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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새 진로: 상상을 통한 문학의 길 박양근 (부경대 영문과교수, 문학평론가
2019년 02월 24일 20시 50분  조회:1239  추천:0  작성자: 강려
<수필의 새 진로: 상상을 통한 문학의 길>
 
수필의 새 진로: 상상을 통한 문학의 길
박양근 (부경대 영문과교수, 문학평론가)
 
1. 짧은 시간의 긴 만남을 위하여
 
수필은 ‘짧은 시간의 긴 만남’이다. 5분 미만에 읽는 한 편의 수필에는 작가가 겪어온 생활과 개성적 사유가 함유되어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하루를 보낸들, 며칠을 함께 여행한들, 그의 본성을 모두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문화비평가 콜라쿠시오가 “한 나라의 민족성을 알려면 그 나라의 고전을 읽어라.”고 하였듯이 사람을 알기위한 가장 적절한 방식은 그의 수필을 읽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수필은 글쓴이의 자전성이 강하게 배어나는 문학으로서 이러한 자전성과 문학성을 결속시키는가라는 방식이 문제로 남는다.
수필문학의 정체는 물상의 내적 의미를 밝혀내는 ‘의미화 작업’이다. 그리고 의미화는 미적구조로 구축되는 과정으로써 수필의 문예화는 상상이라는 얼개에 걸려져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진지한 수필가는 한 편의 수필을 쓸 때 체험을 나상의 상태로 기록하지 않고 미적구조로 변환시킨다. 이러한 수필화 작업이 상상에 의존하는 이유는 수필은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상상의 재구성이기 때문이다. 문학적 상상이 없으면 현실 상황이나 사물을 묘사하더라도 외적 묘사에만 그치게 되고 그런 수필은 수기나 생활보고문에 그쳐버리기 십상이다.
문학적 상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삶 자체가 수필적일 필요가 있다. 자동차를 타기도 하지만 한번쯤 틈을 내어 바닷가 바위틈을 걸어보는 불편을 마다하지 않고, 냉잇국을 좋아하는 마음의 가난함을 거부하지 않고, 무리지어 수다를 떨기보다 홀로 핀 야생초와 대화를 하면 좋은 수필이 다가온다. 이러한 고독, 소외, 초연은 현실과 유리된 삶을 추구하자는 유혹이 아니라 우주와 소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져야한다는 필수조건으로서 사물의 의미를 포착하고 문학을 이해하는 기회가 된다.
 
