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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103
2015년 02월 11일 17시 23분  조회:1613  추천:0  작성자: 죽림

 

 

1021□마른 작설 잎 기지개 켜듯이□김정웅, 문학동네 시집, 문학동네, 2004

  너무 깊이 들어갔다. 마음이 가 닿은 곳은 일정한 곳이 있다. 그곳은 무색 무취 무미의 세계이다. 그 세계에서 세상을 보는 맛도 괜찮은데, 어쩐지 시큰둥하다. 감정이 인다면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돌아오는 세상이라면 너무 고요하다. 시는 그 고요함의 위에 떠있는 어떤 세계이다. 지지고 볶는 곳에서 시는 가장 아름다운 출렁임을 보인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들어간 그곳의 고요함을 보여주는 것이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볼 거리가 있게 된다. 그냥 있을 것 같은 느낌만 보여주어 가지고는 통 시의 맛이 나지를 않는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이런 어정쩡한 그림을 그렸는지 궁금하다. 어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되, 도대체 어디를 겨누어야 정말 좋은 시가 나올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할 시집이다. 어딘가 한 곳이 맞물리지 않아 겉돌고 있다는 뜻이다.[4338. 7. 12.]

 

1022□번개를 치다□정병근, 문학과지성 시인선 296, 문학과지성사, 2005

  할 말이 없는 시대에 시가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준다. 시들이 짧다는 것이 특징이다. 시가 짧다는 것은 할 말이 없을 때 생기는 현상이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정말 할 말이 없거나, 할 말이 없어도 써야 할 경우에 생기는 일이다. 할 말이 없는데도 써야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고민한다.

  이곳의 정제된 표현들은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사물의 배후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일반독자들은 저절로 멀어지게 된다. 심미안을 요구하는 것이다. 심미안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그런 시대의 한 풍경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그런 점에서 착잡한 시집이다.

  그리고 시야가 너무 좁다. 좁은 것이 단점은 아니지만, 큰 것을 놓치기 좋은 조건이기 때문에 이 점을 경계해야 할 시집이다. 열정이 빠져나간 곳에서 폭이 좁은 것은 중요한 한계일 수 있다.★★★☆☆[4338. 7. 13.]

 

1023□소□김기택, 문학과지성 시인선 294, 문학과지성사, 2005

  마치 찍어낸 것 같다. 동일한 방법과 시각으로 눈만을 돌려서 망막에 비치는 대로 벽돌 찍듯 찍어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대단한 힘이다. 앞부분에서는 대단한 긴장으로 장강처럼 흘렀는데, 중간 부분에서는 묘사에 불필요하게 정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흠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시시콜콜 정성을 들이고 있어서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온다. 그 내용에 딱 맞는 구조에 대한 고민이 없이 습관처럼 시를 쓸 때의 타성이 느껴진다. 이 타성을 걷어내는 것이 대가와 평범을 가르는 경계가 될 것이다. 정신이 문제다. 사물과 사회와 나를 하나로 꿰는 정신.★★★☆☆[4338. 7. 13.]

 

1024□개 같은 신념□정철훈, 문학동네 시집, 문학동네, 2004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것을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정말 훌륭한 미덕이다. 그리고 그 부분으로 좀 더 들어가야만 정말 좋은 시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집의 경우, 기교를 부리지 않는 평범한 어투로 말하면서도 드러낼 것을 다 드러내는 묘한 재주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현란한 기교를 부리는 것보다 훨씬 더 능력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단의 아류로 전락하지 않고 자신의 화법까지 갖추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주 성실하고 뚝심이 느껴지는 시인이다.

  그러나 현실을 감싸안고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한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본 것을 어떻게 연결시켜야만 그것이 새로운 세계로 열릴 것인가 하는 것이 아직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이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이 부분이 제대로 연결되면 대작이라도 쉽게 쓸 수 있는 시인이다. 그리고 이런 어정쩡한 태도는 시인의 삶이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해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아직 토해내지 않은 것이 있다. 그러니 그것을 토해낼 때까지 긴 호흡을 아주 편하게 잘 뽑아내는 뚝심을 믿어볼 일이다.[4338. 7. 14.]

 

1025□불쑥 내민 손□이기성, 문학과지성 시인선 293, 문학과지성사, 2005

  한 작품을 오래도록 잡고서 끝까지 시를 만들려고 한 성실성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아직도 시의 언어들이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시의 방향 설정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다. 어느 때는 시가 전통 문법대로 움직이는데, 또 어느 곳에 가면 그 문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쓴다. 이런 점이 방법의 혼돈으로 비친다. 전통 시의 문법으로 보자면 너무 군더더기가 많고, 실험시의 문법으로 보자면 너무 충실하다. 그리고 시의 구조를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려고 하는 의도까지 겹쳐서 시가 다소 혼란스럽다. 뼈를 더 바르든가 살을 더 붙이든가 해야 할 시집이다.

