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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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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해외 동시산책

내가 읽은 해외동시 묶음
2020년 05월 05일 19시 53분  조회:223  추천:0  작성자: 강려
 추운 날 / 이 준 관
 
추운 날 혼자서 
대문 앞에 서 있으면요. 
 
 
지나가던 아저씨가 
―엄마를 기다리니? 발 시리겠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온, 저런. 감기 걸리겠다. 집에 들어가거라. 
 
 
지나가던 강아지가 
―야단맞고 쫓겨났군. 안됐다. 컹컹. 
 
 
대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내 마음 
알지도 못하고……. 
 
 
팽, 팽, 팽, 돌고 싶은 팽이가 
내 주머니 속에서 
친구를 동동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냇물이 꽁꽁 얼었습니다. 팽이를 치러 가려고 합니다. 대문 앞에서 주머니 속의 팽이를 만지작거리며 친구를 기다립니다. 
친구는 오지 않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말합니다. "엄마를 기다리니? 발 시리겠다." 아주머니가 걱정을 합니다. "온, 저런. 감기 걸리겠다. 집에 들어가거라." 강아지도 약을 올립니다. "야단맞고 쫓겨났군. 안됐다. 컹컹" 
마음이 답답합니다. (김종상) 
 
+ 빨랫줄 / (조영수·아동문학가

징마가 끝난 뒤
아빠와 이불을 널려고 하는데

이런이런

나팔꽃이
먼저
넝쿨손을 뻗어
젖은 분홍 꽃봉오리를 널어놓았다.

이런이런

수세미가
먼저
넝쿨손을 뻗어
젖은 노랑 꽃을 널어놓았다.


+ 빗방울 / (작자 미상)
 
 
또르르
유리창에 맺혔다.
 
대롱대롱
풀잎에도 달렸다.
 
방울방울
빗방울이 모여서
 
졸졸졸
시냇물이 흐른다.
 
+ 모래 한 알 / (정용원·아동문학가)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눈에 한 번 들어가 봐
울고불고 할 거야.
 
모래 한 알이 작다고 하지 마
밥숟갈에 한 번 들어가면
딱! 아이구 아파! 할 거야.
 
모래알들이 작다고 하지 마
레미콘 시멘트에 섞이면
아파트 빌딩으로 변할 거야.
 
 
+ 들리지 않는 말 / (김환영·극작가이며 삽화가, 1959-)
 
풀섶 두꺼비가
엉금엉금 비 소식을 알려온다
 
비 젖은 달팽이가
한 잎 한 잎 잎사귀를 오르며 길을 낸다
 
흙 속에서 지렁이가
음물음물 진흙 똥을 토해낸다
 
작고
느리고
힘없는 것들이
 
크고
빠르고
드센 것들 틈에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바닥 숨을 쉬고 있다
 
 
+ 고 조그만 것이 / (전영관·아동문학가)
 
고 조그만 산새 알에서
하늘을 주름잡는 날개가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꽃씨 속에서
아름다움을 주는 꽃이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새싹이 자라
밀림을 만드는 아름드리 나무가
어떻게 나올까?
 
고 조그만 아기가 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어떻게 나올까?
흙 / 최 운 걸
 
흙 속엔
가지가지의 빛깔이 있나 봐.
그러길래
노랑, 빨강, 하양…
꽃도 가지가지 피나 보지.
 
흙 속엔
가지가지의 맛이 있나 봐.
그러길래
딸기, 자두, 포도랑…
과일도 가지가지 맺히나 보지.
 
흙은
푸짐한 마음씨를 가졌나 봐.
그러길래
씨 한 톨 떨어지면
열매도 백 곱절 더 주나 보지.
 
<1964년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흙 속에는 '가지가지의 빛깔이 있나 봐' '가지가지의 맛이 있나 봐' 얼마나 놀라운 발견입니까?
어른들의 눈에는 놀라울 것도 없지만, 어린이의 눈으로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경이로운 발견이 훌륭한 시를 낳게 하고, 시를 읽는 사람에게는 큰 감동을 주게 되지요.
나무나 풀의 입장에서 보면 흙은 어머니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가지가지의 빛깔도, 가지가지의 맛도 전부 흙으로부터 얻어내게 되니까 흙은 푸짐한 마음씨를 가졌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허동인)
 
눈 오는 날 / 이 문 희
 
논밭들도
누가 더 넓은가
나누기를 멈추었다.
 
도로들도
누가 더 긴지
재보기를 그만 두었다.
 
예쁜 색 자랑하던
지붕들도
뽐내기를 그쳤다.
 
모두가
욕심을 버린
하얗게 눈이 오는 날.
 
<199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눈이 오는 날이면 모두가 하나로 통일되어 버립니다. 산도, 들도, 집도, 길도 모두가 하얗게 보여 어디가 어딘지 구별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잘난 체하며 뽐낼 수도 자랑할 수도 없고, 화난다며 다투거나 싸울 일도 없습니다.
눈 덮인 세상처럼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한 사회, 우리들도 그런 사회를 바랄려면 지나친 욕심부터 버려야겠지요. (허동인)
1997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은 「눈 오는 날」 (이문희)이란 동시이다. 누구나 잡을 수 있는 흔한 소재이나 선명한 심상을 통해 동시의 본질에 접근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춘문예 당선 작품으로서는 일반적 상상을 깰 만큼 짧은 동시인데 동시다운 어법과 참신성이 돋보인다. (엄기원의 심사평)
 
+ 달팽이가 말했어 / (민현숙·아동문학가
 
집을 지고 다닌다고?
아니야, 난 지금
부릉부릉 차를 몰고 가는 거야.
내 차는 캠핑카거든.
 
걸음이 느리다고?
아니야, 난 지금
둘레둘레 세상 구경하느라 그런 거야
난 여행을 무척 좋아하거든.
 
소문 / 정 진 숙
 
사알짝
나비가
꽃에게
귓속말을 했다
―참 이뻐!
 
바람이 엿듣고
나무에게 전했다
―나비가 꽃을 좋아한대
 
나무가 우렁우렁
큰 몸을 흔들엇다
―뭐? 나비랑 꽃이 결혼한다고
 
나무에 있던 매미
온 동네 시끄럽게 외쳤다
―어머나 세상에!
꽃이 나비의 아기를 낳았대
 
여름 지나자
아무 일 없이 조용해졌다.
 
이 작품은 나비, 꽃, 바람, 나무, 매미를 등장시켜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한 유형의 소문을 그려 놓았다고 볼 수 있겠다.
소문에 대한 속성을 잘 살렸으며, 이야기의 구성이 매우 유연하고 시의 마무리도 야무져 구성의 견고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야기가 구체성을 띠고 있어서 마치 한 편의 짧은 동화를 읽는 느낌이 든다. (서재환)
 
서쪽 하늘 / (손광세·아동문학가, 1945-)
 
빨간 사과 껍질이
널려있다.
 
드문드문
귤껍질도 섞여있다.
 
+ 햇살 발자국 /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 발자국
 
누구 집에 다녀갔는지
시치미 뗄 수가 없다
 
햇살이
쉬었다 간 나무마다
잎새들
반짝
반짝
 
햇살이
앉았다 간 꽃마다
꽃잎들
반짝
반짝
 
 
바람도 코 막고 비켜간
쓰레기 더미 옆
민들레 집에도 찾아갔는지
민들레 꽃잎이
반짝
반짝
 
 
+ 꽃들의 노크 /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문 열어 주세요."
 
냉이꽃이 똑똑똑
텃밭 한 귀퉁이가 밝아 온다.
 
제비꽃이 똑똑똑
개구리들도 문을 열고 나온다.
 
할미꽃이 똑똑똑
할머니께 봄 인사를 한다.
 
냉이꽃 제비꽃
내가 지나갈 때마다
까딱까딱 봄 인사를 한다.
 
시집오는 봄 / (이임영·아동문학가
 
산등성이 진달래
빨간 볼연지
 
산자락에 개나리
노랑 저고리
 
들판에 새싹들
연초록 치마
 
길가에 벚꽃
하얀 면사포
 
꽃단장하고서
새봄이 와요
 
빛은 / 정 현 정
 
가을 빛은
녹아서
단맛이 된다
사과 속에서.
 
 
가을빛은
녹아서
향기가 된다
국화 속에서.
 
어머니 눈빛은
녹아서
사랑이 된다
내 가슴 속에서.
 
태양계 / 정 현 정
 
태양 둘레 도는
수성, 금성, 지구.
 
 
지구 둘레 도는
달.
 
우리집도
태양계
 
아빠 둘레 도는
엄마
 
엄마 둘레 도는
나.
 
꽃들의 시계 / 정 현 정
 
새벽이면
어김없이
꽃 피우는 나팔꽃
 
해 질 녘
꽃잎 열고
해 뜰 때 꽃잎 접는
달맞이꽃
 
이상해
꽃들은 어디에
시계를 놓고 보는지.
 
뿌리에 숨겨 두었을까
꽃대궁 속에 걸어 두었을까
 
참 정확한
꽃들의 시계.
 
(제135회 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엄마의 메아리 / 정 현 정
 
"얘들이 나더러 땅꼬마래."
소리치면
"넌 마음이 거인이야."
엄마의 메아리.
 
 
"달리기도 못하고 공부도 못한대."
소리치면
"넌 조립도 잘하고 만화도 잘 그려."
엄마의 메아리.
 
갯벌 /정 현 정
 
지구 어디에
빈 자리 있어
바닷물은 우르르 몰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나요?
 
 
바닷물 우르르 몰려오면
꽃게 나라.
 
 
바닷물 우르르 몰려가면
도요새 나라.
 
(제135회 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여름 낮(서정숙)
 
꽃들이 
“아이 더워!”
졸라대니까  
나비가 펄럭펄럭
부채질해요.
 
새들이 
“아이 더워!” 
졸라대니까 
나뭇잎이 살랑살랑 
부채질해요.
 
시계 소리 / 정용원
해가 굴러가는 소리
꽃잎 위를 굴러서
한여름 폭포에서 곤두박질 하고
낙엽따라 구르다가
흰 눈 위로 자박자박 걸어가는 소리
 
달님 굴러가는 소리
호수 위를 반짝반짝 걸으며
찰방 찰방 찰방
파도 위를 걸으며
철벙 철벙 철벙
 
+ 여름 / (권오삼·아동문학가, 1943-)
 
해는 활활
매미는 맴맴
참새는 짹짹
까치는 깍깍
나뭇잎은 팔랑팔랑
개미는 뻘뻘
꿀벌은 붕붕
모두모두 바쁜데
 
구름만 느릿느릿
 
뿌리와 나뭇가지 / 오 은 영
 
뿌리는
두레박 가득 남실남실
물 담아 올려 보내며
물방울 편지를 띄웁니다.
 
"빛나는 햇살 보내줘 고마워."
 
 
나뭇가지는
빈 두레박에 찰랑찰랑
햇살 채워 내려보내며
햇살 편지를 띄웁니다.
 
 
"달콤한 물 보내줘 고마워."
문이 없다 / 오 은 영
떡갈나무숲 속
오소리네 집에는
문이 없다
꽃내음이 지나가다 들러 보라고.
 
 
미루나무 꼭대기
까치네 집에도
문이 없다
별빛도 잠깐 놀다 가라고.
 
 
울 엄마 마음에도
문이 없다
힘들면 아무 때나
쉬었다 가라고.
놀고 있는 것 같아도 / 오 은 영
잔잔한 바다,
거북이 다랑어 돌고래
정성 다해 돌보고 있지요.
 
 
텅 빈 겨울 들판,
초롱꽃 민들레 씨앗들
다독다독 재우고 있어요.
 
 
개구쟁이 우리들도
놀고 있는 것 같지만
고물고물한 생각들
키우고 있는걸요.
 
2003년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이까짓 바람쯤이야 / 오 은 영
 
단단한 씨앗문
머리로 밀고 나올 때
고 작은
새싹은 참 아팠겠다.
 
 
딱딱한 달걀껍질
부리로 깨고 나올 때
고 작은
병아린 참 힘들었겠다.
 
 
그런데 뭐
그런데 뭐
이까짓 꽃샘바람쯤이야.
 
 
 
바람 속 꽃눈이
이를 악문다.
 
 
(아동문예 2002-2)
 
 
매달려 있는 것 / 신새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게 뭐지?
ㅡ 나뭇잎
 
 
나뭇잎에 매달려 있는게 뭐지?
ㅡ물방울
 
 
엄마한테 매달려 있는게 뭐지?
ㅡ나!
 
비오는 날 - 김용택
 
 
하루종일 비가 서 있고
하루종일 나무가 서 있고
하루종일 산이 서 있고
하루종일 옥수수가 서 있고
 
하루종일 우리 아빠 누워서 자네
 
겨울 들판 - 이상교
 
 
겨울 들판이
텅 비었다.
 
 
들판이 쉬는 중이다.
풀들도 쉰다.
나무들도 쉬는 중이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냇물 - 유성윤
 
 
모래알 따라가는
냇물 속에는
싱그러운 풀잎도
춤을 추지요.
 
 
 
잠자리 따라가는
냇물 위에는
청개구리 누워서
여행 가지요.
코스모스 - 박경용
 
 
무얼 먹고 저리도
키가 컸을까?
하늘 먹고 컸겠지.
바람 먹고 컸겠지.
 
 
무얼 발라 얼굴은
저리 이쁠까?
햇발 발라 이쁘겠지.
달빛 발라 이쁘겠지.
 
 
하늘 먹고
바람 먹고
나보다 키클라...
 
 
햇발 발라
달빛 발라
나보다 이쁠라...
 
쌀 씻고 빨래하는 바다 / 김진광
 
 
바다가 쌀을 씻는다.
금모래쌀 은모래쌀
저 많은 밥 누가 다 먹누?
 
 
바다가 빨래를 한다.
비누거품 풀어 치대고 헹구고
저 많은 옷감 누가 다 입누?
좀좀좀좀 - 한상순
 
 
잠 좀 자라
공부 좀 해라
내방청소 좀 해라
제발,
뛰지 좀 마라
게임 좀 그만해라
텔래비전 좀 그만봐라
군것질 좀 그만해라
 
 
엄마 잔소리 속에
꼭 끼어드는
좀좀좀좀
 
겨울 / 윤동주
 
 
처마 밑에
시래기 다래미(두름)
바삭바삭
추워요
 
 
길바닥에
말똥 동그래미
달랑달랑
얼어요.
 
집오리 /권 오 훈
 
 
우리 속에
날 왜 가둬



왜.
 
문 열어주면
넓은 세상 빨리 가자



갈.
 
연못에 뛰어들어선
어, 시원하다



어.
 
집오리의 소리는 사람의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여러 가지로 들립니다.
우리 속에 갇혀 있을 때는 답답하다고 왜 가둬 두느냐며 왜왜왜…. 그래서 문 열어주면 즐거운 마음으로 갈 길이 바쁘다는 듯, 갈갈갈…. 연못에 풍덩 뛰어들어서는 너무 시원하다고 어어어….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집오리가 자기 형편에 따라 다르게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느끼고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왜왜왜, 갈갈갈, 어어어.' 하는 의성어가 재미있고 그럴듯합니다. (허동인)
 
어른들은 모르셔 / 제 해 만
 
엄마,
제비가 왔어요.
 
엄마는 들은 척도 않고
빨래를 하십니다.
 
아빠,
새싹이 나왔어요.
 
아빠도 들은 척 않고
비질을 하십니다.
 
어른들은 정말 모르셔
말다툼이나 하고
돈 걱정이나 하시고,
 
할머니,
여기 꽃이 웃어요.
빙그레 웃어요.
 
