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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에 푹 젖은 시인
김응룡
불혹의 나이에 혜성같이 우리 아동문학 동시단에 나타난 김철호군이 또 한묶음의 콩알같이 동글동글 영근 기름기 짜르르한 동시를 보내왔다. 교원생활도 해본적이 없고 더우기는 아동문학과 접촉해본적도 없는 김철호군이 어찌하여 불현듯 동시를 이처럼 잘 쓸수 있을가?
원천이 없는 강이 없고 뿌리가 없는 나무가 없다.
우연하 기회가 동시인을 만들었다
한시기 나는 김철호군과 연변인민방송국 문학부에서 함께 편집사업을 한적이 있다. 그때 그는 이미 소설, 수필, 실화 등 문학작품을 많이 발표했고 또 연변대학 문학반까지 졸업했기에 높은 문학수양을 갖춘 작가였다. 하지만 아동문학은 그와 십만팔천리나 거리가 있었다. 더우기는 동시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이였다. 운명의 작간이라 할가 그는 돌연히 연변일보사의 가자로 자리를 옮겼다. 기자사업이란 세인들이 다 알다싶이 일년 365일 동분서주하는 직업이다. 그런 연고에서인지 그는 연변일보사에 임직한후 아주 드물게 문학작품을 썼다.
그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동시와 접촉했다고 말했다. 몇년전(1995년), 하루는 중국조선족소년보사의 아동문학편집을 담당하고있는 림금산씨가 갑자기 그한테 동시 몇수 써달라고 청탁했다는것이다. 그는 아이들처럼 약속을 어기면 반역자라는 생각이 들어 일요일의 휴가를 리용해서 어린 시절의 동심을 찾아헤매이면서 동시 3수를 써서 월요일에 바쳤는데 뜻밖에도 아주 훌륭하다는 평판을 받았다고 했다. 그중의 한수인《봄잔치》는 행운스럽게도《백두아동문학상》(1996년)까지 받았다.
이 강산
오실 봄
파란 잎 애처녀
산너머
고개너머
캐득이는 아기웃음
아직은
채 안 영근
애기녀한테
애꿎은
바람총각
잔치하러 오신대
이상은 동시《봄잔치》의 전문이다.
이 동시가 동심이 팔딱팔딱 뛰고 너무너무 생동한것은 그가 아이들의 심령속에 들어가 아이들이 하고싶어하면서도 번질수 없는 언어를 끄집어낸것이다. 이를 테면《파란 앞 애처녀》, 《캐득이는 아기웃음》, 《채 안 영근 애기녀한테》, 《잔치하러 오신대》 등의 이쁜 언어조합은 아이들의 시각으로 보아야만이 아장아장 마음에 다가오는 봄을 비로소 잡아낼수 있는 금싸락같은 시어들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끝없고 엉뚱하고 기발하고 신선하고 참신하며 거짓이 없다. 이런 아이들의 심령속으로 들어가는것은 아주 힘들고 간고한 작업이다. 김철호의 동시재주가 갑자기 빛을 뿜은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의 성격을 보면 아이들처럼 생활속에서 모든것이 그처럼 단순하다. 쉽게 격동되고 쉽게 실망하고 쉽게 즐거워하고 쉽게 비애에 잠기고… 때문에 그는 복잡한것을 싫어하고 활기롭고 유쾌한것을 좋아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동심에 묻혀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어느곳, 어느 주택구역에서 살든지간에 그의 이웃집들의 아이들은 모두 그와 다정한 벗으로 되군 했다. 그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올 때는 마을의 아이들이《우야!》하고 그한테로 달려와 스스럼없이 어깨에 등에 가슴에 매달려 참새들처럼 재잘거렸다. 그는 이런 아이들이 싫을대신 언제나 한없는 즐거움을 느끼였다. 그는 아이들속에 들어가면 하루동안의 온갖 번뇌와 시름을 잊고 활락속에 잠기군 했다.
이런 생활속에서 그는 저도모르게 한발작한발작 아이들의 동심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갔고 따라서 아이들의 언어를 마음속에 차곡차곡 챙겼다고 했다.
