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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71
2015년 02월 11일 16시 23분  조회:1761  추천:0  작성자: 죽림

 

701□정선 아리랑□박세현, 문학과지성시인선 103, 문학과지성사, 1991

  “농무”를 읽는 기분이다. 꼭 필요한 말들만 쓰일 곳에 쓰여 더하기도 어렵고 덜 하기도 어려운, 딱 그 만큼만 그려진 풍경화다. 한 지역을 소재로 하여 이만큼 고르고 다양하게 형상화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선의 풍경과 그 풍경 속에 스며있는 정서까지도 아주 잘 표현되었다. 시인의 저력이 유감없이 드러난 시집이다. 다만 묘사로 그치고 말았어야 할 곳에서 미처 감추지 못하고 드러나는 감정의 골이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그런 단점은 큰 것이 아니어서 정선을 한국 문학의 한 복판으로 끌어들이는 데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

  시인이 노래한 것은 정선이지만, 시에서 노래된 것은 대한민국 전체이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시의 심오한 원리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시집도 보기 드물 것이다. 한자는 영원한 흠이 될 것이다.★★★☆☆[4337. 7. 7.]

 

702□성 타즈마할□함성호, 문학과지성 시인선 208, 문학과지성사, 1998

  시에서 실험은 외부를 향한다기보다는 자신의 내부를 향한다. 세계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세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변화를 통해 세계의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실험은 어떤 변화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를 추구하고자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변화된 어떤 것이 그 사회 안에 있는 또 다른 존재들의 내면에 울림이 올 때 이 실험은 성공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존재의 반응 여부에 따라 실험은 자칫 장난으로 그치고 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험하는 자가 늘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실험하는 순간 의식의 플러그가 이 세계의 어느 곳에 꽂혀있는 것이며, 꽂혀있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함성호 표 플러그는 어느 곳에 꽂혀있는가?

  <성 타즈마할>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것은 거의 구도의 방향으로 시가 가고 있다. 그 접근법을 형식의 문제로 환치하고 있는데, 구원과 형식은 본질의 문제이기보다는 때로 표현상의 간단한 오류일 수 있다는 것이 이런 방향 설정의 어려움이 된다. 그것은 때로 근본을 묻는 형식의 날카로움이자 장벽일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일정한 성취를 볼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시의 본질은 깨달음이 아니라 감성의 일깨움이기 때문이다. 깨달은 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설령 말을 할 상황이 오더라도 아낀다. 선시가 지극히 짧아진 이유는 그런 까닭이다.★★☆☆☆[4337. 7. 12.]

 

703□해파리의 노래□김억,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대정 16)

  참고할 전례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틀을 새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선구자는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있고, 그 실패 때문에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성공이 보장된다. 1923년에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출판된 개인시집이라는 이력을 가진 이 시집이 그런 전형에 해당한다. 시가 대부분 분명한 형식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리고 한 눈에 감정의 과잉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것은 김억이 참고한 외국 시인들의 시에서 받은 영향이겠지만, 그 전까지 극도로 절제된 감정을 보여주던 한시의 관행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옛 형식인 한시의 관행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시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관행이 지닌 장점까지 버리고 전혀 새로운 틀을 만든 것은 그 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어서 이 시집 전체가 감정 조절을 위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넘치는 감정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진정한 자유시의 출현은 결국 다음 세대를 기다려야 했던 셈이다.★★☆☆☆[4337. 7. 14.]

 

704□카프 시인집□김창술 권환 임화 박세영 안막,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6)

  역사는 나선형이어서 비슷한 일들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반복된다는 이론이 언뜻 떠오른다. 1920년대에 나온 이 시집 속의 표정이 1980년대를 휩쓸고 간 시대 분위기와 너무나 흡사함에 놀란다. 분명 역사는 나선형으로 돈다는 사실을 이런 표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대를 꿰뚫는 것은 자각의 정신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위치에 있고, 그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가 강렬하게 부각되며 이 때 형식의 거칢이나 무질서는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대 상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시에서 어떤 절제된 형식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에서 피지배층이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여 자신을 사회 변혁의 중심으로 설정한 것은 해방 전 공산주의 운동이 유일하다. 이 시집은 그러한 운동의 중심에 선 작가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논리화한 책이라는 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1980년대에 일어났던 노동시의 원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전통의 기원이라는 점에서 시 정신사의 한 획을 긋는 시집이다.

  처음 나온 시집이기에 전례 없이 출발한 시가 갖는 모든 한계를 다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한계는 현실에 대한 저항에 관심이 집중되어 자신들이 열고자 하는 세계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에서 사상은 확립되었을지언정 방법론이 아직 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일이겠는데, 그때는 이미 이 시집을 낸 조직인 카프가 해산되는 운명을 맞는다. 그리고 이후 반세기 동안 역사의 어두운 지층 밑으로 가라앉는다.★★☆☆☆[4337. 7. 14.]

