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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사랑의 위력으로□조은, 민음의 시 38, 민음사, 1991 말을 다듬고 이미지를 배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젊은 사람이 갖는 패기도 돋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시에서 하고자 하는 내용에 비해 이미지가 너무 많이 동원되고 있다. 반짝이는 이미지들을 아껴두었다 써야 할 곳에 쓰는 것도 시인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작은 깨달음이 소중해 보여도 그것이 인생의 큰 궤도 안에서 어떤 울림을 갖고 있을 것인가 하는, 좀 더 큰 고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소품만 낳다가 만다. 한자는 그러한 소품을 더 왜소하게 만드는 요인이다.★★☆☆☆[4336. 11. 26.]
202□김씨의 옆 얼굴□이하석, 문학과지성시인선 35, 문학과지성사, 1984 한 인물을 작품 속에 등장시켜서 관찰자 시각으로 서술하는 것은 시에서는 낯선 것이다. 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말하는 사람과 작가가 일치한다. 관찰자가 존재하는 것은 대개 소설 쪽에서 많이 쓰는 수법이다. 그런데 그런 방법을 시속에 도입시켜서 크게 성공한 경우이다. 물질화 되고 비인간화 된 도시 문명의 잔혹함을 이야기할 때는 감정을 싣게 마련인데, 그렇게 되면 불가피하게 싸우게 된다.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감정 때문에 잔혹함이 가려지기 십상이다. 바로 이 같은 거품을 걷어내는 방법으로 관찰자 기법을 끌어들였고, 그것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부분부분 표현까지 신경 쓴 것이 눈에 보인다.★★★☆☆[4336. 11. 26.]
203□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박상순, 세계사시인선 65, 세계사, 1996 204□6은 나무 7을 돌고래□박상순, 민음의 시 55, 민음사, 1993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미래를 확신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 힘든 일이다. 그런 확신에 잠시 회의가 올 때 남의 눈치를 살핀다. 앞으로 한 참 나아간 사람이 너무 나간 탓일까 불안해서 잠시 뒤돌아보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어차피 환영받기는 어려운 일이다. 가는 곳까지 힘차게 가고 볼 일이다. 관계에 대한 파괴와 파탄은 읽기에 즐거운 바가 있다.★★☆☆☆[4336. 11. 27.]
205□뿔□문인수, 민음의 시 42, 민음사, 1992 절대의 이미지를 노래하려고 한 것인지 일상의 자잘한 감정을 이미지로 대체하려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아서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는 듯한데 중간중간에 관념들이 내비친다. 그 관념들은 일상의 체험을 반영하는 것들이다. 이것들이 서로 맞물려서 상승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논다. 그래서 난삽해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난삽할 것도 없다. 평이한 것들이 난삽해 보이면 그건 방법상의 문제이다. 이미지가 감정을 빨아들이게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일이다. 아니면 이미지에게 말을 내맡기던가……★☆☆☆☆[4336. 11. 27.]
206□황금 연못□장옥관, 민음의 시 44, 민음사, 1992 관념을 이미지로 빨아들여 생생한 힘으로 살아나게 하는 힘이 있다. 멀뚱하게 나자빠져있던 낱말들의 꽁지에 불을 붙여서 팔딱팔딱 살아나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 관념 덩어리를 생활 속의 친근한 이미지로 분해하여 독자를 깊은 사유의 골짜기로 끌어들여 함께 가는 방법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삶의 근원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그것을 말하는 방법까지 깊이 고민한 뒤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시가 차분하고 냉정하면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다. 그 따스한 태도와 마음이 이 시집을 황금으로 만든다. ‘두레박’, ‘꽃잎 필 때’ 같은 경우는 절창이다. 그런 류의 사색을 해본 사람은 이것이 왜 절창인가를 알 것이다. 군더더기도 없지 않다. ‘수련’ 같은 경우는 뒷부분은 자살골이다. 그렇게 친절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안다. 시집 곳곳에 그런 군더더기가 많이 끼어있다. 특히 시가 이야기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것이 급선무다. 이 군더더기만 걷어낸다면 정말 상큼한 시를 쓸 것이다. 한자야말로 걷어내야 할 첫 번째 군더더기이다.★★★☆☆[4336. 11. 27.]
