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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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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80
2015년 02월 11일 16시 39분  조회:1987  추천:0  작성자: 죽림

791□개들의 예감□연왕모, 문학과지성 시인선 202, 문학과지성사, 1997

  방향 없는 묘사에 그친 시가 있고, 무언가를 암시하고자 하는 시가 있다. 실험시라면 이 두 가지는 서로 어울리기 힘든 것이다. 암시는 너무 간단하고 단순하다. 묘사는 너무 복잡하고 언어의 기능을 스스로 저버린다. 기능을 버린 언어는 그것 자체로 생명을 지닌다. 그 생명에서는 긴장이 느껴져야 한다. 그것은 실험이 갖는, 아무런 모습도 갖지 않으려는 몸부림 때문이다. 그냥 말로만 남아버린다면, 실험의 생명인 정신이 죽어버린다. 적어도 이수명에게 한 수 배워야 할 시집이다. 한자는 실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4337. 8. 25.]

 

792□밤의 공중전화□채호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201, 문학과지성사, 1997

  시가 아주 거칠다. 그렇지만 남들이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시집이다. 발상도 그렇고 시집 한 권에 흘러 넘치는 육체와 성에 관한 사고가 그렇다. 프로이드 심리학자들이 가장 좋아할 법한 시집이다. 시 곳곳에 도착된 성에 관한 관찰과 느낌이 서려있다. 그런데 시가 아주 거칠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생각들이 가지런하지 않거니와, 가지런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자꾸 설명을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생각이 정리된 뒤에 이미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만난 뒤에 생각을 정리해서 그렇다. 그래서 실제로 필요한 말보다 장황한 이미지들이 동원됐고, 그 역시 깔끔히 정리되지 않아서 거칠게 느껴진다. 그리고 실험으로 나아가야 할지, 아니면 성찰의 내면을 드러내야 할지 방향이 분명히 잡히지 않아서 그런 탓도 있다. 태도를 좀 더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은 작품으로 가는 지름길이다.★★★☆☆[4337. 8. 25.]

 

793□그런 의미에서□임후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204, 문학과지성사, 1997

  여느 시와는 다르게 시에서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시체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는 그것이 실험시이든 보통 시이든 간에 읽어가면서 이미지가 만드는, 그래서 이미지에 실려 전해지는 어떤 의미나 정서가 와 닿기 마련이다. 특히 의미를 감추어서 주제가 파악하기 어려운 시들은 그 이미지가 갖는 느낌만으로라도 와 닿는다.

  그런데 이 시집의 시들은 그런 느낌조차도 없다. 그 원인을 잘 살펴보면 시를 쓰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무엇을 전하자고 쓴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선택된 어떤 상황을 아무런 생각이나 의도 없이 묘사하는 일로 그치고 있다. 말하자면 카메라를 찍을 때 아무런 생각 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것과 같은 일이다. 실험시에서 종종 있는 일인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생긴 시들이 나름대로 무언가를 전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시인과 시의 태도가 서로 다르다. 이것을 실수라고 봐야 할지 의도라고 봐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시가 산만하다는 것이다. 한자는 산만한 요인 중의 하나이다.★☆☆☆☆[4337. 8. 26.]

 

794□유리의 나날□이기철, 문학과지성 시인선 211, 문학과지성사, 1998

  시집 한 권을 한 호흡으로 쓴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대단한 능력이다. 그 능력 위에 시집 한 권 속의 시들이 한 초점을 향해 집중해있다는 것은, 그것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더욱 대단한 능력이다. 모든 시를 유리로 수렴시켰는데, 유리라는 말이 이 시집의 내용을 담기에는 좀 작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리가 나타낼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어떤 것이 이 시집에 담겨있다. 그리고 주제가 강하게 부각되면서 언어가 거기에 혹사당하는 것이 단점이다. 이기철이라는 이름은 시어의 아름다움과 아기자기함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것은 그가 이룬 성취이고, 그것은 또 장점이기에 계속해서 살려도 좋은 그런 부분이다. 내용이 강해졌다고 해서 버릴 그런 것은 아니기에 아쉬운 것이다. 깨달음이 언어로 화할 때는 언어와 내용에 간격이 생겨서는 안 된다. 이미 선시에서 그런 경지를 아주 잘 개척했다. 성급하게 보여주려고 하다 보면 자꾸 설명하게 되고, 설명을 하게 되면 자꾸 본질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더더욱 덧칠을 하게 된다. 시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 시집 속의 시들이 대체로 길다면 그것은 장점이라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작은 티끌이 보인다고 해도 이 시집이 이룬 경지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4337. 8. 26.]

