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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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요지경(人生瑤池鏡)
2014년 11월 25일 21시 50분  조회:3037  추천:6  작성자: 김송죽
 

인생요지경(人生瑤池鏡) 

 

우리 여기 북경 통주의 신화련로인회를 보면 총인원이 70명을 넘어 거의 여든명에 이르고있는데 연변, 흑룡강을 비롯해서 전국 각지 여러 도시와 농촌들에서 모여들다보니 초면이요 각자 지내온 경력이 다 다르다. 하지만 그런것을 놓고 따짐이 없이 여지껏 서로 존중하면서 한집안식솔같이 어울러 지내고 있으니 시종 화기애애한 기분이다.

한데 번마다 보면 모이는 인원수는 무려 40여명좌우가 경상이다. 그러니 반수를 좀 넘길 뿐이다. 전체인원이 다 모이기는 불가능이다. 하지만 한주일에 한번씩 고정된 날자에 고정한 장소에서 드팀없이 이어지고있는 활동은 번마다 그야말로 활기에 넘치고있다.

실로 명실공히 사람마다 바라는 만년의 락원이라 하겠다!


북경의 신화련로인회가 운영이 이같이 잘되여 감에는 이 로인회를 조직하고 처음부터 10여년간 줄곧 맡아서 이끌어 온 김경덕회장을 비롯한 그 몇몇 지도팀 성원들의 사심없이 열정적인 로고와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어제 활동일을 맞으면서 모임에 술한잔을 썻다. 저세상에 간 내 부인 강순희의 유언에 따른것이다. 부인은 북경에 이사와서 살아온 10년 넘는기간 로인회에 들어서부터 친구들을 많이 사귀였고 이 한 조직의 관심속에 내내 마음즐겁게 지냈길래 죽어도 잊을 수 없다면서 리별전에 두가지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하나는 자기를 대신해 꼭 한번 인사술을 쓰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보고 이제는 국가당안서류들을 그만뒤지고 모택동을 그만욕하라는 것이였다.  나는 그러마고 대답했다.


나는 굴복을 모르는 배짱센 인간이다. 하길래 혹독한 세월을 넘겨 여지껏 목숨을 부지하면서 억척스레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그렇다. 나는 누가 나를 해치면 그가 누구던간에 나는 그를 원쑤로 여기고 저주할 것이다.


   여기 북경에 이사오기 전이던 1998년 3월에 나는 <<中华人物辭海>>에 올라 국가로부터 "영예증서"를 받은바있다. 너가 이제는 나라의 명인이 되었으니 그런줄을 알라면서 떼여준 증명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된 1949년 10월 1일 그날부터 1997년 8월까지 계산하고 금을 그어 대만, 홍콩과 마카오를 포함한 중국대륙전반에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각 부문들을 통털어 성적이 돌출해서 공이 있는 인재들을 뽑아내여 건국이래 처음으로 되는 <<中华人物辭海>>(상, 중, 하)를 만들었는데 거기에 오른 총인원은 35506명이다. 그 가운데 나 이 김송죽이도 든 것이다. 전혀 꿈밖의 일이요, 너무나도 아름찬 영광이라 나는 여지껏 감히 남앞에 내놓고 자랑못하고 있다가 요즘에 와서야 그것을 로인회에 들고가 보라고 내놓았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 고회를 넘도록 살아오면서 내가 보아낸 이 인간세상은 내가 바라는것 같이 그정도 화애로운것이 아니라 한심하게도 험악했던 것이다.

초중을 졸업할 때 내가 일기책에다 써놓은 <<범은 죽어 껍지를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글귀가 문혁 때 혁명자에 의해 발각되여 대중앞에 나서서 첫투쟁받던 날 한마을에 사는, 내가 맘속으로는 제일 믿고 존경해왔던 리청룡어른이 나하고 “네가 대체 공부를 얼마했느냐?”고 묻는것이였다. 그래서 내가 곧이곧대로 초중을 다녔노라 대답했더니 그가 침을 탁 뱉으면서 하는 말인즉은 “야 이놈아, 꺽구로 들고 쪽  훑어봐야 똥물밖에 나올게 없는 주제에 네가 다 작가가돼?... 야야, 메스껍다, 메스꺼워!" 하고는 저놈을 단단히 혼내워라 했다.

하여 코빠는 애들이 새끼로 내 목을 매여 개처럼 끌고다녔던 것이다.

