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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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은 모방인가?
2012년 09월 17일 10시 49분  조회:2464  추천:3  작성자: 김만석
아동문학론쟁 한마당

창작은 모방인가?

김만석




문제의 제기

창작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제기하기는 정말 민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제기하지 않을수가 없는 상황이여서 렴치 불구하고 이렇게 제기하는 바이다.

지난 2007년 4월 연변주조선족아동문학학회와 연변인민출판사<<아동문학>>편집부에서 련합으로 가진 <<동시탐구>>회의에서 ***은 <<창작은 모방이다. 괴테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놀라운 소리를 하였다.

<<창작은 모방이다>>
이 놀라운 론단의 정당성을 증명하려고 ***은 괴테까지 곁들어 가지고 자기 론점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일찍 알리스토텔레스가 <<문학은 생활을 모방한다>>고 말한적은 있다 그러나 작품을 모방한다는 말을 한적이 없다

괴테가 과연 이런 말을 하였는지 필자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문학대가가 이런 엉뚱한 말을 하였겠는가가 의심된다 설사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하여도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목적으로 그런 말 하였는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연 괴테가 그런 말을 하였다 쳐도 우리는 21세기에 사는 사람으로 그런 말은 비판적으로 분석 판단하여 오늘날 사람답게 창작을 대하여야 할것이라고 본다

진리는 언제나 상대적인 시대성을 가지고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것이다 어제날의 진리가 오늘 와서 망설로 될수가 있다는 말이다 창작은 결코 ***이 말한것처럼 그런 모방이 아니다 창작은 작가들의 심미적인 새로운 위대한 창조인 것이다

문제의 현실
그런데 이런 창작을 <<모방>>으로 인식하고 동시창작에서 그것을 실천에 옮긴 사람들은 력사적으로 우리 중국 조선족아동문학 동시단에 두루 나타났었다

(1) <<편지>>와 <<자꾸 쓸래요>>
일찍 1950년대에 벌써 이런 현상이 나타났었다

편지

(조선) 유충록

전선으로 떠나시는 우리 형님께
편지를랑 자꾸자꾸 쓰겠다고
약속은 굳이 굳이 하였지만
글쎄 어디다 써 보내나요
형님은 자꾸 자꾸 내닫는걸
원쑤를 무찔러 나아가는걸
그래두 자꾸 자꾸 써보내지요
모두다 용감한 우리 형님들
누가 받아보나 좋으니깐요
그리고 회답을랑 그만 두라죠
바쁘신데 어떻게 글을 쓰신담
총사령부의 보도가 회답인데요
1950년 8월


자꾸 쓸래요

최**

오빠가 지원군에 가시던 그 날
나는야 편지를 자꾸 쓰자고
오빠의 손을 잡고 결심했지만
주소도 모르면서 어디다 쓰나
오빠가 계시는 곳 나는 몰라도
편지는 자꾸 써 보낼거야
나에겐 지원군이 모두다 오빠
그 어느 오빠든지 받아 보겠지
1953년 6월

유충록이 1950년에 쓴 <<편지>>와 최**이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53년에 쓴 <<지꾸 쓸래요>>는 너무나 닮은 글이다
이 두 작품은 모두가 같은 시적대상인 <<편지>>를 집중 조명하면서 주소도 모르는 군대형님/군대오빠에게 자꾸 편지 쓰는 아이들의 기특한 마음에서 시적 발견을 한 동시들이다.

유충록이 <<형님이 전선에 나가던 날>>이라고 쓴 것을 최**은 <<오빠가 지원군에 가시던 그날>>>로 썼다

그리고 유충록이<<편지를랑 자꾸 자꾸 쓰겠다고/ 약속은 굳이 굳이 하였지만>>이라고 썼는데 최**은 <<나는야 편지를 자꾸 쓰자고/ 오빠의 손을 잡고 결심했지만>>으로 썼다

다음 주소를 모르는 원인을 유충록은 <<형님이 자꾸 내닫는걸/ 원쑤를 무찔러 나아 가는걸>>로 비교적적 형상적으로 표현하였다면 최**은 <<주소도 모른다>>고 간단히 설명하고 말았다

그 다음 편지를 자꾸 쓰는 까닭에 대하여서는 유충록은 <<모두다 용감한 우리형님/누가 받으나 좋으니깐요>>고 하였고 최**은 <<나에겐 지원군이 모두다 오빠/ 그 어느 오빠든지 받아보겠지>>라고 하였다

다른 점은 최**이 유충록의 쓴 <<편지>>의 제 4련을 빼 버린 것이다 유충록은 <<회답을 그만 두라죠/ 바쁘신데 글을 어떻게 쓰신담/ 총사령부의 보도가 회답인걸요>>라고 하였다 작자는 여기에 방점을 찍고 자기의 주제를 심화시키려고 하였다

