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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심상운 시론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29>/심 상 운
2019년 07월 26일 18시 40분  조회:1124  추천:0  작성자: 강려
* 월간 <시문학> 2007, 10월호 발표 <양병호/김충규/김선호 시인의 시>  
 
양병호 시인의 시-「카오스 이론 3-심심하다 심심해」「카오스 이론 9- 꿈의 해석
 
 
악몽이 없는 잠은 심심하다
심심해 반칙이 없는 축구는 심심하다
심심해 대형사고 없는 뉴스는 심심하다
심심해 바람 없는 하늘은 심심하다
심심해 전쟁 없는 세계사는 심심하다
심심해 안주 없는 술자리는 심심하다
심심해 술자리 없는 연애는 심심하다
심심해 돌지 않는 바퀴는 심심하다
심심해 변태 없는 섹스는 심심하다
심심해 섹스 없는 인생은 심심하다
심심해 죽음 없는 인생은 정말 심심하다
심심해
그런데
죽음 있는 인생도 심심하고
섹스 있는 인생도 심심하고
변태 있는 섹스도 심심하고
돌고 있는 바퀴도 심심하고
술자리 있는 연애도 심심하고
안주 있는 술자리도 심심하고
전쟁 있는 세계사도 심심하고
바람 부는 하늘도 심심하고
대형사고 있는 뉴스도 심심하고
반칙 있는 축구도 심심하고
악몽 뒤척이는 잠도 심심할 때
재밌게 놀면서도 심심할 때는
어떻게 하지?
              -------- 「카오스 이론 3-심심하다 심심해」전문
 
#1
다리가 겁나게 무겁고 축축하다
지각변동으로 흔들리는 침대
누군가 소리 없는 고함을 지르고
무채색으로 일그러지는 풍경
실컷 얻어터지고 싶다 억울하다 울고 싶다 담배 피우고 싶다 피융
날아오는 것을 낚아챈다 시퍼렇게 날선 도끼이다 도끼로 다리를 찍는다
여러 번 피가 나지 않는다 살 속에서 빛나는 뼈가 가느다란 아름다움
아프지 않다 전혀
통증 �는 세상으로 잠적하기를
꿈꾸는 삶이여 허망이여
현실 같은 꿈이여
                            ----------「카오스 이론 9- 꿈의 해석」#1 전문
 
