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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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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23
2015년 02월 09일 14시 23분  조회:2110  추천:0  작성자: 죽림

 

221□나무는 즐겁다□송욱, 오늘의 시인총서, 민음사, 1978

  글쎄, 그때 당시에 보면 좀 신선해 보였을지 모르나, 20년도 한참 넘은 지금 보면 겨우 습작기를 지났을까 말까 한 수준이다. 우선 쉬운 말을 어렵게 하는 것이 시라는 잘못된 생각이 곳곳에 보이고,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결합 관계가 너무 가까워서 민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민망함을 덜려고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지만, 그건 더 민망하다. 그리고 그나마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보아서 불안했는지, 바로 뒷구절에서 설명해주고 마는 경우가 많다. 더 문제인 것은 시가 노래할 것이 무엇인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역사의식이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문학을 무슨 진열장 속의 장식을 보는 일이라는 어이없는 설정까지 해놓고 만다. 그러니 제대로 된 치열한 정신의 불꽃이 시에 당겨질 리 만무하다. 한자는 씻지 못할 얼룩이고, 김현이 붙인 해설은 꿈보다 해몽이다. 가당찮은 일이다!★★☆☆☆[4336. 11. 28.]

 

222□나를 깨우는 우리들 사랑□정인섭, 문학과지성시인선 21, 문학과지성사, 1981

  방향은 잘 잡았는데, 운전실력이 영 시원찮다. 말들이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자신을 죽이고 전체의 질서에 순응해야 하는데, 말들이 행마다 자기 갈 길을 주장하고 나서서 전체의 뜻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것은 어눌함이라 하겠는데, 그 어눌함이 시에서 꼭 필요한 요소라면 좋겠지만, 여기서는 그 어눌함이 독자들의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지미가 어디서 어떻게 촉발되어 다른 이미지로 건너가고 그런 건너뜀이 의미를 어떻게 싣고 가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해야 할 시집이다.

  그리고 주제도 정말 중요한 곳까지 깊이 도달하지 못하고 정작 해야 할 말들의 주변에서 겉돌고 있다. 이 점이 사실 더 큰 걱정거리다. 그리고 이미지 문제도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아니 갈 거라면 모르되 이왕에 나선 길이라면 인식의 칼을 좀 더 날카롭게 벼려야 할 일이다. 한자는 그 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4336. 11. 29.]

 

223□작아지는 너에게□홍영철, 문학과지성시인선 25, 문학과지성사, 1982

  시가 주제 없이 이미지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이 시집은 보여준다.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 순간 말들은 긴장을 잃는다. 긴장을 잃은 말은 어디서 서술어를 마감해야 할지 그것을 몰라서 갈팡질팡한다. 그렇다고 자유롭게 흐르는 연상작용을 따라서 자신의 진폭을 펼쳐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변의 그럴 듯한 이미지들을 동원하여 홀로 설 수 없는 이미지의 외로움과 서러움을 달랠 뿐이다. 이미지들이 자신의 존립을 견디기 위하여 희박한 의미들을 끌어당기는 애처로운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이것은 애초에 시에 의미를 두려 하지 않는 의도에서 나온 숙명이다. 이 숙명을 시집은 원죄로 안고 있어서 끝내 그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끝내 독자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 하는 것부터 고민할 일이다. 의미 없는 세계에 의미를 강요하는 한자가 끼어 든 것은 더더욱 이상하다.★☆☆☆☆[4336. 11. 29.]

 

224□섬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문충성, 문학과지성시인선 20, 문학과지성사, 1981

  시를 쓰는 마음이 허황하지 않다는 것이 우산 살 만한 일이다. 자신의 삶 주변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모든 것을 시로 만들려는 마음이야말로 시인의 마음이다. 특히 특정 지역을 염두에 두고 이런 작업이 진행된다면 그것은 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 수 있는 특이한 환경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그렇게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은 시인의 재능이다.

  그런데 이 시집의 대부분이 갖는 한계는 일상 속에 파묻혀서 일상의 그늘을 극복하지 못 한다는 점이다. 일상의 애환을 시로 다룰수록 시인의 정신은 더욱 빛나서 아무 것도 아닌 것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 것을 찾아내어야 한다. 그래야 시에 생기가 돈다. ‘나팔꽃’ 연작 같은 수준만 되어도 좋을 뻔했다. 일상이 시의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그 중력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일상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구는 지구 밖에서 볼 수 있다. 지구 안에서는 지구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땅이 보인다. 땅만 보아 가지고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일상과 시의 관계가 그러하다. 한자는 중력의 무게만 더할 뿐이다.★★☆☆☆[4336. 11. 29.]

