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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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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 시의 가능성/신진 * 조명제 대담
2019년 03월 10일 15시 19분  조회:1221  추천:0  작성자: 강려
이 글은 월간 <시문학> 2009년 3월호에 발표된 '하이퍼 시의 가능성'을 주제로 한 신진(시인) 조명제(시인,문학평론가)의 대담에서 중요부분을 발췌한 글입니다.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진단하고 전망하는 대담형식의 이 글은 중요한 이슈가 담긴 글이라고 평가됩니다.
 
                       하이퍼 시의 가능성
 
                                                              신진/ 조명제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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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TV, 컴퓨터, 휴대폰 등 ‘기호’(記號, sign)의 세계에 살고 있고, 시단에서는 기호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하이퍼 시’ 동인 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하이퍼 시’는 ‘기호의 모더니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방면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두 시인의 지상대담을 마련해 봅니다.
조명제(趙明濟, 1946~ ) 시인은 『시문학』 출신(1985)으로 중앙대학교에서 오랫동안 후진을 지도하면서 시집 『고비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1988, 재판 2002), 논저 『한국 현대시의 정신논리』(2002) 등이 있습니다. 모더니즘 시쓰기는 물론이요, 한국시의 미래적 가능성에 대한 깊은 연구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신진(辛進, 1949~ ) 시인은 동아대학교 문과대 교수로서 『목적(木笛)이 있는 풍경』(1978), 『장난감 마을의 연가』(1981), 『멀리뛰기』(1986), 『강』(1994) 등의 시집과 논저가 있습니다. 특히 『멀리뛰기』와 『강』은 삶의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물의 감각적 모더니티는 현대시의 좌표를 시사하는 문제시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과학적 기호의 모더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퍼 시’에 대하여 두 분의 지상대화를 통하여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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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진 /조명제의 연구 성과, 시적 경향 등은 위의 편집자 주로 대체하고  생략함.
2). 시쓰기 운동은 그 본령이 ‘동인지 운동’에 있고, 동인지 운동은 ‘에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콜이 없는 동인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이퍼 시’ 운동 동인(심상운, 김규화, 오남구)은 그 취지가 당찬 것 같으나 1)‘하이퍼텍스트’라는 방법적·기호의 공통성, 2)그들의 시쓰기가 현대과학 특히 컴퓨터가 입력 데이터를 이진법적 인공언어로 처리하는 보다 복잡한 네크워크를 작성해 그 방법과 연결되어 있고, 3)기존 텍스트의 시간적·선조적(線條的) 구문(構文)의 맥락을 어떻게든 벗어나거나 극복해 보려는 기호적 노력이 있는 점, 4)기타 등등이 발견됩니다. 이들의 동인지 운동을 어떻게 보는지요? 그 인상이나 느낀 바, 장래성, 특히 그 가능성 등에 대하여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신 진 :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첨단 기술의 발전에 따르는 공상과학 영화와 디지털 TV,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 24시간 컴퓨터를 통해 문을 여는 시장들과 게임, 사이버 섹스 등 하이퍼 액티비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가상공간의 경험이 순식간에 현실로 다가오면서 사람들의 사고도 바뀌었고, 거리마다 사이버 인간의 원조들이 활개를 치는 하이퍼 모더니즘의 시기를 맞은 것입니다.
모두가 아는 거짓이나 거짓 이미지를 사용하는 하이퍼 이미지 광고가 판을 치고 사실을 알리기보다는 비현실적인 이미지 광고, 예컨대 요즘 TV의 ‘생 쇼’시리즈, 휴대폰의 장식물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는 질서 지키기 공익광고 따위의 하이퍼 영상들. 영상들 외에도 평범한 30세 청년이 경제대통령 미네르바로 둔갑하기도 하는 하이퍼 리얼리티, 연예인들 사이에 유행했던 흑인 헤어스타일이나 노란 머리의 백인 스타일 등의 하이퍼 정체성이 현실에 다가와 있습니다.
가상 공간의 경험이 모든 개념과 경계를 무너뜨리는 하이퍼 모더니즘의 시대에는 그동안 믿어오던 국가, 경제, 사회 등의 개념과 가족을 비롯한 시간과 공간의 개념, 자아와 타자의 정체성과 윤리적 가치관, 실재와 거짓, 인간과 기계, 개인과 집단의 의미까지 부정되고 변하게 됩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철저하게 사실을 숨기고, 완벽하게 거짓을 꾸며내는 시대, 거짓말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 김규화, 심상운, 오남구 시인의 하이퍼텍스트 시 운동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시대에 부응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이퍼텍스트란 용어는 1965년 넬슨(Nelson)이 책, 필름, 연설 등의 선형구성과는 대조적인 비선형구조로 컴퓨터를 통해서 정보가 제공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용어라고 합니다.
사회학자이기도 하면서 사이버스페이스와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관해 철학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프랑스의 피에르 레비(Piwrre Revy,1956-)는 하이퍼 세계가 결코 허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창조적 미래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가상성을 통해 현실을 공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이퍼텍스트란 네트워크라는 환경 속에서 참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다양하고 이질적 요소들이 공존상태를 이루게 되는데, 이때에 복제, 축소, 확대는 물론 변형과 갱신도 일어납니다. 이는 이질적이며 복수적인 동시에 유동적 접속이라는 관계를 이룹니다. 이는 새로운 문화 환경, 새로운 문화의 생태계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는 우리의 인터넷 문화 속에서 소위 댓글이라는 형식이 계속적인 접속을 통해 끊임없는 변형을 일으키며 변화무쌍한 이슈로 번져가는 현상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하이퍼 시 동인들은 그동안 몇 가지 동인 결성의 취지와 논리를 설명해왔습니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하이퍼 시란 하이퍼텍스트 시를 줄여 부르는 말이며, 하이퍼텍스트는 기존 텍스트의 선형성(線形性), 인과성, 고정성, 중심성, 관념성, 단선성 등에 대해 비선형, 비인과, 비고정, 탈중심, 탈관념, 다방향 등 상대적인 속성을 가진, 하이퍼링크가 만드는 불연속적인 상상의 세계입니다. 고정된 의미의 세계를 벗어나 무목적의 넓은 공간에서 공상의 가지치기를 보여주는 것이 순수한 하이퍼텍스트의 세계라 합니다. 물론 이들 논리는 컴퓨터상의 하이퍼텍스트를 종이 위의 시로 실현하기 위한 방안이라 하겠습니다. 이미지의 병치와 링크, 통사법의 해체와 해사체 글쓰기, 의식과 무의식의 자동적 교합을 주장하는 이들의 작시법에는 분명 컴퓨터상의 하이퍼텍스트를 지면(紙面) 위의 하이퍼 시로 생산하려는 의지와 지혜가 배어 있습니다. 미래적 시 쓰기와도 깊이 관련되는 문제여서 동인 외의 시인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하는 도전이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을 솔직히 턴다면 아직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아 보입니다. 동인들 외에도 문덕수님까지 가세, 정치한 논리를 가다듬고 있습니다만 새로운 종이 하이퍼 시와 시법을 내놓기란 지난한 일이라 여겨집니다.
심상운 시인은 작년 한국현대시협 여름 세미나의 주제발표문을 작년 『시문학』 10월호에 수정 재발표하면서 하이퍼 시의 창작방법 9가지를 제시하였습니다. 이 중 1).이미지의 집합적 구현(하이브리드의 구현)은 다다이즘의 콜라주와 몽타주,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에 2).의식의 흐름이 통하는 이미지의 네트워크(리좀)과 5). 상상 또는 공상으로 시영역 확대, 7).어떤 관념에도 묶이지 않음, 8).의식세계와 무의식 세계의 이중구조 등은 역시 앞에 든 것들 외에도 초현실주의의 자유연상이나 자동기술법의 원리와 변별되기 어렵습니다.
3).다시점 이미지를 만드는 캐릭터 연출, 4).가상현실의 보여주기 위한 서사 양식 활용, 9). 연출자의 입장에서 시 제작 등의 작시법 등은 입체파와 미래파 다다이즘의 동시시, 초현실주의의 ‘우아한 시체놀이’, 그리고 장르의 넘나듦이 예사로운 포스트모더니즘의 속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하이퍼 시 동인들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우리 시단의 중심축 하나가 된 해체시, 미래시, 환상시 시인들 사이에는 일반화 되다시피 한 시작법과의 변별성을 더 뚜렷이 해야 문학적 에콜을 바탕으로 결성된 동인이라는 명분에 값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이퍼 시가 하이퍼텍스트로서의 특성을 보다 선명히 실천할 때라야 하이퍼 시의 미래적 가능성은 담보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조명제 : 2008년은 우리 문단사에서 ‘하이퍼 시 동인’의 결성이라는 점이 특기돼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용어의 선점 면에서, 그리고 그 실천적 운동 면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문단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나 있고, 문예지 또한 수백 종을 헤아리게 된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예지가 실제로 출신 그룹의 동인지 구실을 하게 되면서, 문단 전체의 동향과 현장문학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려는 소수의 문인이나 학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문인들은 시야가 아주 좁아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하이퍼 시 운동에 대해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문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하이퍼 시 운동과 동인 활동은 디지털문명 시대를 앞서 가고 있는 첨병의식의 한 결과적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 쓰기 운동이 에콜을 구심점으로 한 동인지 운동이어야 한다는 것은 지당합니다. 에콜로 뭉쳐진 동인 활동은 색깔의 선명성, 결집력, 개성과 인간성 등에 있어서 낭만적이기까지 한 법입니다. 오남구와 심상운 두 시인이 외롭게 디지털리즘 시 운동에서 하이퍼 시 운동으로 전개해 가는 과정에,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비유적 표현법이 하이퍼미디어 시대인 지금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과감히 뛰어든 김규화 시인으로 하여 하이퍼 시 운동은 실제적, 조직적 결집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현재 ‘하이퍼 시 동인’ 활동은 확실한 주목의 대상이 되어 있다고 봅니다.
동인 김규화, 심상운, 오남구의 3인이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일으켜 온 본격적인 하이퍼 시 운동은 그 선언적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 초석 위에 동인들이 얼마나 특성 있는 작품과 체계적 담론으로 전개해 가느냐, 그리고 에콜에 부합하면서 일정한 수준과 개성적 경향을 가진 멤버를 어느 정도로 확보하느냐 등에 그 장래성이나 가능성이 달려 있다고 해야겠지요.
 
