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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30> / 심 상 운
2019년 07월 26일 18시 42분  조회:203  추천:0  작성자: 강려
월간 <시문학> 2007 11월호 발표  <이낙봉 /이승하/나희덕 시인의 시>
                
이낙봉 시인의 시-050106」「040823
 
지금 시를 쓰려는 내가 식은 커피 잔 가위 구두 종이 의
자 책 연필 벗어놓은 양말 실비듬으로 떨어지고, 지금
시를 쓰는 내가 흐린 하늘 고층아파트 마을버스 보도 블
록 세탁소 약국 부동산 찢어진 비닐봉지로 휘날리고, 지
금 시를 쓴 내가 머리카락 담배 베개 이불 불 꺼진 전
등 재떨이 멈춘 시계 구겨진 잠옷으로 늘어지고, 지금 시
를 지우는 내가 어제의 내가 디지털 시계의 1,2,3,4,5,
6,..........쪼개지고 부서져 바다로 뛰어 들고, 지금 시를 지
우는 내가,
                                              -----------------「050106」전문
 
 불타는 지붕 위에서 초록염소가 논다                                                                                    
(우울증과 놀던 나는 머리를 감는다)
불타는 지붕 위에서 초록염소와 연보라색누드가 논다
(우울증과 놀던 나는 머리를 감고 이빨을 닦는다)
불타는 지붕위에서 초록염소가 사라지고 연보라색누드
와 붉은 꽃이 논다
(우울증과 놀던 나는 머리를 감고 이빨을 닦고 손톱을 깎는
다)
불타는 지붕 위에서 초록염소와 연보라색누드가 사라지
고 붉은 꽃이 회색하늘과 논다
(우울증과 놀던 나는 머리를 감고 이빨을 닦고 손톱을 깎고
코털을 자르고......)
 
그는 그의 흐린 햇빛마을에서 색 색 색과 놀고 나는 나
의 흐린 햇빛마을에서 색 색 색에 묶여 雨期의 말과 논다
---------------「040823」전문
                                                                            
