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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심상운 시론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9> / 심 상 운
2019년 07월 12일 21시 05분  조회:947  추천:0  작성자: 강려
 
윤석산 시인의 시- 언어의 환상성과 사물성-말의 오두막집 남쪽언덕에서-
                      땡초를 위해
 
    1
 현대인들은 말의 껍데기만 가지고 산다.
 
   가령 <너>라는 말만해도 그렇다. 우리는 흔히 너를
 <홀로 있는 너>니 <관계 속의 너>니 하고 나누지만 그
 런 <너>에게는 네 마알간 피부, 네 부드러운 머리칼, 네
 가 아침마다 사용했을 샴프 냄새, 그걸 헹구던 수도꼭
 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의 투명한 울림 같은 것
 들은 모두 증발되고 <너>라는 말만 남아 있을 뿐이다.
   2
 내가
 똑두새벽에
 홀로 일어나
 우두커니 뜨락의
 느티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간밤 <너>와 잔 게 아니라
 너라는 말과 잤기 때문이다.
   - 「언어의 환상성과 사물성-말의 오두막집 남쪽언덕에서-」1˜2
 
 말과 말 사이를 떼어놓았다.
 조금씩 조금씩 떼어놓았다.
 햇살을 받은 개울물이 졸졸졸 흐르고, 송사리 소금쟁이 중태기가 헤엄
쳐 오르고
 조금씩 조금씩 더 떼어놓았다.
 남실거리는 물살을 타고 중태기 갈가리 모래무지 빠가사리가 퍼득대고
 물비늘이 빤짝인다.
 말과 말 사이가 너무 멀어
 오늘 밤 달빛을 나눠주러 마을로 내려간 땡초를 위해
 징검다리를 놓아야겠다.
      ---「땡초를 위해」전문
 
언어에 대한 성찰은 그것이 사물의 본질로 들어가는 입구入口가 되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해도 중요성이 줄어들지 않는다. 특히 사람들의 눈은 늘 본질보다는 언어의 기표에 현혹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현대 사회의 여러 현상들이 본질(실상)보다는 허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에 더 매혹 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언어의 그늘진 뒷면을 들여다보는 언어의 껍질 벗기기는 시기법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윤석산 시인의 시편에는 이런 현대 언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 있다. 그의 시의 바탕에는 우리들이 사용하는 현대의 언어들이 너무 추상화抽象化(기호화) 되어서 언어의 본적지인 사물의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졌다는 시인의 인식이 깔려 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언어 이전의 싱싱한 사물성의 세계를 환기시켜 주면서 본질의 세계로 안내하는 그의 시편들은 현대시에서 독특한 가치를 드러낸다. 그런 그의 언어의식이「언어의 환상성과 사물성-말의 오두막집 남쪽 언덕에서-」에서는 실험적인 시도試圖로 조심스럽게 제시되고 있지만, 언어에 대한 그의 사유와 시각이 매우 사실적이고 감각적이어서 신선하게 감지된다. 그것은 《가령 <너>라는 말만해도 그렇다. 우리는 흔히 너를 / <홀로 있는 너>니 <관계 속의 너>니 하고 나누지만 그/ 런 <너>에게는 네 마알간 피부, 네 부드러운 머리칼, 네가 아침마다 사용했을 샴프 냄새, 그걸 헹구던 수도꼭/ 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의 투명한 울림 같은 것/ 들은 모두 증발되고 <너>라는 말만 남아 있을 뿐이다.》라는 짧은 시구詩句 속에 잘 압축되어 있다. 이런 그의 시구는 언어에 대한 그의 깊은 의식과 예리한 촉각을 느끼게 하면서 현대 시인들이 얼마나 자기들의 중요한 도구(언어)에 대한 심층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물이 아닌 기호이며 상징(이미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그래서 그것은 시인들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언어의 한계는 극복되기 어렵다는 것을 한국 현대시에서 보여준 김춘수 시인의 무의미 시의 실험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시인들은 탈관념의 언어 찾기, 사물과 언어의 거리 좁히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는 당위성과 언어의식을 강조한다.「땡초를 위해」는 말과 말 사이를 떼어 놓음으로써 생기는 침묵의 세계를 통해서 언어와 사물과의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말이 사라진 침묵 속에서 생기를 되찾는 사물(자연)의 세계는 선禪의 경지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참선과 함께 묵언의 시간 속에 머무는 산사山寺의 스님들의 수행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역설적이고 극단적인 언어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의 공해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치유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인들도 현란하고 난삽한 언어의 사고思考에서 잠시 벗어나 묵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서 오로지 생생한 마음만으로 사물과 직접 대면을 해 보는 것이 자기 시세계의 실상을 찾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나는「시향」에 발표된 윤석산 시인의 실험시편들을 읽으면서 그의 독특한 발상과 함께 깨어있는 시인의 날카로운 시선을 발견하고 섬뜩함을 느끼면서도《말과 말 사이를 떼어놓았다./ 조금씩 조금씩 떼어놓았다./ 햇살을 받은 개울물이 졸졸졸 흐르고, 송사리 소금쟁이 중태기가 헤엄쳐 오르고 조금씩 조금씩 더 떼어놓았다./ 남실거리는 물살을 타고 중태기 갈가리 모래무지 빠가사리가 퍼득대고/ 물비늘이 빤짝인다.》라는 그의 참신한 감성感性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것은 그의 시편들이 우리들의 의식을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아득한 원시原始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또 새로운 깨우침의 사유와 함께 일상과는 다른 세계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 윤석산(尹石山) : 1972년 <시문학>에 「接木」「巫女」「용왕굿」이 천료되어 등단함. 시집: 「亞細亞의 풀꽃」「벽속의 산책」등
 