―무슨 소리냐?
꽃이 웃다니!
 
 
정말 어른들은 모르셔
꽃이 웃는 것도
모르시나 봐.
 
어른들이 어린이들 마음을 너무 몰라 주신다. 그것이 야속하다.
"제비가 왔어요."
"새싹이 나왔어요."
"꽃이 웃어요."
어린이들 생각에는 놀라운 사실인데도 어른들은 관심을 갖지 않으신다. 일에 바빠서일까? 생활이 힘들어서일까? 정말 속상하다. 이 시는 우리 생각을 좀 알아 주셨으면 하고 어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김수남)
 
목련 / 제 해 만
 
목련은
입이다.
 
아이스크림처럼 하얀 봄을
한 모금 물고 있는
아이들의 예쁜 입이다.
 
목련은
웃음이다.
 
아무 욕심도 불평도 없이
얼굴 가득 담고 있는
아이들 티없는 웃음이다.
 
가을은 / 제 해 만
 
가을은 노을지는 강물을 딛고 온다.
가을은 풀벌레 울음에 묻어 온다.
가을은 방울꽃 소리를 내며 온다.
가을은 양지밭 수숫잎을 흔들며 온다.
가을은 산능금 열매 속으로 온다.
가을은 단풍나무 물든 숲으로 온다.
가을은 새털구름 은빛을 타고 온다.
가을은 하늘 높높은 너머에서 온다.
가을은 아이들 푸른 꿈 속에서 온다.
 
태풍 후 / 박 소 명
 
풀들은
뿌리를
더 든든히 엮는다.
 
새들은
둥지를
더 촘촘히 깁는다.
 
들마다
산마다
상처를 싸맨다.
 
엮고
깁고
싸맨 후에
하늘 보라고
하늘이
더 푸르게 웃고 있다.
 
산의 사진 찍기 / 박 소 명
 
언덕은
편히 앉으세요.
 
앞산은
몸을 낮추고
뒷산은
반듯이 서세요.
 
먼 산은
까치발로 서고
어깨 사이사이로
봉우리는 얼굴을 내미세요.
 
찰칵!
 
앞산, 뒷산, 먼 산 봉우리들의
다정한 어울림.
 
(한국동시문학 2003-3호)
 
홍시 / 문 삼 석
 
잎새를 떨구고
부끄러워 그러니?
 
꼭지에 매달려
무서워서 그러니?
 
파아란 하늘만
가지 끝에 걸렸는데,
 
넌 왜 얼굴을
붉히고만 있니?
 
씨앗들이 모여서 / 문 삼 석
 
씨앗들이 모여서
자랑을 했대요.
뭐라 했게요?
 
민들레 꽃씨가
가만가만 말했대요.
―난 낙하산을 타고
하늘하늘 바람 따라 내려왔단다.
 
 
봉숭아 꽃씨도
또글또글 말했대요.
―난 뜨거운 햇볕 속을
총알처럼 빠르게 튀어 왔지.
 
 
그러자,
도깨비바늘이 큰소리로 말했대요.
―겨우 그거야?
난 노루 등을 타고
껑충껑충 신나게
달려왔다구.
 
우리 동네 뒷산길엔 / 문 삼 석
 
우리 동네 뒷산길엔
이름표를 단 풀꽃들이 많습니다.
 
 
꽃무릇 옆에 동자꽃이 있고
동자꽃을 지나면 털머위가 있고
털머위 다음엔 노루오줌,
노루오줌 다음엔 애기똥풀꽃이 있습니다.
 
 
하얀 이름표를 단 애기똥풀꽃은
웃음이 작고 노랗습니다.
 
 
우리에게만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들에서 자라는 들풀도, 거기서 피는 풀꽃들에게도 저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들풀들은 그리고 들꽃들은 저마다 자기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김원석)
 
사마귀야 / 문 삼 석
 
사마귀야, 네 앞다린
왜 그리 짧은 거니?
 
 
―뒷다리는 안 보니?
얼마나 긴데!
 
그럼, 네 머린
왜 그리 작은 거니?
 
―눈망울은 안 보니?
얼마나 큰데!
 
별(9) / 문 삼 석
 
9
 
아가
같은
귀연
눈.
 
엄마
같은
따슨
정.
 
10
 
너를
보면,
그리움이 무언지
알 것 같아.
 
 
너를
보면,
기다림이 무언지
알 것 같아.
 
별(5) / 문 삼 석
5
 
알 듯
말 듯
작은
웃음.
 
날 듯
말 듯
누나
얼굴.
 
6
 
밤에만
피고
작게만
피고,
 
 
하늘에만
피고
눈으로만
피고.
 
머얼뚱 / 문 삼 석
 
왜 그러니?
―머얼뚱
 
할 말 있니?
―머얼뚱
 
나를 보고
누렁소
 
커단 눈만
―머얼뚱
눈 내린 날 / 문 삼 석
소복이 눈 모자 쓴
공중 전화실로
 
 
소복이 눈 모자 쓴
꼬마가 들어간다.
 
소복이 눈 내린
거리를 내다보며
 
소복이 눈 내렸다고
전화하려나 보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꼬마는 소복이 눈모자 쓰고 공중 전화를 하고 있다. 눈 오는 정경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떠오르는 시이다.
소복이 눈모자 쓴 공중 전화실과 꼬마, 그리고 소복이 눈 내린 거리와 꼬마의 속삭임이 이 시의 모티브이다.
이 시를 읽으면 세상의 잡다한 번뇌도 한 올의 재처럼 스러진다. (오순택)
꽃을 보면서 / 문 삼 석
네가 꽃이야?
―그럼, 예쁜 꽃이지.
 
 
요 꽃망울은?
―그건 우리 아가란다.
 
 
엄만 어딨어?
―꽃을 싸고 있는, 요 잎이지.
 
 
그럼, 아빠는?
―여기, 굵은 줄기 보이잖니?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어?
―땅 속에 계신단다. 튼튼한 뿌리로…….
 
고추 / 문 삼 석
 
가을 해랑 놀다가
빨개졌다.
 
 
알몸으로 놀다가
빨개졌다.
 
 
가을 해 눈짓 땜에
빨개졌다.
 
 
알몸이 부끄러워
빨개졌다.
딸기를 보고 / 문 삼 석
잘 익은 딸기
한 알을 보고,
 
 
눈이 뭐랬게?
―'참 빨갛다' 했지.
 
 
코는 뭐랬게?
―'참 향기롭다' 했지.
 
 
입은 뭐랬게?
―'참 맛있겠다' 했지.
 
잘 익은 딸기
한 알을 보고….
 
그만 뒀다 / 문 삼 석
 
신발짝 물어 던진 강아지 녀석
엉덩일 차 주려다 그만 뒀다.
살래살래 흔들고 있는
그 꼬리 땜에…….
 
 
우윳병 넘어뜨린 고양이 녀석
꿀밤을 먹이려다 그만 뒀다.
쫑긋쫑긋 세우고 있는
그 두 귀 땜에…….
 
그냥 / 문 삼 석
 
엄만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아이와 엄마의 사랑
'그냥'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혹은 '그런 모양으로 줄곧' 등이다. '그냥 내버려두다' 혹은 '그냥 기다리고만 있다'라고 할 때의 '그냥'은 바로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경우다. 그런데 '그냥'은 또한 '아무런 대가나 조건 없이'란 뜻도 있다. '그냥 주는 돈이 아니다'라고 할 때의 '그냥'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면 위 시의 '그냥'은 이 가운데 어디에 속할까?
문삼석(67) 시인은 엄마와 아이의 사랑을 '그냥'이라는 말 속에 함축했다. 아이와 엄마는 막 잠에서 깨어 서로의 몸을 간질이며 까르르 웃고 있는 중이다. 엄마와 아이의 몸에 살짝 손을 대기만 해도 아이는 몸을 오그리며 숨이 넘어가도록 킥킥댄다. 아니다. 아이는 일하는 엄마 옆에서 방바닥에 배를 대고 숙제를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힘겹게 글씨를 쓰고 덧셈을 하는 아이를 언뜻언뜻 돌아보며 엄마는 잠시 일하던 손을 놓고 빙그레 웃는다.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이 시 속의 아이와 엄마는 서로 '마주본다'
이 마주봄은 서로에 대한 사랑의 궁극, 절대적 신뢰의 한 표현이다. 그것은 터져 나올 것 같은 행복의 비명이자 살아 있음에 대한 환희이기도 하다. 이 숨 막힐 것 같은 사랑의 회오리 속에서 아이는 저도 모르게 묻는다. 엄만 내가 왜 좋아? 이것은 질문이되 질문이 아니다. 아이는 다만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충만한 사랑을 느끼고 있는지, 그것을 표현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시의 '그냥' 역시 답이되 답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않다. 사전이 정의하고 있는 그 어떤 의미도 이 시의 '그냥'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엄마는 아가를/ 품속에 안고서도/ "아가야, 아가야."/ 아가만 부르지요."(<엄마와 아가>)라거나 "엄마는 나 몰래 나가셨지만/ 어디 계시는지 난 다 알지요./ 달그락달그락 그릇 소리가/ 부엌에 계신다고 알려 주거든요."(<난 알지요>)라고 노래할 때, 문삼석 시인은 이미 아이와 엄마의 사랑은 설명 불가능의 영역, 즉 이른바 '언어도단'의 경지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에게 '그냥'은 존재하는 것들이 내지르는 신음소리에 가깝다. 세상의 어떤 사전에도 이때의 '그냥'은 등재되어 있지 않다. 그것의 용례는 오로지 시인의 작업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시인이 새로운 말의 창조자라는 이야기는 괜한 소리가 아니다. (신수정 문학평론가)
 
고향, 그 고향에 / 노원호
 
 
고향에 가면 바람이 있다. 내 눈을 가만히 적실 바람이 있다. 강물에 발 담그고 푸른 하늘을 끌어내릴 꿈이 있다. 초록빛 들판에서 끝도 없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그 아지랑이를 몸에 감을 종달새 목소리도 있다.
 
 
고향에 가면 은비늘 반짝이는 미루나무 숲이 있다. 수천의 피라미떼 오르는 강물 소리를 숲에서 들을 수 있다. 눈을 비비며 맑아지는 바람을 잡을 수 있다.
 
 
고향에 가면 내 어머니의 흙손을 만날 수 있다. 한 줌의 흙을 보듬으며 푸른 보릿골에 앉은 어머니, 그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다. 숱한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 속에 괴어 있는 것은 고향의 흙냄새, 그 진한 냄새를 어머니의 치맛자락에서 맡을 수 있다.
 
 
향토적인 시어를 많이 사용해서 고향맛을 느끼게 하는, 고향을 노래한 시입니다.
첫째 연에서는, 고향에 가면 바람이 있고 꿈이 있고 아지랑이가 있고 종달새 목소리가 있음을,
둘째 연에서는, 고향에 가면 미루나무 숲이 있고 강물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바람을 잡을 수 있음을,
셋째 연에서는, 고향에 가면 어머니의 흙손을 만날 수 있고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고 또 고향의 흙냄새를 어머니의 치맛자락에서 맡을 수 있음을 노래했습니다.
결국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도 어머니가 그 곳을 지키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적 살았던 고향을 두고 객지에 나가 살면서 상상을 통하여 그려본 그리움의 시입니다. (허동인)
 
나무들의 목욕 / 정 현 정
 
나무들이
샤워하고 있다.
 
 
저것 봐
저것 봐
 
 
진달래는 분홍 거품이
조팝나무는 하얀 거품이
영산홍은 빨강 거품이
보글보글 일고 있잖아
 
깨끗이 씻은 자리
씨앗 마중하려고
부지런히 목욕 중이야
 
 
온 산이 공중목욕탕처럼
색색의 거품으로 부글거리고 있어.
 
 
나무들이 꽃을 피우는 걸 '거품을 내며 목욕하는 것'으로 그렸다.
상상력에 의해 사물의 모습이 이처럼 새롭게 달라져 있다.
달라진 모습을 통해 독자들은 시 읽는 쾌감을 한층 깊이 느끼게 되고, 새로운 사물 세계로 여행을 하게 된다.
때문에 상상력이 동원되지 않으면 새로운 시의 세계가 열리지 않고, 시들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박두순)
 
봄바람 / 전 원 범
 
 
새장 안의
새 부리 끝에 쪼르릉 걸렸다가
 
 
하늘하늘
살구꽃으로 내리다가
 
 
파랗게 파랗게
들을 헤매다가
 
 
산을 기어오르면서
미친 바람이 되어
 
 
아,
빠알갛게 불타 오르는
진달래.
모두가 다 말을 한다 /
전 원 범
 
세상 무엇이든지 때리면
소리 내어 대답을 한다.
종은 종 소리로
북은 북소리로
 
 
양철통은 양철통 소리
나무는 나무 소리
방바닥은 방바닥 소리로
 
말이 없다고 해서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물소리의 말
바람 소리의 말
빗소리의 말
 
행복한 아이들 / 구 용
맹아학교에 갔어요.
앞 못 보는 아이들
점자로 공부하며
지팡이로 더듬어
골마루를 오가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자신들은 청각장애인에 비해
아름다운 소리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었습니다.
 
농아학교에 갔어요.
말 못 하는 아이들
수화로 열심히 이야기하며
놀고 있엇어요. 그러면서
자신들은 시각장애인에 비해
아름다운 세상 볼 수 있어
행복하다고 웃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 구 용
 
기쁠 때
꽃을 봅니다.
언젠가 떨어질
꽃을 봅니다.
 
 
슬플 때
달을 봅니다.
언젠가 보름달이 될
달을 봅니다.
 
 
욕심이 생길 때
나무를 봅니다.
꽃도 열매도 다 주는
나무를 봅니다.
 
봄날에 / 이 준 관 
 
바람이 불 때마다
꽃나무 삐죽한 새순에
화그르 불이 붙는다.
 
 
동동동 발을 구르며
봄을 기다리는 씨앗들이
사르르 껍질을 벗는다.
 
 
아! 가지마다 쌓인 겨울 햇살을
퍼내는 푸른 삽질 소리.
 
 
아이들은 창가에 앉아
거울을 들고
쏟아지는 환한 햇빛을
줍고 있다.
 
실비 / 강 정 안
 
실비 금비 내려라.
잔디밭에 내려라.
 
실비 꽃비 내려라.
꽃송이에 내려라.
 
실비 싹비 내려라.
가지마다 내려라.
 
실비 떡비 내려라.
못자리에 내려라.
 
실비 은비 내려라.
연못 속에 내려라.
 
비는 한 가지지만, 비가 오는 그 때의 마음에 따라 좋게도 느껴지고, 나쁘게도 느껴져요.
이 시에서는 '금비', '꽃비' 등 좋은 비로 나타내고 또 좋은 곳에 내리라고 했네요.
아무리 나쁜 것도 좋게 보면 좋게 보인답니다. (김원석)
 
꼭 / 이 준 관
 
꼭 손 잡고 가자.
감꼭지처럼 다정한 말.
 
 
꼭 잊지 않을게.
새끼손가락처럼 사랑스런 말.
 
 
장갑 꼭 끼고 가렴.
장갑처럼 따스한 말.
 
 
'꼭'이라는 말.
어딘가에 붙여 주면,
 
 
엄마처럼
말없이
꼭 껴안아 주는 말.
 
