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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비연변)이 왜 안쪽인가?
수년 전 CCTV춘절만회에서 조본산과 송단단의 소품이 인기가 좋았는데 조본산이 秋波를 가을의 시금치라고 말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웃음보가 터지게 했다. 개그는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秋波를 가을의 시금치라는 식으로 엉뚱하게 풀이해도 무방하다. 개그의 기교는 어찌 보면 짖굳은 말장난으로 본래의 뜻을 벗어나 엉뚱하게 표현하면 할수록 매력이 넘친다.
칼럼은 개그가 아니다. 엉뚱하게 풀이하는 것은 절대 금물인줄 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끔 개그와 같은 칼럼을 접하게 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요즘 동북아신문 온라인에 <연변>이란 제목으로 된 칼럼이 올라 있는데 한 편의 개그를 보는 것 같았다.
<연변>이란 칼럼의 서두를 보자. “우리 연변사람들은 연변 밖의 쪽을 ‘안쪽’이라고 부른다. 이는 우리 스스로 ‘바깥쪽’이라는 말이 되겠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우리에게는 변두리의식 내지는 소외의식이 앙금처럼 서려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나는 우리 ‘연변’의 한자어새김을 음미해보며 이런 앙금을 녹여본다. 연변(延边)—변두리를 넓힌다, 어쩌면 우리는 확장주의. 사실 우리의 꿈은 저 푸른 하늘로 나래치거늘.”
저자는 안쪽과 연변을 主와 外, 중심과 변두리란 개념으로 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완전히 개그다.
1860년대부터 함경도 조선인들이 먼저 두만강을 건너 희망의 땅에서 자리 잡은 곳이 곧 연변이다. 그 뒤로 황해도 평안도 조선인이 처음에 두만강을 건너왔으나 워낙 연변이란 곳은 산이 많고 개간할 땅이 적어 조선과 더 먼 곳, 이른바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진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연변을 제외한 길림성 내 타지방과 요녕성 일부 지역이다. 1930·40년대 경상도 조선인이 뒤늦게 만주진출하다 보니 연변과 길림성 내 타지방과 요녕성 일부 지역에 발붙일 곳이 여의치 않아 더 안쪽인 흑룡강성의 허허벌판에 짐을 풀었다.
연변사람들이 연변을 제외한 타지방을 안쪽이라 부르게 된 것은 연변은 지정학적으로 친정과 가깝고 타지역은 친정과 거리가 멀며 중국지리를 따지면 연변에 비해 안쪽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안쪽이라 불렀던 것이다.
안쪽이란 개념이 처음엔 순수하게 지정학적 논리에서 생겨났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의식상 이질적인 요소를 많이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연변과 비연변의 개념으로 자리 잡았고 연변사람들은 안쪽사람들에 비해 우월의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연변은 지정학적으로 친정과 가까워 민족문화 차원에서 우월의식을 갖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후 정부의 정책혜택에 의해 연변은 대학, 출판사, 방송국, 극단 등 민족문화의 본산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우월의식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지정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인구비례를 따질 때 연변은 조선족이 많아 한어를 모르고도 삶을 영위할 있어 민족적인 자부심도 강했다. 안쪽은 친정과 거리가 멀고 또 인구비례를 따질 때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다 보니 본토민의 문화에 많이 물 젖었는데 연변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질적인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연변사람들은 한족과의 통혼을 마치 집안이 태풍을 맞는 것처럼 강력하게 거부했다. 심지어 한족학교를 다닌 조선족처녀를 며느리 삼기를 꺼려했다. 한족학교를 다닌 처녀애들이 예모예절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연변과 비연의 이질점을 이런데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 말하자면 연변사람들이 칼럼의 저자가 지적한바와 같이 스스로 바깥이라고 인식한 것이 아니라 민족문화본산지이자 조선족의 중심이란 인식과 이에 따른 우월의식이 강열했다.
작년에 있었던 일이다. 연변의 지식인 수명이 한국에 왔는데 근사한 음식점에서 식사했고 그 때 그들이 서빙아가씨 보고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흑룡강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후진 곳에서 왔구먼.”라는 비하식의 말을 던졌다. 즉 안쪽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찮게 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사건을 보면 연변사람들이 자신을 밖이거나 변두리의식이 아니라 스스로 主와 중심의 우월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민족 한 인간집단을 짚을 때 물론 다양한 시각으로 풀이가 가능할 수 있으나 인류문화학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필자는 수년 전 연변대학을 포함한 조선족문화인들의 인문학적 지식이 딸린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하여 되지게 욕을 먹었는데 요즘 <연변>이란 칼럼을 보고 저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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