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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영국편 /신구문화사(18)
2019년 03월 29일 17시 46분  조회:420  추천:0  작성자: 강려
전후 세계문제시집(戰後 世界問題詩集) 영국편 /신구문화사(18)
 
 
영국편
 
 
캐덜린 레인(Kathleen Raine)  
 
 
 
무녀(巫女)
 
 
나는 저 뱀이 넘나드는 동굴
 
나의 배꼽에서 사내들의 숙명(宿命)이 태어난
 
   다
 
모든 지혜는 대지(大地)의 구멍에서 비롯되는 것
 
   이다
 
신(神)들은 나의 어둠 속에 모습을 이루고는
 
   또다시 해체(解體)한다
 
 
나의 눈먼 자궁에서 모든 왕국은 나타나고
 
나의 무덤에서 7인의 잠자는 자가 예언
 
   한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는 모조리 나
 
   의 꿈에 눈 뜰 것이며
 
애인(愛人)은 모조리 나의 안에 매장되어 가로
 
   누울 것이라고
 
 
나는 저 두려움을 받으며 사모(思慕)되는 불타
 
   는 장소
 
사내와 불사조가 파멸해 버리는 곳
 
그리하여 나의 낮고 더럽힌 침상(寢床)에서
 
새로운 아들 새로운 태양 새로운 하늘이
 
   탄생한다
 
 
(박희진 번역) 
 
 
 
사랑의 시(詩)
 
 
당신의 얼굴은 대지(大地)가 내게로 돌리는 얼
 
   굴,
 
그 인간의 용모 건너에 연이어서
 
하늘에 기대어 쉬는 산(山)의 모양이 누워 있
 
   다.
 
당신의 눈에 의해, 반사하는 무지개, 태
 
   양의 빛이
 
나를 본다. 숲과 꽃, 새와 짐승이
 
나를 찾아서 영원히 나를 세계의 사상(思想) 속
 
   에 있게 한다.
 
창조의 깊고 안정된 회상(回想) 속에.
 
 
당신의 손이 나에게 닿을 때, 그것은
 
나를 취하는 대지 - 깊은 풀섶,
 
바위와 강. 초록의 무덤이나,
 
아직 태어나지 아니한 아이나, 조상들은
 
神의 손에서 손으로 넘겨지는 사랑 속에
 
   있다.
 
당신의 사랑은 세계의 창조에서 온다,
 
빛으로 바다의 표면을 깨치는
 
구름들 사이에서 흘러오는 아버지의 손가
 
   락에서 온다.
 
 
여기, 내가 손으로 당신의 육체를 더듬는
 
   곳,
 
사랑의 존재엔 종말이 없다,
 
이 나를 껴안는 당신의 팔은 세계의 팔이
 
   므로.
 
우리들 속에 대륙과 구름과 바다가 합치(合致)
 
   한다
 
우리들의 변덕스러운 자아(自我)는 밤과 함께 퍼
 
   져서
 
마음의 숭배(崇拜)와 육체의 잠 속에 상실되고.
 
 
(박희진 번역)  
 
 
 
노오삼부리아 연시(連詩)
 
 
1
 
 
세계가 비롯되기 전에 나는 무구(無垢)했다
 
나는 사나운 바람이었고 물결이었다
 
나는 일찌기 노래한 새 이전의 새였다
 
 
나는 결코 조용하진 않았다
 
나는 기쁨의 굴대 위에서 돌았다
 
나는 언덕 위의 쓸쓸한 무희(舞姬)였다
 
 
나는 산 중턱의 비
 
떠오르는 안개
 
불안한 바다였다
 
 
나는 무지개 이전의 빛깔로 되어 있는
 
그물을 떴다
 
꽃잎이 열리기 전의 꽃의 복잡함을
 
 
나는 파묻혀 있던 광석(鑛石)
 
