 반대로 행복에서 비참함으로 바뀌어야 하며, 그 반대의 원인은 어떤 결점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인공에 있어서의 어떤 큰 잘못에 의하여 이끌어내져야 한다. 인물은 보통사람 이상으로 훌륭하게 기술되어야 하며 악한 존재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가장 훌륭한 비극은 말한 바처럼 단일한 구성을 가진다. 
비극적 연민과 공포는 장경에 의하여 일어날 수도 있고 사건의 구성과 사건에 의하여 일어날 수도 있는데, 후자의 방법이 더 좋으며 훌륭한 시인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건의 구성은 실제 보지 않고 듣기만 하여도 그 사건에 대한 두려움과 동정심으로 가득 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극적 쾌락이란 연민과 공포로부터 야기되는 기쁨이며 시인은 그것을 모방에 의하여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므로 사건의 원인은 사건 내부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8. 인물론 - 성격창조론 
성격을 이야기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네 가지 점이 있다. 그 가운데 첫째이며 가장 우선적인 것은 선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목적이 선한 것이라면 성격요소도 선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선은, 여러 형태의 인물들에 있어 비록 그가 비열한 인간이거나 전혀 쓸모없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가능한 것이다. 두 번째 주의점은 성격이 인물에 특유하고 적절하게 꾸며져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성격을 전설상에 있었던 것과 유사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넷째로 전편을 통하여 성격을 지속적으로 통일적으로 꾸미는, 즉 일관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필연적 혹은 개연적으로 후에까지 일관성 있고 지속적이어야 함은 성격에 있어서나 극의 구성에 있어서나 온당한 일이다. 그것은 어떤 인물이 말하거나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의 성격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이기 위함이다. 또한 사건이 연속될 때 어느 사건이든지 그것이 앞 사건의 필연적 혹은 개연적 결과여야 하기 때문이다. 
 
9. 구성의 구조 - 구성론 종합 
발견의 종류에 관하여 우리가 주의해야 할 첫 번째 것은 가장 예술적이지 못한 것인데, 시인들이 창의력 부족으로 인해 흔히 사용하는 것으로 기호나 표식에 의한 발견이다. 그런데 기호나 표식의 사용에는 훌륭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증거의 수단으로 표식을 사용하는 것은 그와 유사한 모든 게 그렇듯이 예술적이지 못하다. 다음은 발견이 시인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조작되는 경우인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이것은 예술적이지 못하다. 세 번째 종류는 기억에 의한 발견으로, 이미 보았거나 들었던 어떤 것에 의해 주인공이 회상으로부터 깨닫게 되는 것이다. 네 번째 종류는 추론에 의한 발견이다. 그밖에 상대편의 잘못된 추론에 의하여 일어나는 복잡한 발견이 있다. 발견의 가장 훌륭한 형태는 사건 자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구성을 설정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점에 유념해야 한다. 먼저 실제의 장면을 눈으로 보듯이 설정하여야 한다. 사물을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관찰하여 표현함으로써 시인은 적합한 방법을 고안해내게 되고 간과해버리기 쉬운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가능하면 시인은 작중인물의 몸짓까지 스스로 행동해 보아야 한다. 같은 재능을 갖고 있다면 자기가 그리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인이 가장 확신을 주고 감동을 던져줄 수 있다. 그리고 삽화의 삽입으로 이야기의 길이를 늘이기 전에 시인은 자기의 이야기를 우선 소묘하고 보편적 형태로 축약시켜 나아가야 한다. 예컨대 ‘오디세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해외에 있었다. 그는 해신 포세이돈에게 항시 감시를 받았으며 늘 혼자 외로웠다. 그의 집에서도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의 아내에게 구혼하는 자들이 그의 재산을 망쳐버렸고 그의 아들을 죽이려고 획책하였다. 그때 그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와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적에게 달려든다. 결국 그는 구제되고 적들은 죽는다. 이것이 ‘오디세이’의 요지이고 나머지는 삽화다. 
모든 비극은 갈등의 부분과 해소의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극이 열리기 전의 사건과 극내에서의 사건 중 어떤 것은 갈등을 형성하고 그 나머지는 해소의 부분을 이룬다. 갈등이라 함은 이야기의 시작부터 주인공의 운명이 불행에서 행운으로 또는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기 직전까지의 부분을 말하고, 해소는 시점에서부터 끝까지의 운명의 전환이 시작되는 부분을 의미한다. 비극에는 뚜렷이 구분되는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복잡한 비극으로 이것은 급전과 발견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둘째는 파토스를 일으켜주는 비극이고, 셋째는 성격적인 비극이다. 네 번째 구성요소는 장경이다. 시인은 앞서 말하는 바를 기억하여야 한다. 