3. 하이퍼 시 동인들의 작품을 읽어 보시고 그 특성, 공통성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그 메리트(merit)를 말씀해 주세요.
 
신 진 : 포스트구조주의자로 잘 알려진 보드리야르는 그의 시뮬라시옹 이론에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가상 현실의 사회’라 진단했습니다. 일종의 코드와 기호로 이루어진 ‘근거 없는 실재’가 실재를 대치하기도 하고 조종하기도 하는 ‘시뮬라시옹 ’사회, 즉, 근거 없이 만들어진 이미지와 정보가 사람들도 하여금 그것을 믿도록 하는 사회입니다.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대중들은 허구의 늪에 빠지게 되고, 공동으로 제작한 시뮬라시옹을 새로운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하이퍼시는 원칙적으로 허구를 제시하되 그 세계를 독자들과 공유하며 독자로 하여금 나름의 현실을 재구성하게 하는 시뮬라시옹의 시라 할 것입니다. 독자들이 어떤 전제와 확신에도 갇히지 않는, 인간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무한히 확대될 수 있는 유동성의 문학양식이며 이 논리의 골격은 리좀(rhizome)으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천개의 고원』에서 쉬임없이 변화하는 모든 사물의 상호연관성이란 뜻으로 쓴 리좀은 원래 식물학적인 용어로 줄기와 뿌리가 같이 이어져 땅속으로 뻗어나는 줄기를 뜻하며, 스스로 뿌리이기도 한 식물을 가리킵니다. 시작도 끝도 아니고, 언제나 중간에 있으면서 접속 가능한 모든 차원과 접속될 수 있는, 복잡한 상호연관성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깨어지고 부수어지며 재생하는 반계보학적 네트워크입니다.
이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해체시학을 포용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무너뜨리고 2차원의 종이텍스트를 언제나 유동적인 4차원의 사이버 공간까지 확대한다는 하이퍼 시 동인의 논리에 부합합니다.
심상운 시인의 시를 한 편 들겠습니다.
 
           7월 아침나절 갑자기 쏟아지는 비
 
           한낮의 아프리카 대평원엔
           피범벅이 된 사자의 입과
           사슴의 붉은 살덩이가 내뿜는 싱싱한 비린내
           6월의 태양 아래 이글이글 벌어지는 초원의 잔치!
 
           나는 TV에서 가슴 떨리는 아프리카 생태계를 보다가
           식탁의자에 앉아
           빨간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고 우쩍우쩍 씹는다.
 
           그때 휴대폰을 울리는 그녀의 가쁜 목소리
           그녀는 여름비의 유혹이 참을 수 없어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굵고 기운찬 빗줄기에
            온몸 부르르 떠는 녹색 가로수들이 제각기 잎사귈 퍼덕이며
            소리치는 도로를 지나 녹색의 광기를 한껏 즐기고 있는
            뜨거운 들판의 가슴을 향해 돌진하듯 달리고 있는 그녀
                                                                             ―심상운 「녹색전율」전문
 
 
 인과(因果)의 틀을 벗어나 나열되는 이미지들이 상호 연계되면서 리좀의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7월 아침의 비와 6월의 초원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사투, 식탁에 앉아 우적우적 씹는 방울토마토, 휴대폰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가 울리는 역동적인 이미지들이 병치되어 하이퍼 실재를 경험하게 합니다.
심상운이 “이미지들을 동시적으로 공존하게 하거나 나열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무화시키며 열린 코드로 무한한 상상력(환상ㆍ공상)의 세계로 나아가게 한다.” 했듯이 버추얼(virtual) 세계라고도 일컫는 가상이미지들의 세계요, 자유연상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동적 영상들의 리좀이라 할 것입니다.
오남구 시인의 시도 한 편 들어봅시다.
 