박명용 시인의 시「구경거리」「몸」
 
 
울안에 갇힌 곰을 보러 갔더니
곰은 <너희들 보는 재미에 갇혔다>는 듯
줄줄이 밀려드는 인간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인간이 곰을 구경하는지
인간이 곰의 구경거리인지
하느님
이 세상 울은 어딥니까.
-------「구경거리」 전문
 
태풍 루사가 지나간 강변에
남루한 양복상의 하나
볼썽사납게 축 늘어져 있었다
무심코 집어들어
모래를 훌훌 털며
이리저리 훑어보는데
단추에 묻었던 햇살 한 줄기
사정없이 내 눈을 찔렀다
순간, 정신 번쩍 들어
그 자리에 급히 놓았다
저 옷 입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다가
문득,
내 옷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집어들어 보았다
아, 그것은 양복이 아니라
이른 새벽 깨어나 두렵게 만져보던
내 몸의 일부였다
     --「몸」 전문
 
시를 읽는 재미중의 하나는 읽고 난 뒤에 묻어나는 언어의 맛과 곱씹어보는 생각이다. 이런 곱씹음의 여지가 남아 있는 시는 독자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독자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시각視角의 날을 날카롭게 세워준다. 박명용 시인의 시「구경거리」는 그런 면에서 다른 시들과 구별된다. 그는 어느 날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곰을 구경하다가 우리에 갇힌 곰이 오히려 인간들을 구경하고 있다는 상황전환狀況轉換의 생각에 빠져든다. 그래서 《곰은 <너희들 보는 재미에 갇혔다>는 듯/줄줄이 밀려드는 인간들을 감상하고 있었다.》는 생각 속에 갇혀서 순간적으로 당황한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 이 세상 울은 어딥니까.》라는 물음을 던져보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역설逆說로써 한 순간의 착각이 빚어낸 생각의 해프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각視角을 바꿔보면 동물원의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들에게는 구경하러 몰려드는 인간의 무리가 구경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편견과 우월감에 젖어 있는 인간들이 오히려 지능이 낮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세상을 보는 눈은 몇 개의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육안肉眼이고 둘째는 천안天眼 셋째는 혜안慧眼 넷째는 법안法眼 다섯째는 불안佛眼이다. 우리들은 보통 육안肉眼만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이 육안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인간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이다. 이 관점의 중심은 차별(분별)을 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대립과 갈등을 조성하고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만들고 다투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육안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하나의 세계 속에서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육안에서 벗어난 시각에서 볼 때 비록 우리 속에 갇혀 있지만 분별심이 없는 존재인 곰은 자유롭고 우리 밖에서 차별의 울타리를 쌓고 있는 인간들은  우리에 갇힌 의식(구속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박명용 시인의「구경거리」는 그런 측면에서 의미 있는 화두를 독자에게 던져주고 있다. 이런 시각 바꾸기는「몸」에서 오도송悟道頌과 같은 새로운 자기 존재 발견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태풍 루사가 지나간 강변에서 주운 남루한 양복상의를 보고 그 양복상의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고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 옷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이 양복이 아닌《이른 새벽 깨어나 두렵게 만져보던/내 몸의 일부였다》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이 이 시의 중심 내용이다. 이 시는 시 전체가 점층적인 구조를 이루면서 독자들에게 시각 전환의 단계를 보여준다. (남루한 양복상의의 주인→ 알 수 없는 누구→ 내 옷 →이른 새벽 만져보는 내 몸의 일부) 그러니깐 이 시의 핵심은 태풍 루사가 지나간 강변에서 누군가 버리고 간 양복상의를 통해서 잃어버렸던(또는 새로운)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 과정이다. 그 참모습 찾기는 너/나라는 분별의식에서 벗어난 시인 자신의 열린 의식意識의 눈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의식의 시각을 갖게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의 내적 수련 없이는 불가능한 정신의 높은 경지다. 나는 박명용 시인의 사유가 던져주는 존재의 문제와 그것을 해결하는 그의 시적 방법론(시각전환)을 곰곰이 내 나름대로 짚어보면서 그의 시편들이 함축하고 있는 사색의 깊은 맛을 음미하며 거듭 읽는다. 그리고 환한 빛이 보이는 길을 따라가 본다.
 
