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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45
2015년 02월 11일 15시 25분  조회:1883  추천:0  작성자: 죽림

 

441□이팝나무 길을 걷다□박정남, 문학세계현대시선집 180, 문학세계사, 2001

  사물을 보는 눈이 독특하고 그 독특한 시각을 매끄럽게 시로 끌어올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성이 갖는 풍부한 생명력과 모성만이 바라볼 수 있는 깊은 세계를 담고 있다. 그리고 군더더기가 거의 없이 이미지들이 주제를 향해 집중해 가는 절제력이 있다. 이 절제력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인식의 창을 마음에 열어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주 깊은 울림을 갖는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이다. 다만 시집 전체의 초점이 한 군데로 집중되지 않고 산만해진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4337. 2. 12.]

 

442□술병처럼 서있다□진영대, 문학아카데미 시선 154, 문학아카데미, 2002

  죽음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여 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능력이 돋보인다. 그리고 불필요한 말을 잘라버리고 사건을 요약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재주가 뛰어나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시가 이야기를 갖게 되고 그 이야기의 논리관계가 암시하는 바를 푸느라고 마치 수수께끼를 대하는 것 같은 부담감을 주게 된다. 시에 이야기 들어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줄거리로만 이루어질 경우에 문제가 된다. 이렇게 사고를 자극하는 시들은 인식의 새로움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이 부분이 보강되어야만 좋은 시가 나올 것이다.★★☆☆☆[4337. 2. 12.]

 

443□사람이 두렵습니다□지영희, 우리시대의 시인 100인 선집, 문학마을사, 2001

  묘사력도 좋고, 시를 이끌어 가는 것도 좋은데 주제에 비해 동원되는 이미지가 너무 풍부해서 큰 옷을 입은 모양이다. 시에서 나타낼 수 없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특수한 정서에 집착하면 시가 쭉정이 같아진다. 뒤로 갈수록 그런 우려가 심해진다. 성실하게 시를 쓰는 것은 좋지만 주제의식이 박약해서는 좋은 작품을 쓰기가 어렵다. 이미지들은 어떤 정서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동원되어야 한다.★☆☆☆☆[4337. 2. 12.]

 

444□수련□채호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264, 문학과지성사, 2002

  수련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이렇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다. 그러나 연작은 집중력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그 집중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철학이 있어야 하고 사고의 토대가 있어야 한다. 수련이라는 한 주제에 시로 집착하면 어차피 다른 대상으로 바꿔서 표시하는 비유의 체계에 들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수련이 연상되는 다양한 사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련이 사고체계 속에서 언어화되려면 단순한 대체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렇게 대체할 수 있는 출발선이 수련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그 시각을 뒷받침하는 사고방식, 즉 철학이다. 모네의 작품이 미술사의 조명을 받는 것은 그가 수련을 그렸다는 사실보다는 수련이라는 대상을 바라본 시각, 내지는 그 시각의 예술화 방법에 있는 것이다. 수련은 그 다음 문제이다. 이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수련을 다른 대상으로 바꾸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정신의 지평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열려야 하는가 하는 더 큰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인데, 바로 그 부분의 사고가 잘 드러나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의 한계이다. 한자 역시 그다지 필요치 않는 도구이다.★★☆☆☆[4337. 2. 12.]

 

445□단 한 번의 사랑□최갑수, 문학동네 시집 44, 문학동네, 2000

  내가 이 정도 묘사하면 내가 의도한 바가 전달되리라고 미루어 판단하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것은 신인들의 경우 태만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내가 의도한 대로 정확히 표현을 해도 때로 그 만큼 전달되지 않는 것이 이미지이고 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짐작대로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는 만큼 완전한 숙달에 이를 때까지 마음을 풀어놓지 않아야 한다. ‘밀물 여인숙’ 연작과 다른 작품들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것은 이미지를 잡아내고자 하는 집요함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관념을 전달하고자 하는데 관념어를 섞으면 거의 치명상에 가까운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 이미지의 세계이다. 철저하게 단련을 해도 독자들의 미숙성 때문에 오독을 하고 엉뚱한 해석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흠집을 남기지 않으려면 내가 정확한 이미지를 써주어야 한다. 이 점만 좀 더 철저하다면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시인이다. 한자는 구시대의 유물이다.★☆☆☆☆[4337. 2. 12.]