관속에 들어가는 사람한테라막말은 말라했다. 앞길이 천리같은 젊은이를 세워놓고 아무럼 어쩌면 그렇게 까지 지독하게 군단말인가? 나는 그때부터 공산당원이라면 다시봤다. 견해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세상에 제일 좋은사람이 공산당원중에 있거니와 제일무지하고 악한자도 공산당원중에 있는것이다. 

물론 세월이 달라져 지금은 많이 좋아진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름놓고 락관할 수도 없는것이 인간이 붐벼대면서 살아가고있는 이 세상, 이놈의 인생요지경(人生瑤池鏡)같은 사회인 것이다.

지금도 내가 남과  나는 ‘중화인물사해’에 오른 사람이요 하거나 내가 ‘명인’이요 한다면 대방은 어떻게 생각할가, 어떤 반영일가?   겉으로는 아 그런가 감탄하겠지만 속으로는 단통 자식이  제자랑하구있네 하거나 아니면 무슨 후춘개나발을 부는거야 하고 되려 욕을 하기가 첩경이다. 공연히 사서 말밥에 올라 씹히면서 미움사거나 사이를 버성기게 만들 필요야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와 우리 집 식솔들은 다가 여지껏 가족의 영광과 기쁨을 속으로만 간직하면서 입을 조심해 온 것이다. 

그러다 나는 지금에 이르러서야 등에 지고 오던 짐을 부리듯이 내 속을 시원히 드러내는바다.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오래살지.
요즘 만든 일대기를 내놓는다.

.
 

 作家一代記

 

 

金松竹,  男, 朝鮮族。

 

1940년2월 중국의 흑룡강성 화남현 복가툰에서 당악김씨 김병념의 아들로  태여나 가문의 삼대독자가  됨.

1947년11월17일: 토비숙청에 나섰던 아버지가 영평강전투에서 자기가 거느린 정찰병전원과 함께 불행히 전사. 어머니가 부대재봉소에 계속근무했기에 3년간 부친의 생전소속부대에서  군인들의 총애를 받으면서 자라남.                 


1953년여름: 조선전쟁이 끝나갈무렵, 흑룡강성 화남현 팔호력 중심촌소학 5학년시절 동시 <<땅크병형님>>을 지어 소년간물에 발표. 난생처음 원고료를 받아 쓰면서 희열을 느낌과 동시에 문학의 묘미를 깨닫게 됨. 


1954년7월: 부친의 묘지ㅡ17렬사릉원이 가까이에 있는 벌리조선중학에 입학. 재교기간 동반생 박억만, 소학시절동창 조용환이와 문우가 되여 편지형식으로 서로 련계하면서 열심히 문학을 탐구하기시작.


1957년7월: 3년간의 초중공부를 끝내고 졸업. 생활체험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생각과 쏘련작가 고리끼를 본받으면 자습으로도 능히 성공할수있다는 신심에 스스로 승학마저  포기하고 화천현 성화향에 돌아가 농사일에 종사. 

8월: 본인이 소시적 부대에서 자라는기간 특공훈련을 받은 경력이 있음을 알고있은 유관부문으로부터 송화강이북 "련강구로개농장"에 경찰로 가라는 지령을 내렸으나 경찰로 되고푼 맘이 전혀없었기에 그에 불응함.


1959년8월: 본지에서 소학교편을 잡음. 마을에서 농사일하는 초학자ㅡ 김인세, 김성일과 함께 공사당위의 허락을 받고 문학쿠르쇼크를 조직. 업여로 “중국민족해방운동사”와 “문학론초고”를 학습하면서 습작을 시작.


1962년7월: 조선문판 “흑룡강일보”에 처녀작 시 <<북대황송가>>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  조선작가동맹위원장 리기영선생과 련계. 그의 부름에 응하여 조선에 나가 작가수업을 하려고 떠났다가 그런다면 그것이 어머님과의 영결이 될것같아 중도에서 발길을 되돌려 중국에서 계속 자학(自學)의 길을 걸음.


1962년12월: 연변에서 태여나 자랐지만 내내 한족학교에만 다녔기에 중국말에 능란한 진주강씨녀인 강순희(姜順姬)를 알게되여 결혼. 그를 종생의 반려로 삼음
1963년11월: 장남 김성해(金星海) 태여남.

1965년5월: 첫장편소설 <<최후의 결전>>을 씀. 원고를 할빈시조선문화관 “송화강”잡지사에 투고.

1965년10월 딸 향단이 태여남. 하지만 의사의 오진으로 3살먹던해에 아깝게 잃음.
1966년8월: 문혁(文革)시작. 나라정세가 점점 란잡해짐에 불안하여 장편소설원고를 되찾아옴.

