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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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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46
2015년 02월 11일 15시 27분  조회:1650  추천:0  작성자: 죽림

 

451□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김선우, 창비시선 194, 창작과비평사, 2000

  나무랄 데 없이 시를 참 잘 쓴다. 헛되이 쓰이는 시어가 없고 꼭 쓰여야 할 곳에 있으면서도 시 한 편이 정확한 한 상황을 전달하는 데 기여한다. 이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다만 신인이 갖는 부담을 벗어버리지 못하여 끝까지 다 보여주려고 하는 버릇 때문에 설명조가 남아있는데, 특히 끝 부분에 몰려 있는 시들이 그렇다. 그런 부분만 깎아내면 정말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다만 자폐증으로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곳은 좋은 시는 쓸 수 있을지 몰라도 큰 시는 쓸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간과할 수 없을 만큼 큰 흠이다.★★★☆☆[4337. 2. 13.]

 

452□어두워진다는 것□나희덕, 창비시선 205, 창작과비평사, 2001

  정말 시를 잘 쓰는 시인이다. 시가 아픔이 피워 올리는 꽃임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준 시집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제 몸 속에 송곳을 꽂고 있는 사람이 내지르는 신음소리 같은 시들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온다. 고통을 이렇게 아름답고 단단하게 형상화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묘한 틀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 틀들이 시를 주물처럼 주조해내고 있다.

  대부분의 시들은 철사를 구부려서 만든 작품과 같다. 작품을 써놓고서 손이 구부러졌으면 휘어서 바로잡고, 균형이 안 맞으면 구부려서 바로잡는 식이다. 그러나 이 시들은 처음부터 한 상상으로 시작하고 마감되어 수미일관한 방향을 보인다. 이것이 큰 미덕이다. 자신의 상처 속에 든 시대의 아픔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완벽에 가까운 시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완벽을 향해 가는 길에 넘어야 할 언덕 하나가 한자이다.★★★★☆[4337. 2. 13.]

 

453□홀로서기 시선집□서정윤, 문학수첩, 2002

  장식을 버리고 절실한 고백만으로도 시가 될 수 있음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다. 우리는 멋진 비유를 통해서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 시의 본류라고 교육에서 강요받았고, 그런 관점으로 보지 못하는 세계가 얼마든지 있음을 보여주는 시다. 그런데 방법에 투철한 자각을 하지 못하여 쓰지 말아야 할 곳에서 비유를 끌어들여 오히려 사고의 흐름을 방해하는 곳이 많다. 이것은 시인의 재주가 미숙해서 나타난 현상이다. 게다가 그 세계가 한 곳으로 너무 치우쳐있다. 그것은 시인의 세계관의 문제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가도 되는 것을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 위에서 부레옥잠처럼 맴돌고 있다. 삶의 시궁 속에 뿌리내리지 못한 시는 가뭄이 오면 말라붙는다.★★☆☆☆[4337. 2. 14.]

 

454□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신달자, 문학수첩 시집 36, 문학수첩, 2001

  시가 지닌 간결성을 잘 활용한 시다. 치열한 정신을 짧은 단상 속에 집어넣는 능력이 좋다. 다만 너무 자학에 가까운 과거에 초점을 맞추어서 어머니가 갖는 그 풍요로움을 많이 잃은 것이 아쉽다. 자학을 하다 보니 감정 조절이 안 되고 애써 만들어놓은 비유체계까지 흔들려서 시의 수준이 들쭉날쭉이다.★★☆☆☆[4337. 2. 14.]

 

455□현대적□이갑수, 민음의 시 59, 민음사, 1994

  아이의 둘레에 금을 그어놓고 이 금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했더니 하루종일 그 안에 서서 울더라는 얘기와 똑같다. 동그라미 닮은 것만이 있을 뿐 동그라미란 원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너무 많이 시간이 걸리는 것은 부실한 한국 교육에 너무 충실한 학생들이 저지르는 실수이다. 그런 실수에 대한 추억으로 시집을 메웠는데, 아직도 동그라미를 못 찾은 어린 학생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안타깝다. 뒤쪽의 과거 회상은 시집 전체에 누가 된다. 시집이 지향하는 바와 다르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한자를 버리지 않으면 동그라미의 세계에 닿을 수 없다. 그 동그라미는 자신의 안에서 밝게 빛나고 있다. 고생대 이전부터 지구 멸망 이후까지 계속.★★☆☆☆[4337. 2. 14.]

