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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名詩 공화국
361□초심□백무산, 실천문학의 시집 143, 실천문학사, 2003 제목부터 한자로 뽑았으니, 자살골을 넣은 셈이다. 노동사상의 시가 봉건시대로 가면을 씌웠으니, 그것을 어찌 곱게 봐주랴? 시가 많이 늘어졌다. ‘길은 광야의 것이다’에서도 많이 늘어졌는데, 이곳에서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늘어졌다. 정말 걱정되는 시들이다. 물론 나아갈 방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혼돈에 잠시 이를 수 있지만, 그런 사상의 혼돈보다도 시들이 시의 긴장을 잃었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어쩐 일일까? 넋두리가 대부분이고 줄거리까지 드러나서 마치 일기장을 시로 배열한 것 같다. 자투리 시들을 모아서 낸 시집인가 의심이 갈 정도이다.★★☆☆☆[4337. 1. 3.]
362□구시포 노랑 모시조개□진동규, 문학동네 시집 66, 문학동네, 2003 식물의 상상력으로 가득 찬 시집이다. 식물은 움직임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의 폭이 적다. 그래서 짧은 시들이 많이 나온다. 시가 짧다고 단조로울 것은 없지만, 거기에 인간의 삶을 싣지 않으면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인식이 전면으로 떠오르고 체험은 뒤로 물러서 있다. 그래서 시가 단조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 편 한 편에 들인 공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시집 한 권에서 현실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뒷부분의 여행시는 앞의 노력을 깎아먹는다. 빈 쭉정이에다가 말장난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4337. 1. 7.]
363□아버지의 도시□정영주, 실천문학의 시집 144, 실천문학사, 2003 시가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려 내내 건강한 빛을 발하는 것이 아주 보기 좋다. 이것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시인에게 중요한 요인이다. 시가 말장난으로 그치지 않는 바탕이 이것이다. 여기에다가 언어들도 감정을 담아내는 데 아주 가깝게 밀착해있어서 시가 좋은 긴장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묵호라는 한 도시의 삶을 아주 정밀하고 실감나게 그린 시편들은 거기에 몸담지 않은 사람이면 절대로 쓸 수 없는 절창이다. 매 편마다 들인 공이 눈에 보인다. 특히 신선한 표현들이 따로따로 놀지 않고 내용을 아주 잘 전달하고 있어서 언어의 빛깔이 곱게 빛난다. 그런데 시가 좀 부풀어있다. 실제 내용보다 과장된 표현이나 군더더기가 끼어있다. 그리고 빛나는 표현들이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불안하게 들떠있는 곳이 많다. 이것은 시를 곰삭여서 만들지 못하고 서둘러서 그런 것이거나 너무 표현에 집착해서 생긴 결과이다. 한 꺼풀만 더 벗겨낸다면 정말 좋은 시를 쓸 시인이다.★★☆☆☆[4337. 1. 7.]
364□사춘기□김행숙, 문학과지성 시인선 278, 문학과지성사, 2003 생각은 시인데 시는 시가 아닌 시가 있다. 이 시집의 시들이 그렇다. 시가 산문으로 쓰여지는 것은 탓할 것이 없지만, 산문 형식이 주는 관성 때문에 산문의 특징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뱃살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시의 사고를 산문으로 하기 때문에 자연히 이야기가 끼어 들고, 이야기는 그것이 상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면 말하기는 쉽지만 긴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도착한 경지가 굉장히 높은 곳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자신은 분명히 무언가 말을 하고 있는데 읽는 사람들은 진땀을 빼기 때문이다. 잔 기교를 부리지 않고서도 거창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시가 어려워지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게 된다. 이런 시작법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그 무덤 구멍에 혼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 전체를 무덤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성을 지닌다. 시가 그곳으로 갈 수는 있겠지만, 꼭 가야 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곳에 이 시집은 닿아있다. 가지 않아도 될 곳까지 가면서 한자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요컨대 시와 시 아닌 것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것은 좋지만 여기까지가 시라고 말하는 것은 궤변이라는 뜻이다.★★☆☆☆[4337. 1. 9.]
365□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이덕규, 문학동네 시집 72, 문학동네, 2003 표현에 많은 공을 들였고 곳곳에서 번득이는 재치가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를 밀고 나가는 뚝심이 있다. 그러나 시인다운 패기는 좋은데, 너무 장광설이다. 표현의 강도나 규모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고 초점이 흩어져있다. 이렇게 되면 부분 묘사에 치중하다가 전체의 이야기를 놓치는 수가 많다. 내게는 절실한 것들이 남들에게는 별로 절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부분을 버리고 전체를 얻는 것을 생각해야 할 듯하다. 시 전체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할 단계이다. 한자 역시 불필요한 장애물이다.★★☆☆☆[4337. 1. 11.]