새벽녘이 텅 빈다. 거울 속 환히 비치는 하늘, 불그스레 실눈을 뜬 쪽달이 베갯잇 속으로 미끄러진다. 베갯잇의 조각보에 꿈오라기 오락가락 청-백-적-흑-황 지금 신행 온 딸아이가 베고 있다. 꾸륵 꾸륵 흑두루미가 철원하늘을 날아간다. 오르르∼ 신부가 떠는 입춘에 나뭇가지에서 오락가락 햇살 따뜻한 에너지가 스민다. 꿈틀 꿈틀 망울이 가렵고 겨드랑이가 가렵다. 거울 속에 팝콘 같이 흰 철쭉 꽃망울이 터진다.
                                           ―오남구 「입춘詩」전문
 
서두 “새벽녘이 텅 빈다. 거울 속 환히 비치는 하늘”에서부터 표준 어법을 이탈하고 있고, 한 마디의 서술 없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던 이미지들을 나열하여 연결함으로써 입춘의 추상을 구체화 하고 있습니다.
시의 길이에 비해 움직임이 큰 동사와 형용사, ‘오락가락, 꾸륵 꾸륵, 오르르∼, 꿈틀 꿈틀’ 등과 같은 의성어, 의태어를 빈번하게 사용하여 역동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은 특히 오남구의 시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동인들도 동적 이미지와 색채어를 비롯한 시각적 이미지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지만 특히 그가 색채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그것도 이 시의 경우, 오행ㆍ오방위색인 ‘청-백-적-흑-황’ 등을 의도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주역을 비롯한 동양사상, 동학 운동에 한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것과도 관련된다 하겠습니다.
 김규화, 심상운, 오남구 동인 3인의 하이퍼 시는 공히 기존의 문장에서 낱말, 문장, 문단과 같은 구성단위의 전후 관계를 바꾸기도 하고, 고의로 통사적 맥락을 끊어 의식적, 전의식적인 이미지들이나 정보들을 동시 공존하게 합니다. 또 역사적, 사회적인 삶보다는 추상적 심미적 차원에서 집중하며 엘리트적 미의식과 세련된 언어감각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입니다. 시각적 감각어, 특히 색채 감각어와 언어의 청각적ㆍ음악적 영상을 실감나게 구사하는 공통점도 갖습니다. 이들은 의성어 의태어를 즐겨 쓰는 미래파적 역동주의와 기계주의, 입체파 시의 동시공존법, 다다이즘 시의 무의미시법,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과 자동기술의 작시법, 포스트모더니즘의 양식 해체와 인유적 패러디 등과 유사한 시법을 내세우고 실제 적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산 산행 소재를 즐겨 쓰고 있는 것은 이들의 결속력과 집중력을 입증하는 공통 분모의 하나라 할 것입니다.
 심상운 시인은 석기시대, 돌칼 가는 소리, 석탄난로, 광부들의 입김, 신생대, 말울음소리, 벌판의 망아지와 초록벌판, 탄광지대 등등 원시주의적인 취향을 강하게 풍기고 있고, 김규화 시인은 상대적으로 보다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버추얼 이미지들을 병치하면서, 언어의 감각적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특징을 갖기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하이퍼 시 동인들은 현대시의 공간에 실감 있는 당대적 체험과 시어 계발의 틀을 만들고, 나아가 미래적 세계를 전망하게 합니다. 더 구체화 할 경우 시문학의 독자층 확대에도 일익을 담당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존재의 확장을 성취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오랫동안 귀감이 될 만한 시를 써온 세 시인이 회갑을 넘어 새로 시작한 하이퍼 시는 세련된 감수성과 구성, 논리적 설득력을 갖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했듯 하이퍼 시가 독자들이 새로운 하이퍼 실재를 경험하고 하이퍼 정체성을 확인할 만큼 새로운 실감을 주는 데는 미흡하게 생각된다는 점을 숨기지는 않겠습니다. 그 위에 2000년대 들어서기 바쁘게 시 평단과 학계의 일각에서는 지난 세기 전위 취향의 시들에 대한 비판과 깊은 우려를 서슴지 않았던 사실을 상기시켜두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실험적 경향의 시는 1930년대에 이상(李箱)이라는 특별한 아방가르드가 나온 후, 1950, 60년대의 과격 모더니즘 시인들이 이를 계승했고, 1980년대의 황지우, 박남철 등의 실험을 끝으로 실험성과 새로움의 위의가 거의 상실되고, 언어의 유사 실험성은 젊은 시인들의 일반적인 경향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문화의 왜곡과 언어생활의 타락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걱정과 경고도 따랐습니다.
미래적 메리트가 있는 작업임에는 분명해 보이지만, 하이퍼 공간에의 궤도 진입 단계에 있는 하이퍼 시동인들은 이러한 사정과 시단의 각별한 관심을 어깨 무겁게 짐지고 있다 할 것입니다.
 
조명제 : 지난해 봄 하이퍼시 3인의 동인 결성 이후,금년 『시문학』 1월호까지 세 번에 걸쳐 개인별 5편씩 종합 15편씩의 하이퍼시가 발표되었습니다.그 15편씩을 읽어 보면 각자의 개성이나 특성이 좀더 뚜렷이 드러나는 면이 있습니다.
먼저, 김규화 시인은 다양한 방법적 실험을 해 보입니다. 특히 「햇빛과 단풍」 「거인들」 「과학적 이유 세 가지」 「달팽이와의 대화」 「매미소리」 「숨바꼭질」같은 작품들을 함께 놓고 보면 그 형식적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햇빛과 단풍」의 경우 무색인 햇빛이 가을 나뭇잎에 닿아 노랑,빨강의 금빛 단풍잎이 되는 풍경을 관찰, 사유하는 데서 비롯된 시상이 의식의 흐름과 자유연상을 통해 동양과 서양, 현재와 과거(추억) 사이의 시공을 자유로이 넘나듦을 보여줍니다. 햇빛을 받아 불타는 듯 붉은 단풍은 일순에 머나먼 갠지스강가 노천 화장터의 불꽃으로 하이퍼 링크되고, 허공의 햇살을 받아 종일 금빛 영혼을 태우며 타들어가는 시체의 단풍빛 불꽃은 어느새 열여덟 소녀적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몰래 숨어 본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의 마릴린 몬로의 웃음소리로 링크되지요. 햇빛과 단풍의 교호작용에서, 입을 약간 (섹시하게)벌린 몬로가 금빛 머리칼을 신사의 가슴에 올려 놓는 영화의 황홀한 장면으로 점핑되는 연결고리는 ‘햇빛은 단풍을 좋아해’라는 단풍 읽기에서 얻은 시구입니다. ‘햇빛과 단풍’에서 촉발된 하이퍼적 상상력은 비논리적 비선형적 링크로 이렇듯 시공을 초월한 작품적 구조를 보인 것이지요.
「거인들」은 이미지의 전개에 있어 연쇄고리식 행갈이의 파격을 통해 불연속의 연속을 강화하고 있고,대화체로 구성된 「과학적 이유 세 가지」는 ‘아시체 놀이’처럼 행간의 연결이 무시되어 있지만, 홀수행은 홀수행끼리 짝수행은 짝수행끼리 의미 맥락이 연결되게 깍지끼듯 직조된 특성을 보입니다. 그 사이에 선문답 같은 대화의 내용, 즉 다이어트와 관련된 광고 문구가 제시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신의 땅 티베트의 라싸로, 다시 그 곳 해발 5천 미터의 고지대에서 가난한 영혼의 경전을 외는 사람들로 건너뛰어 집합적 결합의 네트워크를 완성합니다.
「달팽이와의 대화」는 교통 신호를 기다리고 건너는 사이 달팽이를 기른다는 아이와 나눈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극히 흥미롭고 사실적인 대화에서 관념을 찾아 볼 수 없을뿐만 아니라, 마치 교통신호처럼 하나의 기호가 되고 캐릭터가 되어 아이는 저만치 ‘달팽이 길’로 사라집니다. 기호와 캐릭터는 전자 하이퍼 시대의 대표적 상징임을 환기시킨 예입니다. 그런가 하면 「숨바꼭질」은 내용단락에 따라 산행의 과정과, 산꾼들 풍경 대 추억의 고향마을을 치차처럼 엇물리게 구성하여 시상의 건너뛰기와 이어가기를 숨바꼭질시킨 것이지요.
 