 

456□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이면우, 물길시선 1, 북갤럽, 2002

  마흔에 바라보는 세상의 따스함과 한계를 아주 잘 드러냈다. 그러나 나이 먹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것이 시라는 강한 인상을 독자들이 갖게 된다면 그것은 시에서 꿈을 제거하는 것이다. 나이로 보는 것 아니라도 세상은 보여주는 것이 많다. 그것을 도외시한 인상이 짙다. 그것이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시가 그런 경직성 안에 갇혀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꿈이 없음을 노래할 때도 세상을 보는 눈은 꿈을 피워 올려야 하는 것이 시이다. 수필로 썼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이미지를 쓰던가 없애던가 해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산만해졌다.★★☆☆☆[4337. 2. 14.]

 

457□식물의 시간□이명기, 문학아카데미시선 133, 문학아카데미, 2000

  시작 수업을 착실히 받은 사람이다. 관념을 어떻게든 형상화해서 제시하려는 노력이 시집 전체에 일관되게 보인다. 이런 성실성은 큰 시인이 될 수 있는 바탕임은 말할 것도 없다. 두 가지 문제점이 눈에 띈다. 첫째는 불필요한 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를 쓰면서 군살을 덜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를 쓰다 보면 이것저것 비슷한 이미지도 많이 생긴다. 그런  것들이 주제를 형상화하는데 기여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판단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면 그 즉시 잘라버려야 한다. 그것이 시 전체를 무겁게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들에 오래 집착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버릇은 시가 주제 빈약에 시달리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시들이 그런 위험 근처에 노출돼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물을 새롭게 보려는 시도이다. 낱낱의 비유체계도 문제지만, 시 한 편, 나아가 시집 전체가 새로운 시각을 담으려고 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낡아 보이는 것을 면치 못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를 심각하게 정한 다음 한자를 버릴 일이다.★☆☆☆☆[4337. 2. 15.]

 

458□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이기철, 문학과지성 시인선 126, 문학과지성사, 1993

  나이는 평범함에 눈길을 주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시에 드러나는 지점에 이 시집이 있다. 그리고 어떤 전환을 예고하는 시집이다. 마흔이면 정신을 생각하는 나이이다. 그리고 그 정신이 일상 속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것에 관심이 가는 나이이다. 그런 마음이 경향이 일상 속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일상의 가치를 깨우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선명하지 않다. 막연한 결심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 정신의 영역이다. 방법론도 필요하고 방향도 필요하다. 그런 사유에 한자는 도움이 되지만 그것의 형상화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4337. 2. 15.]

 

459□내 마음의 오후□이진우, 시작시인선 22, 천년의 시작, 2003

  시는 시인의 생각에서 연유하여 그것이 정리되어 나타나는 것인 만큼 시에는 시인의 사고과정이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남들의 발상과 다르고 선명할수록 읽는 사람은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시가 전하고자 하는 정서도 정서지만, 시를 형상화하는 과정의 흔적이 오히려 더 감동을 주는 수가 많다. 그런 점에서 그 흔적이 분명하지 않거나 신선하지 않으면 초점이 흐려지고 저절로 군더더기가 많아진다. 바로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 제2부의 시 몇 편을 빼놓고는 앞서 말한 그 점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드러나더라도 상투화된 수법이어서 별로 볼 것이 없고, 볼 것이 있다고 해도 내용이 또한 그러해서 읽기 어려운 시들이다. 따라서 생각이 난다고 해서 시로 옮길 것이 아니라 어떤 형상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은근하게 기다렸다가 쓰는 것이 이런 단계를 벗어나는 한 방법이다.★☆☆☆☆[4337. 2. 16.]

 

460□꽃들은 만개의 꿈을 반복한다□이숙이, 문학아카데미시선 162, 문학아카데미, 2003

  시는 표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시는 반드시 표현을 거치지만 그 표현은 반드시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를 갖기 마련이고, 그것은 시집 전체에 일관되게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시집을 읽다보면 새로운 사실의 발견과 그것의 표현에 탐닉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곳이 아주 많다. 그러다 보니 주제도 표현을 따라가다가 나중에 형성되는 수가 생긴다. 자칫하다가는 자신의 애초 생각과 상관없는 엉뚱한 결론을 내기에 이른다. 애써 얻은 표현도 그것이 무엇을 전하는 데 잘 쓰여야 하는가 하는 것을 결정하지 못해서 아깝게 버려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내가 애써 얻은 표현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좀 더 분명하게 정하고 시를 쓸 필요가 있다. 한자는 불필요한 장비이다.★☆☆☆☆[4337.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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