화석(化石)이 된 숲
 
나는 사물의 근원을 알고 있었다
 
죽음의 왕국 앞에서
 
나는 무덤을 빠져 나갔다
 
 
영겁의 때를 거쳐
 
나의 여행은 우주를 돌아
 
그리고 최초의 날 앞에
 
나는 머물러 있다
 
 
2
 
 
나는 그를 찬미한다
 
괴로워 날뛰는 물결이 자서
 
그 물결 위에 별들이 걸리기까지
 
정적을 일러준 내 말없는 밤의 입술로
 
나는 어둠 속에 그의 빛을 끌어넣은 것이
 
   다
 
 
나는 공간의 비인 마루 위에
 
혼례(婚禮)의 춤을 엮는다
 
나는 팬시우스의 가족을 타오르게 한
 
비밀의 의식(儀式)을 춤춘다
 
그의 광휘(光輝)는 나의 가장 어두운 곳에 비친다
 
 
그는 나의 깊은 무덤 속에
 
그의 꺼지지 않는 불을 둔다
 
그의 불길은 내 안에서 분수(噴水)같은 나무나
 
   마음을
 
뛰놀게 하고 자연의 침상에서
 
새처럼 높이 비약한다
 
나는 어둠 속에 그의 빛을 끌어넣은 것이
 
   다
 
 
나의 잎은 그 초록의 손으로
 
태양을 끌어내리고
 
그 광선을 이승의 들장미에 연결한다
 
나는 내가 비치는 바다를
 
그의 얼굴 앞에 놓아 둔다
 
그의 광휘는 나의 가장 어두운 곳에 비친다
 
 
(박희진 번역) 
 
 
 
사랑받지 않은 것
 
 
나는 순수한 고독
 
나는 공허한 공기
 
나는 떠도는 구름
 
 
나에게는 모습이 없다
 
나는 무한(無限)
 
나에게는 휴식이 없다.
 
 
나에게는 집이 없다
 
나는 장소를 스쳐가는
 
무심한 바람
 
 
나는 뭍에서 날아가는
 
흰 새
 
나는 지평선
 
 
나는 결코 기슭에는 이르지 않는
 
한 물결
 
 
나는 모래 위에 내올려진
 
빈 조개
 
 
나는 지붕 없는 오두막을 비치는
 
달빛
 
 
나는 언덕 위의 둥근 천정이 깨진 무덤
 
   속에
 
잊혀진 사자(死者)
 
나는 물통으로 물을 나르는
 
노인(老人)
 
 
나는 공간을 여행하는
 
 
 
나는 우주에서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져서
 
작아지는 별
 
 
(박희진 번역)  
 
 
 
공기(空氣)
 
 
비둘기와 천사와 갈라진 불꽃,
 
헬리콘 산의 참벌, 구름 낀 집과
 
음악(音樂)의 충격과 세계의균형을 말하는 요
 
   소(要素).
 
 
흩날리는 티끌 속에 불멸의 지혜를 찍어
 
   내거나
 
눈 속에 그의 추상조각(抽象彫刻)을 아로새기는
 
춤에서 지칠 줄을 모르는 무희(舞姬),
 
거칠 게 없는 바람은 그 자국을 넘어 지나
 
   간다.
 
 
그러나 여름날 높은 곳에 때로는 아래
 
   에서
 
물처럼 떨어지는 공기를 너는 볼 수 있으
 
   리,
 
그 물결 위의 빛의 눈부심,
 
세계의 종언(終焉)을 향한 꺾이지 않은 흐름.
 
 
神의 새는 두 순간 사이를 내려간다
 
음악에 스며드는 침묵처럼, 시간을 꿰뚫
 
   는 길을 내면서.
 
 
(박희진 번역)  
 
 
 
죽음의 기원(祈願)
 
 
죽음이여, 나는 뉘우친다
 
사십 년 동안이나
 
내 것이었던
 
이 손과 발을
 
또 나는 뉘우친다
 
살과 뼈
 
심장(心臟)과 간장(肝臟),
 
머리칼과 피부를 -
 
죽음이여, 나를 면하게 해 다오,
 
얼굴과 형상
 
나를 말해 주는 모든 것에서.
 
 
또 나는 뉘우친다
 
사고(思考)의 방식,
 
정신의 습성(習性)과
 
오랜 고통으로
 
소모된 마음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거니와
 
납득도 못한
 
사라진 장소와
 
사람들 얼굴의
 
희미하고도 닳아진
 
기억의 흔적들을.
 
죽음이여 나를 벗어나게 해 다오,
 
내가 사용했던 모든 말에서.
 
 
어디 한 두 가지랴
 
내가 치루었던 모든 일은 다
 
실수 투성이,
 
또 나는 보았다
 
죄와 비애가
 
이 세계를 더럽힌다는 것을 -
 
용서해 다오,
 
이 시간과 장소에서
 
내가 저질렀던 온갖 것의
 
자국을 떼어 다오.
 
 
(박희진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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