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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철 시집 해설
2019년 12월 14일 13시 36분  조회:1168  추천:0  작성자: 강려
최성철 시집 해설

도시인의 고독한 내면의식을 담은 모더니즘의 언어

                                                                심 상 운(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최성철 시인은 1975년 월간『시문학』으로 등단한 중견시인이다. 그는 20대의 대학생 시절에 등단하여 1976년 3월에 발간된『시문학』출신들의 첫 사화집『환한 대낮』에도 참여한 바 있다. 그는 등단 후 개인사 때문에 적극적인 활동을 유보해 왔지만 2002년에 시집 『간이역에 머무는 아픔』을 발간하고, 본격적인 시작활동의 결과물로『도시의 북쪽』을 상재하고 있다.
이 시집의 서문「찬란한 자줏빛」은 그의 시세계로 들어가는 안내문의 역할을 한다. 이 짧은 산문은 그가 왜 도시를 자기 시의 중심에 두고 있는지. 그가 지향하는 이상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한다. 그리고 시집의 제목 『도시의 북쪽』이 상징하는 그의 정신의 고향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그는 이 글에서 ‘도시의 시’를 쓰게 된 이유를 “도시와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면서 “아무 말 없이 각자 자기 표정을 가지고 총총히 제 갈 길로 사라지는 작은 도시인들의 모습도 좋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도시인을 “행복한 난쟁이”라고 한다. 이런 그의 낭만적인 감성의 시선은 그의 시가 도시를 시의 대상으로 하면서도 도시인들의 환경문제나 생존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도시인 또는 자신의 고독한 존재의 모습을 그리는데 초점이 모아져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시는 외부적인 현실보다 개인적인 내면의 세계에 더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시가 독자들에게 어떤 관념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관심을 두지 않고, 낭만적 감성의 빛깔로 채색된 자신의 내면세계를 서술만이 아닌 모더니즘의 언어 이미지(가상현실, 사물 이미지의 집합)로 형상화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이런 그의 시에 대해서 시를 도구로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이상주의자들은 그들의 편향된 시론으로, 시를 종교적인 입장에서 인식하고자하는 이들은 그 나름의 시각으로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부의 유혹에 끌려가지 않고 시를 순수한 감성의 언어표출이라는 입장에서 자기 시의 영역을 30여년 지켜온 그의 순수한 시관(詩觀)은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순수시관은 시를 어떤 관념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예술적인 존재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의 시집 『도시의 북쪽』에 담긴 87편의 시를 읽으면서 그가 왜 도시를 자기 시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그가 정신적으로 단단한 성벽처럼 의지하고 있는 ‘고독’의 근원을 찾아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는 한적한 시골보다 각종 소음과 사람들로 분비는 도시에서 더 절실하게 고독한 존재의 모습과 대면하게 되고, 그 내면의 실체를 고향처럼 인식하면서 물을 만난 물고기같이 그 속으로 침잠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도시인의 고독한 내면의식을 담은 모더니즘의 언어’라고 붙여 본 것이다.
2. 시편 들여다보기
가. 내면의식의 표출과 이미지의 환상적 결합
이 시집의 구성은 4부 (Ⅰ. 오십 너머 마신 술 Ⅱ. 가을을 지나 겨울 속으로 Ⅲ. 담장에 그린 그림 Ⅳ. 내 마음의 놀이터)로 분류되어 있다. 그 분류의 방법은 시의 형식이 아닌 내용에 의한 분류다. 먼저 「사람들은 금요일마다 술을 마신다」를 읽어 보자.