우주론에서 카오스 (chaos)는 혼돈상태, 만물이 생겨나기 이전의 우주의 시원적 공허를 의미한다. 물리학의 카오스 이론은 동적인 변화가 매우 불규칙적이어서 미래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한 운동 상태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미분화 된, 질서 이전의, 어쩌면 이 세상의 근원이 되는 카오스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현대시에서 실험성이 강한 시운동을 카오스적인 면에서 논할 수 있는 것도 기성의 질서를 부숴버리고 혼돈된 상태로 돌아가서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모색하는 시운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의 현대시에서 일어난 해체시 운동은 이성理性 중심의 세계관의 허위를 해부하여 (파괴가 아님) 보여주고 그 허구성을 깨닫게 하는 데리다의 해체이론에 기반을 둔 시운동이었다. ‘패러디’를 주축으로 하는 풍자와 야유, 테레리즘 적 언어의 사용은 당시의 민중적 현실과 결부되어서 현대시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흔적을 남겼지만, 시어의 저질화, 경박성, 형이상학적 사유의 부족으로 현대시에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
양병호 시인의「카오스 이론 3-심심하다 심심해」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의 시 속에 현실에 대한 시인의 날카로운 진단이 들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시에서, <심심해 돌지 않는 바퀴는 심심하다/심심해 변태 없는 섹스는 심심하다/심심해 섹스 없는 인생은 심심하다/심심해 죽음 없는 인생은 정말 심심하다/심심해//그런데//죽음 있는 인생도 심심하고/섹스 있는 인생도 심심하고/변태 있는 섹스도 심심하고/돌고 있는 바퀴도 심심하고/술자리 있는 연애도 심심하고/....../재밌게 놀면서도 심심할 때는/어떻게 하지?>라고, 없는 세계와 있는 세계를 대립적으로 배치하여 ‘없다’와 ‘있다’를 넘어서는 또 다른 세계를 모색하고자 하는 지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없어서 심심하고, 있어도 심심할 때, 아니 “재밌게 놀면서도 심심할 때는/어떻게 하지?” 라는 시인의 물음은 역설이나 억설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너무 크게 들어 난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의 유희가 아니기 때문이다.「카오스 이론 9- 꿈의 해석」#1은 <실컷 얻어터지고 싶다 억울하다 울고 싶다 담배 피우고 싶다 피융/날아오는 것을 낚아챈다 시퍼렇게 날선 도끼이다 도끼로 다리를 찍는다/여러 번 피가 나지 않는다 살 속에서 빛나는 뼈가 가느다란 아름다움/아프지 않다 전혀>라고, 그의 ‘심심함’에 대한 치유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무엇에선가 강한 자극을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실컷 얻어터지고 싶은 꿈, 시퍼렇게 날 선 도끼로 자신의 다리를 찍는 꿈을 꾼다. 외부의 자극에 의해서 자신의 심리적 무료감無聊感을 치유하려는 본능적인 심리치료행위다. 이런 그의 심리상태는 그의 사유가 ‘허무’에 너무 가까이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1930년대 이상李箱의 수필「권태倦怠」에는, 이상이 시골 생활의 권태로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최 서방 조카와 장기를 두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는 번번이 이기기만 한다. 그래서 “나는 왜 저 최 서방의 조카처럼 아주 영영 방심상태放心狀態가 되어버릴 수 없나? 이 질식할 것 같은 권태 속에서도 사세些細한 승부에 구속을 받나? 아주 바보가 되는 수는 없나?”하고 자신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말한 ‘방심상태’는 노자老子가 말하는 도道의 경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초월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그런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이상의 실험적인 다작多作은 세상의 권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가 여겨진다. 양병호 시인의 ‘심심함’도 그가 허무의식에서 탈출하여 독창적인 카오스의 시론을 심화 확대할 때, 실험성이 강한 시정신의 힘이 될 것 같다.
* 양병호: 199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하 늘 한 번 참말로 맑게 반짝이더라」「시간의 공터」
 
김충규 시인의 시-「손자국」「구름의 장례식」
 
 
보수공사를 끝낸 시멘트 골목길
누가 찍어놓은 것일까
발자국이 아닌 손자국 선명하게 찍혀 있다
시멘트 굳기 전 누가 작심하고 찍어놓은 자국,
자세히 보니 새끼손가락 턱없이 짧다
斷指-. 분명 그 흔적인 듯!
옛적 병중인 부모에게 제 피를 내어 먹이려고 끊었다던,
조폭 세계에서 의리를 보이려고 끊는다던,
입대하지 않으려고 작두에 넣고 자른다던,
화석 같은 손자국을 보며 별의별 상상을 다 해보는 아침.
내 오랜 친구 녀석은 연상의 여인에게 제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손가락을 깨물어 온통 붉은 문장의 편지로 고백했다고 말하며
훗날 사실은 그게 아니라 돼지 피였다고 농을 한 적이 있지만,
손가락 마디 하나 없는 손자국
섬뜩해서
누군지 몰라도 세상을 향해 뭔가 항의를 하려고 찍어 놓은 듯해서
쭈그리고 앉아 그 자국 위에 내 손 맞춰 보는데
허, 마치 내가 찍어 놓은 듯 별 어긋남이 없다
다만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자국 밖으로 삐죽 나와
만약 내가 마디 하나를 끊게 된다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생각해 보다가 흠칫 놀란다
그 손자국, 길 가던 이들을 섬뜩하게 했던지
저물 무렵 다시 그곳을 지나쳐 오는데
새 시멘트가 뭉클 덧씌워져 있다
                                    ----------「손자국」전문
 
