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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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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96
2015년 02월 11일 17시 12분  조회:1707  추천:0  작성자: 죽림

951□지상의 그 집□홍윤숙, 시와시학사, 2004

  유장함이란 이런 것일까? 시의 호흡이 아주 길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할말을 굳이 숨기지 않으면서도 긴장이 살아있다. 무엇보다도 생을 관조하는 깊은 관찰이 시집 전체의 폭과 깊이를 넉넉하게 만든다. 젊은 시인들이 본받아도 한참을 본받아야 할 시집이다. 다만 사건을 전달하거나 설명투로 떨어진 부분이 곳곳에 있어서 그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그것은 어쩌면 여유라고 보아도 되겠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어쩌면 이런 시들 때문에 일종의 축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4337. 12. 6.]

 

952□나는 미이라가 되고 싶다□박세림, 문학사상사, 2004

  대체로 시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너무 많은 말들을 동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주로 이야기의 화법으로 쓰이고 있어서 시가 갖는 가벼운 행보 대신에 산문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걸음이 느껴진다. 이것은 자신의 체험이 감정과 뭉뚱그려져서 어디서 시가 발화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지 못한 탓이다. 따라서 시를 쓴 다음에 주제를 한 번 더 정확하게 정한 다음, 그것을 중심으로 불필요한 말과 이미지를 걷어내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시의 고유한 질서를 좀 더 깊에 파고들 필요가 있다.★☆☆☆☆[4337. 12. 7.]

 

953□추억의 푸른 이끼□장병천, 현대시 시인선 14, 현대시, 2004

  정밀한 묘사가 압권이다. 그 만큼 시를 많이 써봤다는 얘기이고, 섬세한 장면이 정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분명한 계기가 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아는 시인이다.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른 호흡과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시집 전체의 흐름을 밋밋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프로펠러 소리가 졸음을 유도하듯 단조롭다는 것이 흠이다. 그리고 사물을 보는 시각과 시로 엮는 상상의 접근법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도 칭찬 받을 일은 못된다. 사물로부터 관념을 너무 많이 유추하면 시가 자칫 모호해질 염려가 있고, 특히 관념의 모호성 때문에 시인의 성실성에도 불구하고 읽는 독자는 지루해한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4337. 12. 7.]

 

954□마지막 주유소□권정일, 현대시 시인선 15, 현대시, 2004

  표현이 그 자체로 시의 목적이 되는 수가 있다. 그런 상황의 시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표현은 시의 정서를 전달하고 독자의 마음에 긴장을 일으키는 한 보조수단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시집은 어느 쪽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 흠이다. 분명 앞의 것이 아니라면 표현은 너무 수다스럽고, 그 수다스러움 때문에 정서를 전달하는 데 장애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표현을 그렇게 하는 데는 반드시 그런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는 감성을 일깨우는 그 어떤 방향이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한 인식이 분명치 않아서 시가 어수선해졌다. 한자 역시 어수선하다.★☆☆☆☆[4337. 12. 8.]

 

955□주머니 속의 생□임종성, 현대시 시인선 17, 현대시, 2004

  아주 깔끔한 서정시다. 맑은 물처럼 시가 맑다. 영혼이 맑지 않다면 어려운 일이고, 시의 특징을 아주 잘 소화한 경우이다. 그러나 서정성에 너무 집착해서 그런지 다소 허한 시들이 많다. 이 허함은 주로 주제 쪽에서 온다. 시가 꼭 무게 있는 주제를 수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제가 그냥 그렇게 끝나서는 어딘가 아쉬운 그런 시들이 있는 법이고, 이 시집의 곳곳에 그런 시들이 있다. 이 경우 정신의 방향을 단련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다. 그리고 울림이 깊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할 때다. 한자는 한 글자라도 혹이다. ★★☆☆☆[4337. 12. 8.]

