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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황홀한 물살□강인한, 창비시선 183, 창작과비평사, 1999 전망이 없다는 사실 한 가지만 빼면 좋은 시들이다. 적당한 표현과 적당한 삶의 무게와 인식 이런 것들이 잘 어울려서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온 삶의 진폭이 문제가 된다. 평범한 세월에 평범한 삶, 그리고 거기에다가 평범한 깨달음으로 이어진 삶이라면 시가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살아온 것이 시의 장기가 되지는 않는다. 평범한 그 세월 속에서도 살아온 세월 그 이상의 어떤 것을 바라보는 눈을 잊어서는 안 된다.★★☆☆☆[4337. 1. 30]
382□흰 길이 떠올랐다□정윤천, 창비시선 190, 창작과비평사, 1999 제1부의 작품들은 아주 빼어난 작품이다. 마치 백석의 시가 생각날 정도로 시골의 풍경을 정밀하게 복원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들은 과거의 추억에서 재구성해낸 것인데, 그 방법이 아주 독특하다. 소설 같기도 하고 환타지 같기도 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옛날의 시골 추억을 끄집어내는 아주 기발한 발상이 눈을 끌어당긴다. 그런데 과거의 추억에서 퍼 올릴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로 제약이 있다. 소재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거기에다가 시대의 문제점까지 담으려 한다면 그런 제약은 빨리 온다. 그리고 시골의 현실을 피하지 않으면 불가피한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뒤쪽으로 가면서 대상은 나의 기억으로부터 주변의 인물로 확대되어 가는데, 접근하는 방법이나 정서는 많이 상투화된다. 제1부에서 보여준 세계는 분명히 시의 새로운 영역을 넓힌 노작들이다. 한자는 역시 눈에 거슬린다.★★☆☆☆[4337. 1. 30]
383□사무원□김기택, 창비시선 185, 창작과비평사, 1999 아주 침착하고 정밀한 묘사가 눈에 확 들어온다. 묘사 시의 위력을 아는 시인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정밀하게 생각이 가 닿는 대상을 베끼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렇게 묘사가 완벽에 가까울 경우, 그렇게 묘사된 대상들의 집합이 의식의 방향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 방향이 어디를 지향하느냐에 따라서 시의 품격이 결정된다. 바로 이 점에서 몇 가지로 초점이 흩어져있는 것이 옥의 티라면 티다. 한자 표기도 그렇다.★★★☆☆[4337. 1. 30]
384□먼지는 무슨 힘으로 뭉쳐지나□정복여, 창비시선 193, 창작과비평사, 2000 세심한 관찰력과 섬세한 묘사가 출중한 시집이다. 그 정도면 시를 만드는 재주는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그런데 표현과 내용의 불협화음이 문제다. 이 시집에서 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쓸쓸함과 허무함인데, 그것을 나타내는 표현들은 너무 생기발랄하다. 물론 시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그 발랄함이 지나치면 생의 약동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스스로 괴리를 만드는 것이다. 제목도 좀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다.★★☆☆☆[4337. 1. 31]
385□수런거리는 뒤란□문태준, 창비시선 196, 창작과비평사, 2000 아주 독특한 시 세계이다.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시골의 세계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많은 이미지들이 이제는 갈 수 없는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1970년 생이면 이제 나이 서른 초반인데, 칠순 노인네들도 쓰기 어려운 그런 세계를 그렸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전통 사회를 관류하는 죽살이의 인식과 방법이 아주 잘 요약되어 있다. 비유가 너무 많은 탓에 읽는 속도가 늦어지지만 그런 장식조차도 그 세계를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보일 만큼 독특한 시집이다. 한자는 불필요한 수사이다.★★★☆☆[4337. 1. 31]