366□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심재휘, 제3의 시 10, 문학세계사, 2002 사물을 보는 눈이 확립되어있다. 그리고 동일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긴장도 있다. 언어와 현상의 관계를 아주 잘 연결시켜서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놀랍다. 그런데 너무 한 시각으로 보다보니 시가 지루한 것이 흠이다. 게다가 시집의 뒷부분 절반이 앞의 절반과 수준 면에서 성취 면에서 달라서 아쉽다. 너무 성급하게 시집을 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쓸쓸함과 허무함만으로 세상을 도배하면 세상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엄밀히 말해 이런 관점은 도피에 가깝다. 체험의 선험성은 감동을 떨어뜨리는 가장 무서운 적이고, 그런 위험에 아주 많이 노출돼있다. 한자 역시 불필요한 장비이다.★★★☆☆[4337. 1. 13.]
367□내 몸이 유적이다□이순현, 문학동네 시집 62, 문학동네, 2002 시의 초점이 인식으로 맞추어질 때 조심해야 할 것은 감정이 메마르기 쉽다는 것이다. 인식의 기능이 확대되면 될수록 이것은 피할 길 없는 숙제이다. 이 시집 역시 이런 위험에 아주 가까이 가있다. 인식이 주를 이루면 그 인식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가 중요하다. 물론 시는 문학이기 때문에 언어의 작용이 그 사명을 맡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언어의 장난이 주는 맛에 빠지는 수가 많고 이 시집 역시 다분히 그런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 그렇다면 인식을 통해서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세계의 황폐함과 이루어놓은 것들의 허망함, 그리고 그러는 과정의 언어작용일 것이다. 이렇게 정해놓고 보면 치열한 인식의 노력에 비해 정작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부실함이 드러난다. 이것은 이 시집의 피할 수 없는 단점이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그 인식이 거느린 세계를 찾지 않을 수 없고, 그 경우 이미 있는 것들로부터 찾는다면 틀림없이 말장난이나 남의 흉내내기로 전락하기 쉽다. 뒷부분의 선문답 주변에 퍼져있는 것들이 그런 냄새를 너무 짙게 풍긴다. 내 길을 가야 할 일이다. 이왕 나섰으니, 그 길만이 살 길이다. 돌아서는 순간 죽는다.★★★☆☆[4337. 1. 19.]
368□나무 나비 나라□민용태, 문학사상신작시집, 문학사상사, 2002 나이가 들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이 시집 역시 과거사가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시들이 좀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가벼움은 일부러 조장된 것이기에 쉽게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실험이라고 봐야겠는데, 과거로 들어간 주제들이 너무 무거워서 그 실험을 방해한다. 특히 시에서 나타나는 비슷한 어감을 나열하는 수법은 우리 문학에서 그리 많지 않는 시도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가벼움이 가시지 않은 것은 끝내 아쉽다.★★☆☆☆[4337. 1. 19.]
369□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배창환, 창비시선 199, 창작과비평사, 2000 시에서 삶의 깊이가 느껴지면 그것은 나이 값이다. 젊은 사람들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느낄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가 있고, 그 무게가 시집 전편에 실려있다. 젊은 사람들의 시에서 느낄 수 없는 그 무게가 좋다. 그러나 그 무게는 불필요한 수사를 거절하는 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시가 무거운 나머지 시답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우려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인생을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 말들이 많아지는 것은 그런 증거이다.★★☆☆☆[4337. 1. 20.]
370□지금 우리들이 손에는□이선관, 스타시선 1, 도서출판 스타, 2003 시집을 집어들면 그 현란한 수사와 기교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팽팽한 긴장으로 시를 대하게 되고, 그 상징과 비유체계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읽어내기에 바쁘다. 그러다 보면 좀 쉽게 쓸 수 없나 하는 투정 비슷한 생각이 떠오른다. 아마도 형편없는 김광규의 시가 인기를 얻는 것은 그런 관성이 만든 것일 것이다. 이 시집의 시들도 될수록 수사와 기교를 동원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서술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때는 사고와 논리 전개의 방법이 시다워야 한다. ‘먹이와 미끼’ 같은 좋은 작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냥 단순히 서술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 태반이어서 좀 아쉽다. 그나마 솔직하고 남을 생각할 줄 아는 건전한 세계가 시의 세계를 아름답게 하고 있다.★☆☆☆☆[4337.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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