역사박물관에서 <미륵> 강의를 듣고 나오는데/마당 가 미루나무숲의 매미들이 한꺼번에/미륵 미륵 미륵,미르 미르 미르 르르르/사정한다//염소에게서 배웠나,매해해 얌얌 염소/입술을 뾰죽이 내밀어/매매매 하는 그그그 미/매 하는 미,매미이이이를//플랫폼에 혼자 두고 가는 기차가/소리 한번 매앵! 지르고 바퀴를 자글자글 굴리며 떠난다//맴맴맴 매애애/매앵매앵 앵앵앵/미잉미잉 잉잉잉
―김규화의 「매미소리」 전문
 
「매미소리」의 방법적 특질은 화자가 <미륵> 강의를 듣고 나오면서 ‘미륵론’의 환청처럼 들리는 매미소리와 그 울음의 유사성으로 하여 연상되는 염소 울음소리, 심지어 기차를 놓친 과거 어느날 떠나가는 기차의 기적소리마저 맹랑한 매미소리로 환치 혼융된 감각적 변용에 있어 보입니다. ‘미륵’과 ‘매미’는 ‘미’라는 기표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것들의 기의에는 유사성이 전연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인은 <미륵> 강의의 잔상효과와 ‘미륵’/‘매미’ 두 말이 지닌 기표의 유사성만으로 그 관련성을 맺어 줍니다. 매미소리는 매미의 언어로서 어떤 의미신호가 있을지는 몰라도 사람의 귀에는 그저 카랑한 울음소리의 기표만 들릴 뿐이지요. 우리가 노승의 독경소리를 들을 때 그 의미는 전연 알지 못하면서도 그 유려한 독경소리 자체에 매료되어 열복(悅福)을 느끼는 절대 순수의 순간처럼 매미소리의 시니피앙 속으로 빠져들어 추억과 환상의 절대적 세계를 맛보게 하려는 것이지요. 언어(기호)의 의미(관념)가 깡그리 증발(배제)되고 울림(리듬)만이 남는 경지, 그것은 김춘수 시인이 봉착했던 시의 마지막 경지이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김규화 시인은 여러 가지 하이퍼적 방법 실험을 해 보이고 있습니다.
심상운 시인은 의식과 무의식, 자유연상의 방법과 그림 이미지를 통한 보여주기의 기법을 주된 특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상과 공상의 과감한 투여로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동양과 서양, 고산과 바다 등 모든 영역을 뛰어넘고 넘나듭니다. 특히 그러한 방법으로 기호론적 ‘이미지’의 생성 과정과 이미지의 추상적 정체를 주로 미확인 비행물체인 UFO와 중첩시켜 암시하고 있지요. 그의 시는 하이퍼시의 생성과 특성에 관한 자신의 지론을 함축시킨 것이기도 합니다.
「바람소리」를 보면, ‘바람소리-말 울음소리-알타이 초원(말의 고장)-기억의 시간-갇혀 있는 시간-해방 공간-바람소리-파랑, 초록, 빨강, 하양 빛-들어가 살 수 없는 집(사이버 공간?)-노란 개나리꽃’으로 자유연상에 의한 링크로 가지치기와 건너뛰기를 실현하여 집합적 결합의 이미지를 완성해 보입니다. 「북한산 레몬 향기」 「이미지 여행」「은백색 미확인 비행물체」 「사각형 스크린」 등 여러 작품이 그와 같은 방법의 범주에 듭니다.
 
아침 TV 드라마 속으로 들어간 그녀는 빨갛게 부풀기 시작하고/나는 1,2,3,4…숫자에서 벗어난 그녀의 시간이 접시 위 생선토막에 빨간 소스로 뿌려지는 상상을 한다.//(낳자마자 자식을 버린 어미를 어찌 어미라고 할 수 있단 말이야!)/드라마의 열기는 더욱 고조되고 그녀는 생선을 구우며 눈물을 흘린다.//그때 40대 여자의 가슴에서 뭉클 솟구쳐 나온 듯한 한 뭉치의 희끄무레한 연기가 주방의 작은 창문으로 빠져나가고//(파란 신호등 앞에서/서로 반대 방향으로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는 어머니와 딸)
―심상운의 「아침 드라마」 전반부
 
심상운 시인의 또 다른 하이퍼적 시상의 특성으로는 작품의 중간에 불연속적으로 핸드폰의 소리샘 소리가 끼어들거나, 인용시에서 보듯 TV 드라마의 장면들이 편집, 링크되는 경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TV의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피범벅이 된 사자의 입’과 화자 혹은 동석인들의 식행위(붉은 과일을 먹는다든가 그와 유사한 이미지의 식사)를 중첩시키며 의식, 무의식의 연상작용에 따라 건너뛰기나 가지치기를 이어가는 방법을 들 수 있습니다.
다시 인용시를 볼까요. 아침 8시나 저녁 8시무렵은 못 말릴 한국 아줌마들의 TV 드라마 시청 시간대지요. 텍스트 속의 ‘그녀’는 아침 식사를 위한 요리를 하며 현실 상황을 깡그리 잊을 정도로 연속 드라마에 몰입합니다. 드라마는 점점 고조되고, 사이사이에 드라마의 대사나 등장인물들의 행동 묘사가 삽입됩니다. 화자는 TV 드라마에 깊이 빨려들며 요리하는 ‘그녀’의 시간들을 구체적인 상황으로 전위시키는 상상도 합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채널을 바꾸었는지 다음 장면은 기상 예보가 방송되는데, 오전의 짙은 안개가 걷히고 내리던 비도 그치며 날씨가 점점 맑아지겠다는 그 기상 예보는, 리모컨 하나로 손바닥 뒤집듯 채널을 바꿈과 같이, 비현실에서 현실(TV 드라마의 가상공간에서 현실공간으로)로 순간 전환시키는 징검다리 구실을 하지요.
질질 끌며 하루하루 지연되는 TV 드라마의 오늘 하루분이 끝나자 대도시의 아침 시간은 그제서야 일제히 환각에서 깨어난 듯, 각자의 감정 색깔로 보았던 드라마의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심상운 시인은 TV가 보여 주는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의 장면과 일상현실을 대비 또는 중첩시킨다든지, 핸드폰 속의 음성 서비스를 편입시켜 디지털문명 시대의 가상과 현실을 포착해 하이퍼적 시세계를 펼치기도 합니다.
오남구 시인은 특히 언어의 감각, 말의 기지,(어휘 중심의) 계기적 이미지 연상,극적 상황 포착, 기호나 부호의 대상화, 대상의 캐릭터화 등에 탁월한 하이퍼시를 보여 줍니다. 그의 매끄러운 언어 구사는 시를 속도감 있게 만들지요.
「입춘시詩」를 보면, 입춘절에 신행와서 곤히 잠자는 딸이 꿈길을 오가며 베고 있는 베개의 고운 베갯모 자수 그림과 텅 빈 새벽하늘에 뜬 조각달의 풍경이 하나로 미끄러집니다. 말하자면 몽환적 꿈속 일처럼 현실과 비현실, 가상과 실제의 ‘차이와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인 것이지요. 그리하여 순간 포착의 하이퍼적 상상은 베갯모의 흑두루미가 철원 하늘을 날아가고, 입춘 무렵의 한기를 느끼듯 아직 미숙한 시집살이에 오르르 떨고 있지만 곧 새살림을 봄꽃처럼 피워갈 신부마냥 한기 속 따뜻한 햇살을 받아 나뭇가지들의 망울이 부풀고 마침내 흰 철쭉꽃 망울이 터지는 시간으로 연상적 링크를 수행합니다.
「사과」라는 시는 끝말잇기처럼 하나의 어휘를 매개로 연신 어의 반전을 거듭하며 시상을 증폭시켜간 작품입니다. 또 「약수터」는 약수터라는 공간을 무대로 약수를 뜨러 온 인물들을 그 인상착의의 특징을 캣취해 ‘낡은 골프 모자,굵은 테 안경, 빨간 딸기코 노인,반백의 꽁지머리’로 캐릭터화 하여 하이퍼시의 기호론적 특성을 십분 살리고 있지요. 그리고, 늘 나오던 한 사람이 보이지 않자 죽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나누는 노인들의 간결하고 담담한 대화와 행위는 마치 한 토막의 깔끔한 상황극을 연상시킵니다.
금년 『시문학』 1월호에는 오남구 시인의 투병생활과 병상일기를 풀어 낸, 가슴 저려오는 작품들을 보게 되어, 병마와 힘겨운 고투를 벌이고 있는 그에 대한 안타움이 여간 큰 게 아닙니다. 「요만큼의 희망」「IB 폴대」 「부호 그리고 벌레」가 바로 그 병상시(病床詩)들인데요, 여전히 오남구의 재기는 살아 번뜩입니다.
 