 
2. 좋은 수필의 요건은 무엇인가
 
좋은 수필은 시적이고 소설적이며 드라마틱하다. 시보다 영감이 넘치며 소설보다 구성력이 뛰어나고 드라마보다 현장감이 있어야한다는 요청이다. 수필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소설적 요소와 삶의 단편을 극명하게 무대에 올리는 드라마적 요소, 그것에 율격을 부여하는 시적 요소가 조화롭게 어울려야 하는 것처럼 수필은 사상과 철학을 담되 딱딱한 외골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달리 말하면 영성과 샤머니즘에 가까운 소통으로 인간애와 자연애를 그려내면서 사회학, 신화, 생물학과 구별된다.
수필의 문학성은 무엇보다 언술을 격조 있게 발전시키는 데 있다. 진솔한 수필은 부끄러운 약점, 잘못된 실수, 숨기고 싶은 결점을 포함하여 자신의 모든 면을 진지하게 성찰하여 표현해낸다. 서사를 전개하는 구성, 적절한 비유, 참신하며 유연한 문체를 통해 체험을 형상화하고 의미화한 수필은 춘풍처럼 부드럽게 속삭이고 때로는 날선 비수처럼 폐부를 찌르며 때로는 가을 낙엽처럼 처연한 몸놀림을 보여주게 된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필의 서사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서술구조와 의미전달과의 관계를 안정감 있게 구축하는 데 있다. 그것은 압축성, 독창성, 절제성, 체험성, 소통성, 해학성, 서사성, 그리고 심미성의 기법을 차용하는 일이다
위대한 문학작품일수록 독자에게 제공하는 해석의 폭은 넓고 무한하다. 해석의 무한상은 텍스트가 그 자체로서는 불안정한 존재라는 말과 같다. 독서의 대상으로서 텍스트는 작가가 꾸며낸 스토리와 선택한 담론의 결합체가 아니라 독자의 관점에서 읽고 수용하는 대상이라고 할 것이다. 사실 독자가 작품을 통해 향유하는 즐거움은 독서 행위를 통해 습득하는 다양한 의미의 생산이라는 점에서 수필은 본질적으로 열려진 텍스트여야 하며, 이러한 텍스트와 독자의 관계를 데리다(Derrida)는 "산종(Dissemination)"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Cuddon 250). Cuddon, J. A. A Dictionary of Literary Terms and Theory. Oxford: Blackwell, 1991.
하지만 수필의 열려진 구조는 허구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서사성을 바탕으로 하는 수필이 허구적 구조가 아니라 열린 구조를 가진다 함은 스토리를 이루는 등장인물, 배경, 사건을 왜곡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행동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밝히거나 독자 스스로 의미를 찾아내도록 미적구조를 구축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수필의 가독성과 의미의 확장을 간과하고 수필의 사실성을 허구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작금의 논쟁은 소모적일 뿐만 아니라 본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 수필이 의미구조를 통하여 의미를 생성하고, 미적구조를 통하여 심미감을 전유(傳諭)하려면 어떤 조건을 구비하여야 하는가.
우선 수필에는 언술의 4차원이 충족되어야한다.
1차원은 고백의 진지성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허구가 끼어들 여지가 없으며 사실의 왜곡이나 누락은 문학의 진실성을 훼손하면서 말 그대로 신변잡기가 되어버린다. 문학성을 추구하는 작가는 일상을 기본소재로 하면서도 일상의 다양성, 수용의 다양성, 지식의 다양성, 그리고 표현의 다양성을 통해 자기의 문학적 자질을 발전시켜 나간다. ‘내가 하니까’ 개성이 아니라 ‘나만 할 수 있으니까’ 개성이다. 다양한 문학의 재료인 인생을 자신이 지닌 색깔로 서술하여야 자조와 자성과 자각의 공유가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수필을 최고의 인생학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차원은 지적 생산성을 가진 수필을 말한다. 캐캐묵은 지식이나 피상적 개념으로 짜깁기한 글은 설득력뿐만 아니라 정보의 바다인 IT시대에서는 인상미와 호소력이 부족하다. 산문으로서 수필은 신선한 지성, 객관적 논리, 공유화되는 경험이 수반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문학의 효용론에서 말하는 교훈설에 부응하는 요건으로서 수필은 아는 것만큼 쓴다고 하듯이 읽을거리가 있어야 독자가 공감하고 생각거리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체계화된 지식이 아니라 흩어진 이삭 같은 글이라면 별다른 소용이 없을 것이다.
3차원은 연륜의 향기가 풍겨나야 한다는 뜻이다. 연륜이라 함은 인공적인 지식이나 싸구려 감정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과 사물을 이해할 수 있는 포용력과 관용을 말한다. 과거의 체험을 반추하여 현재와 현실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지식 그 자체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종합하고 분석하고 체계화하는 능력, 달리 말하면 메타지식체계를 담아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지적 여과장치를 거친 글은 미래와 우주를 꿰뚫어내는 통찰력을 지니게 된다.
4차원은 예술가적 소명감을 지니는 경우다. 시적 요소인 미래, 이상, 감각, 사색, 감성, 직관이 수반되는 이 단계에서는 수필의 완성단계인 예술수필이 나타난다. 지정의(知情意)가 문자향(文字香)을 얻고 우주를 읽어내는 투시력(透視力)을 지닐 수 있다는 말이다.
잡문수필가가 자신이 수필가라는 명예에 골몰하는 현시욕(現示慾)에 빠지고 저자수필가는 양적 발표에 집착한다면 작가수필가는 비로소 문인다운 수필가로서 하나의 표현에도 문학성을 저울질하고, 마지막으로 예술가수필가는 영감의 문학화에 헌신하는 끼를 실천한다고 할 것이다.
 
