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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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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28
2015년 02월 11일 11시 39분  조회:2022  추천:0  작성자: 죽림

 

271□게 눈 속의 연꽃□황지우, 문학과지성시인선 97, 문학과지성사, 1990

  인식은 실천의 문이다. 문을 열어놓고 들어가지 않으면서 문만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은 말장난이다. 시가 꼭 진지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지한 자들의 태도가 거짓일 리도 없다. 진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시가 굳이 노리개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귀족문학의 본질이다. 문학이 귀족의 옷을 벗지 않아도 되지만, 그것이 귀족답지 못한 것에 대한 경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귀족답지 못함 역시 시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태도 때문에 시집 전체가 코미디 대본이 되고 말았다. 뛰어난 작품인 ‘화엄 광주’ 역시 코미디 대본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지했던 명작이 그야말로 진짜 코메디가 되어 버렸다. 어렵게 이루었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의 공을 스스로 깎아먹은 셈이다. 삶 자체가 코미디가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말 없지만, 유독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치밀어 오르는 그 어떤 의지가 존재한다면 내가 기댄 언덕이 굳이 시이어야 할 것이 없고, 또 그 언덕에 등 비비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침묵할 수 없다면 혼자서 즐길 일이다. 남의 대척점이 되기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희미한 의도라 할지라도 나 자신의 비극에만 그치지 않고 세계 전체를 그 비극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것조차도 자유이기 때문에 아무도 말릴 수는 없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비극이다. 그 비극의 서까래 끝에 연꽃이 피었다. 게눈처럼…….★★★☆☆[4336. 12. 4.]

 

272□엉겅퀴꽃□민영, 창비시선 59, 창작과비평사, 1987

  시집 곳곳에서 운율이 느껴진다. 아마도 시에서 운율이 저절로 살아나게 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 싶다. 다시 찾기 어려운 세계를 우리는 떠나왔다. 그리고 단련된 정신이 짧은 시 구절 속에 잘 들어있다. 시를 짧게 쓰기가 참 어려운 법인데, 위태위태하지만 슬기롭게 넘어가고 있다. 다만 의도가 너무 강해서 옷 밖으로 삐져 나오는 바늘이 곳곳에서 보인다. 나이 들어갈수록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법인데, 운명을 공동의 것으로 규정지은 모습이 당당하고 아름답다. 운율이 버릴 수 없는 좋은 유산인 것처럼 한자는 끝내 버릴 수 없는 나쁜 유산인가!★★☆☆☆[4336. 12. 4.]

 

273□자유가 시인더러□조태일, 창비시선 60, 창작과비평사, 1994

  내용은 너무 단조로운데, 자세히 보면 그것을 말하는 방법과 접근법이 의외로 다양하다는 사실에 놀란다. 대부분 선언에 가까운 말들이지만 그 말들을 받쳐주는 어조는 어느 시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참 묘한 일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발언이 상당히 과격한데도 그것이 허황하게 느껴지지 않고 차분하게 와 닿는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것은 역사에 대한 믿음과 진실성, 또는 진정성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의 목소리를 전하는 시인들이 왕왕 갖는 탁한 격함이 없고 아주 깨끗하고 맑다. 단순히 역사를 말한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닌데, 이런 깨끗함에는 아무런 거짓도 끼어들 수 없고,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시가 살아나는 것이다. 정신이 이룬 깨끗함이 아마도 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리라. 그러고 저러고 깨끗한 역사의 영혼으로도 청산되지 않는 한자는 어쩔거나!★★★☆☆[4336. 12. 4.]

 

274□푸른 별□김용락, 창비시선 62, 창작과비평사, 1987

  주제가 강한 시들이 대부분 갖는 단점은 무겁고 강한 그 주제를 가볍게 전해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시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전해줄 수 있는 장기를 지닌 갈래이다. 그 갈래의 장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코 잘 쓰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시집의 시들도 빛나는 정신을 빼놓는다면 대부분 이런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들이다. 특히 사람의 일생을 다룬 시들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에 따라서 전달되는 내용이나 효과가 아주 다른데, 이 방식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어서 매번 비슷한 유형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아주 아쉬운 점이다. 이왕에 시를 쓰려면 시의 장기를 잘 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4336. 12. 4.]

 

275□땅의 연가□문병란, 창비시선 26, 창작과비평사, 1981

  시를 막 배우던 1980년대 중반에 이 시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정말 잘 쓴 시들이다. 무엇보다도 끝까지 일관된 세계관이 훌륭하다. 그리고 그 세계를 한결같은 목소리로 뽑아 올린 유장한 말투가 좋다. 시가 길어서 얼핏 보면 좀 느슨한데, 읽다 보면 저절로 어떤 가락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런데 그 가락이 거의 일정하다. 시에 운율이 살아있는 것은 아마도 옛 사람들이 공통된 점이 아닌가 싶다. 소리내서 책을 읽은 세대의 축복이리라. 한자는 그 세대의 숙명 같아서 영 안타깝다.★★★★☆[4336. 12. 4.]

 

276□저문 강에 삽을 씻고□정희성, 창비시선 16, 창작과비평사, 1978

  시대의 몫이겠지만 그 얼어붙은 시대에 이런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시인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20년도 넘은 지금 읽어보아도 언어의 감각이라든가 말투가 우아하고 위엄 있다. 자신의 체험 밖의 것까지 노래하는 바람에 시가 좀 헐렁해지기는 했지만, 한 시대의 정곡을 찌른 시들이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는다.★★☆☆☆[4336. 12. 4.]

