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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정판룡
2024년 08월 23일 03시 49분  조회:910  추천:0  작성자: 죽림
원로작가 김학철선생과 《20세기의 신화》
 
                           정판룡



 
(1)
 
1997년 이른 봄인것 같다. 나는 무슨 일로 한국에 나갔다가 서울 종로서점에서 생각밖에 갓 출판된 김학철선생의 《20세기의 신화》를 발견했다. 출판사와 출판기일을 보니 출판은 서울에 있는 《창작과 비평사》에서 하고 출판시간은 1996년 12월로 되여있었다. 김학철선생이 《20세기의 신화》로 하여 수많은 옥고와 고생을 하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책은 처음으로 보는것이니 두말없이 한책 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3월 11일에 종로서점에서 샀다는것을 기록해두었다. 곧 읽어보려고 했지만 서울에서는 시간이 없었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내가 곧 병원에 들어가 수술을 하는 바람에 미처 읽을 사이가 없었다. 요지음 시간이 생겨 이 소설을 한번 자세히 읽었는데 내용인즉 전날 연길에 있던 임일평이라는 젊은이가 1957년 반우파투쟁때 우파분자로 되여 처음에는 기관에서 비판투쟁을 받다가 후에는 공산주의농장이라는 강제로동수용소에 가서 로동개조를 하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우파분자(摘帽右派)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는 것을 주로 쓰고있었다.
1957년에 전개된 반우파투쟁과 민족정풍은 주로 문예계를 중심한 인테리와 대학이나 당정기관에서 전개하여 이런저런 《분자》로 애매하게 붙잡혀나온 사람은 대부분이 임일평처럼 옳은 말, 속에 있는 말을 감히 한두마디 한 사회의 중견인물들이였다.
이런 사람들을 우에서는 50년말부터 공산주의농장이라는 강제로동수용소에다 모아놓고 로동개조를 시킨것 같다. 그러다가 60년대 중엽에 중앙에서 새로운 정책이 내려오면서 일부 《분자》들의 정치모자를 벗겨주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여전히 《모자를 벗은 분자》라는 꼬리표를 달아 주고 신임하지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 임일평이도 《모자를 벗은 분자》가 된 뒤에도 원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신문사 접수실에서 접수원 일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1960년부터 중국에는 《3년자연재해》라고 하여 종래로 보지 못한 전국성적인 대기근이 일어났다. 확실한 통계가 나오지 않아 기근의 엄중정도를 알수 없으나 우리 대학에서도 한때는 가둑나무잎, 콩대, 강낭대를 삶아 대식품을 만들었으며 푸대죽만 한두해 먹었으니 소위 《분자》들이 강제로동을 하는 강제수용소가 그 난통에 어떠했으리라는것은 가히 짐작할수 있다.
1960년부터 1963년까지의 전국성적인 대기근은 《3년자연재해》로 인해 일어났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것이 이미 밝혀졌다. 1957년부터 시작된 과격한 정치운동과 대약진, 인민공사화 등 좌적인 운동은 공산풍, 평균풍 등을 초래하게 한것이다.
거기다가 1960년부터 공개화된 중쏘분기는 날이 갈수록 첨예해져 마지막에는 우쑤리강의 진보도(珍?島)에서 무장충돌까지 발생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어제날의 형제국가는 우리의 적으로 되였으며 나처럼 국가의 파견을 받고 쏘련류학을 한 사람들까지 의심을 받게 되였다. 《20세기의 신화》에는 이런 내용들도 적지 않게 취급되고있다.
나는 바로 60년도 5월에 류학갔다 돌아왔다. 이때 학교에 돌아왔으니 이 시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돌아와보니 나의 스승 김창걸선생님은 58년에 내부민족주의분자 모자를 쓰고 임일평처럼 학부의 자료실에서 접수원노릇을 하고있었으며 나의 동창친구들도 여럿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로 되여 학교에서 로동개조를 하고있었다. 로시인 리욱선생은 57년도 대명대방(大鳴大放)때 북경에 연수 가고 학교에 없었기에 면했다고 하며 또 학교에는 《학생우파》라고 하여 학생속에서 잡혀나온 《우파분자》들도 여럿 있었다. 글을 가르칠만한 교원들이 모두 적으로 되여 잡혀가고 없으니 학교는 폭풍이 지난 들판처럼 쓸쓸하고 처량했다.
1960년 가을부터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이 오면서 우리는 살기가 더 힘들었다. 김학철선생의 《20세기의 신화》에 묘사된 먹기를 위한 각종 사건들이 대학에서도 자주 일어났다. 1961년부터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을 대처하기 위한 각종 조치들이 우에서부터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일부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 우경분자들에게 씌운 모자를 벗겨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라는 꼬리표를 그냥 달고 다니는것이였다. 로작가이신 김창걸선생은 운동때 민족주의분자로 확정은 되였는데 부교수이기에 성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하여 내부민족주의분자로 되고있었는데 비준이 없는 분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민족주의분자의 꼬리표를 달고 그냥 자료실의 접수원으로 계셨다.
 이처럼 《20세기의 신화》는 나로 보면 근 6년간 쏘련에 류학갔다가 돌아와 문화대혁명의 대동란이 일어날 때까지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때였기에 퍽 인상적이며 실감적이다.
우리 조선족문학으로 볼 때 토지개혁, 해방전쟁, 항미원조, 그리고 50년대의 호조합작, 인민공사시기를 반영한 작품들은 많고도 많다. 그러나 《20세기의 신화》처럼 50년대중엽으로부터 무고하게 이런저런 《분자》의 정치모자를 쓰고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며 생활을 해야만 했던 우리 사회의 일부 우수한 인테리들의 생활과 《3년자연재해》로 하여 생겼다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을 폭넓게 반영한 작품은 없다. 형제민족의 문학에는 《강제로동수용소》거나 60년대의 대기근을 반영하는 작품들 (이를테면 왕몽의 소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김학철선생이 쓴 이 작품이 처음인것이다.
 
