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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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근대 재발견·100년전 한중일》

(39) “련애”의 발견
2013년 11월 30일 17시 18분  조회:5362  추천:12  작성자: 김문학
 근대 재발견 100년전 한중일(39)

“련애”의 발견

김문학
 
    "련애”하면 오늘날 공기와 물 같이 지극히 당연지사로 보편화된 말이지만 그 관념과 단어는 근대화과정에서 서양에서 수용한것이다.

  “련애”라는 단어는 1847년~48년 메드 하스트에 의한 《영화사전》에 가장 일찍 등장한다. 그러나 그 말이 정착된것은 1887년경 일본에서였다. 일제한어로 중국이나 한국에서도 일본을 통해 수입되는 때가 대력 20세기초기라고 전해진다.

  중국 상해출신의 재일 비교문화학자 장경교수는 “련애는 서양의 근대와 함께 중국과 일본에 수용되였으나 일본의 근대화가 빨랐던것과 같이 ‘련애’의 수용도 일본측이 역시 앞섰다”고 지적한다.(《련애의 중국문명사》 1993년)

장교수는 중국이 늦어진 원인을 이문화사고체계의 도입은 중국 전통존중의 리유로 배척했다고 판단한다.

   “련애 수용을 보면 일본에서는 메이지 20년(1887년)에 후타바테이(二葉亭四迷)의 《부운(浮雲)》과 같은 치밀한 구성을 갖고있는 근대소설이 증장하며 서양의 련애에 대한 리해의 깊이와 흡수의 조기적양상을 로정했으나 동시기 중국에서는 근대소설은 아직 생성되지 못했다. 중국 최초의 본격적 서양소설의 번역마저도 일본의《부운》보다 21년이나 뒤늦어 발간된다. 량국의 문화인은 전기나 가스 등 문명개화의 혜택을 받으면서 인문과학, 우선 문예면에서는 이문화를 어떻게 수용할것인가란 점에서는 결정적인 이질성을 보여주었다.”
                                         
   일본 근대문학의 효시인《부운》은 일본 근대의 시대적특징이 포함되 있으며 당시 일본사회가 남녀교제를 장려하고 자유련애를 제창한 사실을 알수 있다. 1890년대의 리혼률이 매우 높았으며 외국 식자들도 주목할 정도였다.

신녀성의 발랄한 등장과 더불어 일본의 근대련애는 문화인을 중심으로  “련애결혼”을 리상으로 간주하면서 련애결혼을 동경하는 녀서오가 보수적부모사이의 갈등도 생겼다.

  당시 문화인과 미인, 선생과 녀학생사이의 련애, 결혼이 류행병처럼 퍼지면서 근대 일본의 “련애”혁명이 활발히 전개되였다.

   일본과 같이 중국에 전달된 서양의 련애는 하나는 문학작품에 나타난 정서적표현의 세계, 또 하나는 서양의 문화습속으로서의 련애였다. 20세기 초기까지 서양인의 “련애”는 지극히 불가사의한 세계였으나 서서히 련애를 수용하기 시작한다.

   서양의 문명에 밝고 녀성의 자유와 련애의 자유를 추구한 일부 지식녀성, 신녀성들속에서 련애는 서양수용의 좋은 문화현상이였다.

  일본류학을 통해 개안한 혁명가 추근 역시 서양의 자유로운 련애관념을 수용하면서 리혼하게 되며 신녀성으로서 녀성해방과 청조타도운동에 목숨을 바친다.

  그런데 일본과는 비교적 늦게 “련애”를 수용한 중국에서는 서양적련애에 대해 문화풍습으로 인정한 때는 20세기에 들어서였으며 특히 지식인사회와 부유층 계급에서 녀성의 사교자유와 련애자유를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부모가 정해준 결혼에 불만을 품은 청년들이 많이 나타나고서부터였다. 중국 근대의 련애가 “혁명”과 밀접히 련계돼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손문은 로정모라는 고향의 녀성과 결혼이 정해졌으며 결혼하여 아이까지 몇명 낳지만 결국 “서양의 자유련애사상의 세례를 받은” 그는 리혼하고 그뒤 송경령을 배우자로 맞는다. 신문화운동의 거장인 호적 역시 전족녀성과 결혼하고도 미국류학시절 웰리암이란 미국녀학생과 련애하다가 귀국한다. 결혼후 1921년 10세년하의 녀학생 조패성과 련애에 빠지기도 한다가 안해 강동수에게 들켜 식칼을 들고 죽고살자는 강씨의 해프닝이 벌어진다. 대만에서 1962년 뇌출혈로 죽었을 때 독신으로 있은 그 애인 조패성은 여전히 중국대륙에서 독신녀로 기다리고있었다.

 로신 역시 어머니가 정해준 전족녀성 주안과 결혼했으나 한번도 곁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북경녀자사대에서 강사로 출강할 때 17세년하의 제자 허광평과 련애하게 되며 상해에서 동거하는 때가 1927년이다. 자유련애의 생활을 만끽하던 문호는 당시 국민정부의 법률에 의하면 중혼죄에 걸린다고 한다.(후지이 쇼조)

  곽말약, 림어당, 서지마, 파금 등 문단의 거물들이 실천했던 소탈한 “련애”는 중국 근대문학사뿐아닌 근대사의 련애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있다.
  근대 조선에서도 “련애”사정은 중국이나 일본과 류사한 양상을 나타낸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젊은 남녀의 생활패턴을 가장 크게 바꾼것이 바로 자유련애와 결혼문화다. 당시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조혼제도는 이러한 자유련애와 결혼을 가로막았고 근대 대중문화의 세례를 받은 신녀성들은“로라”의 길이나 “제2의 부인”의 길을 택해야 했다.” (신명직)

   조선에서는 1910년 식민지문화수용을 통해 “련애”가 수용, 실천되면서 근대 련애리론은 여전히 일본의 구리야가와 등 련애론이였으며 김동인 같은 련애의 달인형 문인들도 속속 등장하기도 한다.

  1920~30년대의 신녀성의 등장으로 자유주의 련애, 결혼이 근대사회의 볼만한 풍경으로 자리매김된다.

   련애가 결혼문화의 등장과 더불어 나타난 큰 변화는 일본도, 중국도 그러했지만 조선에서도 상품화된것이다. 자본주의적 금전, 경제관이 침투되면서 금전관계를 매개로 련애와 결혼이 이루어지기가 일쑤였다. 사회주의립장에서 허정숙 등 신녀성들이 금전화된 련애결혼을 비판하였다.

   오늘날의 련애, 결혼에도 금전, 경제적 공지의식이 상당히 침투되였는데 100년전의 자유련애와 결혼 역시 비슷했다는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백년전의 련애자유와 결혼으로 전근대적 결혼양상이 변용하여 안해나 녀자가 “상위”로 부상되며 “남녀평등”이 상식으로 급변해간다.    
           

  100년이 지난 현재 남녀평등이 페이니즘의 극으로 승격하여 녀성이 절반 하늘을 떠멨다는 모택동의 근사한 말이 이미 동아시아사회에 실천되고 보편화되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뿌리는 바로 백년전에서 기인됨을 재발견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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