음악가가 소리를, 화가가 선과 색채를 예술의 소재로 삼듯이 시인들은 언어를 소재로 하여 살아가는 존재다. 그러나 시인은 음악가나 화가에 비해서 비예술적인 면이 너무 두드러진다. 그 까닭은 ‘소리’나 ‘색채’에는 의미가 없지만 언어에는 소리(기호)와 함께 의미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의 예술을 지향하는 시인들에겐 언어가 ‘존재의 집’(하이데카)이나 ‘존재의 무기’가 아닌 ‘존재의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언어를 예술의 오브제로 사용하려는 시인들에게 언어의 의미는 ‘고정된 사고思考의 감옥’ 속으로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이 의미의 구속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한국 현대시에서 김춘수가 제창하고 실험한 것이 ‘무의미 시’다. 말년에 그는 무의미의 실험을 포기하고 의미 쪽으로 회귀하였지만 그의 ‘무의미 시’는 한국 현대시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언어의 퍼포먼스였다. 그의 ‘무의미 시’에는 언어학의 원리가 밑받침이 되어 있다. 언어는 실체가 아닌 자의적恣意的이고 추상적인 기호다. 예컨대, ‘백두산 문방구’라는 상점의 명칭에서 문방구는 실체의 매재媒材가 되는 자의적인 기호이지만 ‘백두산’은 실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추상적인 기호일 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언어가 이렇게 실체를 떠나 ‘추상적인 기호’로 존재한다는 것은 실체(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시의 언어가 음악의 소리나 회화의 색채같이 의미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순수성을 갖게 되는 근거가 된다. 미당의 대표시로 알려진 <동천冬天>에서도 이런 면이 발견된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 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에서 눈썹, 새, 하늘 등의 언어는 시인의 심리적 이미지나 형이상학적 판타지를 구현하는 기호로서의 언어일 뿐 실제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이 시에 쓰인 언어들은 의미의 구속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미적 공간’을 형성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에서 언어의 역할은 순수 회화에서 색채의 역할과 같다. 그래서 실제의 용도, 공리성에서 이탈된 사물을 예술의 오브제로 사용하는 초현실주의의 ‘오브제 이론’과도 맥이 닿는다.
이낙봉의 시에도 언어의 의미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강하게 감지된다. 그는 ‘의미’로부터 자유스러워지기 위해서 시의 제목을「050106」등의 숫자로 표시하고 있다. 그의 시집(‘미안해 서정아’)을 보면, 이 숫자의 나열은 시를 쓴 연월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적私的인 언어행위일 뿐 공적인 의미와는 관계를 맺지 않는다. 따라서 공적으로는 무의미한 기호가 된다. 시의 내용에서도 그는 현실적인 인과관계나 의미형성으로부터 멀어지려고 의식적인 행위를 한다.「050106」에서 <지금 시를 쓰려는 내가 식은 커피 잔 가위 구두 종이 의/자 책 연필 벗어놓은 양말 실비듬으로 떨어지고, 지금 시를 쓰는 내가 흐린 하늘 고층아파트 마을버스 보도 블/록 세탁소 약국 부동산 찢어진 비닐봉지로 휘날리고, 지/금 시를 쓴 내가 머리카락 담배 베개 이불 불 꺼진 전등 재떨이 멈춘 시계 구겨진 잠옷으로 늘어지고, >라는 구절을 보면, 그의 언어가 현실로부터 이탈하여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내면의식 쪽으로 떠나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시가 의미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식의 예비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구절에 쓰인 시어들은 모두 구상어具象語이지만 의미면에서는 구체성이 없는 환상에 가까운 추상抽象이 된다. 그러나 이 시에는 ‘나’라는 주체의 의식이 들어 있어서 시인의 내면의식의 추적을 통해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것은 그의 내면에 고약같이 붙어있는 끈끈한 정서의 작용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040823」에는 추상적인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무대’가 보이고, 칙칙하고 끈적거리는 의미(관념)가 말끔하게 지워진 언어(기호)의 가벼운 몸놀림이 경쾌하게 느껴진다. <불타는 지붕 위에서 초록염소가 논다/(우울증과 놀던 나는 머리를 감는다) /불타는 지붕 위에서 초록염소와 연보라색누드가 논다/(우울증과 놀던 나와 붉은 꽃이 논다는 머리를 감고 이빨을 닦는다)/불타는 지붕위에서 초록염소가 사라지고 연보라색누드와 붉은 꽃이 논다/(우울증과 놀던 나는 머리를 감고 이빨을 닦고 손톱을 깎는다)>라는 시상의 전개가 거칠 것 없는 상상의 세계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불타는 지붕, 초록염소, 연보라색누드, 우울증, 머리를 감는다, 이빨을 닦는다’ 등의 언어들은 어떤 의미나 관념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현실의 행위와도 관계가 없는 기호화된 언어로 다시 탄생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아무 부담 없이 시인의 상상 속으로 들어가서 자유롭게 놀게 되는 것이다. (  )를 경계로 하여 지붕 위의 풍경과 나(캐릭터)의 행위를 분리하여 입체적인 표현을 한 것도 재미있는 착상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자신의 시적 행위(언어유희)에 <그는 그의 흐린 햇빛마을에서 색 색 색과 놀고 나는 나/의 흐린 햇빛마을에서 색 색 색에 묶여 雨期의 말과 논다>라고 주석註釋을 붙이고 있다. 이 ‘주석 붙이기’에는 의미(현실)의 세계와 완전히 단절하지 않은, 의미 쪽으로 창문을 열어놓고 있는 그의 의식이 보인다. 이 의식은 현실과 상상의 조화라는 면에서 ‘기호시’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건강성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그가 이 지점까지 도달하기 위해 펼친 정신적인 퍼포먼스가 얼마나 치열하였나, 하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 언어실험에 몰두하던 1930년대 이상李箱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낙봉: 198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내 아랫도리를 환히 밝히는 달」「돌 속의 바다」「다시 하얀 방」「미안해 서정아」등
 
이승하 시인의 시- 「소가 싸운다」
 
모래사장는 시방 엄청나다
뜨거운 힘과 힘이 맞서 있다
쏘아보는 저 소의 눈이
링에 오른 격투기선수 같다
거품을 입가에 디그시 물고
앞발로 호기롭게 모래사장을 찬다
징이 울리자
 