*박명용 (朴明用): 1977년 <현대문학>에 「햇살」「모발지대」「편집」등이 추료되어 등단. 시집: 「알몸 序曲」「강물은 말하지 않아도」「꿈꾸는 바다」「안개밭    속의 말들」「날마다 눈을 닦으며」「뒤돌아보기」등
 
 
 
김시종 시인의 시- 「상흔」「우는 농」
 
민보단民保團 시절에
몰매맞아 미친 영수永壽
흰 수염을 흩날리는 백수광부白首狂夫로
새파란 예비군모를 쓰고 있다
 
사상이 불온하다고
뭇매 끝에 돌아버린 사내
삼십년이 훨씬 넘은 요즘도
포수만 보면 기겁을 한다
 
미치면 단명하다는데
이름 잘 지어 장수하는
늙은 광부 영수永壽
 
오늘밤도 공터에서
모닥불을 지핀다
 
수염 속에 파묻힌 착한 얼굴
나에게 묘한 감동을 준다
-----「상흔」 전문
 
머리맡에 놓여 있는
오동장롱이 밤만 되면 웁니다.
 
오동장롱은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해 오신 거랍니다.
 
장롱 속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입던
입성도 들어 있었습니다.
 
오밤중에 홀로 깨면
따닥따닥.....장롱 우는 소리에
소름이 끼쳐
 
장롱을 할머니 방으로
옮겼으면 싶어도
청상靑孀인 어머니는 한밤중에 몰래 일어나
우는 장롱을 어루만지는 것이었습니다.
 
장롱에 아버지의 넋이 깃들어 운다는
점장이의 말을 듣고 나서부턴
장롱에 흠이 질까봐
장롱 옆에서 나를 못 놀게 하셨습니다.
-----「우는 농」전문
 
김시종의 시편들은 현실과 밀착되어 있으며 실제의 경험이 들어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언어의 특별한 수사修辭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도 시 한 편이 한 시대의 단면斷面을 예리하게 도려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의 시가 하나의 알레고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상흔」에서는 우리들이 역사라고 말하는 한 시대의 거대하고 냉혹하고 광적인 체제 속에서 한 인간의 인간성이나 존재성이 얼마나 미미한 것인가를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상이 불온하다고 뭇매 맞아 미쳐버린 백수광부白首狂夫 영수永壽라는 인물의 이미지를 통해서 언제나 피해만 받고 살아가는 이 땅 민초들의 상징적인 원형을 해학적으로 표출시키고 있다.《민보단民保團 시절에/몰매맞아 미친 영수永壽/흰 수염을 흩날리는 백수광부白首狂夫로/새파란 예비군모를 쓰고 있다//사상이 불온하다고/뭇매 끝에 돌아버린 사내/삼십년이 훨씬 넘은 요즘도/포수만 보면 기겁을 한다.》에는 그런 이미지가 압축되어 있다. 그런데 그의 시는 이렇게 큰 주제를 함축하고 있으면서도 무겁지가 않다. 그것은 맑은 눈으로 정확하게 현실의 심층深層을 투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포수만 보면 기겁을 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사라졌지만 시대의 또 다른 광풍 속에서 집을 나온 영수永壽 같은 인물들이 광화문 지하도나 지하철역에서 웅크리고 자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래서 김시종 시인이 발견해낸 인물은 역사성과 함께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백수광부白首狂夫라는 말이다. 이 말은 우리의 고대시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의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처妻의 애절한 만류를 뿌리치고 강물에 빠져 죽은 머리가 하얗게 센 미친 남자) 시대를 넘나드는 그의 현실감각과 풍자성을 엿보게 한다. 그리고 의미공간을 확대시키고 독자들의 상상력을 흥미롭게 자극하는 그의 독특한 시 기법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현실감각에 뛰어난 그의 시는「우는 농」에서는 모진전란戰亂 속에서 살아온 이 땅 여인들의 아픈 삶의 일면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남편을 잃은 청상靑孀의 여인이 밤마다 듣는 장롱의 소리는 죽은 남편의 울음소리다. 그것은 또 시인 자신의 아버지의 울음소리인 것이다. 그는 그것을 객관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의 가슴에 그 울음소리의 그림자를 전하고 있다. 시인 자신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진솔함이 시간의 풍화작용에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현대시에서 시를 발견하는 눈은 다양하다. 언어의 기적은 우리들에게 가지각색의 풍요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관념이 아닌 실제의 사물事物로 만져지는 민중언어의 생명력은 언제나 그 중심에 꿋꿋하게 뿌리박고 있다. 나는 김시종 시인의 풍자 시편들의 단순명쾌함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역사 속에서 진솔하게 다시 살아나는 민중적인 언어들의 영상을 더 인상 깊게 기억한다. 
 
* 김시종(金市宗 ) :1967 <중앙일보>신춘문예 시조 당선. 1969년 <월간문학>에 자   유시 타령조」발표로 등단. 시집 「오뉘」「청시」「 불가사리」 「창맹 의 입」「 교정의 소리」「 흙의 소리」「외팔이 춘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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