무너지는 서류더미 속에서 오후 내내/인생의 로드맵을 만들고, 또 파쇄기에 넣는다/어느덧 석양은 안개처럼 번지고/전동차는 여전히 소음 속으로 떠나고/어둠은 언제나 뒤척이다가 나타난다/멀리서 사람들이 돌아온다/어둠을 헤치며 흔들흔들 온다/불빛 희미한 사거리/휘청거리는 신호등이 길을 가로막는다/시계는 매번 정각을 맞추려고 숨을 죽이고/일단의 사람들이 폭탄처럼 몰려서서는/무의미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펄럭이는 자동차 불빛 앞에 /몇몇 남은 사람들은/손에 쥔 가방을 구겨버리며 술을 꺼내 마신다/쓱쓱 지우고 싶은 하루/그 금요일마다 사람들은 제 가슴을 열고/몰래 숨겨 놓은 술을 꺼내 마신다//-「사람들은 금요일마다 술을 마신다」전문
이 시 속에는 도시 직장인들의 삶의 현장이 영화 속의 장면들처럼 연결되어 있다. 서술보다는 묘사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가 독자들의 시선을 당긴다. 그 중심 이미지는 “어둠은 언제나 뒤척이다가 나타난다” “휘청거리는 신호등이 길을 가로막는다/시계는 매번 정각을 맞추려고 숨을 죽이고” 등 명사+동사 또는 동사+명사 형태의 동적 이미지다. 다방면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이 동적 이미지들은 집합적 결합을 통해서 퇴근 시간의 도시 분위기를 연출한다. 시의 화자도 그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이지만 그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가 되어서 객관적인 위치에서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 금요일마다 제 가슴을 열고 몰래 숨겨 놓은 술을 꺼내 마시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밀실로 들어가고자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곳에서 재탄생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 밀실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공간이다. 그 공간은 태아를 보호하는 어머니의 자궁 속 같은 원초적인 생명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불안과 초조, 정신적 스트레스에 지친 도시인들은 술을 마시고, 그 공간 속으로 잠수하려고 하는 것이다.「새벽의 빛」은 그 속에서 새롭게 탄생하고자 하는 시인(화자)의 무의식 속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새벽마다 나를 깨우는 이 누구인가/창문을 두드리는 이 누구인가/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소리/안개꽃처럼 번져오면/땅에서 시작된 어둠은 /다시 땅으로 사라지고/하늘이 열리고 빛이 내려온다//적막하여 외롭게 서 있는 지평선/드리워진 휘장을 서서히 걷으며/바람도 움직이지 않고/구름도 그 흐름을 멈춘 이 새벽에/저기서 다가오는 이 누구인가/눈부신 손을 내미는 이 누구인가//-「새벽의 빛」전문
“새벽마다 나를 깨우는 이 누구인가” 는 이 시의 화두다. 새벽마다 눈부신 손을 내미는 그 존재는 시인의 무의식 속의 모성(어머니)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 존재를 인식하는 자아의 존재다. S. 프로이트를 구조주의적으로 재해석해서 무의식의 존재를 발견한 자크 라캉(Jacques-Marie-Émile Lacan, 1901년 ~ 1981년)은 무의식 속의 자아는 한 개체 안에서 그를 이끌고 통제하는 타자(他者)라고 한다. 따라서 그 타자는 본래적 자아의 은유나 환유라고도 말할 수 있다. 「비 온 뒤」에는 그 본래적 자아가 하얗게 발가벗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산을 접고 양지로 나오는 사람들/모두 눅눅했던 제 그림자를 벗고/환하게 피어나는 햇살을 만나러 간다/하늘은 이제 파랗게/나뭇잎에 걸린 물방울을 타고/지상으로 내려온다//그래서 세상은 하늘에서 온 도시/잔잔한 연못 속으로 지하철이 달리고/새소리, 바람소리 직조한 옷을 입으면/사람들은 차가운 분수에 못이 박힌 발을 씻고/마음속에 퇴적한 어둠을 털어낸다/다 보인다, 비 온 뒤에는/건널목을 지나가는 사람들/하얗게 발가벗은 모습이/무지개 틈새로 환히 다 보인다//-「비 온 뒤」전문
비 온 뒤 먼지가 다 빗물에 씻긴 세상은 “하늘에서 온 도시/잔잔한 연못 속으로 지하철이 달리”는 동화 속의 나라를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건널목을 지나가는 사람들/하얗게 발가벗은 모습이/무지개 틈새로 환히 다 보인다”는 새로운 시각의 세계를 열어준다. 이런 시각의 열림이 이 시에서는 관념에서 벗어난 선명한 사물인식의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2009년 겨울 독감」에는 시인의 내면의식의 환상적 이미지(가상현실)가 서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이미지 속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영화의 화면처럼 나타난다.
등산용 지팡이로 땅을 딛으며/어머니가 나타나셨다/어깨에 비스듬히 손가방을 둘러메고/어머니가 나타나셨다/오른쪽 눈 실명, 왼쪽 눈 백내장/주변을 자꾸 둘러보며, 한 손을 저으며/행길을 건너오셨다/오늘따라 시청 앞 횡단보도가 매우 넓었다/나도 얼른 길을 건너 우리는 한복판에서 만났다/괜찮다, 괜찮아/어머니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시고/그래 감기는 좀 어떠냐/또 그렇게 말씀하셨다/괜찮어, 이제/나는 어머니 앞에서 기침을 할 수 없었다/어머니를 한쪽 품에 안고 길을 건너오면서/어깨뼈가 닭뼈처럼 손가락에 잡혀/너무나 면구스러웠다/찬 바람이 콧속에 스며들었으나/기침을 할 수 없었다/통장과 카드를 전해드리고/나는 택시를 잡으려고 했다/어머니는 또 평상시처럼 한 손을 저었다//-「2009년 겨울 독감」1연
겨울 날 시청 앞 횡단보도에서 만난 어머니. 오른쪽 눈 실명, 왼쪽 눈 백내장이지만 “괜찮다, 괜찮아” 하시는 어머니. “통장과 카드를 전해드리고”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평상시처럼 손을 젓는 어머니의 모습 속에는 시인의 절실한 그리움이 투영되어 있다. 어머니는 시인의 정신적 안식처로 인식된다.
