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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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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소설

밤은 멈춘다
2011년 09월 14일 19시 24분  조회:1205  추천:5  작성자: 김영해





지긋이 눌러오는 압박감.
그 압박감에 나는 숨이 막혔다. 풍겨오는 숨소리가 화끈화끈하다. 손가락에 힘이 가해지며 몸구석구석을 더듬는다.
이건 아닌데… …
하면서도 몸은 그 손가락이 머물었던 자리마다 새록새록 살아난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아오르는 몸때문에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손길안에서 부서지고싶음은 뭣때문일가?
그의 손길을 거부하는 내 몸짓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오히려 와락 안아버리고싶다는 충동에 가슴이 먹먹하다.
나를 원하는 그의 손길은 집요했다.
이제 나는 어디로 흘러갈것인가?
마음속에서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헌데 마음보다 몸이 먼저 빗장을 열고싶어 얼쩡거린다.
난 내 안에서 나가고싶었던겔가?
이건 아닌데… ….
다시 되뇌이는 사이 어느새 살덩이 하나가 흠뻑 젖은 몸속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아찔한 그 느낌.
<<널 사랑할거야.>>
내 맘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이미 열려져있었던것일가? 누군가가 열어주길 바라고있었던것일가?
혼돈하는 사이 출렁이는 밤은 흐른다… ….


못된 계집애같으니라구!
나는 속이 괴여올라 버럭버럭 화를 내고말았다.
옷을 주어입고 핸드빽을 챙겼다. 허둥거리는 나를 보고 남편이 뻑 소리질렀다.
<< 어딜 가는거야?>>
<<나 급히 갔다와야 할데가 있어요. 당신이 애 좀 챙겨서 학교 보내세요.>>
<<당신 왜 요즘 맨날 펄럭거리고 다녀? 또 무슨 일 꾸미는거 아니지?>>
<<일은 무슨 일?!>>
내쪽에서 버럭 역증을 냈다. 남편의 말속에 숨은 뜻을 나는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 그놈의 출국붐때문이였다. 돈을 벌어서 잘 살아보겠다는 내 욕심과 여자는 착실히 집구석을 지켜야 한다는 남편의 고집은 어긋나고있었다. 나는 어디론지 떠난다고 윽윽 벼르고 남편은 안된다고 가로막는 바람에 둘사이는 팽팽해져있었다. 혹 둘중 누군가가 긴장이 풀려 느슨해지기라도 하면 버티기에서 지기라도 할가봐 나도 남편도 신경이 송곳처럼 날카로와져있는 상태였다.
<<그럼 어딜 뭐하러 바람같이 달려가는지 말해봐.>>
<<수연이한테 가요. 됐죠?>>
<<거긴 왜?>>
급해하는 내 모습을 무시한채 남편은 질문에만 열중하고있었다. 콱 숨이 막혀왔다.
<<갔다와서 말할게요.>>
짜증섞인 남편의 목소리가 발뒤축에 매달리거나 말거나 나는 문을 차고 나와버렸다.
부랴부랴 역으로 달려가면서 속으로 제발 수연이한테서 영미의 말은 사실이 아님을 확인할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너무 없는 소문은 안날거잖아.>>라던 영미의 말이 귀에 쟁쟁 울려왔다.
차표를 끊고 차에 앉아서 직장에 전화를 하여 말미를 맡으면서까지도 머리속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여있었다. 언뜻언뜻 차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연하게 이어지는 6월의 록색을 바라보고있으면서도 나는 그 푸름에 젖어들수가 없었다.
수연이, 수연이가?
뭣때문에 나는 수연이땜에 허둥거려야 하는걸가?
남편의 아니꼬운 눈길을 감내한채 무작정 수연이를 향해 뛰여야 했던것은 뭣때문인지를 알지 못한채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몇번이고 엉뎅이를 들썩이며 어디까지 왔는지를 확인했다. 그렇게 확인을 한대야 도무지 방향감이 없는 내가 알수 있을리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러기를 몇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내 20대에 고스란히 곁에 서있어주던 수연이가 살그머니 걸어나온다.
하얗고 동그스름한 얼굴에 약간은 튀여져나온 이마, 고집스럽게 꼭 닫힌 도톰한 입술, 웃을 때에도 얼굴표정이 한점 흐트러짐없는 수연이다.

내 첫사랑이 나를 위해 나를 놓아준다는 멋있는 말을 던진채 표연히 떠나가버린 후의 어느날 아침이였다.
욱~ 우욱~
갑자기 토악질이 나왔다.
먹은것도 없이 나오는 헛구역질이라니?
입안에 남은 씁쓰레한 열물을 뱉어내는데 누군가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어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병원에 갈가?>>
수연이였다. 어릴적부터 한고향에서 자라온 수연이였다. 어쩌구려 대학까지 한곳으로 와서 이제 그림자와같이 되여버렸다. 꽁꽁 내속을 숨기는 수연이와는 달리 덜렁거리는 나여서 수연이는 내 눈빛만 보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수 있다고 그랬다.