      9월에 이르러 <<최후의 결전>>원고를 사청때 원고료는 액외수입인데 학교에 들여놔야지      받아서 혼자쓴건 자산계급행위라고 망언을 했다가 되려 망신스레 퇴박맞은 정장송이 보복을 목적해 성화공사 교원반란 퇀을 조직하더니 보고서는 돌려주리라 거짓말을 하고 빼앗아 감. 


1968년2월: 차남(次男) 김성천(金星泉)이 태여남.

 그해의 8월말에 이르러 초중시절부터 써온 일기책과 습작자료 10권마저 압수당했거니와 9월에는 정장송(鄭長松)을 비롯한 혁명자악한 몇의 작간에 의해  아버지의 렬사증과 추도식사진마저 빼앗겨 찢어없어지며 공사당위의 인준하에 마을에서 “문학크루쇼크”를 조직하여 문학공부하면서 소설창작을 해온것마저 억지죄로 꾸며져 투쟁받기시작. 따라서 소설자료들을 건사해준 어머님마저 아들의 보황파로 몰려 모진구타와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음.


1972년4월:  <<반당분자>>,<<반당반사회주의분자>>,<<현행반혁명분자>>,<<반혁명집단두목>> 등등 10여가지에 이르는 근본 되지도 않은 죄명으로 4년간 공사내 돌림투쟁까지 받았거니와 나중에는 현에서 열린 만인투쟁대에까지 오른 후 현감옥에 투옥. 하지만 옥고를 치르는 45일간내에 벌어진 4차의 법정변론에서 번번이 이김으로 해서 결국 무죄로 석방 됨.

집에 돌아오니 “강화발표30주년응모통지”가 기다렸기에 이틑간 쉬고나서 빼앗겨 없어진 첫장편을 비밀리에 다시쓰기시작.         


1972년 7월: 장편제목을 <<생사결전>>으로 고쳐 “흑룡강신문”에 투고.

1974년 5월, 퇴자맞은 장편을 비밀리에 전부다시 수개끝냄.

           6월: 소설제목을 현재의 <<번개치는 아침>>으로 고쳐 연변인민출판사에 투고함.


1979년1월5일: 억울한 안건으로 평판되면서 드디여 인신자유와 창작자유를 완전히 되찾게 됨.

1980년 6월: 연변작가협회에 가입.

           8월: 흑룡강작가협회에 가입.

1981년10월: <<번개치는 아침>> 5차수개끝냄.

1983년 3월: 장장 18년간의 진통끝에 첫저작이 마침내 세상을 보게 됨.

1983년12월: 흑룡강작가협회 제2차 대표대회에 출석.


1984년ㅡ 연변인민방송국에서 첫장편 <<번개치는 아침>>을 두달가량 방송.

              자치주는 이 책을 전주종업원 “삼열애교육필독서(三熱愛敎育必讀圖書)”로 추천함.

1985년1월: 흑룡강성문학예술계련합회 제2차 대표대회에 출석.

1986년7월: 국가로부터 <<優秀自學成才者>>칭호를 받음.

1987년6월: 흑룡강작가협회 제3차 대표대회에 출석.

         7월: 력사총서 “중국조선족이 걸어온 발자취” 과외편집작가로 초빙받아 한동안
         민족력사자료수집과 연구에 몰두 함.

1987년9월: 中國社會科學院 當代文學硏究所에서 본인의 작가당안건립.

        첫장편소설과 함께 전부의 초고들을 당안고에 입고.

1988년9월: 수년간 교편을 잡아오던 화천조선중학에서 퇴직하고 창작에 정진.

        10월: 佳木斯市에서 “優秀作家”영예를 수여함.

        11월: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에 가입.

1992년8월: 북경에서 열린 전국소수민족작가 제1차필회에 초청참가.

          중국작가협회에 가입.
          (소개인 조선족시인 金哲, 만족시인 中流.)

1998년3월: 사적이 <<中國職工自學成才者辭典>>

                           <<中國藝術家辭典>>

                           <<中國英才辭典>>

                           <<中國文學家大辭典>>

                          <<中國當代文藝界名人彔>>
           등 여러사전에 수록되면서 略歷이 <<中華人物辭海>>(당  대 문화권)에 올라 “영예증서(榮譽證書)”를 받음.


2000년 1월: 南京 中山文學院에서 客座敎授로 초빙했으나 본인이 한어지식 구술능력이 부족함에 
                 통감하여 스스로 그에 불응함.