 

446□미리 이별을 노래하다□차창룡, 민음의 시 83, 민음사, 1997

  어떤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서울로 대표되는 도시문명과 정신의 관계를 파악해보자는 의도일 것이다. 시의 내용물은 정서인데, 정신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물질을 넘어선 정신의 세계인 자유에 닿게 되고 자유에 닿으면 정신의 해방을 추구하게 되며 해방은 정서보다는 정신의 문제여서 그런 의도를 담은 시들은 의식실험으로 나아간다. 시의 형태가 파괴되거나 건조해진다.

  시집 전체에 걸친 구도를 의도한 것은 좋은데 자신의 의식과 싸우면서 이미지들이 가벼워졌다. 정신의 실험에서 가벼워졌다는 것은 말장난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 말장난들은 의도된 것이겠지만, 이 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뿌리를 건드리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위로 전락하고 만다. ‘목탁’ 연작이 좀 깊이 들어갔을 뿐 다른 부분은 좀 얕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둘기’ 연작은 서울의 겉만을 핥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좀 더 깊은 천착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런데 평론을 하는 사람이 한자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4337. 2. 13.]

 

447□우물□최영신, 자음과모음의 시 13, 자음과모음, 2001

  어디까지가 시인지 시가 아닌지 하는 구별이 아직 안 되었다. 그래서 설명과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있다. 특히 시들이 긴 것은 꼭 그렇게 되어야 해서 된 것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시의 특징은 간결성이고, 그 간결함과 간단함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 시인의 능력이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 묘사력이나 유추력은 나름대로 좋은데 그것을 너무 세세히 설명하려는 태도가 시를 지루한 것으로 만든다. 해야 할 말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구별하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비결이다.★☆☆☆☆[4337. 2. 13.]

 

448□열 자에 아홉 자의 단칸방□최병우, 경계시선 9, 문학과경계사, 2002

  추억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울림을 갖는 데 아주 유리하다. 더욱이 그것이 오랜 세월을 뒤돌아보는 것이라면 더 그렇다. 그래서 나이가 주는 강점은 바로 그 추억이 풍성하다는 점일 것이다. 80나이에 시집을 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니와 그 나이가 갖는 두터운 고정관념의 벽을 뚫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버리고 과거를 돌아보는 자의 고요한 세계가 잘 육화되었다. 나이 들면서 꾸미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인품이다.★★☆☆☆[4337. 2. 13.]

 

449□풍경 뒤의 풍경□최하림, 문학과지성 시인선 254, 문학과지성사, 2001

  풍경 묘사로 감정을 대신하는 시 창작의 묘를 잘 아는 시인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은 전혀 없는 듯이 시가 풍경 묘사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데 그 풍경 스케치는 정밀하게 선택된 것들이어서 눈이 따라가는 대로 화자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고 드러낸 그 감정들은 이미지로 객관화되어 시의 마지막 행을 다 읽는 순간 한꺼번에 다가온다. 이미지가 강점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효과 때문일 것이다. 이미지가 시를 이끌어갈 때 감정을 직접 노출시키면 안 되고 이미지 스스로 감정의 그 속성을 말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시를 쓸 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아주 잘 이루어졌다. 다만 이미지 뒤로 너무 물러서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아무리 이미지로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할 말은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자는 이제 이미지 자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4337. 2. 13.]

 

450□살아있는 것들의 무게□정양, 창비시선 158, 창작과비평사, 1997

  군더더기가 거의 없이 아주 단단하게 잘 풀어나간 시다. 그런데 제2부를 넘어가면서 일기인지 시인지 구별을 할 수가 없어 아쉽다. 좌절한 혁명에 대한 회고조의 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나아갈 수 없기에 돌아보는 것은 자명한 귀결이지만 성찰이 성찰로 끝나고 나면 현재를 합리화하는 지름길이 된다. 역사와 혁명은 일상 속에도 있다. 한자는 시를 무겁게 한다.★★☆☆☆[4337.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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