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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소설『벗』을 읽고서
2018년 06월 06일 10시 59분  조회:3400  추천:0  작성자: 김정룡
조선 소설『벗』을 읽고서

김정룡



‘4.27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한사회에서는 ‘북한열풍’이 불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사례가 많지만 여기서는 조선책 이야기를 해보련다.

최근 대한민국 서점가에서는 조선 작가 백남룡이 지은『벗』과『60년 후』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때마침 내가 3년차 다니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독서모임에서도 6월 11일에 이 두 권을 지정토론 책으로 선정하였기에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사실 나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해 60~70여권에 달하는 책을 읽었으나 소설은 단 한 권 김별아의『미실』을 읽은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2011년 내가『황제와 소녀』라는 장편역사소설을 쓰느라 참고서로 읽었던 것이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지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시간만 낭비할 뿐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헌데 조선 작가 백남룡의 책을 읽고 나서 진정한 소설이 무엇인지?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무엇인지?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이 나이 되어서 이제야 깨우치게 되었다.

『벗』은 240페이지 되는 분량인데 조선에서는 중편소설이라 하고 남한에서는 장편소설이라 말한다. 책의 분량이 적은 만큼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주인공 정진우 판사와 그의 아내 한은옥, 이혼소송을 제기한 채순희와 남편 리석춘 및 철부지 아들 호남, 리석춘의 직장 선배 연공과 그의 교사 아내, 도 공업기술위원회 채림 위원장, 리석춘의 직장 선배 설비관리원 아바이 등이다.

『벗』은 소설을 구성하는 줄거리는 채순희의 이혼소송이고 이 사건을 맡은 판사 정진우가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다룬 것이다. 스토리가 간단하다. 소설을 보는 이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다. 스토리가 너무 간단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하고 짜릿한 사건전개가 없기 때문에 혹자는 정말 무미건조해서 재미없다고 말할 수 있고, 또 혹자는『벗』이야말로 진정한 소설의 정수를 보여주었다고 굉장히 후한 점수를 매길 수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는 것을 일단 짚고 넘어가겠다.

현대사회에서 이혼소송이라 하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이혼사유를 떠올릴 수 있다. 외도라고 부르는 어느 일방의 불륜의 삼각관계, 가정폭력, 주풍, 경제문제, 고부갈등, 성격차이 등등이다. 이혼사유 중에 가장 애매한 것이 성격차이이다. 그래서 남한의 어느 판사는 “연예인들의 이혼사유 중에 성격차이를 내세우는 사례가 많지만 겉으로 주장하는 핑계일 뿐이고 실제로는 어느 일방의 불륜이거나 말(공개) 못할 사연을 뭉뚱그려 성격차이라고 말한다.”고 꼬집었다.

『벗』은 채순희와 리석춘 둘 다 외도가 없다. 리석춘은 일반 선반공이고 채순희는 선반공으로부터 출발하여 노래재주가 뛰어나 도 문예선전대에 전근한 직업가수이지만 불륜은 저지르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혼사유에서 가장 많이 적용되는 외도문제는 없었다는 얘기이다. 남편인 리석춘이 아내를 팼다거나 심지어 가벼운 손찌검한 일도 없고 술을 마시고 아내를 괴롭히는 못난 일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또 남편이 돈을 못 벌어 생계가 어려워 이혼할 사유가 되는 일 없이 너무 열심히 사업에 종사하여 오히려 탈이라면 탈이었다. 또한 소설에서는 시어머니가 등장하지 않아 한국시리즈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부갈등을 비롯해 시댁식구들과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그러한 갈등은 아예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저것도 이혼사유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채순희로 하여금 이혼소송을 제기하게 만들었을까?

성격차이다.

남한에서 이혼사유로 애매한 성격차이가 조선에서는 진정한 성격차이가 무엇인지를 이 소설이 똑똑히 보여준다.

채순희는 선반공 노동자 출신이며 남편인 리석춘한테서 기술을 배웠다. 사부와 학도 관계로부터 연인이 되었고 결혼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한편 노래에 재주가 있어 직장 문예선전대 가수로 활동하다가 실력이 좋아 도 문예선전대에 전근한다. 채순희는 예쁘기도 하고 진취심도 강하고 승벽심도 억세다. 아내에 비해 남편은 가정적이면서도 직장 일에 충실하지만 젊은 나이에 대학 공부 할 궁리도 하지 않고 앉은 석동이처럼 제자리걸음으로 아주 보수적으로 살아간다. 물론 남편이 다축라사 가공기 신제품을 발명하여 도 공업기술위원회로부터 인정받았으나 5년간 죽을 고생으로 맺은 열매의 보상은 고작 꽃병 하나였다. 채순희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이혼을 결심하고 소송을 제기한다. 남편은 명예에만 만족하고 별로 불만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아내가 바가지 긁는 것을 싫어한다. 결국 이혼에 동의한다.

백년언약을 맺고 결혼하지만 살다보면 갈등이 생기고 도를 넘으면 헤어질 수 있다. 문제는 아이이다. 아들 호남이는 부모의 다툼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 정진우 판사는 부부 일방이 어느 쪽도 이혼사유가 될 만한 사건이 없기에 앞뒤 뛰어다니며 열심히 조사에 나선다. 아내도 만나보고 남편도 만나고 남편 직장 선배들도 만나고 도 기술위원회 간부도 만나 충분히 들어보고 심지어 아들 호남이까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정진우 판사는 이혼소송을 제기한 채순희의 벗도 되어주고 남편 리석춘의 벗도 되어주고 심지어 아들 호남이의 벗까지 되어준다. 그러고 나서 이혼하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설득하여 끝내 헤어지지 않도록 결론을 내린다.