나. 도시인의 고독한 서정과 낭만적 피안의식(彼岸意識)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의 시편의 중심은 도시인의 고독한 서정이다. 연작시 「지하철․1」은 그의 그런 모습을 새벽에 출근하는 회사원의 모습으로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새벽의 징검다리를 건너/발목이 시리게 푸른 공기를 마시며/나는 출근길을 나선다/밤새 잠을 설친 새들은 새까만 머리를 서로 비비다가/졸린 눈으로 제 부리를 제 가슴에 파묻고/길게 늘어진 전깃줄을 바람이 두어 번 흔들고 간다/붉은 보도를 가로막고 선 지하철역 입구/하얀 불빛에 가지런한 계단을 내려서면/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슴에 밀려온다/아직은 다 깨어나지 못한 공간을 침묵만이 가득 메우고/희미한 전등불빛이 그 침묵더미를 조심스럽게 썰어간다/아무도 없다, 주변에는/항상 그렇게 살아왔다/바람 부는 날이나 비 오는 날이나/언제나 혼자였던 사람들/혼자라는 것에 이제 익숙해져서/외로울수록 편안해지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빛나는 어둠이 수북이 쌓인 철로를 보며/나는 잠시 가방을 내려놓는다/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 철로를 우우 구르며/바람과 같이 전동차가 나타날 것이다-「지하철․1」전문
심경토로가 들어있지만 사실적인 이미지가 더 가슴에 닿는다. 새벽에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밤잠을 설친 새들의 모습과 병치시킨 앞부분의 정경은 도시인들의 삶이 얼마나 각박하고 피곤한 것인가를 사물의 이미지로 전한다. 그리고 끝부분 “빛나는 어둠이 수북이 쌓인 철로를 보며/나는 잠시 가방을 내려놓는다/이제 조금만 있으면 이 철로를 우우 구르며/바람과 같이 전동차가 나타날 것이다”에서는 도시인들의 삶은 사회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순응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화자의 ‘빛나는 어둠’이라는 역설이 도시인의 고독한 삶을 표현하는 언어로서 신선한 감각과 함께 내면적 슬픔을 남긴다. 그러나 고독감이 내면적 슬픔이라고 하여도 시인은 고독을 배척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고독의 각질 속에 들어가서 자신만의 낭만적 우주감각을 느끼고자 한다.「항아리 斷想」은 그의 그런 내면세계를 순수한 모더니즘의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다.
밤은 깊고 깊은 항아리/가도 가도 끝이 없는 우주가 /그 안에 천천히 내려온다/오늘 밤 별들은 /항아리 가득 부어진 물에 풀어져/한 그림 속 조용한 빛을 이룬다/그 안에선 모두가 정지해 있다/바람이 분다 해도/흔들리는 것은 오로지 바람일 뿐/무슨 상관이 있을 수 없다,/ 서로 간에/편안한 항아리 속/단단히 여문 침묵만이 제 그림자를 안고 서 있다//부동의 항아리 속/별빛들이 하나 둘 일어서기 시작한다/별빛들이 일어설 때마다/그 빈자리를 어둠이 메워간다/나뭇잎들이 떨어져 은은히 쌓이듯이/어둠은 제 몸을 쌓아 빛의 자리를 천천히 메우며/저 깊은 바닥에서부터 견고한 안식을 다져나간다/빛의 흔적은 모두 지워지기 시작한다/물어보라, 무슨 미련들이 아직 남아 있는 건지/다 가지고 가거나, 다 놓고 가거나//이제부터는 이 단단한 공간에/모든 것은 오로지 태초의 제 모습으로만 존재할 뿐이다/내 숨소리가 천천히 내 눈을 덮는다//-「항아리 斷想」전문
이 시에서 밤, 항아리, 별, 빛, 바람 등의 언어들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벗어나서 시인의 고독한 세계를 치장하는 기표(signifier 記票)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의 공간은 실제의 현실적인 공간이 아닌 시인의 상상이 꾸며낸 가상공간이 된다. 그는 그 항아리의 단단한 공간 속에서 그에게 정신적인 “견고한 안식”의 자리를 다지게 하는 고독의 실체를 만난다. 그리고 그는 그 속에서 “태초의 제 모습”으로 존재하는 자아를 발견한다. 따라서 이 ‘항아리의 공간’은 선사(禪師)들이 본래적인 자아를 탐색하는 선(禪)의 공간과 통한다. 