꿈같다. 진통제를 맞는다. 띵 머리가 아프다. 갑자기 창을 통해 날아든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눈앞에서 퍼덕거린다. 눈 아래 길들이 꿈틀꿈틀 벌레다. 나무로 기어올라가기도 하고, 무수한 벌레들이 꿈틀대는 부호다. 돌아보는 길, 내가 걸어온 길, 무수한 부호들이 날아서 꿈틀거린다.//저 부호를 누가 읽어낼까, 하이퍼 시인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나는 부호의 벌레.
                                                                   ―오남구의 「부호 그리고 벌레」 전문
 
병든 시적 화자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현실이 현실로 보이지 않는 비현실의 환상을 만납니다. 현실의 일상적 질서로부터 이탈된 그의 몸과 마음은 진통제를 맞으며 고통스런 꿈속을 헤맵니다. 갑자기 병실의 창을 통해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들어 퍼덕거리는 불길한 환영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가운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통제 주사와 기력의 소진은 우울하고 아픈 몽환으로 시달리게 합니다. 병상 밖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길’들이 병균(벌레)에 시달리는 환자의 눈에는 모두 꿈틀거리는 ‘벌레’로 보입니다. 나무로 기어오르는 듯이 보이기도 하는 그 벌레들은 어느새 몽환적인 환자의 의식을 타고 ‘부호’로 다시 은유화됩니다. 쓸쓸히 돌아보는 그의 인생길이 또한 판독할 수 없는 부호의 무리가 되어 꿈틀거립니다. 고뇌에 찬 자신만의 인생길을 그 누가 읽어낼 수 있게습니까. 기호와 캐릭터의 시적 형상에 매진해 온 시인은 화자와 작가의 경계도 허물고 ‘나는 부호의 벌레’라고 규정합니다. 누구든 한 사람의 일생은 결국 해독할 수 없는 한 점, 하나의 부호나 암호가 아닐까요?(오남구 시인의 쾌차를 빕니다).
하이퍼미디어의 특성에 바탕을 둔 하이퍼시는 디지털문명 시대의 새로운 시쓰기의 한 경지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의식과 무의식,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인간의 뇌 구조의 복잡한 그물망처럼 하이퍼 시 동인들의 시는 그 개별성과 함께, 인과적 논리성이나 선조적 질서, 혹은 위계적 시스템을 벗어나 탈중심의 리좀 형태를 구축하며, 단선구조에서 다선구조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관계론적 체계를 공통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인들은 기호의 체계에 집중하여 기의적 관념을 벗어 던지고 사물의 순수 이미지와 감각적 기표의 분산을 즐깁니다. 그들은 또, 그들만의 무기는 아니지만, 자유연상과 공상적 상상력으로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가상공간을 자유로이 점핑해 가며 텍스트의 마디들을 연결짓기도 하고 병치하여 기계론적 시공을 초월한 상상력과 환상의 세계를 맛보게 합니다.
동인들의 이러한 공통적 노력과 장점이 보다 진전되어, 왠지 하이퍼시의 상당수는 감동이 없다라는 일부 문인들의 지적을 잠재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4. 언어 기호가 가진 종이 위에서의 정보(시) 처리 방법, 다시 말하면 1)언어가 현실의 사물이나 대상과 떨어져 있는 점, 즉 사이버스페이스적 특성, 2)기존의 모든 언어텍스트의 구문이 갖는 맥락은 선조적·시간적인 일방통행인데, 하이퍼의 경우에는 센텐스의 어떤 부분(주어, 목적어, 서술어 등)에서든 가지처럼 갈라내어 거기서 다시 새로운 센텐스의 맥락을 만들 수 있는 맥락의 분산(分散) 등의 특징이 가능한데, 이러한 하이퍼적인 시가 가능할까요?
 
신 진 : 공상과학 소설의 바이블처럼 여겨지는 「뉴로맨서」(1984)의 작가 윌리엄 깁슨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사이버스페이스’란 말은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 컴퓨터와 인터넷 속의 인공적 풍경을 가리킵니다. TV, 컴퓨터 등에 의한 사이버스페이스는 우리의 감각을 확장, 다중감각(Multi-sense)을 경험하게 하며,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게 하며 실체가 없는 이탈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사실이 허구보다 낯설기도 하며, 거짓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을 실재의 삶으로 경험하게 하는 ‘가상의 실재’의 세계입니다. 실재와 가상이 공존하는 가상의 경험은 가상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확장으로서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여 자아를 확장시키게 됩니다. 영화 「로보캅」, 「토탈리콜」, 「제5원소」, 「매트릭스」 등이 보여주고 이끌고 가는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센텐스의 특정 부분을 갈라내어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 가는 ‘분산적 맥락’이란 그러한 가상의 실재를 리좀(rhizome)과 같은, 이질적인 것들 간의 상호연관성을 통해 연출하기 위한, 종이 하이퍼 시의 주요 방법론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한 문장 속의 언어 단위를 가지가 파생하는 식으로 이어지면서 종합되는 하나의 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입니다. 컴퓨터 화면의 그림이나 밑줄부분을 선택하여 마우스를 누르면 다른 텍스트가 나타나는, 즉 다른 텍스트를 분산해서 연결해 주는 하이퍼 링크적 기능을 살리기 위한 방법입니다.
여기서 김규화 시인의 하이퍼시를 한 편 들어보겠습니다.
 
역사박물관에서 <미륵> 강의를 듣고 나오는데
마당 가 미루나무숲의 매미들이 한꺼번에
미륵 미륵 미륵, 미르 미르 미르 르르르
사정한다
염소에게서나 배웠나, 매해해 얌얌 염소
입술을 뾰죽이 내밀어
매매매 하는 그그그 미
매 하는 미, 매미이이이를
플랫품에 혼자 두고 기차가
소리 한번 매앵! 지르고 바퀴를 자글자글 굴리며 떠난다
맴맴맴 매애애
매앵매앵 앵앵앵
미잉미밍 잉잉잉
―김규화 「매미소리」전문
 
