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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신구문화사(11) 미국편 끝
2019년 03월 12일 16시 03분  조회:1381  추천:0  작성자: 강려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신구문화사(11)
 
 
 
미국편 / 공동번역: 이태주 성찬경 민재식 김수영 (1965년) 
 
 
리처드 윌버러(Richard Wilbur)
 
 
감자
 
 
땅 속에서 자라는 것, 눈은 먼 데로 흔한
 
   갈색.
 
망측한 꼴을 하고 있지만, 알아 주는 곳
 
   에선 슬쩍 건드려진다.
 
흙처럼 단순하지만 지구처럼 모든 것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날(生)로 썰어 짝 가르면 시원하고, 맑
 
   은, 흉한 냄새를 뿜는다.
 
다 지은 음식의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무기
 
   산(無機酸).
 
그것은 이를테면 기묘하게 신선한 무덤을
 
   파헤치는 거나 같다.
 
 
그 속엔 최초의 돌멩이의 맛이 깃들어 있
 
   고, 죽은 노예의 손과,
 
태고적 겁나는 숲 속에서 사람이 마신 물
 
   과,
 
부싯돌 조각과, 이탄(泥炭)에다, 매몰된 천막의
 
   뜬숯의 맛도 깃들어 있다.
 
 
물꼭지에서 나오는 물 밑에서 부벼대면
 
   혹성(惑星)같은 피부는
 
노오란 윤이 난다. 허나 검소한 내부의
 
   것에 대해서 짓는 눈물.
 
구우면 흰 것이 배고픈 손들처럼 푸른 심
 
   장(心臟)을 띤다.
 
 
춥고 어둡던 부엌을 모두, 그리고 전쟁으로
 
   얼어붙어 창가에 회색빛 돋던
 
저녁을, 나는 기억한다. 수없이 여러 차
 
   례 감자를 까선
 
말없이 나무통 속에 넣던 일을.
 
 
<우릴 살린 것은 감자였네. 그게 우
 
   릴 살렸어.>
 
그 즈음엔 그들은 칭찬 비슷하게 할 얘기
 
   가 있었다.
 
너무 흔해서 비장(秘藏)하거나 훔칠 필요가 없
 
   는, 미천한 땅 사과를 위해서.
 
 
때가 곤란한 때라, 시이크교도나 세네갈
 
   사람들,
 
부랑노동자나 이주농민이나 유대인인 예
 
   수의 몸,
 
이런 따위 흔적만 남은 덕(德)이 먹히고 있
 
   다. 우린 살아 남으리니.
 
 
풍미(風味)를 잃지 않은 것이 우리들 떠받칠 것
 
   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살리는 것, 우리의
 
   수요를 채워주는 것을 찬양한다.
 
(머지 않아 또다시 알제리아 과실을 담은
 
    소포가 올 것이다.)
 
 
아아. 그것은 윤을 내지 못하게 될 것이
 
   다. 엣날의 감자는
 
벌써 뭇 시이저에 의해서 재배될 필요
 
   도 없이, 어디서든지 피어날 것이다.
 
자연 속에 숨어서, 다른 것이 의지할 만큼
 
    완강하게 맹목적으로.
 
 
그대는 그런 것이 밀어내는 바람에 대기(大氣)
 
    로 솟는 덤불을 보았을 것이다.
 
괴상하게 직세(織细)해서, 때론 2류쯤의 꽃을
 
    달고 있고,
 
어색하고 유액(乳液)을 내며, 굶주림에 대해서
 
    만 아름다워 보이는 것.
 
 
(성찬경 번역) 
 
 
 
기술사(奇術師)
 
 
공은 뛰긴 뛰지만 차츰 낮아진다. 그것이
 
경쾌한 마음을 지닌 물건은 못된다. 스스
 
   로의 탄성(彈性)에 울화가 난다.
 
낙하(落下)야말로 그것이 좋아하는 거다. 그치면
 
   지구도
 
우리의 가슴에 광휘(光輝)에서 떨어져선
 
정착되어 잊어진다.
 
그것은 다섯 개의 붉은 공을 지닌, 하늘
 
   색 푸른 기술사를 데리고서,
 
 
우리를 중력(重力)을 뒤흔들어 놓는다. <휴우>
 
   소리를 내며
 
공들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굴러서, 그의 빙
 
   빙 도는 손을 타고 돌아가며, 구형(球形)으로 변하
 
   곤,
 
그의 손가락 끝의 허물을 벗기고,
 
거기 지나온 자죽에 늘어붙어
 
그의 두 귀 언저리에 조그만 하늘을 출렁
 
   이게 한다.
 
