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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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한국인과 조선족의 문화갈등 해결 방법
2013년 07월 14일 09시 57분  조회:6471  추천:19  작성자: 김문학
6. 한국인과 조선족의 문화갈등 해결 방법

“신조선족”이 국내 대도시 공간, 특히 海外로의 월경은 異文化와의 빈번한 만남을 의미한다.
異文化와의 만남은 또한 異文化에서 오는 “異文化偏見,偏向”이 반드시 동반되는 법이다. 알기 쉽게 실례를 들어 얘기하면 조선족이 고국(조국)인 한국에 대거 진출하여 노동력 수출자로서 살면서 현지 한국인과의 갈등, 한국인으로부터 받는 편견, 차별, 멸시 등은 같은 겨레에 대한 일종의 “異文化偏見, 偏向”인 것이다.

이럴 경우, 하나 망각해서는 안 될 특기의 사항이 있다. 즉 “한국”대 “조선족”은 기실 “異文化”대 異文化“의 조우인 것이다. 서로 100년의 各自生活圈에서 獨自的으로 形成된 思考樣式이나 文化자체가 상당히 이질성을 띠고 있었다. ”한겨레“ ”핏줄“이란 막연한 동질감, 유대는 이 異文化의 허들을 넘어서기에는 너무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異文化의 허들과 담 벽은 높고도 경고하다.

따라서 異文化에 대한 무지, 몰리해로 인해 처음부터 자기문화 우위의 시각에 서서 異文化를 폄하, 경멸하는 태도는 매우 강한 경향성으로 노정된다.

이문화에 대한 타 집단에 대한 편견, 편향을 “오리엔탈리즘”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말하는 “오리엔트”는 “서양”에서 바라본 “동양(동방)”을 의미한다. 팔레스티나 출신의 미국 비교문학가, 문화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said Edward W)가 1978년 출간한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에서 제기한 개념이다.

“우리는 이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문화를 표상할수 있을까?”하는 문제의식을 책에서 던진다. 그의 물음은 지구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인간, 문건, 문화, 경제의 직접 간접적 교류가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 인류사회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의 “발견”은 지대한 의미를 갖고 있다.

사이드는 여직껏 단순히 <동양학>을 의미했던 오리엔탈리즘을 “<동양>과<서양>이라 칭해지는 것 사이에 설정된 존재론적, 인식론적 구별을 바탕으로 한 사고방식”이라고 재정의 한다.

여기서 “오리엔트”는 협의적으로는 중동지역을 칭하지만 광의적으로는 지역과 상관없이 사용되며 그것에 동반되는 <오리엔탈리즘> 또는 “구종주국”대 “구식민지” “선진국”대 “발전도상국”이라는 양자관계에 있어서 전자가 후자에 대한 잠재적 우월의식이나 편견, 편향을 가리킨다.

사이드는 이 책에서 푸코의 언설적 개념을 원용하여 서양지식인, 서양인이 비서양 지역에 대해 산출시킨 “후진성, 정체성, 적대성, 비합리성..... ”등 마이너스적 표상으로 획일하게 맞추어 평가절하 했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자가 우월주의에 안주한 서양이 비 서양에 대한 획일적인 편견, 평향 그것이었다.

사이드는 그 후에도 서양지식인의 같은 맥락의 잠재된, 편견 설을 대위법적 해독(對位法的解讀)으로 알려진 <<문화와제국주의>>(1993)에서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늘 현대 세계사상을 리드해왔다. 사이드는 이문화의 월경적 글쓰기를 구사한 경계를 넘은 위대한 지식인으로서 세계정신사에 남을 것이다.