‘미륵 강의-마당가 미루나무숲의 매미들-미륵 미륵 미륵 사정(射精?)’ 등 음운론적 분산과 ‘매미소리-염소소리-기차소리’, ‘미륵- 마당- 미루나무- 매미- 맴맴’ 등 음성적 자질들의 분산과 비약적 연결이 텍스트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로써 가상은 실재화 하고 현실과 환상의 교차, 시간과 공간들의 병치와 공존 현상이 일어납니다.
앞에서 말한 들뢰즈와 가타리는 동양적 사상의 흐름을 원래 주체도 객체도 정해진 길도 없는 유목민적 사유의 전형, 즉 리좀 양식으로 보았습니다. 다양성으로 이원론적 나무의 사유를 극복하여 다원론은 곧 일원론이라는 데까지 접근했습니다. 이러한 사유는 중심도 주체도 위계도 없이 모두가 동등한 주체로서 영토화, 탈영토화, 재영토화 합니다. 그리하여 형성되는 관계가 ‘비질서의 접속’과 ‘상호연관성’ 속에 하나가 되는 글로벌적 환경을 발생시킵니다.
하지만 문맥의 분산과 재영토화를 통한 자유로운 네트워크 생태의 구축은 이상의 미래주의와 다다이즘, 그리고 초현실주의 시에서부터 그 예를 찾을 수 있고, 김춘수 시인은 이와 유사한 방법을 시창작상 비법으로 간직하였다고 생각됩니다.
김춘수는 1960년 경 정지용의 시 「향수」를 분석하면서 시작에 있어서의 우연성과 몽타주 수법, 그리고 ‘이을고리(環)’를 강조한 바 있는데, 이미지나 정보의 병치에 무슨 인과론적 의미가 있는 듯 연결시키는, 그의 무의미 시 창작비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연은 영화의 한 컷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cut와 cut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런대로 그들은 우연이 필연이 될려면 여기 montage가 있어야 한다. cut와 cut를 montage하여 이을 고리(環)는 전혀<-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이다. 열쇠는 이것이 잡고 있는 셈이다. (더 진보된 형태에 있어서는 이것이 필요없을 것인데 거기까지는 미달이다.)...시의 효과는 전혀 montage의 솜씨에 달렸다.(김춘수 『한국현대시형태론』, 해동문화사, 1969, 63면)
김춘수는 이와 같이 단절된 이미지 사이의 이을고리를 발견하고 그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라는 「향수」의 드러난 이을고리보다 자신은 더 진보된, 세련된 솜씨를 갖추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하고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미지 정보들의 연결이 바로 그 비법(?)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의 많은 시들은 후렴구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세련된 링크의 기능을 수행하는 방안들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몽타주, 콜라주의 구조적 혼란을 극복하는 기능을 할뿐 아니라,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론적 네트워크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의 세련된 연결고리의 우리나라 원천은 다름 아닌 이상(李箱)의 시들에 있습니다.(신진, 「한국현대시의 전위의 맥락 검토」, 『한국시학연구』 22호,252-254면. )
아무튼 사이버 스페이스적 속성을 종이 위에 구현하기 위해 맥락 분산의 방법을 이용하는 것은 이해되는 발상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이버 스페이스적 특성뿐 아니라 60년대 김춘수의 말마따나 전의식의 흐름을 좇는다든지, 현실ㆍ상상ㆍ환상ㆍ공상의 복합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다른 시에서도 드물지 않게 쓰여 왔습니다. 동인 중 한 분이 대표적인 비하이퍼 시의 예로 거론한 바 있는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의 경우만 해도 그렇습니다. 각 연은 ‘한송이의 국화꽃-한송이의 국화꽃-누님같이 생긴 꽃-노오란 네 꽃잎’으로 분산, 연결되는 축과 ‘소쩍새의 울음-천둥의 울음-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졸임-불면의 밤’ 으로 병치, 공존하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 네트워크라 할 것입니다.
하이퍼 시는 이 점도 유념해서 분산적 맥락을 위시한 하이퍼 시 제작 방법들을 보다 하이퍼텍스트답게 개량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명제 : 이를테면, ‘새’는 ‘새’가 아니지요. 즉 ‘새’는 ‘새’라는 언어기호일 뿐 새(사물)가 아니지요. 체계의 체계로 설명되는 문학 언어 이전에 언어기호 자체가 이미 사물(대상)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오그덴과 리처즈의 구도를 좀 수정해서 말하면 말(언어기호)과 대상과 연상(이미지)의 삼각구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는 언어기호의 형식과 내용 사이에 아무런 필연성이 없는, 자의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말합니다. 언어의 자의성은 언어의 사회성에 의해 제약받게 되지만, 그 때에도 개별적 언어의 자의적 특성은 사회성에 의해 완전히 제약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꽃’이 라고 언술하면 기호와 대상이 일치하지 않음은 물론, 사회성에 의해 약속, 공인된 기호가 언어라고 하지만 기표와 기의 또한 일치하지 않습니다. ‘꽃’이라는 기호 자체가 추상적이기도 하거니와, 청자는 꽃 중에도 각자 자신이 상상하고 있는 꽃을 그리게 되겠지요.그런 점에서 기호는 차이의 체계요 관계의 체계인 것이지요.
류현주 교수도 그의 저서에서 시는 언어가 만드는 회로라고 하고, “읽는 사람마다 같은 시어에서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있다. 이는 언어와 그 언어가 나타내는 의미의 고정성이 분리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같은 언어에 대해 여러 이미지들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것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 하이퍼 텍스트 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지면 문학 언어와 문학 텍스트의 동일한 해석이란 불가능합니다. 언어의 문화적 역사성까지 고려하면 언어의 개인별 정서적 특성은 더욱 차이가 커지고, 국제적으로는 언어의 정서적 차이 때문에 문학 텍스트의 온전한 번역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따라서 컴퓨터상의 전자 언어기호뿐만 아니라 종이 위에서 처리되는 정보(시) 역시 원천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적 특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하이퍼 텍스트의 기본적인 특성이 문맥의 선조성이나 논리성, 혹은 단선구조로부터 탈피하는 것인 만큼, 센텐스의 가지치기나 건너뛰기 같은 방식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실천되어 왔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하이퍼 시 동인들의 실험적 활동은 말할 것도 없고, 일찍이 격렬한 자기 파괴적 실험을 감행했던 이상이나 조향의 시들에서도 발견됩니다. 특히 김춘수의 경우 그의 「처용단장」 제3·4부에서 하이퍼적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김춘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논리적 순차성의 파괴와 통사적 해체를 실험해 보이고 있는데, 「처용단장」 제3부의 「36」, 제4부의 「14」는 그 좋은 한 예입니다. 내적 필연성이 없이 열거되다시피 연결된 어휘들이나 문장들, 그리고 연결고리가 무시된 연과 연 사이의 폭력적 연결로 말미암아 이 작품들은 시니피앙의 미끄러짐만이 두드러집니다.
기존 현실이나 세계와의 단절로서, 소통 구조의 근본인 통사의 해체는 곧 현실 너머의 마이너스 현실을 떠올려 주지요. 김춘수 시인이 만년에 직면한 과제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바로 이 마이너스의 세계였는지도 모릅니다. 리얼리즘과 반리얼리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뒤섞이고 융합된 김춘수의 「처용단장」 제3·4부는 여러 면에서 요즘 집중 논의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 시와 하이퍼 모더니즘론의 한 전거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의 집합적 결합이나 리좀(rhizome) 형태 및 다선구조로 그 특성이 설명되는 종이 하이퍼 시의 실제를 보인 점에서도 김춘수 시인은 끝나지 않은 아방가르드의 선구적인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황무지」를 비롯한 T.S.엘리엇의 작품에서 이미 하이퍼시의 여러 특성들이 실현되어 있고요, 황지우, 박남철, 장정일 같은 80년대 시인들의 작품에서도 더러 시도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발표한 저의 「황사일기」 「봄편지」(세계 최초의 하이퍼 작품이 발표된 1987년과 일치하네요)는 구체적인 한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5. 만약 하이퍼 시의 운동이 가능하다면 어떤 방법이 도입되어야 하겠습니까?
 