 

795□사람들 사이 꽃이 필 때□최두석, 문학과지성 시인선 207, 문학과지성사, 1997

  바깥에서 주어진 자극에 반응하여 시를 쓰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닐지 몰라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 자극 속에 이미 방법이 주어지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극이 강하면 강할수록 시 또한 좋아진다. 그러나 그런 자극이 없을 경우에는 방법도 같이 사라진다. 그때 시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 건질 것이라고는 <함동정월> 정도이다. 단풍을 보고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것은 굳이 시인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시인과 시민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이다.★☆☆☆☆[4337. 8. 26.]

 

796□안동시편□이태수, 문학과지성 시인선 205, 문학과지성사, 1997

797□이슬방울 또는 얼음꽃□이태수, 문학과지성 시인선 285, 문학과지성사, 2004

  이 시집을 관류하는 이미지는 길이다.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그것이 실제의 거리이든 마음의 거리이든 그건 상관없다. 시에서는 마음의 길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인이 돌아다니는 것은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서는 발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서있는 자리와는 다른 곳에 가면 보는 것이 달라진다. 그래서 새로운 자극이 생기고 그 자극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들이 종종 범하는 오류는 풍경묘사에 치중한 나머지 할말이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풍경이 준 충격이 이미지로 다가오는데 그 이미지가 가지고 갈 의미가 선뜻 결정되지 않는 경우이다. 이 시집들 역시 그런 오류를 범하고 있다. 대체로 의미가 약하다. 그리고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이미지를 버리기 아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말을 정비하고 이미지 역시 꼭 필요한 것만을 놔두고 과감하게 잘라버릴 필요가 있다. 이미지는 어차피 무언가를 전하지 않으면 제 힘을 내기 힘든 법이다. 그리고 돌아다니는 시는 꼭 줄거리가 생긴다. 돌아다니면서 마주친 풍경에는 그 풍경이 갖고 있는 사연이 있고, 그 풍경과 접촉하면서 생기는 나의 사연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전하려고 하는 속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경에 너무 집착하지도 않고 풍경을 적당히 이용하면서도 풍경이 결국은 내 이야기를 전달하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이 시집의 풍경은 너무 강하다.★★☆☆☆[4337. 8. 26.]

 

798□내 손금에서 자라나는 무지개□문충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51, 문학과지성사, 1986

799□방아깨비의 꿈□문충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94, 문학과지성사, 1990

800□바닷가에서 보낸 한 철□문충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206, 문학과지성사, 1997

  우직하다. 이 말은 태도나 상상력 모두에 해당한다. 시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10년이 넘도록 변함이 없다. 이런 태도는 높이 살 일이지만 상상의 틀이 역시 그러하다는 것은 결코 좋은 점이 아니다. 시인은 자기만의 색깔이 있고, 상상력의 틀이 어떤 정형성을 갖추기 마련이지만, 그 정형성이 단순하면 금방 물린다. 억지로 다채롭고 화려할 필요는 없지만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최대한 새롭게 보여주려는 노력은 시인의 가장 좋은 덕목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이 시들은 커다란 단점을 갖고 있다. 너무 설명투로 흐르고 어수선하다. 따라서 생각을 더 단단하게 벼리든가 상상의 층을 변화시키든가 해야 할 상황에 와있다. 어떻게 하면 한 번 더 생각과 상상력이 굴절될 것인가 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일이다. 한자는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4337.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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