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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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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6> / 심 상 운
2019년 07월 12일 21시 25분  조회:213  추천:0  작성자: 강려
문효치 시인의 시-「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무령왕武寧王의 나무 두침頭枕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허공에 태어나
수많은 촉수觸手를 뻗어 휘젓는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될
온 몸을 태워서
찬란한 한 점의 섬광이 될,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빛깔이 없어서 보이지 않고
모형이 없어서 만져지지 않아
서럽게 떠도는 사랑이여.
 
무엇으로든 태어나기 위하여
선명한 모형을 빚어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
가서 불이 되어라.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전문
 
나는 이제 천년千年의 무게로
땅 속에 가 호젓이 눕는다.
 
살며시 눈감은 하도 긴 잠 속
육신은 허물어져 내리다가
먼지가 되어 포올포올 날아가버리고,
 
그 자리에 나의 자유로운 영혼은
한 덩이의 푸르른 허공이 되어
섬세한 서기瑞氣 로 남느니.
 
너는 이 때에 한 채의 현금玄琴del 되어
빛깔 고운 한 가닥 선율旋律이 되어
안개처럼 멍멍이 젖어 들어오는
그리운 노래로나 서리어 다오.
                -----「무령왕武寧王의 나무 두침頭枕」전문
 
문효치 시인의 시편 중에서 초기의 시에 속하는「사랑이여 어디든 가서」는 독자들에게 허공에 떠도는 무수한 사랑의 촉수를 상상하게 하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허물게 한다. 그러면서 “허공에 태어나/수많은 촉수觸手를 뻗어 휘젓는/사랑이여.//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가서 불이 될/온 몸을 태워서/찬란한 한 점의 섬광이 될,/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빛깔이 없어서 보이지 않고/모형이 없어서 만져지지 않아/서럽게 떠도는 사랑이여.” 라는 절절한 사랑의 감성언어가 품고 있는 환상의 이미지는 허공에 떠도는 혼령들의 슬픔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혼령들이 안고 있는 한恨을 풀어내는 시인의 간절한 기원祈願의 언어-“어디든 가서 닿기만 해라”-의 반복은 주술적인 비의秘義를 담고 있는 주문呪文 같이 독자들의 가슴에 묘한 울림을 남긴다. 그래서 그 사랑은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는 생명의 무한한 기운으로 연결되고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본질적인 것으로 확대된다. 이렇게 허공에 떠도는 생명의 기운을 포착하여 간절한 언어로 형상화한 그는,「무령왕武寧王의 나무 두침頭枕」에서는 사후의 세계를 구체적인 감각언어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죽음 또는 사후死後의 세계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은 삶의 애착愛着이 만들어내는 환타지다. 그 환상의 이미지는 오랜 침묵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역사와 함께 죽음의 신비감을 드러낸다. 1971년 충남 공주시 금성동(송산리)에서 무령왕릉이 발굴되어 일간 신문에 발굴현장의 사진이 크게 보도되었을 때, 내가 가장 경이롭게 느낀 것은 벽돌로 쌓은 무덤 안벽에 놓여있는 등잔과 등잔에서 나온 그을음이 벽면에 까맣게 남긴 흔적이었다. 그 생생한 흔적은 천년의 시간을 현재와 같이 착각하게 했으며, 무덤이 죽은 이들의 현실玄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거실居室같이 생각하게 했다. 왕은 동쪽에 왕비는 서쪽에 옻칠한 목관에 누워 있는데 나무 두침頭枕을 베고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무덤을 치장하고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영생을 기원하는 고대 한국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그것은 극소수의 권력층들이 자신의 부귀영화를 사후의 세계에서까지 누리고 싶어 하는 분묘양식墳墓樣式의 구조라고 생각되지만, 그 신비한 모습은 내 기억 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문효치 시인은 당시의 경이로움을 시로 형상화하기 위해서 현지답사를 오랜 동안 집중적으로 했으며 그 결과가 연작시 백제시편으로 열매를 맺은 것이라고 한다. 그 백제시편 중「무령왕武寧王의 나무 두침頭枕」은 고대한국인의 영생의 염원을 죽은 무령왕의 독백으로 담아낸 시다. 죽어서 육신은 먼지가 되어 날아가도 나의 영혼은 “한 덩이 푸르른 허공”이 되어서 서기로 남을 것이니 너(사랑하는 이)는 내 옆에서 한 채의 현금玄琴이 되어서 그리운 노래로 서리어 달라는 것이 이 시의 중심 내용이다. 죽어서도 그 죽음을 거부하는 정신, 죽음을 삶으로 환원시키려는 의지는 어쩌면 한국인의 독특한 원형질을 형성하는 유전인자인 것 같다. 그래서 ”살며시 눈감은 하도 긴 잠 속/육신은 허물어져 내리다가/먼지가 되어 포올포올 날아가버리고,//그 자리에 나의 자유로운 영혼은/한 덩이의 푸르른 허공이 되어/섬세한 서기瑞氣 로 남느니.//너는 이 때에 한 채의 현금玄琴이 되어/빛깔 고운 한 가닥 선율旋律이 되어/안개처럼 멍멍이 젖어 들어오는/그리운 노래로나 서리어 다오.“라는 구절은  몇 번을 거듭 읽어도 매력적인 맛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 시의 맛과 의미가 한국인의 독특한 감성과 잠재의식潛在意識에 닿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감성과 의식意識을 잘 드러낸 문효치 시인의 시편들을 거듭 읽으며 그의 유현幽玄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즐거움을 누린다.
 