 
10. 사상성과 조사법 - Metaphor 
사상성은 ‘수사학’에서 논의할 것이기에 그것을 전제로 한다. 사상성의 연구는 수사학에 더 밀접한 것이다. 극에서 인물의 사상은 그들이 쓰는 말로 인해 영향을 받는 모든 것, 증명하거나 반박하고, 감정을 일으키고, 사물을 과장하거나 과소평가하려는 모든 노력에서 드러난다. 그런데 인물이 동정이나 공포심을 일으키고 중요성이나 개연성에 대한 적절한 효과를 낳기 위해서는, 그들의 심리과정이 실제 언사 및 행동과 확실히 일치하여야 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행동에 의한 효과는 일상에 대한 설명 없이 생겨나야 한다는 점이다. 효과는 화자가 구어를 사용하여 생겨나야 하며, 그의 언어로부터 결과된 것이어야 한다. 조사법에 관해서, 이런 제목 아래 탐구되는 주제 중 하나는, 말할 때 언어에 가해지는 어조인 것이다. 즉 명령과 기원, 단순한 진술과 억압, 질문과 대답의 차이를 나타내는 어조의 문제가 그것이다. 어쨌든 그런 문제의 이론은 웅변술이나 웅변전문가에게 속한다. 시인이 이런 것을 알든 모르든 시인으로서의 그의 예술은 그 점에 대하여 심하게 비평받는 일은 없다. 
명사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단순한 것 즉 무의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두 가지가 합성된 것인데, 후자의 경우는 의미부분과 무의미부분으로 구성되거나 두 개의 의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합성명사는 또 세 개, 네 개 혹은 그 이상의 부분으로 구성될 수 있는데 확대된 이름의 대부분이 그렇다. 구조가 어떻든 명사는, 사물에 붙이는 일상어이거나, 외래어이거나, 은유이거나, 수식어, 신어이거나, 연장어이거나, 단축어이거나, 변형어이다. 일상어라 함은 한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을 의미하며 외래어라 함은 다른 나라에서 차용된 말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같은 말이라도 외래어일 수도 있고 일상어일 수도 있음은 명백하지만, 그것이 모든 국민에 대한 언급일 수는 없다. 은유(隱喩)는 한 사물에 다른 사물의 이름을 전이하는 것인데, 그 전환은 유(類)에서 종(種)으로, 혹은 종에서 유로, 혹은 종에서 종으로, 또는 유추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유에서 종으로의 은유의 예는 ‘여기에 나의 배가 서 있다’와 같은 표현이다. 왜냐하면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사물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종에서 유로의 은유의 예는 ‘정말로 율리시즈는 일만 가지 선행을 했다’와 같은 표현이다. ‘일만’이라는 특수한 숫자가 ‘수많은’이라고 쓸 유의 자리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종에서 종으로의 은유의 예는, ‘놋쇠로 생명의 물을 퍼올리며(즉 놋쇠로 만든 칼로 베여 피를 흘리게 하며)’와 ‘불멸의 놋쇠로 베면서’(즉 놋쇠로 만든 두레박으로 물을 푸면서)에서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 시인은 ‘벤다’는 의미로 ‘퍼올린다’를 사용하여, 두 말이 모두 무엇인가를 ‘갈라낸다’는 의미를 지니게 한다. 유추에 의한 은유는, 예컨대 네 개의 사항이 있을 때, 제2의 사항(B)이 제1의 사항(A)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가 제4의 사항(D)이 제3의 사항(C)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와 같은 때를 말한다. 왜냐하면 시인은 D대신에 B를, B대신에 D를 은유적으로 대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대치된 말의 관계어를 은유에 부가함으로써 은유를 적합하게 하는 수도 있다. 그러기에 잔(B)의 디오니소스(A)에 대한 관계는 방패(D)의 아레스(C)에 대한 관계와 같다. 따라서 잔은 은유적으로 ‘디오니소스의 방패’(A+D)라 표현되고 방패는 ‘아레스의 잔’(C+B)이라고 표현될 것이다. 그런 유추의 관계에 있는 용어들 몇 가지는 자신의 고유한 성격이나 이름을 지니지 못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은 꼭 같은 방법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할 것이다. 씨앗을 심는 것을 ‘뿌린다’라고 부르는데, 태양의 불꽃이 쏟아지는 것에는 특별한 이름이 없다. 그 이름없는 동작(B)이 대상인 햇빛(A)에 대하여 갖는 관계는 뿌리는 행위(D)의 씨앗(C)에 대한 관계와 같다. 그러므로 시인은 ‘신이 만든 불꽃을 주위에 뿌리면서’(A+D)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적합한 은유의 또 다른 형태가 있다. 한 사물에 다른 이질적 이름을 부여하면서, 그 새로운 이름과 자연히 관련을 맺고 있는 속성 중의 하나를 새로운 의미를 얻음으로써 부정하는 것이다. 한 예로 앞에서처럼 ‘아레스의 잔’이라 부르지 않고 ‘술이 없는 잔’, 즉 빈잔이라 부르는 것이다. 신어는 사람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인데 시인 자신이 만들어낸 말이다. 변형어란 한 부분은 본래대로 남아 있고 또 한 부분이 시인에 의하여 창작되었을 때를 말한다. 