신 진 : 하이퍼 시운동은 우리 현대시를 보다 당대 문화적 가치에 가깝게 서게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존속의 가치가 인정된다 할 수 있습니다. 진정 어린 시 지망자도 찾기 어렵고, 읽는 독자사회도 붕괴되다시피 한 시단의 현실 타개책을 제공해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동인들의 희망대로 전자 하이퍼텍스트가 종이 위의 시로 실현되어 자아의 확장을 가져 올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동인들과 문덕수 선생님은 이 준비작업을 마치고 항해를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에게는 더 구체적이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능력이 없습니다만 두어 가지 단견으로 답을 대신해보겠습니다.
2000년대의 우리 시 평론가 중 일군은 언어적 실험성이 갖는 파괴행위의 창조적 위력은 일회적인 것이고 이상 이후의 시인들은 더 이상 언어 파괴와 해체를 통한 극적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다른 창조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이퍼시 동인들이 문맥의 파괴와 분산에 못지않게, 연결, 비약적 연결 등을 강조하고 있는 데서 저는 앞에 든 것과 같은 우려들을 불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읽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형태적 새로움 외에 내용적 새로움을 추구해나갈 가능성을 읽는 것입니다. 독자와 함께 가상의 실재를 즐기고 함께 인간성의 확장의 차원으로까지 나아가려면 함께 공유할 내용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수가 상수 훈수하고 달아나는 심정으로 드릴 수 있는 답안도 그런 것입니다. 저는 서사성의 과감한 도입과 현실성, 서정성을 심화, 발전시켜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서사 양식의 대폭적인 차용입니다. 디지털 미디어는 음성언어나 문자언어에 비해 훨씬 통합적이고 통섭적입니다.
하이퍼텍스트는 우연성, 해체성, 특수성, 환상성을 짜깁기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상호교류와 초언어적 보편구조를 갖습니다. 작가는 편집자로, 독자는 행위자로, 쓰기와 읽기는 놀이행위로 치환됩니다. 시인의 특수성, 시론가의 논리가 그대로 독자에게 강요될 수도 없습니다. 독자의 참여와 놀이를 보장할 수 있으려면 만화나 영화, 컴퓨터 게임 따위에서 보이는 서사양식을 과감하게 차용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20세기의 아방가르드식 논리와 시 작법은 시인의 놀이터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독자들의 놀이터로는 부적합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현실과 환상이 부분적이고 말초적인 언어기법에 의해 연결되기보다는 독자가 몰입할 수 있는 서사성, 그것도 흥미진진하고 긴 형태나, 짧더라도 촌철 살인의 위트와 기발함이 번뜩이는 서사의 도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으로 저는 현실성(reality)과 서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현대 시사(詩史)에 있어, 그 동안의 아방가르드들은 예술적ㆍ표현적 방향으로 치우치는 취약점을 보여왔습니다. 원래 서구의 아방가르들은 공산주의적 열망, 무정부주의적 이상 등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가졌고, 자동화된 전통이라거나 타성 등 저항의 적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사회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어느정도는 공감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전위 시인들은 현실도피적인 입장에서 통사적 문맥 파괴 놀이를 하거나 이국문화 따르기에나 열중하다보니 자기들끼리의 잔치만 즐기는 꼴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군의 후배 시인들이 그 뒤를 따랐던 데는 정치적인 안정이 보장되는 데다, 흉내 내면서 만들어내기도 쉬웠고, 더군다나 이름 내기도 쉽고 했던 이유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추측됩니다. 어쨌거나 독자들은 그것들을 마음에 새겨두거나 즐기지는 않았습니다.
독자에게 놀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시는 당대적 현실감감이 탁월하거나 개별성과 보편성을 통합적으로 형상화해 낼 수 있는 서정의 깊이를 갖춘 것들이었습니다. 당대적 인간미-통합적 서정은 시로서의 당위이자 독자와의 주요 소통로이기도 합니다 물론 주관적인 감정표현만이 서정시라고 생각하는 배타적인 사고는 금물입니다. 공통의 절박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나 어떤 신성함과의 관계 속에서 감동적으로 구현되는, 구체적이고 진정 어린 서정의 세계를 굴착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 속의 하이퍼텍스트를 대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이퍼텍스트는 쓰는 사람들의 인성을 즉흥적 도발적 비선형적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비판적 시각에서 이에 상응하는 시를 써야 한다고 합니다.”라고 한 김규화 시인의 하이퍼 동인 참여동기(시문학 08년, 4월호,15-6쪽)의 ‘비판적 시각’은 음미할 만한 대목이 된다 하겠습니다.
 
조명제 : 글쎄요, 어디까지나 저의 단견을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원래 하이퍼텍스트는 첨단 디지털문명을 배경으로 한 컴퓨터상의 전자 텍스트를 말하는 것입니다. 컴퓨터라는 매체는, 500년 전통의 물질적인 매체인 종이 인쇄물(책)에서 온라인상의 전자 텍스트로의 이동에 따른 문학의 급격한 변화를 불가피하게 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용어들이 생겨나 혼란스럽기도 했으나, 현재 가장 주목받는 디지털문학 형태가 하이퍼문학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을 듯합니다. 그러므로 하이퍼문학은 컴퓨터 매체의 사이버 공간에서 행해지는 것이 본령이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요즘 펼치고 있는 하이퍼문학 운동이나 담론의 중심은 ‘종이 하이퍼 텍스트시’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컴퓨터의 사이버 공간을 그 태생으로 한다는 점으로도 그렇지만, 하이퍼텍스트 이론가들은 종이 하이퍼문학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종이 위에 쓰는 시의 사이버스페이스적 특성, 곧 ‘종이 하이퍼텍스트 시’ 라는 것의 논리적 동인(動因)을 체계적으로 확립, 소책자를 제작하여 문학인과 대중에게 확실히 인지시키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합니다. 동시에 하이퍼 시집을 발간하여 문단(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킬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또, 하이퍼텍스트 문학 이론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토론하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활로를 발전적으로 모색해 보는 방안도 생각해 봄직 하겠습니다.
 
6. 이상(李箱)이나 조향(趙鄕)의 시를 하이퍼텍스트의 관점에서 보는 이도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신 진 : 이상이나 조향의 시, 그리고 문덕수의 시 등에서 하이퍼텍스트 시의 선구적인 면모를 읽는 것은 그동안 동인들도 논해온 바이기도 하고 이는 또 사실이라 여겨집니다.
이들뿐 아니라 「처용단장」의 김춘수, 「전화이야기」의 김수영은 물론, 「하여지향」의 송욱, 김지하의 담시 「오적」과 대설 「남」, 그리고 황지우, 박남철 외 젊은 해체시인들, 환상시 시인들에게서도 하이퍼시적 면모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시는 원천적으로 사이버스페이스 이전의, 상상력이란 사이버스페이스를 가진 문화 양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시 사회에서부터 시는 전자 기계에 못지않는 강력한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실재를 제공해왔고, 이는 일반 독자들의 창의력까지 신장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할 것입니다. 특히, 신화적 상상력, 현실 전복의 전위성, 초현실주의의 무의식, 그리고 중심해체와 패러디의 세계는 이미 인간의 무한한 자유와 유희와 도전이 춤추는 가상의 공간으로 인간 사회의 리얼리티와 정체성을 확장시켜왔다 할 것입니다.
그만큼 하이퍼시의 실현을 위한 자료는 무진장인 셈이라 할 것입니다.
 