* 문효치(文孝治): 1966년 <한국일보> <서울신문>에 「산색」「바람 앞에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연기 속에 서서」「무령왕의 나무새」등 다수
 
 이하석 시인의 시-「못 2」「투명한 속 」
 
그들은 녹슨 몸속에서도 여전히 쇠꼬챙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깃든 어느 곳에서든 부스럭거리며
그들은 긁고 찌른다. 흙 속, 헐어버린 건물 안,
이전해버린 공장의 빈 터, 폐쇄해버린 술집의
판자 틈, 버려진 구석 어디에서나
그들은 내팽개쳐진 채, 나무든 흙이든 풀이든
바람이든 강철이든 지나가는 쥐의 발목이든 찌른다.
 
새로 짓는 건물의 벽에서도 떨어져 흙 속에 빠지면서
시멘트 묻은 서까래에 깔리면서 또 하나의 못이
집 밖을 나온다. 하수구를 지나 개울가
자갈밭에 만신창이 몸으로 떠돌다가
그는 침을 숨긴 채 물밑에 반듯이 눕는다.
흐르는 물을 조금씩 찌르면서,
송어 아가미의 피를 조금씩 긁어내면서,
어느덧 그 자신도 쇠꼬챙이도 조금씩 꼬부라지면서.
                             --------------「못 2」전문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 온다. 먼지와 녹물로
얼룩진 땅, 쇠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버려진 아무 것도 더 이상 켕기지 않을 때.
유리부스러기 흙 속으로 깃들어 더욱 투명해 지고
더 많은 것들을 제 속에 품어 비출 때,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는
확실히 비쳐 온다.
 
껌종이와 신문지와 비닐의 골짜기,
연탄재 헤치고 봄은 솟아 더욱 확실하게 피어나
제비꽃은 유리 속이든 하늘 속이든 바위 속이든
비쳐들어 간다. 비로소 쇠조각들까지
스스로의 속을 더욱 깊숙이 흙 속으로 열며.
                                --------「투명한 속」 전문
 
