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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99
2015년 02월 11일 17시 16분  조회:1814  추천:0  작성자: 죽림
 

981□이슬방울 또는 얼음꽃□이태수, 문학과지성시인선 285, 문학과지성사, 2004

  비슷한 이미지와 주제들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지루하다는 뜻이다. 한 주제가 한 이미지를 타고서 한 곳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방법이 못 마땅하다면 그것들을 나열한 시가 좀 더 큰 무엇을 위해서 선명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점은 시 쓰는 버릇의 관성이 새로운 주제를 찾지 못할 때 오는 증상이다. 그러니까 형식이든 주제든 무언가 새로운 방향 전환이 필요한 때라는 뜻이다.★★☆☆☆[4337. 12. 18.]

 

984□낮은 수평선□김형영, 문학과지성시인선 292, 문학과지성사, 2004

  시가 짧아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냥 짧아서는 안 되고 어떤 식으로든 압축이 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까지 압축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엿장수 맘대로지만, 엿맛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가져야 한다. 독자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설사 묻는다 해도 독자들은 관심이 없다. 한자는 누더기다.★☆☆☆☆[4337. 12. 19.]

 

982□하강시편□안수환, 동학시인선 78, 동학사, 2004

  짧은 시들의 연작이다. 거침없이 생각의 마디들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갈래가 시이면서 연작의 형식이다. 그 전체를 꿰는 어떤 중심이 있기 마련인데, 대부분 그의 삶이 그것이다. 함부로 말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래서 그 행보의 가벼움 내지는 시각의 신선함 같은 것이 연작을 바라보는 독자의 흔한 기대일 것이다. 어디까지 형상이라고 해야 할지 잠시 갸웃거리게 하는 시집이다.★★☆☆☆[4337. 12. 19.]

 

983□고요의 남쪽□강현국, 열린시학시인선 4, 고요아침, 2004

  시가 아주 독특하다. 짧은 시의 강점을 아주 잘 살리고 있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가도록 이미지를 배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런데 이미지들을 연결시키는 데에는 다소 논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직감에서 오는 것이든 일상의 논리에서 오는 것이든, 어쨌거나 그것이 사고를 자극하여 감성이 반응하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무언가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 시집이다.★★☆☆☆[4337. 12. 19.]

 

984□비누□이승훈, 열린시학시인선 1, 고요아침, 2004

  생각을 방목한 것 같다. 굳이 좋게 얘기하자면 흐르는 의식이 터져 나오는 대로 받아 적은 것인데, 어떤 절제가 작용하는지 매끈하고 깔끔하다. 없는 것은 시뿐만이 아니다.★★☆☆☆[4337. 12. 20.]

 

985□신비주의자□주종환, 천년의시작, 2003

  니체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세계의 질서를 흔들고자 한 의지가 그런 어조를 낳았으리라. 서사시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하고, 일부는 시를 닮았기도 하고, 해서 도무지 어느 갈래에다가 넣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시이다. 그러니 시로 귀속시킬 수밖엔 없는데, 시이면서 시의 바깥으로 자꾸 나가려고 하는 것은 시라는 양식으로는 전할 수 없는 어떤 애절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란한 표현들은 어떤 단순한 것을 대체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다. 어렵고 구부러진 길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궁금증에 대해 시원한 내용물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니체에 버금가는 작품을 쓸 것이다. 한자는 장애이다.★★☆☆☆[4337. 12. 20.]

 

986□단 한 사람□이진명, 문학판시 4, 열림원, 2004

  원로시인의 수필 같다. 그 말을 하기 위해서 동원된 말이 그 말보다 더 많으면 그건 시를 잘 못 쓴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쓴다면 어떤 의도가 있겠지만, 그 말을 전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면 그건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수필과 시의 중간에 어정쩡하게 걸쳐있다.★☆☆☆☆[4337. 12. 20.]

 

987□꽃잎 세기□문덕수, 시문학시인선 204, 시문학, 2002

  이미지 선택이 꽤 신중하고 섬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경직돼있다. 독자들은 한참을 더 나갔다. 옛날 원고 갖고 강의할 때 느껴지는 빛 바랜 느낌이다. 이미지 묘사만으로는 무언가 허전한 것이 시에는 있다. 방법상의 완숙은 그런 문제를 떠나지만 이미지에 의미를 실으려고 하는 욕심이 발동하는 순간에 이미지는 달구지로 전락한다. 이미지가 벗어놓은 옷처럼 흐믈흐믈 하지 않고 몸에 입혀진 것처럼 꽉 찬 느낌을 주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한자부터 버릴 일이다.★☆☆☆☆[4337. 12. 21.]

 

988□절정의 노래□이성선, 창비시선 96, 창작과비평사, 1991

  시에서 맑은 영혼이 드러나는 지점은 욕망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각이 드러나는 곳이다. 이런 경지를 추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옛날부터 자연에 귀의하여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 한 전통이었다. 자연에 깊이 기대면 욕망이 저절로 소멸된다. 이 점에서 이 시인보다 더 깊이 들어간 시인은 못 보았다. 인간이 인간을 버리고 자연의 질서를 따를 때 얻을 수 있는 인식과 세계관이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신선한 솔바람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허황하거나 묘사를 끝날 자연이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은 냉정한 관찰의 과정에서 시인의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순수한 영혼에 비쳐진 자연이 아주 잘 살아있는 시다. 한자는 자연스럽지 못하다.★★★★☆[4337. 12. 21.]

 

989□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김태정, 창비시선 237, 창비, 2004

  사상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서 스러지지 않은 분노의 감정들이 시로 살아났다. 그래서 그런지 수필체의 무거운 걸음이 시집 전체를 잡고 있다. 좀 더 가벼운 행보가 필요한데, 이것이 감정의 정리와 관련이 있을지는 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세상이든 사물이든 무언가 보는 눈의 방향을 잃으면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빨리 아는 것이 좋은 작품을 쓰는 가장 중요한 비결일 것이다. 그 눈이 지금 빠져있다.★★☆☆☆[4337. 12. 21.]

 

990□물방울 속에 우주가 있다□황금찬, 시인정신시선 42, 오감도, 2000

  시의 수준이 들쭉날쭉이다. 관찰과 인식이 주를 이루는 시는 뛰어난 형상력을 보여주는 반면에 어떤 주장을 담은 시들은 경직됐다. 이것은 시인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의 틀이 단순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팔방미인이 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빼어난 부분을 더욱 드러내서 시 세계 전체를 아름답게 할 필요가 있다. 시에다가 윤리교과서의 한 구절을 넣은들 젊은 사람들이 그대로 들어줄 리 없기 때문이다.★★☆☆☆[4337.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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