207□바퀴소리를 듣는다□장옥관, 민음의 시 67, 민음사, 1995 시가 선명해졌다. 그러나 이것은 비극이다. 주제가 뚜렷해지면서 이미지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독자를 빨아들이던 흡인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의미의 철골구조만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런 방향으로 성공하려면 의미가 깊고 단단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의미체계는 그전과 다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긴장이 그 전보다 훨씬 더 떨어졌다는 얘기다. 시의 구조는 나름대로 튼튼한 것으로 보아 어쩌면 그 전의 뿌연 세계에 대해 주변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던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그렇다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얘기는 다 들을 일이 아니다. 한자부터 버린 뒤에 다음 행로를 신중히 결정할 일이다.★★☆☆☆[4336. 11. 27.]
208□잠든 그대□배창환, 오늘의 시인총서 25, 민음사, 1984 잘 썼다 못 썼다고 말하기가 참 곤란한 시다. 왜냐하면 시를 끌어가는 저력이나 말솜씨를 보면 분명 한 가락 하는 사람인데, 막상 나타난 시를 보면 그런 절제나 형식에 기대어 말한다는 것조차도 사치로 여기는 듯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의 뜨거운 지점에서 불에 데인 듯한 그 심정을 화산처럼 분출시키는 사람들 앞에서 불기둥의 모양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건 시 이전의 문제이다. 시 이전의 문제와 시 이후의 문제를 구별해야 하는 이 껄끄러움을 이 시집은 제공한다. 시대라는 것이 문학을 이 모양으로 만들기도 한다.★★☆☆☆[4336. 11. 27.]
209□북치는 소년□김종삼, 오늘의 시인총서 15, 민음사, 1979 ‘북치는 소년’이 서양 노래의 제목이라는 것을 모르고 제목과 내용의 연관성을 억지로 해석하려 하던 어느 원로시인의 글을 보고서 실소를 금치 못하던 생각이 난다. 이 시는 ‘북치는 소년’이라는 캐롤송을 듣고서 그 느낌을 시로 적은 것이다. 노래의 ‘의미’를 제거하고서 이미지만으로 보려고 하니 어디 풀릴 까닭이 있는가? 그런데도 열심히 해석하는 것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그렇다고 애숭이 독자가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에게 전화를 해줄 수도 없고……. 이미지와 의미의 극단을 오간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들의 표정도 극단으로 치우쳐있다. 이미지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일에만 몰두하는가 하면 마당쇠가 되어 의미를 열심히 전하기도 한다. 특히 의미를 싣고 가는 말들에 외국인 이름이나 노래 이름 같은 것들이 많이 등장해서 시다움을 이곳이 아닌 저곳의 그 어떤 취향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언어가 빛을 발하는 것은 이미지 쪽으로 쏠린 시들이 아니라 의미 쪽으로 쏠린 시들이다. 이 시집이 시선집이므로 끝내 시인은 어느 쪽으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모양이다. 끝까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한자는 그 시대 시인들의 원죄이리라. 원죄라고 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4336. 11. 27.]
210□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오규원, 문학과지성시인선 4, 문학과지성사, 1978 인류가 지금의 고생을 두고 아담과 이브를 탓할 필요 없듯이 현대인이 지금의 고생을 두고 영국을 탓할 필요는 없으리라. 자본을 앞세운 물신이 지금 그 시를 쓰게 하고 있으므로. 다만 독자도 나와 같다고 생각하고 독자를 꾸짖는 것은 머리 물들였다고 지나가는 청년의 뒤통수를 맥주병으로 까는 노인과 같다. 병이야 깨지면 그만이지만, 병은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독자와 싸우는 일이 재미있을지 몰라도 그 싸움은 끝이 없고 결국 내가 지친다. 그리고 독자들이 그만큼 싸움을 즐기지도 않는다. 그런 불편한 싸움 대신 외면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의도와 상관없이 시는 재미있다. 싸움의 방식 때문이다. 누구나 다 싸우지만 이런 식의 싸움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그런 즐거움을 준다. 바로 이 영역이 이 시인의 자리이리라. 그러나 싸움은 누구와 싸우는가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가가 더 중요하다. 오로지 싸움의 본능 때문에 싸우는 사람이 있고, 남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 있고, 자신만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이 있으며,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도 있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이 무엇인가를 자신에게 되물을 일이다.★★★☆☆[4336.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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