병원엘 가?
쌍놈의 새끼!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도 되는거야?
이가 뽁뽁 갈렸다.
<<내가 왜 병원엘 가야 하는데?>>
구역질을 시작한지도 며칠째다. 나는 나를 알고있었다.
<<너 가야 되는거 아니니?>>
은근히 고집스러움이 묻어나고있는 말투였다.
근심스러러워하며 나를 바라보는 수연이의 눈빛은 모든걸 다 알고있다고 말을 하고있었다.
그날 나는 결국 수연이의 손에 이끌려 차거운 수술대에 오르고야 말았다. 첫사랑을 떠나보낸지 한달만에 나는 배속에서 자라고있는 살점 한덩이를 무참히 떼여버리고말았다.
수술대에서 금속도구들이 내 하신속을 드나들며 남기는 그 통증을 이를 깨물어 참으며 이제 사랑따위는 믿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때가 바로 내 20대였다.
수연이만 보면 웬지 발가벗은 느낌이여서 수연이를 보기가 창피했던 20대, 하지만 수연이와 같이 아니할수가 없었다. 수연이만 나를 알고 나를 리해해줬으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연길에, 수연이는 도문에 있으면서도 항상 련계를 끊지 않았고 가끔씩 만나곤 했었다. 수연이나 나나 평범한 출근족이기는 다 마찬가지였지만 둘의 삶의 방식은 완연 달랐다. 나는 주위의 사람들과 어울릴줄도 알았고 술상에서 둥글게 분위기를 열어갈수도 있었지만 수연이는 떠들석한 장소부터 거부한채 항상 조용한것을 즐겼다. 수연이를 만날 때마다 세월속에서 변함없이 청순한 수연이를 보면 어쩜 저렇게 살수 있을가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이제 세파에 어지간히 물든 내가 짜증스럽고 그게 수연이탓인듯 수연이와 시까스를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하지만 헤여지면 금방 궁금했고 어떻게나 수연이를 마주하고있어야 내 맘은 평형을 이루고 편안했다. 내 부족함을 수연이의 몸에서 찾고있는 느낌이랄가. 그런속에서 이제 나와 수연이는 30대의 문턱을 넘어서고있었다.


내가 수연이를 만나본지도 이제 석달이나 된다.
석달전의 그날 내가 이르러보니 수연이는 혼자 앉아서 오렌지쥬스를 홀짝이고있었다.
나를 본 수연이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비껴나갔다.
<<요즘 뭐하는데?>>
<<그냥 그렇지 뭐. 출퇴근하고 밥지어먹고 자고. 넌 안그러니? 근데 갑자기 왜 왔어? 올려면 일찍 오던지 할거지. 그래야 나랑 수다랑 떨구 그럴수 있잖아?>>
<<오,그냥. 집에 있다가 갑갑해서 숨통이나 트일려구. 오늘 축구경기 어떻게 됐어?>>
갑자기 물어오는 수연이의 말에 나는 얼떠름해지고 말았다.
축구경기라니?
그제야 오늘 연변축구팀이 홈장경기를 치른 날임을 상기해냈다.
<<언제부터 축구에 그렇게 관심이 생겼니? 어, 맞다. 니 남편이 축구팬이라 그랬지?>>
<<응. 실은 오늘 남편이 축구구경 온대서 함께 올려했는데 남편이 먼저 왔었거든. 혼자 집에 있을려니까 은근히 부아통이 터져서 나도 올라와버렸어.>>
수연이의 말을 들으며 쿡 웃어버리고 말았다.
얌전한것 같으면서도 먹혀들어가지 않을만큼 단단한 구석이 보이는 수연이였으니까 그럴법도 했다.
<<나도 확 한국이나 가버릴가?>>
<<뭐야?!>>
수연이의 느닷없는 말에 나는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한국이라니?
<<에이~ 네가? 그냥 해본 소리지?>>
수연이가 샐쭉 웃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 들었니? 그런 생각은 내게나 어울리는거야. 넌 아니잖아. 집에 무슨 일 있는거니?>>
<<그런건 아니구. 그냥 요즘 들어 가끔 어디론지 훌훌 떠나고싶어서 그래.>>
수연이의 례사롭게 뱉어내는 말을 들으며 나는 그냥 수연이가 주위세상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울뿐이라고, 조금 흔들리다가 한치도 드텨앉지 않은채 자리지킴을 할거라고 믿고있었다. 내가 알고있는 수연이는 도에 넘는 일을 하지 않는 그런애였다.