이 가상공간의 본질적인 풍경은「도시의 북쪽」에서 낭만적인 동영상의 그림으로 그려진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단풍은 아름다웠다/차를 한참 달려서 이제는/크고 작은 나무들로 가득 찬 숲길/하얀 빛 한 줄기 나무 틈을 밀며/힘겹게 들어오고 있었다/피치 파인이라고 부르는 리기다소나무들은/떼를 지어 하늘을 막고 서서/바람이 불 때마다 탬버린 소리를 냈다/그중에는 키다리 더글러스소나무도 있는 것 같았다/갑자기 주변이 환해지면서/나를 에워싼 나뭇잎들은 모두 황금빛 왕관을 쓰고/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눈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햇살들은 바람을 타고 내려와/뽀얀 분홍빛에서 찬란한 자줏빛으로/다시 뽀얀 분홍빛으로 변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길을 달리며 나는 그런 색깔로 물들어 갔다//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수십 년 전에 헤어진 동네 꼬마친구가/길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나는 황급히 차를 세웠으나//그 아이는 온 데 간 데 없었다/아아, 이름이 뭐였더라,/그곳에는 한 무더기 코스모스만이 흐드러지고 있었다//-「도시의 북쪽」1,2,3연
승용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이 시의 세부를 형성하는 사건들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적 체험이다. 그러나 그 사건들이 이 시에서는 시인의 상상, 감성, 정서, 무의식 등에 의해 재구성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가상현실(假想現實) 속의 사건이 된다. 가상현실 속에는 물리적 가능성의 사건만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판타지(fantasy)의 영상도 들어갈 수 있다. 시인은 차를 타고 도시의 북쪽으로 달려간다. 도시의 북쪽에는 아름다운 단풍이 있고, 크고 작은 나무들로 가득 찬 숲길엔 하얀 빛 한 줄기 나무 틈을 밀며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탬버린 소리가 난다. 그는 그런 세계의 풍경을 “나뭇잎들은 모두 황금빛 왕관을 쓰고/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왔다/눈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라고, 또 길을 달리면 “수십 년 전에 헤어진 동네 꼬마친구가/길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라고 동화적인 낭만의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인용된 시만으로도 ‘도시의 북쪽’이 시인(화자)의 정신공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시의 화자가 왜 도시의 북쪽으로 여행을 떠나는지를 알게 한다. 그곳은 시인이 언젠가 어머니로부터 또는 우주의 어둠으로부터 떠나온, 그래서 시인의 무의식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는 피안(彼岸)을 상징하는 이상향의 도시라고 유추되기 때문이다. 이 시의 끝부분, 돌아오는 차 안 그의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찬란한 자줏빛 외투를 입은 어둠 하나” 는 시인이 갈구하는 이상향의 분위기와 빛깔을 암시하고 있다.
그날 밤 나는 밤새도록 돌아갈 곳을 찾지 못했다//차의 머리를 돌렸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칠흑 같은 침묵을 헤치고 돌아오는 차 안 내 옆 좌석에는/찬란한 자줏빛 외투를 입은 어둠 하나가 /나를 외롭게 지키고 있었다/나는 그의 외투에 파묻혀/그 찬란한 자줏빛으로 물들고 싶었다//-「도시의 북쪽」끝부분
다. 시람 사는 풍경의 시편들과 사물성의 감각
이제까지 이 시집의 시편들 중에서 낭만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본래적인 자아를 회복하는 내용의 시편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다음은 시인의 시선이 외부로 돌려진 시편들이 그려내는 풍경을 본다. 그 외부의 시선 속에는 나와 남(타자)의 두 모습이 들어 있다. 그 둘은 시간과 공간의 틀(frame) 속에서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서로 일정한 거리에서 각자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독자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고 있다. 그것이 시인의 고독감이 그려내는 도시의 풍경이다. 먼저 연작시 「사람 사는 풍경․1」을 읽어보자.