 

277□바보일기 2□가나인, 외톨박이마을, 1984

  이 시집이 출판된 시기상으로 보면 아마도 황지우나 박남철 같은 시인과 비슷한 시기에 시의 실험을 시도한 것 같다. 그런데 황지우나 박남철 같은 시인들이 의미의 맥락에서 언어의 연장으로 그림을 끌어들이거나 형태를 흔들었는데, 이 시집의 경우는 의미보다는 형식사의 차원에서 시의 모습을 파괴한 것 같다. 그것은 전위예술의 한 차원이다. 그런데 그런 전위예술은 벌써 수십 년 전에 서양에서 나타난 것이고, 그것이 뒤늦게 시에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이를 시의 역사에서 볼 때 한국에 나타났다는 점 이외에는 어떤 의미의 맥락에서 평가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언어는 어차피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고 그런 속성 때문에 실제를 대신 전달하는 도구 노릇을 한다. 따라서 실제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만 고민한다면 시의 내용을 그림으로 대체하는 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가 꼭 그림 같은 대체물로 대체할 수 있는 부분만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학이나 생물학의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이지만, 언어가 주는 그 규정의 원초성 때문에 인간은 사회 생활의 척도로 언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면화시킨다. 바로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 시의 내용을 그림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 같은 부분을 무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것은 시의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다.★★☆☆☆[4336. 12. 4.]

 

278□민속서사시 자청비□문충성, 문장, 1980

  서사시는 이미 멸종된 갈래이다. 옛날에 서사시가 가능했던 것은 노래였기 때문이다. 가락에 실어서 뜻을 전달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지루한 얘기를 해도 가락이 그 지루함을 달래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대가 지나고 줄거리를 가진 것들이 소설로 진화하고 가락을 가진 것은 대중가요로 진화하면서 시는 시만의 고유한 영역을 차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에 서사시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대답부터 한 다음에 작품을 써야 하는 것이다.

  이 시집은 제주 서사무가 중 세경 본풀이 내용이다. 농사의 신 자청비의 파란만장한 삶을 복원한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집은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에서 나온 것이다. 먼저 서사시가 필요 없는 시대에 서사시를 썼고, 이미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겼고, 그렇기 때문에 신선도에서 떨어진다. 그래서 몇 가지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다. 서사시는 길기 때문에 호흡을 의식해야 하고 말투는 바로 그 호흡에 걸맞은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긴 호흡에 필요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 구조는 너무 복잡해도 안 되고 너무 단순해도 안 된다. 말투는 역시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써야 한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현대에서 서사시는 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 시집의 시도 역시 이런 한계를 거의 다 갖고 있다. 그러나 서사시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깨우쳐주었고 그리고 서사시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큼은 이 시의 공로라 하겠다.★★☆☆☆[4336. 12. 4.]

 

279□겨울날□김광섭, 창비시선 4, 창작과비평사, 1975

  시가 한편 한 편으로 쓰여지지만 그 시들이 모여서 보여주는 전체는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그 사람의 일생이다. 물론 그 일생이 다 드러날 리는 없지만, 시는 정신을 노래하는 것이기에 그 정신이 시의 뒤에 후광처럼 어린다. 이 시집에서는 1980년대 이후의 젊은 시인들한테서는 볼 수 없는 그런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모습은 양심에 찔려서 어쩔 줄 몰라하는 한 노인의 모습이다. 나이가 들어도 부끄러움을 알고 그 부끄러움 앞에 정직하려고 하는 그런 시인. 그러니까 올곧은 선비의 정신이라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 시의 후광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시의 성취는 들쭉날쭉이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시들조차도 마치 여백처럼 여겨져 묘한 친화력을 준다.

  시를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우리나라처럼 어지럽고 어려운 역사를 겪은 나라의 문단에서 시 뒤에 그런 정신이 서린다는 것만으로도 기적과 같은 일이다. 젊은 시인들의 시에서는 기교에 묻혀서 본심이 드러나지 않는데, 이 시집의 시들은 기교가 본심에 딸려서 장난을 치지 못하고 순한 소처럼 본심이 부리는 대로 따라간다. 이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아마도 정신의 승리이리라.★★★★☆[4336. 12. 5.]

 

280□봄 여름 가을 겨울□이은봉, 창비시선 78, 창작과비평사, 1989

  혼자서 가뜬히 갈 것이 아니고, 누군가 함께 가고자 한다면 그때의 태도는 나만 갈 때와는 달라야 한다. 우선 동행의 호흡을 맞추어야 하고, 동행의 의식과 동행의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내 생각만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이다. 과연 그들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그들이 내 생각에 동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만 해결되면 도착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만약에 그들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나아가기만을 독려한다면 그것은 대부분 공허한 목소리가 되기 십상이다. 목소리를 조금 더 크게 높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런 상황과 도달해야 할 목표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그것은 나만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태도가 필요하다. 시에서 그런 태도란 어떤 지점에 서서 어디서부터 할말의 고리를 풀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곳에서도 조국의 장래까지 깨우칠 수 있는 단서가 있고, 아무리 거대한 노래라고 하더라도 봉창 뚜들기는 소리로 내려앉고 말 수도 있다. 그것은 대개 발상의 문제이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발상의 방법을 심사숙고해야 한다.★☆☆☆☆[4336.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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