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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심상운 시론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0> / 심 상 운
2019년 07월 12일 21시 07분  조회:856  추천:0  작성자: 강려

이광석 시인의 시---「석류를 따며」「나무 1

 그대 내 어둔 가슴속 설레임 하나 기다림 하나 키우더

니 마침내 노을빛 작은 등 나를 향해 켜들었네. 옷고름 푼

늦가을 억새들 취한 듯 수줍은 듯 젖은 어깨 가릴 때 나는

그대 정수리에 알몸의 달빛으로 꽂히리. 아무리 사는 일

에 부대끼고 두렵고 낯선 어둠 세상의 빈집들을 기웃거릴지

라도 따뜻했던 아름다웠던 해질녘 그대 몰래 불 밝힌

입맞춤 불러내진 못하리. 먼 훗날 우리 사랑 몸져 쓸쓸한

추억 속으로 떨어질지라도 이별의 예감만은 아껴두리.

서리 하얗게 그대 창문에 커튼을 내릴지라도 내 가슴속

은밀히 숨겨둔 작은 방 한 칸 높고 깨끗하게 비워두리.

으로 안으로만 묻어온 빠알간 애모 가지가지마다 총총 걸

어놓고 그대 오는 길목 다시 환히 비추리.

                        ---「석류를 따며」전문

 

나무는 제 몸 속 어딘가에서 목탁소리를 듣는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천년 푸른 남해 해조음海潮音소리도 듣는다

제재소에서 갓 쓸려나온 톱밥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도

듣는다 나무는 하루 종일 필요한 소리만 듣는다 새 움을 틔우고

잎을 내리고 헐벗은 가지마다 깊은 생각 헹구어 낼 때도

나무는 자신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 전기톱으로 고문을 당하고

뿌리까지 뽑혀도 나무는 낼 수 있는 소리가 없다

겨울밤 달빛들이 실핏줄처럼 풀어내는 대금 산조 한 소절도

흉내낼 줄 모른다 나무는 오로지 남의 소리 듣는 것이

그지없이 행복하다             -----「나무1」전문

 

 

이광석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마음의 진동振動”이란 말을 생각했다. 마음의 진동은 우리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항상 솟아오르는 기쁨이나 환희의 감정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상승의 에너지다. 그래서 그 진동은 모든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근원과 연결된다. 그의 서정시가 관념의 장벽을 넘어서는 생생한 마음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도 그런 에너지의 작용과 관련되는 거 같다. 그 서정은 그의 깊은 사색과 명상瞑想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석류를 따며」에서는 석류라는 은유隱喩의 심상을 통해서 자신의 영원한 기다림(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데, 대중적인 흔한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그의 기다림은 존재의 근원과 연결되는 지순한 감정으로 승화되어서 독자들의 정신에 진동의 파장을 남긴다. 그것은 기다림(그리움)이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상승시키는 근원적인 정신의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찬 서리 하얗게 그대 창문에 커튼을 내릴지라도 내 가슴속 /은밀히 숨겨둔 작은 방 한 칸 높고 깨끗하게 비워두리. 안으로 안으로만 묻어온 빠알간 애모 가지가지마다 총총 걸/ 어놓고 그대 오는 길목 다시 환히 비추리.>라는 이 시의 끝부분의 구절들이 더욱 향기롭게 감지되는 것이다. 이 시에서 시 속의 화자가 은밀한 작은 방 한 칸을 마련하고 기다리는 그대는 누구일까. <그대>에 대한 해석은 만해시萬海詩의 님과는 다른 차원에서 해석되겠지만 앞에서 말한 시인의 정신을 상승시키는 존재, 생의 근원이 되는 빛과 같은 존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나무 1」과 연관시켜보면 더 분명해진다.「나무 1」에서는 자신의 소리 즉 아상我相에서 벗어나서 공空 또는 무無의 세계에서 감지하는 그지없는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제 몸 어디에선가 목탁소리를 듣는 나무는 자신의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전기톱으로 고문을 당하고 뿌리까지 뽑혀도 나무는 낼 수 있는 소리가 없다>고 한다. <오로지 남의 소리 듣는 것이/ 그지없이 행복하다>고 한다. 이러한 정신의 경지는 앞의 시「석류를 따며」에서 보여준 기다리던 그대를 맞아들인 후의 세계인 것 같다. 그대(깨달음)가 들어 와 앉아서 목탁소리를 들려주는 환희의 세계에서는 외부의 그 무엇도 모두 그지없는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밝고 긍정적인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주는 이광석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맑고 환한 세계로 들어가는 기쁨을 안아 본다.

 

*이광석(李光碩):1959 <현대문학>에 「바위」가 천료되어 등단. 시집 「겨울나무들」「겨울을 나는 흰새」「겨울 산행」「잡초가 어찌 낫을 두려워하랴」「삶 그리고 버리기」(시선집)

 

노향림 시인의 시---「창」 「꿈」

 

손바닥만한 밭을 일구던

김 스테파노가 운명했다.

