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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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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101
2015년 02월 11일 17시 19분  조회:2035  추천:0  작성자: 죽림

 

1001□상가에 모인 구두들□유홍준, 실천문학의 시집 146, 2004

  가장 짤막한 묘사로 아주 많은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도록 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 사물을 보는 눈이 아주 참신한데 그것을 그저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의미의 울림을 주는 상징의 방법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시인이다. 모든 이미지들이 죽음과 소멸 쪽으로 맞추어져 있어서 큰 이야기로 시 전체를 끌어올리는 방법까지 소화하고 있다. 다만 그 주제가 어느 방향을 향하지 않고 있어서 소재주의의 인상을 씻어내기 힘들다는 것이 약점이다. 이미지만으로는 안 되는 어떤 경계가 시에는 있다. 그것은 대부분 의미의 몫인데, 그 의미는 세계관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면 모래처럼 흩어져버리고 마는 그런 것이다. 그 부분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라도 한자는 버릴 일이다.★★★☆☆[4338. 2. 7.]

 

1002□풍경의 위독□전기철, 세계사시인선 125, 세계사, 2004

  될 듯 될 듯하면서도 한 가지가 빠져서 시가 안 되는 경우이다. 애써 사물을 관찰하여 좋은 표현을 얻었는데도 그것을 자꾸 설명하려고 드는 버릇이 시의 걸음걸이를 무겁게 하고 자꾸 사건을 등장시킨다. 그래서 찾아낸 표현이 처음 얘기하고자 했던 것이 흐려지고 사건이 시의 전면으로 등장하기 일쑤이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는 시를 쓴 다음에 주제를 확정하고서 그 주제와 상관이 없는 것들은 모두 과감하게 잘라낼 필요가 있다. 이미 앞에서 말해서 다 알고 있는 것을 자꾸 설명하려고 드는 것은 어렵게 만든 감동을 갉아먹는 효과밖에 안 된다. 말 속에 표현을 끼워 넣지 말고, 표현 뒤로 말을 숨기는 법을 깊이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4338. 2. 15.]

 

1003□앤디 워홀의 생각□이규리, 세계사시인선 124, 세계사, 2004

  사물을 보는 눈이 안정돼있고 그것을 끌어내기 위한 표현을 찾는 데도 성실성이 묻어난다. 그런데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하고자 하는 말이 특별히 여길 만한 것이 아니라면 생각이 기대는 방향과 색깔과 표현을 좀더 선명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좋은 표현이 많으면서도 시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리 중요할 것 같지 않는 작은 것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이는 까닭이다. 깊어질 곳에서 깊어지고 늘어질 곳에서 늘어지는 어떤 가락을 찾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지름길일 것이다. 한자부터 버릴 일이다.★★☆☆☆[4338. 2. 16.]

 

1004□꿈의 해석□백주은, 현대시 신작시집, 한국문연, 2004

  시에서 구조의 긴장을 만드는 법도 잘 이해하고 하고자 하는 말을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서 제시할 줄도 아는데, 너무 설명하려 드는 것이 흠이다. 다른 갈래, 예컨대 영화 이야기는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와닿게 된다는 것도 그것을 시로 쓰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시가 일상생활에 딸려서 움직이는 것도 문제다. 초점이 한 곳으로 모이지를 않게 된다.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되 일상 속에 빠져버리면 헤어나기 힘들다. 일상 속에 발을 딛고 있되, 시에서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럴려면 내가 택한 특수한 체험이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 위에서 시상이 전개되어야 한다. 한자는 격절이다.★★☆☆☆[4338. 2. 17.]