힘이 힘을 향해 달려나간다
사방팔방으로 모래가 튀고
사람들의 함성........소와 사람의 힘이 튄다
저놈이 지면 내 힘이 날아가고
저놈이 이기면 남의 힘이 내 힘이 되는 세상
함쪽 소의 뿔에 더 큰 분노가 �려
다른 소의 뒷발이 밀리기 시작한다
 
힘으로 들이 받자 힘으로 맞받는다
모래사장에 튀는 피 뿌려지는 침
쥐 죽은 듯 고요해지는 싸움판
침을 질질 흘리며 고통을 참던 소가
마침내 삼십육계를 놓자
징이 울린다 싸움이 끝나자
한쪽은 더 큰 함성을 지르고
다름 쪽은 욕설을 내뱉는다
 
쫒겨 달아난 소가 못내 미운지
이긴 소 못 다한 힘을 어떻게 하지 못해 씩씩거린다
이긴 소의 주인은 소 등을 어루만지고
진 소의 주인은 카악 가래침을 뱉는다
푸른 지폐와 누른 수표가 오갈 때마다
사람들의 눈빛이 소의 눈빛보다
더 살벌하다 더더욱 분노에 차 있다
---------「소가 싸운다」전문
 
‘소싸움’은 두 소를 맞붙여 싸우게 하는 경상남도 진주 일대의 전래 민속놀이다. 매년 음력 8월 보름을 전후하여 연중행사로 거행된다. 소 임자는 소를 깨끗하게 씻긴 다음 가지각색의 천으로 정성들여 꼰 고삐를 메우고 소머리를 갖가지 아름다운 천으로 장식하며 소목에는 쇠방울을 단다. 소 임자도 깨끗한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실로 수놓은 주머니를 차고 소 싸움터로 소를 몰고 간다. 소 싸움터에는 여러 마을 사람들이 꽹과리와 북을 울리고 새납을 불면서 모여들어 각기 자기 마을소가 우승하기를 기원한다. 소싸움을 주관할 노련한 도감都監이 선발되며, 싸움 붙일 짝소는 연령과 체구를 고려하여 비슷한 것끼리 골라 약한 소들부터 싸움을 시킨다. 도감이 순서에 따라 호명하면 양측에서 소 임자가 소를 앞세우고 나와서 2~3m 떨어진 뒤에서 기세를 돋우며 성원한다. 이때 소는 고삐를 다 풀어주어 몸에 걸치는 것이 없도록 한다. 대개 소싸움은 15~20분이면 쉽게 결판이 난다. 싸움에 이긴 소 임자는 소잔등에 올라타 상품을 소에 싣고 우승기를 들고서 풍물소리에 맞추어 흥겹게 마을을 돌고 돌아온다. 참가자들은 인근 남강南江 터로 가서 흥겨운 대동놀이판을 벌인다. 농민들은 소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구입할 때 키가 크고 몸체가 길고 발이 실하며 골격이 조화되고 뿔도 멋지게 좌우로 뻗은 소를 고르며, 늘 관심을 갖고 소를 관리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민속 문화) 이런 풍속은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축인 소를 귀하게 여기고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주민들의 단합시키는 ‘대동놀이판’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전통성을 갖는다. 오늘 날에도 추석 때면 진주지방을 비롯하여 인근 지방에서는 ‘소싸움’ 판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명절풍속의 놀이판도 현대사회에서는 물질주의에 오염되어서 ‘대동大同’이라는 목적에서 이탈되고, 개인의 이기심을 채우는 동물학대의 격투기로 변질되었음을 이승하 시인의「소가 싸운다」는 생생한 사실적 사생寫生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현실의 이면을 꿰뚫는 시선으로 인간의 욕망이 뿜어내는 비인간적인 면을 고발하고 있다. <쫒겨 달아난 소가 못내 미운지/이긴 소 못 다한 힘을 어떻게 하지 못해 씩씩거린다/이긴 소의 주인은 소 등을 어루만지고/진 소의 주인은 카악 가래침을 뱉는다/푸른 지폐와 누른 수표가 오갈 때마다/사람들의 눈빛이 소의 눈빛보다/더 살벌하다 더더욱 분노에 차 있다>라는 구절에서 그의 그런 시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그의 시적방법에는 두 가지의 면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첫째로 그의 시는 현실을 사진을 찍 듯이 객관적으로 리얼하게 사생함으로써 시어의 기능을 단순화시킨다. 그의 시에서 언어와 사물(사실)이 1:1의 등가관계等價關係를 이루고 있음이 그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그의 시는 언어의 예술적 기능과는 거리가 멀지만 체험적 사실을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명쾌하고 생동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탈-관념적이다. 이런 방법은 ‘현실고발’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시적 효과를 발휘한다. 이것이 리얼리즘 시의 특성이다. 두 번째로는 ‘현실고발’ 속에 들어있는 시인의 가치관과 사상이다. 