 

그에게는

십자고상과 겉이 다 닳은 가죽 성경,

벗어놓은 전자시계에서 풀려나간

무진장한 시간이

전부였다.

 

그가 나간

하늘 뒷길 쪽으로

창문이 무심히 열린 채 덜컹거린다.

 

한평생

그에게 시달렸던 쑥부쟁이꽃들이

따사로운 햇볕 속

상장喪章들을 달고 흔들리는

 

조객弔客이 필요 없는 평화로운

.     

 ---「창」전문

 

바다가 앞에 와 있었다

뻘밭 사이에 쳐박고 있는

그의 얼굴이 늘 보고 싶었다.

신음소리가 귀신이 되어 나오던

집 한 채,

철사토막 같은 손으로

바다 소나무들은

앙가슴을 가리고 있었다

 

사람냄새가 그리웠다

긴 복도 끝

육조 다다미 방房에 복막염으로

나는 누워 있었다

사금파리, 야생초, 생고무냄새

바람사이의 흐릿한 호얏불,

오래 문닫힌 대장간에 쌓여있는

정적靜寂들이 보고 싶었다

, 손과 발을 달고 날아다니는

아이들 소리들이 보고 싶었다.

 

나는 심심풀이로 바다의 몸을

만지작거리곤 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미끈거리는

소금기만이 마음에 가득히 묻어났다

바다는 늘 앞에 와 있었다.

------「꿈」 전문

 

인식과 표현은 시의 중심축이다. 그래서 시의 대상은 시인이 감지하고 인식한 주관적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노향림 시인은 자신이 감지하고 인식한 대상을 감각적으로 객관화시키는 언어표현에 남다른 특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는 개인적인 감정표현을 억제하고 객관적 시각으로 대상을 관찰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기법은 모더니즘(주지주의)의 기본적인 기법이기도 하다.「창」에서도 그런 그의 언어기법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따라서 그의 시를 대하는 독자들은 그의 독특한 시각, 신선한 감각, 깔끔하고 냉정한 언어에 호감을 갖기도 하지만 너무 감정을 죽이고 있어서 따뜻한 정감이 흐르지 않는 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시를 깊이 읽어보면 그의 차가운 언어 속에 들어 있는 삶의 용암鎔巖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섬세한 눈길이 집어내는 삶의 현장에서 우리들의 실존의 모습도 만나게 된다. 「창」에서 보여주는 김 스테파노의 죽음과 그의 한 생애를 증언하고 있는 것들 - 손바닥만한 밭, 십자고상과 겉이 다 닳은 가죽 성경, 벗어 놓은 전자시계-를 통해서 무소유無所有의 삶이 어떤 모습의 삶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시의 끝부분 <그가 나간/하늘 뒷길 쪽으로/창문이 무심히 열린 채 덜컹거린다.//한평생/그에게 시달렸던 쑥부쟁이꽃들이/따사로운 햇볕 속/상장喪章들을 달고 흔들리는//조객弔客이 필요 없는 평화로운/.>이 시의 감동과 여운을 더 길게 남긴다. 그 속에는 남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모두 주어버리는 이타행利他行의 삶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김 스테파노의 가난한 삶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최대한으로 절제된 시의 언어가 빚어내는 향기로움과 <벗어 놓은 전자시계에서 풀려나간 /무진장한 시간>이 암시하는 우주적인 인식 속에 들어 있는 김 스테파노의 죽음이다. 어쩌면 그 무진장의 시간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끈인지도 모른다. 시인은 그것을 무심한 듯 슬쩍 드러내고 있어서 인상적인 그림을 남기고 있다.「꿈」에서는 사람냄새를 그리워하는 노향림 시인의 시세계의 원형原形을 만난다. 이 시 속에 들어가 있는 바다, 뻘밭, 집 한 채, 호얏불, 대장간, 육조 다다미 방房, 손과 발을 달고 날아다니는 아이들 소리는 현실과 환상이 어우러진 꿈의 세계다. 시 속의 화자는 복막염을 앓고 누워 있다. 누워 있는 곳은 육조 다다미가 깔린 방. 그는 누워서 어릴 적 뛰어 놀던 고향의 뻘밭과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고 오래된 대장간 집의 고요한 시간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바다의 몸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환상의 세계는 그의 정신(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는 원형적인 무의식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그는 이러한 무의식속의 생명세계를 <나는 심심풀이로 바다의 몸을/만지작거리곤 했다/꿈에서 깨어나면 미끈거리는/소금기만이 마음에 가득히 묻어났다>라고 매우 세련된 감각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노향림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냉정한 시선으로 무소유와 존재의 의미를 드러낸「창」도 호감이 가지만 어릴 적 고향 바다의 생명감으로 가득한「꿈」의 세계가 노향림 시인의 출발점이면서 귀착지歸着地가 되는 것 같아서 더 정감이 갔다.