그런데 최**은 <<자꾸 쓸래요>>에서는 유충록이 노린 점에 신경을 쓴 것이 아니라 편지를 자꾸 쓰는 시적주인공의 내심세계에 방점 찍으면서 유충록의 제4련을 군더더기로 보았던 것이다 최**의 노린 주제에 의하면 이것은 필요가 없는 군더더기로 되는 것이다
이처럼 최**은 시적형상화에서 <<오빠>>를 <<형님>>으로 , <<약속>>을 <<결심>>으로,<<모두다 우리 형님>>을 <<지원군은 모두다 오빠>>라고 하였다

(2) <<아기의 말>>과 <<아기>>
2010년 4월에 연변<<조글로>> 사이트에 누군가가 강순길과 최**의 동시를 비교하면서 의문점을 제기하였다

아기의 말

강순길

아기는 울음으로
말을 한다
기저귀가 젖어도
-응애 응애
배가 고파도
-응애 응애
몸이 아파도
-응애 응애
아기의 말은
엄마가 알아듣지
(1999)


아기

최**

배고파도
으-앙
오줌 싸도
으-앙
아기 울음소리 듣고
엄마가 달려 온다
아기는 울음으로
말한다
( 2003)


강순길이 1999년에 쓴 동시<<아기의 말>>과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03년에 최**의 쓴 동시 <<아기>> 또한 너무도 닮은 동시이다

두 사람 다 시적대상인 <<아기의 울음>>에서 아기들은 울음으로 말한다는 시적발견을 하고 있다 즉 똑 같은 시적 발견이라는 말이다

시적 형상화에서 보면 강순길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응애응애>>라고 하였고 최**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으-앙 으-앙>>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강순길은 아기들이 <<기저귀가 젖어도>>,<<배가 고파도>>,<<몸이 아파도>> 운다고 한것을 최**은 아기가 <<배가 고파도>>,<<오줌 싸도>> 운다고 하였다 강순길은 <<엄마 말은 아기가 알아 듣지>>하고 전반 시를 마무리 하였는데 최**은 <<아기의 울음소리 듣고 /엄마가 달려 온다//아기는 울음으로 말한다>>고 마무리하였다

(3)<<호박넝굴>>과 <<박넝쿨>>
한국 손길봉이 2008년 2월 24일 <<한국동시마을>>에 <<호박넝굴>>이라는 동시를 발표하였다

호박넝쿨

손길봉

호박넝굴 끝에는
눈이 있지요
울바자를 보고서
찾아 가지요
호박넝굴 끝에는
손이 있지요
울타리를 붙잡고
올라 가지요


그런데 최*이 2010년 겨울호<<아동문학>>잡지 <<민철의 어항>>에 <<박넝쿨>>이라는 동시를 발표하였다

박넝쿨

최*

박넝쿨엔
눈이 있어요
울바자를 보면
살금살금 찾아 가지요
박넝쿨엔
손이 있지요
울바자를 찾아서
정답게 감겨 올라요

상기 2수의 동시를 보면 시적대상이 서로 다른 것 같다 손길봉은 <<호박넝굴>>로 하고 최*은 <<박넝쿨>>로 하였다
그러나 형식상에서 시적대상은 서로 다르지만 시적발견은 둘 다 <<호박넝굴>>과 <<박넝쿨>>에 <<눈>>이 있고 <<손>>이 있다고 하였다 즉 시적발견이 완전히 같다는 말이다

시적형상화에서 보면 손길봉이 <<호박넝굴>>이라고 한 것을 최*은 <<박넝쿨>>로 하였다 그리고 손길봉이 눈이 있는 호박넝굴이 울바자를 보고서 <<찾아가지요>>한 것을 최*은 박넝쿨이 <<살금살금 찾아가지요>>라고 하였다 나중에 손길봉이 손이 있는 호박넝굴이 <<울타리를 붙잡고/올라가지요>>한 것을 최*은 손이 있는 박넝쿨이 <<울바자를 찾아서 /정답게 감겨 올라요>>라고 하였다

(4) <<나비>>와 <<초불>>
김철호는 2002년 자기의 동시집<<연필 숨쉬는 소리>>에 동시<<나비>>를 발표하였다

나비

김철호

가지 없어도
노랗게 핀다
뿌리없어도
하얗게 핀다


황**는 2010년 아동문학학회에서 편집출판한 <<아동문학샘터>>에 <<초불>>을 발표하였다

초불

황**

가지

없어도
빨갛게
피는



여기서 김철호는 나비를 꽃으로 은유하여 오묘한 시적형상을 창조하였다 즉 가지 없어도 노랗게 핀 꽃이 노란 나비요 뿌리 없어도 하얗게 핀 꽃이 하얀 나비라는 것이다

그런데 황**는 바로 김철호의 이런 작시법을 그대로 <<초불>>에 대입하여 이른바의 동시<<초불>>을 써서 발표하였다. 창작에는 그 어떤 공식이 따로 없다 창작에 공식이 있으면 그 누구나 그런 공식에 대입하여 동시를 쓸수가 있지 않을가?