빈 나뭇가지에 / 김 구 연
 
빈 나뭇가지에
구름 한 조각 걸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하얀 눈 몇 송이 앉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뾰쪽뾰족 초록잎 돋았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빨간 열매 달렸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한 마리 산새 쉬었다 가고
 
빈 나뭇가지에
빈 나뭇가지에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빈 나뭇가지에 왔다가 떠나가는 것을 '걸렸다, 앉았다, 돋았다, 달렸다, 쉬었다'로 말을 바꾸어 나타낸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겠습니다.
시는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이렇게 표현을 달리 해야 좋은 문장이 됩니다.
만약 이것을 모두 '앉았다 가고'로 표현했다면 '구름 한 조각 앉았다 가고' '초록잎 앉았다 가고' '빨간 열매 앉았다 가고' '한 마리 산새 앉았다 가고' 로 되어 참으로 지루하고 멋없는 글이 되고 말 것입니다. (김종상)
 
꼭 집어낸다 / 오은영 
 
 
진달래꽃은
와르르 쏟아지는 빛살 속에서
"바로 내 빛깔이야!"
분홍빛 꼭 집어내고
 
 
기러기는
많고 많은 하늘길 속에서
"바로 이 길이야!"
가야 할 방향 꼭 집어내고
 
 
우리 엄마는
단체 사진 속 콩알만한 얼굴들 사이에서
"여기 너 있다!"
나를 꼭 집어 낸다.
 
 
(2004년 여름『시와 동화』제28호)
 
만유인력의 법칙 / 오 은 영  
 
'안 떨어질 거야'
얼굴이 노래지도록 안간힘 쓰지만
기어이 열매는 
땅으로 끌려가고야 말지.
 
 
'끝까지 매달릴 거야'
얼굴이 빨개지도록 이 악 물지만 
마침내 나뭇잎은
땅으로 떨어지고야 말지.
 
 
'엄마랑 얘기하나 봐라'
야단맞고 새침하게 토라져 보지만
엄마가 다정하게 부르면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말지.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제목부터가 낯설다. 감히 과학 용어를 시어로 쓰다니. 이것이 발상의 전환이다.
  고정관념에 매여 있으면 새로운 시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시의 소재는 무엇이든 좋다. 다만 시적 육화가 이루어졌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물리학에서 만유인력은 사물이 낙하할 때 지구 중심부를 향해 떨어진다는 원리를 말한다. 1,2연에 그것을 미적으로 잘 드러냈다.
  인간 심리에서의 만유인력은 어떤 것인가? 3연에 그것을 심상으로 명쾌히 제시하고 있다.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마는' 것이다. 그 만유인력은 어머니의 다정함이다.
  인간에게 따뜻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시로 표출하고 있다. (박두순)
 
  이 시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과학의 법칙을 어머니와 자식의 사랑에 비유한 발상이 돋보이며, 뉴턴이 그랬듯이 둘 사이에 '끌려감의 미학'을 시인은 발견한다.
  사람들은 물질에 끌려 생명마저 경시하며 살아가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끌려감의 힘은 물질로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이다.
  읽노라면 가슴이 따뜻해오는 그러한 시라 할 수 있겠다. (김진광)
 
손님 오실 때 / 엄 기 원
 
현관에
신발들이 나란히
 
 
거실엔
탁자 유리가 반짝
 
 
주방엔
커피물이 팔팔
 
 
엄마 입술엔
꽃잎이 두 장
 
 
게으른 우리 식구
옷도 깔끔
 
연못 속 / 윤 석 중
 
연못 속으로
사람이 거꾸로 걸어간다.
소가 거꾸로 따라간다.
나무가 거꾸로 쳐다본다.
 
 
연못 속에는
새들이 고기처럼
헤엄쳐 다닌다.
구름이 방석처럼 깔려 있다.
해님이 모닥불처럼 피어 오른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허리를 구부리고 두 다리 사이로 둘레를 보면 늘 보던 풍경도 별다르게 보입니다. 연못 속에 비쳐 보이는 풍경도 그러합니다.
소를 몰고 가는 사람과 연못가의 나무들이 거꾸로 되어 있어 색다른 세상을 보는 듯합니다.
물 속에서 날아가는 새는 물고기 같고, 그 아래쪽에 하늘이 있어 구름은 폭신한 방석만 같습니다. 해는 동그랗지만 흔들리는 물결에 밀려서 꼭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보입니다.
참 신비로운 세계입니다. (김종상)
 
연못 속에도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땅 위를 사람이나 소들은 걸어 다니는데 연못 속 사람과 소들은 거꾸로 걸어 다닙니다.
연못 속의 세상은 정말 신비스럽고 재미있는 세상입니다. (김진태)
 
봄날에 /강 현 호
 
엄마가 사 온
연둣빛 새 치마를
구겼다 폈다 하는 앞산
 
 
뒤뜰로 나들이 나와
봄 햇살을 톡톡 부리로 쪼는
수다쟁이 햇병아리들
 
 
선잠 깬 개나리만
노오란 손바닥을 가리고
긴 하품을 토한다.
할아버지 등 긁기 / 김 경 성
 
대구 대구 대구
아이구 시원테이.
 
 
전주 저언주
거그 거그
어이 시원혀.
 
 
서어울 서울
그래그래
아이 시원해.
 
 
부산부산 부산
거어 쫌 글거봐라.
부산은 옆구리니까
할아버지가 긁어요.
 
산에서는 / 김 용 석
 

사뿐사뿐 걷기.
 
 
아기 멧새 걸음마
한창인걸요.
 
 

사뿐사뿐 앉기.
 
 
길섶 아기 풀씨
새 옷 나들이.
 
 

소곤소곤 말하기.
 
 
잎새마다 이는 바람
온 산이
엿듣거든요
깊은 산 속 / 강 영 희
 
 
깊은 산 속 나무들은
아름다운 산새 소리
오래오래 쌓아 두고 싶어
날마다 잎을 키운다.
 
 
깊은 산 속 나무들은
밤마다 속삭이는
별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자꾸만 하늘로 뻗어간다.
 
 
조잘대는 산새 소리
발끝까지 간지러운 산골물 소리
그 소리가 듣고 싶어
산토끼
다람쥐도
쫑긋쫑긋 귀 기울이고
찾아오면
 
 
지나던 달님도
밤새도록 함께 놀다가
새벽에야
허겁지겁 산을 넘는다.
 
진땀 / 강 윤 제
 
결 곱게 불어야지
결 곱게 불어야지
바람은 진땀을 흘렸습니다.
 
 
딱 맞게 뿌려야지
딱 맞게 뿌려야지
가랑비까지 진땀을 흘렸습니다.
 
 
논과 밭, 흙들도
땅심을 보태느라
진땀을 흘렸습니다.
그것들을 버물러서
노오랗게 익히느라 빠알갛게 다듬느라
햇볕도 진땀을 흘렸습니다.
 
 
엄마 아빠도
두 손이 갈퀴가 다 되도록
짭조롬한 진땀을 흘렸습니다.
 
 
농사를 지어 그 열매를 거두어들일 때까지는 농부들의  노력과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갑니다. 그 노력과 정성을 '진땀'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농부들만 진땀을 흘린다고 농사가 잘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토질도 좋아야 하지만, 햇빛과 온도가 맞아야 하고, 또 비도 적당한 때에 내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바람도, 비도, 땅도 진땀을 흘려야 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해는 풍년임이 틀림없습니다.
'삼위일체'란 말도 있지만, 계획했던 일이 자기 뜻대로 되었다면 그건 자기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이 도와주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나 봅니다. (허동인)
 
오월 어느 날 / 강 현 호
 
파아란 잎들이
잘 다림질한
꽃잎을 받쳐듭니다.
 
 
사뿐 걸터앉았던
나비가
흰 옷자락을 걷어올리며
일어섭니다.
 
 
―에그, 옷을 다 버렸군.
지나던 바람이
날개에 묻은 꽃가루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사진찍기기 / 강현호
 
"자아, 활짝 웃어요."
"자아, 김―치."
 
 
봄 뜰에서
봄바람이 사진을 찍는다.
 
 
흰 덧니를 드러낸
목련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노오란 가락지를 낀
개나리도 두 손을 흔든다.
 
 
뒤늦게 달려온 해님이
두 뺨을 붉히며
활짝 웃었다.
 
바람 부는 날 숲에는 / 공 재 동
 
떡갈나무들이
흰 손바닥을 드러내고
손뼉을 치며 웃고 있다.
 
 
뻣뻣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잔 빼던 소나무도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밤나무도 허리를 잡고 웃노라
하얀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는 것도 모르고 있다.
 
 
바람 부는 날 숲에는
나무를 간지럽히는
바람의 손길이
은비늘처럼 반짝이고
 
 
초록 웃음을 밟고 가는
바람의 장난기가
끝없이 끝없이 날아오른다.
 
(어린이문학 2001-12)
 
바람  / 구 옥 순
 
빨랫줄에 널린
아가 옷
고 속에 들어가
아가도 되었다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나뭇잎
쓸어 모으는
청소부 아저씨도 되었다가
 
 
호륵 호르륵
휘파람 부는
장난꾸러기 소년도 된다.
 
귀여운 장난꾸러기 같은 바람.
빨랫줄에 걸린 옷 속에도 들어가 보고, 나뭇잎도 쓸어 모으고, 호르륵 휘파람을 불며 아무 데나 돌아다니는 바람은 틀림없이 장난꾸러기이겠지요.
바람을 보면서 개구쟁이 동생이나 짓궂은 골목대장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현득 김종상)
 
쪼금만 / 권 영 상
 
햇살이 숲 위로 쏟아집니다.
쏟아지는 햇살이 아까워
참나무들이 잎을 펼쳐 햇살을 받습니다.
그러고도 남은 햇살이
참나무 아래로 떨어집니다.
 
 
―쪼금만.
거미줄에서 기다리고 있던 거미가
꼭 필요한 만큼 햇살 조각을 떼어 냅니다.
거미가 떼어 내고 남은 햇살이
숲 아래 어린 풀잎 위에 내려앉습니다.
쪼금만, 이번엔 꼭 필요한 만큼
풀잎이 햇살을 덜어 냅니다.
 
 
―나도 쪼금만.
개미가 있군요, 풀잎 밑을 기는 개미.
개미까지 받을 수 있도록
숲은 꼭 맞게 햇살을 나눕니다.
 
바람 부는 날 / 김 구 연
 
미루나무들이
벌판을 달리고 있습니다.
맨주먹 불끈 쥐고
머리칼 휘날리며.
 
 
콩밭도 달립니다.
수수밭도 달립니다.
미루나무 꼭대기
까치집도 달립니다.
 
동심의 모습을 발견하기
 
이 시는 바람 부는 날에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모양을 보고 마치 아이들이 맨주먹을 쥐고 달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쓴 시다.
이 시에 나오는 미루나무나 콩밭이나 수수밭은 주먹을 쥐고 달리는 아이들 모습 그대로이다.
자연을 보면 이와 같이 귀여운 동심을 발견할 수 있다.
새와 꽃과 나무에서 아이들과 닮은 점을 찾아 시로 써보기 바란다. (이준관)
 
재 보기 / 문 삼 석
 
"나랑
키재기해 보겠니?"
기린이 목을
길게 늘였어요.
 
 
"그럼
나랑 코재기해 볼래?"
코끼리가 투우!
코를 불었어요.
 
 
"그런 것 말고…"
하마가 하아앙!
하품을 했어요.
"…나랑 입재기는 어때?
 
하찮은 짐승일지라도 다른 짐승들보다 더 좋을 점을 조금씩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키를 잰다면 기린이 일등이겠지만, 코로 겨룬다면 코끼리를 당할 것이 없지 않겠어요?
자기가 남보다 더 훌륭하다고 뽐내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지요.(문삼석)
 
아가 웃음 / 문 삼 석
 
 
―반짝!
눈이 웃고
 
 
―발름!
코가 웃고
 
 
―방긋!
입이 웃고
 
 
―볼록!
배가 웃고…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눈은 반짝반짝, 코는 발름발름 웃지요.
방긋방긋 웃는 건 무엇일까요? 또 볼록볼록 웃는 것은요?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도 저절로 웃음이 나오지요. (문삼석)
 
산골 물 / 문 삼 석
 
하도
맑아서
 
가재가 나와서
하늘 구경 합니다.
 
하도
맑아서
 
햇빛도 들어가
모래알을 헵니다.
 
가재가 나와서 하늘 구경 한다니 얼마나 맑은 물인가? 또 햇볕도 들어가 모래알을 헨다고 하니 얼마나 맑은 산골물인가?
시를 읽는 순간 마치 맑은 산골물에 하얀 발을 담그고 서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시이다. 귀에 돌돌돌 모래알 구르는 소리 들리고 마음이 금세 맑아지는 듯하다. 문득 동시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문삼석(1941∼)의 초기 시세계는 '이슬'과 '산골물'로 대표된다고 할 것이다 그는 '이슬', '산골물' 등 세상에서 가장 맑은 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담아낸다. 이슬이 가장 맑고 깨끗한 물의 상징인 것처럼 그가 생각하는 동시도 가장 맑고 깨끗한 마음을 담은 시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동시는 이슬과 닮은 점이 의외로 많다. 시가 응축되어 있다. 이미지가 투명하다. 또 아주 쉬운 말을 구슬처럼 깔끔하게 갈고 닦아서 쓰고 있다. 시적 구성도 최대한 단순화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연작 형태가 많다. (전병호)
 
지지지 지지지 / 김 기 현
 
뭐가 뭐가 지지지?
흙장난하는 아기보고
고모가 하는 소리지.
 
뭐가 지지지?
추석날 엄마가
빈대떡 뒤집는 소리지.
 
뭐가 지지지?
공부할 때
남포 심지 타는 소리지.
 
'지지지'는 아기들에게 더러운 것을 말할 때 쓰지요.
'지지지'란 말은 또 빈대떡 뒤집을 때의 의성어, 또 등잔불의 심지 타는 소리죠.
'지지지'란 말에는 다양한 뜻이 담겨 있네요. (김원석)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 김 상 길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비눗방울이 된다.
무지개빛 방울이 되어
하늘 가득 피어오른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새 떼가 된다.
어지럽게 날아다녀도
부딪치지 않고
하늘을 덮는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시냇물이 된다.
갈라지는 것 없이
누구나 하나 되어
웃음으로 흐른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종 소리의 남는 소리가 된다.
아이들이 떠나고 놀이 내려도
남는 소리는
동그라미를 그린다.
 
학교 운동장은 어린이들의 꿈이 영그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린이의 꿈이 담긴 비눗방울과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 오르기도 합니다.
운동장은 혼자 있어도 어린이의 소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김원석)
 
봄 오는 소리 듣기 / 김 봉 석  
 
가만히 눈 감고
들어보아요
산마다
진달래꽃 붉은 물감
칠하는 소리
 
 
가만히 귀 대고
들어보아요
목련나무
하얀 꽃잎
나무 타고 올라오는 소리
 
 
가만히 숨 고르고
들어보아요
입학식 날 동생들이
"하나, 둘, 셋, 넷!"
운동장 발 구르는 소리
 
(2006. 3.『어린이동산』)
 
봄맞이 / 박 근 칠 
 
개나리 핀 울타리를
비집고 나온 강아지
꼬리에 햇살이 감긴다.
 
 
파란 강물 속의
물고기 비늘은 번득이고
버들강아지 솜털눈이 부시다.
 
 
보리밭 이랑마다
겨울잠을 풀어내는
생명의 숨소리 들리고
 
 
―음매
나중 나온 송아지는
동구 밖에서 들판을 깨운다.
 