 

*노향림(盧香林):1970 <월간문학>에 「불」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K읍기행」「눈이 오지 않는 나라」「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연습기를 띄우고」(시선집)

 

안수환 시인의 시- 「겨울산」「그 후」

 

겨울산은 비우는 곳입니다

비워서 바람을 채우고

다시 굳은 몸을 풀어 춤추고

메마른 떡갈나무 잎이 춤추는 곳입니다

 

숨은 새도 다 날아간 산에

햇빛은 거기 와서 별볼일이 없습니다

벌레들은 죽고 절벽은 더욱 무너져

혹은 생명과 부활과 믿음까지 꺼져

구름은 거기 와서 별볼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참으로 쓸쓸한 겨울산은

우리들의 한계가 아닙니다

비로소 완전한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끊임없이 감추고 감추던 물소리가

다만 골짜기에 박힌 돌이 되거나

탐내고 탐내던 집중이

북망산에 드러누운 봉분이 된 연후

그래서야 몸을 비우는 겨울산입니다

 

이렇게 한가지로 흘러다니는 바람에게

골격을 보이는 겨울산은 이승으로

무르녹아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습니다

 

이 겨울산에 깊이 들어 온 후

우리는 비로소 남은 힘이 있습니다

찬찬히 겨울산을 밟고 내려서는

남은 힘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조금 있다가

새도 부르고 벌레도 부르고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춥니다

 -----「겨울산」전문

 

두보 논어를 읽다가 덮어버리고

나는 이따금 중앙시장 뒷골목으로 나가본다

채소전 홍씨 아주머니가 내 친구라는 것을

홍씨네 실파 꼬부라진 됫박 새우들이 다 안다

정말이지 호고好古 호고라고 떠들은

공자의 말씀이 실없는 소리였다

 

잡쉬봐

잡숴봐

이 새우젓국물이 얼마나 달다고

      -----「그 후」전문

 

현대시에서 시의 건강성을 진단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그래서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중심에 놓고 본다는 것은 모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의 건강성에서 삶의 현실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안수환 시인의 시편들 중에서 현실과 대결하는 건강한 정신의 빛이 살아 있는 시편들은 독자들에게 예언자적豫言者的인 시인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어서 읽은 후에 생각의 여운을 남긴다. 「겨울산」도 그런 시편에 속한다. 이 시는 발표시기로 보아서 1980년대의 정치적 현실과 관련지을 수 있다. 따라서 그 당시의 현실과 결부시킬 때 현실참여(저항)의 시로 분류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겨울산」은 그런 시대적 현실에만 얽매이지 않고 그 현실을 <겨울벌레들은 죽고 절벽은 더욱 무너져/혹은 생명과 부활과 믿음까지 꺼져>버린 겨울 산으로 비유하면서 견실한 시적 구조로 우리들의 삶의 내면을 투시하고 있기 때문에 높은 가치를 지닌다. 그것은 이 시가 단순한 현실저항이나 민중시의 차원에서 벗어나서 죽음의 참된 의미와 절망을 이기는 힘의 원천을 암시하고 숨어있는 세계를 발견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힘의 근원을 스스로 비우는 것(공空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에서 찾고 있다. 그러면서 비워서 바람을 채우는<겨울산은 /우리들의 한계가 아니고 /비로소 완전한 우리들의 현실>이라고 희망의 근원을 드러낸다. 그것은 겨울 산과 우리들의 삶의 현실을 묶어주고 있는 튼튼한 밧줄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이 시의 절정을 이루는 끝 연<이 겨울산에 깊이 들어 온 후/우리는 비로소 남은 힘이 있습니다/찬찬히 겨울산을 밟고 내려서는/남은 힘이 있습니다/그것으로 조금 있다가/새도 부르고 벌레도 부르고/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춥니다>가 던져주는 의미의 확산은 우리들의 삶의 현실로 치환되면서 큰 울림을 남긴다. 절망적인 현실을 날카롭고 진지한 눈으로 응시하면서 냉철한 이성으로 극복(부활)의 발판을 제시하는 이 시는 안수환 시의 건강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그 후」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물인식의 생생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두보 논어를 읽다가 덮어버리고> 이따금 중앙시장 뒷골목에 가서 상인들과 만나고 그곳에 있는 실파, 꼬부라진 됫박 새우들을 만져보는 시인의 정신적 산책은 책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얻는다. 그것은 문자(관념)를 떠나서 선수행禪修行으로 들어가는 스님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시의 끝 구절<잡숴봐/잡숴봐/이 새우젓국물이 얼마나 달다고>하는 새우젓장수의 말이 책속에 갇혀 있는 언어들보다 얼마나 더 자연(일상생활)과 가까운가를 일깨워 준다. 이렇게 깨어있는 현실인식의 시가 주는 의미와 감동은 시대를 초월하면서 관념의 장식성裝飾性에 치중하는 시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안수환(安洙環):1973 <시문학>에 「구양교九陽橋」가 천료되어 등단. 시집 「멍게나무」「신들의 옷」「징조」「검불꽃길을 붙들고」「저 들꽃들이 피어 있는」「달빛보다 먼저」「충만한 시간」「가야할 곳」「풍속」「하강시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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