수서로 가는 전동차가 막 떠났다/먼지 섞인 바람이 가슴 가득 밀려오고/나는 낡은 나무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는다/잠시 갈라졌던 공간이 다시 이어지면/건너편 플랫폼에 서 있던 한 여자가/우연히 나를 쳐다보다가 시선이 마주치고/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서로 모르는 사람일 뿐/태연스러운 서성임만이/그 여자와 나를 말없이 오갈 뿐/다시 적막감이 이곳을 휘감고 나면/침묵만 한가득 내려쌓이고/잠시 후 전동차가 이 침묵을 깨며 달려와/우리의 공간을 갈라놓으면/우리는 이미 떠나버린 사람들/어느 역, 어느 시간에 다시 만나도/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일 뿐/저 건너편 낯선 공간에 서 있는/희미한 그림자들일 뿐-「사람 사는 풍경․1」전문
수서로 가는 전동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자와 나’는 영원히 모르는 사람으로 끝나고 있다.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매개도 없다. 시인은 그 여자와 나의 소통에 대한 어떤 상상도 시 속에 넣지 않는다. 그래서 “잠시 후 전동차가 이 침묵을 깨며 달려와/우리의 공간을 갈라놓으면/우리는 이미 떠나버린 사람들/어느 역, 어느 시간에 다시 만나도/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한다. 이런 태도는 인연(因緣)을 시의 근원으로 삼는 서정주(徐廷柱) 시인의 시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시라고 판단하게 한다. 그것은 이 시가 이성적인 모더니즘의 과학적 태도에 가깝기 때문이다.「사람 사는 풍경․3」에서도 그런 시인의 자세는 변하지 않는다.
농협 양재동 마트에는/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늦은 밤에도 상품 진열대 사이로/손수레를 밀고 당기며/어린 새댁은 이미 잠을 설쳤고/어쩌다 낯익은 얼굴을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밤새도록 밀양에서 올라온 단감은/진열대 위에서 졸고/어제 따온 사과는/종이상자 속에서 익어간다/계산대 앞에 줄 이은 사람들이/각자의 표정으로 순서를 기다리고/지불을 마친 사람들은/하나 둘씩 빠져 나가는데/내 앞 손수레 안에는/한 아이가 잠들어 있다//-「사람 사는 풍경․3」전문
시인의 눈은 농협 양재동 마트의 풍경을 카메라의 렌즈처럼 객관적으로 촬영하고 있다. 그래서 진열대의 단감, 종이 상자 속의 사과, 계산대에 줄지은 사람들, 손수레 안에 잠든 아이들은 각자의 표정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런 냉정한 시선은 그의 시편들이 대상에 대해 어떤 간섭(판단, 주장)도 배제된 영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념에 시달려온 독자들에게 신선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 감각은 독자들의 정신을 맑은 물로 씻어주는 사물성의 감각이다. 그래서 이 시 속에 들어 있는 시인의 빈 마음과 섬세한 감각, 그리고 날카로운 관찰은 사물시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한다.「사람 사는 풍경․5」는 위에 인용한 시편들에 비해서 동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밝은 풍경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도 시인(화자)은 철저하게 관찰자 또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풍경을 촬영하여 보여주고 있다.
큰 수족관 앞에서/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선 계집아이 둘이/수족관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한참 보다가 갑자기 한 아이가/허리를 잡고 깔깔깔 웃었다/웃음소리에 놀란 듯 지나가던 여자가/수족관 안을 잠시 들여다보다가/가던 길을 다시 가고 있다/나는 걸음을 멈추고 수족관으로 다가갔다/계집아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수족관 안에는 커다란 열대어들만 오가고 있다//-「사람 사는 풍경․5」전문
3. 나가는 글
이제까지 최성철 시인의 시집 『도시의 북쪽』에 담겨 있는 87편의 시편들을 읽어보고 나름대로 해설을 하였다. 이 해설은 이 시집의 전체 시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인용된 시편들은 해설자의 의식 또는 무의식에 의해서 선택된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해설자의 편협한 시선에 의한 해설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름대로 중심의 줄기는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성철 시인만의 독특한 색채의 내면세계, 고독한 자아의 눈으로 대상을 응시하는 냉정한 자세, 자신의 관념을 순수한 사물 이미지로 표출하고 뒤에 침묵의 여백을 남기는 기법 등을 접하게 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이런 그의 세계는 새로운 창조적인 세계와는 대칭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독자들과 호흡을 함께하고 그들의 사유를 자유롭게 하는 시의 공간을 열어준다. 필자는 그의 시가 앞으로 더 단단히 자기의 세계를 구축해서 한국현대시의 현장에서 김현승(金顯承) 시인의 ‘절대의 고독’에 비견될 수 있는 ‘도시인의 고독’의 세계를 확고하게 형성할 것을 기대하면서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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