새 봄을 맞이하는 즐거움.
봄을 남보다 먼저 맞이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울타리 구멍을 빠져나온 강아지와 냇가에 피어난 버들강아지와 동구 밖을 뛰어나온 송아지들입니다.
그들이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봄을 깨우고 있습니다. (신현득 김종상)
 
풀꽃 / 박 소 명
 
향기 샘
아무리 얕아도
향기 솔솔
 
 
꽃방
아무리 좁아도
암술, 수술
나란히 나란히
 
 
꽃씨
아무리 작아도
뿌리랑 잎이랑 꽃이랑
차곡차곡
 
누렁소의 말 / 박 소 명
 
파리에겐
꼬리로 말하지요
(저리 가)
철썩
 
 
강아지에겐
뒷발로 말하지요
(귀찮아)

 
 
할아버지에겐
눈으로 말하지요
(고마워요)
꿈뻑꿈뻑
 
 
송아지 부를 때만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지요
움머움머!
 
 
(2007년 봄 『오늘의 동시문학』)
 
시인은 누구나 자연물과 대화가 되는 능력을 가졌지만 박 시인은 동식물의 언어를 통역하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여느 시인들이 자연물과 하는 대화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시인들은 그냥 바로 마음을 터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거나 마음을 읽지만 박 시인은 소꼬리가 하는 말은 '저리 가'라는 뜻이라고 독자에게 일러주는 방식입니다.
어린이를 즐겁게 할 작품이 귀한 터에 안성맞춤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지훈)
 
봄 / 박 숙 희
 
네가 보낸 편지는 어여쁜 웃음이다.
매화나무, 벗나무, 살구나무들이
저렇게 팝콘처럼 웃고 있으니.
 
 
네가 보낸 편지는 기쁜 축전이다.
솜방망이, 민들레, 냉이, 제비꽃
모두모두 일어서서 환호하는 것 좀 봐.
 
 
네가 보낸 편지는 즐거운 노래다.
얼어붙은 산골물 쫄쫄 쪼르르
비이비이 로리로리로 노래하는 새들.
 
 
어디어디, 나도 좀 보아 발뒤꿈치 들고
새싹들이 일제히 발돋음한다.
산도 들도 부시시 일어나 앉고,
 
 
네가 보낸 편지는 아름다운 시다.
기쁨으로 노래로 온 세상에 그득한 시
읽어도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 시다.
 
생일 선물 ./ 박 종 해
 
아빠가 주신 생일 선물은 동화책
임금님, 왕자님에 신기한 요술 나라
내 마음은 부풀어 하늘 문 열고
파아란 꿈밭으로 달려갑니다.
 
 
엄마가 주신 생일 선물은 크레파스
가고픈 바다 궁전, 무지개 일곱 나라
내 마음은 아롱다롱 오색 빛깔로
새벽 풀잎 이슬처럼 맺혀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동화책을 펴면 동물 나라, 귀신 나라, 하늘 나라, 바다 나라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동화책 표지는 온갖 신기한 나라로 들어가는 대문인 셈입니다.
크레파스로 쓱쓱 그리면 고운 놀과 울창한 숲, 바다 궁전, 달나라 풍경, 무엇이나 만들어 보일 수 있습니다.
생일 선물로 받은 동화책과 크레파스는 참으로 귀한 꿈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종상)
 
좋겠다 / 서 정 숙 
 
꽃잎은 좋겠다
방울방울 이슬이
닦어 주니까.
 
나무는 좋겠다
주룩주룩 소나기가
씻어 주니까.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우리는 아침마다 세수를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목욕을 합니다. 그것이 싫어서 세수를 하지 않고 학교에 오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데 꽃잎은 아침마다 밤이슬이 내려 세수를 시켜주고, 나무는 가만히 서 있어도 때때로 소낙비가 와서 목욕을 시켜 주니까 좋겠다고 했습니다.
꽃과 나무를 나와 똑같은 자리에 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종상)
 
섬은 / 선 용
 
파란 들판에
홀로 핀
한 송이 꽃


 
 
파도 소리
그리운
작은 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은, 파란 들판에 핀 한 송이 꽃이라 할 만하지요.
하지만 섬은 아름다움을 갖는 대신 스스로 외로운 단독자로 남아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섬은 늘 파도에 실려오는 물 소식이 그리워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지 모르지요.
섬이 갖는 아름다움과 고독을 선용(1942~) 시인은 꽃과 귀로 의미있게 표현해 냈지요. (김용희)
맞아, 맞아, 맞아. 이 시를 읽으면 이 말이 절로 나와요.
넓은 바다는 파란 물결 들판 같고, 섬은 그 들판에 핀 한 송이 꽃 같아요. 참 아름다운 상상이지요.
그러나 섬은 외로워요. 그래서 늘 파도에 실려 오는 뭍(육지) 소식이 그리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요. 섬은 꽃이고 귀예요.
섬은 시인에 의해 꽃과 귀로 새롭게 탄생한 거지요. (박두순)
 
비 내리는 사이에 / 설 용 수
 
바람이
그네 줄을 흔들며
"튼튼하구나."
 
 
빗물이
미끄럼을 타며
"잘 미끄러지는걸."
 
 
참새 두 마리
시소에 올라서
"중심도 잘 맞아."
 
 
바람이
빗물이
비 맞은 참새가
 
 
놀이터 안전을
점검하고 있다.
 
 
비 내리는
그 사이에,
 
산골 사는 옥이 / 김 동 산
 
산골에 사는 옥이는
계곡물처럼
졸졸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산새처럼
재재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산꽃처럼
방실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잎새에 비치는
햇빛처럼
반짝거리며 산다.
 
 
산골에 사는 옥이는
그대로
순진한 자연이다.
 
(2001년 11월 『월간문학』 제95회 신인상 당선작
 
빈 집 / 유 정 숙
 
산 아래 빈 집
마당에 뒹구는 개밥그릇에
푸른푸른 풀씨가 싹을 틔웠다.
 
 
흙먼지 뒤집어 쓴 운동화 짝에
들레들레 민들레가 피어났다.
 
 
주인 없는 빈 집에
바람이 제 맘대로 꽃꽂이했다.
 
(2005년 봄『한국동시문학』9호)
 
이 작품을 대하면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이 가슴에 그려진다.
사람들이 일부러 가꾼 꽃보다 저절로 피어나는 자연의 꽃이 자연스러워 더욱 정감이 간다.
개밥그릇에 싹을 틔운 것도 예쁘고 운동화 짝에 민들레가 핀 모습도 귀엽다.
자연은 사람의 손길만 멀리 있어도 빼어난 그림을 연출한다.
이 시는 끝 연의 뛰어남이 시 전체를 살려주었다.(남진원)
 
가을 바람 / 윤 이 현
 
가을 바람은
하얀 손수건
기차의 꼬리가 달달달
산모롱이 휘돌아 갈 때
언덕 위엔 억새풀 날리고 있었지.
 
 
가을 바람은
가녀린 웃음
고추잠자리 맴을 돌다
저녁노을 속으로 멀어져 갈 때
길섶엔 코스모스 파르르 피어 있었지.
 
 
가을 바람은
휑한 가슴
허수아비 엉거주춤
빈 손으로 들녘에 서 있을 때
먼 곳엔 하늘이 솔솔솔 높아 있었지.
 
 
'가을 바람'을 3연으로 나누어 같은 형식으로 나타내었습니다. 그러기에 동요에 가까운 동시로 볼 수 있습니다.
표현에 있어선 은유법이 두드러지는데 '가을 바람은 하얀 손수건' '가을 바람은 가녀린 웃음' '가을 바람은 휑한 가슴'이 바로 그것입니다.
더 깊이 파고 들면 '하얀 손수건'은 ''언덕 위의 억새풀'을 '가녀린 웃음'은 '먼 곳의 하늘'을 노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섬세한 감각이 돋보이며, '기차' '산모롱이' '고추잠자리' '저녁노을' '허수아비' '들녘' 등의 단어가 가을의 정경과 정취를 한층 더 돋구어 주고 있습니다. (허동인)
 
망망망 / 이 상 교
 
작은 두 귀가
망망망
 
 
작은 발 네 개가
망망망
 
 
작은 엉덩이가
망망망
 
 
작은 꼬랑지가
망망망
 
 
우리 강아지가
맨 처음 짖은 날.
 
 
낯선 이가 찾아오면 맨 먼저 짖으며 경계하는 일이 개의 몫이지요.
그런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짖어도 위협적이긴커녕 귀엽게만 들립니다.
태어나 처음 짖는 강아지의 외침이 우리 집 아이의 옹알이 소리 같기도 하고, 이웃집 아이가 부르는 동요 같기도 하지요.
이상교(1949~) 시인이 '망망망' 하는 소리에다 어린 강아지의 앙증맞은 움직임을 모두 담았으니, '소리'와 '모양'의 절묘한 어울림이라 할 만합니다. (박덕규)
망망망. 강아지가 맨 처음 짖었어요. 두 귀를 흔들며 망망망. 네 발을 흔들며 망망망. 엉덩이를 흔들며 망망망. 꼬랑지(꼬리)를 흔들며 망망망. 짖는 소리도 귀엽게 망망망. 짖는 모습도 귀엽게 망망망.
시인은 '작은'이라는 말을 네 번이나 썼어요. '귀엽다'라는 말을 대신하기 위해서이지요.
작은 것은 다 귀여워요. 작은 송아지, 작은 개미, 작은 물고기, 작은 아기, 다 귀엽지요. (박두순)
 
목련 / 이 석 장
 
보여줄까 말까
보여줄까 말까
겨우내 써 모아 둔
가슴 시리던 사연
꼬깃꼬깃 접은 하얀 쪽지
 
 
봄햇살이 하도 보채어
화알짝 펴 들었다.
 
 
웃을까 말까
웃을까 말까
겨우내 오들오들
눈물겹게 견디며
앙 다물었던 입술
 
 
봄바람에 하도 간지러워
화알짝 웃었다.
 
동요에 가까운 시입니다.
두 가지로 나누어 노래했는데 하나는 목련을 '하얀 쪽지'로, 다른 하나는 '다물었던 입술'로 보았습니다.
봄날 목련꽃이 피어 날 때의 모습을 시로써 그려보았습니다. (허동인)
 
우산과 양산 / 이 인 화
 
비 오는 날
우산은
작은 지붕이야.
 
 
비를 대신 맞아주는
참 착한
지붕이야.
 
 
해 밝은 날
양산은
활짝 핀 해바라기야.
 
 
해님 향해 웃는
참 예쁜
해바라기야.
 
보름달 / 이 종 문
 
밤마다 밤마다
잠도 못 잤는데
어쩌면 포동포동
살이 쪘을까?
 
 
날마다 날마다
햇볕도 못 쬐었는데
어쩌면 토실토실
여물었을까?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보름달이 떴습니다. 둥글고 환하게 밝은 저 보름달! 지은이는 그 보름달을 포동포동 살이 찐 어린이의 복스러운 얼굴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어요. 그러자 순간, 밤에 떠서 세상을 밝게 비추느라 잠도 못 잤을 텐데 어쩌면 저렇게 살이 쪘을까?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또 한번 쳐다보았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 어느 잘 익은 열매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문득, 열매는 햇볕을 쬐어야 잘 익는데, 밤에만 떠서 햇볕도 쬐지 못하면서 어쩌면 저렇게 잘 여물었을까?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와 같이, 시는 곧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김한룡)
시가 단조로울 때는 강조하고 변화를 주어라
이 동시는 글의 짜임이 같다. 짜임은 같은데 말만 바꾸어놓았다.
옛날 한시에서는 반드시 대구법을 썼다고 한다. 우리 동요에서도 대구법을 많이 썼다.
대구법은 음악성을 살리고자 할 때 사용하는 게 좋다.
시가 단조로워질 때는 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변화를 주는 수사법으로는 도치법, 설의법, 문답법 등이 있다. (이준관)
 
들꽃 이름 / 이 지 은
 
 
"이름이 왜 애기똥풀이니?"
"줄기를 자르면 노오란 즙이 나와."
 
 
"이름이 왜 끈끈이대나물이야?"
"줄기를 만져보면 끈적거려."
 
 
"이름이 왜 씀바귀야?"
"뿌리도 잎도 아주 쓰거든."
 
꽃씨/ 이 태 선
 
까만 꽃씨에서
파란 싹이 나오고.
 
 
파란 싹이 자라
빨간 꽃 되고.
 
 
빨간 꽃 속에서
까만 씨가 나오고.
 
참으로 간결한 동시입니다.
낱말이 모두 17 개요, 글자 수가 모두 37 자입니다.
이만한 말로써도 꽃시를 나타낼 수 있다는 건 문학(시)의 자랑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색깔이 있는 말들을 골라 쓴 것을 주의깊게 보아야겠습니다.
까만 꽃씨를 땅에 묻었더니 파란 싹이 나온다는 신기함을 어린이의 느낌으로 그린 것인데 까망과 파랑이 대조가 이뤄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 파란 싹이 나와 자라더니 빨간 꽃이 핀다고 한 데서는 파랑과 빨강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빨간 곷 속에서는 까만 씨가 나온다고 해서 빨강과 까망의 색깔 대조가 아주 효과적입니다.
색깔을 대조시키는 거기, 화안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한국아동문학인협회)
 
개미 / 이 환 채
 
고 작은
이마
뻘뻘
 
 
고 작은

반짝반짝
 
 
고 작은
다리
영차영차
 
 
고 작은
머리
지혜가 가득
 
 
(2006년 11월『어린이동산』)
 
초가집 낙숫물 / 이 희 철 
 
사르륵
사알짝
물방울 아기들
 
 
초가집
지붕 위에 모여 와서
미끄럼 탄다.
 
 
퍼르륵
퍼얼쩍
물방울 아기들
 
 
초가집
추녀 끝에 모여 서서
뜀질을 한다.
 
 
투루룩
루욱룩
물방울 아기들
 
 
초가집
댓돌 밑에 모여 앉아
옹달샘 판다.
 
1연 3행 6연으로 이루어진 동시이다.
자연 현상을 통해 천진한 동심을 묘사했다. 동심을 통해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을 통해 다시 동심으로 되비치는 밝은 정신이 들어 있다.
문체는 생략법에다가 '사르륵 사알짝', '퍼르륵 퍼얼쩍', '투루룩 루욱룩' 등의 의성어로 음악적 리듬을 가미하여 돋보이도록 했다. 시간의 순서와 공간의 질서로 구성되었으며 '옹달샘 판다'로 마무리하여 물방울이 돌 뚫는다는 것을 연상 쉬지 않고 나아감을 시사했다.
소박한 동심을 관조하여 어린이 모습을 순수세계(자연현상)로 환치시켰다. 의인법으로 하여금 '물방울'하면 '어린이', '어린이'하면 곧 '물방울'로 그 작은 것과 맑고 깨끗한 것과 또 밝은 곳으로 자라남을 연상시킬 수 있어 좋다.
이 시는 지은이의 나이 44세 때 작품으로 1978년 '세광동요 350곡집'에 박창옥 작곡으로 실려 있다. (공주대 국어과 교수 노종두)
 
비둘기 / 전 병 호
 
글자를 배우고 나서 들어보면
구구구구구
 
 
숫자를 배우고 나서 들어보면
99999
 
술래잡기 / 전 원 범
 
해와 달이 술래잡기를 한다.
빙빙 돌면서 술래잡기를 한다.
한 바퀴 돌 때마다
하루가 가고
 
 
시침과 분침이
술래잡기를 한다.
두 바퀴 돌 때마다
하루가 가고
시간이 가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술래잡기를 한다.
한 바퀴 돌 때마다
한 해가 간다.
 