그것은 휴머니즘 시의 특성과 관련된다. 휴머니스트는 이 세계에 완전하고 아름다운 이념들이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 이상주의자다. 그들의 이념은 철학이나 종교적 관념, 또는 개인적인 차원의 사상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신념이 되어 행동화된다. 따라서 완전한 인간성을 추구하는 휴머니스트는 이지러진 인간성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는 굴욕과 비애를 느끼며 비판하고 분노한다. 이 시에서 그가 ‘소싸움’의 현장에서 느낀 비인간성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 그것이다. <푸른 지폐와 누른 수표가 오갈 때마다/사람들의 눈빛이 소의 눈빛보다/더 살벌하다 더더욱 분노에 차 있다>라는 이 시의 끝 구절은 그런 그의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소싸움’이라는 객관적 대상에 주관적인 높은 인간성과 도덕적 가치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그는 결코 너그러운 마음으로 소싸움 꾼들을 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그에게 소싸움의 현장에서 분출되는 생의 에너지나, 그 광경을 보고 잃어버렸던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관객들의 심리적 현상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 하는 것은 부질없는 행위일 수도 있다. “휴머니스트에게 대해서 사상은 체험의 한 단계로서 감각이나 감정과 불가분리不可分離한 관계에 있다. 그는 체험의 요소들이 결합해서 생동하는 모양에 늘 주목하기 때문에, 사상의 객관면과 주관면의 차별을 그렇게 예민하게 의식하지 않는다. 그는 사상과 정서의 융합된 상태를 추구하여 그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는데 흥미를 갖지만, 객관적인 현실이 횡폭橫暴하게도 인격을 분단하여 체험의 조화를 유린할 때에는 그는 분연憤然히 일어나 싸움을 사양치 않는다.”(최재서「문학원론」Ⅺ사상) 이 구절에는 휴머니즘 시에 들어있는 체험적 생동감과 사상과 정서의 관계, 사상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분출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이 이론에 이승하의 시를 대입하면 그의 시는 체험적 생동감이라는 면에서는 이 이론에 부합된다. 그러나 그의 시는 시대적 상황에 따른 ‘집단적 이념의 시’(1920대의 카프계열, 1980년대의 민중주의 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개인적인 이념(사상, 신앙)에 근거를 둔 휴머니즘 시로 분류된다. 따라서 독자들이 그의 시에서 더 순수한 공감과 전율을 느끼는 이유가 해명된다.
*이승하(李昇夏):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생명에서 물건으로」「뼈아픈 별을 찾아서」「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나희덕 시인의 시-「벗어 놓은 스타킹」「소나무의 옆구리」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생生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마한 까끄러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 들고 일어나 물속에 던져 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밤새 그것은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벗어 놓은 스타킹」전문
어떤 창에 찔린 것일까
붉게 드러난 옆구리에는
송진이 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단지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기어가던 개미 한 마리
그 투명하고 끈적한 피에 갇혀버린 것은
함께 굳어가기 시작한 것은
 
눌러서 버둥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춘 개미,
그날 이후 나는
소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제 목숨보다도 단단한 돌을 품기 시작한
그의 옆구리를 보려고
 
개미가 하루하루 불멸에 가까워지는 동안
소나무는 시들어 간다
불멸과 소멸의 자웅동체가
제 몸에 자라고 있는 줄도 모르고
------「소나무의 옆구리」전문
 