학생시절에 수연이가 영철이와 사귈 때였다. <<너희들 어디까지 갔니? 손잡았니? 키스했어? 아님 속도위반?>> 이렇게 시까스르는 내앞에서 수연이는 토라지군 했다. <<넌 연애하는것이 소꿉장난인줄 아니? 난 마음이 안가면 몸도 못가. 마음이 가도 정규적인 절차를 밟기까진 날 지킬거야.>>하면서말이다. 그때마다 <<헹, 지금이 어느때라고 그러니? 난 느낌대로 살거야. 내가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저지르고 말거야.>> 하고 나는 발끈했다. 예고도 없이 내 첫사랑이 떠오르며 내가 구접스럽게 느껴졌던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 눈을 팔아버린 영철이때문에 갈라설 때까지도 수연이는 처녀성을 고스란히 지키고있었다. 그런 수연이때문에 나는 가끔 어지간히 화가 나있군 했었다.
그런 수연이가 출국할 생각을 했다니?
그냥 생각으로 머물다가 사라질게 뻔했다.
그날 나는 수연이의 말을 그냥 귀등으로 흘려버렸었다.


헌데 아침에 걸려온 영미의 전화는 나에게 있어서 충격적이였다. 도무지 믿을수가 없었다.
수연이가 그러고 있다고?
언젠가 무심코 던졌던 내 말이 떠올랐다.
<<수연아, 나 애인이라도 사귈가봐?>>
<<무슨 소리 하는거야?>>
<<지금은 애인 없는 사람은 반편이라 그러잖어. 남 하는대로 해보는거지 뭐.>>
<<넌 항상 그렇게 생각하는게 탈이야. 세상에 발맞추려고 하지 마. 너 하나 세상돌아가는데 안맞춰 산다고 서운해할 사람 아무도 없어. 항상 마음속에 도덕의 성이라는거 쌓아놓구 살아야지.>>
<<그래두… …>>
이쯤에서 나와 수연이의 대화는 항상 어긋났다.
결혼을 하고나서 수연이는 별로 밖에 나와 돌지도 않았다. 친구들모임에도 가급적이면 빠졌고 언제 어디로 훌쩍 떠나는 법이 없었다. 그러는 수연이를 보며 나는 가끔 나라는 인간이 참 치사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수연이와 대비하면 나는 흐려도 한참은 흐려진 물이였다. 수연이와 마주하고 있을 때마다 나는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군 했었다. 그러면서도 난 수연이를 멀리할수가 없었다. 왠지 나에겐 수연이가 필요했다. 그랬던 수연이가 이제 소문의 줄을 달고다닌다니?
나는 믿을수가 없었다.
내가 모르는사이 또 다른 수연이가 되여있단말이가?
내가 알고있는 수연이는 단지 그렇게 보이고자 했던 수연이의 과거뿐이란말인가?
나는 의문덩어리를 안은채 차체에만 몸을 맡겨버렸다. 헌데 말할수 없는 불쾌감과 불안감이 땀에 절은 속옷처럼 끈적끈적 몸에 달라붙는 이 기분이라니?
뭔가 터질것 같은 이 느낌.
그 불안의 근원지를 알수 없는 허탈감에 가슴이 알싸하니 아파왔다.
이제 수연이를 만나면 난 어째야 하지?
이제 내가 다시 알아가야 할 수연이는 어떻게 되여있지?
수연이의 소식이 이렇게 나를 미치도록 황황하게 만드는 이유는?
머리속이 복잡하다. 이대로 멈추고 싶다. 가던 길도 생각도 멈추고싶다.
차체가 갑자기 심하게 흔들린다. 속이 울렁울렁하다.
문득 그 남자가 떠올랐다.
내 몸을 원하던 남자.
나한테서 수치심까지 깡그리 빼앗아가버린 남자.
그 남자는 무얼 하고 있는것일가?


<<너랑 자고싶어.>>
나를 만난 남자의 첫마디였다.
<<안될것도 없지 뭐. 근데 왜?>>
나역시 직설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를 보면 항상 궁금했었거든. 남이 머라든 자기의 느낌대로 살아가는 네가 맘에 들었다. 너를 볼 때마다 저런 여자랑 자고나면 기분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참 묘했어.>>
남자의 눈빛속에는 종잡을수 없는 그 무엇이 스쳐지나고있었다.
이 남자랑 잠을 자?
가슴밑창으로부터 뭔가가 온몸에 스멀스멀 퍼지기 시작했다.
<<넌 내가 싫으니?>>
<<아니.>>
<<근데 넌 왜 항상 비켜서있었던거니?>>
바보야, 것두 몰라? 나때문에 네가 나쁜 남자 되는것이 싫었으니까. 넌 이미 나의 몫이 아니였으니까.
쭈욱~
잔이 비여진다.
<<난 혼자가 좋았던거야.>>
중얼거리는 내 눈은 허옇게 비였을것 같았다.
빈 술병들이 울바자처럼 그 와 나사이에 촘촘히 세워질 무렵 나는 한껏 취해있었다.