해와 달, 시계의 분침과 시침,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도는 것이 마치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아 시로 옮겨 보았습니다. (전원범)
구리구리구리 / 손 동 연
구리는 구린데
논에서 나는
구리는?
개구리
 
 
구리는 구린데
나무에서 나는
구리는?
딱다구리
 
 
구리는 구린데
굴에서 나는
구리는?
너구리
 
 
구리는 구린데
길에서 나는
구리는?
쇠똥구리 말똥구리
 
 
이 문제를 못 풀면
너는너는
무슨 구리?
멍텅구리
 
(아동문예 2001-5)
 
태풍 / 정 춘 자
 
―얘들아! 먹구름 봐
태풍이 온다
사과나무는 사과알 꼭 붙잡는다.
 
 
―얘들아! 떨어지면 큰일이야
감나무는 풋감을
꼭꼭 붙잡는다.
 
 
―얘들아!
엄마를 꼭꼭 붙잡아라.
대추나무가 소리친다.
 
의인화한 시로서 흔하지 않은 작품이다.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식을 보호해 주는 부모의 마음을 나타냈다.
대체로 잘 짜여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최춘해)
 
봄비 내리는 소리 / 정 하 나
 
산으로 갈까?
들로 갈까?
소곤소곤
 
 
꽃을 먼저 피울까?
잎을 먼저 피울까?
소곤소곤
 
 
소곤소곤
소곤소곤
아직도 결정 못 했나?
종일토록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봄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 저들끼리 속삭이는 얘기소리가 들려 오지요. 산으로 갈까? 들로 갈까? 꽃을 먼저 피울까? 잎을 먼저 피울까?
보통 사람의 귀에는 들려오지 않는 말도 시인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려 오지요.
 
고 작은 것 / 제 해 만
 
고 작은 것
제비꽃이 피지 않으면
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매미가 울지 않으면
여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고추잠자리가 날지 않으면
가을이 아니다.
 
 
고 작은 것
눈가루가 내리지 않으면
겨울이 아니다.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들이 모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들고
 
 
고 작은 것
고 작은 것들이 모여
우주를 만든다.
 
사람들은 대개 큰 것을 좋아하고 큰 것에 눈길을 더 준다. 작은 것은 시시하고 하찮게 생각한다. 가벼히 여긴다.
그런데 이 시를 읽어보면 그게 아니다. 작은 것이 우주를 이룬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시인의 눈은 이렇게 작은 데서 큰 것을 보고, 작은 것에 큰 뜻과 가치를 매긴다.
작은 제비꽃이 피어 봄이 온다. 작은 매미가 울어 여름이 된다. 고추잠자리는 가을을 부르고, 눈은 겨울을 뒤덮는다.
어찌 작은 것이 크지 아니한가. (박두순)
 
이른 아침 / 조 명 제
 
빨랫줄에
참새 두 마리
갓 익은 아침 햇살을
톡톡
쪼아대고 있다.
 
 
선잠 깬
노랑 병아리
 
 
쫑쫑대며
부스러기 햇살을
줍고 있다.
 
저녁 바닷가 / 조 명 제 
 
산등성 넘어
해님은
집으로 가고
 
 
칭얼대는 파도를
바람이 살랑살랑
잠재우고 있다.
 
 
갯벌엔
기일게
꽃게 발자국
 
 
어둠이
할금할금
뒤를 밟고 있다.
 
바닷가에 해가 지고 있다. 해님은 산등성이를 넘어 집으로 갔다. 잔잔한 저녁 바다의 파도 위로 바람이 지나간다.
'칭얼대는 파도를/ 바람이 살랑살랑/ 잠 재우고 있다'의 한 구절은 묘한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갯벌엔 꽃게 발자국이 길게 찍혀 있다. 어두움이 뒤를 밟아오고 있다.
이 밖의 많은 사실들은 생략해 버렸다. 그러면서 저녁 바다의 풍경을 그림처럼 떠오르게 했다.
같은 내용을 담은 시는 간결할수록 좋다고 한다. 꽃게 발자국을 점 찍듯 몇 개의 풍경을 들어, 저녁 바닷가를 노래한 이 시는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이재철, 신현득, 제해만, 노원호)
 
적당히에는 / 조 영 수
 
―아빠, 화분에 물 얼마나 줘?
―음, 적당히.
아빠의 적당히에는
꽃망울의 두근거림이 들어 있다.
 
 
―엄마, 밥물 얼마나 부으면 돼?
―음, 적당히.
엄마의 적당히에는
둥그렇게 둘러앉은 식구들 웃음 소리가 들어 있다.
 
 
달달달 외운
내 적당히에는
시험지 속에 껍데기로 납작 엎드려 있다.
꽃씨 / 최 계 락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간히 꽃도 피어서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떼가 숨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
 
이 작품은 꽃씨 한 알 속에 담겨 있는 신비로움을 노래한 시다.
지은이는 꽃씨 한 알을 보면서 그 꽃씨가 땅에 묻힌 뒤의 일을 상상해 보고 있다. 즉, 봄이 되면 흙 속에 묻힌 꽃씨는 파란 싹을 틔우고, 빨간 꽃을 피우고, 그러다 노란 나비까지 불러들이는 신비로움의 세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어떻게 이 조그만 꽃씨에서 싹이 돋아나고, 많은 꽃이 피게 되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지은이는 이런 신기함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꽃씨를 보면서 상상한 사실(꽃씨가 싹을 틔우기도 하고, 꽃을 피우기도 한 일)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처럼 재미있게 나타내었다.
만약 한 알의 꽃씨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면, 내 호주머니 속에서도 꽃이 피고 나비떼가 날아다니는 셈이 된다.
시인의 멋진 상상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재철, 신현득, 제해만, 노원호)
최계락(19301970)은 경상남도 진양 출생이다. 1947년 9월 <소학생>에 동시 '수양버들'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재철은 그의 동시를 평하여 종래의 요적 내재율을 완전 배제하고 순전한 내재율을 채택하고 있으며, 정적인 고요함으로 느낌보다는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이 작품이 현상학적인 표현보다는 보이지 않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서 보고, 이를 이전의 동시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새로운 표현 미학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 같은 그의 시 창작법은 순수 동시 추구를 위한 노력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곧 1960년대 본격 동시를 낳는 밑거름이 된 것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 '꽃씨'는 독자인 어린이에게 직관에 의해 파악되는 경이로운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랜 세월 애송되고 있다. (전병호)
컴퓨터 파일 같은 조그만 꽃씨. 누가 저장해 둔 걸까요? 어떤 손길이 그 파일을 열었을까요?
이른 봄 파일 속에서 잎과 꽃과 나비 떼가 깨어났어요. 조그만 꽃씨가 눈을 비비지요. 잎을 매달고, 꽃잎을 엮어, 나비 떼를 데리고 세상을 내다보고 있어요.
해마다 봄이 되면 깨어나는 자연의 신비. 그 신비 속은 걸어들어 갈수록 풀리지 않고 오히려 감기기만 하는 수수께끼 같아요. 아름다운 수수께끼. (박두순)
 
불과 여섯 줄. 글자로 따져도 50 자가 못 되는 이 작품 속에는 그러나 한없이 넓고 깊은 세계가 담겨져 있다. 그 작은 꽃씨 속에서 하늘거리는 파아란 잎, 피어있는 빠알간 꽃, 그리고 숨어있는 노오란 나비떼를 볼 수 있는 눈은 누구나 쉽게 갖는 것이 아니다. 시인들 중에서도 최계락쯤 되니까 그런 눈을 갖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꽃씨의 생성 변화를 통해 자연의 섭리, 우주의 신비를 파악하는 눈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눈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환히 꿰뚫어 보는 눈이다.
어린이는 직관을 통해 존재를 파악한다. 따라서 거기에는 일반적인 세계의 객관성, 논리성이 게재될 틈이 없다. 어린이에게는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엄연한 실재다. 그것은 고대인이 의식한 세계의 실재 속에 내재하는 원리와 닮은 점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시간과 공간 개념. 거리와 양에 대한 개념의 미분성 내지 원시성이다. (어느 신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임)
 
민들레 꽃씨 / 최 정 심
 
민들레가
솜사탕을 들고 소풍간다.
 
 
바람이 지나며
한 입 덥썩 베어먹고
 
 
벌 나비 날갯짓에
한 웅큼 묻혀 가고
 
 
빈 대궁만 남았어도
즐거운 소풍길.
 
의인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민들레씨가 여물어 흩어져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시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시이다.
1연과 2연을 보면 참신한 경이감이 표출되어 있어 독자들을 감동케 한다.(정만영)
 
산새 / 허 호 석
 
네 소리로
산이 자고 깬다.
 
 
네 소리로
나무 나무 끝끝
구름이 머물고
 
 
외딴 곳에
산딸기가 익어간다.
 
 
네 소리로
산마을이 자고 깬다.
 
 
네 소리로
빛깔 고운
산망개가 열리고
 
 
산빛 곱게
옹달샘이 맑아진다.
 
산새소리는 언제 어느 때 들어도 아름답고 즐겁습니다.
그 산새소리에 따라서 모든 것이 움직이며 돌아가는 듯합니다. 산도,구름도, 산딸기도, 산마을도, 산망개도, 옹달샘도….
산새도 자연의 일부이지요. 말은 없어도 질서있게 돌아가는 자연의 이치를 새삼 느끼고 깨닫게끔 합니다. (허동인)
 
가을 / 김 녹 촌
 
가을 하늘 한껏한껏
높푸르니,
 
 
고추도 한껏한껏
눈부시게 빨갛고
 
 
햇살이 한껏한껏
해맑으니,
 
 
벼도 한껏한껏
노랗게 깨끗하고
 
 
햇볕이 한껏한껏
따가우니
 
 
대추도 한껏한껏
토실토실하고…….
 
가을이면 고추가 빨갛게 물들고, 벼가 노랗게 익고, 대추가 토실토실 살찌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늘이 높푸르고, 햇살이 해맑고 햇볕이 따갑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자연이 어떤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종상)
 
가을 아이 / 강 윤 제
 
코스모스는
아이들 손 되어
바람을 흔들다가
 
 
코스모스는
아이들 얼굴로
바람을 웃다가
 
 
코스모스는
아이들 되어
바람을 보여준다.
 
 
가을 아이로
서 있는
코스모스.
 
전선줄 정거장 / 홍 은 순
 
전봇대의 전선줄은
정거장인지
오고 가는 참새들이
모여 앉아서
짹짹짹짹 지껄이고
헤진답니다.
 
 
전봇대의 전선줄은
정거장인지
강남 가는 제비들이
모여 앉아서
비비배배 의논하고
떠난답니다.
 
꽃잎 속에는 / 권 극 남 
 
찬찬히
찬찬히
꽃잎을 바라보렴.
 
 
빨간
빛덩이
해가 보이잖니?
 
 
벌,
나비,
바람도 보이네.
 
 
또 있잖니?
비를
뿌려
목 축여준
 
 
파란
하늘도
보이잖니?
 
시계 가게 / 이 상 교
 
"5시 5분이 맞아!"
부엉이 시계가
눈을 커다랗게 부릅뜬다.
 
 
"아냐, 11시 정각이야!"
기둥 시계가
뚝딱뚝딱
 
 
"7시라니까!"
뻐꾸기 시계도 지지 않는다.
 
 
시계마다 제가 가리킨 시각이
맞는다, 맞는다, 서로 우긴다.
 
 
뚝딱뚝딱, 투닥투닥
째깍째깍, 찰칵찰칵
 
 
우기는 목소리도 다 다르다.
 
 
감각적으로 표현하라
 
 
시계 가게의 제각각 시간이 다른 시계들을 재미있게 의인화한 이 시에서 '뚝딱뚝딱', '투닥투닥', '째깍째깍', '찰칵찰칵' 등이 청각적 이미지다.
후각적 이미지는 냄새를 표현하는 수사법으로서 예컨대 '산새알은 달콤하고 향깃한 풀꽃 냄새 이슬 냄새'에서 '풀꽃 냄새'와 '이슬 냄새'가 후각적 이미지다. (이준관)
 
봄 날 / 추필숙
 
푸우
푸우
비눗방울 날아간다.
 
아이들이 두 손으로 받아든다.
 
후우
후우
민들레 씨앗 날아간다.
 
흙이 두 손으로 받아든다.
 
웃음 / 엄 기 원
 
그건
꽃이다.
아름다운 빛깔의…….
 
 
그건
행복이다.
남도 듬뿍 나누어 주고 싶은…….
 
참 잘했지 / 엄 기 원
 
울 밑에 심심풀이로
꽃씨 몇 알 뿌려 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싹이트고
줄기가 자라
봉숭아꽃, 분꽃이
고맙다고 웃는다.
 
그 때
꽃씨 뿌리길 참 잘했지.
 
 
날마다 메꾸는 나의 일기
쓰면서 쓰면서
"에이, 일기는 뭣하러 쓴담?"
투덜댔는데,
 
 
먼 훗날
그 일기 읽어 보니
온갖 기억 되살아난다.
 
 
그 때
일기 쓰길 참 잘했지.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조그만 일도 큰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알의 꽃씨가 크게 자라 꽃을 피울 때나 조금씩 쓴 일기가 커다란 추억을 되살려 줄 때의 기쁨을 생각해 보셔요.
그런 것이 모두 작은 일이지만 결과는 참으로 커다랗게 자라서 우리를 기쁘게 해 줍니다. (김종상)
 
어울려 사는 세상 / 강 대 택
 
꽃밭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빨강, 보라, 노랑, 하양……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가지가지
저마다 제 모습으로 눈부시지만
제 자랑 앞세워
뽐내지 않기 때문이란다.
 
 
숲 속이 저렇게 평화로운 것은
새 소리, 물 소리, 바람 소리……
크고 작고, 높고 낮고, 길고 짧고
저마다 제 소리로 노래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줄서기 / 김 둘
 
화장실갈 사람은 줄을 서야지
오줌 급한 미루나무들이
주루룩―
언덕 위에 줄을 섭니다.
 
 
체조 할 사람은 줄을 맞춰요
운동 나온 미루나무가
샤샤샥―
옆팔 벌려 줄을 맞춰 섭니다.
 
 
사진 찍을 사람은 모두 나와요
머리 빗고 몸단장한 미루나무들이
콧노래 부르며 줄을 섭니다.
하나, 두울, 세엣, 찰칵!
 
(제149회 아동문예문학상 당선작)
가을 들판 / 김마리아
벼 익는
냄새에
메뚜기 코가 발름발름.
 
 
수수 익는
색깔에
참새 눈이 반들반들.
 
 
'아, 먹고 싶다.' 가을 들판에서 메뚜기와 참새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좋아하는 벼와 수수가 익어가고 있으니까요.
벼 익는 냄새에 메뚜기 코는 발름거리고, 수수 익는 색깔에 참새 눈은 반들거리겠지요.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야 우리도 좋아하는 음식을 보거나 냄새 맡으면 자꾸 코가 벌름거리고, 눈길이 가는 걸 경험했으니까 알지요.
시인의 코와 눈은 예민하고 밝아야 한답니다. (박두순)
 
괄호 안에 말 / 김마리아
 
"잘못한 것도 없는데"
친구에게
따지고 싶은 말
괄호 안에 꼭꼭 묶어 둬야지.
 
 
"미진이는 옷이 더러워"
짝에게 귓속말하고 싶을 때
괄호 안에 꽁꽁 묶어 둬야지.
 
 
"엄마, 형아가 군것질했어요"
고자질하고 싶은 말
괄호 안에 꽉꽉 묶어 둬야지.
 
밖으로 못 나가게.
 
숲 속/ 김 숙 분
 
숲 속은
미로
 
 
향기가 들어섰다
나오지 못하고
여기서 솔솔
저기서 솔솔.
 
 
새들이 들어섰다
나오지 못하고
여기서 짹짹
저기서 짹짹.
 
봄 길 / 김 영 민
 
햇살이 놀고 있는데
 
 
<나도>
<나도>
<나도>
민들레가 끼어들었다.
 