전국권선생은《시창작리론연구》라는 저서에서《생활속에서 소재, 주제에서 감정, 형상에서 언어까지 이러루한것은 다 장기적으로 육성하고 축적한것이 우연한 기회에 령감이 돌연히 몰려와 그것의 부추킴을 받아 머리속에 간직했던 재료들이 신속히 기묘하게 예술의 전일체로 된것이다》라고 썼다.
김철호의 경우가 바로 그런것이다. 아마 림금산씨가 그에게 동시를 써달라고 청탁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아무리 많은 동시의 재부를 갖고있다고 해도 그것이 분출되여 해볕을 보기가 어려웠을것이다. 그는 림금산씨의 청탁을 받고 동시를 쓰면서 자기의 천부적재질을 놀랍게 발견한것이다. 특히 동시《봄잔치》가《백두아동문학상》을 받은것은 그에게 있어서 큰 충격으로 되였고 따라서 그것을 계기로 동시창작에 심혈을 몰붓게 되였을것이다.
김철호의 동시 특점
그의 동시의 특점은 강한 형상성에 있다.
어느 비가 오는 날 아침이였다. 그가 창문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는데 갑자기 시야에 갖가지 색갈의 비옷을 입은 아이들, 갖가지 색갈의 우산을 든 아이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희희락락거리며 지나가고있는 모습이 안겨왔다. 그 행복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온몸이 찡해나는 감동의 전률을 받고 기발한 착상이 머리에 떠올라 단숨에 다음과 같은 동시를 썼다.;
노란 비옷
아이는
노란 꽃아이
빨간 우산
아이는
빨간 꽃아이
비오는 날
우리 모두
예쁜 꽃아이
ㅡ《꽃아이》전문
우리는 이 동시를 읊노라면 한폭의 동화가 아름다운 수채화속에서 반짝반짝 빛을 뿜는 감을 느끼게 된다. 그 수채화속에서 우리는 방글거리는 아이들의 얼굴과 비바람의 세례를 받으며 우썩우썩 커가는 그 애들의 모습 및 그 애들의 찬란한 미래를 보는듯하다.
이 동시에서《노란》, 《빨간》, 《꽃아이》 등 낟말들을 빼면 다른 언어가 극히 적다. 얼핏 보면 매우 따분한것 같지만 우리는 그런 감을 느낄대신 너무 황홀함에 어쩔수 없다…
자꾸 반복되는 낱말들이기는 하지만 마치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자꾸 빨간, 파란색갈의 크레용을 덧칠해서 그 색갈, 그 동심이 뚜렷이 드러나듯이 이런 언어들이 반복도 역겨울대신 너무너무 감미로운것이다.
여기에 또 그의 다른 한수의 동시《도토리》가 있다.
도토리는 별라
갑옷속에 꼭 숨어
눈도 코도
다ㅡ아 감추고
빤질빤질한
엉뎅이만 뽈끈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뎅이 드러낸채
콜콜
늦잠자는
내 동생 같구나
이 동시의 핵이고 형상인것은《갑옷속에 꼭 숨어/눈도 코도/다 감추고/빤질빤질한/엉뎅이만 불끈》하는 시어들에 있다.
시인은 아마도 짜개바지 개구쟁이가 놀음에 지쳐 포동포동한 빨간 엉뎅이를 불끈 드러내놓고 너무 곤해 새우처럼 꼬부리고 자는 모습을 보고 불현듯 터실터실한 껍데기밖으로 불끈 엉뎅이를 내민 도토리를 련상하고 그것과 사랑스런 개구쟁이의 엉뎅이를 련계시켜 이 동시를 썼으리라는것을 어럽지 않게 생각하게 된다.
이런 형상창조는 아무나 다할수 있는것이 아니다. 다만 아이들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이 동심에 푹 젖었을 때만이 나타날수 있는것이다.
김철호의 동시의 다른 하나의 특징은 반복인듯하면서도 점층적인 승화에 있다.