물론 異文化,他者에 대한 완벽한 이해, 그 완벽한 표상이 이론적으로 至難이란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오리엔탈리즘”적인 편견, 편향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상호이해, 존중의 대안이 열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오리엔탈이즘”은 서양, 서양인의 전유물만이 아니다.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 동양내부, 즉 동아시아 내부에서도 서양이 우리에게 행사했던 동류의 “오리엔탈리즘”이 엄연히 존재해왔으며 또 지금도 농후한 색채로 우리의 교류를 먹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최근 문화인류학자들은 “역광(逆光)의 오리엔탈리즘” (아오키 타모츠)으로 지칭한다. 필자는 그것을 원용하여 “역발적 오리엔탈리즘”으로 지칭하고자 한다. 일본이 과거 대만을 위시로 조선반도, 만주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행사한 것은 그 슬로건이나 발상이 그 얼마나 아름다웠음에도 불구하고 피식민지 민족에게 남긴 상처, 민족의 드라우마와 함께 “역발적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고루하고 후발적인 정체성, 비합리성, 우매성, 미개성...”등 일본지식인과 대중의 표상으로 점 찍혔던 “조선”과 “지나(중국)”를 그들은 그대로 서양인이 동양인에게 행사했던 “오리엔탈리즘”을 답습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인과 조선족의 만남은 또 비슷한 편견, 편향으로 노정되었는데 한국인의 조선족에 대한 “후발성, 미개성, 비위생성...”등 일본인이 과거 조선인에게 표상했던 같은 표상으로 “조선족”을 폄하,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과 조선족의 갈등은 사실 이문화에 대한 몰이해, 편견의 “역발적 오리엔탈리즘”의 팩터적 비중이 큰 것이다.
조선족이 한국인에게 행사하는 이문화 편격 역시 똑같은 “역발적 오리엔타리즘”이란 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인에 대한 조선족의 표상은 대개 “깍쟁이, 인심 박하고 인정사정없다. 같은 겨레, 민족인데도 정을 느낄 수 없다...”와 같은 부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한 것은 결국 한국인에게 향해진 조선족의 역발의 오리엔탈리즘이 아닌가.

중앙민족대학 조선어문학부의 김용택교수의 담론에 의하면 조선어시간에 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한 이해”란 제목의 글을 쓰게 한 결과 2/3학생이 한국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갖고 있다고 했다. (2009년 9월)

10년전 조선족이 한국의 차별대우 속에서 “옛날 일본왜놈보다 더 고약한 한국놈”하는 표상이 있었는데 필자는 <조선족개조론>에서 그 표상에 대해 이문화 이해의 시각에서 비판은 가창력이 있다.

비판하기는 쉬우나 이해하기는 어려울까? 조선족이 이제 세계의 이문화 지역공간으로 침투하면서 비판도 좋지만 안일한 비판을 속으로 삭혀 하나의 이문화이해의 “청명한 청주”로서 걸러내는 방법도 습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역발적 오리엔탈리즘”을 超克하는 방법이다.

“역발적 오리엔탈리즘”을 “超克하는 方法”으로 필자는 한국인과 조선족은 상호인식에서 同一性, 같은 民族-겨레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민족, 같은 핏줄이란 안일한 관념에 안주하여 모종의 “응석부리기”로 조선족은 한국에 대한 기대가 지대했다. 기대가 큰 만큼 돌려받는 失望도 큰 법이다.

“통일 민족, 겨레”에서 되돌아오는 컬쳐쇼크도 컸을 뿐만 아니라 그 안일한 인식에서 오는 “응석부리기”는 다시금 “공격하기” 또는 “반발하기”로 전환된다.

한국인측도 마찬가지다. 반세기, 백년이나 이산돼 중국에서 살아온 동일민족, 겨레의 2,3세를 안일하게 여전히 “동포”,“교포”라고 생각하여 상대해오다가 이질성 때문에 갈등을 느끼고 차별로 편향화 되어버리는 성향이 강하다.

한국인의 혈연지역주의적 사고는 외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까지 “한국인”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작년 한국에서 초청강연을 했을 때 주최 측이 필자에 대한 연사소개를 “김문학선생님은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교수입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당장에서 “한국인 교수가 아니라. 재일 조선족 출신입니다.” 라고 소개자의 표현을 정정해주었다.

조선족은 중국에 있을 때보다도 오히려 한국이란 모국, “同一民族”이라고 인식했던 한국인과 직접적 접촉을 통하여 자기 동일 지속성, 즉 아이덴티티를 “중국조선족”으로 다시 귀추 하고자 한다.

그 사실을 “감자”라는 식물을 동원하여 관찰하기로 하자. 소년시절에는 필자의 할머니가 가꾸던 채마밭에서 감자를 캐던 먼 기억을 되살려 본다. 할머니의 감자 농사는 진정 “석과누누(碩果累累)”라는 四字成語로 표현할 만큼 언제나 풍작이었다. 그래서 감자수확 철이면 할머니를 도와 감자 캐는 일이 즐거웠다. 가지 과의 다년초요 塊狀의 지하경이 감자인데 그것은 그야말로 크고 작은 감자알로 “주렁주렁”달려있었다.

그런데 지상경에는 잎이 자라고 꽃이 피는데 꽃에서 감자열매가 열린다. 청포도 알만한 연두색 색깔에다가 익으면 황금빛에 가까운 황금열매로 변하는데 그 맛은 좀 떫은 감미에 달콤한 맛이어서 별맛이었다.