이하석 시인의 시편들에서는 알레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풀, 흙, 쇠꼬챙이, 못, 건물” 등의 사물어는 사전적 의미에 충실하다. 따라서 독자들이 그의 시에서 1차적으로 만나는 것은 어떤 관념이 아닌 현실現實이며 사물事物이다. 이 현실과 사물은 시속에서 비약하지 않고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과학적인 사실성을 확고히 구축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난해難解에서 벗어나 단순 명쾌한 의미를 드러내고 시대의 조류潮流에도 쉽게 마모되지 않는다. 그의 이런 사실적인 작시법作詩法은, 21세기 시의 키워드를 “사실, 생명, 현장”에 두고 그 중심에 사물을 놓으면서 관념이 배제된 “적나라한 사물의 실제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에서 시의 새로운 방법론를 모색하는 문덕수 시인의 시론 <정서에서 언어로, 다시 사물로>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보인다. 이하석 시인의 이런 사실에 바탕을 둔 시적 감수성은 미세한 시각으로 사물과 현장을 응시하고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찾아내지 못한 것들을 찾아내는 힘을 발휘한다. 그는 또 언어의 배경에 깔려 있는 관념의 그림자들을 지우기 위해서 애를 쓰면서도 사물을 통해 함축적인 의미의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관념과 탈-관념의 경계선에서 신선한 감각을 드러낸다.「못 2」에서도 그의 시선은 못의 다양하고 사실적인 일생을 끝까지 추적하면서 날카롭고 냉정한 관찰의 눈을 번득인다. 그러나 그 추적의 끝부분에서 환기시키는 것은 따스하고 온화한 화합의 감성이다. 그 감성은 녹슨 몸속에 쇠꼬챙이를 간직하고 어디서나 무엇이나 긁고 찌르던 못도 개울 물 속에 누워서 꼬부라진 쇠꼬챙이로 변해 가고 드디어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모습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못의 일생은 쇠꼬챙이 같은 분별심分別心을 가지고 태어나 시비하고 싸우면서, 이웃들을 긁고 찌르면서도 자신만은 꼿꼿하다고 자부하면서, 그것이 부질없는 것인 줄도 모르고 살다가 관棺 속에 누워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시의 구조가 인공人工과 자연으로 대비되어 있기 때문에 인공(문명)의 귀착지歸着地는 결국 자연일 수밖에 없다는 문명비판의 시각으로도 읽혀진다. 그의 시에 대한 이런 해석과 독법讀法은 독자들의 개인적인 체험과 사고思考의 기능이 만들어 낸 관념의 산물일 뿐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런 주제의식(의미추적)과 함께 이하석 시인만의 독특한 사물성의 감성이 안고 있는 현장중심의 시의식이다. “새로 짓는 건물의 벽에서도 떨어져 흙 속에 빠지면서/시멘트 묻은 서까래에 깔리면서 또 하나의 못이/집 밖을 나온다. 하수구를 지나 개울가/자갈밭에 만신창이 몸으로 떠돌다가/그는 침을 숨긴 채 물밑에 반듯이 눕는다. 흐르는 물을 조금씩 찌르면서,/송어 아가미의 피를 조금씩 긁어내면서,/어느덧 그 자신도 쇠꼬챙이도 조금씩 꼬부라지면서.” 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의 사실적인 인식과 시의 기법은 한국 현대시에서 탈-관념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고 판단된다.「투명한 속」은「못 2」와 대조적인 정서가 느껴진다. 그것은 광물성인 유리부스러기를 하나의 생명체로 변화시키는 감성의 작용이 만들어 낸 따뜻한 감각이 발현發顯하는 이미지다. 이 시에서 쓰인 감성적인 언어들-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는 유리부스러기의 날카로운 칼날들의 의미를 지우면서 인공과 자연의 화합을 유도한다. 그래서 "껌종이와 신문지와 비닐의 골짜기,/연탄재 헤치고 봄은 솟아 더욱 확실하게 피어나/제비꽃은 유리 속이든 하늘 속이든 바위 속이든/비쳐들어 간다. 비로소 쇠조각들까지/스스로의 속을 더욱 깊숙이 흙 속으로 열며."라는 끝 구절의 참신한 생명적인 이미지는 은은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 감동은 그의 열린 마음이 자연과 화합하는데서 솟아오르는 울림으로 이 시의 정신적인 깊이가 상당함을 감지하게 한다. 나는 이하석 시인의 시편들을 1976년 봄에 발간된 동인지「자유시自由詩」에서 처음 읽었다. 그리고 “시는 우선 자유로워야 함을 믿고 있다. 모든 것에로의 자유, 혹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어쨌든 우리는 모든 사물들에 대하여, 모든 구조들에 대하여, 모든 기능들에 대하여 자유롭기를 원한다.”는 동인들의 <자유시 명제命題>에 호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들의 시편과 명제가 얼마나 서로 부합하는지는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 명제를 시의 내적 과제가 아닌 당시의 억압적인 현실에 대응하는 정치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그 후 이하석 시인의 언어가 현실문제나 고정관념의 무게, 고정관념의 그늘에서 홀가분하게 탈출하여 자유로운 언어공간을 마련한 것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의 시편을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 이하석(李河石): 1971년 <현대시학>에 「관계」「분위기」「이중의 처단」이 추천되어 등단. 시집: 「백자도(공저)」「투명한 속」「김 씨의 옆얼굴」등 다수
 
강윤수 시인의 시- 「산(1)」「앨범에서」
 
말없음표다.
괄호 밖의 초연한 감탄부호다.
더 수식할 수 없는 간결체다.
오늘 같이 저 무거운 坐定이 두려운 때
으늑히 산마루로 오르던 나의 單語들.
單語들은 중턱에서 헐떡거리다가
점점이 흩어져 쉼표만 남기고
단 한줄기 문장도 이루지 못했다.
 
山은 山만이 아는
非文이었다.
        ---------------「산(1)」전문
 
죽은 정자나무 그루터기에 앉은
노인의 아이 적, 할아버지 곁에
다시 자란 정자나무 그늘에 앉아
무심히 하늘을 보는 노인의 눈
렌즈의 셔터를 누르면,
더 이상 흐름은 멎을 것도 같은데
앨범 속 하나 더 할아버지의 무덤은
생겨나고,
산소길 등성이 정자나무 길 끝에
먼빛으로 새삼 태어나 호돌호돌
걸어오는 아이들,
아이들 앞에 밟히는 풀잎 같은 미련을
찰칵 셔터를 누르며 서 있는
또 다른 앨범 속의 아버지.
            ---------「앨범에서」전문
 
이 세상 대부분의 시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화평하게 하거나 세속적인 깨달음을 주는데 익숙하고, 독자들도 그런 시를 선호한다. 그 이유는 시란 대상에 대한 정서의 표현이고, 새로운 해석이고, 이름붙이기이고, 무질서한 생각들을 질서화 하여 깨달음을 주는 것이라는 이론에 시인과 독자들이 동의하기 때문이다. 시에 대한 이런 인식은 전통적인 서정시나, 지성의 기능을 무엇보다도 우월하게 내세우는 모더니즘 시의 일반적인 경향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시인이 안내하는 대로 끌려가고 설득을 당하는 것이다. 그 설득의 원천은 세상을 지배하는 관념이 만들어 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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