조명제 : 이상이나 조향의 시를 그대로, 오늘날 컴퓨터 매체를 기반으로 형성된 하이퍼시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이퍼시의 기본적 특성을 비선형성과 다선형성으로 볼 때, 이들의 시는 분명 하이퍼시적 특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하이퍼시는, 과거의 초현실주의, 모더니즘, 포멀리즘, 큐비즘이나 콜라주, 모자이크 기법 등의 종합판이라는 생각이 들거니와, 이상과 조향의 시는 적어도 그 어떤 부분을 선행 실험해 보인 셈이지요.
외국의 경우 T. S. 엘리엇의 「황무지」는 복수시점이나 콜라주 기법 등 훨씬 더 하이퍼적 특성을 충실히 갖추고 있는 편이지요.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저자 류현주 교수는 21세기에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학혁명(하이퍼문학)의 조짐은 근대소설의 발생기인 18세기부터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그 예로 18세기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탄 센티 (Tristan shanty)』부터 20세기 초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To the Lighthouse)』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Ulysses)』에 나타난 당시의 새로운 기법, 곧 선형성 탈피의 서사방식을 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큐비즘 예술을 포함시킬 수 있겠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상과 조향의 시는 이미 하이퍼적 특성들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겠지요.
 
7. 현재 앞이 꽉 막힌 것 같은 시단에서 길을 열고 나갈 방법이 있을까요.
 
신 진 : 산업화, 상업화에 이어 바야흐로 전자 미디어가 주도하는 하이퍼 모더니즘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시의 진로가 불투명하고, 시단의 앞길이 막힌 듯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추세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인간의 역사를 통해 진, 선, 미 등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를 창출해 온 시의 위의가 더 소중스럽고, 그 발전의 토양이 되는 시단의 생태 회복은 간절해진다 할 것입니다.
시단의 새로운 진로를 열어줄 방안 모색을 위한 자리는 10여 년 전에 경향 각지에서 빈번하게 가져졌습니다. 그동안 정부 또는 자치단체 쪽에 요구해온 사항들은 그래도 많은 부분 시행 시스템을 갖추고 있거나, 시행되고 있습니다만 시단 내부에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까운 시단 내부의 병인(病因)부터 찾아 반성하고, 혁신하는 일에서부터 실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가 독자를 잃게 되고, 시 지망생을 잃게 된 데에는 문학권력들이 저질러온 병폐들, 예를 들어 시인 등단의 남발과 학연, 지연(誌緣), 인연에 의한 섹트주의, 안이한 서정이나 일방적인 현실문제 의식, 자폐증적인 언어유희 등에 그 내적 원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시를 그 자체가 목적인 행위가 아니라 상업적 이익이나 명리쟁취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문학 권력들과 수많은 유령(?) 협회는 독자들이 시를 외면하는 원인들을 제공해 왔습니다, 시인들이 시적 순수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시적인 취향이 달라도 ‘좋은 시’는 존중할 줄 아는 풍토, 시인이기 전에 애정 어린 독자로서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시인의 숫자가 훨씬 줄어들거나 동호인 그룹을 따로 움직이게 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흑백 논리나 이도 저도 아닌 혼돈은 둘 다 비시적인 독선입니다. 바른 방향을 외면하고 문화 해석의 독선을 지속하는 관행은 너무 오래 지속되어온 정치 권위주의가 초래한 함정이라 할 것입니다.
문예지 중 상당수는 문화 콘텐츠를 실현하는 문화 기획사로의 전환도 생각해 봄직 합니다. 요즈음 본격화 되고 있는 하이퍼시, 디카시, 공연시, 음악시 등을 전문화 하기도 하고, 통섭적인 콘텐츠를 계발하기도 한다면, 어느 정도는 오늘의 독자를 시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역할도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실행에 옮기기가 요원한 일일 것 같습니다. 사심 없는 실천이 작은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조명제 : 어려운 문제입니다. 시단의 문제라기보다 시문학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젊은세대의 생장 배경이나 생활문화가 되어 버린 영상 중심의 멀티미디어 시대에 시(문학)의 권위와 영향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현대판 만능 지팡이로 불리는 다기능 핸드폰의 무한 진화, 컴퓨터의 지적 변신, 다용도 TV의 보편화,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영상(영화) 산업의 다국적 기업화 등등 영상정보 미디어의 발달은 상대적으로 문학의 위축과 소외현상을 가져온 중대 요인의 하나라고 봅니다. 이러한 대중매체의 문화적 지배는 ‘시의 시대’ 대신 ‘대중가요’의 시대, ‘희곡 문학’ 대신 ‘TV 드라마’의 시대, 그리고 스포츠와 댄스의 시대를 촉발시켰습니다. 이런 위기적 상황에서 문학은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게도 되지만, 흔히 상업주의적 유혹에 빠져들기도 하지요. 대중문화에 편승한 상업주의 문학이나 인기 영합주의적 문학운동은, 마르쿠제의 지적처럼 문학이 문학으로부터 소외되는 문학의 역승화 현상을 낳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이퍼텍스트는 문학과 과학의 융합으로 잉태된 보물’(류현주, 『하이퍼텍스트 문학』,김영사, 2000, p. 20.)이라고도 하는데, 디지털문학이든 하이퍼문학이든 그것은 최첨단 과학 문명의 총아인 컴퓨터 매체의 산물이지요. 하이퍼문학이 컴퓨터 매체의 특성을 최대한도로 이용하여 오랫동안 매체의 한계 때문에 발휘되지 못했던 문학의 미학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주장과는 별개의 문제로, 디지털문학이나 하이퍼문학은 용어상 디지털 문명 및 대중 추수적(追隨的) 문학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게 됩니다. 과학사상의 발달과 문학적 상상력 및 기법의 발전 관계는 인류의 역사가 잘 증명해 주는 터이지만, 문학은 대체로 과학문명(기술과학), 정확하게 말하면 과학문명의 역기능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요는 하이퍼시를 포함한 현대시가 기술문명의 추수나 대중 추수적 경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시뮬라시옹』의 저자로 우리 나라에도 두어 번 다녀간 적이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의 대가인 장 보드리야르는 멀티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를 ‘시뮬라시옹의 시대’ 라고 규정하고, 오늘날의 ‘시뮬라시옹은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실재’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말하자면 실재로부터 모방된 이미지 혹은 기호가 다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거듭된 과정을 통해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이미지를 형성하며, 마침내는 원본이나 실재와는 무관한 상태의 가상현실을 구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재가 실재 아닌 실재인 파생실재로 전환된 시뮬라크르(simulacres)의 사회에서는 현실이 그 때 창작된 가상을 모방하게 되는데,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이미지 폭력’이 결국 현실세계에 대한 무관심을 확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차피 21세기의 현대인은 좋든 싫든 멀티미디어가 생산해 내는 이미지와 기호, 곧 시뮬라크르 라는 파생실재(가상현실) 속에서 무의식 무관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의 물신적 우상과 마찬가지로 그 유일한 타개책이란 이미지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하이퍼시나 요즘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사물시의 논리와 창작에도 중요한 참고가 될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제 시를, 기술적 진보와 대중매체에 의해 한정 없이 확산되고 있는 대중가요나 스포츠, 영화나 TV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 양식과 동렬에 놓고 허탈해 하고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통속적 시뮬라크르에 의해 사람들의 의식이 마비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시문학이 사회적으로 그런 대중문화를 압도하거나 우위에 놓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현대시는 고급문화의 창출로 대중문화와 차별화 하면서, 실재를 감추고 변질시키는 이미지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대중의 무의식을 일깨울 인자(因子)로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신진/조명제 상호 비평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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