386□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장석남, 창비시선 204, 창작과비평사, 2001 말하는 방식이나 발상법이 아주 독특한 시인이다. 지루한 어법이 특징이랄 수 있겠는데, 아마도 이것은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것을 제시하는 방법의 특성 때문이다. 현상의 배후 어떤 곳까지 생각의 추가 닿아있어 시의 한 특징이랄 만한 분위기가 담겨있다. 이것은 높이 살 일이다. 그러나 그 만한 재주로 한 감정만을 집중하여 탐닉하는 버릇은 좋은 것이 아니다. 고승이 말을 잘 하지 않는 것은 말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말이 가져올 그 말 바깥의 세계의 소멸 내지는 왜곡 때문이라는 것을, 도사의 어투를 내는 사람들은 한 번쯤 경건하게 생각하여야 할 일이다. 상처 없는 영혼 없듯, 그 상처가 영혼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한자 역시 마찬가지이다.★★☆☆☆[4337. 1. 31]
387□살고 싶은 아침□정철훈, 창비시선 202, 창작과비평사, 2000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이 들어 있어서 그 열정이 시를 길게 만든다. 할 말이 분명하여 시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하는 시인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저력도 있다. 그러나 방향과 방법은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시의 칼끝이 찔러야 할 가장 민감한 부분이 어딘가를 알아채는 것이 시를 칼로 선택한 시인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할말이 많기 때문에 시가 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길어진 시에서 군더더기가 발견된다면 그건 문제이다. 그런 사소한 문제점만 해결된다면 이 시집의 호흡은 대작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간간이 끼어있는 한자는 제일 먼저 청산할 일이다. 그 한자 때문에 역사가 진보하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아야 할 일이다.★★☆☆☆[4337. 1. 31]
388□오랜 밤 이야기□김수영, 창비시선 201, 창작과비평사, 2000 묘사력이 좋고 이야기를 짜나가는 구성력도 좋다. 특히 2부의 세계는 다른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세계인 데다가 개인의 체험과 깊이 연관되어 있어서 우리가 시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서사와 전설의 정서까지도 살릴 수 있는 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전체를 볼 때 시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혹은 정서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먼저 주제를 분명히 하고 소재를 접하는 것이 시가 좀더 울림이 커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이미지는 어떤 의미를 울려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지가 그 이미지의 존재로 그치는 경우가 곳곳에 포진해있다. 시의 긴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낸다. 그리고 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느낌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4337. 2. 1.]
389□시를 찾아서□정희성, 창비시선 207, 창작과비평사, 2001 사람이 나이 들면서 말수가 적어지는 것은 말의 헛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시 또한 그럴 것이다. 나이와 더불어 잔재주가 사라지고, 잔재주가 사라진 자리에 깨달음이 온다. 시가 짧아지는 것이 남은 생이 짧기 때문인 것은 아니니, 시대가 갈 길을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잠시 허둥거린 증거라면 그것은 여태까지 시대가 가르쳐준 길을 걸어온 자의 황망스러움이리라. ‘꽃샘’ 같은 절창은 나이를 넘어서도 제 길을 버리지 않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귀한 정서이다. 한자는 그런 노력을 갉아먹는 괴물이다.★★☆☆☆[4337. 2. 1.]
390□밥상 위의 안부□이중기, 창비시선 206, 창작과비평사, 2001 농촌을 배경으로 시를 쓴다면 소재주의를 벗어나기 어렵거나, 소재주의를 벗어나면 관념의 세계로 후퇴하기 마련이다. 아마도 처음으로 그 두 가지의 함정을 벗어난 시가 나오지 않았는가 싶다. 다만 초점이 두 가지로 흩어져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흠이지만, 아마도 그 흠이 소재주의에 떨어지지 않은 처방일 수도 있겠다. 다음 시집에서는 좀 더 선명한 방향이 필요하다. ‘늙은 집’은 절창이기는 하지만, 그쪽으로 경도되었다가는 깊은 수렁으로 빠질 것이다. 그쪽으로 이미 기운 것은 이 시집의 세계에 큰 보탬이 안 된다. 한자가 족쇄가 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것이 못 된다.★★☆☆☆[4337.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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