 

705□영랑 시집□김영랑,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0)

  1935년에 발간된 시집인데,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시에 제목이 붙지 않고 1부터 53까지 번호를 붙인 것이다. 낱낱의 작품을 모아서 한 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된 한 권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이런 의도가 시에서 잘 살아있어서 시들이 한 호흡으로 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제일 먼저 두드러진 것이 가락이다. 운율이 아주 잘 살아있다. 비슷한 음보가 반복되고 있지만, 반복되는 가락은 음보만이 아니라 주제, 이미지 같은 것들도 일정한 범주 안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 시에서 정형성을 추구한 노력이 나름대로 성과를 보인 몇 안 되는 성공사례일 것 같다. 대신에 율격이 현저히 살아나기 때문에 다른 요소, 즉 주제라든가 구조의 단단함 같은 것은 많이 후퇴했다. 특히 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주제인데, 이 부분이 취약해진 것이 크게 눈에 띈다. 그리고 좋은 시를 쓸 때는 감정의 집중이 이루어지는데, 시의 구성요소인 율격에 생각을 집중하다 보니 바로 이런 감정의 집중이 잘 안 이루어진 것이 흠이다. 45번이 붙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같은 작품이 더 나오지 않은 것이 끝내 아쉽다. 좋은 가락이 흔치 않은 우리 시에서 운율을 잘 살리려고 했고, 또 일정 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 전범을 보인 작품이다. 하지만 안이하고 지루한 반복은 오히려 실패하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 시집이다.★★☆☆☆[4337. 7. 15.]

 

706□망향□김상용,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4)

  1939년에 낸 시집인데, ‘남으로 창을 내겠소’를 빼면 별로 보잘 것이 없다. 대부분 발상의 차원에 머물러 있고, 시어들이 너무 장황하게 분산되고 있어서 정작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전달하는 데 제 노릇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가 차분한 느낌이 들지 않고 어딘가 미숙한 느낌이 나고 들떠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자연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은데, 자연에 빗댈 삶의 내용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나왔기 때문에 주제가 엷어질 수밖에 없고 단순한 제시 정도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이미 자연을 성리학의 사상을 바탕으로 해석한 그 이전의 방법과는 다른 시각이 확보되어야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인데, 그것이 안 된 상태에서 언어화 됐기 때문에 생긴 문제로 보인다. 자연을 자연으로 보는 것도 중요한 한 관점이 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것도 아니기에 문제이다. 방향을 잡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흠의 원인이 된 시집이다.★☆☆☆☆[4337. 7. 15.]

 

707□현해탄□임화,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3)

  <신문학사>를 읽으며 그 논리 정연함에 소름이 끼칠 만큼 감동했던 10년 전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번에 읽은 시집에서도 그 이상의 감동이 밀려든다. 1938년에 이런 시집이 나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역시 임화다! 연구자들이 인용하는 대부분의 시는 ‘네 거리의 순이’ 같은 초기 시들인데, 그런 것들은 문학사상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임화의 시를 평가하는 데는 헛다리짚은 것이다. 임화 시의 절정은 바다에 관한 시에서 이루어졌다.

  이 시들이 갖는 장점은, 대부분의 카프 계열 시인들이 갖는 발언의 직접성을 버리고 돌려 말할 줄 아는 저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카프 시인들의 시는 형상성이 한결같이 결여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관점에서 시는 노동자의 감성을 충동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격렬한 노동현장에서는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능력이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가 격렬한 현장의 그 정서에 맞추어서 쓰여진다. 그리고 그것을 책상머리에 앉아서 읽는 자들의 눈에는 상상력의 결여로 결판나는 것이다. 단편 서사시라는 이름을 얻는 임화의 초기 시 역시 이런 판단으로부터 멀리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바다와 관련한 시들에서는 카프가 해체된 뒤의 사색이랄까 하는 것들이 그런 한계를 벗어나서 아주 잘 극복되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아마도 격렬한 현장에서 뛰던 자신을 조금 거리를 두고 돌아볼 여유가 생긴 탓일 것이고, 나아가 사상투쟁의 휴지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전환기의 여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문학 특유의 돌려 말하기를 아주 잘 구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 혁명과 실천에 대한 믿음에는 전혀 변화가 없이 자신의 신념을 시의 뒤쪽에 갖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상황은 변했을지언정 사상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바다 이미지는 당시의 조선 현실과 어울려 한국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광막한 바다에 떠있는 배의 존재가 당시의 조선 아니던가? 그 출렁이는 대지 위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혁명가의 존재와 정확히 일치한다. 임화는 바로 이와 같이 시 전체를 밑받침하고 있는 전제를 간파할 줄 안, 우리 나라 문학사에서 몇 안 되는 뛰어난 시인 중의 하나이다. 더욱이 해방 전의 시인들이 지리멸렬하여 자신의 내부로 퇴영하거나 시의 아름다움 속으로 도망치던 시절에 캄캄한 민족의 현실을 이만큼 여유 있고 크게 그려낸 시인이 없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시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이 굉장히 굵고 길다. 이것은 할 말이 많다는 뜻이고, 그 할 말을 걸러낼 어떤 형식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주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시는 지루해진다. 이런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 속에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꾀를 부렸다. 아마도 이것을 ‘단편 서사시’라고 불렀을 것인데, 시에서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노릇을 한다는 점에서는 결코 좋은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주제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고뇌는 나름대로 성과를 본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아무도 개척하지 못한 한 시의 영역을 열어 젖힌 것이니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다만 후반부에 와서도 이렇게 길게 쓰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바다의 이미지로 들어간 것은 안이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시다운 것은 전반부의 시가 아니라 후반부의 시이다. 거기서는 전반부에 쓰인 시들처럼 직접 주제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유추해서 해석할 수 있는 세계가 분명히 있고, 그럼으로써 더욱 그 해석의 넓이와 깊이가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이상으로 시의 한 경지를 열어 젖힌 시집이다. 오히려 사상성이나 방법 면에서는 임화의 시가 훨씬 더 앞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카프, 카프 하지만 카프가 그냥 카프가 아닌 것이 임화 같은 인물 때문이라는 것임을 이런 작품에서 확인한다. 후세의 시인들이 뛰어넘기 어려운 곳까지 시를 밀어 올렸다. 그리고 그런 절대절명의 전환점에 선 자의 몫이기도 하다.★★★☆☆[4337. 7. 16.]