드디여 내 몸이 뉘인곳은 어떤 모텔의 작은 방안.
그곁에 가지런히 누웠는 그 남자.
취해버린 몸과 취하지 않은 머리가 싸움을 할 즈음 나는 이미 그 남자의 여자가 되여있었다.
나는 언제까지 그 남자의 여자가 되여있을수 있는걸가?




집안은 한산하리만친 간소했다. 침실 하나에 거실 하나 딸린 집이였다. 거실에는 텔레비죤 한대, 정수기 한대, 컴퓨터 한대만이 당그랗게 자리를 지키고있었다. 불필요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나를 마주하고 앉은 수연이의 눈빛은 차분했다. 원망도 후회도 없이 하얗게 비여있는 눈빛에서 나는 아무것도 읽을수가 없었다. 나도 하얗게 비워지는 기분이였다.
<<왜 그랬는데?>>
<<뭘?>>
끝까지 아닌보살하는 수연이가 불쌍했다. 어렵게 찾아낸 수연이다. 수연이의 주위의 사람을 줄줄이 거쳐 수연이의 거처를 찾아내는동안 수연이의 핸드폰은 내내 꺼져있었다.
<<왜 이러고 사는가말이다?>>
<<낮에 영미한테서 전화왔었어. 자기 말을 듣던 니가 심상치 않으니까 니가 올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핸드폰을 끄고있었던건데…>>
수연이는 내 물음을 외면한채 꺼진 핸드폰얘기를 하고있었다.
<<핸드폰 끈거 대수니? 내가 그거 묻는거 아니잖아?>>
내 목소리가 저도모르게 한옥타브 높아지고있었다.
<<내가 어쨌는데? 이러고 사는데는 어쨌다고 그러니?>>
착 깔린 수연이의 목소리에는 단단함이 엿보이고있었다. 불륜의 정당성의 답안을 나는 수연이에게서 찾을수 있는것일가? 커진 내 눈을 일별하던 수연이의 탱탱하던 얼굴이 느슨해지고있었다.
<<어디까지 알고있는거야?>>
정말 어디까지 알고있는걸가? 수연이한테 애인이 생겼다는 영미의 얘기뿐이다. 그것마저 내가 믿고싶지 않은 이야기인걸 보면 나는 알고있는것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수연이가 정말 애인이 있는지도, 왜서 그렇게 되였는지도 , 나중에 어떻게 될것인지도 아무것도 모른채로였다.
<<그냥 니한테 남자 생겼다는 얘기밖에 들은게 없어.>>
사실이였다. 다들 그 말외에 나한테 해준 얘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체념을 해버린듯 고개만 까닥거리며 그린듯이 앉아있는 수연이.
깊고 아득한 수연이의 눈빛을 따라 나는 수연이의 과거속으로 걸어들어가고있다.


수연이는 지금 체육장문어구를 지키고 서있다. 경기가 막 끝나기 5분전이다. 이제 5분만 지나면 저 문어구로 사람들이 밀려나올 판이다. 경기에서 연변팀이 이겼을지 졌을지 수연이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밀물처럼 쏟아져나오는 사람들의 물결속에서 그 얼굴을 찾을수 있을가가 걱정될뿐이다. 수연이는 자기의 직감이 빗나가길 바랬다.
어제 아빠트단지아래에서 수연이는 앞서가는 남편을 보았었다. 막 부르려다말고 귀를 기울였다. 어딘가에 열심히 전화를 하고있는 남편이였던것이다.
<<… …영선이도 아홉시쯤이면 출발할수 있다더라. … …그냥 차비로 50여원 있으면 되겠지 뭐. 입장권은 내 친구가 알아서 해준다니까… …>>
수연이가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줄도 남편은 모르고있었다.
<<어디로 뭘하러 가는데요?>>
<<어?>>
느닷없는 수연이의 말소리에 남편은 뒤돌아보며 흠칫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뿐.
<<응, 연길에 있는 민수 알지? 래일 축구경기 한다고 보러 오래서 그래. 관람권 얻어준대.>>
<<그래요? 그럼 저도 같이 가요.>>
<<시간되면 맘대로 해. >>
남편은 심드렁했다.
이게 아닌데?
영선이라는 이름과 아홉시,차비, 입장권, 축구경기가 어느새 수연이의 머리속에서 하나의 문장을 구사해내고 있었다.
아홉시쯤에 영선이랑 같이 차비만 준비해갖고 축구구경 간다?
헌데 남편의 말은 그게 아니잖는가?
