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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94
2015년 02월 11일 17시 09분  조회:1651  추천:0  작성자: 죽림

932□청풍에 살던 나무□김시천, 제3문학시선 7, 제3문학사, 1990

933□지금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것이□김시천, 온누리, 1993

  처음 시를 배울 때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가지 기교와 장치를 연습하게 되는데, 그 단계가 지나서 기교가 몸에 익고 그런 장치를 통해서 감정을 자유자재로 드러내는 경지에 이르면 저절로 그 전의 기교를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말해야 할 그 어떤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떠 안게 되면 기교는 먼발치로 물러서서 그러한 사상을 드러내는 데 가장 필요한 뼈대만을 남기고 나머지 잔재주는 흐믈흐믈 해진다. 시의 맛은 많이 사라지지만, 그 사상성이 갖는 무게 때문에 때로 그 맛에 집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시로서는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된다. 목적성이 두드러지면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이다. 그러나 그 이데올로기 뒤에 먼발치로 물러선 장치들이 다시 드러나는 시기에는 시가 정말 해야 할 말들이 살아난다. 그때를 기다려야 할 시들이다.[4337. 12. 3.]

 

934□얼굴 없는 사람과의 약속□정한용, 민음의 시 28, 민음사, 1990

935□슬픈 산타 페□정한용, 세계사시인선 43, 세계사, 1994

936□나나 이야기□정한용, 민음의 시 92, 민음사, 1999

  시인의 첫 출발은 다분히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형식과 의식의 실험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가 세 번째 시집에 와서는 그런 바탕 위에서 서정성을 곁들이고 있다. 초점은 일상 속의 비어있는 어떤 것이다. 그곳에 작용하는 힘들의 방향과 의미를 추적한다. 그리고 시를 쓰는 방법이 아주 성실하다. 이 점이 사실은 시인의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모더니즘은 의식의 치열성과 그 앞서나가려는 몸부림이 두드러져야 한다. 그 계열의 시인들이 자꾸 낯설게 하기 수법을 택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이 시인의 시들은 너무 점잖다. 의식의 깊이로 본다면 시가 너무 늘어져있다. 무언가 더 단단하고 압축된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역으로 관성을 벗어날 만큼의 이탈이 필요하다. 시를 일관된 시각과 방법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이 시인이 짧은 100m달리기의 시인이 아니라 마라톤형 시인임을 말해준다.[4337. 12. 3.]

 

937□쑥의 비밀□박윤배, 전망시선 3, 전망사, 1993

938□얼룩□ 박윤배, 경계시선 18, 문학과경계사, 2002

  이 시인의 특징은 이미지 사이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발랄함이다. 서로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미지들을 교묘하게 꿰면서 독자의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를 남긴다. 그리고 그런 감각들이 일상의 훈련에 잠겨있는 느슨해진 느낌을 아주 잘 건드려서 일깨운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들이 파고드는 세계가 좀 더 깊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발랄함이 무게를 갖추려면 세계의 문제와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 발랄함의 감각 때문에 때로 군더더기가 생기기도 한다. 결국 세계의 깊이를 전제하지 않으면 감각은 무언가 결핍된 느낌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4337. 12. 4.]

 

939□검은 밥에 관한 고백□유정환, 고두미, 2004

940□붉은 눈 가족□유정환, 고두미, 2004

  이 시집 두 권을 읽어보면 첫 눈에 들어오는 것이 시가 쓰여진 10년 동안의 일관된 경향과 수법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상의 놓치기 쉬운 세세한 부분에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의외로 단단한 세계를 이룬다. 특별히 눈을 확 잡아끄는 표현도 없고 특별히 긴 시도 없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묘한 맛을 내는 것은 시가 건드려야 할 부분이 삶의 여러 정서 중에서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시집이 나오기 이미 10년도 전에 방법과 세계가 딱 짜여졌다는 뜻이다. 일상으로부터 어떤 것을 더 끄집어내어 세계를 깊게 하느냐 하는 것이 남은 숙제일 것이다. 그것은 시가 그러하기에 삶 스스로 깊어지는 수밖에 없다.[4337.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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