인간에게 옷은 단순한 입성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옷이 사람의 몸에 입혀졌을 때 그 옷은 육체의 일부만이 아닌 그 사람의 인격과 감정과 정신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람이 입었던 헌 옷에는 그 사람의 혼이 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가 걸쳤던 넝마 같은 옷을 기독교인들은 ‘성의聖衣’라고 하면서 그 옷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신과 접촉한 것으로 여긴다. 이러한 생각은 그 옷이 예수를 대신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옷에 대한 이런 감성과 생각은 남자보다 감성이 섬세한 여자가 더 하다.
나희덕 시인은 어느 날 자신이 벗어놓은 스타킹을 보면서 잠시 사유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벗어놓은 자신의 스타킹을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여기 쓰러져 있다/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이라고 삶의 피로감에 젖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스타킹에 이입移入 시키면서 감각적인 비유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생生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조그마한 까끄러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라고, 무겁거나 칙칙하지 않게, 자신의 체온이 생생하게 묻어나는 감각의 언어로 촘촘한 사유의 올을 풀어낸다. 그는 생에 대한 부정에도 환한 긍정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생동하는 현재의 자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대상을 사생寫生 하는 주체의 위치다. 낭만주의자들처럼 대상에 자신을 전적으로 이입하거나 대상을 자기화自己化 하면 대상과 주체가 너무 밀착되어서 객관적인 관조의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상과 너무 멀리 떨어지면 감각과 사유는 개념화 되고 구체성을 잃는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나희덕 시인의 대상과의 거리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적당하게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감정노출을 억제하면서 감성적인 사유의 언어로 대상을 스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감성적이고 이성적 자세는「소나무의 옆구리」에서 날카로운 사유의 눈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소나무의 옆구리에서 끈적끈적한 송진이 흐르다가 굳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끈적하고 투명한 속에 개미가 갇혀서 송진과 함께 굳어 있는 것을 관찰한다. 그는 소나무의 옆구리에 돌덩이처럼 굳어 있는 송진이 소나무를 소멸시키는 암 덩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송진에 갇힌 개미는 불멸에 가까워지고 소나무는 소멸에 가까워진다고 하면서 이 상대적인 둘의 존재를 한 몸 속에 안고 있는 소나무를 자웅동체로 인식한다. <눌러서 버둥거리다가 움직임을 멈춘 개미,/그날 이후 나는/소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제 목숨보다도 단단한 돌을 품기 시작한/그의 옆구리를 보려고//개미가 하루하루 불멸에 가까워지는 동안/소나무는 시들어 간다/불멸과 소멸의 자웅동체가/제 몸에 자라고 있는 줄도 모르고>가 그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인식의 절정을 이루는 구절은 ‘불멸과 소멸의 자웅동체’라는 구절이다. 자웅동체[雌雄同體,hermaphroditism]는 암수의 생식기가 한 몸에 있는 생명체다. 자웅동체성 동물은 대부분 연형동물蠕形動物·태충류苔蟲類·흡충류吸蟲類·달팽이·민달팽이·삿갓조개 등과 같은 무척추동물로서 주로 기생하며, 느리게 이동하거나 다른 동식물에 항상 고착하여 사는 생명체들이다. 사람에게도 비정상적인 매우 드문 일로 자웅동체가 되어 태어나 경우가 있다. 이때 성의 선택은 어느 편이 더 우월한가에 따라서 외과수술로 결정된다고 한다. 이 시에서 말하는 자웅동체는 이런 생물학적인 의미의 자웅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불멸과 소멸을 한 몸에 안고 있는 존재의 모습에 대한 시인의 개성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소멸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소나무의 옆구리에 불멸에 가까워지는 송진 속의 투명한 개미의 모습은 사유의 공간을 확대하는 상징적인 그림이 된다. 이 그림은 소나무가 불멸과 소멸의 대립적 운명을 안고 조금씩 시들어 가는 것같이 우리 인간들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인식하게 한다. 또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송진 속에서 불멸에 가까워지고 있는 개미 같은 것이라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이 시에서는 ‘자웅동체’ ‘불멸’ ‘소멸’이란 단어가 화두話頭를 던지고 있다. 그래서 두 편의 시 속에 들어 있는 사유의 공간은 독자들에게 시를 읽는 시간이 사유의 오솔길을 걷는 시간이 되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나희덕(羅喜德) :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어두워진다는 것」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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