수연이의 마음속에서 불신임 하나가 슬슬 꼬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수연이는 남편한테서 불안감 같은것을 느끼고 있은지가 하루이틀일이 아니였다. 언젠부터인가 수연이에게 외식할 일이 있을 때면 남편은 밥 지어먹기가 귀찮다고 아들애를 데리고 외식을 하군 했다. 그때마다 아빠랑 같이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오는 석이녀석의 손에는 늘 값비싼 놀이감이 들려져있었다. 누가 사준거냐고 물으면 아들녀석은 이모가 사준거라고 그랬고 남편은 여자동창생이 우연히 보고 이쁘다고 사준거라고 했다. 얼마전 석이가 페염으로 입원했을 때도 그랬다. 수연이가 출근해서 급히 사무를 처리하고 병원으로 가려고 할무렵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도 지금 일이 있어서 애를 병보이러 온 동창생한테 맡기고 나왔으니까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자고말이다. 그래서 한참을 기다렸더니 다시 전화가 왔다. 자기가 일 다 보고 들어왔으니까 절로 찾아오라고 말이다. 투덜거리며 수연이가 병실에 이르러보니 아들애는 신나게 비행기를 갖고 놀고있었다. 또 이모가 사준거라고 했다. 거기에 남편은 동창생이 자기 애의 놀이감을 사면서 함께 사준거라고 덧붙였다. 남편이 물뜨러 나간 사이 애하고 이모네 애가 이쁘던가고 물었더니 애는 이모 혼자 왔더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설마 하면서도 수연이는 웬지 석연치가 않았었다. 아마 모르는 사이 수연이가 남편에 대한 믿음은 쪼각이 나고있었던것일가?
남편이 티비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수연이는 슬쩍 남편의 핸드폰에서 통화기록을 체크해보았다. 아까 아빠트단지에서 통화를 했을 시간대에 찍혀진 번호는 남편친구 민수것이 아니였다. 본시내의 시티폰번호였다. 통화기록을 쭉 훑어보다말고 수연이의 눈이 커지고있었다. 남편의 핸드폰 통화기록에는 그 시티폰번호가 수연이의 핸드폰번호보다 더 많이 찍혀져있었다. 신경세포가 서서히 올올이 일어서고있음을 수연이는 느꼈다. 당금이라도 그 시티폰번호를 꾹꾹 누르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
어느새 사람들이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수연이는 사람들의 물결속에서 낯익은 얼굴를 찾아헤맸다. 그러면서도 수연이는 그 얼굴이 보이지 않기를 내심 바랬다. 수연이보고 오겠으면 같이 따라오라던 남편의 핸드폰은 오전에 수연이가 시간에 맞춰 떠나려고 할 무렵 내내 불통이였다. 통화가 되였다면 수연이는 이렇게 문어구를 지켜서고있지 않을수도 있었다. 남편을 의심하기에는 아직 너무 마음이 약해있는 수연이였다. 점심무렵 어렵사리 통한 전화에서 남편은 이미 연길에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연이는 속에서 뭔가 욱하고 치미는감을 느꼈다. 어제 들었던 통화내용이 어쩔새없이 머리속에 떠올랐었다. 결국 수연이는 오후차를 잡아타고말았다.
문득 수연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다시 눈빛은 암울해지고 말았다. 물먹은 솜처럼 무너져내리는 몸을 가까스로 지탱한 수연이는 급기야 택시를 잡아타고 말았다.
남편곁에 선 사람은 민수뿐이 아니였다. 남편과 민수를 중심으로 여자 둘이 좌우에 각각 하나씩 붙어서있었다. 남편옆에 밀착해서있는 둥근 얼굴의 여자를 보는 순간, 수연이는 아찔하니 현기증을 느꼈다. 언젠가 본적이 있는 얼굴이였던것이다. 바로 남편의 생일날이였다. 그날 남편친구신분으로 생일축하파티에 참가했던 여자에게 남편은 <<넌 술을 못하잖니? 음료나 마셔.>>하며 친절을 베풀었고 아들애 석이녀석은 <<이모, 이모>>하며 살갑게 굴었다. 그날저녁 꼬부장해진 수연이한테 남편은 그랬다. 친구 민수의 안해의 친구인데 자주 술상에 함께 어울리다보니 친구사이로 되여버렸다고 말이다. 민수의 안해는 한국으로 간지 1년이 거의 되여온다. 그런 친구안해의 친구인 여자도 남편이 일본으로 가버린 상태라는것이 수연이의 마음에는 께름직했다. 벌레먹은 과일을 한입 베여먹은 기분이였다. 친구안해의 친구인 여자와 남편이 그 사이사이를 뛰여넘어 친구로 어울린다는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헌데 지금 같이 있는 여자가 그 여자라니? 결국 시티폰번호의 임자는 그 여자라는 얘기가 아닌가? 그사이 남편과 여자는 어느만큼 가까와져있는걸가?
수연이의 머리속은 복잡하게 엉키고있었다.
그날 이후로 수연이는 조금씩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여기저기 발길따라 빙빙 돌면서 시간을 때우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서야 할수없이 집에 들어가는 습관이 생겼다.