 

956□양산시편□정대구, 시선시인선 3, 시선사, 2004

  ‘할머니와 풍선’을 절창으로 꼽는 이유는 놀라운 관찰을 통해 얻은 사유를 적당한 비유에 실어서 무리 없이 할 말을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표현을 앞서가지 않고, 표현이 말을 짓누르며 넘치지 않아서 딱 필요한 만큼 말과 표현이 호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들이 작은 발견을 통해서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있거나 설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 시가 무거워졌다. 이것을 달관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걸음이다. 군살을 빼내거나 관찰을 좀 더 심도 있게 밀어서 표현과 말이 서로를 밀고 당기는 상태까지 가야 한다. 한자는 흠이다.★★☆☆☆[4337. 12. 8.]

 

957□견딤에 대하여□윤석산, 시선시인선 2, 시선사, 2004

  시를 쓰는 방법에는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어떤 말을 생각하고 있다가 그것에 적절한 이미지를 찾아서 쓰는 경우와, 어떤 이미지를 마주쳐서 거기에다가 할 말을 만들어 넣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시인의 경우는 앞의 경우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온다. 결국 후자의 경우에는 주제의 빈약에 빠져든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이런 시작법은 현실에 대해 치열할수록 좋은 작품을 쓰게 된다는 점에서 참 피곤한 시작법을 활용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따라서 시의 기법이 문제가 아니라 치열성이 문제가 된다. 온달, 처용, 서동과 관련된 연작들은 대상에 너무 얽매여 정작 하고자 한 말을 제대로 못한 경우이다. 따라서 대상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좀 더 명확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작품을 쓰는 비결이 될 것이다. 한다는 어떤 경우에도 비결이 되지 않는다.★★☆☆☆[4337. 12. 9.]

 

958□다보탑을 줍다□유안진, 창비시선 240, 창비, 2004

  이 정도면 늙음이 두렵지 않다. 눈을 사방으로 열어놓고, 말랑말랑한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월도 이런 정도의 시를 허락하는 모양이다. 젊은 사람들 못지 않은 긴장감이 시 전편을 흐르고 있다. 시가 짧은 것은 불필요한 기교를 덜어낸 탓이리라. 산문투로 떨어진 시들도 있지만, 그것이 시집 전체의 무게를 덜어내지는 않을 것 같다.★★★☆☆[4337. 12. 7.]

 

959□봄은 전쟁처럼□오세영, 세계사시인선 126, 세계사, 2004

  생각만으로 시를 쓰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다. 세계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생각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지만, 그때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 경우에는 거의 고전에 가까운 비유체계로 노래를 했는데, 그것이 낡아 보이는 것은 비유가 환기하고자 하는 세계가 형식에 의해 서정화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쓰인 비유체계는 서정시의 전형에 가깝다. 전통 서정시의 정서가 실리게 되어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도시의 문명을 담아버린 까닭에 어딘지 모르는 묘한 아쉬움이 생기는 것이다. 전략이 바뀌었어야 할 시점이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탈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이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을 무엇으로 바꾸어 가지고는 와 닿지 않을 만큼 도시는 복잡하고 어지럽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감상할 만큼 도시는 유유자적하지 않다. 내용에 맞는 형식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4337. 12. 9.]

 

960□악기점□배한봉, 세계사시인선 128, 세계사, 2004

  주제가 적절한 살을 입고 적절한 호흡으로 살아났다. 꼼꼼한 관찰을 거기에 걸맞은 길이의 표현으로 드러내는 수법이 능수능란하다. 그러나 아직도 불필요하게 친절하다는 느낌이 남는다. 좀 더 깎아내도 될 법한 시들이 꽤 있다. 게다가 뒤쪽의 시들은 너무 풀어졌다. 자연을 아주 깊이 관찰한 시각이 돋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 삶을 걸어놓고 있다는 것도 눈을 잡아끄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는 너무 세련되었다는 것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것이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으려면 자연과 거기에 담긴 체험의 절실성이 더욱 깊이를 가져야 할 것이다.★★☆☆☆[4337.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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