2003년11월: 국제펜클럽에 가입(총부 런던)

 

지금껏ㅡ  소설, 시, 수필, 에세이 등 500여편(수) 창작 발표.

중편소설 <<탄알훔친 아이>> (1987. 연변인민출판사)

장편소설 <<번개치는 아침>> (1983. 연변인민출판사)

장편전기 <<설한>> (1994.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장편소설 <<관동의 밤>> (2008년. 민족출판사)출간

대하력사소설 3부작 <<반도의 혈>> 조글로 인터넷에 발표.
련재및    수상정황:
             아동중편소설 <<탄알훔친아이>>ㅡ 1987년도 길림성우수도서.

             장편전기 <<설한>>ㅡ 1994년도 흑룡강성 우수도서.

             수필 <<오얏나무골>>, <<노란울금향>>, <<기리기리 모시고싶소>>.
             단편소설 <<빨간리봉을 풀던 날>> 등이 우수상.

             중편소설 <<망매의 무도장>>이 국제펜클럽한국본회주최 제4회 한국해외동포창작문학  우수상. 본소설은 2001, 11. <<연변문학>>에 발표된 후 국제펜큽럽 한국본부의 <<펜문학>>에 다시 등재 됨.

 

2014년 6월 30일가정에 액운이 떨어짐:

               문학의 길에 올라선 남편을 성공시키기 위해 가정총목을 짊어지고 한생을
               분투해온 부인이 오랜 병환 끝에 타계. 향년 73세. 
               성공한 남자뒤에는 그를 받들어 세워준 성스러운 녀인이 있었다!
              
위대한 조국이 있기에 성공하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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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4 ]

4   작성자 : 한마디 보태는 말
날자:2015-04-25 11:37:47
제자랑꺼리나 되는 이따위 글은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전날이였다. 북경사험대학운동장에서 민속경축과 더불어 있은 로인들운동시합을 보고 돌아오는 뻐스안에서였다. 연변자치주의 어느 한 단위에서 내내 간부를 지내다가 퇴직을 했다는 동갑과 내가 지난 일이 새삼스레 상기되여 그보고 "내 노친이 죽기전이였소. 내가 그보고 아니 그런데 당신네 연변사람은 왜 그모양이요, 한간의 문학제(류치환)를 버젓이 지내면서 주당위선전부장이라는 사람이 직접나서서 상까지 버젓이 주다니 원, 정신이 있는지, 얼빠진 사람들이지." 하고 욕을 했노라 했다. 그랬더니 연변동갑이 단통 "아니, 당신이 무슨자격에 주당위를 함부로 욕하느냐였다. 그래서 내가 욕먹을 짓을 했으면 욕을 먹어야지 내가 그렇게 한게 뭐가 잘못됐느냐 하니 동갑이 그래두그렇지 하면서 나보고 싹싹 거두라 "말할 대상도 안된다"면서 아예 입을 더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이였다. 말할 대상도 안된다구? 사람을 깔봐도 유분수지 밸이 꼬여났던 나는 그 이틑날 모임에 중화인물사해에 올라서 받은 영예증을 갖고 가 그한테 보이면서 알고지내라는데서 한마디 던졌던 것이다.
“난 국가당안을 볼 권리를 갖고있는 사람이요. 당신은 그런 권리를 가졌소?”
3   작성자 : 통주
날자:2015-03-16 19:14:05
응답글을 대단히 감사히 받았습니다
요지음 연변에 일보러 잠간 나왔습니다
북경에 들어 가면 로인회에 꼭 찾아 가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2   작성자 : 응답글
날자:2015-03-16 18:47:32
통주 신화련회로인회는 新华联家园근처에 있습니다.
회장은 김경덕.
전화번호 134 8884 9334 입니다.
련계하시기 바랍니다.
1   작성자 : 신화련
날자:2015-03-16 07:18:31
신화련조선족로인회라니..들어도 반갑기만 합니다 통주 현대음약학원곁에 있는 阿尔法小区에 아들집에 와 있는 연변사람입니다 바로 旗舰凯旋小区남쪽입니다 북경에 가까이에 있는 조선족로인회를 찾느라고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지요 공공뻐스807 669 924를 타고 그 곁을 지나 다니지만 로인회가 곁에 있는 줄 몰랐지요 김송죽님 수고스러우신대로 똑똑한 주소위치를 알려 주시면 꼭 찾아 가 활동에 참가하고픈데요 新华联锦园부근인지 아니면 新华联家园부근인 지 궁금증만 더 해 감니다
부디 건강히 활동에 유쾌히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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