 
3. 상상력의 3가지 질문
 
노드롭 프라이는 일찍이『문학의 구조와 상상력』에서, “상상력이란 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있음직한 본보기(model)를 구성하는 힘이다”라고 정의하였다. 베이컨은 “상상은 사실의 세계에 매이지 않고 사실들을 마음대로 변형시켜 사실보다 더 아름답게, 더 좋게, 더 다양하게 만들어 즐기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영국의 수필가인 조셉 애디슨(Joseph Addison:1672~1719)은 「상상의 즐거움」이라는 평론에서 “상상은 감각의 대상이 없을 때에도 머리 속에서 심상을 만들어가며, 여러 심상들을 융합하여 전혀 새로운 심상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풀이하였다. 상상력이 ‘경험을 토대로 한다’ 함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과 비판을 의미하고, ‘있음직한 본보기를 구성하는 힘’이라 함은 ‘우리가 살고 싶은 이상 세계’의 제안을 뜻하며 “새로운 심상을 형성한다.” 함은 현실의 이상화라는 변증법적 상상을 의미한다.
수필적 생성은 “새롭게 보기”다. 작가는 체험 속에서 새로운 눈으로 새롭게 선택된 소재를 가지고 새롭게 형상화한다. 이때 “새롭게”라는 뜻이 바로 작가 나름의 체험과 인식력을 바탕으로 극히 평이한 소재조차 남다른 가치와 실존성을 지니도록 하는 의미화 작업을 말한다.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표현하면 이미지와 의미가 재창조된다. 작고한 김병규 씨가 “수필가가 일상생활 속에서 여태껏 발견되지 못한 것을 발견하여 썼을 때 그것은 하나의 창조에 해당한다.”고 했을 때 그가 의도한 창조의 의미는 “새롭게 보기”에 일치한다. 그렇다면 상상은 미완의 무엇인가를 완전하게 꾸미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상상력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다. 오직 인간만이 시공을 초월하여 경험을 분석하고 종합하며 때로는 의식주라는 생존조건을 무시하면서까지 문화와 예술을 통해 더욱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창조력과 상상력을 지닌다. 작가는 부단하게 움직이면서 생각하고 인생을 통해 주변을 항상 주시하지만 저편에 있는 그 무엇과 제3자가 세월의 주름을 새기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을 모를 경우가 많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갑자기 그라는 존재와 자신 사이에 어떤 굴레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기본적으로 오감을 통해서 대상을 만나지만 사실은 영감만으로 새롭게 포착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가 존재한다. 여기에 상상이 필요하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되는 시간과, 이곳과 저곳이라는 이분법으로 분할되는 공간은 상상계에서는 저해 요소가 되지 못한다. 또한 기술과 문명이 지금도 진화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답보하는 세상에 만족할 수 없다. 하지만 상상은 시간과 과학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상상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심신 안에 무의식 상태로 숨어있을 수도 있고, 오감을 넘어선 저편에 있을 수 있으며, 인류가 꿈꾸는 미지의 세계일 수 있고, 물리적으로 아무리 노력하여도 도달할 수 없는 초월적 우주일 수도 있다. 가령 작가가 꽃병에 담긴 싱싱한 꽃과 쓰레기통에 버려진 시든 꽃을 대비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한 편의 글을 쓰게 되더라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동일시의 사색 과정이 주어지지 않거나 그 과정이 어렵기 마련이다. 따라서 작가는 꽃과 인간에 관해 가능한 모든 생각들을 떠올려 보아야 하며 그 미지의 세계로 작가의 영혼을 안내하는 인공위성과 같은 것이 상상력의 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상력이 철학적이며 미학적 담론이라는 난해한 풀이를 할지라도 그 본질적 요체는 “왜”라는 부단한 질문에 불과하다. “왜”라는 질문은 인식의 입구로 들어서는 초인종과 같으며 질문의 대상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로써 모두 우주를 대상으로 한다.
첫째는 대상이 지닌 근원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다. 이를테면 “무엇?”이라는 내재적 질문이다. 근원은 오감이 포착할 수 없는 미지(未知) 그 자체로서 사랑의 근원, 미움의 근원, 존재의 근원, 아름다움의 근원, 갈등의 근원, 죽음의 근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새(鳥)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조류도감에 해설된 새가 아니라 새라는 존재의 뿌리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에 대한 무한한 궁금증을 말한다.
둘째는 우주 전체에 대한 외향적 질문이다. 작가가 선택한 제재가 우주 전체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외적 물음이라고 하겠다. 우주의 대상 하나 하나는 다른 우주의 대상과 유기적인 관련성을 맺고 있으며, 역으로 범우주 역시 개체로서의 대상과 이어지는데,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제재를 통해 우주는 무엇이며, 우주는 어떤 구조와 층으로 이루어있는가 하는 전모를 이해하려는 소망을 꿈꾼다. 작가는 “새는 왜 나무에 머무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새와 나무, 새와 하늘, 새와 둥지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모든 대상이 우주의 일부이면서 독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야한다.
셋째는 선택한 제재를 매체로 인간 세계를 향해 던지는 인과적 질문이다. 곧 “그렇다면”에 해당한다. 모든 인간이 그 제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묻다 보면, 작가는 어느 순간 대상과 우주와 인간이 거대한 패러다임 속에서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새의 울음은 내겐 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다 보면 새, 자아, 타자, 그리고 우주가 거대한 구조를 이룬다는 독특한 인식 방법과 안목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면 작품을 통해 진정한 수필가는 상상력을 이용하여 어떻게 질문을 던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첫 번째 예는 대상을 근원 세계와 연결시켜 질문을 던지는 경우이다.
 