조사(措辭)의 완전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명석해야 하고 저속하거나 조야하지 않아야 한다. 일상어로 이루어진 조사는 가장 명확하지만, 한편 새로운 표현, 즉 외래어, 은유, 연장어 등 일상대화와는 다른 여러 가지를 사용함으로써 조사는 뚜렷하고 운문적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말만을 쓰면 전체적으로 보아 수수께끼가 되거나 야만인의 언어가 된다. 수수께끼라는 것은 단어의 불가능한 조합(다시 말하면 은유적 대치물로는 관계가 되지만 사물의 실제 속성과는 관계가 되지 않는)으로 사실을 기술하는 것을 말한다. 외래어, 은유, 수식어 등은 말이 조야하고 평범하게 떨어지지 않도록 해주고, 한편 일상어는 필요한 명확성을 지켜준다. 조사를 가장 명석하고 비범하게 해주는 것은 연장어, 단축어 및 변형어 등이다. 이것들은 일상어와는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 용법에 변화를 가져다 줌으로써 창조적인 면모를 가지게 하여 주고, 일반적 용법에서 일상어와 많은 공통점을 지님으로써 그것을 명석하게 하여 준다. 따라서 이런 언어수법을 비난하거나 몇몇이 그를 사용하였다 하여 그 시인들을 조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시적 허용을 과대하게 사용하면 우스운 결과를 가져오지만, 그것은 이 수법에 의한 것에 국한되지 않고, 적절히 사용한다면 시어의 모든 구성요소에 이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시인이 부적절하고 웃음을 자아내게 사용했다면 은유든 외래어든 다른 어떤 것이든 그 효과는 동일할 것이다. 시적 허용의 적절한 사용은 대단히 상이한 일이다. 상이점을 알기 위하여 시인은 서사시를 택하여, 일상어가 사용되었을 때 그것이 어떻게 읽혀지는가 하는 것을 관찰하여야 한다. 외래어, 은유 및 다른 나머지에 관하여도 같은 방법을 취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인은 우리가 말하는 바가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곳에만 일상어를 적응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어만의 사용은 그저 평범한데 비해 일상어 대신 한 마디의 외래어를 대치하는 일어의 변화를 가함으로써 시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11. 극예술과 시 - 서사시 
운문으로 된 행위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모방하는 것이 시라면, 그것은 비극과 여러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이 확실하다. 1) 이야기의 구성은 희곡의 구성과 비슷하여 단일한 행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짐으로써 그 자체로서 완전한 전체를 이루어, 생물체의 유기적 통일성과 더불어 그 자신의 적절한 즐거움을 낳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반 역사에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 있으리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역사는 하나의 행위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에 여러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다루는 것인데 이 여러 사건들은 서로 연결되지 못한다. 
2) 이 외에 서사시는 비극과 동일한 종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것은 단순한 것이거나 복잡한 것이어야 하고, 성격적 이야기이거나 파토스적인 이야기여야 한다. 각 부분도 가요와 장경을 제외하고는 비극과 동일하여야 한다. 즉 서사시에서도 비극과 마찬가지로 급전, 발견 및 파토스의 장면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비극과 비교해 볼 때 서사시에는 다른 점이 있다. 구성의 길이에 있어, 그리고 운율에 있어서 그렇다. 행동이 없거나 드러난 성격이나 사상성이 없는 곳에서 오직 요구되는 것은 뛰어난 조사법이다. 반면 성격이나 사상성이 있는 곳에서 과장적으로 수식된 조사법은 오히려 시를 애매하게 하는 수가 있다. 