 
<나도>
<나도>
<나도>
개나리가 끼어들었다.
 
 
<나도>
<나도>
<나도>
벌, 나비도 끼어들었다.
 
 
어서 와
어서 와
 
(2008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단순 명쾌하고 동심(童心) 잘 깃들어 있어
 
동시는 '동심 읽기'를 잘 해서 써야 한다. 좋은 시적 표현에다 동심이라는 옷을 잘 입혀야 한다. 그래서 동시는 특수한 문학 장르이다. 그 때문에 동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아무나 쓰는 글이 아니다. 무르익은 시 쓰기 능력을 가져야 좋은 동시를 빚을 수 있다.
동심이란 무엇인가?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인간 원형질적인 마음이다. 어른보다 어린이에게 그런 심성이 제대로 살아 있다. 그런 심성은 단순함에서 온다. 어린이는 단순하다. 단순한 것은 명쾌해 보인다. 따라서 동시는 단순명쾌한 것이 특징이다. 동시가 단순명쾌하려면, 시적 스토리와 주제의 분명함에다 압축 절제돼 있어야 하고, 동심이 깃들어야 한다.
이런 요쇼에 가장 근접해 있는 김영민의 작품 4편 중 '봄길'을 당선작으로 올린다. 시어 하나만 빼 버려도 시가 와르르 무너질 정도로 압축 절제돼 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봄 들길에 민들레 개나리꽃이 피고, 벌 나비가 날아오는 광경이 산뜻하게 그려져 있다. 잘 어울리며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모습이다.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감각적인 시가 이런 의미에 둘러싸여 오히려 빛난다. '나도' '끼어들었다' '어서 와' 같은 시어로 동심 읽기에도 소홀함이 없다. 이게 이 시인의 역량이다. 정진해, 동시문학의 탑쌓기에 돌 하나 얹기를 바란다. (박두순의 심사평)
 
짝 / 손동연
 
"엄마"의 반대말은
"아빠"래요.
아네요, 아냐.
엄만 아빠의
참 좋은 짝인걸요.
 
 
"남"의 반대말은
"북"이래요.
아네요, 아냐.
북은 남의
참 좋은 짝인걸요.
 
 
"하늘"의 반대말은
"땅"이래요.
아네요, 아냐.
땅은 하늘의
참 좋은 짝인걸요.
 
 
우리 가족
우리 나라
우리 별 지구...
자꾸자꾸 불어나는
참 좋은 짝인걸요.
 
 
생각해 봤니? / 김 종 상
 
네가 따뜻한 옷을 입을 때
떨고 있는 동무를 생각해 봤니?
 
 
네가 맛있는 걸 먹을 때
굶주리는 이웃을 생각해 봤니?
 
 
네가 즐겁고 행복할 때
괴롭고 슬픈 사람들을 생각해 봤니?
 
 
네가 차지한 햇볕의 넓이만큼
그늘도 짙다는 걸 생각해 봤니?
 
숲에 가면 / 김 종 상
 
나뭇잎이 살랑살랑
손짓하며 반깁니다.
 
 
들꽃들이 생글생글
음음으로 맞습니다.
 
 
도깨비바늘이 우르르
옷깃에 매달립니다.
 
 
숲에 가면 모두가
그렇게 반겨 줍니다.
 
속이 차면 / 김 종 상
 
빈 양동이는 요란하지만
속을 채우면 소리가 없지.
 
 
얕은 냇물은 시끄럽지만
깊은 강물은 잠잠하단다.
 
 
잔가지는 바람에 흔들려도
굵은 둥치는 꿈쩍도 안 하지.
 
 
생각이 넓고 깊은 사람은
늘 신중하고 조용하단다.
 
(2004년 여름『시와 동화』제28호)
 
이른 봄 / 김 종 상
 
꽃들도
이른 봄 꽃들은
배시시 수줍게 웃는
귀여운 아기 웃음 꽃.
 
 
나비도
이른 봄 나비는
연약한 두 날개 다칠라
귀여운 아기 날개짓
 
 
아기도
이른 봄 아기는
종종종 잔걸음으로
귀여운 아기 나들이.
 
 
봄의 모습 중에서 이른 봄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동시에서는 이른 봄의 모습을 세 가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연에서는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의 모습입니다.
그 수줍은 느낌 때문에 귀여운 아기 웃음 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연에서는 이른 봄 나비의 모습입니다.
아직 찬 기운이 다 가시지 않았기에 나비의 날개는 더욱 가냘퍼 보이기만 합니다. 이런 모양을 귀여운 아기 날개짓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연에서는 이른 봄 아기의 모습입니다.
무엇보다도 수줍고 가냘픈 느낌을 주는 봄 아기는 종종종 잔걸음으로 걸어갑니다. 그런 걸음으로 나들이를 나가는 아기의 귀여운 모습을 그려 보셔요.
첫째 연에서는 식물, 둘째 연에서는 동물, 셋째 연은 사람을 순서대로 들어 이른 봄의 정취를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소재는 '이른 봄의 꽃과 나비와 아기'이고 주제는 '이른 봄의 꽃과 나비와 아기의 모습은 귀엽기만 하다'입니다. (김종상의 '나는 시를 이렇게 썼다'에서)
 
산에서 / 김 종 상
 
산을 오르다 보니
골짝물이
꽃잎을 싣고 간다.
 
 
"어디로 가니?"
산기슭의 진달래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을 오르다 보니
칡덩굴이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나무에 오르고 싶니?"
멧새들이 재재재재
떠들다가 날아갔다.
 
 
산기슭의 진달래와 골짝물의 꽃잎, 멧새들과 칡덩굴, 그들 사이에 오고가는 정겨움을 생각하면 여기가 별천지인가 싶습니다.
'어디로 가니?' '나무에 오르고 싶니?' 사실 이러한 표현들은 자연과 친하고 싶은 지은이의 솔직한 심정을 진달래와 멧새들에게 옮겨 본 것이라 봐야겠죠.
동요적인 동시, 아니면 동시적인 동요라고 보겠습니다. (허동인)
 
둥근 것 / 박 두 순
 
 
둥근 것은
곱다.
이슬 눈빛이 곱고
빗방울 속삭임이 곱다.
 
 
둥근 것은
향기롭다.
모난 과일이 어디 있나
맛이 향가롭다.
 
 
둥근 것은
소중하다.
땅덩이도, 해도 별도 달도 둥글다.
씨앗도 둥글다
잎과 꽃과 뿌리까지 품으려니.
 
 
사랑스런 널 보는 눈이 둥글다.
네가 나를 용서할 때의
웃음도 둥글었다.
 
할머니집에 가면 / 박 두 순  
 
 
할머니
화안한 웃음이
먼저 마중나옵니다.
 
 
가끔
그렁그렁한 눈물도
마중나옵니다.
 
 
강아지 꼬리도
살랑살랑
마중나옵니다.
 
내가 부르면 / 하 인 혜
 
"아빠."
하고 부르면
아빠는 책장을 넘기며
안경 너머로
"무슨 일이야?"
물어봅니다.
 
 
"엄마."
하고 부르면
엄마는 등 돌리고 서서
그릇을 닦으며
"왜 그러니?"
대답합니다.
 
 
"할머니."
하고 부르면
할머니는 하시던 일 멈추고
두 팔 벌려
"오…오…냐!"
안아줍니다.
 
가을 해 / 한 인 현
 
배추밭을 다 못 맨
마나님은
한 발 남은 해님을
바라보고서
"아이 참 가을 해는
짧기도 하이."
 
 
온종일 새를 몰던
영감님은
한 뼘 남은 해님을
바라보고서
"아이 참 가을 해는
길기도 하이."
 
 
사람들은 어떤 사물을 두고 사람에 따라서, 아니 그 마음가짐에 따라서 보고 느끼는 것들이 다른 법입니다.
그 마음가짐(상태)이 중요한 것은 다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일생과 운명까지도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마음가짐을 착하고 즐겁게 지니면서 오늘을 참고, 내일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가을 날, 배추밭의 김을 마저 다 매지 못한 마나님은 한 발자국쯤 남은 해님을 바라보면서 "아이 참, 가을 해는 짧기도 해."하는가 하면, 온종일 벼논에서 새를 쫓던 영감님은 한 뼘쯤 남은 가을 해를 바라보며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서 "아이 참, 가을 해는 길기도 해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다른 의견인가요? 그리고 얼마나 재미가 있는 비교인가요?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은 / 한 혜 영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이 어쩌면
바람일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몸이 가벼워
하루 종일 팔랑팔랑 지치지도 않는 거지.
 
 
아냐 아냐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은
어쩌면 공주일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옷이 예뻐서
꽃밭에 꽃들이 하루 종일 불러 주지.
 
 
아니 아니
나비의 또 다른 이름이
어쩌면 그냥 꽃일 거야.
그러니까 꽃잎 속에 꼭꼭 숨어 있으면
꽃인지 나비인지 나는 통 알 수가 없지.
 
이름을 불러 주세요 / 허 명 희
 
이름을 불러 주세요.
꽃에게 이름을 불러 주세요.
민들레야 원추리야 명아주야
거 봐요,
눈망울이 헐씬 빛나잖아요.
 
 
나무에게도 이름을 불러 주세요.
소나무야 자귀나무야 상수리나무야
보세요,
키가 훨씬 더 커 보이잖아요.
 
 
이름을 불러 주세요.
―선영아, 하고
 
 
그 소리 들으면
마음 빈 자리에서
파랑새 한 마리
지저귈 거예요.
 
 
우리는 정다운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나직한 목소리로 불러요. 그러면 왠지 더 따스하게 느껴지지요.
꽃도 나무도 그래요. "민들레야, 소나무야." 하고 불러 주면 눈망울 빛나고, 키가 훨씬 더 커 보여요.
친구 이름도 다정하게 불러주면 마음 빈 자리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지저귀지요. 마음을 푸르게 해 주는 파랑새가 가슴에 날아다니게 친구 이름을 불러 보세요. "선영아―." 하고.
김춘수 시인도 '꽃'이란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하고 노래했어요.
서로에게 꽃이 되는 아름다운 이름을 불러 주세요. (박두순)
 
참 좋은 짝이야 / 허 명 희
 
젓가락과 숟가락
왼발과 오른발
물병과 뚜껑
나무와 새
놀이터와 아이들
아빠와 엄마
너와 나
……….
 
 
참 좋은 짝이야.
 
친구가 되기 위해서 / 허 명 희
 
도토리는 딱딱한 껍질을 벗어야
말랑말랑한 맛나는 묵이 되는 거야
 
 
도토리도 가시 옷을 벗어야
겨울 군밤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데워 놓는 거야
 
 
호두를 봐
딱딱한 껍질 속에 오글오글
모여앉은 고소한 속살
 
 
너랑 나랑 친구가 되기 위해서도
이런 껍질을 벗어야 돼
그래야 따뜻한 마음이 나와
손을 잡게 되지.
 
작은 것 / 황 베드로
웅덩이가 작아도
흙 가라앉히면
 
 
하늘 살고
구름 살고
별이 살고.
 
 
마당이 좁아도
나무 키워 놓으면
 
 
새가 오고
매미 오고
바람이 오고.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
 
맑은 물웅덩이를 들여다보셔요.
조그만 웅덩이에 하늘이 비치고, 구름이 떠가고 별이 빛납니다. 작은 웅덩이에 모두 다 들어 있습니다.
좁다란 마당을 생각해 보셔요.
새가 날아다니고, 매미가 와서 울고 바람이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좁은 마당에 참 많은 것이 와서 살아갑니다.
웅덩이와 마당은 조그마해도 참 크고 넓습니다. (김종상)
 
산 / 차 보 현
 
산은,
높푸른 하늘 아래 의젓이 서서 생각하며 산다.
논갈이나 밭갈이를 마친 소처럼,
초록 풀밭에서 새김질하는 황소처럼,
산은 한 가지 한 가지 차분히 생각하며 산다.
 
 
산은,
아침해를 기린다.
동해에서 덩실 솟아오르는 둥근 해를 반긴다.
들판이나 들판을 적시는 강물이 안개의 잠 속에 잠겨 있을 때,
산은 남 먼저 아침해를 맞이한다.
 
봄 / 최 만 조
 
밖에서 누가 부르는 것 같아서
창문을 활짝 열고 내다보았다.
 
 
봄바람이
사알사알
 
 
꽃밭에서 속삭이는
봄 노래를 듣고 있었다.
 
 
밖에서 누가 찾는 것 같아서
씨앗 심은 꽃밭에 나가보았다.
 
 
아지랑이
아롱아롱
 
 
담장 밑에서 혼자
꽃망울 어루만지고 있었다.
 
축하해 / 유 미 희
 
―어린이날
 
―축하해
산이 일어서고,
 
 
―축하해
새들이
노래를 선물한다.
 
 
―축하해
시냇물이
도란도란 속삭이고,
 
 
―축하해!
꽃들은
펑펑 폭죽을 터뜨린다.
 
할아버지의 과일 / 오순택
 
 
 
시골할아버지가 보내준
과일 속엔
해가 들어있어요
 
 
 
뜨거운 여름 햇볕 받아먹고
빠알가니 익었으니까요
 
시골할아버지가 보내준
과일 속엔
물소리도 들어있어요
 
뭉게구름 지나가다
과일 밭에 들러
비 뿌려주고 갔으니까요
 
시골할아버지 보내준
과일 속엔
새소리도 들어있지요
 
온음표 물고 날아가던 새
과일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하다 갔거든
 
책벌레 공부벌래 일벌레 / 이묘신
 
꿈틀꿈틀 애벌레 보면
징그럽다던 엄마
바퀴벌레는
더 싫어하는 엄마
 
 
ㅡ어마나, 책벌레 우리 아들!
ㅡ어이구, 공부벌래 우리 딸!
ㅡ에휴, 일벌레 우리 남편!
 
 
오늘은 우리를
벌레로 만들어놓고
웃음 짓는다.
 
그만큼 / 유 미 희
 
나무에서
멀어진
톱,
 
 
 
흙에서
멀어진
호미,
 
 
풀에서
멀어진
낫.
 
 

그만큼
녹이 슬었다.
 
(2005년 10월『아동문예』)
 
언어 절약이 두드러져 보이는 작품이다.
극도로 절제된 발언이지만, 할말은 다 하고 있다.
매우 메시지가 강하게 전해온다. 그렇다고 강압적이진 않다.
톱과 호미, 낫 등 사물의 역할을 통해 그것을 구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읽힌다.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만큼' 녹슬게 된다는 의미다.
녹슨다는 것은 자기를 잃는 것과 같다.
제 할 일을 게을리하면 자아 상실을 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박두순)
배를 깎으면서 / 최 장 길
엄마는
배를 깎으면서
 
좁은
오솔길을 만든다.
 
시원한 바람이


 
 
배꽃 향기도


 
 
배나무 그늘에
매미 울음이 맴맴
 
 
박하처럼 시원하게
가슴 적신다.
 
 
배가 깎이는 껍질을 오솔길로 그렸습니다.
배가 깎이며 배 속에 있던 시원함과 향기 그리고 여름내 울어대던 매미소리가 있어 가슴을 시원하게 적신다고 했네요. (김원석)
 
동시 나라 / 기 영 순  
 
 
햇살 같은 웃음이
부서지는 나라.
이슬 같은 마음들이
뒹굴며 노는 나라.
 
 
풍선 같은 꿈이
둥실 떠 있는 나라.
참새 떼 같은 이야기들이
도란도란 숨쉬는 나라.
 