전화번호를 뒤져 련락이 끊겨졌던 동창생들도 찾아내고 만나서는 반갑다고 밤새도록 떠들석했다.
이런저런 줄에 매달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을 하나둘 익혀갔고 모임이 많아졌다… …


<<접때 네가 갑자기 연길로 뛰여온것이 그때문이였구나.>>
수연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석달전의 수연이와 나의 만남을 떠올렸었다. 그래서 수연이는 갑자기 한국에 가고팠던겔가? 마치 그곳이 도피소라도 되듯이말이다. 자기가 어딘가로 빠져버리면 모든게 원상복귀되는줄로 수연이는 잠시 착각했었나보다. 그런 상황을 겪고나서도 나한테 아무 티도 드러내지 않은 수연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알싸하니 아파왔다.
<<맞어. 바로 그날이였어. >>
그러고보면 그때까진 수연이는 남편의 부정을 지켜보고섰을 슬픈 여자였을게 아닌가? 그럼 영미의 얘기는? 수연이한테 애인있다는 영미의 얘기는?
나는 그제야 가슴이 조금 트이는감을 느꼈다. 수연이한테 애인이 생겼다는것은 어쩜 시댁쪽에서 만들어낸 얘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렇게 수연이를 믿고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갈라선거니? 어디까지 온거니? 석이아빠하고는 영 서류정리까지 된거니?>>
<<아니, 아직은 별거중일뿐이야.>>
<<더 볼거리도 없잖아? 기어이 현장을 잡아야 믿겠다는 얘기니?>>
<<그게 아니구… …>>
수연이는 수연이답지 않게 말을 얼버무리고있었다.
<<사랑했어요, 사랑했어요, 당신을 사랑했어요~>>
내 핸드폰의 벨소리였다.
찍혀들어온 번호는 남편의것이였다.
<<왜요?>>
<<당신 지금 어디야?>>
<<수연이네요.>>
<<거기서 머해? 무슨 작당을 하고 있는거 아니야?>>
남편의 말소리에는 잔뜩 의심이 묻어나고있었다.
<<작당이라니? 내가 음모가야? 나중에 얘기한다니까 그래요?!>>
<<나 지금 당신때문에 화가 나있거든. 일단은 집에 와서 이야기하는거로 하고. 당신 기억해둬. 한국이든 일본이든 중국국경밖으로는 한발짝도 못나가는거니까 그줄을 알고있어.>>
<<네?>>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겨버렸다.
또 무슨 일이야? 시도때도없이 들볶아서 이제 짜증스러운 남편이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핸드폰폴더를 닫아버리는 나를 수연이는 눈이 올롱해서 쳐다본다.
<<철컥~>>
느닷없는 자물쇠열리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랐다. 반사적으로 눈길은 문쪽으로 날아갔다. 수연이도 몸놀림이 어색해지고 있었다.
다음순간.
<<어?!>>
내 입에서 비명 비슷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내 눈을 믿을수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을 따고 들어선 임자는 흠칫하더니 씩 웃음을 지어보인다.
<<은미가 여기 웬일이니?>>
갱핏한 얼굴에 항상 말하는 눈을 갖고있는 남자.
지금 그 남자의 눈은 뭘 말하고있단말인가?
그는 영철이였다.
<<수연이가 애인사귄다더라.>>하던 영미의 말이 발이 달려 눈앞에서 뱅그르르 돈다. 애인소리는 시댁에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였다. 수연이의 생활속에 실재하고 있는 애인은 영철이였다. 내가 종일 찾아 헤맨 사연의 실마리는 이것이였던가?
<<저녁에 중요한 손님을 만나야 되거든. 옷 갈아입으려고 왔어. 은미도 오랜만에 왔으니 놀다 가라. 나중에 보자.>>
어정쩡해진 나를 일별한채 영철이는 들어올 때처럼 휭하니 나가버렸다.
수연이가 더듬더듬 이어나가는 이야기를 나는 무덤덤하게 듣고만 있다.
<<니가 본대로야. 나 지금 영철이와 같이 있어. 영철이의 안해는 한국으로 간지 이제 5년도 더 되는데 올념을 안한대. >>
수연이가 하얗게 웃는다. 창백한 저 웃음, 해말갛던 웃음이 저렇게 하얗게 비워지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었어야 하는걸가.
<<남편에게 여자가 있는걸 알고나서 난 어째야 할지 막막하더라. 꼬챙이에 쳐들고 누구한테 말할수도 없구 그렇다고 남편한테 앙탈을 부리며 따지기도 싫었어. 내가 그들이 정사를 벌리는 현장을 잡은것도 아닌데 뭐라고 할수 있겠어? 내가 따진대야 기껏 친구들사이 그런 교제도 못하냐구 목이 뻣뻣해질 남편인데말이다. 설사 내가 오해를 했다 치더라도 남편을 믿어버리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많이 쪼각나있어. 남편만 날 떠난게 아니라 내 맘도 언녕 남편을 떠났을지 모를 일이니까.