  대체로 시가 산문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것은 시인이 그만큼 야심만만함을 뜻한다. 행가름에서 오는 기존의 질서가 주는 편리함을 버리겠다는 것이니, 이것은 곧 이미지와 구조에 자신이 있다는 태도에서 오는 것이다. 높이 살 만한 일이다. 그 패기를 어느 방향으로 끌어야 자신도 시도 분명해지는가 하는 것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4338. 7. 15.]

 

1026□양철 가슴□강문정, 문학동네 시집, 문학동네, 2005

  시의 표현은 주제를 대신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지만,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이쪽과 저쪽을 물고 늘어져서 이쪽을 통해서 저쪽을 보고 저쪽을 통해서 이쪽을 드러낼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시의 긴장이다. 그런데 대체로 이 시집에서는 단순한 대체로 이루어지거나 단순한 묘사로 그치고 있다. 그리고 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특수하거나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이것은 무엇을 얘기해야만 시가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자각이 분명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따라서 분명히 말해야 할 것과 그것을 드러냄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 어렵게 둘러 표현한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렵게 둘러댔으면 그 둘러댄 것을 애써 따라갔을 때 둘러댄 효과가 주는 만족감이 있어야 한다.[4338. 7. 18.]

 

1027□어느 농사꾼의 별에서□이상국, 창비시선 241, 창비, 2005

  욕망이 사라진 곳에서 마음이 마술처럼 피어난 시집이다. 대저 욕망을 끄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삶이고 사람이다. 그런데 그 욕망을 꺼야만 하는 곳에서 나오는 시들이 있다. 욕망을 끄면 욕망이 덮어씌웠던 것들이 보이고, 그것이 사라진 곳에서 해맑게 나타나는 마음의 지도가 있다. 그것을 찾아낸 시집이다.

  대체로 자연물에 많이 의탁해서 시를 썼는데, 그것이 삶의 체험에 잘 연결되어 어느 하나 만든 것 같은 어색함이 없고 저절로 흘러나온 것들이다. 아주 자연스럽고 좋다. 자연과 사람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한 전범이 될 만한 시집이다.

  다만 과거를 회상하는 시의 곳곳에서 잘못하면 타성으로 떨어지고 말 위험성이 남아있다. 그 타성만 경계한다면 이성선 시인 이상의 좋은 시를 쏟아낼 것이다. 큰 산이 큰 시인을 낳는다. 산은 인간의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4338. 7. 18.]

 

1028□철갑 고래 뱃속에서□정남식, 문학과지성 시인선 298, 문학과지성사, 2005

  시를 대하는 영혼이 깨끗하고 순결하다는 느낌이 우선 온다. 상상력의 발랄함과 성실함은 그 탓이다. 그런데 의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형식 흔들기라면 가나인, 황지우, 박남철에서 이미 많이 봐온 것이고, 상상력의 증폭이라면 그 동안 너무나 많은 시인들이 시도한 것이고, 삶의 비탄에 대한 통자라면 그 역시 많이 봐왔다. 상상력의 흐름을 보면 너무 얌전해서 이쪽 방향으로 보기도 어렵다. 어느 방향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분명하지 않다. 서 있는 자리가 분명히 드러나지를 않는 것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4338. 7. 18.]

 

1029□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정양, 문학동네 시집, 문학동네, 2005

  1부의 마재 시편은 아주 좋은 시들이다. 서정주의 질마재 신화가 말 그대로 신화 속에 머물러버렸다면, 이곳의 시들은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기에 그만큼 값지다. 땀내나는 삶의 모습이 시에 담긴다는 것만으로도 요즘의 경박한 시들과는 다른 값을 주어도 좋을 일이다. 다만 이야기가 지루해진 것이 아쉽다. 그것은 서술 방식이 단조롭고 할 말을 드러내기 위한 구조가 밋밋하기 때문이다.

  2부의 시들은 생활 속에서 주제를 잘 잡아냈다. 일상 속에 파묻혀서 긴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인데, 위태롭지만, 늘어지지 않는 어떤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다만 그것이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 데 깊이 묶여 있어서 시의 진행이 좀 무겁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주제를 가진 시가 범할 수밖에 없는 오류이다. ‘어금니’ 같은 작품은 사소한 구도와 설정으로 묘한 상징성을 일깨워주는 시이다.★★★☆☆[4338. 7. 19.]

 

1030□환상통□김신용, 시작시인선 50, 천년의시작, 2005

  시집 전체에 보이는 것은 아픔이다. 그런데 시집 한 권의 주제를 아픔이라는 단일한 주제로 담아낸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그 아픔이 한 개인 속에 들어있는 체험과 맞물려있고, 그 체험은 이 사회가 지닌 모순의 한 극점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어찌 보면 한 개인의 발언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상황이 되어, 시가 집단무의식의 단계까지 깊게 추를 드리웠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런 일이 그냥 나열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서 정확하게 직조되었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다. 그 전의 시에 비해 약간 늘어진 듯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이러한 집중력이 그런 타성을 삼켜버리고도 남을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민중문학이 여전히 우리 시대 시의 화두임을 아주 잘 보여주는 시집이다.★★★★☆[4338.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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