 
12. 비평에 관하여 - 허구의 진실성 
시인은 미술가처럼 모방가이거나 이와 유사한 창작자이기에, 모든 경우에 있어서 다음의 세 가지 양상 중에서 어느 하나로 사물을 표현하여야 한다. 즉 과거에 있었거나 현재 있는 사물, 있다고 혹은 있었다고 말하여지거나 생각되는 사물, 또 있어야 하는 사물 등이다. 이 모든 것을 시인은 단어의 다양한 수식형태처럼 외래어나 은유를 혼합한 언어로 표현한다. 정치술이나 다른 기술에서처럼 작시술에 있어서 정당성의 규준이 동일하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작시술에서 두 가지 오류, 즉 하나는 그 자체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단지 우연으로 예술과 관련을 가지는 부대적인 것을 범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시인이 사물을 올바르게 모방하려고 하다가 표현력 부족으로 실패한다면, 그의 작시술 자체가 잘못이다. 그러나, 시인이 모방함에 있어, 기법적인 오류(의술이나 기타 기술에 관한 문제)나 사물의 불가능성을 포함시키는, 어떤 부정확한 방법(예를 들면, 움직이고 있는 말을 그리는데 오른쪽 다리 두 개를 모두 앞으로 놓게 하는 것)으로 사물을 기술하려고 시도하는 경우에, 그의 오류가 작시술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제로부터 우리는 여러 문제점에 관해 비평자의 비판을 고찰하고 해결 또는 반박해야 한다. 
1) 시인이 행하는 작시술 자체에 관련하여 비평에 대하여 언급한다. 시인이 기술함에 있어 있을 수 없는 불가능사를 그렸다면 그것은 과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과오가 시의 목적을 이룸에 도움이 되거나 작품의 어느 부분의 효과를 훨씬 놀랍게 만든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시의 목적이 그런 것에 있어 기법적인 정확성을 기하려는 노력 없이도 퍽 쉽게 얻어질 수 있었다면, 불가능사를 그린다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기술은 전혀 과오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이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류가 그런 일에 있어 작시법과 본질적으로 관련된 것인가 혹은 단지 우연에 의해서 부대적으로 관련된 것인가 하고 묻게 될 것이다. 
2) 만약 시인이 그려낸 것이 사실에 맞지 않는다고 평을 받는다면, 그것이 이상상을 그린 것이라고 답변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이 그려낸 것이 사실적인 것도 아니고 이상상의 적도 아니라면 그 평가는 세평에 따르는 수밖에 없다. 시에서 말하고 행하여진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풀기 위하여 우리는 실제의 말과 행동의 내적인 성질뿐 아니라, 그것을 말하고 행하는 인물, 그 상대자, 시간, 방법, 행위, 동기를 고려하여야 한다. 
3) 시인이 사용한 용어를 생각해 보면 또 다른 비평들을 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불가능사라도 그것이 시에서 필요하거나, 이상형이거나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일 때에는 정당화되어야 한다. 시의 목적상 믿을 수 없는 불가능사는 믿을 수 없는 가능사보다 정당한 것이다. 불가능사는 그것이 일반적 견해에 따른 것임을 보여 주거나, 한 순간에 있어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음을 주장함으로써 정당화되어야 한다. 하나의 개연성에 기인하여 발생되는 또 다른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언어에서 발견되는 모순을 우리는 논쟁에서 상대자에게 논박을 가하듯 정밀하게 검토하여야 한다. 시인 스스로 말한 것으로 모순을 범한 것이라든지 양식이 있는 사람이 진실이라고 확신한 바의 것을 인정하기 전에, 그가 의미하는 것이 동일한 관계가 동일한 의미로 동일한 사물에 대한 것인지 아닌지를, 즉 모순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아야 한다. 비평가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은 대략 다섯 가지에 기인한다. 비평에서 말하는 것은, 어떤 것이 불가능하거나, 불합리하거나, 유해한 것이거나, 모순이 있거나, 기법적인 정확성에 어긋나는 것 등이다. 
 
13. 서사시와 비극의 비교론 
더 고양된 모방 형식이 비극인가 서사시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만약 덜 비속한 것이 더 고양된 것이며 항상 더 훌륭한 관객을 대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대중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예술은 매우 비속한 것임에 틀림없다. 비극은 서사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중요한 음악과 장경을 함께 가지고 있다. 비극 표현의 사실성은 실제 연기를 할 때뿐 아니라 읽기만 하여도 실제 공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극의 모방은 결말에 이르기 위해 그리 많은 시간적 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큰 이점을 가졌다고 하겠는데, 훨씬 집중된 효과는, 시간을 길게 잡아 복잡하게 엮어나가 오히려 실망하게 되는 효과보다 더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비극이 이런 점은 물론 다른 점에서도 그 시적 효과에 있어 서사시보다 쉽게 효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더 고양된 예술 형식이라고 할 것이다. 비극과, 서사시의 일반적인 본질과 종류에 대해서, 구성 성분의 수와 성질에 대해, 성패의 원인에 대해, 비평가의 비판 그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해결에 대하여 고찰하였으므로, 이제 이 두 가지 예술에 대하여는 그만 논의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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