그러다가 우연한 경우에 영철이를 만났고 난 날 던지고 말았다. 그냥 아무한테나 던지고싶었던걸 면바로 던져진 그 자리에 영철이가 있었던건지도 모르겠어. 오히려 그 상대가 영철이였다는게 다행이다싶었어. 너 그거 아니? 나 여태 영철이를 잊고산적이 없어. 영철이가 다른 여자가 있대서 영철이와 갈라진줄 알어? 실은 영철이가 좋아하는 여자가 니인줄 짐작하고있었기때문이야. >>
<<응?!>>
영철이가 날 좋아했다구?
그걸 니가 알어?
데꾼해진 나를 일별한채 수연이는 담담히 입가에 웃음 한오리 빼여문다.
<<내가 아무리 꽉 막힌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남자를 포용할수 있는 아량까지 없는것은 아니였다구. 하지만 내가 마음에 없는 남자, 그보다도 널 향한 남자의 마음을 붙잡을 생각은 안했어. 그 상대가 너였으니까.>>
나는 이제 죄인이렸다.
내가 죄를 짓지 않음에도 죄인으로 되여버린다는 그 기분 더~럽다!
헌데 가슴이 아프다니?
<<그런데 내가 물러섰음에도 니들은 안이루어지더라. 결혼하고나서도 그것때문에 내 맘속 한구석은 늘 뭔가가 결려있는 느낌이였어. 이러구러 결국 내가 니가 알게 된 이런 사람으로 된게지. 바람난 여자로.. 근데 그거 아니? 떠나는 나를 남편은 붙잡지 않더라. 언녕 내가 떠나길 바라는 사람처럼말이다.>>
수연이의 표정은 처연했다. 저건 분명 버림받은 여자의 표정이지 바람난 여자의 표정이 아니였다.
수연이의 눈에서 맑은 이슬이 굴러떨어지고있었다.
그 눈물에 나는 어느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걸가?
<<난 세상이 싫어. 지금 이 세상이 싫단말이야. 세상이 언제부터 이렇게 변해버렸니? 언제부터 이렇게 내것이 아닌 남자, 여자랑 같이 살아도 된다고 허락이 되여버렸니? 다 그놈의 출국붐때문이야. 떠나간 사람들이 타향살이 외롭다고 짝짓기를 한 탓이야. 난 그게 싫었거든. 나에게도 외국으로 갈수 있는 기회가 없은것은 아니였어. 하지만 가고나면 나도 어쩔수 없이 누군가랑 같이 살게 될가봐 무서웠던거야. 그래서 남아있기로 했어. 남아있으면 나도 가정도 지켜질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남아있는 사람들도 아우성이거든. 떠나가든 남아있든 남의걸 탐닉하는데는 한가지인가봐. 그래서 나도 이렇게 된거 아니니? 내 탓이 아니야! 세상탓이야! 세상이 증오스러워!!!>>
수연이는 드디여 오열을 터뜨렸다. 그러는 수연이를 보며 나는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난 누굴 탓해야 하지?


이윽하니 그를 쏘아보았다.
<<꼭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어?>>
<<이렇게 했어야 했느냐구?>>
<<너한테는 사랑이라는게 뭔데?>>
<<처음부터 수연이를 사랑하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맑고 청순한 수연이가 좋았어.그래서 사랑을 했던거구. 헌데 시간이 지나니 그게 아니더라. 내 눈엔 수연이보다 곁에 선 네가 더 들어왔어. 수연이는 나의 모든걸 닦아주는 대신 너라면 날 있는 그대로 받아줄것 같았어.결국 난 흔들렸던거야. 방황했어.>>
<<그래서 헤여졌던거니?>>
나는 왜 지난 과거를 들추어야만 할가?
<<수연이하고 말했어. 좋아하는 여자가 따로 있다고. 그래서 갈라섰던거야.>>
헉~
수연이도 알고있었다는 뻔한 사실을 나는 모르고있었다.
수연이와 데이트할적마다 나를 끼워주던 영철이를 이제야 알것 같다. 자기 친구도 같이 있다며 기어이 나를 불러내던 영철이, 자기 친구와 내가 무랍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자 리유없이 화를 내며 휭하니 자리를 뜨던 영철이를 이제야 알겠다.
헌데 영철이는 끝까지 나를 몰랐었다.
낯간지러워하면서도 항상 수연이의 곁에 붙어 영철이보러 가던 내 마음을.
수연이와 갈라지고나서 며칠후인 비내리는 날밤, 숙소밖에서 배회하는 영철이의 모습을 창문으로 내다본적이 있었다. 주룩주룩 그치지 않은 비속에서 숙소쪽을 향해 멍하니 서있던 영철이, 온몸이 흠뻑 젖은채 망연한 눈빛으로 서있던 영철이였다. 그를 보면서 내맘속에서도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허나 다가갈수 없는 그, 수연이때문에 다가갈수 없는 영철이였기에 나는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연이와 영철이 ,나는 어긋났나보다.