 

225□불꽃놀이□박이도, 문학과지성시인선 26, 문학과지성사, 1983

  이곳 저곳으로 눈 돌리지 않고 한 세계를 깊이 천착하여 꾸준히 밀고 가는 것은 보기에도 좋다. 그러나 시에 대한 고정관념이 시의 세계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방법 역시 고전 중의 고전이어서 다음 행과 다음 연에서 무슨 내용과 이미지가 등장할까 다 예상이 될 정도다. 이것은 세계에 대한 인식이나 방법이 상투화되어서 독자에게 새로움을 주기 어렵다는 뜻이다. 새로움이 없으면 시는 쓰나마나 한 것이다. 그 새로움은 내용이든 형식이든 인식에서 오는 것인데, 스스로 시의 함정과 범주에 빠져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먼저 시에 대한 고정관념부터 버릴 일이다. 그리고 일상의 의미에 좀 더 치열한 정신을 작동시켜서 시삶불이(詩-不二)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시에다가 내 삶을 맞출 것이 아니라 삶을 먼저 열어서 그 안에서부터 시가 쏟아져 나오게 할 일이다. 한자가 섞이면 열렸던 삶조차도 닫힌다. 시의 언어에 오래도록 고민한 흔적이 있는 시집에서 한자가 서슴없이 등장한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4336. 11. 29.]

 

226□또 다른 별에서□김혜순, 문학과지성시인선 17, 문학과지성사, 1981

  장면 전환이 너무 빨라서 따라 읽기 숨찬 시집이다. 그것은 이 시인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원관념 쪽에 서거나 보조관념 쪽에 서서 그 연관을 지워버리는 수법은 일견 새로운 방법인 것 같지만, 아주 구태의연한 방법이다. 그 구태의연함을 새롭게 하려는 시도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런 훈련을 거치고서 상징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때 중요한 것은 언어와 상황의 정확한 쓰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틀린 지식이 한 군데라도 발견된다는 것은 이러한 방법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장면 전환이 빠른 시일수록 아 다르고 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시집에서 방법을 너무 많이 바꾸는 것은 시인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빈약한 내용을 가리려는 유치한 방법이나 마무리를 덜한 것으로 충분히 오해받을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오해들에 대한 곡해이다. 시는 정신의 문제이다. 형식과 내용에 대한 변혁은 인식에서 오는 것이지만, 그것을 떠받치는 것은 정신의 치열함이다. 그리고 그 치열함은 진실 쪽에서 점화될 때 아름답게 타오른다. 그리고 타오름에 의미가 있다.

  진실이 있느냐고 묻는 오만은 자신만의 진실 이외에는 모두 가짜라는 모순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그 모순을 시에서 드러낸다면 그것이야말로 미숙한 짓이다. 시에서 드러내지 않아도 독자는 그것을 알아낸다. 시 몇 편에 속아넘어가는 독자들 몇을 만나보고서 나머지 독자들까지 그럴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완전범죄를 꿈꾸다가 잡히는 똑똑한 범인들의 생각이다. 잡히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죄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시 몇 편에 농락 당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자 역시 머지 않아 그러한 죄가 될 것이다.★★☆☆☆[4336. 11. 29.]

 

227□이 시대의 사랑□최승자, 문학과지성시인선 16, 문학과지성사, 1981

 날카롭고 튼튼한 송곳이 하나 시집 속에 들어있다. 어느 벽이든 뚫리지 않을 수 없는 대단한 송곳이다. 그러나 송곳은 날만 가지고 쓰는 물건이 아니다. 자루가 있어야만 그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 뚫어야 할 것이 관념의 벽이기에 손잡이의 모양새는 더욱 중요하다. 그 손잡이는 미래를 내다보는 힘이다.

