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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名詩 공화국
991□해가 많이 짧아졌다□김종길, 솔, 2004 시인이 나이를 들면 두 가지 증상이 생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때문에 그 반동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것과 구경 삼아 여행을 다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나이든 시집의 전형이다. 그 속에 관조와 달관의 자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달관이나 관조란 할 말이 없는 상태의 심정이기 때문에 시가 짧아진다. 짧아진 시에 너무 많은 말을 담으려 했다. 한자는 도움이 안 된다.★★☆☆☆[4337. 12. 22.]
992□검은 산 하얀 방□김지하, 솔, 1994 앞 부분은 시 이전에 감전 당한 영혼의 절규에 가깝다. 상황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서 가슴속의 말이 나오기 때문에 모든 이미지는 상징으로 비화한다. 상징은 해석의 자유가 많이 허용된다. 그 분위기를 어긋나지 않는 한의 자유이다. 하지만 해석의 자유는 이미지의 불충분함을 정당화하련 가장 좋은 기제이기도 하다.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것이 이런 경우이다. 뒷부분은 정치 선언에 가까운 절규이다. 그런 것을 시로 받아들이는 것은 시대의 감수성과 안목의 몫이다.★★☆☆☆[4337. 12. 22.]
993□사라진 폭포□김수복, 세계사시인선 119, 세계사, 2003 묘사만 가지고는 시가 되지 않는다. 특히 묘사가 짧아지면 대부분 마음의 상관물로 변하기 마련인데, 그렇게 될 때는 반드시 그것이 내 마음속의 그 어떤 정황과 꽉 맞물려있어야 한다. 글로 옮겨놓은 이미지가 그럴 듯하다고 해서 그것이 무언가를 대변해줄 꺼라는 막연한 기대가 독자에게는 메아리를 주지 못하는 법이다. 많은 곳에서 이런 맞물림이 흔들리고 있다. 한자는 더 흔들린다.★★☆☆☆[4337. 12. 22.]
994□라․라․라□박의상, 고려원현대시인선 9, 고려원, 1995 여러 가지로 실험성이 강한 시집이다. 시행의 배치가 남다르다. 왼쪽 정렬의 관행을 깨고 짧은 행을 이리저리 배치하여 어떤 형태를 보이거나 기존의 형태를 흔드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시의 내용들도 불편한 현실에 반응하는 내면 심리를 담고 있다. 시라는 형상성의 고정 관념을 흔들고자 한 의도는 보이는데, 상상력의 체계 자체를 흔들어서 새로운 상상의 체계를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볼 시집이다.★★☆☆☆[4337. 12. 23.]
995□자화상을 위하여□홍신선, 세계사시인선 111, 세계사, 2002 표현에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시가 필요 이상으로 화려해졌다. 다루는 내용들이 화려한 수사를 버려야 하는 것들이 많은데도 그냥 두어서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버릇이 작용한 탓이다. 그게 뭐 그리 대수냐 싶겠지만 필연이 아닌 표현은 언제든지 말장난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도외시해서는 역시 좋은 시가 나오기 어렵다.★★☆☆☆[4337. 12. 23.]
996□거울 속의 천사□김춘수, 민음사, 2001 이 시집에서 무의미시의 의미가 아주 잘 드러난다. 이 시집에 의하면 시는 절대로 중요한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아주 가벼운 얘기, 그 중에서도 될 수 있으면 장난삼아 놀 수 있는 그런 아주 작은 얘기를 하는 것이 시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나머지는 다 가짜다. 그러니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들은 시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짧을 수밖에 없고, 인간 사이에서 전혀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감각들을 초대하는 것이 그 짧은 행보의 원인이다.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완벽한 시가 되지 않겠나 싶다. 그러나 시가 그런가? 그건 그런 전제 때문에 그런 것이지, 시가 본래 그런 것이 아니다. 일부러 틀린 전제를 해놓고서 평생을 신념을 산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어리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그런 단순성이 시인의 한 기질이기도 하다. 그것이 교조화 하는 것의 부작용까지 고려하라고 하면 단순에 대해 너무 큰 요구가 될 것이니, 누구를 탓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는 그일 뿐이다. 한자는 그도 저도 아니다.★★☆☆☆[4337. 12. 24.]