바싹 마른 옥수숫대 너덧 잎 남은 이파리가 몸뚱이를 감싸 안고 바람 앞에 울고 있다(청각). 한 잎은 꺾이어 아랫도리를 감았고, 또 한 잎은 위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시각) 누렇게 마른 이파리는 영락없는 삼베다. 꺼칠하면서도 풀 먹인 베처럼 온몸을 두르고 있다.(촉각) 덩굴이 기어올라 등허리를 감아버린 모습 같이 말라 있다. 그것도 제 몫이려니 참아낸 옥수숫대. 마른 잎 속에는 비바람과 폭염에 시달린 삶이 숨겨져 있다.
-강돈묵, 「옥수숫대」 일부
 
옥수숫대의 종말에 대한 명상을 보여주는 이 글에서 작가가 도달하고자 하는 근원은 죽음이다. 옥수수의 죽음에 대한 질문 속에는 우주의 근원에 대한 구도자적 사색이 발견된다. 시각, 청각, 촉각 이미지로 가득한 상상을 통해 죽음이 무엇인가를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줌으로써 대상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한다. 이것은 마치 작가가 물속에 들어가서 물위에 있는 사물을 살피기 위해 잠망경을 올려 돌려보는 것과 같다.
전반부의 표층적인 줄거리를 보면 바싹 마른 옥수숫대의 묘사에 불과하다. 겨울바람에 노출된 옥수숫대는 말라서 물기도 생명이 없지만 비바람을 맞이하는 꼿꼿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을 의미화하면 무엇인가를 지켜내는 성자나 수행자 같기도 하고 가족을 위해 모든 기운을 다 쏟아버린 늙은 가장의 모습이기도 하다
옥수수의 이야기를 인간의 이야기로 읽기 시작하면 충격적인 인식의 세계와 만난다. 옥수수가 보여주는 것은 다름 아닌 삶의 과정이 옥수수에서도 나타나고, 모든 시공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강돈묵의 옥수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살다가 죽어 존재의 근원으로 귀환한다. 그 간절한 순간에 작가는 옥수수를 안테나로 삼아 생멸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우주와 교신하려한다. 작가가 사별이라는 극적 순간에 어떤 영성을 체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문인에게조차 이러한 체험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경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질문은 작가가 상상력으로 대상과 우주 전체를 연결시켜 질문을 던지는 경우이다. 이러한 예로는 김용옥의「수련」을 들기로 한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서 상상력이 얼마나 원대하고 강력한 투시력을 발휘하는 가를 새삼 깨달을 것이다. 진지한 작가라면 누구나 일생동안 우주의 근원에 질문을 던지지만, 그 탐구 결과를 제대로 들려줄 수 있는 수필가는 드물다. 그래서 현재 살아가는 우리 수필가가 탐구하여야할 질문거리가 여전히, 어딘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
 
좁은 물둠벙을 메우다시피 한 수련잎 사이로 눈이 부시게 하얀 꽃 한 송이가 떠 있다.(질문1) 백옥같이 흰 꽃잎으로 울 두른 속을, 샛노란 꽃술들이 촘촘히 도열하여 또 하나의 작은 원을 그리고 있는 수련 한 송이. 꽃이라기보다는 사뿐히 물 위에 내려앉은 선녀의 모습이다.(답1-1) 새하얀 색과 샛노란 색의 신비한 조화는 그 청순함이 극에 이르러 있다. 이럴 때의 수련은 정녕 관음보살의 화신이 아닐 수 없다(답1-2)는 생각에 조용히 두 손을 모은다.
맑은 물 속에는 다음으로 피어날 봉오리가 말없이 기다리고 서 있다.(질문2) 그것은 두 손을 곱게 합장한 소녀의 손이다.(답2-1) 그 봉오리에 시간이 여물어 꽃을 피울 양이면 우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그러다가 아침 해돋이부터 모았던 봉오리를 조금씩 조금씩 펴기 시작한다. 이어 연못 가득 아침 햇살이 덮는 때를 기다려 수련은 순백의 속살을 살포시 펼친다.
일생일대의 찬연한 개화이다.(답2-2)
-김용옥, 「수련」 일부
 