채순의 이혼소송을 없던 일로 만들기까지 정진우 판사의 피타는 노력이 있었다. 중국에서 공산당간부는 군중 속에 들어가 군중과 함께 ‘숨 쉬는 사업 작풍(作風)’이 조선에도 있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충분히 실감했다. 정진우 판사는 리석춘의 공장에 수 없이 찾아갔고 또 리석춘의 맘을 돌리려고 추운 날씨에 강에 들어가 모래를 채취해 리석춘을 돕는다. 리석춘은 그 모래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판사의 성의를 봐서 잘 쓰겠다고 사의 표하면서 진정 마음으로 다가가 그의 말이라면 껌뻑 죽을 정도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판사의 설득에 의해 5년제 대학에 신청하고, 일만 일이라던 생활패턴을 바꿔 아내 채순희 공연도 관람하는 등 여러모로 아내에게 신경을 쓰는 ‘좋은 남편’으로 바뀐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채순희가 그토록 바랐던 희망사항이었고 이것을 판사가 나서서 실천하도록 도왔던 것이다. 부모의 불화 때문에 불행해진 아들 호남에게 있어서 이혼을 부추기는 채림은 눈엣가시처럼 미웠던데 비해 이혼불가를 선언하고 심지어 호남이를 자기네 집에 데려다 밥 먹이고 재우고 하는 판사야말로 진정한 벗이었다.

소설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조선사회에 대한 재인식이다. 조선사회를 흔히 관료주의가 심각해서 백성들에게 일방적으로 갑질이나 하고 개개인의 고충을 외면하고 거들먹거리며 피도 눈물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기실 조선의 판사가 남한의 판사보다 인정미가 백배 천배 낫다. 진짜 사람냄새가 나는 곳이 조선 사회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남한사회는 현재 신자유주의에 의해 국민들은 공동체의식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데 비해 조선은 진정한 공동체란 무엇인지를 이 소설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아울러 정의로움이란 공정함이란 무엇인지? 라는 정의의 문제로까지 파고들어 교육가치도 충분히 지니고 있어 정말 명작이다.

1980년대 문화적으로 세련된 프랑스 파리에서 우리글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남한 소설이 아니고 조선 소설이었는데 그 작품이 바로 백남룡의 작가의『벗』이었다고 한다. 왜 이 소설이 파리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나는 알 것 같다.

중국과 한반도는 예로부터 문학작품에 선악구도를 분명히 하고 권선징악이 주제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선악구도가 아니면 문학이 되지 않는 식의 교육환경에서 자라왔고 작품 활동을 해왔던 것이다. 일본문학은 선악구도로 스토리를 만들고 작품을 전개하지 않는다. 가령 선악구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독자입장에서는 그것을 선악구도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羅生門』하면 우리는 선악의 시각으로 읽는데 비해 일본에서는 “만약 내가 그 작품의 주인공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는 것이 일본문학의 특징이다. 일본문학의 또 하나의 특징은 굵직하게 사람을 긴장시키거나 짜릿해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가슴이 뛰는 스토리 구성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잔잔한 스토리에 섬세한 묘사로 작품을 짓는다. 이것이 일본문학이 노벨문학상수상자를 많이 배출하는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백남룡의『벗』이 바로 일본문학처럼 잔잔한 스토리에 선악구도가 없는 명작이라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물론 한 권의 소설을 갖고 조선을 굉장히 이상적인 사회라고 평가한다면 무리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아울러 조선사회는 이 소설이 발표된 이후로 어두운 면이 많다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소설을 읽은 독후감이기 때문에 조선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평가일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뭐니 뭐니 해도 소설을 읽는 묘미와 즐거움은 언어서술이 아니겠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 빠져든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작가의 수준 높은 뛰어난 언어서술이다. 8년 전 남한 역사소설 김별아의『미실』을 읽고 나서 언어가 굉장히 파격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백남룡 작가의 언어특징은 섬세하면서도 파격적이고 또 멋진 언어서술이라고 나는 본다.

여기서 그의 멋진 서술 한 대목을 감상해보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창밖에서는 봄날의 어스름이 깃을 펴기 시작했다.

잎이 핀 가로수의 잔가지가 누구를 불러내고 싶은 듯 창문을 조심스레 건드려본다. 봄바람은 잠들고 싶지 않는 모양이다. 대륙의 먼먼 산발과 골짜기와 들판을 달려오고도 피로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바람은 지쳐서 집안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밤이 되고 싸늘한 봄추위에 몸이 얼어드니 그제야 거처할 데가 생각난 것 같다. 바람한테는 보금자리가 없다. 어데서 누구한테서 무슨 일 때문에 쫓겨났는지 배반했는지 스스로 ‘가정’을 버렸는지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영원히 불행한 몸이다. 광막한 공간을 울며 정처 없이 떠다니고 나무숲이나 어느 강가에서 찬비를 맞으며 떨고 눈보라에 꽁꽁 언다. 세월을 두고 쌓이는 괴로움과 고통에 성질이 나서 해 비치는 따스하고 조용한 날에도 아무에게나 푸접없이 때로는 사납게 달려든다. 교만하고 질투하고 성내고 고함지르고 마구 잡아 흔든다. 그래서 짝을 못 가지고 불행하게 산다. 바람은 우의와 애정이 꽃처럼 아늑한 집안이 그리운 듯 나뭇가지로 창문을 두드리며 졸라댄다.

밤은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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