비를 뿌리면서 시작되는 구름의 장례식.
가혹하지 않은 허공의 시간 속에서 행해지는 엄숙한,
날아가는 새들을 확 잡아들여 깨끗이 씻어 허공의 제단에 바치는,
죽은 구름의 살을 찢어 빗줄기에 섞어 뿌리는,
그 살을 받아먹고 대숲이 웅성거리는,
살아있는 새들이 감히 날아갈 생각을 못하고 바르르 떠는,
하늘로 올라가는 칠 일 만에 죽은 아기 영혼을 아삭아삭 씹어먹는,
산 자들은 우산 속에 갇혀 보지 못하고 죽은 자들만이 참여하는,
지상에 흥건하게 고이는 빗물에 살냄새가 스며 있는,
그 순간 나무들의 이파리가 모두 입술로 변해서 처연하게 빗물을 삼키는,
손가락으로 빗물을 찍어 먹으면 온 몸에 구름의 비늘이 돋는,
비를 그치면서 끝나는 구름의 장례식.
                                        -----------「구름의 장례식」전문
 
현대시에서 언어의 신선한 감각과 상상력의 확대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초현실주의 시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낭만주의 시나 모더니즘의 주지시도 상상력과 언어 감각이 부족하면 성공작이 될 수 없다. 이 ‘신선한 상상력’은 현대시에서만이 아니고 21세기 기업운영에서도 핵심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매일경제> 2007년 2월16일자 기사에는 2007년 주요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주제가 ‘창조교육’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한 신제품 만들기다. 연수의 결과물 중에서 '아이-라이크(Eye-Like)‘라는 제품이 있다. 콘택트렌즈처럼 이 제품을 눈에 착용하고 일상생활을 하도록 한다. 집에 들어와 아이라이크를 빼내 별도 플레이어(재생기)에 장착하면, 그날 일상에서 본 모든 영상이 아이라이크에 담겨 있다. 플레이어를 통하면 그날 하루 일과가 그대로 재생된다. 눈에 끼는 캠코더를 연상케 하는 제품이다. 이 제품은 미래 지향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신제품이다.
김충규 시인의「손자국」에는 싱싱하게 살아 있는 언어감각과 상상이 넘치고 있다. 마치 바다에서 금방 잡아 올려 퍼들거리는 등 푸른 물고기 같다. 그의 상상은 독자들에게 구태의연한 관념에서 벗어나게 하고 세상의 갖가지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시를 읽는 재미와 자기 성찰의 계기를 주고 있다. 시인은 어느 날 시멘트 공사를 하는 골목길 바닥에 찍힌, 새끼손가락이 잘린 손자국을 보면서 <옛적 병중인 부모에게 제 피를 내어 먹이려고 끊었다던,/조폭 세계에서 의리를 보이려고 끊는다던,/입대하지 않으려고 작두에 넣고 자른다던,> 등의 상상을 펼쳐 놓는다. 그러다가 자신의 손을 그 위에 겹쳐 보면서, <허, 마치 내가 찍어 놓은 듯 별 어긋남이 없다/다만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자국 밖으로 삐죽 나와/만약 내가 마디 하나를 끊게 된다면/그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생각해 보다가 흠칫 놀란다>고 말한다. 현장성과 사실성 그리고 시멘트에 손자국을 남간 사람과 자신과의 동일성을 드러내어 긴장감을 조성하고 공감의 영역을 확대한다. 이런 그의 상상은「구름의 장례식」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현상의 세계로 퍼져나간다. 구름이 비가 되어서 내리면 하늘의 구름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시인은 그 자연현상을 의식화儀式化하여 ‘구름의 장례식’이라고 창의적인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그 의식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가상현실의 세계이지만 사실화된 표현의 힘에 의해 독자들은 신선한 감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비를 맞음으로써 지상의 먼지들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더 활발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을 <날아가는 새들을 확 잡아들여 깨끗이 씻어 허공의 제단에 바치는>이라고 표현하여 고대 그리스의 신화 속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빗줄기를 맞을 때 대숲에서 나는 소리를 <죽은 구름의 살을 찢어 빗줄기에 섞어 뿌리는,/그 살을 받아먹고 대숲이 웅성거리는,>이라고 하여 대숲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더욱이 <하늘로 올라가는 칠 일 만에 죽은 아기 영혼을 아삭아삭 씹어먹는,>이라는 빗소리에 대한 그의 그로테스크한 상상은 놀라움을 준다. 그의 이런 감각세계는 <산 자들은 우산 속에 갇혀 보지 못하고 죽은 자들만이 참여하는,>이라고 하여 탈-관념의 현장성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라는 상대적인 공간을 열어놓기도 한다. 그의 이러한 상상의 언어들은 논리적, 인과적인 구성과는 다른 집합적集合的 구성構成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상상의 다양함과 새로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시상을 이끌어가는 “.....하는,”이란 동사動詞의 관형형어미冠形形語尾의 종결시구는 그 다음에 연결되어야 하는 논리적 언어인 체언體言과 단절되면서, 어떤 관념의 형상화가 아닌 순수 이미지의 공간을 활짝 열어 준다. 만약 논리와 인과因果에 의한 상상이라면 그의 상상은 관념의 감옥 속에 갇히고 말았을 것이다. 논리와 인과는 자유로운 상상과 싱싱한 감성을 죽이는 사막砂漠과 같은 언어구조의 완고한 틀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지(상상)의 집합적 결합’ 이라는 방법으로 자기 시의 영토를 푸른 풀들이 무성한 초원으로 만들고 아름다운 야생의 꽃을 피워내고 있는 김충규 시인의 시세계를 즐거운 마음으로 답사해본다.
* 김충규: 1998년 <문학동네> 문예공모「낙타」외로 등단 시집:「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그녀가 내 멍을 핥을 때」
 