한 마디로 놀랍고 경탄스러운 질문과 답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무심히 피어나는 연꽃 하나에서 우주의 생명과 생태계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가. 강돈묵의 옥수숫대가 안테나로서 우주와 교신하고 있듯이 김용옥은 연꽃의 형상에서 소녀의 기도 모습을, 이미지에서 관음보살의 화신을, 기능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마이크가 된다. 화자는 우주의 신비로운 변화를 외계에 전파하는 천체망원경의 구실을 연꽃에서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김용옥의 연꽃은 시인조차 부러워할 영성을 지니게 된다.
상상력을 지닌 작가는 과학자보다도 먼저 우주를 비행하고, 철학자보다 앞서 우주의 근원 세계와 교신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근원세계에 도달하고자하는 간절한 수행과 미미한 물체에서조차 우주의 태아로 볼 수 있는 내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상상은 초월적인 영성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밤을 새워 공부하는 작가, 뼈를 깎는 노력, 그리고 허명을 버리고 무욕으로 정진하려는 작가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세 번째 질문은 대상과 인간 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보는 작용과 관련된다. 설령, 탁월한 상상으로 사물의 근원과 전체 우주를 향한 투시가 가능하더라도 그것을 삶과 연결시킬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우주가 전하려는 가치는 작가 자신과 우주가 연관성을 맺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을 때 나타난다. 그러므로 작가에 내재하는 상상력은 대상을 매체로 하여 우주적 관점을 찾는 X-레이와 같은 투시경의 역할을 한다.
 
한발 두발 숲길을 따라 걷는데 앞 산등성이에서 ‘솨아아’ 소리를 내며 불어오는 바람소리(현상1)에 발을 멈추었다. 정수리부터 가슴까지 오장을 타고 흘러드는 시원한 소리는 심한 갈증을 풀어내 준 샘물 (투시1)같았다. 그 맑은 바람에 취해 정신을 잃고 있는데 또다시 초록색 잎새 사이에서 마른 침엽수 잎이 우수수 (현상2)떨어져 내렸다. 소나무는 이른 봄 내 머리에다 풋 익었던 인생의 낙엽(투시2)을 고스란히 떨구어 주었다. 그 밑 넓은 공간은 마른 갈비가 고르게 펼쳐져 있어 보료를 깔아놓은 듯 했다. 두 사람은 달려가 그 자리에 벌떡 누웠다.
눈앞의 빽빽한 초록 숲 사이로 간간이 햇빛이 새어 들어왔다. 그 녹색의 파노라마 속에 휩쓸려 쾌적하고 상쾌한 솔바람 소리를 드는 행복감은 말하지 않아도 전류가 되었다.(교감) 사랑의 눈빛이 푸르름 안에 번졌다. (관상(觀想))
-박종숙,「소리1」일부
 
화자는 숲길과 바람소리와 침엽수 잎의 자연현상을 통해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삶의 계단에 도달해 있는지를 계속하여 자문한다. 숲길을 지나가는 바람과 나뭇잎을 투시하면서 화자는 이것을 촉감이나 시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영감으로 “그러면 그들은 내게 무엇인가?”라고 내적 질문을 던진다. 나아가 바람을 영감과 생명의 원형으로 인지하여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과 삶을 연결하는 입체적 시선을 얻게 되었다. 숲 속에 간간이 비치는 햇살과 솔바람 소리에서 행복을 느끼는 화자는 타자 중심의 실존을 인식하며 이때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보은(報恩)이다. ‘나는 바람으로 산다.’라는 다음 단락의 시적 도입문이 보여주듯이 화자는 자연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과 바람에서 인간과의 생태적 상관성을 찾아내는 관상의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 이로써 박종숙의 숲은 우주의 원리를 건져내는 투망이면서 보이지 않는 고리를 찾는 투사물이 된다.
화자는 우주가 부단하게 던지는 물음을 적극적으로 포착하여 얻고자 하는 답을 찾았다. 그리고 “숲 속에 들어가면 서서 걷는 것이 아니라 마른 갈비 위에 눕는다.”는 행위처럼 숲에 대한 경배와 귀의라는 수필적 삶에서 이 글이 쓰였다. 대상을 통한 인식은 모든 작가가 궁극적으로 얻어야 하는 질문이며 여기서부터 문학적 주제가 싹트고 철학적 인식이 열매로 맺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수필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필가는 자연이라는 텍스트가 여백으로 남겨두고 있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고 “왜”, “무엇”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내공을 키워 철학적 단애(斷崖)로 한없이 내려가야 한다.
문학적 상상력의 반지를 끼고 대상과 우주 전체를 투사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이 예술가문학가의 사명이다. 모름지기 수필가는 상상력의 영토를 넓혀가는 알렉산더이고 상상의 우주를 유영하는 스타워즈 선단의 전사들이다.
 
