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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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쎄이 노친과 함께 불상을 우러르던 날
2014년 07월 14일 20시 47분  조회:3067  추천:5  작성자: 김송죽
 

 에쎄이 노친과 함께 불상을 우러르던 날

 

나한테는 남들이 알면 이상해하리만큼 고집스러운 버릇이 하나 있다.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기가 아는 중요일이나 행사같은것은 종이장에다 담은 얼마간이라도 기록해놓아야 속이 편해지는 그것이다. 그렇게 해놓으면 먼 훗날 아무 때건 자기가 살아온 인생궤적을 얼마간이라도 돌이켜볼수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래회를 넘기니 이제는 전만 기력이 퍽 못해지는게 알린다. 없던 건망증까지 겹치니 어떻게 한다?...  하길래 더구나 부득불 그렇게할수밖에.

 

나는 본래 소학 5학년을 다닐때부터 일기(日記)쓰는 습관을 길러 그후 거의 하루도 빼놓지를 않았다. 그래서 중학을 다닐때는 물론 졸업하고 농촌에 와 3년간 농사일을 할 때에도, 그러다가 학교에 들어가 교편을 잡고 선생으로 사업을 하면서도 내내 일기쓰기를 멈추지 않은것이다. 그래서 여러권의 책이 된건데 생각지도 않은 “문화대혁명”이 오는 바람에 그것들은 나의 "죄증"을 만들려고 접어든 고약한 보복자의 작간에 의해 전부잃어지고말았다. 가져다 보고돌려준다했지만 하나도 돌려주지 않아 전부없어지고만 것이다.

아무렴 목숨같이 귀중히 여기는 개인이 귀중한 보물을 가져다 그같이 깨끗이 혁명해치우다니 원, 뻔뻔스럽고도 야만스런 개같은 인간들이지!. 지금도 그일만 생각하면 복통이 터지면서 이가 부득부득 갈리지만 별수없다. 누가 이런 미개한 나라에서 태여나라던가?....

 

내가 지금은 전처럼 일기를 쓰지 않고 그저 “비망록”이나 만들어놓고는 가담가담 몇글자 적어놓군한다. 이제 또 어느때  빼앗길까봐 겁나 그러는게 아니다. 사람이 나이를 주어먹어 늙어가니 점점 게을러져 자연히 그렇게 하게된다. 그러면서도 옛습관을 영 버리지 않은것은 한가지 명확한 깨달음ㅡ 이제는 중국도 깻으니 다시는 지난때처럼 그렇게 야만적인 혁명은 하지 않을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비망록”을 보니 우리가 할빈을 떠나 북경에 이주한 날이 2004년 8월 27일. 그러니까 이제 두달이면 북경시민으로 되어 산지도 어언 만 10년이 되여오는 것이다. 광음이 여루라더니 아닌게아니라 빠른게 세월이다.

북경은 생각한것과 같이 력사유구한 고성(古城)이라서 도처에 볼거리들이 많고도 많다. 그런데도 그지간 나는 글만쓰느라 노친을 데리고 잘나다니지를 않았으니 지금은 후회된다. 

“2007년 6월 12일 화요일날에 北京龍行天年商貿有限公司에서 저들의 상품을 팔아먹기위해 그것을 선전하느라고 원명원(圓明園)유람을 조직하길래 노친을 데리고 한사람이 45원씩 팔면서 구경하고 돌아왔다”고 적어놓은것이 있고 또 하나의 비망록은  “2008년 10월 21일오후 지하철편으로 가까이에 있는 韓美林藝術館을 찾아 그의 탁월한 예술작품들을 관람하고 돌아옴.” 이라고 되여있다. 

나는 그날의 행차가 어제일같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 집앞의 果園站에서 동쪽으로 달리는 지하철에 올라 세정거장만인 림허리(臨河里)역에 내리면 곧바로 “한미림예술관”이니 전체로정을 다해봤자 거퍼 5~6분도 채 안걸리는 거리다.

문건에 기재된것을 보면 여기 북경에는 1999년에 한미림예술진렬실(韓美林藝術陳列室)이 락성되였고 2008년 6월 25일에는 바로 내가 있는 통주에서 한미림예술관(韓美林藝術館)락성식을 올리고 문을 연 것이다. 이 예술관을 내놓고도 수도에는 그 한해전이였던 2007년에 개관한 “北京韓美林藝術館”이 있어서 6차례 전람을 시킨건데 내놓은 예술품이 무려 5000여점이 된다고 한다. 그 개인의 이름을 띈 이같은 예술관(藝術館)은 항주에도 하나있다. 뿐만아니라 거기는 그것말고도 “천서루(天書樓)”라 이름을 지은것도 하나 더있다. 사실이 그러한즉 그가  창작해 이 세상에다 내놓은 예술작품이 대체 얼마나될까!?
그 수자는 딱히 통계를 내기도 어려울지경이라니 입이 딱 벌어진다!