지하괴상의 감자와는 同根이지만 이 청포도알 형태의 열매는 모양도 맛도 전연 이질적이다. 말 그대로 “同根異果”의 양상이다.

필자는 이 감자와 감자의 지상경에 열린 同根異果의 異質性으로 한국인 “감자”에서 열린 조선족의 “청포도열매”로 인식하는 것이 매우 타당하다고 본다.

한국인과 조선족은 이렇게 이미 “우리”로 이름 짓는 “民族”은 엄연한 “他者”로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民族”을 바라보는 정의의 기준은 많이 변하고 있다. 사실 “民族”이란 단어는 일본에서 창조된 단어로서 동아시아에서 오늘날 “민족”이 전파 수용되어 정착된 것이다.

영어에는“民族(민족)”에 완전히 상당한 단어는 없고 people, nation, ethnicgroup, ethnics 등과 문맥에 의해 나뉘어 사용된다. 현재 세계에는 191개 국가가 존재하며 민족은 4000-5000종, 언어는 약 7000종 존재한다는 통계가 있다.

민족이란 보통 일정한 양식화된 민족문화라고 불리는 文化를 共有한 인간의 집단을 말한다.

民族을 인접하는 他民族과의 상대적 독립성을 문화인류학에서는 지금까지 (1)객관적 기준 (2)주관적 기준 (3)객관적 기준+주관적 기준 (4)3세대 경과설이란 이 4개중 어느 하나를 강조하는 입장이 있었다. 좀 더 전개하면 (1)의 경우에는 언어, 종교, 예술 등 객관적 관찰이 가능한 문화를 공유함에 포인트를 둘 것이다. (2)의 기준은 그 집단의 성원들의 귀속의식, 정체성 등 아이덴티티를 중요시 하는 것이다. (3)은 (1)과 (2)를 통합시키는 정의 법 (4)는 한 집단의 적어도 3세대이상의 지속성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조선족은 이미 4세 5세까지 왔으므로 엄연히 하나의 “民族”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 전까지 만해도 “민족”은 인류학에서 고정된 객관실체로서 포착하는 사고가 절대적이었다. 그리하여 “민족”을 고정불변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고착화시키고 변모, 변용하는 그 내실을 외면해왔다. 또한 고정된 “민족”관념은 내셜내리즘에 이용당하는 면이 컸던 것이다.

이 같은 폐단을 간파한 인류학자, 사회학자들은 “민족”에 대한 재정의의 필요성을 감지했던 것이다. 캐나다의 우크라이나계 사회학자 lsajiw. w. w.(이사제프)는 민족 집단을 27종의 定義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민족 집단의 객관성 속성 중 제1위가 지리적 출자 또는 공통적 조상을 들고 있다. 그리고 언어는 제5위로 허락되는데 우리의 상식에서 좀 일탈된다. 특히 아이덴티티(정체성)인 민족의 중요한 팩터인데 제6위에 머물러 있다.

민족에 대한 연구는 “民族學 ”이라고도 자칭하는데 문화인류학 연구에서도 주요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현재 “민족”은 고정된 정태(靜態)적인 것 이 아니라 늘 유동하고 있는 動態的프로세스속에서 사고해야 할 실체라고 인식하고 있다.

어떤 민족의 특징이라고 보이는 것도 그 민족내부에서는 지역 차이에 의해 농담(濃淡)이 생기며 계층차도 보인다. 민족주의 역시, 어떤 민족이 자신이 민족문화의 중심부분을 자기 칭찬함으로써 민족단합에 이용하면서 때로는 그것이 거세찬 사회운동으로 편항 되기도 한다. (아야베츠네오<<알기쉬운 文化人類學>>2006)

이러한 “민족”의 변천의 추세에서 맞추어 보아도 한국인과 조선족의 그 “民族”동일성의 內實은 이미 분화되어 상당히 이질적 “민족”으로, “他者”로 변모를 이른 것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질성을 인식하는 것은 分裂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서 생기는 갈등, 이문화 갭을 인식하고 그것들을 통합적으로 해결하는 대안을 찾는 길을 의미한다.

요컨대 한국과 조선족이 안이한 “동일민족”의 스테레오잎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상대를 서로 이질 된 “他者”로서 인식하고 바라보는 새로운 의식을 가져야 한다.

자신을 가장 아는 것도 아마 자기 자신일 것이며, 그러나 자신이 가장 보아낼 수 없는 것 역시 자기이다. 그러므로 이질 된 가치관과 문화로 “우리들”이라 불리 우는 “他者”를 인식함으로써 자기인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의 긴장감이 풀리고 편안해지면서 상호인식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행할 수 있으며 따라서 서로 타자를 존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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