 
4. 상상의 4원소
 
문학 창작의 질적 수준은 상상력의 유무와 고저와 순도(純度)에 좌우된다. 문학 창작의 순서는 우선 무엇을 쓸까 하는 주제가 선행되고 다음으로 그것에 부응하는 소재를 찾아 나서는 경우다. 아니면 소재에서 얻은 인상을 바탕으로 무엇을 쓸까 하는 순서도 가능하다. 그 어느 경우든 주제를 뽑아내고, 미적 구조를 이용해서 사물의 속성을 살펴 인간의 속성을 유추해내는 과정은 유사하다.
여기에 상상의 힘이 자연스럽게 끼어든다. 어떤 대상에 상징성을 부여하고, 새로운 주제로 의미화하려면 특별한 상상이 필요하다. 상상은 불완전한 사실을 완전하게 꾸며내는 일종의 능력으로서 정서와 형식을 유기적으로 맺어주는 계단과 같다고 하겠다.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상상력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가져왔다. 그는 상상이 현실과 아무 관계가 없는 비현실적 기능이면서도 현실세계를 변형하고 변모하는 놀라운 창조성을 지닌 것이라고 새롭게 인식한 인물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 정신활동의 보편적인 기능으로서 상상력은 주체가 자신의 전 존재를 통해 이미지를 활성화하거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행위로서 상상은 외부 사물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 자체에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바슐라르가 말한 상상의 주체는 인간과 세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우주와의 일치가 가능하도록 노력하며 종국에는 그 상상력을 통하여 존재의 근원에까지 닿으려고 한다. 상상력이라는 힘은 아니무스라는 논리적 분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심리 속의 아니마라는 넋에 맡겨야 한다는 의미에서, 바슐라르의 상상력은 말 그대로 연구 방법이 아니라 이미지가 이끄는 힘에 자신을 맡기는 현상학이 된다.
문학적 상상력은 물질적, 역동적, 원형적, 그리고 변증법적 상상력으로 구분된다. 상상력에 대한 이러한 메커니즘은 글의 미학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설명해주는 단서의 역할을 한다. 문학적 상상력을 좌표화한다면 양극단에는 물질적 상상력(현실세계)과 변증법적 상상력(예술세계)이 자리하고 있으면 그 사이에서 역동적 상상력(감성세계)과 원형적 상상력(이성세계)이 상호 작용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우주를 구분하면 삶을 영위하는 현실세계와 창조하고자 하는 욕구에 부응하는 예술세계가 존재한다. 나아가 현실이 예술에, 인간이 세계에 어떻게 순응하고 접속하는가라는 방식에 따라 감성에 주로 의존하는 역동적 상상계와 이성으로 인식하는 원형적 상상계가 있다. 두 상상은 물질적 상상력과 변증법적 상상력 사이에서 상호 작용을 한다.
물질적(物質的) 상상력은 희랍의 철인 엠페도클레스가 주창한 4원소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서, 만물이 지닌 형태와 질료와 그 용도적인 기능을 파악하는 힘을 말한다. 가령 “정선의 곤드레 밥은 손님대접을 하는 양식으로서 그 밥이 밥상에 오르면 양식이 떨어졌다는 신호”라는 경우에는 곤드레 밥의 용도를 해학적으로 밝힌 물질적 상상이 나타나 있고, 사람 인(人)을 “죽어서도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하얗게 말라 기운이 느슨해진 울타리와 버팀목”으로 나타낸다면 덩굴손을 받친 버팀목에서는 사람(人)의 형태에 일치시킨 물질적 상상의 예가 발견된다.
역동적(力動的)상상력은 존재 가치를 추론해내는 힘으로써 진선미와 같은 가치를 감성적 분위기로 엮어내는 상상을 말한다. 이것은 주로 사물을 의미화 하는 서술에 적합한 상상으로서 “한국을 근화지향(槿花之香)이라 하여 무궁화의 나라”로 부른다면, 무궁화꽃은 민족정신을 밝혀내고, 정선아리랑을 이야기하면서 “쌓인 애환을 가슴에 삭혀 마지막 한의 찌꺼기를 물소리마냥 풀어내는” 강을 그려낸 단락에서는 역동적 상상의 예를 찾을 수 있다.