997□모래인간□최승호, 세계사시인선 101, 세계사, 2000 관찰도 놀랍고, 그것을 드러내는 표현도 놀랍다. 죽음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이토록 깊이 파고들 수 있다는 그 집중력도 놀랍다. 파고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순전히 보여주는 것만으로 할 말을 하는 것에서는 광기를 넘어선 신들림의 느낌까지도 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죽음에 천착하는 것일까? 죽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가치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방식이다. 한자는 끝내 거슬린다.★★★★☆[4337. 12. 25.]
998□맨발□문태준, 창비시선 238, 창비, 2004 늙은이가 쓴 시 같다. 작은 풍경에서 그 만큼 많은 것을 보고 있다. 사물을 아주 깊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많이 본 것을 아주 적은 묘사로 드러내는 것은 시인의 능력이다. 그리고 시에서 작은 것으로 많은 것을 드러내는 방법은 상징이다. 상징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다. 이 역시 오랜 관찰과 단련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아주 탁월한 재주를 갖고 있다. 그러나 너무 자세히 보려고 하다가 정작 커다란 것을 놓치는 수가 있다. 많은 시들이 말을 하다 만 느낌을 준다. 할 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애써 찾아낸 표현을 아까워한 탓도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정도면 시가 언어의 경제 원칙에 가장 충실하다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경우이다. 시간이 깊이를 더할 것이다. 대마초를 피우는 것이 예술의 진가를 발휘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결국은 몸을 망가뜨리기에 불법이라는 것을 환각상태에서는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다. 시에서는 가끔 그럴 때가 있다.★★★☆☆[4337. 12. 26.]
999□광기의 다이아몬드□김록, 문학판 시3, 열림원, 2003 네 거리의 신호등 체계를 지나가던 개가 알 턱이 없다. 인간에게 언어는 말하자면 그런 신호체계이다. 그런 신호체계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언어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신호체계 밖의 동물들에게 그 언어체계는 재앙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목숨을 빼앗아갈 수도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동물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다. 오늘날 우리의 시가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이로 보면 우리 시의 깊이가 많이 깊어지기는 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을 시로 담는다는 것은 언어화의 문제이고, 그것을 언어의 질서 속에 편입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네 거리의 교통체계 밖의 질서가 언어의 체계 안으로 들어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 점에서 너무 일찍 시집이 나왔다. 언어 아닌 언어가 드러난 꼴이니 언어 아닌 언어가 언어 가까이 접근했을 때 드러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일찍 등단한 셈이다.★★☆☆☆[4337. 12. 27.]
1000□김수영 전집 [1] 시□김수영, 민음사, 1981 한암이 절친했던 만공의 장례식에 가지 않은 것은, 만공의 걸림 없는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그가 남긴 기이한 행실이 선문에 든 후손들에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보아서 그를 경계하고자 함이었다. 그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계집질하고 개고기를 먹고. 한암의 청고한 선풍이 서릿발 같이 휘날리는 중에도 말이다. 그런데 한암도 없는 한국의 시단에 만공이 저지른 오류는 그대로 한국 문단의 걸림돌이자 장애로 작동하고 있음을 김수영 이후의 시 행태에서 여지없이 나타난다. 스스로 치열했을지 몰라도 김수영은 그 후대에 끼친 악영향이 너무도 크다.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의도와는 상관없이 난해시의 한 전범을 보여주었고, 시에 대한 오해를 한층 더 강화시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술 처먹고 대중 앞에서 지랄 발광하는 것을 시인 본연의 행실로 여기도록 기여한 주당들의 오류 이상으로 김수영의 실패작들은 한국문단을 어지럽혔다. 자신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써놓은 시를 자유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 부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때로 홀로 높았던 정신이, 자신을 비출 거울을 갖지 못한 불행으로, 그를 이해 못한 추종자들에게 코스츔만 남기게 된다는 사실을 김수영에게서 본다. 어쩌면 이는 김수영의 잘못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구석이 있다. 반성할 것은 스승이 아니라 스승을 뛰어넘지 못한 무능력한 제자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4337.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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