  이 송곳이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일이다. 송곳의 흐름과 어긋나는 시들이 들어있다는 것은 이 시집의 큰 취약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직유가 너무 많은 불편함에 비하면 그리 큰 것은 아니다. 직유는 날카롭기는 하지만 깊이를 갖기 어렵다. 조심해서 써야 한다. 이 모든 허점을 다 덮을 수 있는 것은 치열한 정신이다. 그리고 그 치열함을 퇴색시키지 않는 순수함이다. 한자는 송곳의 날을 무디게 할 뿐이다.★★☆☆☆[4336. 11. 29.]

 

228□예레미야의 노래□박두진, 창비시선 29, 창작과비평사, 1981

  해방 전후에 쓰여진 앞의 시 몇 편을 빼면 특별히 볼 만한 작품이 없는 시집이다. 그러나 험난한 역사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그 분노를 시로 발언할 수 있는 정신은 시의 모자람을 덮고도 남는다. 남들이 다 늙어갈 때에 늙은 사람이 늙지 않은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형상화의 문제 이전에 시인이라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요건이다. 그 요건을 못 지키는 자들이 시인 행세를 하고 다니기에 모자람조차도 빛나는 것이니 이것은 이 시인의 뛰어남이기보다는 문단의 못남이 더 큰 증거이다.★★★☆☆[4336. 11. 29.]

 

229①□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이성복, 문학과지성시인선 13, 문학과지성사, 1980

230②□남해 금산□이성복, 문학과지성시인선 52, 문학과지성사, 1986

231③□그 여름의 끝□이성복, 문학과지성시인선 86, 문학과지성사, 1990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된다. 1:1 대응이 기본이 되기는 하지만 사물과 사물, 이미지와 이미지, 상황과 상황, 정서와 정서, 세계와 세계, 추억과 추억이 만나는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 발상의 고전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미지의 흐름이 초현실주의 비슷한 분위기를 내기도 하지만, 위의 시집들은 이 같은 시 발상의 고전 형식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그래서 문제가 된다. 원칙에 너무 충실하기에 그 한계 안에 갇혀서 답답함을 주고 있는 것이다.

  ①은 상황이 만든 원관념의 세계를 보조관념만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원관념이 현실 속이 아니라 과거의 추억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기에 시간과 공간이 뒤섞여서 겉으로 보기에는 혼란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이 혼란스러움은 방법의 혼돈까지 겹쳐서 독자들의 접근을 더욱 어렵게 한다. 그러나 사실은 시인으로서는 독자들을 배려하고자 한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것은 자신의 방법이 먹혀들지 않을까 보아서 불안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②와 ③에서는 그런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시의 긴장은 ②나 ③보다 ①에서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러한 불안함이 보조관념을 어떻게든 원관념에 드리게 하려고 하는 성실함 때문이다. 따라서 ②와 ③은 방법상으로 보면 성실성을 결여한 오만한 태도에 가깝다. 이 오만함이 시의 성취로 이어지면 별 문제인데, 추억은 울궈먹을 수 있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이미 ①에서 울궈먹을 대로 다 울궈먹었기 때문에 ② 이후에는 동어반복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시의 발상에서 나타나는 매너리즘과 결합하여 시의 긴장까지도 떨어뜨린 원인이 된 것이다. ②나 ③에서는 무언가 ①과는 분명히 다른 세계관으로 나아갔어야 했던 것이다. 삼류 유행가에도 다 들어있는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말만 가지고는 안 된다. 실천까지는 못 가더라도 개념이라도 만들어서 나아가야 그 그릇 안에서 시가 나오는 것이다. 말만 바꿔 가지고는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②에서는 원관념을 버리고 보조관념만을 등장시켰기 때문에 그나마 ①에서 원관념에 드리우려던 연결의 긴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시가 매끄러워졌어도 늘어진 것이고, ③에서는 ②의 방법을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같은 추억과 세계를 울궜기 때문에 원관념을 ‘당신’이라는 관념으로 대체한 것인데, 그래도 당신이라는 것 자체가 관념 덩어리이기 때문에 어떤 보조관념을 대체해도 시가 몽롱해진 것이다.

  결국 방법의 문제이기보다는 세계관의 문제이다. 세계관을 그대로 두고서 방법을 바꾼들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매너리즘의 반복만이 남을 뿐이다. 정말 좋은 씨를 쓰는 것은 방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뜯어고치는 일이다. 치열하지 않고서야 어찌 시인이라 하리오! 한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꽃이 되지 않는다.★★★☆☆[4336.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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