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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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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83
2015년 02월 11일 16시 44분  조회:1754  추천:0  작성자: 죽림

 

 

821□푸른 삼각형□강유정, 청하시선 8, 도서출판 청하, 1983

  단조로운 것이 흠인데, 아주 잘 쓴 시다. 죽음을 이토록 깊이 노래한다는 것도, 이토록 감미롭게 노래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물의 의미를 교묘하게 바꾸어 삶의 근원에 드리운 어떤 정서를 아주 잘 퍼 올렸다. 시어가 사물을 직접 지시하기보다는 정서를 환기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기도 어렵다. 곳곳에서 김춘수의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변별성은 있고, 또 나름대로 전하고자 하는 정서가 분명해서 아주 독특한 세계를 이루고 있다. 첫 번째 시의 한 자 몇 글자는 옥의 티다.★★★☆☆[4337. 8. 30.]

 

822□나비와 광장□김규동, 산호장, 1955

  지금까지 읽은 시집 중에서 가장 오래 전에 출판된 시집이다. 1955년이면 한국 전쟁이 끝난 직후이니, 꼭 50년이 된 셈이다. 그 동안 출판 문화는 많이 달라졌다. 세로줄로 쓰여진 첫 번째 시집이다. 시집 뒤에는 <나비와 廣場>이라는 제목을 다시 붙이고 <限定 2000部中 No._____>로 표시한 다음 ____ 위에 543을 찍었다. 옛날에는 시집을 내면서 각 책에도 번호를 붙인 모양이다. 아주 재미있다.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일까? 우리의 맹세라는 것도 넣어서 적개심을 고취시켰던 모양이다.

  시의 내용은 별로 볼품이 없다. 무언가 특이한 분위기로 표현을 해야 하고, 서구의 냄새를 조금은 풍겨야 한다는 듯이 외국어도 많고, 표현을 아주 어렵게 했다. 겉멋이 좀 들었다고나 할까? 애상도 두드러진 정서이다. 아직 정제된 표현을 얻는 시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 어려웠던 1955년에 이만한 시집을 냈다는 것이 놀랍다. 값이 400환(圜)이다.★☆☆☆☆[4337. 8. 30.]

 

823□반시대적 고찰□박남철, 세계사시인선 89, 세계사, 1999

  시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면 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양심을 훼손당하고 싶지 않은 욕망과 그러기 위한 몸부림에서 정서가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맑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시들이다. 삶의 모순을 극대화시키고 재생산하는 것이 자본이다. 그 앞에서 허물어지고 구겨지는 자신의 모습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반응하는 것이 이 시집의 내용이다. 시의 형태파괴는 어느 것으로도 위안 받지 못하는 정신의 내면이고 파편이다.★★★☆☆[4337. 8. 30.]

 

824□슬픔에 관한 견해□전원책, 청하시선 70, 도서출판 청하, 1991

  시를 쓰는 태도는 아주 성실한데, 시 전체는 좀 산만하다. 이 산만함은 전하고자 하는 정서에 비해 주제가 빈약하기 때문에 드러나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좀 길어진다. 시가 길어진다는 것은 지루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제든 정서든 좀 더 벼려서 빛나는 구슬을 만들 필요가 있다. 단단한 것이 빛나는 것이다. 한자는 빛을 깎아먹는다.★★☆☆☆[4337. 8. 31.]

 

825□새□김동현, 청하시선 9, 도서출판 청하, 1984

  앞의 시 몇 편은 정말 뛰어난 걸작이다. 인식의 꺼풀이 다른 사람은 흉낼 수 없는 독특한 맛이 있고, 그것을 통해 깊이 있는 사유를 나타내는 절묘한 감각까지 살아있다. 하지만, 뒤쪽으로 가면서 시가 그런 탄력을 잃고 흔한 시로 전락해버린 것이 끝내 아쉽다. 그렇다고는 해도 허투루 쓴 시는 없고 이미지들이 아주 견고하게 대상을 물고 있어서 모호한 구석은 없다. 시의 수련이 굉장히 깊은 시인이다. 한자는 불필요한 장비이다.★★☆☆☆[4337. 8. 31.]

 

826□백두산□조기천, 실천문학의 시집 59, 실천문학사, 1989

  보기 드물게 성공한 서사시이다. 서사시라는 양식은 원래 사건을 서술한 시여서 시의 본질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이다. 그 안에 스스로 모순을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의 배열은 시의 특성과는 무관하달 수 있다. 그러니까 시의 능력과는 조금 다른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시 밖의 그 요인이 서사시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이 시는 그런 예를 보여준다. 해방 전 김일성 빨치산 부대의 보천보 전투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런데 전투장면이 주가 된 것이 아니라 보천보 전투가 일어나기 위한 여러 가지 정황과 조건을 아주 잘 배치함으로써 자칫 서사시가 갖는 사건 풀이의 지루함을 잘 비켜갔다. 이것이 이 시의 훌륭한 점이다.