관람자는 그 누구나 그의 예술작품들을 보고는 감탄사를 내뿜지 않은이가 없다고한다.

그러한즉 한미림이야말로 명실공히 세계급의 일류의 예술대사(藝術大師)인 것이다.


벌써 1980년6월25일에 한선생은 미국의 뉴욕, 보스턴 등 21개의 도시에서 개인 그림전람을 꾸렸던바 그로인하여 뉴욕과 샌디애고에서는 그에게 그 도시의 영예시민열쇄까지 내주었던 것이다. 너는 아무 때건 마음대로 와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아닌가! 그리고 뉴욕, 보스턴에서는 지어 1980년 10월 1일을 “한미림의 날”로 명명할 지경에 이르었던 것이다. 우리 중국사람 중 그 누가 또 그같은 영예을 받아봤던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예술품전람은 무려 20여개 국가에서 열렸으니 그는 그야말로 과시 세계적인 인물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한데 그의 성장을 보면 생각밖으로 과연 눈물겨워 다시금 사색하게된다.

 

한미림선생은 산동제남의 사람인데 음력으로 1936년도에 태여났으니 나보다 세 살우인것이다. 그렇지만 초기의 공부는 내보다도 썩 더 못했다. 두살때 아버지를 잃은 그는 제남1중을 겨우 3개월다니고는 군대에 나갔던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가 12살이였다고 한다. 그러한 그가 “문화대혁명”때 혁명파들의 작간에 걸려들어 감옥밥을 먹은게 1,900여일이였다니 제천이 흐려 피똥싸고 통곡할 일이 아니였는가! 하지만 그런속에서도 그는 예술가로 성장할수 있음에  기초를 닦아놓은 것이다. 그는 줄곧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수감생활을 하는 기간 그는 작디작은 미세한 개미로부터 먹거리를 훔쳐내는 쥐새끼에 이르기까지 동물들을 관찰하면서 그것으로 인간에 대해서 비교연구를 깊이깊이 한 것이다. 

감옥에서 종이를 구할수 있는가, 어디 있기나한가, 그에게는 부러뜨린 젓가락이 화필이였고 옷자락이 화판이였던 것이다. 그는 자기 바지에다 그림을 그렸다. 그게 모자라니 옥졸친구들의 해여진 옷자락마저 달라해서 화판으로 리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덧붙이고 덧붙인것이 4백여쪽.

그림공부를 그렇게 한 한미림이였다.

 

“한미림예술관”을 들어가 보는데는 돈주고 표를 살 필요없다. 신분증만 내놓으면 그가 누구건간에 가리지 않고 다 들어가 구경할 수 있게끔 되여진 곳이다. 지금 그렇고 앞으로도 내내 그럴것이다.

이건 예술가 韓美林선생의 후더운 인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가!

한미림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자연히 웃음이 나오고 마음이 즐거워진다. 지어 쾌락해질때도 있다. 그가 그리거나 조각한 것들은 거의가 동물들의 각이한 형상들이다. 창작시 작자의 심정과 관찰력이 환히 알린다.

어느 한 전람실에는 각가지 개들의 형상을 조각한 예술품들이 가득했다.

“여보, 이 사람이 아마 개를 무척 사랑하는모양이요!”

내가 노친과 이런 말을 하면서 안색을 살피는데 느닷없이 내옆에 한사람이 나타나 끼여드는 것이였다.

“그말씀 맞습니다. 그 사람은 개를 무척좋아하지요. 건 왜서일까요? 감옥에서 나오니 모두들 슬슬 피하는데 개만은 반갑다고 꼬리를 저었던겁니다.”

훗날 나는 사진을 보고 그가 바로 그 기념관의 주인이요 우리  중국은 물론 세계적인 탁월한 예술가로 첫손을 꼽는 한미림예술대사인것을 알았다....   


그날 나와 노친은 벽한켠을 다 차게 만들어 고정시켜놓은, 한백옥으로 제작된 굉장히 큰 불상 반신상앞에 이르러 발목이 잡혀서 오래도록 서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정교한 조각품도 다 있을가!”

나도 노친도 생전처음보는지라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그날, 한백옥으로 만들어진 그것이 나와 노친의 속심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성품을 나타내는 불상의 그 그지없이 인자해보이는 모습은 우리들 가슴속에 그토록 영원히 지울수 없는 표상으로 남은것이다!
불상의 도가 펼쳐지는 세상은 그 얼마나 평화로울가!... 악이 없고 자유로운 그 세상은!!.....
.
韩美林

 

 
韩美林艺术展 作者:京西闲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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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小熊小明的图片 이 불상은 한미림의 다른예술관에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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