김선호 시인의 시-「몸 속에 시계를 달다」「대형 할인 마트에 갇히다
 
 
새벽 6시면 알람시계가 울린다
시계소리 한 알을 삼킨다
둥글고 매끄러운 시그너스 시계 캡슐이
몸에 들어오면서부터 아침이 시작된다
몸 속의 시계는 쉬지 않고 약물을 퍼트리며
나를 데리고 어디로든 가려고 한다
몸과 마음은 시계에 갇힌 채
시계바늘을 따라서 둥근 세상을 돈다
시계는 제가 정한 처방대로 나를 이끈다
밥을 먹거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나를 재촉한다
내 안의 시계는 시간의 경계가 확실치 않아서
슬픔 너머 저쪽 지나간 시간을 불러오거나
희망 언저리를 따뜻하게 데우기도 한다
약효가 소모될 때쯤이면
시계에 의지했던 하루가 제자리로 돌아 오고
내일 삼키게 될 알약을 다시 준비한다
--------「몸 속에 시계를 달다」전문
 
정전된 건물에 들어오니 산 속 암자처럼 조용하다
쉴 틈 없이 돌려대던 환풍기 소리가 멎으니
천정에서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빼곡이 앉아 있는 나한상들처럼
몸 맞대고 서 있던 바코드들만 분주하게 움직인다
대량의 소비를 촉진하던 욕망들에게
창틈으로 빛이 안쓰럽게 비칠수록
이들의 욕망은 배로 번식한다
나가지 못하고 조급함을 참지 못하고
슬슬 부패를 시작하거나
제 몸 속의 물을 내보내며
가벼이 날기를 기도한다
이곳은 세상의 속인가 바깥인가
나는 이곳에 한 오년 갇혀도 살 듯 싶은데
동안거에 들어가
박스 속에 담긴 상품들을 화두 삼아
겹겹이 포장된 옷 벗겨 보고 싶은데
소비 사이클이 순간 정지 하자
금방이라도 질식할까 봐
저들은 불안해 한다
--------「대형 할인 마트에 갇히다」전문
 