<<그럼 지금은?>>
<<지금?>>
<<지금은 왜 이 모양이니? 언제까지 날 속이려 했어?>>
<<속일려는 생각 없었어. 우연하게 많이 힘들어하는 수연이를 만났고 이제 수연이를 받아들인것뿐이야. 어차피 인생은 이런거 아니니? 내가 아니라도 수연이는 다른 남자가 필요했을게구. 나역시 고상한 놈은 아닌데야. 전번날 처음으로 널 내것으로 만들면서 참 행복했다. 방광이 팽팽하도록 차오른 오줌을 쏘아버리는 그 기분, 너 알지? 내가 이제껏 갖고싶었던 사람은 너 한사람뿐이였어. 그걸 방탕이라고 해야 하니? 그게 아니잖아. 난 사랑때문이라고 변명하고싶어.>>
그럼 수연이는 어떻게 하는건데?
수연이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무작정 뛰여내려와야 했던 까닭을 이제야 알것 같다.
<<너 그거 아니? 난 요즘 세상 참 살맛 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널 잡을수 있는것은 세상의 덕을 본게 아니겠니? 아무리 자기 생각대로 행하고 사는 너라지만 이전같은 세상에서 날 다시 보기나 하겠니? 륜리며 도덕에 손발이 꽁꽁 묶이는것은 어쩔수 없는거였으니까. 정부고 애인이고 이름들을 달지만 어쩔수없이 남자여자들이 얽히는것을 다들 묵인하고있는 상태니까. 안그럼 어떡하겠니? 반쪽들이 외국으로 가버린 가정들이 얼만데? 난 내 안해가 지금 외국에서 누구의 품에 안겨있을가 가 궁금하지도 않아. 본인은 아니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아니라는 말 믿지도 않아. 세상은 어쩔수 없이 그렇게 되여버린거야. 외로운 인생들이 위로하며 사는거지. 안그래? 나 이제 널 안놓아버릴거야. 넌 내거니까.>>
어느새 힘있는 팔뚝이 어깨를 감싸안는다.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난 어째야 하지?
답을 찾기도전에 흘러내려오는 손길따라 몸이 노긋노긋해지는 그 구접스러운 느낌. 내 몸은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가길 원하고있었다.
이래서 나는 수연이를 보기가 항상 부끄러웠던것일가?


새벽으로 이어지는 늦은 밤.
나는 쏘파에 쓰러지듯이 무너져내리고말았다.
무너진 내 앞으로 남편이 기다렸다는듯이 홱 종이 한장을 내던진다.
<<이게 뭐야?!>>
어딘가 날이 서있었다.
<<뭔데요?>>
나는 엉거주춤 종이장을 주어들었다.
<<내가 뭐랬어? 한국 가면 안된다고 했지? 근데 왜 려권수속용지가 여기 있는거야?>>
<<왜 안되는데요?>>
내 말은 무기력했다. 바람이 불면 날려가기라도 할듯 가벼웠다. 어느새 힘은 내 온몸의 세포마다에서 빠져버려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외국간 사람들중에 99퍼센트는 다 저들끼리 짝을 무어 사는거라구. 정말 가정을 버릴 생각이야?>>
한국의 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남편은 이제 퍼센트수까지 곁들이며 출국한 사람들의 형편을 넘겨짚어말하고 있었다.
<<조금은 가난하더라도 온집식구가 오손도손 모여사는게 좋은거야. 누군 돈이 싫어서 이러구 있는줄 알어? 남아있는것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거라구.>>
남편에게 중요한것은 떠나느냐 남아있느냐였다. 남아있다고 다 가정을 지킬수 있는것일가? 그게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난 할말을 잃고말았다. 수연이의 얼굴과 영철이의 얼굴, 그리고 수연이의 남편의 얼굴과 그 옆에 붙어섰다던 둥근 얼굴의 여자까지도, 그리고 또……
남아있어도 외롭긴 마찬가지였을것이다. 남아있어도 흔들리지 않긴 마찬가지였을것이다. 마음속깊은곳에 고독이 웅크리고 있는 한은.
문득 얼굴이 홧홧 달아오른다.
뜨거운 숨결이 귀전에 느껴진다.
나는 나를 삼켜버릴 그 손길이 그리웠다.
남아있음에 나는 이미 떠나버렸다. 내 맘속 깊이에서 꿈틀대는 그 무엇이 나를 만듬에야.
내 몸속에 남아있는 그 끈끈한 정액과 함께 이대로 멈춰버리고싶다.
욕망을 향한 밤을 이대로 비끄러매고싶다.
밤이여, 멈추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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