허나 그런 따위 하늘쯤 다시 찾은 땅에
 
   비한다면, 별것도 아닌 거저먹기이다.
 
   소리 없이 홀로
 
맴도는 세계의 내부에서 침착하고도 고상
 
   한 몸놀림으로,
 
그는 그런 하늘을 말아들인다.
 
공을 하나씩 차례차례 착륙시키곤,
 
그것을 팔아서 빗자루나 접시나 테이블을
 
   사 들인다.
 
 
어이구. 그의 발가락 끝에서 테이불이 돌
 
   고 있다. 빗자루가
 
그의 코 위에서 곤두서 있고, 접시는
 
빗자루 꼭대기에서 선회한다. <제기럴, 사
 
   람 죽이네.> 우린 소리친다.
 
남자 애들은 발을 구르고 계집애들은 째
 
   지는 소리를 내면 북이 울린다.
 
그러면 모두가 내려온다. 그리고 그는 작
 
   별(作別) 인사를 한다.
 
 
만약에 그 기술사가 이제 좀 피로해서, 빗
 
   자루가
 
다시 먼지 속에 솟고, 테이블이 물방울을
 
날마다 컴컴하게 떨어뜨리면,
 
접시가 테이블 꼭대기에 납작히 놓여 있
 
   는데도
 
우린 그를 호되게 깍아 내린다.
 
한 때는 세계의 중력을 이겨낸 그를.
 
 
*기술사(奇術師): 기이한 술수를 부리는 사람 일종의 서커스하는 사람
 
 
(성찬경 번역) 
 
 
 
애가(哀歌)의 계절에
 
 
노을과 숯, 그리고 <뭇 넋>의 기후.
 
거대한 부재(不在)가 나무 위에서 시름에 잠긴
 
   다.
 
어쩌다 화향(花香)단지에 던져진 잎사귀들이
 
움 속과 지하실에서 향기를 속삭인다.
 
 
아니면 도랑에서 빚어지고, 샘에 저려져
 
   서 잎사귀들은,
 
시린 증기(蒸氣)로 마지막 훈향(薰香)을 소모(消耗)하며
 
깊지 않은 지옥에서 들의 영혼과 과수원
 
   의
 
바람을 낳는다. 그러면 이제 질투(嫉妬)에 찬
 
   마음.
 
 
나의 머릿속에 여름을 붙들어 두질 못한
 
   마음은
 
그 지글지글 타는 환경으로 경계(境界)된 채
 
이 불모의 땅을 황금의 황홀(恍惚)로 펼치며,
 
풍요(豊饒)한 여름이 죽은 것을 기억한다.
 
 
그리곤 가을의 영감(靈感)으로 그런 여름을
 
온통 제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녹색 가
 
   지들이
 
두 눈 뒤 가없이 퍼져 있는 곳에 솟고
 
영혼은 따스한 생각의 호수에서 눈감는
 
    다.
 
 
이보다 덜 오만한 나의 육체는
 
춥고 추운 기후를 지나서, 날개의
 
보드라운 소란(騷亂)과 샘의 빠른 물줄기를 좇
 
    아,
 
그리고 날(日)을 향한 계단에서 들리는
 
여신(女神)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 귀를 기울인
 
   다.
 
 
그리곤 짐 실은 바람의 소리를, 풀냄새를,
 
상쾌한 라일락 향기를, 빛 속에 솟는
 
푸른 이파리의 광경을, 그리고
 
우물에서 펑펑 솟는 남색 물을 못내 그리
 
   워한다.
 
 
(성찬경 번역)
 
 
 
마음
 
 
마음은 가장 순수하게 작용할 땐 박쥐같
 
   다.
 
그것은 저 홀로 동굴 속을 뛰어 다니며
 
일종의 무의식의 꾀를 써서
 
돌 벽에 부딪치지 않으려고 궁리한다.
 
 
그것은 망설이거나 더듬거나 할 필요가
 
   없다.
 
암초 속에서도 그것은 어떤 장애물이 있
 
   는가를 알고 있다.
 
칠판(漆板)의 공중을 온전한 자유로 통과하며.
 
