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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나부상 - 원용수
2022년 05월 26일 16시 08분  조회:49  추천:0  작성자: 강려
전등사 나부상
 
원용수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처마 네 귀에 나무로 깎아 만든 나부상(裸婦像)이 앉아 있다. 그 상은 비너스처럼 아름다운 자태가 아니고, 얼굴은 남상에 가까운 여인이다. 알몸으로 쪼그리고 앉아서 지붕을 이고 있다. 네 개의 나상(裸像)중 두 개는 두 팔로, 나머지 둘은 한 팔로 추녀를 떠받치고 있다. 상들이 추녀 밑 조그만 판자에 앉아 있으니 공포(栱包)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전설에 의하면 그 여인은 사하촌 주막의 주모였는데, 고향을 떠나와서 전등사를 짓던 도편수와 눈이 맞아 사랑에 빠졌단다. 두 사람은 불사(佛事)가 끝나면 집을 지어 살림을 차리기로 하였다. 남자는 그 약조를 지키려고 돈이 생길 때마다 그녀에게 주었다. 공사가 끝날 무렵에 남자가 주막으로 갔더니 그녀는 야반도주하고 없었다. 배신당한 도편수는 화가 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나부상을 만들어 두었다.
그는 도망간 주모에게 무거운 불사(佛寺)를 이고 억겁(億劫)의 고통을 당하는 벌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찰 안내판에도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친 여인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 위하여 추녀를 받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원숭이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용덕의 자세라고 하나, 상이 원숭이와는 달라 사찰 안내판의 설명이 맞는 것 같다. 동행한 일행 중에 불교 신자들은 도편수가 그녀에게 죄를 씻을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의 소중한 치부를 드러내 놓은 것으로 보아 용서해 줄 뜻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잘 아는 친구가 퇴직 후에 이와 같은 일을 당하였다. 그는 교육계에 있다가 갑년에 명퇴하였다. 퇴직할 무렵에는 부부가 고급 맨션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이자놀이가 쏠쏠하다고 퇴직금을 일실불로 탔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아내가 운명하였다. 아들 형제를 분가시키고 부부만 재미나게 살려던 꿈이 깨어졌다. 정이 많던 그는 혼자 살 수 없다면서 연하의 여인과 재혼하였다. 보통 늙바탕에 재혼하면 자녀들 모르게 현금을 주거나 집을 한 채 사주고 남자 돈으로 생활한다. 그는 신의를 돈돈히 하려고 혼인신고까지 하였다. 새로 맞이한 부인에게 미장원을 차려주고, 아파트를 저당 잡혀 융자까지 내어 주었다. 전처에게 잘못해 준 것을 반성하며 부인이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부부간이면 남자가 차려준 미장원의 수입으로 생활해도 되는데, 생활비는 남자가 대었다. 그렇게 5년쯤 살다가 부인이 친정에 다녀온다면서 집을 나간 뒤로 돌아오지 않았다.
부인이 돌아오지 않는 게 수상하여 부인의 사업장으로 가보았더니 미장원은 주인이 바뀐지 한참 되었다.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갔다. 살 집이 없어졌다. 말 그대로 몸 둘 곳이 없는 알거지 신세였다. 자식들이 아버지를 모시려고 하였으나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성격으로 보아 어느 촌락의 빈 집에 숨어들었을 것 같다. 인생 말로에 달콤한 사랑에 빠졌던 자신을 반성하는 눈물을 머금고 ‘망처(亡妻)에 망신살(亡身煞)뻗쳤다’고 신세타령을 할 것이다. 그를 만나 위로주(慰勞酒 )를 사고 싶다.
그녀들이 왜 도망갔을까. 그 사연이야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으니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숨겨둔 가족을 돌보러 갔는지, 재물에 욕심이 앞섰는지, 지금 살고 있는 남자보다 나은 남자를 따라 갔는지 모를 일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마음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사랑에 빠진 남자들이 그 속내를 어찌 알 수 있었으랴.
사랑에는 신뢰가 첫째 요건이다. 도편수와 내 친구는 신뢰를 얻으려고 물량공세를 취하였다. 사랑은 남녀가 서로 이해하고 아껴주면서 같이 가꾸어야 한다. 옛날 사람들은 사랑을 표시할 줄 몰랐는데 그들은 돈으로 사랑 탑을 쌓은 것 같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다면 수시로 사랑을 확인해 보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가족이면서 서로 믿고 지낸다. 아마 그들은 연인을 조강지처와 같이 믿고 지냈을 것이다.
여인들이 도망을 가고 난 다음 도편수는 실형은 아니더라도 주모에게 벌을 주었다. 자기 죄는 덮어두고 상대의 잘못만 응징하였다. 하지만 내 친구는 벌을 주고 싶어도 참았다. 자기가 사랑하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스쳐가는 운으로 넘겼다. 찾아가서 따지거나 법률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몸을 섞으며 살던 사람에게 벌은 줄 수 없다는 선생님다운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는 인간성이 좋은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것도 이런 인간성 좋은 사람이 살기 때문인지 모른다.
절을 나오려는데 모든 사람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나부상이 측은해 보였다.( 작품집 [능수버들])
 
|작법 공부|
 
필자가 이 작품에서 본 작법은 다음과 같다.
① 이 작품의 원관념(원소재)은 ‘내가 잘 아는 친구’의 이야기이다.
② 그 친구의 이야기를 형상화하기 위해서 끌어들인 보조관념(2차적소재)가 전등사 나부상 이야기이다.
③ ‘내가 잘 아는 친구’ 이야기는 생활하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 가운데 하나다. 그 모든 경험들은 작가의 기억 속에 저장된다. 그 중 어떤 기억은 즉시 작품의 소재로 채택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험들은 기억 속에 잠자고 있게 된다. 그러면 그 잠자고 있던 기억들이 한 편의 작품 소재로 선택 될 때는 언제인가?
④ 이 작품의 창작발상은 전등사 나무상을 보았을 때 얻게 되었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도편수와의 사랑의 약속을 배반하고 떠나간 나부상 이야기에서 작가의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내가 잘 아는 친구’ 이야기가 작품의 소재로 선택받게 된 것이다.
⑤ 작법에 공식이란 없다. 그러나 편의상 ‘공식 같은 작법’을 만들어 본다면, 창작법의 기본은 [이것]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저것]이라는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⑥ [이것]을 가지고 [저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것]만 있는 상태에서는 될 수 없다. 반드시 [저것]이 나타나야 된다.
⑦ 그러므로 작법의 실제는 [이것]이라는 소재를 형상화 할 수 있는 [저것]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저것]은 [이것]이라는 소재의 발견과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이것]을 기억 속에 저장해 두고 거의 잊어버리고 있을 정도로 오랜 세월이 지나서 발견되는 것이 통례다. 그러므로 [이것]은 메모장과 기억 속에 저장해 두고 [저것]이 발견되고, 나타날 때 까지 기다려야 된다.
⑧ 기존의 수필이 신변잡기 소리를 듣는 까닭은 [이것]만 가지고 [이것]만 쓰고 말기 때문이다. (창작문예수필 - 작품과 작법 3 ]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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