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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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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심상운 시론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26>/심 상 운
2019년 07월 26일 18시 34분  조회:304  추천:0  작성자: 강려
* 월간 <시문학> 2007년7월호 발표 <성찬경/이상옥 시인의 시>
 
성찬경 시인의 시- 「나사.1」「유리와 병」
 
길에서 나사를 줍는 버릇이 내게는 있다.
암나사와 수나사를 줍는 버릇이 있다.
예쁜 암나사와 예쁜 수나사를 주우면 기분좋고
재수도 좋다고 느껴지는 버릇이 있다.
찌그러진 나사라도 상관은 없다.
투박한 나사라도 상관은 없다.
큼직한 수나사도 쓸 만한 건 물론이다.
나사에 글자나 숫자數字나 무늬가
음각이나 양각이 돼 있으면 더욱 반갑다.
호주머니에 넣어 집에 가지고 와서
손질하고 기름칠하고
슬슬 돌려서 나사를 나사에 박는다.
그런 쌍이 이젠 한 열 쌍은 된다.
잘난 쌍 못난 쌍이
내게는 다 정든 오브제들이다.
미술품이다.
아니, 차라리 식구 같기도 하다.
--------「나사.1」전문
 
유리가 병으로 있는 한 언제까지나 병이다.
인간의 수족이다.
깨어져야 유리는 유리가 된다.
병은 기능이요 쓸모다.
소유의 차원이다.
값을 매겨 사고 판다.
파편은 무엇이고 그것 자체다.
쇠는 쇠요 구리는 구리요 은은 은이다.
존재의 차원이다. 무값이다.
에덴동산이 어디뇨.
있는 것 모두가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나뒹굴면 바로 거기지.
산산조각난 것들이 창궁의 별처럼 모여들어
존엄의 왕좌에서 반짝이고 있다.
빛 뿜는 파편의 삼천대천세계다.
-------「유리와 병」전문
 
삶의 모습은 다양하다. 그 다양성은 개개인의 취향과 성격과 감각과 관념의 척도의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 속에는 시대적인 유행도 들어 있다. 이런 것이 모여서 형성된 것을 문화라고 한다. 성찬경 시인은 길거리에서 쓸모없이 굴러다니는 나사를 줍는 취미가 있다. 그는 그 나사들을 주워서 집에 와서 손질하고 기름칠을 하고 암수 나사를 맞추어본다. 그는 그런 자신의 취미생활을 이렇게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호주머니에 넣어 집에 가지고 와서/손질하고 기름칠하고/슬슬 돌려서 나사를 나사에 박는다./그런 쌍이 이젠 한 열 쌍은 된다./잘난 쌍 못난 쌍이/내게는 다 정든 오브제들이다./미술품이다./아니, 차라리 식구 같기도 하다.>라고. 이 시에서 나사들은 자신의 직장에서 퇴출당한 퇴직자와 같은 존재들이다. 시인도 나사들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재활용하기 위해서 모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장난감 같은 오브제로서 모으는 것이다. 그러니깐 그의 손에 주워진 나사들은 나사로서의 임무를 모두 끝내고 그의 집에서 제2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는 그 나사들을 미술품으로, 식구와 같은 존재로 승격시키고 있다. 그러면 이렇게 부속품에서 벗어난 나사가 미술품 같은 존재로 승격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사가 나사로서의 용도에서 벗어나 어느 한 가지의 영역에 구속되지 않는 무無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곳은 존재의 자유가 열리는 지점이다. 우리들의 사유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사유의 자유를 누리고 그만큼 상상력의 세계가 넓어진다. 이것이 초현실주의의 오브제 이론이며「나사.1」이 안고 있는 사유의 세계다.「유리와 병」은 이런 취미 정도의 차원에서 벗어나서 존재의 근원을 더 깊게 추구한다. 따라서 「나사.1」보다 더 논리적이고 관념적인 세계가 들어있다. 철제나사들은 형태를 유지한 채 용도만 바꾼 상태이지만 (그래서 다시 재활용될 수도 있지만) 유리병들은 깨어진 형태가 됨으로써 순수한 유리의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는 그것을 <깨어져야 유리는 유리가 된다.//병은 기능이요 쓸모다./소유의 차원이다./값을 매겨 사고 판다.//파편은 무엇이고 그것 자체다./쇠는 쇠요 구리는 구리요 은은 은이다./존재의 차원이다. 무값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들의 사고思考는 생生과 사死라는 관념에 묶여서 유리병이 깨지면 그것은 유리병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유리병이 유리로 환원되는 새로운 경지를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관념도 이와 같다. 인간의 죽음을 존재의 해방. 존재의 자유영역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원인은 인간의식의 중심에 ‘나’라는 관념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의식은 인간에게 죽음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게 하고, 현재상태의 유지를 소망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이 ‘나’의 변화를 죽음으로 오해하고 생로병사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이 중생衆生의 삶 속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깨달은 이들은 ‘나’라는 관념에서 벗어나면 이 우주의 원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 시에도 그런 깨우침을 주는 교훈성이 있다. <에덴동산이 어디뇨./있는 것 모두가 있는 그대로/편안하게 나뒹굴면 바로 거기지.>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시인은 물질의 탐구를 통해서 의식형성 이전의 무의식의 세계까지 인간 존재의 문제를 상상하고 있다. 사실 에덴동산도 또한 ‘나’의 존재를 전제로 한 관념의 세계이지만 그 깨달음은 매우 중요한 정신적 체험이 아닐 수 없다. 그 세계는 이미 불교의 사유를 통해서 관념적으로 알려진 세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은 이를 과감하게 시로 형상화하여, 우주의 현상을 <산산조각 난 것들이 창궁의 별처럼 모여들어/존엄의 왕좌에서 반짝이고 있다./빛 뿜는 파편의 삼천대천세계다.>라고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발산시키고 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그가 체득한 세계와 그의 시선이 통과한 오브제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즐거움을 한껏 누려본다.
 