문제에 대한 분석
상술한 고찰에 근거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우를 종합하여 낼수가 있다

첫째, <<완전모방작품>>인 경우이다 완전모방작품이란 시적 발견이 같고 시적형상화가 같은 작품을 말한다 지어 제목도 같을 수가 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조선족 아동문학문단에 아직 이런 완전모방작품이 나타나지 않은 그것이다 이런 완전모방은 너무나도 우둔한 짓이기에 아직까지 그 누구도 그런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는 것 같다

이런 완전모방작품은 완전히 남의 작품을 자기작품으로 발표하기 때문에 이란 작자는 <<글도적>>이라고 방점 찍고 만천하에 공개하고 질타하여 마땅할줄로 알고 있다

둘째, <<준모방작품>>인 경우이다 준모방작품이란 시적발견이 같고 시적형상화에서 약간한 개조를 진행한 작품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남의 작품에서 단어 몇 개, 토 몇개를 바꾸어 놓고서는 눈감고 <<야옹>>하는 식으로 자기의 작품이라고 넌지시 발표한 그런 작품을 말한다

우선 이런 작자들은 남의 시적발견을 자기가 발견한것처럼 들고 나온다 시적발견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는 이런 작자들은 남의 성과를 파렴치하게 슬쩍 후무려 가지고는 시뚝해서 으시대고 있다

다음 시적형상화에서 보면 그런 사람들은 남의 형상을 약간씩 뜯어 고치는 상투적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남의 작품을 고치기 때문에 원 작품보다 질적으로 나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토 몇 개, 단어 몇 개를 고치고 어떻게 자기 작품이라고 떠버릴수 있단 말인가!

그 다음 인식론적 견지에서 보면 이런 작자들은 정보화시대라는것을 까맣게 잊고 무지막지한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여 남의 잘된 작품을 자기 홀로만 보았으리라고 오판하고 이런 우둔하고 비렬한 장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작자들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여 보면 발표욕에 미쳐 날뛰면서 자기를 얼리고 독자를 기편하려고 든다 결과 형식적으로는 남의 작품을 모방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남의 작품을 훔친 철두철미 <<글도적>>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완전모방보다는 더 교활한 작법이라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다

셋째,<<류사성>>경우이다 .우리는 동시를 학습하면서 수백수의 동시를 머리 속에 저장하고 있다 그런 저장된 동시들이 어떤 시적충동을 받는 경우 새롭게 조합되여 이른바 동시로 둔갑될 수가 있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행동으로서 탓할것이 못된다

하지만 그렇게 쓴 동시가 남이 이미 발표한것이라면 작가적 량심으로 자기를 자제하고 발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넷째, <<우연일치>>인 경우이다 이미 성숙된 작가들이 동일한 시간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비슷하거나 서로 같은 작품을 창작할 수가 있다 일찍 프랑스의 모파상과 로시아의 체호브는 같은 시간에 애완견을 둘러싼 비슷한 소설을 창작해냈던 것이다 이런 경우 누가 누구를 모방하였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결론
상기 분석과 종합에 근거하면 우리 동시창작에서 나타난 엄중한 페단은 반드시 엄격히 검토하고 철저히 시정하여야 한다고 본다
우선 상기 거론된 관계 작가들은 자기의 작품이 우에 렬거한 어느 경우에 속하는가를 실사구시적으로 해명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창작실제를 존중하여야 할것이며 또한 가슴 아픈 분석과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된다고 본다

다음 우리 독자들은 무턱대고 상기 관계작가를 비방하거나 모욕할것이 아니라 그들의 해명을 리해하고 존중해 주면서 그들의 창작태도를 바로 잡는데 따뜻한 충고를 주어야 할 것이다

만약 창작이 모방이라고 하면 상기정황은 모두다 아무런 문제로 될 수가 없을것이다 그러나 창작은 절대 모방이 아니라 개성적이고 량심적인 작가들의 심미적인 새로운 위대한 창조이기 때문에 상기문제는 엄중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창작을 <<모방>>이라면서 그런 <<모방>>을 그 어떤 새로운 <<발전>>이요, 그 어떤 새로운 <<창조>>라고 하는 것은 창작을 모독하는 절대 용납할수가 없는 망설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창작은 절대 모방이 아니라는 것을 명기하고 피타는 노력을 다 하여 남이 창작하지 않은 그런 나만의 작품을 창작하기 위하여 떨쳐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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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 ]

3   작성자 : 동감
날자:2013-09-26 16:49:56
내 속이 다 후련하네요
2   작성자 : 동감
날자:2013-09-26 16:49:35
내 속이 다 후련하네요
1   작성자 : 최균선
날자:2012-09-17 19:15:28
참 좋은 글입니다. 문제를 확실하게 파헤쳤으며 론건가 충분해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모방이 딴게입니까? 글자, 단어를 바꾸어놓으면 새창작입니까? 시창작은 시적발견이 생명이고 불새에게 나래를 달아주는 계기가 되는데 이 시점에서 시창작에서 모방은 죽음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문제점을 잘 지적하셨는데 뒤에서 무마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런 경향을 그냥 놔두면 만연될것이며 아닌보살할것입니다. 잘 지적하셨는데 문인의 지성으로 그랬는지 조금도 감싸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 배웠씁니다. 감사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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