ㅡ삐약삐약
병아리 울음소리는
친구 찾는 소리
ㅡ꿀꿀
꿀꿀이 웨침소리는
배고프다는 소리
ㅡ멍멍
강아지 짖는 소리는
심심하다는 소리
ㅡ음매음매
송아지 부름소리는
엄마없다는 소리
ㅡ응아응아
꽃순이 울음소리는
쉬ㅡ했다는 소리
이상은 동시《이기들의 말》이다.
이 동시에서《삐약삐약》, 《꿀꿀》, 《멍멍》, 《음매음매》 등 의성의태어들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에《응아응아》하는 아기의 의성의태어를 불쑥 끄집어내서 주제를 홀딱 발가놓았다. 뿐만아니라 련마다 두번씩《소리》를 반복해오다가 마지막에《쉬ㅡ했다는 소리》로 승화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김철호의 많은 동시에서 이런 수법을 읽을수 있다. 바로 이런데서 시인의 재질이 돋보인다.
한국의 한 동시인은 성인이 쓴 동시가 아이들이 쓴 동시처럼 엉뚱하고 쉬워야 아이들에게 잘 먹힐수 있다고 말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사실 김철호의 동시가 이런것이다. 그는 머리속의 추상이나 상상으로 동시를 쓰는것이 아니라 생활속에서 어떤 경우에 부딪쳐 령감의 불꽃이 반짝 튕기는 순간을 포착하고 아이들 같이 단순한 생각으로 엉뚱한 동시를 써내는것이다.
아들애와 함께 키운 동시
김철호는 남의 집 아이들을 사랑할뿐만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을 더없이 극진히 사랑한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뛰여난 장끼를 보인 그의 아들애는 역시 개구쟁이였고 감정이 풍부한 애였다 장기간 어머니가 외국에 가 있은탓으로 그 애의 그림에는 자주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 고독한 마음이 내비치군 했다.
어느 을씨년스러운 날, 아들애는 창문에 마주서서 유리에 낀 뜬김에 그림을 그리고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시인은 아버지로서 마음이 뭉클해났다. 그래서 인차《비오는 날 창문에 마주서서》란 동시를 눈물을 머금고 썼다. 그의 아들애가 처음 그림을 배울 때 커다란 도화지에 가득 차게 한 머슴애을 대강 그려놓은것이 시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어딘지 모르게 짚이는데가 있어《괴로운 도화지》라는 동시를 써서 아들애를 깨우쳤다. 그뿐이 아니다. 《엄마 때리는 매》, 《친구》, 《그림속에 들어간 아이》, 《강아지》 등 많은 동시가 아들을 모델로 쓴 동시들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이름난 동시인들이 모두 자기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서, 소학교 애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유명한 동시를 써냈다. 그들이 그렇게 할수 있은것은 두말할것 없이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동심세계로 깊이 빠져들어가야 한다는것을 말해준다.
김철호는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동시를 발표하기 시작해서 몇년사이에 350여수의 동시를 창작했다. 1999년에는 한해사이에 무려 50여수나 창작, 발표했다. 김철호는 자기 속심을 이렇게 터놓는다.
《나는 기자이다. 때문에 긴 소설을 쓸 시간적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작가인 내가 글을 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이것이 아마 작가의 사명감인것 같다. 늦게나마 동시창작에 재미를 붙인것은 나의 마음과 격에 맞는 일이다. 동시는 짧은 글이기에 창작할 때 시간을 많이 허비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동시라는 이 쟝르를 뚫고나갈 예산이다.》
참으로 자아를 잘 찾은것 같다. 나는 그가 동시창작에 더욱 정진하여 보다 휘황한 성과를 안아오기를 바라마지않는다.
끝으로 한가지 짚고넘어갈것은 아직도 그의 어떤 동시는 성인의 시각으로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쓴것이 확연히 알리는것이다. 물론 한국의 많은 동시인들이 지금 아이들을 대상한 동시보다 성인을 대상해서 동시를 쓰고있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동시라 할 때는 어디까지나 아이들에게 읽히고 그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는것이다.
《연변문학》 200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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