 

1005□두미리 가는 길□최현순, 현대시 신작시집, 한국문연, 2004

  간간이 빼어난 표현이나 구절들도 보이는데, 대체로 어디까지 얘기를 해야 시가 되고 안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판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집이다. 시에 끌어들여 중요한 이미지로 작용하게 되는 것과, 시에 끌어들이면 시 전체가 무거워져서 끌어들이지 말아야 하는 것의 경계가 아직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흠이다. 바로 이런 조절이 잘 안 되어 애써 얻는 귀중한 이미지들이 그 속에 파묻힌 경우다. 그러므로 주제를 정확히 정한 다음에 그 주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들은 과감하게 잘라낼 필요가 있다.★☆☆☆☆[4338. 2. 17.]

 

1006□가시나무새□노욱진, 현대시 신작시집, 한국문연, 2004

  ‘이슬처럼 동그랗게 말린다’ 같은 시는 정말 빼어난 시다. 사물을 보는 시각도 신선하고 거기에다가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는 능력도 곳곳에서 빛을 낸다. 그런데 군더더기가 많다. 굳이 없어도 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지루하게 따라다니는 시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한 발상을 얻었으면 그 발상이 담아낼 수 있는 내용의 한계와 그 발상에 뒤따라오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내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만큼만 말을 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시집 곳곳에서 아주 깊은 경지까지 들어간 시들이 보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적지 않아서 아쉬움을 주는 시집이다. 애써 얻은 생각을 시로 완성시키는 방법을 잘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4338. 2. 17.]

 

1007□아름다운 경계□장진숙, 현대시 신작시집, 한국문연, 2004

  시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전문성을 갖는다는 것이고, 그 전문성은 기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남다른 눈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남다름이란 특수한 사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인식에서 한 겹 더 벗기고 들어가서 일상의 인식에 신선한 기풍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곳곳에서 많은 좋은 표현들이 있지만, 바로 이 점에서 어딘가 부족한 맛을 남기고 있는 시집이다. 남들의 생각을 잘 대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생각이 남들의 생각과 잘 어울리면서도 드러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4338. 2. 18.]

 

1008□꽃피면 통화중이다□권선숙, 현대시 신작시집, 한국문연, 2004

  시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안다. 시에 담아야 하는 감정을 정확히 골라서 담는 것은 타고난 능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감수성이 풍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타고난 시인의 품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대상을 찾는 능력도 탁월하다. 대상에 대한 해석에 무리가 없고 자신의 할 말만을 적당히 실어서 전개시키는 것도 아주 좋다. 시가 짧은 형식으로 순발력을 잘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이해하고 있다. 다만, 시세계가 좁은 것이 흠인데 좀 더 넓게 보는 시야를 기른다면 뛰어난 시인이 될 것이다.★★☆☆☆[4338. 2. 19.]

 

1009□산마을□한광구, 모아드림 기획시선 64, 모아드림, 2004

  나이 들어가면서 기교를 버리기는 쉽지만, 깊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시집은 기교를 버리고 아주 깊어졌다. 시가 짧아진 것이 기교를 버린 결과인데, 나이 많은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신의 목소리를 들을 만큼 깊어졌다. 참 대견한 일이다. 그런데 시에서는 기교를 너무 버리면 때로 그 깊은 목소리도 나이 많은 사람의 잔소리로 들리는 수가 있다. 그렇지만 깊어진 세계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4338. 2. 20.]

 

1010□비발디풍으로 오는 달□김성춘, 모아드림 기획시선 66, 모아드림, 2004

  잡다디한 것 과감하게 잘라버리고 핵심만을 잘 추리는 능력이 돋보인다. 지나치기 쉬운 풍경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잡아내어 그것을 시로 만드는 능력에서는 긴장마저 느껴진다. 이것이 시를 살아있게 하는 요인이다. 그런데 너무 과격하게 추린 까닭인지 뼈만 앙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큰 말들이 소화되지 못한 채 곳곳에서 복상 뼈처럼 튀어나온 것도 흠이다. 시가 간단한 양식이지만, 간단하더라도 울림을 주려면 그 안에 공명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그냥 제시만 해가지고는 어쩐지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불필요한 한자표기와 더불이 이 점이 아쉽다.★★★☆☆[4338.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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