 

708□태양의 풍속□김기림,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4)

  1939년에 발간된 시집인데, 시에서 이미지의 노릇을 오래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무엇보다도 시집 전체를 한 구도 안에 넣어서 꾸민 기획력이 놀랍다. 물론 서구 이미지즘의 모방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단숨에 그런 모방을 할 수 있는 것은 웬만한 뚝심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시들이 전체의 부분을 이루면서 전체가 달리는 방향으로 함께 작동하도록 배치되었다는 것은 큰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이미지들이 어떤 전제된 관념을 나타내기에 급급하고, 그 전제된 관념이 현실 속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나타난 이미지들은 공허함이나 황당함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이미지가 이미지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어떤 것을 나타내는 환기물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림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그 환기의 대상이라는 것은 삶과 사회의 축도이다. 그렇다면 그 축도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과 철학이 필요한가 하는 좀 더 큰 질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문명비판이라는 큰 관점 이외에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현실과 철학이 없기 때문에 시 전체가 허황한 몸짓으로 끝난 셈이 되었다. 일제하의 식민지 현실을 비켜놓고서 전달할 문명이란 바나나 껍질일 뿐이다. 대작을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작가였는데, 이 점이 끝내 아쉬운 점이다.★★☆☆☆[4337. 7. 19.]

 

709□초롱불□박남수,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5)

  절제된 묘사가 주를 이루면서 할 말이 풍경의 뒷편으로 물러났다. 이럴 경우에는 동원되는 언어가 시를 이끌어가는 주된 동력이 된다. 의미는 이미지의 주변에서 독자가 추론할 수 있을 정도의 암시만으로 존재한다. 앞부분의 시들은 대개 자연에 둘러싸인 마을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고 뒷부분에서는 자신의 경험이 등장함으로써 좀 더 상세한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발간된 다른 시집들과 다른 것은 시어 선택과 시에 대한 생각에서 시인의 주관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변혁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미지 실험에 기울어버린 것도 아니어서 묘사 중심의 시이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언어세계를 열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일제강점기 말이라는 시대의 몫도 없지 않겠지만, 아쉬운 것은 묘사의 시가 흔히 갖는 것처럼 주제의 빈약을 피할 길이 없고, 시에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후의 박남수 시가 갖는 절제된 언어 감각이 엿보이는 작품임은 분명하다.★★☆☆☆[4337. 7. 19.]

 

710□청마 시초□유치환, 한국대표시인 초간본총서, 열린책들, 2004(초간 소화 14)

  아주 독특한 시 세계이다. 어려운 한자 투성이가 흠이기는 하지만, 시에서 추구하는 바와 노래하는 것이 자신만의 철학과 세계이다. 그리고 이 세계는 당시의 다른 시인들한테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독특한 맛이 있다. 종교 냄새도 풍기는데, 단순한 신도의 그것이 아니라 어떤 계시를 읽고자 몸부림치는 구도자의 그것이고, 아마도 이것은 유교의 잔상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선비들이 갖는 고결함 같은 것이 스며있다. 청마 자신도 그것이 어떤 세계인지는 분명히 자각하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숭고한 그 어떤 세계를 상정하고 그것에 반하는 것들을 박쥐나 까마귀 같은 시들에서 드러냄으로써 그 반대편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고, 그런 세계를 특별한 장식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노래하는 방식으로 썼기 때문에 정신이 직접 드러나는 효과를 낸 것이다. 그렇지만 시의 바탕에는 한시의 작법이 많이 깔려있다.★★★☆☆[4337.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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