(2)
 
《20세기의 신화》는 전, 후편 도합 1350매의 규모이니 김학철선생의 장편가운데서는 중간에나 속할것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년만 인 1965년 3월에 탈고 했다고 하니 1964년 년초에 쓰기 시작한것 같다. 당시 김학철선생은 몇해 강제로동수용소에서 로동개조를 했지만 잠시 모자를 벗은 분자라는 꼬리표가 달려 창작의 권리는 여전히 없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이때 《가중되는 정치적압박과 극단적인 궁핍》은 그로 하여금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는것이다. 격분된 심정으로 자기가 직접 체험하고 보고 느낀것을 무슨 형식으로나마 쓸 생각을 한것이다. 격분된 심정으로 쓰게 되니 자연 개인숭배에 대한 말을 많이 하게 되고 그분에 대한 불경의 내용이 소설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다. 때는 또 바로 문화혁명이 일어날 때라 그 누가 그이에 대한 불경의 말 한마디만 해도 현행반혁명이 되던 때이니 김학철선생이 조용히 집에서 쓴 이 소설이 무사할수 없었다. 문화혁명이 일어나자 얼마 안되여 반란파들은 발표도 되지 않은 소설원고를 몰수해갔으며 예심으로만 7년 4개월, 정식공판으로 판결받은 감옥생활이 10년, 도합 17년 4개월의 령어생활을 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김학철선생님의 말씀대로 이것도 력사적기록을 돌파했다. 나는 한동안 세계문학을 전공했으며 세계문학사도 여러 책 쓴 사람이기에 동서고금 문학사에서 소설로 하여 큰 고생을 한 사람을 더러 알고는 있으나 김학철선생처럼 근근히 초고를 써놓은 미발표원고로 하여 근 20년 옥고를 치른 사람은 없는것 같다. 1977년 12월 만기출옥을 한 뒤에도 김학철선생은 옹근 3년을 완전실업자 대렬에 끼여 살다가 1980년에 최고법원에다 직소를 해서야 아직 발표되지 않은 미발표소설이라는데서 일이 락착이 되였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거리 《20세기의 신화》는 무죄판결이 공포된 뒤에도 7년이나 갇혀있다가 1987년 8월에야 비로소 임자에게 돌려졌다.
나는 《20세기의 신화》가 한국에서 출판되리라는것을 전혀 모르고 서울에 갔다가 우연히 그 책을 한권을 샀으며 김학철선생은 한국에서 출판되였다는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우연히 북경에서 김학철선생과 만나니 또 무슨 봉변을 받을려는지도 모르겠다는 근심을 했다. 그뒤 어떤 봉변이 또 그에게 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김학철선생의 속이 편안할수 없다. 그의 이런 정서는 그뒤 그가 발표한 많은 수필, 산문들에서 엿볼수 있다.
 