원형적(原型的)상상력은 시공을 초월하여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으로, 어머니라면 모성애, 갈대라면 생각하는 사람으로 해석하는 구조이다. 원형적 상상력은 세계와 꿈, 현실과 이상과의 상관관계 밑에서 파악해준다. 가령 “호수는 언제나 제 자리에 있어 긴 여행을 할 줄 모르고 고향 지킴이처럼 어떤 유혹에도 휩쓸릴 줄 모른다.”라고 묘사한 박종숙의 「내 마음의 호수」에서 호수는 불변성, 항구성, 생명의 자궁이라는 의미로 환원되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박수는 상대를 즐겁게 하고 스스로 손바닥을 자극하여 건강에도 보탬이 된다.’는 박수의 이점을 제시한 글에서는 관용의 미학을 찾아낸 원형적 상상이 발휘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변증법적 상상력은 역동적 상상력을 분출하는 단계로서 사물을 뒤집어보거나 낯설게 보거나 거꾸로 보면서 상식과 인습과 관습을 전복하여 반전을 가져오는 상상의 단계를 말한다. 예를 들면 모성이 지닌 용기를 형상화하거나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구들장의 온기를 강조하거나 뜨거운 눈물처럼 모순어법을 통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여내는 상상을 말한다. 흔히 수필에서는 부재의 대상을 부활시키는 줄거리에서 변증법적 상상이 자주 구사되는데 ‘아비 없는 아들은 버릇이 나쁘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아버지가 없음으로 더욱 아버지답게 처신하려는 노력을 표현한 내용이 있다면 부성의 부재를 반전시킨 변증법적 해법이라고 할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의 성찰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 행동에 따른 성찰을 바탕으로 문학성과 철학성을 제대로 살려내려면 작품마다 물질적 상상에서부터 변증법적 상상이 필요해진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보면 상상의 유형과 위계는 물질적 상상력 → 역동적 상상력 → 원형적 상상력 → 변증법적 상상력으로 진행되는 흐름을 살필 수 있다. 이러한 바탕은 포착된 제재가 어떻게 의미화 하는가를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그런 점에서 상상력은 현실세계의 모순을 해결하고 이상세계를 제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5. 에필로그
상상력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서적이며 이지적인 기능이다. 예술을 창조하고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미적 기능이기도 하다. 영국의 철학자인 베이컨은 역사는 기억을, 철학은 이성을, 문학은 상상(想像)을 바탕으로 전개된다고 할 만큼 모든 예술작품은 상상의 모태에서 태어난다.
상상력은 작가의 문학적 세계를 확장시켜 주는 동력이다. 작가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경계는 그가 비행할 수 있는 상상력이라는 동력에 비례하므로 상상력은 작품 세계의 깊이와 넓이, 높이와 두께, 그리고 사상과 인식의 무게까지 결정짓는다. 만일 어떤 작품에 질적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문장표현의 한계나 체험의 제약 때문이 아니라 우주에 대한 상상력의 한계 때문이다. 화가, 목공, 작곡가, 작가 등 예술 분야가 무엇이든 그가 주변소재에 대하여 얼마나 깊게 상상력에 취해있고 얼마나 폭넓게 상상력을 발휘하는가에 따라 미적 수준이 결정된다. 이런 의미에서 상상력은 작가의 문학적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상상이라는 쟁기로 우주를 밭갈이하는 농부다. 작가는 부단하게 ‘상상적 농기구를 개량’하면서 문학적 자산을 넓혀나가야 한다. 적어도 문학적 수필을 쓰려는 수필가에게 상상력은 위대한 신약이면서 스스로 짐져야할 시지프스의 바위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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