+ 별이 나에게 / (전영관·아동문학가)

작은 섬
하나 있기에
파도는 흰 물결을 만들고

작은 꽃
하나 있기에
나비는 아픈 날개를 쉬고

네가
거기 있기에
나 오래오래 반짝이리.

+ 어깨동무하기 / (신새별·아동문학가, 1969-)

어깨동무하고 몰려다니는
구름들.

어깨동무하고 뻗어 있는
산들.

어깨동무하고 누워 있는
밭이랑들.

강물도, 파도도
파란 어깨동무.

어깨동무하기  
사람들만 힘든가 보다.


+ 모두 함께 / (김위향·아동문학가)

풀밭에는 철쭉, 장미, 목련만 있는 게 아니야.
씀바귀, 민들레도 피고
애기똥풀도 노란 얼굴을 쏘옥 내밀고.

풀밭에는 나비, 벌만 놀러 오는 게 아니야.
바람이 살그머니 지나가고
개미들도 소풍 나오고
하루살이 빙글빙글 춤을 추고.

우리 동네에는
우리 집만 있는 게 아니야.
석이네, 봄이네, 희연이네,
세탁소, 미장원, 문구점, 방앗간,
자전거 수리점도 있고.

우리 동네에는
사람 사는 집만 있는 게 아니야.
까치 집, 개미 집, 다람쥐 집.
새들이 쫑알쫑알, 고양이가 살금살금
모두 모여서 함께 사는 거야.


+ 끼리끼리 모이면 /  (이혜영·아동문학가)

혼자는 싫어
떼 지은 참새.
"짹 짹 짹"
끼리끼리 모이면
이야기가 생겨요.

방울 방울 물방울
개울 되어 흐르며
"졸 졸 졸"
끼리끼리 모이면
노래가 생겨요.

햇볕 드는 담벼락
아이들 모여 앉아
"재잘 재잘 재잘"
끼리끼리 모이면
웃음이 생겨요.


+ 보기 좋아서 / (이준관·아동문학가, 1949-)

우리들은
옥수수가 자라는 들길에서
잡았던 잠자리를
날려보냅니다.

잠자리가 획획획 날면
획획획 높이 커 가는 옥수숫대
보기 좋아서.

우리들은
벼가 자라는 논둑길에서
잡았던 개구리를
놓아줍니다.

개구리가 파알딱 뛰면
파알딱 개구리 따라 커 가는 벼들이
보기 좋아서.


9월 / (윤이현·아동문학가)

풋사과
새콤한 맛에
으스스 땀이 가시면

지붕 위에
빠알간 고추
가을이 물들어 오고

「오도독」
알밤톨 고소함에
가을이 영글어 들면

홍시감
뽀오얀 얼굴
가을은 또 익어가고

파아란
저 하늘은
마아냥 높아만 가네.

+ 엄마 손끝에서 / (김재용·아동문학가, 전남 목포 출생)

엄마 손끝에서
봄꽃이 피어난다
할미꽃
바람꽃

엄마 손끝에서
푸성귀도 잘도 큰다
상치, 쑥갓
부추, 시금치

엄마 손끝에서

누가 쏘옥쏘옥 자라지?



이 땅의 어린이들


+ 슬픈 어느 날 /  (박지현·아동문학가)

울음을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별님이 
먼저 알고
눈물이 글썽.

슬픔을 잊으려고
애를 썼지만

달님이 
먼저 알고
수심이 가득.



+ 아름다운 만남 / (곽홍란·아동문학가, 경북 고령 출생)

애들아!
지구를 살아 있게 하는 건
만남이란다.

초록별 지구를 숨쉬게 하는
참 아름다운 만남

새싹이 쏘옥, 눈뜰 수 있게
빗장문 열어 주는 흙

병아리 맨발이 시려울까
종종종 따라 다니는 아이들

참새, 토끼, 다람쥐, 고라니들의
추운 겨울을 위해
풀섶에 낟알곡 남겨두는 농부

어디 이것뿐이겠니?
작은 물결에도 놀라
두 눈이 동그래진 물고기 떼를
품어주는 바다풀

뿌리를 가지지 못한 겨우살이에게
가지 한 켠을 쓰윽 내어주는 물참나무

이런 아름다운 만남으로
지구는 푸르게 푸르게
숨쉬며 살아 있는 거야.



+ 초록 쉼표 / (오은영·아동문학가, 1959-)

우리 동네 느티나무는
커다란
초록 쉼표예요.

떨어지던 빗방울도
초록 잎 의자에 앉아
잠깐 쉬고
떠돌이 채소장수 아저씨도
초록 물든 그늘에
땀방울 잠깐 내려놓고

우리도
학원버스 기다리는 동안
초록빛 너른 품에서
친구랑 어울려 놀지요.



+ 달이 떴다 / (박혜선·아동문학가)

소쩍새가 노래 부르며 보는 달을
발발발발
짐 지고 가는 땅강아지가
땀 닦으며 본다.

'내일 비 오면 안 되는데…….'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가 보는 달을
'왜 아직 안 오실까?'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가 골목길에서 본다.

달, 참 밝다.

+ 너를 위한 자장가 / 이미애·아동문학가)

아가, 들리니?
쏴아쏴아
솔숲에 바람 부는 소리.

아가, 들리니?
개골개골
무논에 개구리 우는 소리.

아가, 들리니?
찰랑찰랑
못 물에 달님 발 씻는 소리.

아가, 들어 봐.
자장자장
엄마가 널 재워 주는 소리.

+ 말이 다르니까 /  (김자연·아동문학가, 1960-)

병아리 말, 뾰약뾰약
비둘기 말, 그그그그
참새 말, 찌액찌액
꿩 말, 끄웡끄웡

말이 다르니
모양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네.

수돗물 말 쓰아아쓰아아
도랑물 말 도로돌도로돌
강물의 말 처처철 처처철
바다의 말 촤아악촤아악

말이 다르니
소리도 다르고
냄새도 다르네.

충청도말, 하지라유
전라도 말, 했뿌러
경상도 말, 하랑게
제주도 말, 했수까

말이 다르니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먹는 것도 다르네.


+ 해바라기꽃 / (이준관·아동문학가, 1949-)

벌을 위해서
꿀로 꽉 채웠다.

가을을 위해서
씨앗으로 꽉 채웠다.

외로운 아이를 위해서
보고 싶은 친구 얼굴로
꽉 채웠다.

해바라기 꽃

크으다.


+ 눈 덮인 아침 / (박두순·아동문학가)

마을은
일어나고 싶지 않은가 보다
눈을 덮고
가만히 엎드려 있는 걸 보면.

강아지는
놀고 싶어 못 견뎠나 보다
눈밭 가득
발자국이 뛰어다닌 걸 보면.

새들은  
노래하고 싶어지나 보다
해도 뜨기 전에
자꾸만 지저귀는 걸 보면.

냇물은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들을 깨우는 얘기를
아침에도 재잘대고 있는 걸 보면.

온통
마음이 설레는 때다.


+ 손을 기다리는 건 / (신형건·아동문학가, 1965-)

손을 기다리는 건
어제 새로 깎은 연필,
내 방 문의 손잡이,
손을 기다리는 건
엘리베이터의 9층 버튼,
칠판 아래 분필가루 투성이 지우개,
때가 꼬질꼬질한 손수건,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 건
책상 틈바구니에 들어간
30센티미터 뿔자,
방구석에 굴러다니는
퍼즐 조각 하나,
정말 애타게 손을 기다리는 건
손, 꼬옥 잡아 줄
또 하나의
손.


+ 보이지 않는 손 / (신현득·아동문학가, 1933-)

흙이 뿌리를 잡아 주어
나무는 서서 버틸 수 있다.

가지가 나뭇잎을 잡아 주어서
잎은 맘놓고 흔들려도 된다.

도토리를 잡고 있는
도토리 깍지

대추를 잡고 있는
대추 꼭지.

안 그런 것 같지만
우리도 그렇다.

나무에서 흙처럼
잡아 주는 이가 있다.

대추에서 꼭지처럼
붙잡아 주는 이가 있다.

그래서 맘놓고
뛰놀 수도 있다.



+ 돌멩이와 바위 / (안오일·아동문학가)

조잘조잘조잘
시냇물이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들쑥날쑥 돌멩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철썩철썩 쏴 쏴
파도가 신나게 수다 떨 수 있는 건
끝까지 들어주는 바위가 있기 때문이죠


+ 겨울 들판 /  (이상교·아동문학가, 1949-)

겨울 들판이
텅 비었다.

들판이 쉬는 중이다.
풀들도 쉰다.
나무들도 쉬는 중이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 비 오는 날 / (양성우·시인, 1943-)

둥지 없는 작은 새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나비들은, 잠자리, 풍뎅이, 쇠똥구리들은
이런 날 어떻게 지낼까?
맨드라미, 나팔꽃, 채송화...... 그리고
이름 모를 풀꽃들은 어떻게 지낼까?
그칠 줄 모르고 이렇게 하염없이 비가
오는 날에는
죽도록 사랑하다가 문득 헤어진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 비 온다 / (박혜선·아동문학가, 1969-)
  
개미야 개미야
얼른 얼른 집에 가서
대문 걸어 잠궈라

지렁이야 지렁이야
얼른 얼른 나와서
대문 활짝 열어라.


+ 자연을 칭찬하기 / (권창순·아동문학가, 1961-)

친구만 칭찬하지 말고
강아지만 칭찬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묵묵히 걸어가는 길도 칭찬하자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매를 익힌 감나무도 칭찬하자
풀숲에서 목청껏 노래하는 풀벌레들도 칭찬하자
둥둥 달을 띄워 놓고 있는 연못도 칭찬하자
동생만 안아주지 말고
고양이만 안아주지 말고
나무도 안아주자
풀들도 안아주자
꽃들도 안아주자
돌들도 안아주자

+ 지구의 일기 / (이병승·아동문학가, 1966-)

나는 더워서 입기 싫은데
엄마는 자꾸 옷을 입혀요
두껍고 딱딱한 콘크리트 옷

나는 뛰놀고 놀고 싶은데
꼼짝 말고 있으래요
머리 깎아야 한다고
소나무 전나무 갈대 솜털까지
자꾸만 깎아요

나는 아파서 살살 하라는데
아빠는 등을 너무 빡빡 밀어요
때도 아닌데 구멍 나게 밀어요
곰보딱지 같다고 집들을 밀어요
산도 밀어요

나는 따가워서 싫은데
엄마는 뭘 자꾸 발라요
농약도 바르고 제초제도 바르고
냄새 고약한 폐수도 발라요


+ 초여름 / (조용원·아동문학가

하늘과 산이 손잡고
초록 손수건 흔들고 있네요

강과 들판이 어깨 기대고
초록 꿈을 키우고 있네요

새들과 바람이 입 맞추고
보리밭에서 춤추며
사랑을 노래하네요


+ 마음 /  (이혜영·아동문학가)

깃털처럼 가볍지만
때론
비위처럼 무겁단다.

시냇물처럼 즐겁지만
얼음처럼 차갑기도 해.

들꽃 향기에도
와르르 무너지지만
천둥 번개에도
꿈쩍하지 않아.

순한 양이다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가끔 나를 쩔쩔매게 하는 것.

알지?
조심조심
잘 다스려야 해.
 
+ 꽃씨 / (안오일·아동문학가, 전남 목포 출생)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딱딱한 땅을
뚫게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아주 조그마한 자기 몸이
세상을 물들이는 꽃이 되리란 걸
                   
꽃씨는 알까요?
정말 정말 조그마한 자기 몸이
꽁꽁 닫힌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리란 걸

+ 봄 /  (한상순·아동문학가)

겨우내
시냇물과 조약돌
말 안하고 지내다
어느 날부턴가
쉬지 않고 도란거리는 걸 보면

겨우내
옷 벗은 미루나무에
잠시 눈길도 주지 않고
씩씩 지나치던 바람
미루나무 연초록 잎새에 매달려
온종일 반짝이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집 앞
산수유나무를 시작으로
꽃들
다투어 피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 아무리 숨었어도 /  (한혜영·아동문학가, 1953-)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 햇살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땅 속 깊이 꼭꼭 숨은
암만 작은 씨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꽃
방실방실 피워 낼 걸.

아무리 숨었어도
이 봄 바람은
반드시 너를 찾고야 말걸
나뭇가지 깊은 곳에
꼭꼭 숨은 잎새라 해도
찾아내
꼭 저를 닮은 잎새
파릇파릇 피워 낼 걸.
 
+ 파도는 / (이상문·아동문학가)
                      
파도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

세차게 달려와
바위벽 결승선을 튕겨 나간다.

숨도 차지 않은가 보다.
잠시 바위에 주저앉았다가
벌떡 일어나 되돌아간다.

파도는
마라톤  선수.

먼길 달려서 지쳤을까?
모래밭 결승선을 밟고 쓰러진다.

숨이 몹시도 가쁜가 보다.
한참 모래밭에 뒹굴다
가까스로 일어난다.


꼭 그만큼만―민현숙(1958~ )
 
장다리 밭에 꼬물꼬물
배추벌레가 자란다고
한꺼번에 다 먹어치우는 건 아니다
제가 먹을 만큼 꼭 그만큼만
배추벌레를 물어 가는 새들
 
언덕마다 푸른 풀이 자란다고
있는 대로 먹어치우는 건 아니다
제가 앉은 자리만큼 꼭 그만큼만
풀을 뜯어 먹는 소들
 
새들이 남겨 놓은
장다리 밭의 배추벌레가
어느 새 흰나비가 되었구나
노랑나비가 되었구나
 
소들이 남겨 놓은
언덕 위의 풀들이
어느 새 흰꽃을 피웠구나
노랑꽃을 피웠구나
 
―이봉춘(1941~ )


꽃은
손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꽃은
발도 없다

그러나
산을 넘어
먼 곳까지 잘도 간다

서로 몰라요 ―최영재(1947~ )

아이는 아이끼리 서로 몰라요
누가 오늘 이만큼 몸이 컸는지

나무는 나무끼리 서로 몰라요
누가 오늘 이만큼 키가 컸는지

흰 구름 나란히 떠내려가면
가는지 서는지 서로 몰라요

웃으며 노래하며 어깨를 겯고
나란히 크느라 서로 몰라요

우리보고 -민경정(1967~)

선생님이 우리보고
개구리래요.
와글와글 버글버글
시끄러워도
들판에 개구리처럼
없으면 이상하대요.

선생님이 우리보고
들꽃이래요.
하양 빨강 크게 작게
마음대로 피어도
들판에 들꽃처럼
없으면 서운하대요.

나무들의 약속 -김명수 (1945~)

숲 속 나무들의 봄날 약속은
다 같이 초록 잎을 피워 내는 것

숲 속 나무들의 여름 약속은
다 같이 우쭐우쭐 키가 크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가을 약속은
다 같이 곱게 곱게 단풍 드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겨울 약속은
다 같이 눈보라를 견뎌 내는 것

빨주노초파남보 ―신경림(1936~
 
우리 교실은 빨주노초파남보
나리 옷은 빨갛고
하나 옷은 주황
미나 옷은 노랗다
서로 어우러져 무지개 같다
 
우리 집 식탁은 빨주노초파남보
시금치 나물이 초록이고
미역국은 파랑
가지 무침이 남빛이다
서로 빛깔을 뽐내는 게 꽃밭 같다
 
우리 동네 재래시장은 빨주노초파남보
과일과 생선도 빨갛고 노랗고
산나물과 버섯은 보랏빛이고 남빛이다
신발은 빨갛고 그릇은 노랗다
다투어 예쁘다고 뽐내면서
별로 수놓은 밤하늘처럼 아름답게
모두모두 빨주노초파남보

연못 ㅡ최두호(1938~ )
 
청개구리 한 마리
퐁당!
물둘레가 동그르르
 
연꽃 한 송이
퐁당!
꽃향기가 동그르르
 
구름 한 송이
퐁당!
놀란 잉어가 동그르르

가을은 ―신현신(1964~

살금살금 오지
여우가 꼬리를 내리고
산을 내려오는 것처럼

조심조심 오지
도깨비가 요술 방망이
숨기고
발소리 내지 않고 오는 것처럼

숨바꼭질하며 오지
따가운 햇볕과
서늘한 바람이
서로서로 술래가 되는 것처럼

가을은 이렇게 해마다 오지
가을 운동회 기다리는
아이들 마음 알고
단물이 든 열매로 큰 잔치를
열 것처럼

첫서리 ―송명호(1938~2007)

첫서리 내렸다지
전깃줄에

아기 참새들
쭁쭁쭁
발이 시리대.