 
이 비유는 같은 만큼의 완전함을 갖는 것
 
   일까?
 
마음은 박쥐같다. 정말 그렇다. 다만
 
가장 행복한 사고작용(思考作用)을 할 땐
 
우아한 실책(失策)이 그 동굴을 수정할는진 모
 
   르지만.
 
 
(성찬경 번역)  
 
 
 
민속조(民俗調)
 
 
번연(Bunyan)이 그의 도끼를 휙 하고 내
 
   둘렀을 때
 
숲은 마치 하나의 커다란 류트처럼 소리
 
   를 냈다.
 
수목이 그의 발밑에 와지끈 쓰러져선
 
튀어 오르더니만, 그의 갈길에 뻗고 말았
 
   다.
 
그는 도끼가 있었고, 푸른 도끼였
 
   다.
 
 
단추 구멍에 꽂은 꽃은 파라솔보다도 환
 
   했었다.
 
그는 가 버렸다. 톰 스윗트(Suift)도 또
 
   한 사라져 버렸다.
 
그 자(者)는 일을 할 때 꾀 밖엔 써먹은 것이
 
   라곤 없다.
 
비행선(飛行船)을 모아서
 
마당에 내놓은, 조용한 날씨에
 
톰 소여의 울타리 뒤에서 휘파람을 불곤
 
   했다.
 
허긴 그런데 어둠이 우리 거리에 깃들어서
 
껍질만 남은 소리의 마지막 빵조각을
 
파먹어 들어가 온 거리가 마비(麻痺)되어서
 
제 발등 위에서 잠이 들 때면.
 
 
나는 그 꿈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존 헨리가 우리 악몽의 친구인데
 
그 자(者)의 두 어깨는 끝 없이 굴러가며
 
혈관은 펑펑 뿜어대어, 접합선(接合線)이 터지고.
 
 
그 자의 썰매가 바위와 대충돌을 해서
 
병든 도시를 집어 던져서
 
분실(紛失)의 한숨 속에 반쯤 깨워 놓는다.
 
시계가 때꼬챙이 소리를 낼 때까지.
 
 
존 헨리의 망치와 의지가
 
여기 남아서 우리의 잘못을 종종 울려 내
 
   보낸다.
 
나는 그가 한가하게 으르렁대는 성성(猩猩)이를
 
   갈기려고
 
밤새 싸다니는 소리를 듣는다
 
 
                                                   *성성(猩猩):오랑우탄
 
(성찬경 번역) 
 
 
 
터어키의 검은 11월
 
 
아홉 마리의 흰 병아리가
 
엉덩이와 머리로 걸어와서
 
부스러기, 쓰레기, 콩깍지 조각 따위를
 
찍어 대다가,
 
 
먼지 낀 빛의 연못을
 
조금씩 조금씩 그늘 속의 분광(分光)처럼
 
침범해서 마침내 깡충깡충 한 마리씩
 
불을 붙인다.
 
 
창백하지도 않지만 붉지도 않은
 
터어키의 수탉이, 빛나는
 
불결(不潔)로 한 벌의 스페이드가 하는 것처럼
 
컴컴하게 상서(祥瑞)롭게,
 
 
스스로 제 의식을 과시(誇示)하는
 
죽음의 위엄으로 숨이 차서,
 
요즈음 숨소리는 목이 막혀 갈래갈래
 
끊어지는 소리로 되풀이 연습한다.
 
 
거대하고 새까만 시체가
 
마치 호되게 얻어맞은 가지 위의
 
구름처럼, 물결 지는 바다 위의 흰 배처
 
   럼,
 
 교차된 무릎 위에서 떠다닌다.
 
 
그리곤 그의 부채와 깃털을
 
곱고 보드라운 소란(騷亂)으로
 
바람이 종이 재를 장난삼아 날릴 때의
 
 소리를 내며 떤다.
 
 
저를 지키는 이의 굽은 지팡이 끝에
 
 놓인
 
푸르죽죽한 뼈만남은 대가리는
 
성인(聖人)의 사면(死面)처럼 어렴풋이 화려하게
 
 시간 없는 모습으로 변하곤,
 
 
시간을 재는, 이 암탉을 내려다본다.
 
그러면 수탉은 한 마리씩
 
치명적인 여명(黎明)마다 속악(俗惡)한 기쁨으로
 
 태양을 불러 들인다.
 
 
(성찬경 번역)
 
 
<미국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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