(3)
 
김학철선생은 1916년 출생이니 금년 만으로 85세가 된다. 지금 중국에는 파금(巴金)같은 로작가가 아직 생전이고 파금이나 빙심(氷心), 조우(曹遇)같은 백세로인이 한둘이 아닌것을 보면 이전에 비해 작가의 수명도 많이 길어진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일반정황을 보면 수명은 길어도 창작수명은 길지 않다는것이다. 파금같은분은 건국초기부터 글은 별로 쓴것같지 않으며 빙심도 나이가 얼마간 들면서는 별로 쓰지 않았다. 우리 중국조선족 문단을 보아도 대부분의 작가, 시인들은 나이가 60~70이 되면 점차 적게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것이 상례로 되고있다. 장편소설 《부활》을 늙어서 완성하여 세상에 소문을 낸 로씨야의 대문호 똘쓰또이도 나이 80이 된 뒤에는 가정내부의 소소한 쟁론으로 출가하였다가 외지에서 사망하는 일이 생긴것을 보면 우리의 김학철선생처럼 85세의 고령이면서도 계속 쓰는 로인은 적어도 이 중국에는 더 있는것 같지 않다. 김학철선생은 몇해째 《장백산》 잡지에다 《초대석》이라는 란을 설치하여 매기 3~4편의 수필, 산문을 발표하고있으며 그외에도 이따금 이곳저곳에 발표한것을 합하면 한해에 근 20편의 글들을 발표하고있는 셈이다.
김학철선생은 1980년 12월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담당판사가 대중앞에서 랑독했으니 1956년부터 1980년까지 장장 24년을 창작권리를 박탈당했으며 환갑해가 퍽 지난 64세 때 다시 창작권리를 회복했으니 부득불 늙어서야 글을 쓰게 되였다. 남들은 집에서 편안히 할아버지노릇을 할  때 김학철선생은 그때에야 잃었던 시간을 찾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강철같은 그의 의지는 김학철선생으로 하여금 오늘까지 건강한 몸으로 글을 계속 쓰게 하는것 같다. 감학철선생은 어떻게 하든 잃었던 24년의 시간을 보충하고야 말겠다고 하셨다.
《이 점에서만은 하나님이 공정한것 같애. 잃은 시간을 보충하라고 나에게 시간을 주는것 같애.》
김학철선생이 몇해전에 골암(骨癌)에 걸리셨다는 말을 듣고 지금 정황은 어떤가고 물어보았더니 《몸에 난 암종만 열 개나 된다고 하는데 나는 치료도 하지 않고 거기에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아.》
기실 김학철선생님은 신체가 극히 불편한 몸이면서도 아침마다 그 높은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는 부르하통강가에 나가 우리 젊은 사람 이상으로 운동을 하신다. 지난번 북경에서 《장백산작가상》 시상식이 있을 때 김학철선생은 원래 참가하려고 계획했는데 집에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부상을 입어 가시지 못했다.
김학철선생은 작가이고 투사이며 투사이며 작가이사다. 그는 일제시기에 반일투사 윤봉길의 애국행위에 감동되여 20세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상해로 건너갔으며 중국륙군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30년대말에는 조선의용대에 입대한 반일투사일뿐만 아니라 광복후에도 정치, 사회 부조리와 감히 맞서 싸운것으로 하여 근 20년 령어생활을 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24년이나 창작의 권리를 박탈당했었다. 그의 이런 투사정신을 떠나 그의 문학을 리해할수 없다. 그리고 김학철선생에게 있어 문학은 시종 그의 투쟁무기로 되여있었다.
김학철선생께서 건강장수하시고 더 많은 좋은 작품을 써주시기 바란다.
 
                                                 2001년 8월
 
 
 
 
정판룡: 평론가, 연변대학 전임 부총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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