첫서리 내렸다지
감나무에

홍시감이
빠알갛게
볼이 시리대.

첫서리는 겨울 소식
눈사람의 편지

세수할 때
울 아기 손이 시리대.


시인의 손에 놓이면 / 신현득
 
돌멩이 한 개라도
시인의 손에 놓이면 달라,
시가 되거든.
 
몽당연필이라도
시인의 손에 잡히면 달라,
시를 쓰거든.
 
흔한 햇빛이라도
나뭇잎이 받아 지니면 다르듯이
과일의 살이 되듯이,
 
흔한 물방울이라도
나뭇잎이 받아 지니면 다르듯이
초록빛 피가 되듯이,
 
버릴 만한 한 생각이라도
시인의 마음에 잡히면 달라,
시를 빚거든.
 
시가 되는 모든 것 / 신현득
 
동그란 건 시가 된다.
내 손안의 유리구슬.
동그랗지 않아도
시가 된다.
내 손안의 손톱깎이.
 
빨간 것은 시가 된다.
울타리의 장미꽃.
빨갛지 않아도 시가 된다.
노랑 민들레.
 
달콤한 건 시가 된다.
알사탕.
달지 않아도 시가 된다.
풋살구.
 
보이는 건 시가 된다.
서산마루 저녁놀.
보이지 않아도 시가 된다.
가슴속 내 마음.
 
ㅡ『신현득 동시선집』(2015, 지만지)
 
꽃 떨어진 자리 / 정 용 원
 
감꽃이 떨어진
아픈 그 자리
배꼽 달린 아기 땡감 하나
기쁜 그 자리
 
민들레꽃 떨어진
아픈 그 자리
낙하산 여행 꿈꾸는
씨앗 형제들
 
아픔과 기쁨 나눈
꽃 떨어진
그 자리
 
발자국 / 정용원
 
진달래 나뭇가지 위
산새 발자국
폴짝폴짝 건너 뛸 때마다
꽃봉오리 하나씩 피어나지요.
 
금잔디 풀숲 사이
개미 발자국
살금살금 지나갈 때마다
까만 씨앗 오르르르 떨어지네요.
 
안개꽃 몽오리 위
바람 발자국
솔솔솔솔 지나갈 때마다
하얀 안개 입김처럼 퍼져 나가요.
 
 <시와동화>2004년 가을호
 
 
정용원의 동시 <발자국>은 꽃봉오리가 피어나고 금잔디가 무성해지는 것이 발자국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씨앗이 여러 과정을 거쳐서 꽃(결실)이 피고 다시 씨앗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은 그 매개자가 있기에 가능하다.
따라서 모든 일은 혼자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여럿이 함께 자기의 역할을 할 때 가능하다. 혼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새의 움직임이 꽃봉오리를 피어나게 하고 개미의 부지런함이 금잔디 숲을 만들어낸다.
한편 솔솔 부는 바람이 안개꽃을 더 많이 피워내고 있다. 이처럼 한 송이의 꽃은 씨앗만 있어서 되는게 아니다.
자연의 조화로운 상생의 소통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의 결과물을 얻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 동시는 개체보존의 과정을 순환적으로 나타내는 과정에서 매개자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진달래-산새-꽃봉오리’, ‘금잔디-개미-씨앗’, ‘안개꽃-바람-하얀 안개(꽃)로 이어지는 시어의 연결은
산새, 개미, 바람의 ’발자국‘에 의해 더 확산적으로 번지고 나아가서 종족 보존이 가능해 짐을 시각화하고 있다.
이 동시의 시적 화자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읽고 있다. 즉, 자연의 섭리를 관찰함으로써 혼자가 아닌
어울림의 미학을 깨닫고 있다. 다소 복잡한 듯한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비틀림 없이 단순한 연결을
하고 있어 어린이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또 시적 화자는 평법한 자연적 현상을 예리한 관찰력과 상상력으로
읽어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른의 관점이 아닌 동심의 관점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미숙한 존재도 아니고 교육의 대상도 아니다.
 
평 * 김종헌 (아동문학평론 2005년 봄호 통권 114호
 
 
귀를 대 봐 / 오순택
 
항아리에
귀를 대 봐.
 
숨소리가 들려.
 
나무에
귀를 대 봐.
 
펌프질 소리가 들려.
 
땅에
귀를 대 봐.
 
매미 애벌레
눈 뜨는 소리가 들려.
 
우리들 귀는
청진기야.
 
한 번도 못 들었다 /최영재
 
쩍쩍 갈라진 논바닥, 밭작물이 타들어 가지만
잡초 말라죽었다는 말
한 번도 못 들었다
 
폭풍우로 굵은 나무들 뽑혀 강물에 떠가지만
연밭의 연뿌리 떠내려갔다는 말
한 번도 못 들었다
 
사흘 내내 폭설, 길 막혀 자동차들 꼼짝 못 하지만
제발 눈 좀 그만 내리라는 아이들의 말
한 번도 못 들었다.
 
 
   「한 번도 못 들었다」는 자연의 법칙은 변함없으며, 작물은 가뭄으로 죽어가더라도 잡초는 질긴 생명력으로 죽지 않으며, 폭풍우와 홍수로 나무들까지 떠내려갔지만 물의 생태에 적응한 연밭의 연뿌리는 떠내려가지 않고, 아이들이 폭설이 내리지 말라는 말을 한다 해서 폭설이 그치지 않는다는 자연현상의 생명력과 기상 현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어떠한가? 자신의 잘 못을 회피 하는 변명의 말이 「한 번도 못 들었다」이다.
 
그릇은 / 신현득
 
"끓는 된장을 담으세요."
뜨거운 걸 잘 참는 그릇.
 
"얼음덩이를 담으세요."
차운 걸 잘 참아내는 그릇.
 
"고추장을 담으세요."
매운 것도 잘 견디는 그릇.
 
사람도
참고 견디는 쪽이
그릇이다!
 
아버지
말씀.
 
새싹 모자 / 신현득
 
새싹은
모자를 쓰고 나와요.
 
"나는 콩이야"
콩싹은
콩껍질을 쓰고 나와요.
 
"나는 호박이야"
호박은
호박씨 껍질을 쓰고 나와요.
 
작고
예쁜 새싹 모자.
 
나무의 맛 / 곽해룡
 
매미가
나무둥치를 빨며
매움 매움
쓰디쓰 쓰디쓰
시어시 시어시
 
오목눈이가
나무를 비켜 가며
비리비리 비리비리
 
《맛의 거리》(문학동네 2008)
 
검은등뻐꾸기는 네 음절로 운다. 그 소리가 마치 ‘홀딱벗고’ ‘홀딱벗고’ 하는 것처럼 들린대서 ‘홀딱벗고새’라고도 한다. 스님들 귀에는 ‘홀딱벗고’가 아니라 ‘빡빡깎고’로 들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지집죽구 지집죽구’로 받아 적은 이는 소설가 이문구 선생이다.(‘들비둘기 소리’) 같은 소리라도 듣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전봇대 위에서 ‘구구 구구’ 우는 비둘기 소리를 ‘꾸욱 꾸욱’으로 듣는 사람은 비둘기가 전봇대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느라 애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9×9 9×9’로 듣는 사람은 비둘기가 구구단 답을 몰라 저렇게밖에 못 운다면서 ‘팔십일!’ 하고, 답을 알려준다.(김철순, ‘산비둘기’)
<나무의 맛>은 매미 소리를 “매움 매움/ 쓰디쓰 쓰디쓰/ 시어시 시어시”로, 오목눈이 소리를 “비리비리 비리비리”로 받아 적었다. 나무의 맛이 맵고, 쓰고, 시고, 비리다고 듣는 사람은 일찌감치 인생의 매운맛, 쓴맛, 신맛, 비린 맛을 고루 맛보았을 터이다. 그러니 이 시에서 말하는 맛은 겉에 드러난 나무의 맛이 아니라 신산고초한 인생의 맛, 그것이겠다.
참새는 정말 ‘짹짹’ 울까. 개구리는 정말 ‘개굴개굴’ 울까. 아이랑 함께 똑같은 소리에 귀 기울인 다음 그것을 글자로 적어 보자.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보자. 참새인 것을 모를 때, 참새 소리를 더 정확히 들을 수 있다. 참새인 것을 알면 선입견의 참견을 받아 ‘짹짹’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빛이 없는 곳, 소음이 적은 곳으로 가 풀벌레 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밥 되는 소리, 설거지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트림 소리, 방귀 소리, 이 닦는 소리 같은 일상의 소리를 새롭게 발견해 보자
 
시골 친구 / 오순택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목소리에선
장다리꽃 냄새가 나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호주머니 속에는
풀잎 바람이 들어 있어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신발에는
개울물 소리도 묻어 있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마음씨는
분꽃 씨 같아요
 
연못 / 오순택
 
연못은
오선지
 
보슬비가
음표를 놓고 간다
 
연못은
푸른 색종이
 
물방개가
동그라미를 그린다
 
<작은 별의 소원> 계몽사 1992
 
벌레들의 놀이터 / 작가 미상
 
풀밭은
벌레들의 놀이터
 
실베짱이는 풀잎에 앉아 첼로를 켜고
긴알락꽃하늘소는 더듬이로 무전을 치고
모시나비는 긴 입으로 꽃에 주사 놓고
버들잎벌레는 풀대 위에서 미끄럼 타고
 
이슬은 무당벌레 등에 업혀
눈 깜박깜박
 
풀밭은
벌레들의 즐거운 놀이터
 
이슬  1 / 문삼석
 
이슬은
밝음
한 알
 
이슬은
맑음
한 알
 
이슬 7 / 문삼석
 
보이는 건
그대로
티 없는 세상.
 
들리는 건
그대로
소리 없는 노래.
 
이슬.8 / 문삼석
 
굴 러 라.
융단 위를.....
 
울 려 라.
방울 소릴....
 
이슬.10 / 문삼석
 
달빛 속에
자라서
저리 고옵고,
 
별빛 보고
자라서
저리 말갛고.
 
이슬.12 / 문삼석
 
누가 살까?
이슬 속
작은 마을엔....
 
누가 알까?
이슬 속
숨은 이야길....
 
이슬.17 / 문삼석
 
새벽이랑
함께 떠
어둡지 않고,
 
풀잎이랑
함께 살아
외롭지 않고.
 
이슬.19 / 문삼석
 
훅 불면
또그로
구르겠다.
 
자칫 떨어지면
쨍그랑
깨지겠다
 
이슬.20 / 문삼석
 
하늘이
맑아서
너는 맑게 뜨고,
 
바람이
고와서
너는 곱게 뜨고.
 
이슬. 21 /문삼석
 
-다칠라.....
개미가 조심조심
꼿발로 비켜 가고,
 
-깨질라....
바람도 가만가만
꼿발로 지나 가고.
 
이슬.30 / 문삼석
 
아무도 몰래
혼자 뜨고,
 
아무도 몰래
혼자 감고
 
이슬.31 / 문삼석
 
그늘 속에선
조용한 시.
 
그늘 밖에선
반짝이는 노래.
 
이슬.33 / 문삼석
 
새소리
맑게 걸러
더 맑아가고,
 
새벽빛
밝게 걸러
더 밝아 가고.
 
이슬.49 / 문삼석
 
어딜까?
네 눈빛만
초롱초롱
모여 사는 곳은?
 
언젤까?
네 숨소리만
세상 가득
차오를 날은?
 
개미 / 문삼석
 
더운줄도 모르고
일만 하다가
가맣게 온 몸이
타버렸나봐
 
무거운줄도 모르고
짐만 나르다가
짤룩하게 허리가
휘여졌나봐.
 
호박넝쿨 / 손길봉
 
호박넝쿨 끝에는
눈이 있지요
울바자를 보고서
찾아가지요
 
호박넝쿨 끝에는
손이 있지요
울타리를 붙잡고
올라가지요
 
장난꾸러기는 장난꾸러기   / 김자미
                                       
도대체 언제 갈 거냐고 엉덩이를 때려본들
달팽이는 달팽이 
 
종일 길이만 젤 거냐고 허리를 묶어놓은들
자벌레는 자벌레
 
똥경단은 그만 시루떡도 만들어보라 해본들
쇠똥구리는 쇠똥구리  
 
얌전히 있어라 철 좀 들어라 해본들 
나는 장난꾸러기 
 
- 김자미 동시집 '달복이는 힘이 세다'·   섬아이·2016 
 
아이들은 활동량이 많다.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한다.
안으로만 구겨 넣어 꽁꽁 뭉친 아이보다는
몸으로 가는 채널을 많이 열어 놓은 장난꾸러기가 더 튼실하다.
 달팽이, 자벌레, 쇠똥구리의 모습이
바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아닐까.
시 속의 내가 장난꾸러기가 아니었다면 아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너무 어른스러운 애늙은이보다는 자기만의 특화된 장난꾸러기가 더 좋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동시다. 
사람은 자기가 흘린 땀방울의 양만큼 성장한다고 한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뛰어넘고 보면 걸림돌도 디딤돌로 바뀐다.
요즘 신문이나 뉴스에는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가 유독 잦다.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받들어 주고 어른은 깍듯이 섬기는 아름다운 삶의 조각들이 모일 때
세상은 더욱 살맛 나는 녹색 지대가 되지 않을까?
 
오선자·동시인 
 
말하는 꽃 / 정용원
 
나팔꽃은
“잠꾸러기야 일어나라 아침해가 떴다”
 
함박꽃은
“함박웃음 웃는 얼굴 제일 예쁘단다”
 
호박꽃은
“ 못생겼다고 놀리지만 꿀이 젤 많아요”
 
무궁화는
“ 삼천리 금수강산 온 세상 빛내봐요 “
 
분꽃은
“ 얼굴에 분칠하고 시집가고 싶어요
 
행운목꽃은
“ 모두 모두 행운의 열쇠 가져가세요 “
 
알 수 있지요 / 정용 원
 
바람의 냄새를 알 수 있나요?
아버지 땀에 절은 얼굴
부채질 해보면 알 수 있지요
 
바람이 얼마나 향긋한지 알 수 있나요?
어머니 따스한 품속
안겨 있어보면 알 수 있지요
 
바람이 얼마나 정다운지 알 수 있나요?
남바람 북바람 한바탕 씨름하고
휴전선 풀밭에서 뒹구는 걸 보면 알지요
 
숨박꼭질 / 월터 드 라 메어
 
숨바꼭질 하자네
바람이 나무 우거진 그늘에서
 
숨바꼭질 하자네
달이 귤나무 잎새에서
 
숨바꼭질 하자네
구름이 이 별에서 저 별로
 
숨바꼭질 하자네
물결이 항구의 모래밭에서
 
숨바꼭질 하자네
내가 날더러
 
그러고는 잠이 들어
꿈나라로 숨어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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