*성찬경(成贊慶): 1956년 <문학예술>에 등단. 시집: <화형둔주곡火形遁走曲>, <벌레소리송>, <시간음時間吟>, <반투명>, <묵극?劇> 등
 
이상옥 시인의 시-「아포리아」「조물」
 
고야가 물고 온 너구리 속을 엿본 적 있다 내장 안에는 아직
소화되지 않은, 산의 계곡에 살았을 법한 비단개구리 열 마리
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 너구리 한 마리가 하루의 끼니로 비단
개구리 수십 마리를 먹어치운 것이다 오늘 점심으로 안양해물
탕을 먹었다 새우, 게, 소라, 고동, 아 이름 모를 많은 생명, 한
끼 점심으로 좀 과할 정도의 개체. 어제 교회 오는 길에 트럭
에 실려 가는 암소 네 마리를 보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크
고 순한 눈망울 두려움의 기색이 완연하더라, 도살될 운명을
알기라도 하는 양. 덩치가 크니 몇 사람의 며칠 분 생명은 이어
갈 수 있을 터
생명은 생명을 먹고 생명을 이어가는............, 난해한 네트워크
----------「아포리아」전문
 
연구실에는 강동주 선생에게서 얻어온 물풀이 오지항아리
에서 자라고 있다 마산 어시장에서 산 오지항아리에 물을
붓고 물풀을 키우기 시작한 지 벌써 달포가 지나고 있다
물표면이 일렁이는 듯하다 작은 고동이다 비닐봉지에
담아온 물풀에 붙어 왔나 자세히 보니 눈에 띄는 녀석
들만 해도 열 마리 정도다 돋보기를 들고 관찰하니 죽은
물풀도 먹는다 고인 물이지만 깨끗한 것이 물풀의 정화작
용과 함께 요녀석들의 청소부 노릇도 한몫한 때문이다
신기하기도 대견스럽기도 하여 틈틈이 물을 보충하며
햇빛이 드는 곳으로 오지항아리를 두 손으로 들어 옮겨놓
는다
나는 우주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조물」전문
 