  원래 서사시는 그 줄거리의 주인공이 흥미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생활에서는 그런 주인공을 만나기가 힘들다. 더구나 서사시보다 더욱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양식이 이미 정착한 상황이기 때문에 서사시가 굳이 맡아야 할 부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서사시가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잃어버린 영웅을 기대하는 심리에 맞추어 해방 전후의 시기에 그런 조건을 갖춘 인물이 등장했고, 그것을 맹목에 가깝게 추종하는 단체가 성립했으며, 그것이 엄연히 살아있는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런 점에서 마지막 서사시가 될지도 모르겠다. 줄거리 전개와 절제된 묘사, 인물들의 전형성 나아가 시의 호흡까지 거의 완벽하다고 할 정도의 형상화를 이루었다.★★★★★[4337. 9. 11.]

 

826□눈사람□최승호, 세계사시인선 66, 세계사, 1996

  머리로 쓴 시이다. 시는 가슴으로 써야 한다. 판단은 머리가 하지만, 감정은 가슴으로 오기 때문이다.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은 좋은데, 그것이 너무 말장난 수준으로 떨어졌다. 죽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설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라는 현상을 설명하거나 수집해 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그 간단한 사실을 큰 시인이 놓친다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시들이 형상화 이전의 메모 수준에 머물러있다. 자신을 위해서나 독자를 위해서나 큰 불행이다.★★☆☆☆[4337. 9. 11.]

 

827□여백□최승호, 솔의 시인 9, 솔, 1997

  앞의 시집을 낸 지 1년만에 나온 시집이다. 그래서 그런지 얄팍하다. 얄팍해도 앞의 시집보다는 훨씬 무겁다. 시집 전체의 주제를 눈사람으로 좁혀서 그 순환성을 찾아 연관 있는 이미지들을 엮었다. 대단한 능력이다. 의식은 앞 시집의 연장선에 있지만, 앞 시집이 있지도 않은 관념에 붙잡혀 허송세월을 한 듯한 인상을 주는 반면에 이 시집은 제목처럼 여백의 의미를 눈사람이라는 한 이미지를 통해서 끊임없이 발견하고 해석했기 때문에 크게 성공했다. 있으면서도 없는 삶의 실체를 잘 나타내주는 상관물로 눈사람을 설정한 안목이 대가임을 증명한다.★★★☆☆[4337. 9. 11.]

 

828□완전주의자의 꿈□장석주, 청하시선 1, 청하, 1981

  어수선하다. 그 어수선함은 할 말에 비해 너무 많은 말들이 동원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특히 묘사가 많은 시집인데, 그 묘사들이 무언가를 전해주기 위해서 동원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채 내가 겪은 체험을 드러내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시는 몽롱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체험 중에서 내 느낌을 싣고 갈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해서 등장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런 걸러내기가 잘 안 됐다.★★☆☆☆[4337. 9. 12.]

 

829□길은 마을에 닿는다□김완하, 천년의 시 4, 천년의시작, 2003

  꼭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시에서는 치명상이다. 시가 많은 말을 동원한다고 해서 느낌을 잘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얼마만큼 그 상황에 정확한 이미지를 동원하느냐 하는 것에 대부분 성패가 달려있다. 꼭 필요한 이미지 주변에 그렇지 못한 것들이 많이 달라 붙어있다. 그래서 좀더 냉정하게 깎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제가 약간 빈약한 듯한 느낌도 이런 내용과 관련이 있다. 한 번 더 벗겨서 주제와 이미지의 연결을 견고하고 끈끈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4337. 9. 12.]

 

830□꿈을 비는 마음□문익환, 제3문학시선 1, 제3문학사, 1990

  문익환은 워낙 정치성이 강한 행동을 해와서 이 시집을 읽기 전에 시 역시 그러하려니 하고 짐작했는데, 막상 시집의 내용은 너무 참하다. 윤동주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짧은 시들은 예외 없이 윤동주의 느낌이 난다. 아마 일부로 그런 분위기로 시심을 달랜 듯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긴 시들은 그런 분위기로는 전달할 수 없는 애절함이 있어 윤동주의 애절함이 노출된다면 아마도 이런 식으로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별을 소재로 한 시들은 너무 좋다.★★☆☆☆[4337.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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