현대인들에게 도시는 어떤 곳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하겠지만, 현대인들에게 도시는 벗어나고 싶은 본능적인 욕망을 갖게 하는 곳이면서도, 동시에 벗어나면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생존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라는 답이 보편성을 가질 것 같다. 그래서 현대의 도시인들은 건설, 개발, 풍요, 대량소비가 발생해 내는 공해, 비인간화, 물질주의 등에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신도 그 조직의 원소元素가 되어서 살고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얻은 것이 무엇이고 잃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손익계산마저도 잊어버린 채, 마치 마법魔法에 걸린 동화 속의 캐릭터같이 생활하고 있다. 그런 중에서도 공해, 비인간화 등을 피해서 도시의 생활기반을 버리고 자연으로 들어가는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찾아간 자연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고 이미 도시화都市化된 반쪽 자연일 뿐이다.
김선호 시인의 시에는 물질문명이 고도화된 현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문제가 들어 있다. 그는 반문명反文明 또는 문명비판이라는 상투적 메시지에서 벗어나서 인공적인 것들과 화합하면서 새로운 삶의 꿈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는 그 꿈을 보여주기 위해 몸속에 알약처럼 시계를 넣는다는 독창적인 상상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 리포터가 되어 대량소비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의 그런 행위에는 문명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어버리고 스스로 내적사유의 세계를 확대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것은 인간이 문명과 자연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이중적인 존재라는 것과 부합된다.「몸 속에 시계를 달다」는 전자에 해당하는 시다. 그는 아침 6시에 알람시계의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는 것을 <시계 소리 한 알을 삼킨다>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몸 속의 시계는 쉬지 않고 약물을 퍼트리며/나를 데리고 어디로든 가려고 한다/몸과 마음은 시계에 갇힌 채/시계바늘을 따라서 둥근 세상을 돈다>고 한다. 시계소리를 알약처럼 매일 먹으면서 사는 인간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보다는 시계가 정해준 일과日課에 따라서 움직이고 생각하는, 로봇robot 같은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내 안의 시계는 시간의 경계가 확실치 않아서/슬픔 너머 저쪽 지나간 시간을 불러오거나/희망 언저리를 따뜻하게 데우기도 한다>고 한다. 그것은 일방적인 반문명의 메시지를 넘어서는, 인공적인 것(문명)과 자연적인 것(인간의 감성)의 화합을 통해 제3의 길을 여는 사유의 열쇠를 보여주려는 시도라고 여겨진다. 이 시에서 시계소리는 알약에 연결되고 알약은 현대인들의 행동을 구속하는 시계의 기능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슬픔 너머 저쪽”이라는 세계를 지향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이런 발상 속에는 약을 많이 먹는 현대인들의 생활습관도 들어있어서 독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시킨다.「대형 할인 마트에 갇히다」에는 자신의 몸을 현대도시를 상징하는 대형 마트 속에 밀어 넣고 공포와 불안감을 극복하려는 시인의 모습이 들어 있다. 그는 어느 날 대형 마트에 들어갔다가 정전停電이 된 공간 속에 놓이게 된다. 그 정전된 대형 마트의 공간 속에서 그는 <정전된 건물에 들어오니 산 속 암자처럼 조용하다/쉴 틈 없이 돌려대던 환풍기 소리가 멎으니/천정에서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고 오히려 자연 속과 같은 안정감을 찾는다. 그리고 <이곳은 세상의 속인가 바깥인가/나는 이곳에 한 오년 갇혀도 살 듯 싶은데/동안거에 들어가/박스 속에 담긴 상품들을 화두 삼아/겹겹이 포장된 옷 벗겨 보고 싶은데/소비 사이클이 순간 정지 하자/금방이라도 질식할까 봐/저들은 불안해 한다>라고 여유로움을 보이고 있다. 그 여유로움은 그의 내면적인 사유의 힘에 의한 것이다. 그 사유의 바탕에는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다는(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 불교적인 마음이 들어 있다. 그리고 변화에 부동不動하는 선禪의 정신이 담겨있다. 정전은 현대사회에서 대형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정전이 되면 은행의 컴퓨터는 물론 지하의 전동차가 멈추고, 통신,TV 등이 제 기능을 잃는다. 냉장고의 음식이 상하는 것은 작은 일에 속한다. 이렇게 순식간에 도시전체가 마비되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공포와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다. 이것이 현대도시의 허점이며 아킬레스건이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 현대도시이고 그 속에서 불안감을 안고 사는 존재가 현대인이다. 그런 현대인들이 스스로 평화를 만들며 자유로워지는 삶의 모습을 그려본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김선호의 시는 그것을 인간의 내적 해방이라는 체험적 행위로 보여주려고 한다. 나는 거기에 ‘도시선都市禪의 시적 체험’이라고 이름붙이기를 해본다. 그리고 문명비판을 넘어서는 모더니즘 시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 김선호: 2001년 월간 <시문학> 등단 시집: 「몸 속에 시계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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