SBS TV 자연다큐 전문 PD 윤동혁씨는 생명의 소중함을 추적하면 좋은 프로가 저절로 나온다면서, “결국 모든 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로 모아져요.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만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가가 핵심이죠. 관심을 기울이고 집요하게 추적하면 좋은 프로가 나오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는 몇 년 전 <중앙일보>에서 본 인터뷰 기사의 내용이다. 이상옥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윤동혁 PD의 말을 떠올리는 것은 그의 시선이 생명세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생명세계가 얼마나 신비하고 경이로운 세계인가 하는 것은 우주를 생각해 보면 안다. 이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천체天體의 수효는 엄청나다. 그래서 삼천대천세계라는 초과학적인 용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 많은 우주의 천체 중에서 지구는 생명체(유기체)가 존재하는 유일한 곳이다. 우주의 암흑 속에서 파란 루비 같이 빛나는 것이 지구라고 한다. 최초의 우주인 가가린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내려다보면서 지구를 푸른빛의 보석 같다고 했다. 그래서 우주 속에서 지구의 존재를 생각하면 신의 은총 또는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생명세계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생태계의 구조는 먹이사슬로 되어 있다. 그 속에는 원래 생명체의 본능적인 행동만 존재할 뿐 감정이나 정서는 개입될 수 없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은 꽃의 종족보존의 방법이지 인간을 위한 꽃의 쇼가 아니다.「아포리아」에서 시인은 고야에게 잡힌 너구리의 뱃속에 들어 있는 아직 소화되지 않은 비단개구리를 보고 <산의 계곡에 살았을 법한 비단개구리 열 마리/는 족히 넘을 것 같았다>고 한다. 비단개구리에 대한 연민이나 어떤 관념의 개입이 없이 냉정하게 관찰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늘 점심으로 안양해물/탕을 먹었다 새우, 게, 소라, 고동, 아 이름 모를 많은 생명, 한/끼 점심으로 좀 과할 정도의 개체.>라고 자신의 경험을 삽입하고 있다. 이 삽입구절 속에 “아 이름 모를 많은 생명”이라는 감성적인 표현이 들어 있다. 이 감정노출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성찰이라는 점에서 시적 정서를 형성하는 요소가 된다. 이런 그의 감성은 그 다음 구절 <어제 교회 오는 길에 트럭/에 실려 가는 암소 네 마리를 보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크/고 순한 눈망울 두려움의 기색이 완연하더라, 도살될 운명을/알기라도 하는 양.>에서 더 적극적으로 생명체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드러낸다. 자연을 보는 우리들의 눈은 관찰자의 입장에 머무는 것이 옳다. 야생에서는 어떤 존재 건 먹는 자 아니면 먹히는 자일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생태계의 법칙이다. 그러나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다르다. 시인은 인간에 의해 죽으러 가는 소에 대한 연민의 정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것은 인간적인 감성이며 과학자와 시인의 다른 점이다. 이 시에는 이런 생명세계의 법칙을 <생명은 생명을 먹고 생명을 이어가는............, 난해한 네트워크.> 라고 풀이하여 독자에게 생명세계에 대한 깊은 인식의 계기를 주고 있다.「조물」에서는 ‘물풀의 생태가 들어 있는 오지항아리’라는 생명세계의 한 덩어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물풀이 자라고 죽고 하는 오지항아리를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생명세계의 신비로움을 체험하고 있다. <물표면이 일렁이는 듯하다 작은 고동이다 비닐봉지에/담아온 물풀에 붙어 왔나 자세히 보니 눈에 띄는 녀석/들만 해도 열 마리 정도다 돋보기를 들고 관찰하니 죽은/물풀도 먹는다 고인 물이지만 깨끗한 것이 물풀의 정화작/용과 함께 요녀석들의 청소부 노릇도 한 몫한 때문이다>라는 구절은 그가 오지항아리에서 이루어지는 생태계의 시스템을 얼마나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오지항아리는 공기의 유통이 잘 되고 생명체들이 제각기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또 하나의 생명공간이다. 그 생명공간은 작은 우주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그래서 끝부분 <신기하기도 대견스럽기도 하여 틈틈이 물을 보충하며/햇빛이 드는 곳으로 오지항아리를 두 손으로 들어 옮겨놓/는다// 나는 우주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라는 구절이 과장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인도 힌두사상(우파니샤드)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이루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은 큰 우주에 속하는 수많은 소우주의 개념으로 생명의 실재적 본성을 말하고 있다. 이 시의 ‘오지항아리의 생명 공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상옥 시인은 디지털 카메라의 사진과 시를 결합하여 ‘디카시’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그러면서 “시는 창조하기보다는 포착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내세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창조와 포착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시 속에서 공존한다는 것을 이 시는 보여준다. 창조의 순수한 뜻은 세상에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이미 존재하는 것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면 그것도 창조가 된다. 태초에 하느님이 이미 존재한 사물에 명칭을 붙이는 행위와 같다. 그런데 이 창조의 전단계가 포착이다. 이 시에서 오지항아리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들었다 놓으면서 “나는 우주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라는 순간적 인식이 포착이며 오지항아리를 ‘우주’로 명명命名는 것이 창조다. 포착은 현실 속에서 눈의 기능만이 아닌 마음(의식)의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상옥 시인의 시편을 읽으면서 그가 포착하고 창조한 생명세계의 관람자가 되는 즐거움을 누린다. 좋은 시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게 하는 시라고 생각하면서.
 
* 이상옥: 1989년 월간 <시문학> 등단. 시집: <유리그릇> <고성가도> <환승역에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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